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미래를 위한 청소년 문화

오늘의 주제를 '미래를 위한 청소년 문화' 라고 정해 놓았지만 청소년이라고 하는 개념은 사실상 막연합니다. 청소년이라는 범주 안에는 어린이들도 포함되고, 사춘기의 학생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법규상으로는 선거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 있는 대학생 여러분 중의 일부도 청소년 개념에 포함됩니다. 오늘은 이런 막연한 청소년 개념을 다소 축소시켜 여러분보다는 다소 아래 세대에 속하는 세대들의 문화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예술과 사회분야에 관심이 많다 보니 문화정책을 유심히 살펴보는 편입니다. 최근 문화체육부(현 문화 관광부)에서는 '문화 비전 2000년' 이라는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이 위원회는 2000년을 눈앞에 둔 지금 문화적 차원에 서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사업을 하는 것이 좋은지를 연구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가장 먼저 내놓은 안 이 문화교육에 관한 것입니다. 그만큼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 말은 반대로 우리가 교육, 특히 문화교육에 관해 그동안 소홀했음을 인정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문화교육의 대상은 곧 청소년들이고, 그들이 2000년을 준비한다고 하면 이 분야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관성에 묻혀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환경의 문제, 환경을 지배하고 있는 가치의 문제를 소홀히 하곤 합니다. 이것은 곧 다가올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 뿐입니다. 지금 선명회(월드비전으로 명칭이 바뀜) 총재로 있는 오재식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걸핏 하면 '청소년은 내일의 주인공'이라고 말하지만 잘못됐다는 겁니다. 우리가 청소년을 내일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오늘의 그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청소년들이 맞이하는 내일은 지금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종살이하는 것에 불 과하다는 겁니다. 청소년을 내일의 주인공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 각종 화려한 수식어만 붙였지 실제 그들과 함 께 고민하지 못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날의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함께 대화하고 그들의 의견을 수용해야 합니다. 제가 1960년대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청소년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세계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때까지는 링컨 대통령의 민주주의, 즉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의 개념을 빌 려서 청소년의 문제를 해결코자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석학들이 지금의 개념으로는 청소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내놓은 대안이 'with youth' 라는 개념입니다. '청소년과 더불어'라고 하는 개념이 없이는 결코 청소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여러분들이 너무나 공감하고 있을 오늘날의 청소년 환경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제 수능 이 끝났고, 오늘 모든 신문들은 몇 페이지씩을 할애해서 수능의 문제와 정답을 알려주느라고 친절한 서비스를 하고, 또 교육방송도 입시위주의 방송을 내는 것을 상당한 교육적 공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환경이 올바 른 환경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을 안했습니다. 'with youth' 개념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우리와 문화적 전통이 비슷한 일본 역시 그동안 입시위주의 교육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경제대국을 이룩한 뒤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교육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내놓은 대안이 학교 주 5 일제입니다. 말하자면 모든 초·중등교육과정의 적어도 공립, 국립학교에서는 일주일 동안 닷새만 수업을 하 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공식적인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입시위주의 암기교육으로는 세계 정상을 지킬 수 없다는, 그리고 지금의 교육방식에 대한 반성에서 그런 변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창의적인 자기계발 을 통해서 일본의 미래를 열어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지금의 암기교육, 입시위주교육, 시험성적 하나로 전국의 청소년들을 서열화하는 이런 방식의 교육을 고집하는 반면 일본은 창의적인 것을 권장하는 교육을 지속한다면, 적어도 10년 내지 20년 후에 양국은 도저히 건너 뛸 수 없을 정도의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열성적인 교육열이 지난 30년의 짧은 시간 동안 우리나라의 근대화 작업을 성공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이런 왜곡된 교육열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교육이 경제발전의 도구로서만 기능한다면, 앞으로는 경제성장마저 성취할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앞으로의 정보사회는 물질적인 기초가 갖춰진 위에 생존보다는 한 차원 높은 생활과 문화의 욕구를 충 족시켜야 합니다. 이런 문화적 요소를 갖추지 못하면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핵심요소 도,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국가발전도 결국 청소년 교육문제와 직결돼 있습니다. 그들에게 21세기를 준비할 수 있는 그런 여건을 만들어 주느냐, 아니냐가 국가의 흥망을 결정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비가 없을 경우에, 결국 두 가지의 극단적인 현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집중해서 암기하고 지 식을 습득하는 방식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확실하게 푸는 방법은 폭력과 외설밖에 없습니다. 이 두 가지 방식이 유일한 길이고, 또 이윤에 밝은 어른들이 이런 편법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청소년의 환경은 점점 열악해지고 급박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보기에는 극단적인 스트레스도 문제지만, 그것을 푸는 방식을 다변 화하지 않으면 우리가 결코 외설이라든지 폭력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청소년 문제를 문화적인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입니다. 어떤 사 람들은 그것을 여섯 가지 정도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문화적인 감성, 모험심과 개척정신, 전문적인 직업능력, 과 학능력과 정보마인드, 봉사와 협력정신, 국제감각, 이런 자질들이 갖춰져야 앞으로는 지구촌에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에 동의하면서 이런 과정에서 근간이 되는 것이 문화적인 감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성과 지성은 결코 대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주지주의였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지 식에 대한 공부는 빼고 감성만 가르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EQ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줄 아는데 Emotion 이라고 하는 말은 자기 자신을 상대 위치에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일종의 미학적인 술어로서, 자기 자신을 상대 위 치로 옮겨 놓거나 상대 위치를 내 위치로 옮겨 놓을 수 있는 그러한 교감능력을 말합니다. 18세기는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대립이 날카로운 때였습니다. 그러나 후발국가인 독일의 철학자들은 각각 프랑스와 영국이 중심이 된 그러한 사고방식 중 어느 한편에 치우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현실적인 경험이 없는 지식은 구체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에 공허하지만, 만일 현실적인 경험만 있고 지식을 체계화하는 능력 이 없다면 그 지식은 잡다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감성과 지성이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그들 은 이미 알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대학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예술·문화교육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런 교육조차도 지식의 세 계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독일에 7년 정도 있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초등학교 아이들도 교사의 인 솔로 미술관을 직접 찾아가 현품을 앞에 놓고 그 박물관의 전문교사가 그림들을 설명해주고 분석해주는 살아있는 교육을 받고 자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생생한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난 아이들의 감성과 학교 안에서 미술교 육조차도 교과과목으로 외워서 빨간 색하고 무슨 색하고 합치면 무슨 색이 나온다고 하는 교육이 비교조차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우리가 감성을 개발한다든지 문화교육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단순히 감각을 세련시킨다 는 뜻이 아니라, 예컨대 예술작품이 갖고 있는 전인적인 의미를 이해하도록 교육체제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교육체계는 학교만이 책임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일본의 경우 학교 주5일제를 실시함과 동시에 지역사회가 여러가지 문화시설을 갖추는 일에 앞장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공연장 등을 많이 확충했습니다. 말하자면 단위 학교 들은 교실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을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두고, 지역사회는 좀더 풍부한 경험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매개하는 것은 가정의 부모들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자기 스스로를 개발하 려고 하는 동참의식입니다. 이제까지 우리 청소년 교육이 아이들을 학교에 맡겨놓고 나 몰라라 하고 가정과 학교와 거의 무관계한 지역사회 사이에서 방치되었다면 앞으로는 학교와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 또 그것을 외곽에서 튼튼 하게 뒷받침해줄 수 있는 국가체제가 구축돼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대만에 여행할 기회가 있으면 고궁박물원을 한번 꼭 가 보십시오. 거기에 청동기를 진열해 놓는 특별 전시실이 있는데, 그 중 하나에 예술이라는 '예' 자의 원형이 진열돼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꿇 어앉아서 풀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원형으로 하고 있는데, 농사를 짓는다는 표현입니다. 즉 예술의 기초가 생 존을 위한 투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생존의 필요가 극복된 단계에서는 인간은 좀더 인 간다운 생활의 영역에서 자기 자신을 실현하려는 끝없는 열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문화니 예 술이니 하는 것을 얘기할 때에는 기본적으로는 생존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필요와 전혀 무관하지 않지만, 그 수준 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한 단계 넘어선 가치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려고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청소년 문화라고 할 때에도 청소년들로 하여금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조건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하고, 만일 그 조건이 불리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되 그것이 만 약에 정치, 사회적인 이유라면 정치, 사회적인 체제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의지를 심어주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문학이 가장 손쉽게 모든 청소년들이나, 또는 저희 같은 어른세대들을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안내해주고 그러한 간접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을 개파하고 혁신하는 힘을 우리에게 준 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 또는 예술 일반은 그런 의미에서 과학기술이 지향하는 것과는 다소 다른 강조점을 지니고 있습 니다. 과학기술에서 말하는 진리란 대상에 관한 여러가지 객관적인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하지만 예술에서 말하는 진리란 사물과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진리보다는 우리 자신에 내재된 가치와의 일치를 우선으로 합니다. 가령 눈물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과학적인 분석이 줄 수 있는 답은 그것이 99.99%의 수분과 0.00001%의 먼지와 부 유질이 합성되어 있다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물의 진리를 알기 위해서 그와같은 과학적인 분석에서만 만 족할 수 없는 데서 예술이 싹틀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들을 잃고 하염없이 흘리는 어머니의 눈물을 직접 보 여줌으로써 눈물이라는 사물의 진리가 우리에게 밝혀지게 됩니다. 이처럼 진실에 부딪쳐 현실에 대해 반성할 계기를 마련해주고, 미래세계, 또는 좀더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꿈을 가지고 현실을 개조할 수 있는 결의를 제공하기 때문에 예술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예술작 품은 육체적인 요소만큼이나 정신적인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부분이 떨어져서는 예술작품이 성립 되지 않습니다. 형식이라는 요소로 인해 예술작품이 완성됩니다. 따라서 재료와 소재, 그리고 형식이라는 요소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 것이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 예술작품을 제대로 감상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체와 정신 그리고 혼을 함께 어울러서 사람이라고 하지, 혼이 나간 사람, 정신 빠진 사람, 또는 몸덩어리만 있는 사람을 참다운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술작품을 인간의 분신처럼 생각하여 현실적인 인간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까지도 집중해서 열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 시절부 터 그러한 세계를 경험해 보지 못할 경우 결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온전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교육 속에서 문화에 대한 교육, 넓은 의미에서 역사의 이해를 바 탕으로 해서 자기 자신의 의식과 정서를 표현해 내는 능력을 함양해 주는 교육을 실시해야 된다고 얘기하는 것입 니다.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부족하게 느끼는 것을 더이상 반복하지는 않겠다는 다짐 속에서 우리의 21세기는 밝아올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세계의 중심국가가 된다, 일류국가가 된다는 등의 말보다는 사람다운 향 기를 우리 자신에게나 이웃에게 나눠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갖춰 가는 것을 21세기적 삶의 이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토대는 바로 교육, 청소년 교육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제 교실에서 행하는 교육뿐만 아니라 인간과 문화, 그리고 예술을 생각하는 전인적 교육에 많은 관 심을 기울여야겠습니다. 우리가 잠자고 있을 때, 우리가 뭔가에 취해서 생각없이 살 때, 우리를 압박해 오는 생존 에 대한 위협, 또는 비인간적 생활에 대한 무감각, 이런 것을 일깨우는 것들이 예술작품이라고 한다면, 우리 자신 이 그러한 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고, 또 그런 기회를 우리 후대들도 가질 수 있도록 청소년 교육에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