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막상 이 곳에 와서 여러 학생들을 만나고 보니 학교에 다닐 때의 기억이 더욱더 새로워집니다. 오늘〈대중문화―MC/리포터론〉이란 주제로 여러분과 만나게 되었는데, 강의라기보다는 여러분보다 조금 선배 된 입장에서 그간에 방송계에 몸담아 오며 했던 생각을 나누는 자리로 여겨 주었으면 하고, 또 나름으로 대중문화와 관련된 책을 출간한 적도 있는 바, 그것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음은 우리 모두가 실감하는 바입니 다. 지난 번 미국과 이라크가 전쟁을 했을 때 CNN을 통해 전세계인이 마 치 코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듯 전쟁상황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야 말로 지구를 하나로 묶어놓은 것이 TV라는 매체를 통해서였죠. 매스미디어 의 발달과 영향력이 이처럼 지대하다 보니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 나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TV나 라디오 매체는 너무나 일반화되어 있을 뿐 더러 요즘은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더욱 새로운 영상이 담긴 영화라든지 CD-ROM과 같은 새로운 전달방식도 출현하지 않았습니까?

또 더구나 만들어진 것을 그저 받기만 하던 시청자들도 이제는 VOD(Video on Demand)라 해서 상호 쌍방향 제작이 가능한, 그래서 시청자 들이 안방에서 줄거리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조차 있게 된 그런 시대에 우 리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매스미디어에도 최첨단의 과학이 도입되 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 컨트리 싱어 존 덴버가 내한한 적이 있죠? 주한 미대사관 에서 그를 환영하는 모임이 벌어졌는데, 저도 그 자리에 초대받아 참석을 했습니다. 레이니 대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파티가 시작될 무렵 대사와 공보관이 존 덴버를 환영한다는 멋진 스피치를 했고, 존 덴버 역시 화답을 했습니다.

물론 영어라는 언어가 우리와는 그 말의 느낌이 다르고 또 영어를 사용 하는 사람들 자신이 워낙 남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어서 그 런지는 몰라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좌중을 이끌더군요. 한마디로 그들 스 스로가 사회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사회자-MC라는 것에 대한 개념정립조차 들쭉날쭉 합니다만, 그 날 모임에서 보니 미국인들은 누구나 다 무대에 서니까 MC 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매체들을 통해 수많은 토크쇼, 엔터테인먼트쇼 를 접한 때문일까요? 여하튼 그 사람들은 모임을 이끄는 역할을 스스로 해 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더군요.

어떤 의식이나 행사를 이끌어가는 리더격의 사람을 우리는 통칭 MC라고 합니다. 아주 많이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생각해보면, 고대의 '제사장' 정도 가 MC의 역할을 한 사람의 시초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요즘 우리의 상황에서 MC라 하면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하는 일이라 고 머리에 떠오릅니까? 발음, 발성이 좋은 사람? 맞습니다. 또 외모나 그 외의 여러 가지로도 신경을 써야 하는 직업이 바로 MC나 리포터를 하는 사람들이겠지요. 이른바 MC로서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한테 호감을 주면서 또 동시에 본인이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능률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나라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척도는 경제라 든지 과학수준이라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른바 '문화의 힘'이 크게 작 용하리라 생각합니다. 생활환경, 즉 의식주의 기본적인 내용이 평준화된다 고 볼 때, 과연 어느 나라가 세계인이 공감할 만한 세련된 문화를 가지고 있고 또 표현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관점이 되어 선진국인지 아닌지 또는 살기 좋은 나라인지 아닌지를 재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 아마 도 이미 이런 방향으로 세계의 관심이 진행되어 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바야흐로 경제전쟁시대로부터 문화전쟁시대가 올 것이라는 데에 많은 이들 이 동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사람들의 기호가 다양해지듯이, 우리나라에도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케이블TV 시대가 도래하여 현재 30여 개의 전문 채널을 갖게 되었죠. 뉴욕이나 LA 같은 곳에서는 60여 개 정도까지 채널선 택권이 있다 보니 오히려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 정도의 다양한 여러 채널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주고 있다는 뜻이고, 또 보는 이들도 그것을 이용해 뭔가 도움을 받고 있다는 얘기겠죠. 그저 대중매체를 보고 앉아 있기만 해도 저절로 국민의 문화적 수준이 어느 정도 향상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또 국민들도 자꾸 접하다 보 니 반대로 문화를 향유하려는 욕구도 다양화되리라고 봅니다.

얼마 전 일본에 갔더니 조용필 씨의 콘서트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게 되 었습니다. 콘서트 장소는 논밭이 죽 펼쳐져 있는 벌판이었는데, 공연시간 30분 전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나타나지를 않는 겁니다. 그래서 공연관계자 에게 물어봤더니 표는 이미 6개월 전에 다 팔렸다는 거예요. 매미 소리를 들으며 잠시 앉아 있었더니 공연 10분 전쯤에 과연 그 곳 지역의 농부들이 일을 다 마치고 방석을 하나씩 들고 공연을 보러 와서 벌판을 가득 메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한 마음에는 하는 일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습니다. 제시간에 공연을 보러 와 문화적 향유의 욕구를 만 족시키는 관람객들이 무척이나 여유롭게 생각되더군요. 그렇게 대중의 요 구가 끊이지 않는 한 각종 문화나 매체의 발전은 앞으로 가속화될 것입니 다.

또 하나, 우리는 흔히 '문화'라고 하면 고급문화, 저급문화 이렇게 이분 법적으로 생각하는데, 요즈음도 충분히 그런 경향이 짙어지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더욱더 고급, 저급의 구별이 없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이를테면 클래식은 고급문화, TV쇼는 저급문화라 일컫는 일은 앞으로 없어지리라 봅니다. 그냥 '문화'만이 발전할 뿐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원인제공자라 할 수 있는 대중문화 종사자들이나 이른 바 고급문화 종사자들이 서로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또 이미 엄청나게 노 력을 하고 있습니다. 왜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느냐 하면, 문화전쟁시대가 방 송매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이미 와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으려면 자 기가 열심히 하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런지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요즘 들어 부쩍 시청률 경쟁이 지나치다든지 저질 프로그램이 판을 친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고, 또 실례 로 그런 기사에 제 사진이 나간 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수준 높은 문화라도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안 되는 것 아니겠습 니까?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가 전자바이올린을 하고 춤도 추고 하는 모 습, 많은 분들이 보셨을 거예요. 지금 이것이 세계적인 추세가 아닌가 합니 다. 카라얀이라는 거장 지휘자가 비틀스의 음악을 격찬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더 많은 대중들에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아티스트가 필 요하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대중에 큰 영향을 일시에 미치는 효과 때문에 대중매체 종사자들은 큰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들어 미국이나 일본에서의 '빅 스 타'와 같이 여러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는 대중스타들이 우리에게도 속속 등 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서태지와 아이들', 물론 처음에야 본인들이 나오고 싶어 나왔겠지만, 꼭 그들이 아니었어도 필연적으로 우리 시대, 우리 사회 에 나올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들이 나오면서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놓았죠? 그렇습니다.

현재 우리의 TV나 케이블TV에는 외국에서 제작되어 우리가 수입한 프로 그램은 전체 편성의 몇 퍼센트 이상 방영되어서는 안 된다는 제한이 있습니 다만, 저는 언젠가 그 제한이 철폐될 것에도 대비해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외국 프로그램의 방영 상한선을 그어놓은 수준에서의 경쟁보다는 같은 선 상에서 출발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이 문화전쟁시대의 경 쟁에서 이기려면 엄청난 노력이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대중매체, 문화전쟁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아까도 잠시 언급한 바 있습니 다만, 그렇다면 과연 '방송MC'는 어떤 존재인가? 이렇게 이야기해 볼까요 ? 대중문화 속에서의 방송MC는 제가 생각하기에 대중문화를 전달하는 '전 달자'입니다. 가수는 노래하고, 배우는 연기하고, 코미디언은 웃기는 일을 하니까, MC는 말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 등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대중문화라는 엄청난 바다 위에서 단순히 말만 잘 해 가지고는 될 수 없 다고 봅니다. 어떤 MC가 말하는 것을 볼 때, 시청자들은 10분만 들어봐도 저 사람이 과거에는 무엇을 했고, 지금은 어떤 생활을 하고, 미래는 어떨 거야, 저 사람은 노력을 하는 사람일 거야 아닐 거야라는 것을 알 수 있습 니다. 그래서 말만 잘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저 자신 미국의 유명한 토크쇼 MC인 데이비드 레터맨과 같은 훌륭한 토 크쇼를 이끌어 보는 것이 희망입니다만, 요즈음 보십시오, 솔제니친도 러 시아TV에서 토크쇼 사회를 보고 있습니다. 독일의 폰 바이체크 전 대통령 도 사회를 봅니다. 물론 대중매체를 통해서죠.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어서인지 의사, 통역사, 변호사, 교통전문가, 기자, 교수, 작가 등 다양한 계층의 전문가들이 현재 방송사 회자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MC로 활동 하고 있는 만큼 단순히 말을 잘 하는 차원을 넘어 이 모든 여러 가지를 포 함해 뭉뚱그려 '개성'이 있는 MC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국민대학교에도 매스컴 관련학과가 설치되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만, 우리가 이런 방면에도 좀더 전향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에 이제까지 얘기한 문화경쟁시 대에 발맞추기엔 좀 쇄국적인 면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얼마 전 마이클 잭 슨의 내한공연이 취소된 적이 있죠? 문화행정을 하시는 분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영상매체 개방시대를 맞아 세계의 여러 수준 높은 프로그램에 우 리가 견뎌 나가려면 프로그램의 기획, 품질, 그리고 완성에 이르기까지 리 더격인 MC들의 자질도 향상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제가 강조했듯이 문화전쟁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그저 TV를 켜놓았으니 바 라본다가 아니라 여러 장르의 다양한 TV프로그램을 모니터하듯이 지켜보 시길 권합니다. 사회자의 능력도 평가해 주시고, 프로그램 자체도 비평하 면서 우리 방송의 나아갈 방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데 일조해 주시길 당 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