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다산과 민중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식을 얻거나 무언가에 대해 알려는 것을 등한히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떻게 잘 먹고 잘 사느냐에 관심이 있을지는 몰라도 무언가를 배워서 깨치는 부분에 대해서는 소홀했습니다. 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을 연구하는 제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의 다른 학자들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를 하면서 우리 선조들에 대해서는 연구와 관심이 적은 것은 정말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런 모습들이 지금의 경제위기와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해 중·고등학교에서 실학자 또는《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등의 저자라고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실학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목민심서》의 내용은 무엇이며《경세유표》는 무슨 책인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잠깐 여담입니다만 제가 몇년 전 헝가리에 갔을 때 대사관에서 주저없이 추천해주던 관광지가 헝가리 음악가인 리스트의 생가였습니다. 조그만 방 하나에 피아노와 오르간이 전부인 리스트의 생가에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붐비는 모습을 보고 서울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양수리 다산의 생가가 떠오르며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껍데기만 배워왔을 뿐 진정한 선조들의 정신이나 삶의 방식은 배워오지 못했던 겁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1762년에 태어나서 1836년, 75세로 세상을 떠난 분입니다. 높은 벼슬을 지내며 학문에 몰두하시다가 마흔 살 때인 1801년 신유사화를 만나서 57세가 되는 18년 동안 전라남도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 고향인 남양주에 돌아와서 또 18년을 살다가 75세에 일생을 마쳤는데, 그동안 오백여 권이 넘는 방대한 저서를 남기셨습니다. 다산은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18년 동안 중죄인으로 귀양살이를 했고 또 돌아와서는 끝내 복권이 안돼 사회활동을 못하고 은거생활을 하다 일생을 마쳤는데 오히려 그 기간동안 많은 저술활동을 통해 남긴 말씀들이 현재의 우리들에게 많은 충고와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산이 주장했던 정신은 무엇이고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다산의 시 중에〈애절양〉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직역하자면 양(陽)을 끊어버림을 슬퍼한다는 말입니다. 양은 하늘, 남자를 의미하고 예전에는 남자의 생식기를 양물(陽物)이라고 했습니다. 이 시는 남자의 생식기를 끊어버림을 슬퍼하는 노래입니다. 남자 생식기라고 하니까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내용은 그게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처절한 민중의 삶에 흐르는 눈물입니다. 당시의 세금은 가족 수에 따라 부과하는 인두세였습니다. 가난한 집에서는 장차 일할 아이를 낳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세금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강진에 있던 가난한 집의 남자가 세금을 낼 수 없는데 아이가 계속 생기자 자신의 성기를 잘라버린 것입니다. 그걸 본 부인이 하도 원통해 관가를 찾아가 하소연했지만 무심하게 쫓겨나와 처량하게 우는 모습을 보고 다산이 읊은 것이〈애절양〉입니다. 당시의 비참한 현실, 견딜 수 없는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한 것입니다. 또〈조승문〉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가 고교 때 배운〈조침문〉이라는 글과 비슷한 것인데〈조침문〉은 과부가 바늘의 부러짐을 보고 애달픈 마음을 읊은 시라면〈조승문〉은 파리의 죽음을 슬퍼하는 글입니다.〈조승문〉의 '승'(蠅)자가 파리 '승' 자인데 천하의 해충인 파리의 죽음을 슬퍼해서 제사를 지내는 글이라니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산이 강진에서 귀향을 살던 1809년 전라도 일대에 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초봄부터 겨울까지 비가 한 방울도 안 와 해남, 장흥 지역의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그 시신을 치울 엄두도 못 내고 치울 사람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마을마다 시체 썩는 냄새에 파리가 들끓었습니다. 그렇게 그해를 보내고 다음해인 신미년 1810년에는 다행히 비가 많이 와서 농사가 잘 됐습니다. 그런데 여름이 되자 강진 일대에 파리가 엄청나게 몰려와 일대를 뒤덮자 동네 젊은 사람들이 파리를 잡으려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하지만 그때 다산은 '젊은 청년들, 제발 파리를 잡지 말아라, 저 파리는 작년에 죽어간 그 많은 백성들의 혼이 너무 억울해서 파리로 변해 나타난 것이다. 저 파리에게 우리는 국수도 주고 고기도 먹여서 제사를 지내줘야지 파리를 죽여서는 안된다'고 읊은 것이〈조승문〉입니다. 글을 잠깐 보면 "파리야! 얼마나 배고팠니? 와서 많이많이 먹어라. 내가 국수도 삶아 놓고 돼지고기, 쇠고기, 떡도 빚어 놨으니 와서 먹어라! 원 없이 먹어라! 지난해 죽어간 그 수많은 백성들의 원혼이 지금 파리로 되었으니 우리는 파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자"는 내용입니다. 다산은 한없이 피해만 보고 권력에 짓눌리는 백성들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대의 어느 지식인도 갖지 못했던 시선들을 다산은 이렇게 글로써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연못에 연꽃을 심지 말라는 시도 있습니다. 연꽃을 심어 놓으면 나중에 관리들이 와서 연뿌리를 전부 뺏어 가는데 빼앗아 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뿌리를 가져가기 위해 그들이 머무는 동안 닭도 잡고 각종 음식도 만들어서 없는 살림에 대접까지 해야 되니 차라리 연꽃을 심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다산의《목민심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백성들은 흙을 파먹고 산다"는 말이죠. "백성들은 흙으로써 밭을 삼고 관리들은 백성으로써 밭을 삼는다." 이 말은 백성들은 흙을 파먹고 살지만 관리들은 백성을 뜯어먹고 산다는 겁니다. 이처럼 다산은 관과 민, 관리들과 백성들 사이에서 항상 민의 편을 들었고 당시의 부정부패를 문장으로써 꼬집었습니다. 이처럼 늘 백성들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고민했기 때문에〈애절양〉이라든가〈조승문〉이라는 시를 쓸 수 있었던 겁니다. 《목민심서》의 구절을 다시 들겠습니다. "지천무고자(至賤無告者)도 소민(小民)이다. 즉 지극히 천해 어디 호소할 데도 없는 사람들이 일반 백성들이다." 그런데 "융중여산 역소민"(隆重如山亦小民)이라고 합니다. "즉 높고 무겁기가 산 같은 것 또한 백성이다. 대민이쟁(戴民以爭), 백성을 머리에 이고 백성을 등에 업고 다투면, 싸우게 되면 선불굴(鮮不屈)이다. 이기지 못할 싸움이 없다." 조선 오백년,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민중의 힘을 발견한 글입니다. 우리나라의 어떤 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민중의 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천하고 아무 힘도 없고 어디 호소할 데도 없는 사람이 백성이지만 그들이 분노하면, 함께 뭉치면 못 이길 싸움이 없다고 하는 민중성의 발견을 다산은 했던 겁니다. 이런 심정을 가진 다산은 자연히 백성에 대해 한없는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성이 분노하고 하나로 뭉치게 되면 천하를 엎어 버릴 수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다산은 백성들이 역사의 주체라고 인식했습니다. 한 사회의 주인공이라는 뚜렷한 의식을 지녔던 것입니다. 다산 이전이나 이후에도 역사의 주체가 바로 민중이며, 민중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정치라고 주장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산은 모든 모순된 논리를 뒤엎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논리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황해도 곡산에 이계심(李啓心)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 군수가 하도 못된 짓을 많이 하자 이 사람이 백성 천여 명을 이끌고 관아로 찾아가 시위를 했습니다. 관아에서는 이계심이라는 사람을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잡지 못하고 전국에 수배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다산이 곡산 군수로 부임하던 날, 어떤 사람이 다산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수배를 받고 있는 이계심이라는 사람인데 자신의 건의서를 읽어주시고 처벌을 하시라고 하는 겁니다. 다산이 이계심이라는 사람이 작성해 온 건의서를 보니 모두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산은 이계심에게 "너는 형벌도 두려워하지 않고 관리들도 두려워하지 않고 백성들과 함께 옳은 것을 주장했는데 왜 처벌을 받아야 하느냐? 너같은 사람은 처벌을 할 게 아니라 천금을 주고 사야 될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오늘 너를 무죄 석방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몇 가지 사례들에서 다산의 백성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비록 흙을 파먹고 살면서 못된 관리들에게 매번 빼앗기고 피해만 당하지만 언젠가는 백성들이 뭉쳐서 관리들의 이런 착취를 막아내야 되고 이겨내야 된다는 논리가 많은 글 속에서 배어 있습니다. 다산의《목민심서》에 나오는 글 중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화뢰지행'(貨賂之行). 화뢰란 뇌물입니다.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는 수불비밀(誰不秘密)이오만, 누가 비밀스럽게 하지 않으리요." 뇌물 주면서 공공연하게 뇌물 준다고 하는 놈이 어디 있습니까? 몰래 살짝 준다는 말입니다. '중야소행'(中夜所行). 중야는 한밤중, "한밤중에 하는 행위도 조이창(朝已昌)이다." 아침만 되면 이미 소문이 쫙 퍼져 버린다고 했습니다. 뇌물을 받고 부정한 일을 저지르면 언젠가는 전부 알려지게 돼 있으니 그러지 말라는 말입니다. 아마 다산의 이런 글을 읽어본 지금의 공직자들은 뇌물을 주고받거나 비리를 저지를 때 뜨끔할 겁니다. 다산을 평생 동안 연구했던 위당 정인보 선생이 이런 글을 남겼어요. "다산 선생만 연구해도 조선 오천년사를 전부 연구한 거다. 다산의 글 속에는 조선 오천년사가 다 들어있다. 또 다산의 철학은 민중의 철학이다, 늘 우리 민중의 편에 서서 논리를 전개하고 백성이 핍박받고 있는 것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논리를 전개했다"고 정인보 선생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다산은 늘 백성 편에서 백성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그들에게 자유와 행복이 오도록 노력했습니다. 다산의 대표적인 논문인 "전론"을 보면 백성들이 평등하고 공평하게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구는 만석꾼인데 왜 누구는 논 한 마지기 없어서 배고프게 살 수밖에 없는가?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토지를 공동분배, 공동경작하여 모두가 굶주리지 않게 배급하면 가능하지 않나 제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어떻게 해서라도 평등하게 사는 세상, 다 함께 잘사는 세상, 한두 사람이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사는 세상을 추구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IMF 위기를 맞게 된 것도 다 불평등 때문에 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수천억 원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백만 원의 돈도 안 갖고 있다 보니 결국 이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야기를 몇 가지로 정리를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이백년 전에 다산은 평등을 주장했습니다. 1950년, 1960년대만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부자, 어떤 사람은 벼슬아치, 그리고 서민, 상놈으로 미리 결정됐습니다. 우리나라가 5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신분사회를 탈피한 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백년 전에 다산은 신분의 차이, 서자와 적자를 극복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또 어느 사람은 양반이고 어느 사람은 평민이냐? 인간은 다 똑같이 평등하게 태어난다는 입장을 보이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시대에 주장해도 너무도 당연하고 우리가 따라야 할 주장들을 다산은 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산이 주장했던 것은 변혁이었습니다. 요즘 재벌개혁이다 정치개혁이다 떠들고 있지만 다산은 이미 '법지불개 제지불변'(法之不改制之不　), 법을 고치고 제도를 바꾸지 못하면 반드시 나라가 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제도와 법을 고쳐서 지금의 부패한 사회를 변혁시켜야 된다고 했습니다. 현대사에서 50여년 만에 정권이 바뀌어 희망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데, 우리들은 지금 마음의 지주가 없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다산 같은 마음을 갖고, 다산의 개혁사상, 다산의 부패척결 의지, 기술개발론, 사회평등론 등 몇 가지만이라도 실천한다면 지금의 IMF 경제위기를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산과 같은 새로운 민중의식을 가지고 우리 것을 새롭게 창조해 나를 회복하는 길, 나를 찾아가는 길이 바로 세계화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변혁의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것으로 돌아와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우리만의 사상은 무엇인가 생각하면 결국 다산으로 되돌아옵니다. 특히 다산은 백성의 힘, 백성의 의식변화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자 했는데 이런 민중의식을 중심으로 우리의 어려움을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