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문화예술의 활용 문제에 대해 얘기 하겠습니다. 저는 30년간 정부에서 일하는 동안 4년을 미국에서, 3년을 아프리카 케냐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래서 문화 행정에 대해 비교적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낙후된 문화 제도나 시스템이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한다고 느낀 것도 해외 근무를 통해서였습니다.

먼저 21세기의 세계적인 추세를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가 신속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를 이용한 산업이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는 점도 이 시대의 특징입니다. 그 다음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것이 문화의 일반화 현상입니다. 문화가 어떤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유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화가 인접 분야와 융합되고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뮤지컬 한 편을 제대로 올리려면 스토리 작가에서부터 가수들, 각종 무대장치 기술자, 마케팅 담당자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또 상품을 예로 들어 보더라도 ‘스타벅스’ 커피는 이태리 커피를 원조로 하지만 커피 제조기법, 매장 인테리어, 매장의 음향 등 여러 가지 기술적, 예술적 요소들이 합쳐져 하나의 브랜드로 완성된 것입니다.

물론 하나의 문화가 형성된다는 것이 그리 손쉬운 것은 아닙니다. 유태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가운데 ‘하바나 길라’라는 곡이 있습니다. 그 뜻은 ‘모여서 즐겁게 놉시다’라고 합니다. 유태 민족은 2천 년 간 세계 각지에 흩어져 핍박과 멸시를 받아온 민족인데 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낙천적으로 비춰지니 특이합니다. 그들의 의식을 조사해 보면 그들만큼 낙관성을 가진 민족이 드물다는 겁니다. 깊은 고통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고 민족적인 단합을 이루었던 과정이 그러한 노래로 표현된 것이겠지요. 2차대전 후 많은 유태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의 예술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예술계를 주름잡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긴 역사를 통해 그 민족이 문화나 예술에 대해 깊은 소양을 기르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문화나 예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겠지요. 개인마다 시각이 다를 것입니다. 문화를 어떤 민족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삶의 형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80년대 초 뉴욕 문화원에서 근무하면서 세계 여러 민족의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거기서 제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문화기관이 큰 갤러리를 확보하여 한국의 이름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술 행정가로서 저는 뉴욕타임스 기자들을 초청해서 저녁을 같이 들면서 신문에 기사를 잘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한 기자가 하는 말이 자신은 그 작품들이 예술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는 크게 반박 했습니다. 당신은 동양이나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진가를 모른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길 자신 또는 미국인들이 보는 예술이라는 것은 뭔가 새롭고 다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뭔가 새롭고 다른 것, 전시된 작품들이 기교적으로는 훌륭하지만 1, 20년 전에 유행했던 기법을 그대로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가령 백남준씨가 비디오 아트의 창설자로 존경을 받고 있지만 어떤 전시는 혹평을 받기도 합니다. 그의 전시 중에 미국의 각 주가 그려진 지도 속에 주마다 모니터를 집어넣은 화면을 설치한 작품이 있었는데 하였는데 그것이 일종의 파노라마에 불과하다고, 과거 10년 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비판받았습니다. 말하자면 똑같은 것을 답습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지요.

그 다음에 얘기하고 싶은 것은 문화와 상상력에 관한 것입니다. 뭔가 새롭고 다르려면 창의성이 있어야 합니다. 상상력이 풍부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창의성 수준이 어느 정도일까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창의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충분히 발휘되는 것은 아닙니다. 창의성을 계속적으로 발전시키느냐 그냥 내버려 두느냐 가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제도 속에서는 창의성을 키우기가 힘들어요. 수업이 끝나도록 학생들은 질문이 거의 없습니다. 유태인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질문을 많이 하라고 가르칩니다. 창의성은 끊임없는 질문과 답변을 통해 계발됩니다.

최근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개봉되었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인데 아마 본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상당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지요? 게임 산업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세계 제일의 왕국을 이룩한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구호가 이것입니다. ‘답답하고 지루한 현실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상상의 나라로 간다.’ 아직까지 우리 애니메이션은 평면적인 작업이 많은데 비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는 입체적일뿐더러 그 스토리 구상에서부터 독특합니다. 그걸 보다가 현실을 잊어버릴 정도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지금 영화 산업이 꽤 부상하고 있는데 상당히 좋은 현상입니다. 저도 90년대 초반에 충무로 영화인들을 많이 만나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많은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 그 당시 5억원, 10억원씩 들여 만들어서 개봉해도 흥행이 되지 않았습니다. 외국영화제에서 가끔씩 상을 탔지만 흥행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진흥공사에서 영화제작자들과 한꺼번에 모여 의논을 했습니다. 충무로에서 돈을 쓸데없이 계속 없앨 필요가 있느냐, 그러지 말고 시나리오가 나오면 미리 소비자 조사를 해서 합격된 것만 만들자고 했습니다. 시장 조사 비용 3천만원은 정부에서 대주는 식으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응하지 않았습니다.

헐리우드에서는 한 영화에 대한 시장 조사를 다섯 번에 걸쳐 합니다. 시나리오를 가지고 1차 조사를 하고 그 다음 캐스팅에 대한 조사를 합니다. 각 단계마다 반응이 안 좋으면 그대로 탈락입니다. 그 다음 영상을 구성해서 한 번 하고 영화가 다 만들어져서 개봉되기 전에 또 조사를 합니다. 실제로 헐리우드 영화는 개봉되기 전에 그 영화에 대한 반응이 어느 정도 예상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전 세계적으로 마케팅을 벌입니다.

우리 문화산업이 뒤지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에 유교 문화가 우리나라를 500년이나 이끄는 동안 우리 문화가 점잖은 사대부 문화 중심으로 이어져 와 우리의 의식이 굳어지게 되었고 어떤 즐거움을 주는 문화가 그만큼 발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음악, 미술, 문학을 즐기는 편이지만 엔터테인먼트로는 계발 되지 못한 겁니다. 21세기는 문화의 보편화 시대입니다. 그리고 감성적인 것이 중시되는 시대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녹음기를 하나 사더라도 삼성이나 소니나 성능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결국 디자인으로 선택하는 거지요. 감수성이 상품을 선택하는 데 주요 변수로 등장합니다. 작년이었던가요? 산업자원부 장관을 포함한 몇몇 관계자들에게 과연 10년 후에 한국 상품 가운데 어떤 것이 세계를 석권할 것인지 막연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자동차도 많이 팔고 선박도 수출하지만 과연 10년 후에도 그럴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문화 컨텐츠 분야에 주목해야 합니다. 현재 세계 각국은 문화를 산업에 활용하는 추세가 엄청나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문화가 전체적인 산업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패션, 향수, 꼬냑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문화적 이미지가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디자인 천국인 이태리는 말하자면 영세기업에서부터 디자인이 체계화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스페인에 관광객이 어느 정도 갈 것 같습니까?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이 연간 6, 7백만 명입니다. 스페인은 그 열배인 8천만명입니다. 스페인 각지를 다녀보면 관광객들이 넘쳐납니다. 스페인의 인구가 4천 5백만 명인데 그 인구의 1.5 배가 관광객으로 온다는 겁니다. 이 스페인에는 과거의 문화유산도 많지만 현대의 문화적인 볼거리도 대단히 많습니다. 그 유명한 피카소, 미로, 가우디가 다 스페인 사람 아닙니까. 또 스페인은 이슬람 문화와 유럽 문화가 섞여 있어 문화 관광을 하기에 여러 가지 좋은 여건을 갖고 있습니다. 그 문화를 산업화시킨 것입니다. 지금 영국을 보면 뮤지컬로 벌어들이는 돈이 엄청납니다. 영국산업도 한때는 다들 비관적으로 봤습니다. 특히 전국적인 노조파업으로 나라가 조용할 사이가 없었습니다. 그때 대처수상이 제조업의 종말을 선언한 겁니다. 현 수상인 토니 블레어는 영국을 21세기 최고의 문화산업 국가로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특수한 기술을 가지는 것이 아주 유리했으나 현대에는 예술적 감각이 중요합니다. 다들 예술가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예술적인 감각을 가지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것을 자기 직업에 활용한다면 굉장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문화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중에 일류대학을 나와서 일류직장에 잘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벽지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참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다른 면도 있습니다. 한때 우리나라에 노래방 문화가 유행했을 때 많을 경우엔 하루 저녁에 50만명의 사람들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그 정도면 이태리보다도 앞서는 겁니다. 이태리 북부, 중부 사람들을 노래 좋아하는 배짱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부분에선 앞섰던 거죠.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제가 해외 공관에 근무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 외교관들이 우수한 자질을 갖고 있지만 예술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는 겁니다. 한국 외교관들은 한국 영화나 미술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요. 반면에 캐나다나 노르웨이 대사들이 자기 나라의 예술 작품을 설명하는 걸 보면 아주 전문가에 가깝습니다. 어떤 피아니스트를 소개할 때 그 테잎을 들려주고 거기에 어떤 장점이 있고 그게 왜 우수한지 전문적으로 말해줍니다. 예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 이렇게 전문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취미생활 삼아서 어느 분야라도 좋으니까 어느 정도 문화적인 깊이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술 전시회나 디자인 전시회에 자주 가 보는 사람들은 예술적인 감각이나 미적 기준이 확실히 달라집니다. 삼성의 이병철 전 회장이 호암미술관과 호암아트홀을 만든 것이 결과적으로 삼성이 오늘날과 같이 섬세한 소비제품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현대그룹은 큰 제품들만 잘 만들지만 삼성은 섬세하고 미적이고 정교한 제품도 잘 만들지요. 일반 직원들이 미술관을 자주 드나드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자동차 회사라면 말단 근로자에서부터 사장까지 디자인에 대한 깊은 감각을 갖고 있어야 고급 디자인의 차가 나오는 겁니다. 단순히 디자인실의 디자이너 몇 명이 애 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문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외국의 관공서를 보면 아름다운 건축이 많지요. 우리나라 정부청사나 공공건물을 보면 성냥상자 같습니다. 개성이 없어요. 건축하는 사람들도 공과대학을 나와 설계하고 시공하는 데만 전념해서 예술적인 소양이 떨어집니다. 도시계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 도시를 설계하고 꾸며 나갈 때 쾌적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됩니다. 나폴리나 베니스의 도시 정비를 보면 예술작품에 가깝습니다. 공무원에서부터 설계하고 건축하는 사람들까지 미적인 감각이 탁월한 겁니다.

일본은 모방을 잘 하는 반면 창의성이 떨어진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21세기에는 문화 전략의 일환으로 한 사람이 한 가지 예술 분야를 배우고 익힐 것을 권장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한 가지 예술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그 감각을 익히면 개인 생활은 물론 직장 생활에도 활용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도 예술문화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감각을 잘 익혀 자기 분야에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