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요즘 사람들의 언어형태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배한성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외화를 통해서 만나다 보니 손해볼 때가 참 많습 니다. 여러분, 앞으로 저를 만나시면 '배한성 씨 목소리가 … , 어쩌구' 하지 마시고 '배한성 씨 왜 그렇게 미남이에요? 왜 그렇게 인물이 좋아요?' 이렇게 얘기를 해주세요. 어떤 때는 "왜 그렇게 목소리가 좋아요? 얼굴은 아니지만 … " 하는 데, 사족은 왜 붙입니까? 같은 말이라도 힘을 주는 말이 있고 힘을 빼는 말이 있지요. 어떤 분은 만나면 꼭 목소리는 너무 환상적인데 얼굴은 환장적이라나요? 저의 어머니가 가장 섭섭해 하시는 말씀이죠. 지성의 국민대학교 학생들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조금 야한 것 같지만, 제가 어머니께 항의를 했습니다. "어머니 도대체 저를 왜 이렇게 만드셨습니까? 아무리 밤에 몰래 만들어도 그렇지." 저기 앉은 여학생은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닮은 웃음을 웃는군요. 아하 하하. 저도 이 자리 를 오기 위해서 어떤 얘기를 하면 좋을까 고민했습니다. 어떤 분이 쓴 글을 우연히 봤더니 강의 시작 3분 안에 사로잡아라, 안 그러면 시시해 한다고 해서 조금 주의를 환기시켜 보았습니다. 저는 대학 2학년 때 방송국에 입사한 이래 30년간 말과 관계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버님이 6·25 때 행방불명되셔서 매우 가난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빨리 사회로 진출해서 가난도 벗고 또 제 재능도 펼치고자 하는 욕구가 다른 사람들보다 강했어요.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때 이 얼굴을 가지고 영화배우 시험에 응모했었다는 것 아닙니까. 제 생각에는 너무너무 연기를 잘 한 것 같아서 자신만만해 했었는데 합격 통지서는 안 왔어요. 그렇지만 그 일에 크게 실망 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제 나름대로는 추구하는 길이 확실했고 또 적극적 사고를 가지고 매진했더니 별 무리없이 지금 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자! 제 얘기는 이쯤 해두고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글을 말로 옮기는 작업이 굉장히 어려워요. 연륜이 오래된 지금도 어떤 배역을 맡으면 아주 고민이 돼요. 그리고 방송국 생활을 하는 동안은 유행에 예민해져야 하기 때문에 저는 젊은이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귀를 많이 열어 두고 있어요. 왜냐하면 말이라는 것이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말은 참 많이 변합니다. 우선 말하는 속도가 빨라졌어요.《용의 눈물》 같은 사극을 보면 옛날 분들은 이렇게 얘기했지요. '마마 납시 오. 절대 그렇지 않사옵니다. 마마.' 그런데 요즘 대통령한테 '대통령 각하, 그렇지는 않사옵니다. 현철이는 집어넣어야 되옵니다. 각하' 그러지는 않잖아요. 여러분 가끔 흘러간 한국영화 보시면 이상할 거예요. 예를 들면 신성일 씨가《맨발의 청춘》에서 "경아! 무엇 때문에 가는 거야. 오늘밤 집에 안 들어가면 안 되겠니?" 여러분들 요즘 만나고 있는 여자 친구한 테 그렇게 말합니까? 저도 성우를 처음 할 때 그 흉내를 많이 냈어요. 말을 멋있게 하려고 괜히 코평수도 좁히면서 그랬거 든요. 요즘 사람들은 말을 참 빠르게 하고 언어 형태도 상당히 단답식이에요. 특히 여러분은 영상 시대에 익숙해져 있어서 말 대신 화면으로 안내한다든지, 책자를 준다든지, 그래픽으로 대신합니다. 그래서 말수가 줄어들어 있어요. 저도 성우지만 성우들이 바람직한 언어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외화 더빙이라는 것이 우리하고 친근해진 지 오래 되어서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아니 양코배기들이 어떻게 저렇게 한국말을 잘 해." 그랬더니 어 떤 분이 "요즘 워낙 이민을 가서 오래 살다 보니까 코가 길어졌대요." 이런다고 합니다마는, 성우들의 말이 외화 더빙을 하 면서 주어진 말 길이, 시간이 있기 때문에 억양이 이상해지고 아주 국적불명의 언어가 방송에서 흔히 튀어나옵니다. 시청자 들은 그런 말투를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죠. 또한 성우들은 인물의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하려고 애를 쓰거든요. 예를 들면 가제트 형사를 보니까 생긴 모습 도 독특하고 똑똑한 것 같이 보이지만 일만 저질러서 이것을 정통 형사처럼 해서는 영 재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우리 앞집의 손녀딸애가 참 재미있게 말해요. "아저씨 지난번에 텔레비전에서 봤다" 하면서 말끝을 올리는 게 아주 독특해요. 그래서 그와 비슷한 억양으로 해봤더니 녹음할 때 밖에서 박수를 치더군요. 그렇게 어떤 배역을 맡으면 인물 성 격에 따라서 말 형태를 달리하기 때문인지 외화 더빙에서 말의 억양이 우글짱 쭈글짱 너무 이상해져 버렸어요. 저는 방송을 하면서 그런 책임의식을 느낍니다. 반면 바로 지금 여러분들의 언어 형태가 제일 아름답고 싱그럽고 멋진 겁니다. 우리의 사회나 경제 환경이 과거 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언어 형태도 환경에 따라서 참 많이 변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 제 경우를 들어보지요. 제가 데이트 를 할 당시는 돈이 없었던 어려운 시절이었거든요. 제가 광화문에서 어떤 여자를 만났는데 딱 제 차비밖에 없는 거예요. 그 래서 그 아가씨는 종암동, 나는 정릉까지 같이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걸어가는 동안 그 여자가 지루해 할까 봐 뭔가 자꾸 화 제를 꺼내고 자꾸 얘기를 합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와 만나기 전에는 언제나 얘깃거리를 준비하 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다방에 앉거나 같이 걷는 시간이 많고 역동적으로 움직일 만한 시설이나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공 간이 마련되지 못했으니까요. 요즘은 그렇게 준비를 안 한다면서요. 여러분의 언어 형태가 짧아지고 간략해지고 생략된 것은 좋지만 여러분의 사고 능력이나 진심 같은 것도 같이 생략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제 딸하고 얘기하면서도 그런 점을 많이 느껴요. 요즘 제 딸이 차를 사 달라고 해서 차를 가져야 되는 이유 를 설명해 보라고 요구했을 때 딸아이는 빨리 사 달라는 말만 하지 왜 차가 필요한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해요. 그래서 우 리 아이만 그런 건지 여러분도 그런 건지 모르지만 요즘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말에 대한 책임감 도 함께 약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어떤 모임에서 자유 주제로 3분 스피치 코너를 제안했었는데, 의외로 3분을 채우는 분들이 많지 않더군요. 여러분들이 보시기에는 이 강단에 나와서 얘기하는 게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훈련이 안 되고 익숙하지 않으면 1분 채우기 도 아주 힘듭니다. 그래서 3분 스피치가 부담스러워서 그 모임에 못 나가겠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갈수록 어려워졌어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습성적으로 이런 데 오면 이 상황을 뭐라고 묘사할까를 생각해요. 몸에 있는 털이 감각의 더듬이처럼 본 것을 입력해 두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외국에는 초등학교 과정, 중·고등학교 과정에 연극을 하는 시간이 있어서 누구든지 학교의 연극 무대에 서 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자연히 대중 앞에 서는 것이라든지 또는 대사 구사력 같은 것을 익히는 시간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우리말 훈련을 할 기회가 많이 주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자기의 의사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 등 이 상대적으로 약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3분 스피치 같은 것을 통해서 과연 주제를 어느 만큼 이어나가고 기승전결은 어떻게 해야 하 는지 훈련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아까도 말했지만 말하는 시간이 자꾸 줄어들고 있잖아요? 여러분들은 데이 트를 해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극장에 간다든지 노래방에 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상대방하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많 지 않아서 말하는 능력이 자꾸 퇴화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정치 하는 분들에 대한 불만이 많은데, 정치를 잘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여러분들과 똑같은 불 만이고 그 외에 그분들의 언어 표현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두환 씨가 별안간 대통령이 되고 나서 언 어 코치를 해주는 사람이 '대통령이신데 말씀을 권위 있게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한마디 한마디 하실 때마다 무게가 실려야 합니다' 하니까 친근감은 무시되고 제왕처럼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말투였어요. 그 다음 노태우 씨한테는 이런 주문을 했대 요. '전두환 씨가 말투 때문에 국민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많이 느끼게 했으니까 친근하게 다가서는 그런 말을 하십시오.' 그 러니까 '노태우 씨가 국민 여러분, 보통 사람 나 그런 거 몰라요.' 너무 친근감을 주다 보니까 권위가 떨어지고 음흉한 사람 처럼 들렸어요. 그러다가 김영삼 씨는 원고 내용도 잘 모르면서 '국민 여러분 떠듬떠듬… ' 그런 식입니다. 여러분들이 앞으 로 대통령의 야망을 키우고 계신 분들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의식적으로 언어 형태를 갈고 닦으셔야 될 겁니다. 그래서 제 얘기는 여러분들이 앞으로 방송계에 나가지 않더라도 언어 훈련을 해두시면 여러분 개인 이미지라든지 발전을 위해서 상당히 유익하다는 겁니다. 저하고 만난 김에 여러분들이 만약 어떤 자리에서 대중을 상대로 말을 한다면 어떻 게 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도 한번 해보세요. 전 초보 때는 마이크만 잡으면 목소리도 멋있게 하고 싶었는데 요즘은 그런 시대 가 아니에요. 그러나 절도는 있어야 되지요. 자연스럽되 절도 있게 하는 연설은 전달력도 있고 설득력도 있고 듣기에도 좋습 니다.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화가 자꾸자꾸 줄어드는 시대가 올수록 오히려 대화를 유능하게 길게 할 수 있는 사 람의 능력이 더 돋보이는 사회가 될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여러분들은 친구나 부모님하고 하는 그런 일상적인 대화보다는 좀더 긴 대화로써 자기의 의사를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는 토론 능력을 의식적으로라도 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 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자기를 설명할 수 있고, 자기를 납득시킬 수 있고, 나아가 납득을 지 나서 감동까지 줄 수 있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능력인 말은 방송인이나 몇몇 정치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미래의 사회를 이끌어갈 바로 여러분이 결코 소홀히 다뤄서는 안 될 보물 이라는 멋진 말로 오늘 여러분과의 만남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