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양심 냉장고'와 사회 개혁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가 지난해(1997년) 4개월 동안 '양심냉장고'를 들고 오밤중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냉장고 임자를 만나면 즐거워하고 기뻐하면서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부장검사인 제가 코미디 프로에 출연을 한다고 해서 말도 많 았지만 청소년들에게 술, 담배를 팔아서는 안된다, 성인용 잡지를 팔아서는 안된다는 등의 내용이었기에 별 부담 없이 출연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도대체 법이라고 하는 것은 왜 있는 것이고 양심이라고 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일반적인 양심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이 법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심에 따른 행동을 하지 않으니까 양심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가 되어 그런 사람들 을 찾아다니는 세상이 됐구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상품으로 왜 냉장고를 주는지 아십니까?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두면 음식이 썩지 않으니까 아이디 어를 냈다고 했는데 아무리 성능 좋은 냉장고라도 썩기는 썩죠. 어쨌든 썩지 않는 양심으로 충만된 사회가 됐으면 하 는 바람에서 냉장고를 상품으로 걸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 사회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IMF 사태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가지 시각이 있겠지만 저는 IMF 사태를 단순히 경제위기, 달러의 위기로 보기보다는 좀더 근본적으로 인간의 위기, 정신 의 위기, 또는 양심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재벌들이 은행돈을 자기 돈인 양 가져다가 빚더미 위에서 흥청 망청거리고 땅투기 등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다. 재벌만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또 어땠습니까? 우리는 내일을 준비하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내가 오늘 100원을 벌었다고 하면 저녁에 실컷 마시고 흔들 며 지냈습니다. 만일 우리가 내일을 준비하는 사회였다면 100원을 벌었을 때 10원, 20원이라도 저축을 했을 겁니다.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흥청망청거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찰나주의, 순간주의, 다시 말해 하루살이 근성과 같은 정신으로 살아왔음을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자 세가 바로 내일을 준비하는, 즉 오늘을 좀더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려는 마음가짐일 겁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꼭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정신세계를 살펴볼 때 우리가 개혁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있는데, 저는 그것을 수직주의 근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수직주의 근성은 모든 것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작대기 같은 근성입니다. 명령과 복종, 그리고 지배의 관계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직주의 근성으로 우리의 오랜 역사 속에 지속되어 왔습니다. 중세시대에도 그랬고 왕조시대, 근대국가에서도 이런 사회모습이 었습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봉건경제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와서도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수직적인 구조하에서 가능했던 이야기입니다. 직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과거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시대여서 '사'(士)라고 하는 것이 맨 위에 있고, 그 밑에 '농'(農), 그 다음에 '공'(工)과 '상'(商)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고 하는 제일 높은 사람의 지배, 명 령, 복종을 받은 것입니다. 남녀관계도 마찬가지로 남자는 하늘이고 여성은 땅바닥이었습니다. 이렇듯 5천년의 역사 속에 우리 민족은 엄청난 수직적인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직업, 남 녀관계, 가족관계, 국가관계 등 모든 면에서 수직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사회였습니다. 이런 수직주의가 결국은 우리나 라에 획일주의를 가져왔습니다. 일사불란하게 해치우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모습들은 곧 집단주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개인보다 공동체가 우선하는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수직주의는 결국 형식주의, 명분주의, 신분 주의 등을 가져왔습니다. 끼리끼리 모여 집단을 형성하고 그래서 인정에 이끌리게 됩니다. 공평성과 공정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뒷거래를 하거나 아는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일을 해야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지금 우리 사회가 개혁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수직의 수평화 과제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인식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확실히 기성세대보다는 여러분들이 그 점에서 앞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훨씬 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개성을 발휘할 줄 알고 자신의 적성을 찾을 줄 아는 분들입니다. 훨씬 더 창의적이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음악을 예로 들면 여러분들은 요새 록(rock)이니, 힙합이니 하는 것에만 편 중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편식도 사실은 굉장히 위험한 겁니다. 이 세상엔 수백, 수천 가지의 음악이 있는데 한 두 가지 음악에만 편중되어 있는 것은 또다른 획일화입니다. 지금은 다양성의 시대입니다. 특히 직업과 관련해서 여러분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농공상'의 망상으 로부터 벗어나라는 겁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 학과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그런 구시대적인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돈을 좀 많이 번다든지, 높은 벼슬자리를 찾을 수 있다든지, 사회적으로 알려져서 어떻게 할 수 있다든지 등의 생각으로 직업을 선택하거나 전망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더럽고 추악한 가치관에 기초한 것이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삶의 가치와 보람이 무엇이고, 이 세상을 왜 살며, 죽을 때 무엇을 가져가는지, 무엇을 남기고 가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그런 젊은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가장 좋은 직업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욕구, 그것을 만 족시켜주는 직업이면 최선의 직업이라는 겁니다. '사농공상'은 왕조시대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사'라고 존경 해주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일년에 억대가 넘는 돈을 버는 야구선수, 씨름선수가 '사'자 들어가는 사람을 존경하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자유화 시대입니다. 그야말로 참된 민주화 시대입니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은 월급쟁이 하는 것보다 자 격증을 딴다든지 해서 벤처기업을 하는 게 낫습니다. 근사한 것만 벤처기업이 아닙니다. 구멍가게라도 혼자의 힘으로 창업해 보세요. 작은 구멍가게라도 경영이 쉽지 않을 겁니다. 이런 과정 속에 전문가가 되는 겁니다. 내가 어느 방면의 전문가라고 한다면 지금의 IMF 시대가 두려울 게 없습니다. 이제는 평생직장을 구하는 시대가 아니라 평생직업을 찾는 그런 전문가의 시 대입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에게 창업하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지금 IMF 시대가 되어서 창업이 어렵지만 아이디어를 내서 자기 사업을,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는 겁니다. 한평생 대기업에 들어가 시키는 일만 하는 그런 삶은 나 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어려움과 시련이 있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성장한 사람은 훗날 무언 가를 남길 것입니다. 속되게 표현한다면 용꼬리가 되지 말고, 차라리 닭대가리가 되는 것이 낫다고 하는 겁니다. 작은 닭대 가리가 무수히 많은 것이 이 사회를 훨씬 살찌게 하고 발전하게 합니다. 우리 기업문화는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큼직한 대기업이 듬성듬성 몇 개 있고, 나머지 중소기업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힘을 못 쓰고 있었습니다. 마치 저 광야에 큰 고목나무 몇 그루가 서 있고 잡초 같은 게 조금 있는 모 습입니다. 하지만 어느날 벼락이 치고 천둥번개가 울리고 폭풍우가 몰아쳐서 큰 나무 몇 개가 부러지면 그 광야는 폐허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울창한 숲을 생각해 봅시다. 큰 나무도 있고, 길쭉한 나무도 있고, 바닥을 기는 넝쿨도 있고, 조그만 나무 도 있고, 꽃나무도 있고 그 많은 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숲에 벼락이 친다 해도 불과 큰 나무 몇 개 부러지면 부러졌지, 그 잡초 같은 많은 것들의 힘에 의해서 절대로 폐허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가 큰 나무만 되려 했습니다. 너나없이 고시공부해서 판·검사나 되려 하고 공무원이나 돼서 무 사안일로 일할 생각, 대기업에 들어가 펜대나 굴리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수직사회의 전통적인 병폐입니다. 이 병폐를 과감 하게 변화시키지 않으면 우리는 망할 거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오늘 제가 사회개혁의 이야기를 하면서 수직주의에 관해서 강조를 하는 것은 이것이 사회개혁의 밑바탕이 되기 때 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수직적인 사회체제에 그대로 적응을 하려 하고 이미 뇌리에 숨겨져 있는 수직적인 사고에 빠져 있다 면 이 사회는 절대로 수평화 개혁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여러분들에게 사고방식의 수평화 작업,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수평과 수직의 조화작업을 강조하는 겁니다. 여러분, 사회개혁이라고 하면 무슨 부정부패를 척결하자,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원인을 알아야 올바른 대처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부정부패의 원인으로, 그래서 사회개혁의 근원으로 수직문화에 의한 권력독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 사회 가 수평화되어 권력이 분산되고 많은 감시단체가 생기고 또 스스로가 스스로를 감시하는 체제가 되면 부정부패는 발 디딜 장소가 없어질 것이고 사회개혁 또한 빠르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제가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린다면 수평화 작업은 동태화 작업을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성세대는 농경사회 출신으로 밖으로 활동하기보다는 방에 앉아 고스톱이나 치고 사랑방에 앉아서 술 마시는 일에 익숙해 있습니다. 대단히 정태적입 니다. 조금 속되게 표현한다면 방구석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길가에는 온통 방, 방투성이입니다. 만화방, 노래방, 비디오방, PC방, 무슨 산소방도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정치도 나가서 칼싸움을 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사랑방 에 앉아 누군 어떻고 누군 저렇고 하면서 입으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에 비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수천년 된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동반도를 달 리던 그런 기상은 사라졌습니다. 해양왕국을 만들겠다고 온 바다를 누비던 그 기백도 사라졌습니다. 저 광활한 광야와 바다를 놔두고 왜 방구석으로 기어 들어가느냐는 겁니다. 정태적 모습도 우리가 개혁해야 할 과제입니다. 앞으로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저질렀던 과오를 극복해야 합니다. 기성세대는 이미 수직적인 사회에 물들여진 사람 이고, 내가 아무리 열린 사고를 가지고 열린 세상을 만들려고 해도, 그건 내 뜻일 뿐이지 한계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열린 사고를 하라는 것은 바로 수평적인 사고를 가지라는 것인데 그건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제 21세기에는 세계적인 대변혁이 일어날 겁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회개혁을 해야 됩니다. 이것은 불 가피한 선택이고 강요된 선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사회개혁의 힘은 우리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개혁은 양심의 개혁으로부터, 정신의 개혁으로부터 시작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인다면 양심의 힘이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수 평적 사회가 지향하는 아름다운 세계, 따뜻한 세계, 서로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세계, 더불어 다함께 존중받는 세계, 이런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양심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따뜻한 양심은 따뜻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는 우리 자신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자신도 그럴진대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눠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한 양심을 찾을 수 있고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 있기 위해서는, 그래서 우리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서는 내 자신이 튼튼해져야 됩니다. 작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나를 공격하는 많은 폭언들,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 나를 모멸했던 사람들에 대한 용서를 통해서 내 맘이 넉넉해지고 풍성해지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을 사랑하려면 자기 자신 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되는데 우리는 자기 자신을 비하하고 열등감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세상엔 이런 사람, 저런 사람도 있습니다. 조금만 마음을 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열등감이라고 하는 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곧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옛날에 안경을 썼다는 것에 대해 대단한 열등감과 부끄러움을 가 졌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을 해보니 저같이 못생긴 얼굴에 안경마저 안 썼다고 한다면 어찌 됐을까, 하는 생각으로 열등감 과 부끄러움을 버렸습니다.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잠재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사랑과 양심이 되살아날 겁니다. 그러한 양심들은 우리 사회를 수평화 사회로 만들어줄 것이고, 우리 사회를 동태적인 사회로 만들어줄 것이고, 평등한 사회, 차별이 없는 사회로 만들어줄 겁니다. 이것이 곧 사회개혁의 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양심을 기초로 한 정신이 바로 아름다운 청년정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나눠야 할 정신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사랑의 정 신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청년정신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