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통일과 문학

반갑습니다. 저는 얼마 전 북한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본시 1950년 12월, 제 나이 19살 때 단신으로 월남해서 부산에서 살았었지요. 그러다 55년에 문단에 데뷔를 했는데, 그 후로는 계속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70년대에는 74년에 소위 문인사건에 연루되어서 서대문형무소에 1년 가까이 있었고, 또 80년에는 소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엮여 군사재판을 받고 이심에서 풀려 나온 경험도 있습니다. 저는 북쪽에서 5년 동안 살아서 북쪽체제의 여러 면을 피부로 압니다. 그래서 제가 북한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거의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 동안에 쓴 글에도 북쪽을 비판하는 글이 꽤 있었거든요. 물론 북쪽 권력층을 비판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동아일보에서 초청했을 때 과연 내가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 있다, 북에서 초청장이 왔습니다. 북경에서 한 이틀 동안 묵는 동안에도 북한에 제가 들어간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비행기를 탔는데, 제대로 풀려나올 수 있을까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하더군요. 그동안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지도자한테 지은 죄가 얼마나 많은데 싶어지면서요. 순안비행장에 도착해 보니 안내원동무들이 미리 나와 있더군요. 그곳의 호칭을 그대로 쓰겠습니다. 안내원 동무들과 인사를 나누고 평양 거리를 처음 들어가는데 무척 삭막하더라구요. 아파트뿐만 아니라 모든 건물이 시멘트색 그대로예요. 마치 회색도시처럼 황막하고, 정체된 느낌, 그게 평양의 첫인상이었습니다. 강연 제목이 오늘의 남북관계에서 문학 내지 문학인이 기여할 몫이 무엇이냐? 60년댄가 70년대 초에 돌아가신 선우휘씨가 소위 문학의 효용을 이야기하면서 문학의 효용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북한 방문을 통해서 제가 확인한 것은 문학의 효용이 분명히 있다는 거예요. 문학인이 해야 할 몫이 아주 크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처음에도 얘기했지만, 저는 북한체제에서 5년 동안 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본원적으로 북한체제에 혐오감을 갖고 있습니다. 공산체제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산체제에 대한 혐오감이 있어요. 소련이나 동구권의 학자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보면, 그들이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한번 살아보라고요. 그들은 경험을 통해서 공산체제를 알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학문이나 이론적으로만 이야기하니까, 끝머리에는 화를 내면서 당신도 그 체제에 한번 살아보라고 벼락 소리를 지른다는 거예요. 저도 뭐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살아보지 않고는 모르니까 아무리 옳고 지당한 말이라도, 쓸데없는 소리일 뿐이었죠. 그런데 이번에 9박 10일간 북한을 다녀온 후로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생각이 많이 완화됐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만나서 9박 10일쯤 지내다 보니, 그만큼 정이 쌓이더라구요. 쓰는 말뿐만 아니라, 밥이나 분위기가 모두 같아요. 그 뿐인가요, 산천에다 공기 알갱이까지 너무나 익숙한 게, 외국에도 많이 다녀봤지만은 전혀 다르더라구요. 같은 핏줄을 가진 민족으로 태어나 대대로 삼천리 강산에서 살아왔는데, 지난 50년간 이렇게 갈라져 있었다는 게 참으로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사로운 관계에서도 그렇잖아요. 개인간의 무슨 일로 다투게 되면 평생 다시는 안볼 것처럼 크게 다툽니다. 그게 친한 사람들끼리라면 더욱 심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서로 언제 싸웠냐 싶게 예전처럼 다시 지내게 됩니다. 남북관계도 본원적으로는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자면 끝이 없습니다만. 평양으로 들어간 첫날 저녁식사가 늦어져 오후 여덟 시경에서야 호텔 지하식당으로 내려갔습니다. 우리 일행과 상대편 안내원들이 마주 앉으면 경직돼 보일까봐 그랬는지 서로 섞여 앉았어요. 근데 제가 나이가 가장 많으니까 가운데 앉히더라구요. 그렇게 식사를 하는데 50년 만에 남쪽사람과 북쪽사람이 만나 밥을 먹으니 자연스럽게 섞이지가 안잖아요. 자칫 말이라도 실수할까봐 굳어서 서로 이야기를 못하니, 안내원 책임자는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땀을 뻘뻘 흘리더군요. 그래서 제가 나이도 있고 해서 나섰습니다. 평양 방문을 하게 된 경위부터 시작해서 19세에 월남해서 거의 50년 만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마주앉아 식사를 할 수 있어서 무척 감사하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표시로 시를 하나 읊었습니다. 김소월의 '산'이라는 시였는데, 소월의 고향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정주로 평양에서도 가깝습니다. 저는 해방 직후에 소월의 시를 접했는데 그때부터 이 시를 무척 좋아해서 항상 외우고 다녔습니다. 여하튼 그때는 들쭉술도 한잔 먹은 터라서 더 잘 읊었는데, 여러분들도 한번 들어보세요.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산골 영너머 가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리 돌아서서 육십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15년 정분은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어때요, 좋아요? 시를 읊고나니 조용해지는 게 아까랑은 뭔가 달라요. 근데 옆에 앉았던 안내원이 저를 못마땅한 듯이 쳐다봐요.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그 따위를 읊느냐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시를 읊고 난 뒤에 설명을 했어요. 이 시가 왜 좋은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청년이었던 소월이 삼수갑산에 들어가 무언가 지겨워했던 느낌이 와 닿는다고요. 사연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시를 대하면 뭔가 슬픔이 느껴지면서, 좋아서, 40년 동안이나 애송하고 있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시를 통해서 김소월이라는 사람을 알 수 있을 듯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북 사람들이 듣기에는 조금 거북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했어요. 일제치하 36년 동안 신채호나 안중근 같이 온몸을 던져서 나라에 순국한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비록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분들은 참 위대한 사람들이에요. 그렇다면 김소월은 어떠했을까? 그의 시를 보면 청승맞게 앉아서 연필로 이런 시나 읊었을 것같이 약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36년을 자기 형편만큼 자기 생긴 만큼 시심으로서 감기 앓듯이 앓았던 사람입니다. 그렇게 앓으면서 시를 통해 우리의 슬픈 산천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제치하에서 눈치를 보면서 그 아픈 세월을 보냈습니다. 김소월도 그러한 백성의 하나였구요. 목숨을 바친 위대한 열사들이 대단하다고 해서, 그 세월을 버텨온 보통 사람들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요. 소월이 일제치하에서 이런 시를 남겼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가 그 시를 읊으면서 일제치하 속에서 아파했던 산천의 울음까지 느낄 수 있다고..... 그랬더니 옆에 있던 안내원 동무가 잠시 절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일어서 나가버렸습니다. 솔직히 술도 한잔 먹었겠다 기죽으면 안될 것 같아서 저도 안내원 책임자에게 "저 동무, 이런 시시한 시 읊으니까 기분 나빠 나가는군요?" 그랬더니, "아닙니다. 저 동무는 옆방에서 식사하는 젊은 사진기사들에게 술이라도 한잔 따라주려고 나갔습니다" 하더라구요. 아닌게 아니라 조금 있다 들어와서 옆에 앉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저를 보지 않고 안내원 책임자를 보면서 "그런 시도 거 듣고 보니까 좋네" 그래요.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어요. 그렇게 서로 웃으면서 비로소 허심탄회한 식사 자리가 됐어요. 이러한 것은 시가 아니면 문학이 아니면 안되는 거예요. 어렵게 이론적으로 공산주의니 자유주의니 해서는 될 수 없습니다. 산천을 노래한 시를 읊으니까 서로에게 정서적으로 깊이 가 닿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겁니다. 그때 전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거구나! 남북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본원적인 민족 정서를 회복하는 것이고, 그것은 역시 문학인의 몫이라고요. 지난 50년 동안 남북은 서로 자기들 체제의 우월성만을 따지며 공방을 벌여왔습니다. 정치적인 통일에다가 주안을 두었기 때문에 밤낮 싸울 일밖에 없었어요. 물론 체제싸움을 따지면 이제는 북쪽이 진 거죠.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도 변하고 있으니 체제싸움은 판가름이 난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렇게 체제싸움을 해서는 통일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민족정서를 회복하는 겁니다. 체제라는 것을 젖혀놓고 개인끼리, 사사로운 사람들끼리 만나서 서로간에 정을 쌓고 친해지면 그것이 바로 통일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 살림 통일론'을 말하고 싶어요. 한 살림 통일이라는 것은 정치쪽은 배제하고 서로 형편 형편만큼 한 살림을 함께 이루자는 겁니다. 여러분도 신문에서 보셨을 텐데 지금 황해에서는 남북이 고기잡이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선박회사에서 북한의 어부들을 고용하여 고기를 잡아서 서로 나누는 거예요. 또 케도에서도 같이 일하면서 배구도 하잖아요. 물론 더러는 말썽도 있었지만 그것은 각자의 환경이 달라서였고 지금은 서로를 인정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완전한 통일은 앞으로 20년이 걸릴지 30년이 걸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통일의 시작은 1998년이었다고 후세 역사가들은 말하게 될 겁니다. 통계적으로도 1987년부터 10년 동안 북한을 방문한 사람보다 1998년 1년 동안에 북한을 방문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저도 들어갔잖아요. 이렇게 통일을 위한 물꼬는 이미 열렸습니다. 여기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치적인 통일, 체제의 통일에 초점을 맞추지 말자는 겁니다. 그저 우리의 재래적인 토속어, 살림살이처럼 개개인의 형편 형편만큼 한 살림을 차리는 쪽으로 가면 통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형편 형편만큼으로 한 살림이 이루어져서, 그 한 살림들이 많아진다고 생각해 봐요. 한 살림이 많아질수록 사람들끼리 한솥밥을 먹을 기회가 많아지고 그러면 통일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안그렇습니까. 이제 우리의 생각도 이쪽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어쩌면 이건 꿈같은 이야기로 다분히 감상적일 수도 있어요. 제가 문학을 하다보니 제멋대로 정서적으로 말을 한다고 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그렇지만 이 시점에서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말, 무거운 말이 아니라 서로의 형편만큼 한 살림을 차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러면 서로 접근하기도 쉽고 피부에도 직접 와 닿아요. 처음에 제가 시를 읊었을 때 못마땅한 듯이 쳐다봤던 친구와 9박 10일 동안 같이 지내면서 무척 친해졌습니다. 환갑이 다 된 그 친구가 저를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꼼꼼하게 챙겨주더군요. 백두산에 가서 산천어 회를 먹는데 맛있는 부분을 저를 먹으라고 권해요. 저는 염치 가리지 않고 다 먹었습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더라구요. 솔직히 산천어 회는 금지되어 있는 건데, 우리를 대접하기 위해 특별히 잡은 겁니다. 그 친구가 참 고맙더라구요. 저는 몇 년 전 연변을 통해서 누이동생이 살아 있는 것을 확인했어요. 그래서 북한에 들어갈 때 누이동생 손자들에게 줄 초콜릿과 돈, 그리고 제 글에 대해서 쓴 논문 몇 편을 가져갔습니다. 논문을 보면 제가 40년 동안 이 남쪽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금방 알 수 있어요. 그걸 그 친구에게 주면서 한번 읽어보고, 괜찮다면 누이동생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서울로 돌아온 후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누이동생과 매제의 편지를 보내줬어요. 뿐만 아니라 누이동생 부부를 평양으로 초청해 대접도 해주었고요. 그리고 제게 들쭉술 한 병과 그때 찍은 사진 그리고 노랫말을 하나 보냈습니다. 북한에서 유행하는 노래인지, 그 친구가 직접 쓴 건지는 모르겠는데 제목이 '심장에 남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길엔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해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 속에 없는 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못 잊어.' 제가 그렇게 심장 속에 남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걸 보니까 가슴속이 찡하더라구요. 고마워서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제가 74년에 국가보안법에 얽혀 1년 동안 형무소에서 고생을 한 게 꼭 14년 전 일이에요. 세월의 변화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에 북한에서 이런 걸 보냈으면 빨갱이라고 했을 텐데, 지금은 세월이 달라졌어요. 저는 그 편지를 이상문학상 수상식에서 축사를 대신하여 읽었습니다. 세월이 이만큼 달라지지 않았냐면서요. 여기에 무슨 북한 선전이 있고 공산주의 선전이 있습니까? 물론 저를 포섭하려는 공작일 수도 있겠지만, 제 나이가 이미 70이에요. 산전수전을 다 겪었고, 또 북한 방문 동안의 제 행적을 보면 알잖아요. 저는 은밀한 게 싫어서 기탄 없이 9박 10일을 보냈습니다. 정말 주책없을 정도로 웃고 노래하고 편하게 지냈어요. 그때그때 경우만큼 살면 되지 골치 아프게 싫은 소리를 왜 해요. 하지만 돌아와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김일성 75회 생일을 기념하여 만든 주체사상탑이라는 곳을 갔는데, 규모도 엄청나고 정말 잘 만들었어요. 스위스에서 주는 과학기술상도 탔다고 자랑하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온 나라의 기운을 이런 구조물 만드는 데 쏟으면 효율면에서 문제가 없느냐고 했더니 아무 말도 안해요. 서울로 돌아와 신동아에 썼습니다. 거긴 언론도 없느냐, 최고인민회의의 이의 제기가 한마디도 없느냐, 이런 사회가 어디 있느냐고 말이죠. 무슨 반론이라도 나와야 고쳐갈텐데, 한심하잖아요. 또 북한에서는 현장에 사는 사람들 모습을 볼 수가 없어요. 그런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모두 차단해 버립니다. 생활을 하는 사람을 볼 일이 없다보니 결국은 저승으로 간 사람만 만나고 왔습니다. 김일성 동상, 김일성 주체사상탑, 김일성 시신을 안치한 궁전 등 말이죠. 물론 그 이유는 알겠지만, 너무하잖아요. 그래서 이것도 신동아에다 썼습니다. 신동아에 쓰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할게요. 백두산 속에 있는 벼개봉호텔에서 묵었는데, 첫날 저녁에 이상한 꿈을 하나 꿨습니다. 꿈 이야기 전에 제가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기억을 먼저 얘기할게요. 북한에 대한 제 기억은 세 가지예요. 먼저 제가 6살 때였는데 그때 처음 김일성이란 이름을 들었습니다. 동네 아이들과 모여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면서 구름이 몰려와 천둥 번개가 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한두 살 많은 아이들에게서 저 뒷산에 레일조각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게 지하로 들어가는 문이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김일성 장군이 이끄는 부하들이 무지 많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때 처음 기밀셍이란 이름을 들었는데 어린 저로서는 무척 무서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다음에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인데, 원산 거리에 있었던 원산관이란 곳으로 영화구경을 갔습니다. 제목이 '망루의 결사대'였는데, 일본군이 백두산 토벌군을 잡는 내용이었어요. 거기에 어떤 장면이 나왔냐면 우리 농촌사람들이 밤에 은밀하게 빨치산하고 내통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관람객들은 비적이 죽으면 모두 박수를 쳤는데 저는 박수를 칠 수가 없더라구요. 어려서부터 문학적인 감각이 있었던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박수를 치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 마지막 세 번째는 얼마 전에 죽은 방모라는 제 동기와 관련된 겁니다. 그 친구는 북한학을 전공했는데, 그 친구가 왜정 때의 검찰문서를 보여준 적이 있어요. 보천보사건 재판기록이었는데 그땐 복사기가 없던 시절이어서 원본을 봤어요. 그 재판의 제1 피고가 김일성, 별명 성주라고 한문으로 쓰여 있었습니다. 두 번째 피고는 박금철이라고 67년에 이북에서 숙청 당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맨 뒤에 이호철이란 이름이 있었어요. 저하고는 한자가 달랐는데 이북에서는 사법부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더군요. 그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백두산 들어가서 첫날밤에 꿈을 꾸는데, 어릴 때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 김일성이 제 앞으로 걸어 나와요. 상체는 보이지 않고, 하체만 분명하게 보여요. 키가 좀 훤칠하게 큰 편인데, 제게 악수를 하자고 오른 손을 내미는 겁니다. 꿈속에서 죽은 사람과 악수를 하면 좋지 않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비몽사몽간에 어쩌나 어쩌나, 하다가 잠에서 깼습니다. 꿈속의 김일성은 이제까지 무서웠던 이미지가 아니었어요. 너무 이상해서, 백두산을 구경하면서도 무슨 꿈일까 궁금해했습니다. 저는 그 꿈을 김일성의 메시지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서는 아무도 못할 말을 저한테 대신 해달라는 말이 아니겠느냐 이거죠. 김일성 기념궁전에 가면 하루에 만 명씩 참배객이 찾아옵니다. 물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곳이지만 하루에 만 명이 와서 절을 하니 그이는 도저히 편히 잠들 수가 없어요. 저승에 가면 저승의 논리를 따라야 하는데, 이렇게 누워 있으니까 편하지가 않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전부 경직돼 있습디다. 참배객들 모두가 굳은 얼굴들이에요. 만경대 생가에도 들렀었는데, 김일성이 45년, 북한의 인민위원장이 됐을 때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여전히 농사꾼으로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물레를 돌리고 할아버지는 꼴을 지고 말이죠. 만약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가 지금의 이 기념궁전에 온다면 그이들도 이 삼엄한 분위기에 겁이 나겠죠.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을까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울음이 터지려고 해요. 한 바퀴 돌고 나오는데, 뒤에서 김일성이, '이제 나로 하여금 저승에서 정말 편하게 자게 해다오. 그리고 내 품속의 이천만 북한인민들을 풀어줘라. 이는 누구도 못하고 오직 아들만이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네가 좀 해다오. 남쪽에서 들어온 네가 해다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신동아에 쓴 글 끝에다가 '지성과 정성을 담아 정말로 진정으로 얘기한다. 새 지도자는 남북 백성들의 화해 쪽으로 방향을 돌려라. 물론 하루 이틀에 될 일은 아니겠지만 그런 쪽으로 틀을 잡아가게끔 노력해야 된다'고 아주 공손하게 썼습니다. 제가 아까 죽은 사람들만 만나고 왔다고 그랬죠. 우리도 동작동 국립묘지에 가면 죽은 분들을 볼 수 있어요. 전라도나 경상도에서 할머니들이 오셔서 6.25때 죽은 아들의 묘비를 쓰다듬으면서 김밥을 먹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렇게 동작동 국립묘지는 평상시 삶의 연장으로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그런 게 상상이 안됩니다. 저승 사는 사람들이 전체를 꽉 누르고 있어서, 사람들은 그들에게 치어 가지고 생업이 없습니다. 오직 위대한 수령님과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할까 겁내고 있어요. 하나만 더 얘기하면 옥류관이라는 냉면집을 갔는데, 쟁반이라는 것은, 하나 시켜서 여럿이 먹잖아요. 그런데 쟁반이 한 사람씩 나와요. 냉면 본고장에서 왜 그럴까 물으니 안내원 책임자가 자랑삼아 이야기를 해요. 여기도 처음에는 쟁반이라는 걸 한 그릇에 같이 먹었는데 해방직후에 김일성이 와서 냉면을 먹었대요. 그런데 옆방에서 남자들 몇 명이 기생을 데리고 와 쟁반을 먹으면서 냉면발을 가지고 서로 입으로 왔다갔다, 들랑날랑 장난을 치더랍니다. 그 모양을 보고 김일성이 앞으로는 쟁반도 각자 하나씩 먹게 하라고 명령을 해서 그렇게 변했다고요.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매사를 그런 식으로 정하면 자기 기분이나 결정에서는 옳을지 몰라도, 실제 사람들의 삶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일의(一義)성, 오직 하나, 옳은 것만 신주단지 모시듯 하니까 끝내는 저 지경이 된 거예요. 세상살이, 사람살이라는 게 다 형편만큼, 각자 생긴 만큼 자기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므로 그렇게 한 가지만 옳다고 할 수 없는 거예요. 북한에 가보면 정말 가난하게 삽니다. 우리가 아무리 IMF체제라고 떠들어도 굶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가니 최고 호텔에 있는 타월이란 게 우리 같으면 가난한 집에서도 걸레로나 쓸까 말까 그런 것입니다. 외국에 많이 다녔지만 그렇게 낡은 타월은 본 적이 없습니다. 호텔이란 곳이 이러니, 일반 사람들의 삶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남쪽은 너무 방탕해서 문젠데, 이곳은 참고 줄이다 못해서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경지까지 간 겁니다.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분단된 지 50년 만에 남북이 아주 다른 세상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체제가 달라서 서로 다르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이번에 보니까 동질성 회복이니 괜히 어려운 소리를 할 필요 없습니다. 서로 이틀만 같이 지내면 동질성은 회복되고도 남아요. 서로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게 토론할 것 없어요. 남을 공격하면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지 말고 진정으로 서로 아파하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습니다. 북쪽사람들의 생활을 보면 너무 가난해서 마음이 아픕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못사나 하는 생각 때문예요. 그런데 북쪽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전부 눈에 독을 품고 영악스럽게 살아간다고 할지도 몰라요. 맨 사기꾼 천지라고 볼 수도 있어요. 이런 남북간의 문제를 푸는 것은 처음에도 얘기했듯이 문학과 문학인의 몫입니다. 진부한 얘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무슨 통일이야기를 하면서 쓸데없이 소월의 시를 읊느냐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스스로를 챙기다보면 결국 우리가 이르게 되는 곳은 같은 산천에 살아온 같은 핏줄인 민족의 아픔입니다. 아픈 만큼 상대의 형편을 이해하게 되고 서로를 깊이 안아 받아들이는 겁니다. 상대방에 대한 그런 마음자세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체제 경쟁은 이제 끝났습니다. 이제는 한 민족으로 돌아와서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상처를 쓰다듬어 주어야 할 때입니다. 사사로운 관계가 많이 이뤄질 때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어요. 우리의 통일은 독일이나 베트남, 예멘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겁니다. 흔히 통일비용이라는 말 있어요. 그 말은 독일이 통일을 이룰 때 서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생긴 겁니다. 우리의 통일은 그렇게 이루어지면 안됩니다. 한 살림을 살다가 저쪽에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이쪽에서 형편만큼 도와주면 됩니다. 저쪽은 지금 돈이 급합니다. 물론 돈이 들어가면 군사비용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지만, 어쨌든 우리 돈이 들어가서 북쪽에게 요긴하게 쓰이면 그것도 한 살림입니다. 돈이 들어가면 그만큼 벌써 한 살림이 시작되는 거예요. 통일은 그러한 한 살림들이 늘어갈수록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양쪽 정부가 경제부터 한 살림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면서 서로 도와주면 언젠가는 그게 통일 아니겠습니까. 물론 완전한 통일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98년부터 통일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통일을 위한 살림을 시작한 겁니다. 지금 시점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제 의견은 이번에 출간될 「한 살림 통일론」이란 책을 보시면 더 자세하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책은 제가 기독교 방송에서 1년여 동안 해온 통일칼럼을 정리해서 엮은 것인데, 여러분들이 한번 꼭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지금껏 4, 50년 동안 소설을 써왔지만 제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여러분들이 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