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현정사에서 지내고 있는데, 그 절에는 외국 스님이 다섯 분 계십니다. 미국 스님 두 분(한 분은 흑인이에요), 헝가리·유고·이스라엘 스님 한 분씩 모두 다섯 분입니다. 이스라엘 스님은 굉장한 가문 출신으로 체구가 작고 아주 재미있는 분이에요. 얼마 전에 3주 동안 삼천 배를 드리기도 했는데 공부도 무척 열심히 하는 스님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에서 수도하는 스님들이 갈수록 늘고 있어요. 사실 한국 불교는 천 육백 년 동안 오직 한국 사람들만을 위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많은 서양인들이 한국에서 가르침을 받기 원합니다. 바꿔 말하면 한국 불교가 이제 세계화되고 있다는 말이지요.

오늘은 참다운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 6주 전에 미국에 다녀왔습니다. 그 전에 길상사에 계신 법정 스님이 제게 뉴욕의 한국 교민들이 경제 사정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9월 중순에 큰 법회를 열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법회 일 주일 전에 준비를 하기 위해 먼저 떠났습니다. 그 때 아주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어요. 비행기가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하기 얼마 전 기내에서 승무원의 급박한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국가 안보 문제로 비행장이 폐쇄됐다는 겁니다. 저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공항에 착륙해서 영문도 모르고 일곱 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비행기를 내려서 이틀 동안 승객 600명이 공항 호텔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 때가 바로 9월 11일 뉴욕 테러 참사 직후였어요.

미국에서는 물론 맞대응하여 가난한 아프카니스탄을 곧바로 공격하기 시작했지요. 그 시점에 세계무역센터를 무너뜨린 비행기 안에서 녹음된 목소리가 공개됐어요. 공개된 테러범의 마지막 말이 "알라신 최고다!"였습니다. 얼마 전 부시 대통령도 국회에서 종교적인 발언을 했었지요? 하느님의 힘 덕분에 전쟁에서 미국이 이긴다고 단언했습니다. 지금도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들 적대적인 두 나라는 각자의 신이 각자의 나라를 돕는다고 굳게 믿고 있어요. 이것은 완전히 종교 전쟁입니다. 아프카니스탄에서뿐 아니라 수단, 필리핀, 파키스탄에서 회교도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가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학살했어요. 러시아와 체첸을 보더라도 완전히 종교 전쟁이에요. 인도네시아에서도 회교도와 기독교도가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돈 때문도 아니고 종교 때문에 빈번히 싸우고 있어요. 바로 이 때 우리는 종교란 무엇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 중에 약 95%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절대자가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을 만들어 지배한다고, 그 절대자를 믿으면 내가 절대자와 하나가 될 수 있고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그 절대자를 믿지 않으면 나쁜 곳으로 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무서운 것은 나와는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세계무역센터를 무너뜨린 자살 테러범은 많은 사람을 죽이더라도 그것은 신의 뜻이기 때문에 자신이 죽어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 우월주의입니다. 이슬람교뿐만 아니라 기독교, 유대교에도 그런 성향이 있어요.

조금 전에 말씀드린 이스라엘 스님도 자기 나라에서 군복무를 했던 분입니다. 그 나라는 군복무 기간이 3년이에요. 여성들도 똑같이 3년을 복무하죠. 굉장히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선 군인이 아니더라도 항상 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답니다. 식당에 가든 극장에 가든 데이트를 하든 총을 지닌대요. 예루살렘에선 이런 문구가 많이 붙어 있대요. "총 조심." 이런 문구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 조심"처럼 여기 저기 붙어 있대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총을 지니고 다니는 탓에 사고가 빈번하기 때문이겠죠. 원래 예루살렘은 신성한 땅, 홀리 랜드(holy land)예요. 그러나 지금 상황을 보면 그 땅은 이 세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땅이지요. 왜 그렇게 싸워대겠어요? 종교 때문이지요. 한 땅에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세 하느님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테러 사건을 본 많은 사람들이 테러범들을 맹목적인, 더 나쁘게 말해서 정신 나간 놈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테러범들과 비슷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을 우리는 다른 여러 곳에서도 볼 수 있어요. 정치계나 경제계, 학계에도 맹목적인 믿음과 추종을 요구하는 집단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비근한 예로 우리도 국회의사당에서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당들이 몸싸움을 벌이잖아요. 종교계는 어떤가요? 많은 종교들이 진정한 자아를 찾게 해주기보다 오직 사람들의 감정에만 호소하고 있어요. 종교가 감정적인 조작에 관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죽이고도 신의 뜻이라고 외칩니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 우월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에요.

저도 어렸을 때 종교적인 문제에 휩싸인 적이 있었어요. 매일 매일 예배하면서 저는 절대자를 사랑하고 절대자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안 보이는 절대자를 사랑하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나를 모르는데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의문이 생겼어요. 지금도 어느 종교 지도자들이나 무조건 신을 믿으라고만 말합니다. 그러나 열 살의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종교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사람이 왜 태어났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또, 왜 착한 사람이 일찍 죽고 나쁜 사람이 오래 사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습니다.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했던 비행기 안에는 아이들이 타고 있었죠? 그 아이들이 그 동안 얼마나 나쁜 일을 했겠어요? 그 아이들이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이 세상에 우연히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어요. 모든 게 원인이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부모님이나 사회가 갖고 있지 않아요. 그 답을 가르쳐 주는 것이 올바른 철학과 종교입니다.

소크라테스를 생각해 볼까요? 사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복잡하지 않아요. 그는 오직 물었어요. 길거리에서 시장에서 제자들에게 묻기만 했어요. 그리고 말했습니다. 너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사실 그 말밖에 하지 않았어요. 그는 자신을 산파로 보았지요. 여러분이 찾을 진리를 다른 누군가가 대신 찾아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찾는 것이지요. 철학이나 종교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산파에 지나지 않아요. 어느 날 한 제자가 소크라테스에게 이런 질문을 했어요. 항상 너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스승님은 자신을 아시냐고. 소크라테스는 굉장히 중요한 대답을 했지요. "모른다." 그러나 그 모르는 마음을 잘 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위대한 철학과 종교를 태어나게 하는 중요한 말입니다. 그 말로부터 소크라테스와 부처와 예수의 가르침이 시작되지요. 무엇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묻지 않으면 안 돼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왕국이 '나' 안에 있다고 했죠? 그 '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참나' 또는 '진아(眞我)'일 것입니다. 거기서 소크라테스 사상이 시작됩니다. 거기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이 시작됩니다. 참된 종교는 맹목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않습니다. 단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산파의 역할만 하는 것이지요. 목마른 자가 찾아오면 물을 주고 배고픈 자가 오면 밥을 주지만 언제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자기 안에서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종교란 지도와 같아요.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길은 다양합니다. 고속도로로 차를 타고 갈 수도 있고 비행기로 날아갈 수도 있고 강릉까지 배를 타고 갔다가 다시 자동차로 서울까지 국도를 달릴 수도 있어요. 누구나 처음 찾아갈 때는 지도를 참고하지만 지도에 너무 집착해선 안 돼요. 또 자기가 가는 길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도 옳지 못하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배타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각자의 길이 중요하다기보다 그 길을 어떤 자세로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도 지금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요? 여러분이 길을 가는 동안, 같은 길 위에서 고통받는 생명들이 여러분과 같이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기 바랍니다. 제 서툰 강연을 잘 참아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