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국제화시대와 민족통일

반갑습니다. 지금 1994년 11월인데요. 후세 역사가들은 1990년대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아주 격변기로 기술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역사의 관점은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보는 하 나의 관점은 크로노스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는 영어의 chronology와 관련되는 것으 로 연대기란 뜻이죠. 순차적인 역사를 말합니다. 고려시대, 조선왕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분단시대, 이렇게 연대기적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이해하는 관점을 chronology라고 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1994 년 11월은 아직도 20세기 후반입니다. 그런데 카이로스 역사관은 질적인 역사입니다. 뜻으로 보는 역사 입니다. 함석헌 선생께서 쓰신《뜻으로 보는 한국역사》는 카이로스의 역사입니다. 이 책은 역사를 단군 시대부터 죽 연결시킨 것이 아니라 뜻으로 한국역사를 꿰뚫어 본 겁니다. 그런 뜻으로 본 역사의 관점을 카이로스의 관점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는 이 격변의 시대, 국제화시대의 민족의 진로에 대해 카이로스 입장에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사실 지금 21세기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21세기가 2000년 1월 1일에 시작하는 게 아닙니다. 카이로 스 입장에서 볼 때 이미 21세기는 시작했습니다. 21세기의 시작이 언제냐 하는 것은 학자에 따라 다른 데, 저는 21세기의 시작을 1985년으로 봅니다. 왜 1985년을 21세기의 시작으로 보느냐? 1985년은 굉장 히 중요합니다. 1985년 3월에 지구상에 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세계의 양극체제를 서서히 그의 의도와는 달리 붕괴시키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이 누굽니까? 고르바초프가 그 해 봄 소련의 서기장이 되면서 그 는 그 나름대로 자기 체제를 개혁하려고 세 가지 방면에 손을 댔습니다. 하나가 소련체제의 반민주성과 폐쇄성을 고치는 것이었습니다. 이 반민주적인 체제를, 이 닫힌 체제를, 그리고 전체주의적 체제를, 개 방적인 체제로 바꾸겠다고 나온 것이 글라스노스트입니다. 둘째로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체제가 굉장 히 비효율적 체제였습니다. 그래서 이 비효율적인 체제를 효율적인 체제로 바꾸기 위해서 페레스트로이 카를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는 서구중심적인 외교정책이었던 것을 우랄산맥 넘어 시베리아를 중요시하 고, 시베리아 끝에 나타나는 동쪽을 중요시하는 정책, 신사고 외교정책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세 가지를 내세워서 그야말로 낡고 비능률적이고 개방적이지 못한 소련체제를 개혁하려고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 로이카, 신사고정책을 시행했었습니다. 그러나 의도와는 다르게 소련이 붕괴하고야 말았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사회학에서는 'latent function'이라고 말합니다. 소련체제와 동구체제는 개혁을 통해서 강화되지 않고 역설적으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인류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떠한 희망이냐? 어떠한 체제라도 인간 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체제는 망할 수밖에 없다, 어떤 체제라도 민주적이지 못하고 폐쇄적인 체제는 오 래 견디지 못한다, 어떤 체제라도 능률과 효율성이 없으면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그 러면서 이런 이데올로기보다는 인간이 더 중요하다, 계급보다는 어떤 의미에서 민족이 더 중요하다, 어 떤 의미에서는 민족보다는 시장이 더 중요하다는 새로운 가치를 강조하도록 새로운 역사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냉전체제의 와해라고 하는 거대한 역사적인 변동이 각 나라마다 지도력의 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과 50여 년 전에 이 지구상에서 세계를 지배했던 굉장히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거 물 정치인들이 씨가 마르듯 멸종된 것처럼 여겨집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처칠이 있었습니다. 루 스벨트가 있었습니다. 부정적이지만 히틀러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각 나라 지도자가 난쟁이처럼 아주 작게 보입니다. 난쟁이지만 아주 힘센 난쟁이가 아니고, 국민들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고 불신임을 당하고, 때로는 웃음거리가 되는 난쟁이 지도자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냉전체제가 와 해되면서 영국의 메이저 수상이나 클린턴 대통령도 요즘 약간의 외교정책의 성공으로 중간선거 앞두고 조금 인기가 올라가고 있습니다만 역시 그들의 지도력도 도전받고 있습니다. 일본의 수상은 그 동안 많 이 바뀌었지만, 앞으로도 그 지도력이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미테랑 대통령도 참 어렵습니다. 콜 수상이 비교적 안정성을 갖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번에 겨우 재집권했죠. 각 나라마다 지도력의 위기 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정치적 지도력의 위기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지도력의 위기도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권위의 위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권위의 위기 이것도 심각합니다. 권력과 달리 정당성이 있는 영향력을 권위라고 합니 다. 우리가 아플 때 의사한테 가서 내 병 증세 이야기하고 다 설명하면, 의사가 이야기를 듣고 진단 이 후에 처방을 써줍니다. 처방을 써주면 대개 환자는 처방에 따라 약방에서 약을 사서 먹습니다. 의사가 써주는 처방의 힘, 그 약을 사도록 하는 힘은 권위이지 권력은 아닙니다. 그래서 막스 베버라는 사회학 자는 이 '권위'와 상대방 의지를 꺾으면서 자기 의지를 관철하는 '권력'을 구별했습니다. 이 권위는 참 좋 은 것입니다. 정당한 영향력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디까지 왔느냐? 정치적인 권위의 위기는 어느 정도 극복되고 있으나, 사회적인, 문화적인 권위의 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학생이 교수를 폭행하는 지 경까지 왔습니다. 자식이 아비를 무능하다고 때려죽이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사병이 장교를 쏴죽이는 지 경까지 왔습니다. 이게 한국의 현상만은 아닙니다. 지금 이런 의미에서 냉전체제가 붕괴한 사건 이후 국가적인 차원에 서, 사회적인 차원에서, 문화적인 차원에서, 가정적인 차원에서, 학문적인 차원에서, 이른바 정체(正體) 의 위기가 심각해지는 듯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디로 향해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가? 어떤 기준에 따라서 살아야 하는가? 어떤 집단에 속하여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일관성 있게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꾸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처럼 탈냉전에 따라서 세계가 총체적으로 급변하는 이 시대, 이것을 저는 이미 21세기적 징후라고 보는데, 이 징후가 1985년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탈냉전이라고 하는 하나의 거센 흐름이 나타났는데, 이 흐름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이 흐름을 거역하는 나라와 집단 과 조직은 앞으로 21세기에서 생존하거나 번영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탈냉전 흐름과 실리 위주와 연관된 새 흐름인 국제화 혹은 세계화라는 두 가지 흐름이 21세기적인 새로운 흐름이라고 볼 수 가 있습니다. 국제화의 흐름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사실은 탈냉전이 국제화 흐름을 부추기기도 하고 가속시키 기도 하였습니다. 서로 동전의 양면처럼 움직이는 현상입니다. 국제화가 생기게 된 것은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이제 교통, 통신이 발달하면서 국가간의 교류 증진이 물적으로나 인적으로 강화되었습니다. 전지구적인 차원의 자본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더욱 촉진하는 것은 정 보화 추세입니다. 지금 정보화 촉진이 아주 맹렬하게 기획되고 추진되고 있습니다. 엘 고어 미국 부통령 이 정보초고속도로(Information Super Highway)의 국가적 중요성을 강조한 이후 전세계적인 차원에서도 정 보고속도로화가 추진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국제화를 가속시키는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국제화가 되면, 국제화가 앞으로 21세기의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단정적으로 이야기하 기는 어렵지만, 저는 사회과학도로서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세계를 지배해온 세력의 핵심이 민족국가(nation state)였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서구세력을 지배해온 주 변수가 민족국가였습니다. 봉건시대에는 영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나 이태리나 봉건영주 중심으로 결집이 되었기 때문에 민족국가 라는 것이 아주 희미했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이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등이 민족국가로 발 돋움하면서 그 힘이 안팎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1917년 볼셰비키 러시아혁명 이후에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것에 의해서 민족국가의 영향력이 이 데올로기권으로 재편성되어 가지고, 이른바 공산주의 블록, 자본주의 블록, 양쪽에 속하지 않는 제3세 계 블록, 이렇게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85년에 고르비가 등장하면서 탈냉전 흐름이 거세지는 가운데 이념적인 경계라고 하는 것이 그야말로 짧은 시간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한반도만 예외입니다만, 그대신 민족국가의 경계가 다시 강화되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어떤 새로운 경계선이 형성되는 듯 합니다. 그것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연결망이라고 하겠는데, 이것이 굉장히 앞으로는 강화될 것으로 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대도시란 단순히 지리적인 공간을 말하는 게 아니고 그 나라에서 가장 수준높은 사회간접자본이 밀집되어 있는 곳, 한 나라에서 막강한 경제력이 집중되어 있는 곳, 그리고 고 급노동력이 가장 집중되어 있는 곳을 말합니다. 서울을 보세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대도시와 대도시를 잇는 네트워크망들, 이것을 이어주는 게 앞으로 정보초고속도로가 되겠습니다. 이 망들에 의해 서 민족국가가 갖는 전통적인 국경의 규정력이 조금씩 약화될 것입니다. 제가 지난 5월에 대통령 특사로서 아프리카에 가는 길에 느낀 바가 있습니다. 이태리의 밀라노, 독일 남쪽 슈투트가르트, 프랑스 리옹 등의 도시들이 개별 민족국가와는 별도로 이 도시간을 연결하는 큰 네 트워크를 형성시킬 것으로 느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 동북아지역이 중요해지면 서울- 베이징-도쿄를 잇는, 베서토(Be-Se-To)라고 하는 새로운 생활단위가 21세기를 이끌어가는 주역으로 등 장할 것이라고 봅니다. 국제화 흐름으로 인해 민족국가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자본이든 인간적인 교 류든) 일이 일상화될 것이므로 닫아놓고 살아갈 수 없는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이념이 경계를 너무 뚜렷하게 만들었습니다. 철의 장막, 죽의 장막이 인적, 물적 교류를 자유롭게 할 수 없게 만들었었는데, 이것이 무너지면서 국제화는 결국 더욱 촉진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거대한 역사적인 흐름을 읽어낼 수 없는 지도자는 앞으로 생존할 수 없습니다. 국가경영을 해낼 수 없습니다. 자기 나라를, 자기 민족을, 번영으로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 흐름을 확실 하게 몸으로 느껴야 하고, 머리로 대응해야 하고, 실천으로 이 흐름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실력을 길러 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무엇을 요청하느냐? 탈냉전 흐름에 따른 사고의 새로움, 그 새로운 발상에 따 른 새로운 정책, 그 정책에 따른 새로운 프로그램, 그 프로그램에 따른 새로운 정치적 결단과 실천, 이 런 것들이 요구됩니다. 국제화 역시 새로운 사고, 새로운 방안, 새로운 정책, 새로운 결단을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봅시다. 이 두 가지 흐름을 비교적 잘 수용하고 몸으로 실천해 나가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구체적인 정책 몇 가 지를 여러분에게 제시하고 그 다음 민족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클린턴이 집권한 후에 미국의 외교정책의 본질을 우리는 정확하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냉전적 시각에서, 국제화를 받 아들이지 않는 시각에서, 미국의 외교정책 특히 미국의 한반도정책을 보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 문입니다. 특히 정치엘리트와 문화엘리트 가운데 많습니다. 클린턴은 93년 4월에 일본에 와서 그 당시 일본 수상인 미야자와 수상에게 "미국과 일본 두 나라간의 냉전적 동반자 관계는 낡아빠진 것입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왜 이런 얘기를 했는가? 소련이 냉전시대 의 악마제국으로 간주되던 때, 그것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비록 일본이 자기 미국시장을 침투 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주더라도 안보상의 특혜를 일본에 주었습니다. 소련이 붕괴한 지금 미국은 그 럴 필요가 없단 말이죠. 그래서 미야자와 수상에게 냉전적 동반자 관계는 낡아 빠졌다, 그러니 이제는 시장 개방해라, 너희들이 시장 개방하지 않고 미국과 싸우면 일본이 미국인들에게 주적(主敵)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겁니다. 같은해 7월에 클린턴이 다시 일본을 방문하고 우리나라에 왔습니다만, 그 때 야 당지도자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일본시장 개방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이맘때입니다만, 시애틀 APEC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클린턴은 자기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클린턴은 냉전시대의 안보논리를 가지고 이야기했던 것이 아닙니다. "이번 시애틀에 모이 는 APEC회의는 궁극적으로 미국 국민들의 직장, 그리고 소득, 삶의 기회를 증진시키는 일에 관한 회의 다"라고 명백히 규정했습니다. 우리 대표들은 그것을 모르고 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클린턴은 자기 국민들에게 APEC은 한마디로 말해서 미국의 경제사정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체적 으로 말하면, 미국의 국민들에게 직장을 더 많이 주고, 미국 국민들의 소득을 올려주는 일, 그들의 삶의 기회를 늘려주는 일을 위해서 간다는 아주 탈냉전의 시각을 명백히 했습니다. 그래서 클린턴의 외교정책 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Business of diplomacy is business." 클린턴 외교의 주업무는 사업 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business란 말이 두 번 나오는데 앞의 business는 주업무라는 뜻이고, 뒤의 business는 사업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클린턴의 외교정책의 명백한 성격을 우리는 먼저 알았어야 합니다. 장관들과 차관들도, 차관보 들도, 일정하게 자기 대통령의 그 외교기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크리스토퍼 장관이 미국 외교 정책에서 아시아의 중요성이 크다고 했는데, 이 말이 뭐냐 하면 미국의 가장 큰 시장이 지난날에는 유럽 이었지만 이제는 아시아쪽으로 온다 이거예요. 아시아가 미국한테 굉장히 중요한 시장이라는 거죠. 윈스 턴 로드 차관보는 그 말을 받아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더 많이 수출해야지 미국사람들에게 더 많은 직장을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보다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재무차관 서머즈의 이야기입니다. 아시아 는 벌써 1조 달러 시장이 되고 있는데, 이 1조 달러라는 것은 다음 10년 동안 세계경제의 반이 되는 엄 청난 큰돈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수출량은 1천3백억 달러입 니다. 이 1천3백억 달러의 5%만 상승시켜도 미국민 10만 명에게 새로운 직업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미국의 대통령선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슈는 외교정책이 아니고 경제문제입니 다. 경제문제 가운데도 국민들에게 실업률을 낮추고 직업을 주는 일입니다. 인플레를 잡는 것도 중요하 지만 새로운 직업을 주는 것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외교정책을 그리로 환원시킨다고 할 만큼 경제적인 실리를 추구하는 국제화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탈냉전적 시각으로 국제화를 촉진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미국은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최근에 제가 읽은 아주 재미있는 글이 있는데, 시사평론인데 이렇게 썼어요. 클린턴을 협상의 기술자, 미국 물건을 사라 하고 정책을 관철시키는 협상의 기술자로서 별명을 붙였습니다. "The Closer-in-Chief" 라는 것인데, 즉 거래를 매듭짓는 왕초다 이 말이죠. 왜 그런가, 구체적으로 또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불과 한 달 전의 일을 말하겠습니다. 9월에 49년 간 베를린에 주둔했던 연합군이 철수를 했습니다. 이 때 클린턴과 사업가들이 베를린에 갔습니다. 그 때 주독 미국대사 홀브루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전후 근 50년 간 미국과 유럽 간의 관계는 주로 군사관계였다, 주로 냉전적 관계였다, 그런데 연합군의 철수 는 무역과 경제에 대한 강조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작년에 클린턴이 일본에 가서, 자 이제는 냉전적 동반자 관계는 낡았다, 그러니 시장개방하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어떻게 해서 클린턴 대통령이 'The Closer-in-Chief'란 별명을 들을 정도로 경제적인 실리외교의 성과 를 거두었는지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사우디의 파드 왕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미국 민간 항공기 를 사우디가 사주기를 부탁하는 전화를 했습니다. 무려 60억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이 거래를 매듭짓는 일을 대통령이 직접 담당했습니다. 옛날의 관점에서 보면 상상도 하기 어렵죠. 상무장관도 있고 대통령 비서실장도 있지만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했습니다. 지난 5월의 일입니다. 사우디의 통신근대화를 위한 사업을 미국의 AT&T사가 맡아 하려고 하는데 이 액수가 무려 40억 달러입니다. 이 거래를 매듭짓기 위 해 대통령이 직접 나섰습니다. 지난 6월입니다. 또 미국 대통령은 브라질을 직접 설득해서 무려 14억 달 러에 해당하는 엄청난 프로젝트를 미국 특정회사에 주도록 설득했습니다. 냉전시대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이제는 국제화시대를 선도 하기 위해서, 자기 국가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 더 많이 물건을 팔기 위해 서, 모든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설 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나라간의 경제적 거래를 매듭짓기 때문에 'The Closer-in-Chief'라는 별명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도전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기회입니다. 이런 세계의 추세, 국제화의 추세를 우리 가 무시하고서는 국가경쟁력이 건실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두 흐름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소화를 하고 우리가 실력을 쌓아 갈 수 있을까? 지금 국제화를 막는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는 것과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하나의 거센 물 결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을 헤쳐 나갈 수 있느냐? 헤쳐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계획이 무엇입니 까? 이것에는 제도차원에서의 개혁, 의식차원에서의 개혁, 위로부터의 개혁에서 아래로부터의 개혁까지 총체적인 개혁이 필요합니다. 신정부가 들어와서 개혁을 내세웠는데, 사실 그 개혁은 역사적 흐름과 딱 맞는 역사적 정책이요 철학인데, 지금 잘 되고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 국민들의 이견이 분분하 겠지요. 허나 이 착상만큼은 참말 잘 되었습니다. 개혁하지 않고서는, 냉전식 제도, 냉전식 관행, 냉전 식 의식을 가지고는, 국제화의 도전을 감당해낼 수 없습니다. 이미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미국은 제일 먼저 냉전을 주도한 나라인데, 탈냉전의 흐름을 재빨리 알아 가지고, 탈냉전의 구체적인 정책, 국제화 정책을 지금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 흐름을 미국만 하느냐? 저는 아프리카에서도 느꼈어요. 그걸 여러분들께 얘기하고자 합니다. 제가 지난 5월달에 대통령 특사로서 만델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습니다. 가는 길에 카이로에 들르 고 탄자니아에 들렀는데, 탄자니아는 얼마 전만 하더라도 사회주의 국가였다가 불과 2∼3년 전에 대통령 이 노선을 바꿔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전환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서 대 통령 취임식에 참석 후 오는 길에 케냐에 들렀었습니다. 이제 아프리카에서 느꼈던 것을 제가 말씀드리 겠습니다. 카이로에서 제가 느꼈던 점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이집트가 어떤 나라입니까? 우리나라와 영사관계만 을 30년 이상 맺고 있으면서 아직도 대사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간 우리는 이집트와 정상 외교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했었지만 잘 안 됐습니다. 그것이 왜 잘 안 되는가? 한 번 이것을 타결해 보고 싶은 생각을 우리 정부는 갖고 있었습니다. 무바라크 대통령을 만나서 타진해 보려고 했는데, 마침 제가 간 시기에 이스라엘과 PLO가 평화협정을 맺는 조인식이 5월 4일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지 몰라도 구약성서에 보면, PLO가 어떤 민족으로 되어 있습니까? 아랍민족인데,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과 싸움을 아주 끈질기게 한 나라가 있습니다. 블 레셋입니다. 블레셋의 유명한 장수가 바로 골리앗입니다. 이스라엘의 목동이 다윗인데, 다윗이 골리앗 을 때려눕히는 이야기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분규는 수천년이 됐단 말이죠. 지금 블레셋의 후예가 PLO예요. 그러니 수천년 간의 긴장과 갈등의 관계를 종결시키는 역사의 의미를 갖는 굉장히 중요한 평화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약 2,500여 명의 증인들이 카이로에 속속 모여들었습니다. 그럴 때에 제가 카이로에 갔습니다. 그리고 무바라크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무바라크 대통령과 한 이 야기 중에서 한두 가지만 이야기한다면, 무바라크 대통령은 친북 인사였습니다. 그 까닭을 여러분 아시 는 분은 아시겠죠. 68년에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싸울 때, 북한이 파일럿을 보내서 이집트가 싸우는 데 굉장히 중요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때 무바라크 대통령은 공군참모총장이었습니다. 그러니 북한에 대 해서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와는 대사관계까지 안 올라가고 33년 간 영사적 외교관계만을 맺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나란데 제가 먼저 외무장관을 만나고 5월 3일날에는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외무장관을 만났을 때 외무장관이 하는 말이 얼마 전에 김일성 사절단이 다녀갔는 데 무바라크 대통령이 만나주지 않아서 자기가 대신 만나줬다고 했습니다. 외무장관 만나서 이야기하고 대통령 만나서 이야기할 때, 북한은 세 가지 공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는 미국 같은 큰 나라가 핵 선제공격을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고, 우리가 흡수통일을 할까봐 두려워하고 있고, 우리가 공 조체제를 만들어 자기 목을 조르고 있다, 고립화시키고 있다는 이 세 가지 불안에 떨고 있다고 했습니 다. 그러니까 외무장관이 그건 지난 냉전시대의 일들이다, 신경 쓸 것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해요. 무바 라크 대통령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를 해요. 무바라크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의 친서를 숙독하시고 나서 핵심적인 질문을 해요. "북한당국은 핵무기 가 없다고 말하고 그것은 필요도 없다고 하는데, 왜 주변국가에서 이미 핵무기가 있는 것처럼 떠들어대 서 복잡하게 하느냐? 내가 지난달에 중국에 가서 강택민 주석하고도 회담하면서 북한문제를 이야기했는 데, 왜 그렇게 당신들은 북한당국이 핵무기가 없다는 데에 대해서 강력한 자세를 취하느냐?" 이런 얘기 를 합디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이미 제조했는지 안 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 나 핵무기 만드는 원료인 플루토늄을 상당히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핵폭탄 제조에 대한 의 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의심이라고 하는 것이 공포를 자아냅니다. 특별히 핵에 대한 의혹은 심 각한 공포를 자아냅니다. 공포는 정치적 현실입니다. 평양이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 자체 는 공포라는 정치적 현실을 조성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북한에 대해 핵 투명성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핵 투명성이 보장되면 우리 정부는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할 것이고 북한이 관계정상화를 하고 싶은 나라들과 관계정상화를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서방이나 미국이나 일본 어느 나라든지 도움 을 줄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 때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럼 문제는 남북한간의 기본적인 냉전적 불신입니 다. 냉전적 불신을 극복하는 것은 대화입니다. 대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적으로 교류하는 것, trade라고 하는 것, 경제협력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 무바라크 대통령이 냉전시대의 이념을 넘어서 는 시각을 갖고 있음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한달 후에 이 자리 카이로에서 비동맹운동 외상회의를 여는데, 거기에서 우리의 입장, 남한의 입장을 지지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한 달 후에 비동맹외상회의 주제연설을 무바라크 대통령이 했는데, 주제연설 가운데 확실히 탈냉전의 정책을 강조한 연설을 했습니다. 이를테면, 그전에는 비동맹외상회의 를 하면 단골메뉴였던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이런 이야기가 항상 나왔는데, 이번 카이로 외상회의에 서는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그 구호는 없어지고 대신에 경제협력, 민족분규, 환경보호, 이런 주제로 토의를 했습니다. 그런 방향으로 끌어가는 나라가 바로 이집트였습니다. 이집트 자신이 사실은 냉전시대 에 다소 좌경적인 냉전의식을 가졌던 나라이지만 이와 같은 새 역사적 흐름에 재빨리 주도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모습을 저는 볼 수가 있었습니다. 카이로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탄자니아를 거쳐서 남아공으로 갔습니다. 남아공에서 저는 참으로 감동 적인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거기 가서 대통령 취임식 전날 시장의 만찬에 참석했었습니다. 이 곳에는 만델라 대통령의 취임식에 특사로 온 세계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 대통령만 24명이 왔습니다. 거기서 들 어가다 아라파트 의장을 만났습니다. 아라파트가 누굽니까? 우리가 알기로는 PLO의 의장으로 압니다 만, 테러리스트의 왕초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냉전시대의 테러리스트. 그도 친북인사입니다. 냉전시대 의 관점에서 보면, 그래서 우리같은 남한에서 온 사람을 꺼려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조바심을 가지 고 만났습니다. 아라파트가 가는 곳은 신문기자들이 플래시를 터뜨리며 따라다닙니다. 현지 대사와 함께 연회장에 들어가다 아라파트와 딱 마주쳤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온 특사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인사할 때 아주 조마조마했습니다. 혹시 악수도 안 하고 가지는 않을까 혹시 기분 나쁜 말을 하지 않을까 하는 두 려움이 있었습니다. 냉전적인 두려움이었단 말이죠. 그런데 아라파트는 제가 한국에서 온 특사다 하니까 두 손을 꼭 잡고 "귀 정부가 우리 PLO의 재건을 위해서 2백만 달러를 주기로 약속한 것 감사합니다"했어요. 그런데 실은 2백만 달러가 아니고 1천2백만 달러였습니다. 저는 그걸 보고 놀랐습니다. 북새통 같은 연회장에서 남쪽에서 온 특사를 만나 첫마디가 우리 정부가 돈 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말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액수가 틀렸죠. 그래서 제가 그랬 습니다. "의장 각하, 2백만 달러가 아니고 1천2백만 달러입니다." 그랬더니 손을 더 반갑게 흔들면서 감 사하다고 그럽디다. 내친 김에 한마디 더 했습니다. "혹시 의장님이 아시는지 몰라도 요번에 제리코와 가자지역의 경비를 위해서 통신장비를 현찰로 20만 달러 내놓았습니다, 우리 정부가 현찰로 20만 달러 준 것 아십니까?" "아 참 그렇죠" 하더니 또 손을 막 흔들어 댑디다. 아라파트 머릿속에는 냉전식 불신과 이념은 이미 사라진 듯했습니다. 오로지 PLO의 재건을 위한 경제원조와 자기 시장을 확장하는 데 필요 한 자금 생각뿐인 듯했습니다. 아라파트가 얼마나 이념적인 사람이었습니까? 이처럼 세계지도자들이 완 전히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자기 몸으로 소화하고 있습니다. 다음날 만델라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고 오후 8시에 만델라 대통령을 만나기로 했는데, 사실 저는 드 클럭 부통령도 만나고 싶었습니다. 절대권력을 쥐고 있던 우파 수구세력의 지도자였던 그가 어떻게 하여 흑인 민권운동 좌파세력의 지도자인 만델라를 석방, 복권시켜 그와 함께 손을 잡고 새 역사를 만들 수 있겠는가? 어떻게 대통령 하던 사람이 부통령으로 스스로 내려앉았던가? 자존심도 없는가? 이런 생 각을 막연히 하면서 아프리카에 갔단 말이에요. 오전에 취임식 마치고 오후 5시 20분에 부통령 집무실로 오라 했습니다. 갔더니 일본특사가 먼저 와 있어요. 우리는 일본특사 다음인가보다 했는데, 부통령실에 서 나와 우리보고 먼저 들어오라고 하는 거예요. 들어가서 앉으니까 드 클럭 부통령이 경제문제 이야기 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대한민국이 굉장히 경제적으로 발전을 한 나란데 양국간에 경제협력을 강화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 소리를 듣고 속으로 뜨끔했습니다. 저는 돈에 대해서는 위임사항이 없으니까 자유재 량이 없잖습니까? 그래서 돈문제에 관한 사항을 피하려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침에 만델라 대통령 취임식에서 느낀 것은 한 개인의 취임식이 아니라 인류 모두가 염원하는 자유 평화 인권 정의, 이런 이상이 취임하 는 것 같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세기적이고 세계적인 축제를 가능하게 한 장본인이 바 로 부통령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아 있는 정치인 중에서 존경하는 이가 바로 고르바초프인데, 부 통령 각하께서는 고르바초프보다 두 가지 더 위대한 점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드 클럭이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고르비를 한 번 만나고 싶었는데 아직 못 만났어요. 그 분도 노벨평화상을 타고 나도 노벨평화상을 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내가 고르비보다 더 위대하단 말이요?" 그래서 제가 이랬습니다. "첫째는 고르비가 무너뜨린 냉전은 불과 이 지구상의 반 세기밖에 지속하지 못했습니다. 그 러나 각하가 무너뜨린 아파르트헤이트는 근 4세기를 지탱하였습니다. 4세기 동안의 엄청나게 잘못된 체 제를 와해시켰습니다. 둘째는, 이 둘째야말로 드 클럭 부통령이 더 위대하다고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고 르비는 냉전을 와해시키는 과정에서 실권을 했습니다. 그러나 각하는 실세의 부통령이 되어 재집권을 했 습니다. 세계의 어떤 나라 지도자가 이렇게 오랫동안 내려온 기득권을 스스로 버리고 또다시 집권을 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각하야말로 위대한 정치적인 예술가입니다." 그러니까 드 클럭 하는 말이, "내가 누굽니까? 내가 바로 만델라를 감옥에 집어넣은 장본인 아닙니 까? 그런데 내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는고 하니, 야! 이제 만델라의 재야 세력을 더 이상 냉전논리로 탄압할 수 없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라고 그러더군요. 무슨 말인고 하니, 드 클럭의 백인 냉전 세력이 만델라를 탄압할 수 있었던 구실은 그가 소련의 앞잡이라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 소련이 무너지면서 더 이상 냉전적 통제로 탄압과 압박을 할 수 없다는 걸 느끼면서 그는 깊은 고심 을 했던 거예요.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는 거지요. 역사의 대세에 따라야 한다고. 그래서 공적으로 국민 에게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실패했습니다, 이제는 억압이 아니고 협상을 통해서 정국을 끌어가야 합니 다라고 자기의 잘못을 공언하고 고백하고, 만델라가 있는 케이프타운 감옥에 가서 사과하고 석방하고 복 권시키고 대통령에 당선시켰습니다. 그러니까 노르웨이 한림원에서 만델라와 그에게 함께 노벨평화상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느꼈는지 아십니까? 깨끗하게 지난날의 잘못을 국민 앞에 사죄하고, 새 출발을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탄압했던 사람을 석방시키고 그를 동반자로 삼아 함께 새 나라를 건설 하는 그 통 큰 모습에 저는 감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드 클럭에게 이런 면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에서 부 통령으로 되어서도 남아공화국 건설을 위해 이렇게 헌신할 수가 있구나 하고 경탄했었습니다. 그러한 이 야기를 하고 마지막으로 경제적인 이야기를 추상적인 차원에서 했습니다. 그 후 6시 20분에 만델라 대통령을 만나기로 했는데, 40분 전에 오라고 해서 만델라 대통령 집무실에 갔습니다. 대기실에 있으니까 일본특사와 대사가 들어옵디다. 들어와 하는 말이 "드 클럭 부통령이 한국 에 대해서는 얼마나 돈을 달라고 했습니까?" "돈 달라고 안 하던데요." "아 그러지 말고, 얼마를 요구했 습니까?" 그래서 제가 "당신 나라에는 얼마를 달라고 했습니까?"했더니, 특사가 하는 말이 자리에 앉자 마자 드 클럭 부통령이 "오늘 아침에 클린턴 대통령이 자기에게 전화를 해서 미국이 6억 달러를 주기로 약속했는데 일본도 미국만큼 잘 사는 나라이니 같은 6억 달러를 내시오"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거예요. 일본 자기네가 6억 달러 했으니까 당신네 한국에도 아마 상당한 액수를 요구했을 것으로 짐작한 것이죠. 그래서 웃으면서 "돈 이야기는 안 하고 우리는 정치철학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믿지 않아요. 아 그러지 말고 얼마 달라고 하더냐고 계속 묻기에 돈 이야기의 화제를 돌린 것이 아주 잘 했다고 생각했습 니다. 잠시 후에 만델라 대통령의 집무실에 들어갔습니다. 초대를 받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싱가포르, 월남, 브루나이, 네팔 등 6개국이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잘 사는 세 나라와 못 사는 세 나라를 그렇게 배 합을 했던 것입니다. 그 외의 나라, 아시아 각국 2∼30여 나라는 그 다음날 한꺼번에 만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특별히 선택된 특사들이 된 셈이지요. 저는 만델라 대통령의 첫마디가 자기가 27년 동 안 재야에서 투쟁한 것을 자랑하는 말일 줄 알았는데, 만델라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은 경제에 관한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아프리카에 있지만 우리는 후진국이 아닙니다. 사회간접자본, 은행, 통신체제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 수준에 있습니다." 만델라는 "우리에게 투자를 하십시오"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 다. 우파 지도자인 드 클럭도 경제협력을 강조했는데, 만델라도 27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우리에 게 원한 것은 "우리에게 투자를 하라"라고 하는 경제협력이었습니다. 한때 좌파 냉전세력 만델라나 우파 냉전세력이었던 드 클럭도 이제는 냉전적 시각으로 세계를 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도 아프리카의 현주소입니다. 탄자니아의 대통령도 그랬고 케냐의 대통령 또한 그랬습니다. 아프리카까 지도 세계의 새로운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습니다. 왜 우리에게는 드 클럭 같은 정치지도자나 만델 라 같은 정치지도자가 없는가 하고 한탄했습니다. 그 후 제가 아프리카 특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서울의 분위기는 뭐냐 하면, 북한을 무력으 로 응징해야 한다, 유엔 안보리에서 제재해야 한다, 이런 냉전적 목소리가 굉장히 높은 때였습니다. 제 가 김포공항에 내려서 무슨 착각을 했는지 아세요? 제가 본 영화 중에서〈Back to the Future〉가 있습니 다. 제가 아프리카를 다녀온 후 느낀 것이〈Back to the Past〉, 1970년대에 다시 돌아와 있구나 하는 것 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구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냉전적 대결전쟁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렇게 클 수가 있는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할 수가 있는가, 이런 생각이 제 마음을 아주 세차게 때렸습니다. 제 마지막 결론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은 북미회담의 타결로 인해서 남북관계가 우리가 원하든 원 치 않든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남북 당사자간의 능동적인 대화를 통해서 핵문제 해결에 앞서 나 가야 합니다. 남북관계가 아직도 해빙기를 맞이하고 있지 않지만, 미국과 북한과의 협상타결로 평화의 봄을 향해서 우리는 더욱 달려가야 합니다. 이것은 미국과 북한 간이라는 두 국가간의 타결이라고 볼 것 이 아니라 그것이 세계사의 흐름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서 남북관 계가 이제 더 이상 악화될 수 없는 국면으로 가는 이 때에 이 거센 국제화의 물결에 우리가 창조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민족적 경쟁력을 높여야 합니다. 앞으로 이 국제화는 각종 라운드로 표시되는 여러 가지 파도가 겹겹이 우리에게 몰려올 것입니다. 우루과이라운드, 오일라운드, 교육라운드, 통신라운드, 환경 라운드 등이 계속 우리에게 도전해 올 겁니다. 이런 라운드의 파상적인 공세 앞에서 우리가 옛날처럼 냉 전적 사고에 갇혀 살아가는 것은 변화하는 세계에서 스스로 자멸을 초래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서울대학 학생은 캐임브리지, 옥스퍼드대학의 학생과 경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대학이라는 대 학은 국제적인 경쟁력이 별로 없습니다. 다른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앞으로 교육라운드가 오면 우리가 과연 생존해낼 수 있을까요? 통신라운드를 생각해 봅시다. 앞으로 이제 위성을 통해서 다른 나 라의 품질 좋은 재미있는 소프트웨어가 우리 안방으로 들어온다고 합시다. 과연 이것과 경쟁할 만한 소 프트웨어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스필버그라는 천재적인 감독이 만든〈쥐라기공원〉이 자동차를 1백 만∼1백 50만 대를 수출해서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과연 그러한 소프트웨 어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이런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스필버그의 흉내를 아무리 내봐 야 스필버그의 뒤꽁무니를 좇아다니는 것밖에 더 되겠습니까? 이러한 때 우리가 스필버그의 작품을 능가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스필버그의 작품을 닮는 것이 아 니고 우리의 민족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우리의 독특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 고자 하는 것은 국제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아니 살아 남는 수준을 뛰어넘어 번영할 수 있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만들려고 할 때, 특히 소프트웨어를 만들려고 할 때, 우리만의 독특한 소재, 다른 민족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바탕으로 해서 만드는 것만이 경쟁력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 러니까 이 국제화시대에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이라는 역설적인 진실을 새삼 깨달아야 합니다. 서구 것을 뒤따라가면서 모방하는 것은 결코 살아 남을 수가 없어요. 이런 시대에 우리가 민족의 경쟁력을 강화하려고 하면, 먼저 냉전적인 체제하에서 엄청나게 국가자원 을 소모하고 있는 현상황을 타개해야 합니다. 제가 만델라 대통령 취임식에 가서 아시아에서 온 여러 특 사들과 이야기하는 가운데 어떤 것을 느꼈는고 하니 이런 것을 느꼈습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쪽 사람들 얘기인데, "지금 남한의 GNP 총량은 아세안 6개국의 GNP 총량과 맞먹을 만큼 남 한은 아주 강력한 경쟁국이지만, 죽의 장막도 무너지고 철의 장막도 무너진 이 상황에서 우리 동남아 나 라들은 우리 국가자원의 상당부분을 국제경쟁력 있는 물건을 만들어내기 위한 사업에 배분하고 있다"는 식의 인식을 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분단비용, 냉전체제비용이라고 하는 엄청난 짐을 지 고 있는데, 저쪽 동남아는 냉전체제의 짐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우리를 추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냉전시대 이후의 우리 한반도를 탈냉전화시켜서 냉전체제 유지비용을 국제화라고 하는 도전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곳에 배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빨리 남북관계가 서로 협력관계로 들어가서 단계 적인 통일과정에 들어감으로써 민족의 힘을 집결시킬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스필버그는 가장 유대적인 발상을 통해서 기가 막힌 작품을 만들어냈는데, 우리도 우리 문화의 주체적인 모습을 되살려서 탈냉전의 이 국제화시대에 우리가 생존해내고 번영할 수 있는 그러한 전략을, 계획을, 꿈을, 비전을 만 드는 일을 여러분이 해내야 합니다. 끝으로 한 가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미래학자 싱거(Singer) 박사는 말하기를 앞으로 21세 기 중반을 지나면 세계 경제대국의 순서가 이렇게 된다고 했습니다. 7대 경제대국, 이것은GNP 총량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7대 경제대국은 미, 일, 소, 한반도(통일시), 중, 독의 순서라는 것입니다. 그러 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지표는 8대 부유국입니다. 8대 부유국, 이것은 1인당 국민소득을 두고 말하는 겁 니다. 일본, 한반도, 미, 독, 불, 이, 영, 소, 이런 순서라고 했습니다. 싱거 박사는 세계적인 학자입니 다. 과학적인 분석에 의해서 이렇게 추정했는데, 통일된 경우의 한반도라는 분석의 전제가 참 중요합니 다. 한민족이 통일되면, 21세기 중턱에 들어서면, 세계 제2의 부유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그것 이 민족의 진로 아닙니까? 그것을 민족의 진로라 생각하고 여러분의 머리를 녹슬게 하는 냉전적 사고를 털어내고 새로운 국제화의 흐름을 적극 활용하여 민족의 자존과 번영을 위해 헌신하는 학생이 되시기 바 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