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의 미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영희입니다. 제가 한복을 만들기 시작한지 30년이 다 됐어요. 그리고 파리에 진출한 지가 내년이면 만 십 년이 됩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참 걱정이 돼요.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동안 특별히 제가 무슨 일을 했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돼요. 30년이 넘게 한복을 만들면서 제가 학생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부단히 혼자 연구하다 보면 길이 보인다고. 어떤 선생님이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간편하게 요점을 정리해주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 옷 만드는 법을 배울 때 어떤 옷감 색깔이 궁금해서 물어보면 선배들은 단지 차차 알게 될 거라고만 말했습니다. 누구든 세세하게 알려주지 않았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 조금씩 무언가 알게 되었어요. 옷감을 이렇게 염색해 보고 저렇게 잘라 보는 등 제가 하고 싶은 시도는 다 해봤어요. 한복을 생명처럼 여기면서 부단히 연구하다가 1980년대엔 그것을 세계화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지요. 무엇을 하든지 한 가지에 혼을 다해 열중하면 나중에 뭔가 나옵니다. 어설프게 이런 저런 잡념 속에서 일을 대하면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없지요.

저는 특히 어떻게 하면 한복을 세계에 알릴 수 있을까 연구했어요. 외국에서 패션쇼를 하면서 한복의 색깔과 질감을 외국 사람들이 특이하게 여기며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래서 이런 색깔과 질감을 살린다면 한복의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지요. 그 당시에는 한복으로 어떻게 쇼를 하느냐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지요.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는 올림픽을 선전하기 위해 한복을 외국에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저 혼자의 생각이었어요.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닙니다. 모델을 열 명 정도 외국에 데리고 다녔어요. 그 때는 지금처럼 스폰서가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다행히 은행에서 융자를 해주면 달려가서 받아왔지요. 돈은 나중에 다 갚게 되더군요. 연구해서 내놓은 한복이 무척 특이해 보였던지 행사장에 손님들이 많았어요. 융자받아서 쇼를 치르고 쇼 끝낸 뒤 돈 갚는 식으로 30년 동안 한복을 만들어 온 것이죠. 패션쇼를 하면서 많은 격려를 받았습니다. 많은 예술가들과 기자들이 세계 어느 나라 옷보다 한복이 아름다우니 세계화하라고 말했습니다. 뉴욕 패션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모노는 당신의 한복보다 훨씬 못한데 왜 한복을 세계화하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 뒤 제가 한불 수교 백주년 기념으로 파리에 가게 되었어요. 패션의 고장 파리에서도 그런 격려와 찬사가 나온다면 한복을 세계화시키는 일에 발벗고 나서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전에는 우리 문화가 이렇게 훌륭한지 몰랐어요. 1984년에 제가 개량 한복을 만들었을 때 반응이 굉장했어요. 그 때 석주선 선생님께서 한복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많은 자극과 격려가 되었지요. 그런데 제가 처음 파리에 나갈 때 우리나라 패션계에서 반대도 심했고 말도 많았어요. 패션의 도시인 파리 한복판에서 어떻게 치마 저고리와 같은 민속의상을 선보일 수 있느냐, 가더라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가야지 어떻게 이영희가 갈 수 있느냐는 식이었어요. 결국 저는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기로 했어요. 패션쇼 피날레에서는 한복 열 여덟 벌을 한꺼번에 무대에 등장시키기로 계획했는데 사실 한복으로 피날레를 하느냐 마느냐 한 달 동안 고민이 많았었지요. 홍보 담당 기자들이 결정을 못 내리고 있던 중에 제가 한복으로 피날레를 하겠다고 결정했죠. 그렇게 정하니까 중간에 나올 옷들을 정하는 게 편했습니다. 저는 오프닝과 피날레 의상을 정해 놓은 다음에 중간의 옷들을 생각하거든요. 파리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옆에 앉은 딸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 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 말이 큰 소리로 튀어 나왔어요. "제일 밑바닥 아니면 제일 위일 거다."

그 때 파리는 동양풍이 막 각광을 받을 때였어요. 드디어 패션쇼가 진행되었습니다. 패션쇼에 소개된 모든 한복이 곱고 예쁜 것만은 아니었어요. 어떤 것은 회색 무명을 누빈 옷에 자주 댕기까지 덧붙였어요. 또 어떤 것은 승복을 응용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패션쇼는 성황리에 끝났어요. 이제 세간의 평가만 남은 상태였죠. 그 날 밤 주불 대사 초청으로 여러 사람들과 식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자리의 있던 한 분이 전하길 패션쇼에 민속의상이 나와서 누군가가 좋지 않았다는 말을 했대요. 그 말에 제가 너무 화가 나서 대사님도 옆에 있는데 소리를 막 질렀어요. 도대체 누가 그 따위 말을 하느냐고. 패션쇼 직후 찾아왔던 기자들은 한복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고 난린데 무슨 망발이냐고 과장해서 몰아 부쳤죠. 기 죽기가 너무 싫었어요, 속으론 마구 겁이 났지만. 말을 전한 사람도 미안했던지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12시쯤 텔레비전을 틀어 보았어요. 그런데 텔레비전에 제가 만든 의상이 나오는 거예요. 몹시 기가 죽어 있고 불안해서 떨고 있는데, 여기 저기 채널마다 이영희의 옷이 나오고 있었어요. 자정부터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환호성을 터뜨리며 난리를 피웠습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그 유명한 {마담 피가로}라는 잡지에 빨간 원색으로 큼지막하게 한복 사진이 나왔어요. 굉장한 호평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용기를 얻게 됐죠. 그 때서야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의 미가 무엇인지 알았어요. 우리 전통에 대해 세계가 바라보는 눈이 우리가 바라보는 눈과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훌륭한 우리 전통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답을 내리기는 참 어려워요. 그래서 우리 집에는 세계의 유명한 패션 잡지나 디자인 책이 없어요. 우리 전통 문화에 관련된 책을 주로 뒤집니다. 거기에 나온 의상의 형태를 자꾸 응용해 보지요.

여러분들께 한국의 색상에 대해 꼭 말하고 싶어요. 제가 어릴 때에는 말하자면 한국의 색상을 입고 자랐어요. 한국의 색상 하면 누구나 원색 종류만 생각해요. 색동이 우리 한국의 색이라고만 배우죠. 색동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모두 진하고 강렬한 색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여러분, 조각보자기 좋아하세요? 학교에서 제 첫 강의는 조각보자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제가 처음 한복을 시작하고 만난 게 조각보자기예요. 거기에 한국의 색상이 들어 있습니다. 허동화 씨가 관장으로 있는 자수박물관에 가보셨어요? 그렇다면 석주선 기념 박물관에는 가보셨나요? 가시면 한국의 색상을 눈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조각보자기를 몇 백 장 가지고 있어요. 그것을 보면 너무 황홀해서 정신이 나가요. 옛날에는 염색하기도 어렵고 옷감도 부족했을 텐데 어떻게 규방에서 그것들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색상의 조화가 신묘합니다. 그 보자기로 결혼할 때 패물도 싸고 명절에 선물도 쌌겠지요. 오늘부터 여러분들은 우리의 색상에 관심을 가지세요. 그 조화가 너무 중후해서 마음을 흔듭니다. 왜 우리 한복에 자주 고름을 달지요? 보통 빨간 치마에 연두색 저고리를 입는데 이때 자주색 옷고름이 치마로 내려옴으로써 색의 조화를 완성시켜 줘요. 조선조의 음식 문화와 의복 문화는 세계 사람들이 다 감탄해요. 현재의 우리 문화에는 우리의 혼이 실려 있지 않아요. 그런데도 여기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다른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지요.

2, 3년 전에 대우 마티즈 자동차를 선전하기 위해서 유럽 4개국을 다녔어요. 한국의 자동차와 한복을 연결하면 한국 차의 위상도 높아지겠다는 대우 자동차 측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쇳덩어리와 옷감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겠느냐 반대도 있었지만 경영진의 우리 문화에 대한 자각과 자부심이 차와 옷의 아름다운 조화를 믿게 했던 것 같아요. 이태리에서 패션쇼를 할 때 세워둔 7, 80대의 마티즈가 그 날 다 팔렸대요. 우리 패션쇼의 효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티즈와 판매 계약을 맺었습니다. 판매 요구가 쇄도하여 어떤 사람들은 4개월 뒤에야 자동차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외국 사람들이 한국의 미에 얼마만큼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겠지요? 마티즈를 디자인한 사람은 아주 젊은 예술가였어요. 이 사람도 여러 중요한 자동차를 디자인한 사람인데 제가 한국 전통 디자인에 관련된 책들을 보여주니 제게 우리 문화를 자세히 봤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이 사람은 마티즈 때문에 매달 한국에 오는데, 한국에 와서 도대체 무엇을 구경했느냐고 제가 물었어요. 대우에서는 이 사람에게 노래방과 룸싸롱만 보여주었던 거예요. 경주도 안 가봤고 인사동도 몰랐습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우리 문화를 더 깊이 보여주어야 하는데도 말이에요. 디자인을 하는 외국 사람들은 우리 문화를 보고 우리가 상상도 못한 것들을 다 집어내요. 제가 외국인을 초대하면 보통 박물관과 인사동을 데려가고 마지막 코스로 우리 집에 데려오지요. 한번 인사동을 둘러본 프랑스 기자들은 거기에서 나오지를 않았어요.

여러분들이 전통 문화에 관심을 두고 계시다면 새로운 아이디어로 음식 문화도 응용시켰으면 좋겠어요. 우리에겐 김치가 있잖아요. 그건 다 여성의 손끝에서 나온 예술입니다. 간장, 된장이 세계 음식 중에서 최고잖아요. 된장이 암을 예방한답니다. 과학적으로 다 증명된 사실이에요. 그런데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그런 지혜가 있었을까 상상이 안 가요.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이룩한 문화에 손상만 입히고 있어요. 우리 전통에 대해 여러분들이 깊은 공부를 한다면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항상 전통 문화에 대해 강조하고 싶어요.

절에 가면 불당에 단청이 있죠? 통도사 불당의 단층은 색깔이 진하지도 않으면서 옛날 그대로 아름답게 유지되어 있어요. 제가 1995년도에 패션쇼를 할 때 통도사 불당의 단청에서 본 하늘색을 의상에 써 보았어요. 정말 대히트를 쳤어요. 기자들이 보고 나오면서 눈물이 난다고 했어요. 너무 아름다워서. 그 색깔이 어디서 나왔겠어요? 저는 또 옛날 노리개를 좋아하는데 거기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요. 민속박물관에서 삼국시대, 조선시대 옷 좀 한번 보세요. 거기에 많은 것이 들어 있어요. 절에도 한번 가 보세요. 기독교인이면 어때요? 거기 가면 그냥 돌아오지 않아요. 뭔가 하나를 얻어 와요. 스님과도 한두 마디 얘기를 나눠 보세요. 결국 우리 것에 우리가 지나쳐 왔던 중요한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왜 전통을 좋아하게 되었고 왜 한복을 만들게 됐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에서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다 자라서 또는 나이 사십, 오십이 다 되어 가는데 전통을 알라고 얘기하면 귀에 잘 안 들어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자연염색을 많이 해 주셨어요. 저도 어머니가 염색을 하시는 동안 옆에서 옷감을 가지고 놀며 옷을 빨강색으로 염색해 달라고 할까 노랑색으로 염색해 달라고 할까 궁리를 했지요. 또 아버지의 붓글씨를 구경하기도 하고 가족을 따라 절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오는 게 제가 받은 조기교육이었구나 싶어요. 우리나라에 비하면 일본 사람들은 자기 문화를 정성껏 지켜나가는 습성을 조기교육에서부터 강조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일본 사람은 한국을 너무나 그리워하고 한국 문화에 대해 극찬을 해요. 일본 신문과 방송국이 주최하는 패션쇼를 내년 도쿄에서 치르게 되는데 그 주최자들 중 한 사람이 매달 우리나라에 와요. 그 사람이 한국말은 한 마디도 못하고 영어만 조금 하는 사람인데 올 때마다 인사동에 가서 삽니다. 그가 처음에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내 옷을 봤답니다. 그 때부터 우리 문화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는데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많이 알고 있었어요. 그가 말하길 우리 땅이 축복받은 땅이랍니다. 어떤 고서적에서 봤는데, 거짓인지 참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 내리쬐는 햇살이 우리 땅을 풍요하게 한다는 겁니다. 고사리, 도라지를 먹든 물에서 나는 생선을 먹든 우리나라 것이 요새 많이 수입되는 중국산보다 훨씬 맛있잖아요.

마지막으로 패션쇼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요? 파리에서 패션쇼 행사를 할 때 일주일 동안 8, 90명의 디자이너들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들어요. 장소는 각자 알아서 정하고 각각의 디자이너에 홍보 담당자가 붙어서 그 담당자가 세계 기자들을 불러들이죠. 기자들은 패션 방면의 전문가들입니다. 젊은 일본 디자이너의 쇼에서 있었던 일인데, 쇼를 구경하던 기자들이 하나, 둘씩 그냥 나가더랍니다. 그 까닭을 알아보니 패션쇼에 나왔던 그 치마는 누구 것을, 그 자켓은 누구 것을 조금씩 모방했다고 귀신같이 알아챘던 거예요. 우리나라 패션 기자들은 너무 자주 바뀌어서 전문성이 부족했어요. 어느 날 한 우리나라 신문사에서 인터뷰가 들어왔는데, 패션 기자가 제가 만든 의상에 대해 물어보았어요. 저는 전화로 인터뷰하는 걸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인터뷰할 때 치마저고리를 한번 입어 봤냐니까 안 입어 봤대요. 그러면 제 패션쇼를 본 적이 있느냐니까 없대요.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인터뷰를 할 것이냐고 따졌죠. 우리나라의 큰 신문사 기자였지만 결국 인터뷰를 거절했어요. 파리의 기자들은 누가 누구 옷을 모방했다는 걸 금방 알아채기도 하지만 모방한 디자이너의 쇼에는 다시는 안 가요. 엄격해요. 패션쇼는 항상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유행을 창조하는 예술 행사예요. 그것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상당한 연구가 필요하죠. 제 한복에 대한 기사를 쓰고 저와 인터뷰하는 외국 기자들도 여러 가지 자료를 읽고 깊이 연구한 후에 저에게 인터뷰를 신청해요. 저를 찾아왔던 또 다른 우리나라 기자는 쪽물을 들인 옷감을 보고 쪽이 뭐냐고 묻기도 했어요. 패션 디자이너에게 인터뷰하러 온 사람이 그런 상식 하나 모르면 어떻게 인터뷰를 하냐고 제가 몹시 야단쳤던 적도 있어요. 너무 속이 상했어요. 이영희를 만나러 왔는데 나에 대한 것은 고사하고 우리 옷에 대한 상식도 모르고 있었어요. 나중에 그 기자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봤는데 굉장히 유능한 기자래요.

아무튼 우리 것을 유심히 보고 알아야 해요. 우리 문화를 모르고는 세계로 뻗어 나갈 수가 없어요. 다른 나라 사람이 모르는 특이한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잖아요. 남들이 다 하는 걸 뒤에서 하청만 받으면 뭐해요? 그러다가는 항상 늦습니다. 파리 패션쇼에 나오는 모델들이 대개 열 여섯 내지 열 일곱 살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쓰지를 않아요. 그 다음 기회에 파리에 가면 모델이 싹 바뀌어 있어요. 패션쇼도 완전히 다른 쇼지요. 비슷한 옷을 색만 바꾸고 형태만 살짝 바꾸었다가는 기자들이 그냥 나가버리죠. 그러니까 우리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창출해야지요. 위대한 문화의 창조가 우리 것에 대한 사랑과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오늘 제가 거듭 강조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그 동안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