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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교육학과

민족애와 인간미를 겸비한 최고실력의 교육전문가 양성

THE DEPARTMENT OF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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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특강공지

  강연제목 참 삶의 길
  12 회
  초청연사 박삼중 (스님)
  강연일시 1994년 12월 01일
  강연장소 본부관 학술회의장
  조회수 24768 회
 
이렇게 목요특강에서 여러분들은 뵙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그런데 반가운 반면에 걱정이 앞섭니다. 무슨 걱정이 앞서느냐 하면 제가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잘 엮어가는 사람이 못 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논리적으로 자신 있게 어떤 주제를 가지고 갈 만한 힘을 저는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럼, 말재주는 없지만 어떤 깊은 사상이나 철학은 가지고 있느냐면 전혀 그렇지도 않습니다. 다만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게 순간의 실수로 사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통곡하고 있는, 즉 철저히 망한 사람들과 시간을 갖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애쓰고 있는 아주 제한된 그런 일만 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이렇게 시간을 내주시니 제 자신이 걱정이 앞선다는 얘기입니다. 시간이 1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오늘 얘기를 두 가지로 나누겠습니다. 한 가지는 주제가 참되게 사는 길이니까 제가 생각하는 삶에 대해 말씀드리고, 그 다음에 현장에서 건져낸 얘기를 하겠는데 이 부분에는 자신 있습니다. 우선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삶이란 뭐냐 하는 부분은 훌륭하게 얘기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오히려 제 얘기가 여러분이 살아가는 데 어떤 혼란 같은 것을 줄 것 같아서 이 부분은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산다는 것이 뭐냐?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냐? 첫째, 삶에 대한 얘기를 좀 해봐라! 저에게 누가 이렇게 질문하면 저는 자신있게 이렇게 사는 것이 세상을 불법(佛法)과 같이 뜨겁게 쓰면서 사는 거야,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거 아냐, 이렇게 살아야 창조적으로 아름답게 생을 마무리지을 수 있는 거야, 이런 대답을 쉽게 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적당히 환경과 타협하면서 그저 주어진 여건 속에서 나를 적당한 장소에 모습을 놔두면서 사는 게 사는 거 아니냐, 이 이상은 대답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삶이란 무엇이냐, 스님으로서 승복을 입고 왜 그런 대답밖에 할 수 없느냐, 강연내용이 뭐냐라고 물으면 저는 부처님 말씀을 인용해 가면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삶이란 뭘 가지고 사는 거냐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육체에 의지해 삽니다. 한 생을 우리가 냉정히 분해해보면 이 몸뚱어리에다 투자를 합니다. 이거 입히고, 저거 관리하면서 인생이 떠나갑니다. 그러면 내가 믿고 의지하고 있는 이 육체라는 것이 삶의 뿌리인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육체가 과연 내 마음대로 되는 거냐? 내 것이 내가 그렇게 투자하고 관리하고 집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거냐? 이렇게 짚어가면 이 육체가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겁니다. 사실 내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게 육체지요. 이걸 떼어놓고 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게 있기 때문에 웃을 가족관계도 있고, 이 우주와 관계가 있는 거지 내 육체를 떼어놓고 과연 어떤 것과 관계가 형성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육체라는 게 엄격히 말하면 내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란 얘기는, 흔히 소유라는 얘기를 하죠. 소유권이 있다는 얘기는 매도, 임대, 증여가 내 자유의사에 의해서 마음대로 될 때 내 것입니다. 이 몸이 내 맘대로 움직이게 됩니까? 물론 지금 오라 하니까 약속을 지키려고 이렇게 와 있습니다. 또 얘기가 끝나면 내 몸은 날 떠나갑니다. 조그마한 경우라면 내 맘대로 되는데, 가장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 몸은 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어느 때 이 몸이 내 말을 안 듣습니까? 병들기, 늙기, 죽음을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이 몸은 이 시간에도 서서히 병들어서 시간과 더불어 늙어서 죽음쪽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죽음이 찾아왔을 때 내가 가지고 있는 무슨 알량한 재산이니 명예니 한생을 살아가면서 쌓은 공적이니 하는 것들을 전부 걸어놓고 죽음보고 10분만 비켜달랜다고 내 뜻대로 일단 이승의 삶이 마감된 이 시간에 죽음이 내 맘대로 기다려 줍니까? 천하의 명예를 다 동원해도 이 땅을 떠날 시간이 되면 전부를 두고 떠나야 되는 겁니다. 그 때 내 몸은 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내 맘대로 관리가 안 됩니다. 비켜 말하면 내 것이 아닙니다. 임시 인연에 따라 잠깐 내가 보관하고, 관리하고, 정리하고 있는 거에 불과하지 내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육체만 가지고 산다는 얘기는 말이 안 되는 거죠. 뭘 가지고 사는 거냐? 삶은 마음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정신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럼 잘 산다는 얘기는 뭐냐? 참되게 산다는 얘기는 삶의 중심이 마음씀입니다. 마음 쓰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마음을 잘 쓰면 잘 삽니다. 그럼 마음 잘 쓰기가 쉽습니까? 누구나 마음 하나씩 갖고 있죠. 그럼 내 마음, 내 마음이란 뭡니까? 내 마음대로 돼야 내 마음이죠. 내 마음대로 안 써지면 내 마음이 아닙니다. 내 것이란 얘기는 온전히 내 관리권 내에 있어야 내 것이죠. 근데 내 마음이란 게 내 마음대로 관리가 됩니까? 내 마음대로 써집니까?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써지질 않습니다. 언제나 파편조각같이 분열되고 때로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나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육체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안 써지고, 장악이 안 되고, 관리가 안 됩니다. 그렇다면 삶이란 뭐냐? 어떻게 하면 마음을 제대로 내 것으로 소유해서 내 마음대로 내 마음을 쓰면서 살 수 있느냐? 이 문제 를《원각경》이란 경전 속에서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변허공 각소현발! 끝없는 허공이 내 깨달은 마음에 빛이라! 내 마음에 바탕이 맑고 청정하고, 내가 온전히 내 마음을 쓸 수 있을 때, 그 상태가 인간적인 상태입니다. 내 마음도 내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남을 마음대로 하려는 생각은 안 되지요. 그럼 여기서 저는 교도소 현장에서 건져낸 얘기를 통해서 자기 마음 관리하는 얘기를 경찬하려고 합니다. 저를 일러서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다니면서 좋은 일 하는 스님이다, 그렇게들 쉽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제 자신이 생각해 보면 저는 교도소에 가서 좋은 일 하는 쪽보다는, 제가 오히려 그곳에서 많은 공부를 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교도소에서 무슨 공부를 하느냐? 그 통곡의 강물이 넘쳐흐르는 곳, 처절하게 마지막까지 인간된 삶을 살려는 극형수들로부터 사람들이 살아가는 많은 얘기가 응결된 곳, 교도소 다닌 지 30년이 됐습니다. 수천 리는 될 것입니다. 갈 때마다 배울 만한 뜨거운 얘기를 듣고 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얘기가 두 가지인데 제 속에는 2개의 염주가 걸려 있습니다. 사형수 두 사람이 저에게 준 염주입니다. 오른쪽 염주에는 알맹이마다 글이 써 있습니다. 감옥에서 염주에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각인해 놓은 것입니다. 이 염주는 15년 전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을 기다리던 최재만의 염주입니다. 집행을 기다리던 사형수가 늘 웃고 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여유 있게 웃을 수 있을까? 내 가슴에 새겨야겠다, 왜냐면 나도 어려운 일을 만나면 좌절하기 쉬운데 저 극한 속에서도 여유있게 웃는 여유를 배워야겠다, 사형수에게도 배울 건 배워야 한다 그랬던 거죠. 오래 기억하기 위해 염주를 제 것과 바꿨습니다. 안 바꾸겠다고 하는 거예요. 왜 그러냐? "스님, 이 염주 안에는 부처님 말씀과 스님 얘기를 기록해 놓았어요. 그러나 나의 슬픈 한도 기록했으므로 더러운 염주가 되어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스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그러나, 억지로 뺐었습니다. 그래서 보니 "필귀가환:반드시 집으로 돌아간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왜냐? 노모와 젊은 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흉악범이야. 여기서 나갈 수 없다"고 하자 "나는 죄가 없으니 집으로 돌아갑니다"고 했습니다. "나는 고문을 당했고 나의 누명을 벗을 힘이 없어 사형을 당합니다. 내가 죄가 없다고, 나의 새끼들에게 아비는 죄가 없다고만 말씀하여 주시면 됩니다." 그들은 안 믿겠지만 저는 그를 믿습니다. 그 염주에는 '필귀가환' 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가 먼저 준 것이 아니라 제가 억지로 뺐었기 때문에 고의로 적은 것은 아니지요. 그의 노모와 처와 자식들을 데려와 7년 간 투쟁을 했습니다. 그를 완전히 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문과 방송이 저를 도와줬습니다.《월간조선》조갑제 부장이 특히 많이 도와줬습니다. 그가 도와줘 7년 후 극적으로 사형을 면하고 무기징역으로 바뀌었습니다. 왼쪽 염주는 아주 반대의 염주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사형장에서 집행당하면서 염주를 주었습니다. 즉 오른쪽 염주는 삶을 사는 사람의 염주, 왼쪽 염주는 저승의 삶을 사는 사람의 염주, 삶과 죽음이 공존해 있는 거죠. 왼쪽 염주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 인간으로 살다 죽고 싶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염주의 주인은 서진 룸살롱 사건의 범인, 고금석이란 사형수가 만든 염주입니다. 스물두 살에 유도대학 4학년 때 깡패조직의 유혹에 말려 범행을 저지르고, 사형이 확정되자, 김수환 추기경께서 온전한 천주교 신자로 이를 받아들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기대하면서 온전한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추기경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이 사형수를 위해 기도를 드리며 6개월을 보내셨습니다. 저는 중이지만 추기경을 존경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개종을 한다는 거예요. 저는 그에게 다시 천주교로 돌아갈 것을 진심으로 당부했죠. "천주교가 죽음에 강한 종교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마음을 바꾸는 게 아니다. 난 너의 추후의 영혼을 관리할 만한 자신이 없다. 너를 위해서다. 다시 추기경께 돌아가라." 못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아직 젊기에 더 살고 싶지만 이미 삶의 길은 끝이 났습니다. 솔직히 난 누구입니까? 난 왜 이렇게 된 겁니까? 난 나를 알고 죽고 싶습니다. 이대로 죽기엔 너무 억울합니다. 나는 나를 확인하고 나를 제대로 알고 한순간이라도 인간적인 삶을 살다가 죽고 싶은데, 나의 상황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라 합니다. 죽기 전에 내가 누군지 알려고 천주님께 귀의했습니다. 밤을 새워 천주님께 기도도 했습니다. 추기경께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밤을 새워도 내가 누군지 나에 대한 정확한 부분이 파악되지 않습니다. 지금 나는 왜 이렇게 된 겁니까?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됐는가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이것은 신을 믿지 않았다든지 신에게 불경했기 때문에 이 꼴이 된 것이 아니고 내 자신이 내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에, 내가 나를 잘못 썼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다, 이건 내 탓이다, 그럼 죽기 전에 '나'라는 것, 나라는 것을 확실히 정확히 해체해서 제대로 파악하고 그 참상의 본질을 가지고 한순간이라도 인간적인 삶을 살다가 떠나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해 보니까 어느 책에 불경인 것 같은데 '깨달아라'하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나 혼자 경전을 통해 깨달을 힘이 없기에 스님을 찾은 겁니다. 스님은 내가 죽기 전에 내가 누군지 좀 가르쳐주십시오. 나는 나를 찾으려고 불교로 개종한 겁니다." 만남을 허락했습니다. 3년 간 매주 만났습니다. 어느 날인가 무릎에 피가 났더라구요. 왜 그러냐 물었지요. "나는 사형수가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내가 사형수가 되지 않았다면 아직도 악행을 계속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 악행을 중지하고 여기서 진리를 만나서 죽음의 준비를 끝내고 웃으면서 형장으로 갈 수 있으니 참 행복하지 않습니까? 만년을 사는 것도 아니고 순간을 살더라도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전 비로소 이곳에서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죽음에 대한 준비를 끝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행복합니다. 3천 번의 참회절을 해서 무릎에 피가 나고 죽을 때까지 계속할 겁니다." 그는 아기를 위해 기저귀와 우유를 대주고, 소년가장, 시각장애자, 지방 산골 학교에 학용품을 보내주었습니다. 사형수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그는 항상 웃고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 사람과 만나게 해줬습니다. 그들은 금석이를 통해 삶이 무엇인지 인생이 뭔지 배웠다고 합니다. 뜨거운 인생을 배우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가장 성공한 사람이 찾아왔지요. 금석이가 자신의 후배라고 말하더라구요. 한쪽은 가장 찬란하게 성공한 사람, 한쪽은 스물두 살의 사형수, 그들이 만나는 겁니다. 금석이는 선배를 안았습니다. 선배는 당황했지요. 즐겁게 맞아주니까.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보지 마! 밖에 있었을 때 나는 참 불쌍했어. 지금은 죽음의 준비를 마치고 웃으면서 형장으로 갈 준비가 됐어. 길고 오래 사는 게 잘 사는 게 아니라 참삶을 살다 가는 게 잘 사는 거다"라고 금석이가 말하니 "나는 너를 위로하러 왔지만 너에게 많은 인생을 배운다. 그 마음 변치 말고 형장으로 웃으면서 가라"라고 선배가 말했습니다. 사형수의 마음이 더 편해졌습니다. 환경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이 어디 있는가가 중요하다. 불경에 "생각 생각이 진리의 마음을 가지면 곳곳이 극락 아님이 없다. 전부가 극락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두환 씨는 백담사에서 처음으로 발뻗고 편히 잤습니다. 이제 보니 청와대는 감옥과도 같았답니다. 이것은 마음의 문제지요. 이 사형수에게 어느 날 경이라는 소꿉친구가 찾아와서 옥중결혼을 하자고 하고, 그렇게 안 되면 여승이 되어 너의 명복을 빌겠다고 했습니다. 그가 밤을 새워 울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친구가 매일같이 와서 옥중결혼을 허락해달라고 하는데 자기는 허락할 수 없다는 거죠. 그녀는 남은 시간이 행복해야 하는데 그녀를 사랑하므로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둘째, 마침 그 때 KBS-TV가 강원도 산골의 국민학교에 취재갔다가 이 사형수가 돈을 매달 꼬박꼬박 보낸다는 얘기를 듣고 그게 방송에 나갔던 겁니다. 그는 참회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하는 건데, 이렇게 떠벌리면 나는 참회가 되지 않는 거 아니냐, 그 애들에게 바다잔치 시켜 준다고 약속했는데 그것을 못 지킬 것 같아서 운다고 했습니다. 내가 시켜줄 테니 걱정말라고 하니 그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살아서는 이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못 볼 것처럼 그를 좋아했습니다. 사형 집행 때도 평소에 만나는 것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들어왔습니다. 저는 울었습니다. 보통 그 때 사형수가 울면 제가 웃으면서 달래주는 건데, 거꾸로 법사가 울고 사형수가 웃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불효했습니다. 특히 어머님께 불효했습니다. 나의 어머님께서는 아버님 뒷바라지하시다가 왼쪽 다리에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끝내는 불구가 되었습니다. 돈 벌어 어머님을 모시고 싶었지만 먼저 가니 어머님 마음은 찢어지실 것 같습니다." 그 때 저는 정말 무의식적으로, 아마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죽음은 없는 것이다"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그래서 저는 웃고 있습니다" 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법사가 울면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고함치고, 사형수는 환한 얼굴로 편안한 마음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육체는 너의 마음을 가두고 있지만, 이제 너는 대탈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가라"고 했죠. 그는 경이를 지켜주세요, 내가 죽인 사람을 위해 남은 기간 기도해주세요, 바다잔치 잘 좀 해주세요라고 웃으면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면서 남긴 영치금 20만 원과 다른 이의 도움으로 산골에 교실을 지어주었습니다. 고금석은 살아 있습니다. 교실과 더불어. 겁많은 마음 약한 사람은 하루에 몇 번씩 죽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은 평생에 한 번 죽습니다. 제대로 참삶을 산 사람은 육체는 갔지만 그 정신은 죽지 않는 겁니다. 우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떠나려야 떠날 수 없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그건 내 마음으로부터 나는 떠날 수 없습니다. 자살을 해도 육신의 삶은 마감하지만 내 마음은 떠나지지 않는 거 아닙니까? 이 떠날 수 없는 나! 나는 자기를 학대하고 늘 추하게 만들고 때로는 짐승과도 같은 마음이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참으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나와 살아가는 경우가 많죠. 이 나를 아름다운 나, 창조적인 나, 후회하지 않는 나, 허공과 같이 큰 나, 참생명을 불꽃과 같이 쓸 수 있는 나로 가꿔가야 되는 겁니다. 저는 그러한 사실을 한 사형수의 죽음을 통해 배웠습니다.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 늘 건강해서, 이 건강한 마음이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그런 삶을 살아주십시오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강연일시 초청연사   강연제목
17 1995-4-27 임백천   대중문화 -- MC / 리포터론
16 1995-4-6 이 철   내가 보는 세계화와 우리 정치
15 1995-3-30 이충웅   한국의 기연구
14 1995-3-23 황산성   우리 환경 이대로 좋은가
13 1995-3-16 고영환   북한,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12 1994-12-1 박삼중   참 삶의 길
11 1994-11-24 손봉숙   21세기와 여성의 리더쉽
10 1994-11-17 이부영   신세대의 사고관은 무엇인가
9 1994-11-10 오웅진   참된 행복
8 1994-11-3 한완상   국제화시대와 민족통일
7 1994-10-27 지만원   시대가 요청하는 공인정신의 모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