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꽤 창의력 있게 살아가기

안녕하세요. 이영혜입니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일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일이라는 게 뭘 까요? 저는 일이라는 것을 어떤 힘에 거리감을 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힘을 한 번만 쓰는 것이 아니 라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것, 그래서 결말이 날 때까지 꾸준히 해야 되는 것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을 창 의력(creative)으로 치환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의력도 힘과 지속력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즉, 일이나 창의 력에 힘과 지속력이라는 엔진을 단다면 더없이 좋을 듯한데 쉬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힘' 하면 군대나 무력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 예전에는 땅도 파야 되고 나무도 잘 라야 되니까 육체적인 힘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변하면서 이제는 지식, 정보 쪽으로 변해가고 있 습니다. 지식(knowledge)이나 정보(information)가 과거의 '힘' 개념을 대신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힘은 지속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 번에 그쳐서는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학이시습 (學而時習)이라는 말, 끊임없이 단련하고 노력해야만 가능하다는 말이 바로 학문의 지속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창의력에 엔진을 달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상품은 도입기가 있고 성숙기가 있고 쇠퇴기의 주기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주기(cycle)를 가 지고 생명력을 갖게 되는데, 사람의 신체도 마찬가지로 S자 곡선의 주기를 갖고 있습니다. 또 신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힘, 학문적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때 제대로 걷지 못하던 아이가 성장하면서 걸음을 배우고 학 문을 배워갑니다. 그러다가 30대나 40대에 주기의 S자 꼭대기에 올라가게 됩니다. 하지만 나이를 자연스럽게 먹어감에 따라 육체적 힘은 그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그 위치에 필 요한 지적 능력이나 사회적인 역할을 모두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성장에 따른 지위는 누구나 차 지할 수 있지만 그에 걸맞은 지적 수준이나 사회적 역할을 갖추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요즘 많은 인터뷰를 하면서 영어와 일본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면 서 학창시절 공부를 소홀히 하면서 보낸 것에 대한 후회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흘러간 시간은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후회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지금의 모습을 한 번쯤 반성해보는 것도 학생들에게는 많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제가 디자인만 20여년 넘게 하다 보니까 다른 분야는 잘 몰라도 문화계 방면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분야에 우리가 진정 존경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존경을 받는 많은 분들은 바로 젊은 시절을 열심히 보낸 사람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미술협회 회장을 하셨던 분을 알고 있는데 그분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잠깐 할게요. 그분이 미대를 다녔는데 보통 미대학생들은 학창시절에는 데생을 많이 하잖아요. 데생을 하고 중간중간에 그림을 지울 때는 보통 엄지손가락으로 지우는데 도대체 이분이 얼마나 그림을 많이 그리고 지웠는지 지문이 다 없어질 정도 로 열심히 하신 분입니다. 물론 그분이 미술협회 회장을 하실 때는 매일 회의만 하고 다니셔서 도대체 그림은 언제 그리시나 하는 의문을 가졌었는데 학창시절에 남들의 두 배, 세 배는 고생하면서 많은 노력을 하셨던 겁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돈과 사람, 재주 등 뭐든지 다 빌릴 수가 있지만 시간만은 빌려올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학창시절은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몇 가지 당부의 말 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허드렛일에 충실하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찮게 보이는 일에 미래가 담겨 있습니다. 세 계 일류의 헤어디자이너인 비달 사순의 뉴욕 샵의 일급 디렉터를 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한국분입니다. 외모도 뛰 어나지 않고 체격도 동양적인 그런 분인데요, 그 분이 패션의 일번지인 뉴욕에서 머리의 유행을 선도하는 비달 사 순의 일급 수석 디자이너입니다. 서구인들이 아무리 평등을 외쳐도 동양인에 대한 차별은 아직까지도 꽤 심한데 동양인이 일급 수석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 예삿일이 아닙니다. 그런 그 분의 성공 뒤에는 보통사람은 2년 정도면 마칠 보조역할을 온갖 차별 속에 5년여 동안 경험하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노하우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손님의 머리를 감겨주는 일이나 빗질해주는 허드렛일을 하찮게 여기겠지만 이 분은 그런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의 두상을 공부하고 직모와 곱슬, 영양상태에 대한 나름대로의 공부를 했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두 배가 넘는 5년여 동안 허드렛일을 마치고 머리를 만질 때가 되니까 이제는 손님의 머리만 한 번 만 져보면 어떤 디자인이 가장 어울릴까 하는 느낌이 오더랍니다. 그런 노력 끝에 지금은 그 분에게 머리를 자르기 위 해 뉴욕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머리 손질하는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랍니다. 이 분이 남들보다 긴 시간에 불평을 하고 머리감기는 일, 그 허드렛일을 뛰어넘었으면 아마 일류 헤어 디자이너가 되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집이나 학교에서 우리가 하찮게 생각하는 일을 통해 얼마든지 좋은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자전거 한 대를 디자인한다고 합시다. 자전거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는 사 람이 필요하고 그걸 등고선으로 그리는 사람, 등고선을 그림으로 그리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또 그림으로 모형을 만드는 사람, 색칠을 하는 사람, 또 라벨을 그리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 대의 자전거 디자인 이 완성됩니다. 이런 완성된 디자인을 위해 하찮게 생각되는 많은 일들, 토막토막의 일들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토막토막의 일에도 전문성은 필요한 것입니다. 앞으로는 분업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분화된 것들끼리 통합해 나가는 그런 트렌드(trend)가 필요합니다. 각자가 다른 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조직해서 분화된 것을 한목소리를 내게 만드는 일도 필 요할 것입니다. 어떤 일이 언제 쓰일지 모르는 사회가 분업화 사회입니다. 지금은 너무나 하찮고 쓸모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그것이 미래사회에서 어떤 용도로 쓰일지는 모릅니다. 미래로 가는 지름길은 지금에 충실하는 겁니다. 허드렛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미래를 찾는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두번째로는 자신의 장미를 가꾸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생텍쥐페리의《어린 왕자》를 보면 장미 이 야기가 나옵니다. 어린 왕자가 자기 별에 있을 때 장미 한 송이를 키웁니다. 가시도 많고 매일 물도 줘야 하고 늘 귀찮게 하는 그런 장미였습니다. 어린 왕자가 떠돌다가 지구에 와서 보니 장미가 너무 많은 겁니다. 저마다 탐스 러운 꽃들로 다발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굉장히 실망을 하죠. 자신은 세상에 장미는 한 송이밖에 없 는 줄 알았는데 그 믿음에 대한 실망이 컸던 겁니다. 그러던 어린 왕자가 사막을 가다가 여우를 만납니다. 그 여 우가 길들여짐에 대해 이야기하죠. 그러면서 어린 왕자는 깨달았습니다. 많은 장미다발이 있어도, 자신의 장미가 가시도 많고 덜 탐스럽고 귀찮게 만들지 몰라도 자기 장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로구나. 그 장미만이 자신 의 장미이고 장미에 물을 주어야 하는 것도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 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장미를 키우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모든 사람들은 컴플렉스가 있습니다. 얼굴이 예쁜 여자는 일을 잘 하는 여자를 부러워하고 일은 잘 하지만 얼굴이 못생긴 여자는 일은 못 해도 얼굴이 예쁜 여자를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그런 컴플렉스에 눌려서는 안됩니다. 반대로 컴플렉스를 잘 승화시켜야 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나를 사랑하는 의식의 튼튼함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번째로는 사랑하자는 말씀을 드립니다. 남녀간의 사랑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 고 우리 주변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고유문화를 너무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니 문화에 관한 한 고아가 돼 버린 상태입니다. 외국의 지방도로를 가다 보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러브호텔의 이름까지도 안데르센, 몽블랑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정통복장을 입고 UN회의에 참석합니다. 누가 보 더라도 이집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건 전통문화에 대한 긍지입니다. 저는 우리 대통령도 한복을 입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인 평 가는 제쳐두고 저는 그 분이 항상 한복을 입고 다니셨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 분은 설날 대국민성명 을 발표할 때면 항상 한복 차림이셨습니다. 한복이 다소 거추장스러워 입기가 거북하다면 요즘 형식으로 개량해서 입으면 됩니다. 이런 작은 부분에서부터 우리 문화에 대한 긍지가 묻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원시미술이나 멕시칸의 공예품을 보고 촌스럽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찬사를 보냅니다. 그것은 다른 것에 대한 찬사입니다. 우리 것을 잘 알게 되면 다른 것, 남하고 다른 것에 대한 열등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것에 대한 올바른 앎이 새로운 기술(technic)이라든지 새로운 아이디어와 접목해 더 큰 도약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여 일상을 좀더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이벤트를 많이 만들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 서 사람들은 비겁해집니다. 가정이 생기고 남편과 아내가 생기면서 챙겨야 될 일이 자꾸자꾸 늘어납니다. 그러면서 세상과 조금씩 타협하는 거지요. 이렇다 보면 일상에 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을 감동시킬 것도 없고 얘기거리도 없어지면서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그래서 아직 젊은 여러분들은 하루하루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남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도 많아지고 여러분들의 마음도 커질 것입니다. 특히 방학을 이용하여 배낭여행을 다녀보세요. 해외 배낭여행이 부담된다면 우리나라 곳곳의 자그마한 시골이라도 다녀보세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색다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시간은 똑같지만 그 시간 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가치는 달라집니다. 하루 24시간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hybrid'라는 단어를 알고 계십니까? 'hybrid'는 식물용어인데 잡종 만드는 것쯤으로 해석 될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장점과 다른 사람의 장점, 이런 것들 을 교배시켜 스스로 번성하고 종 수를 늘려 가는 식물처럼 우리들도 우리가 아는 지식을 조금만 교배시켜도 새로운 것을 창출해낼 수 있습니다. 디자인을 전공하시고 독일에서 경영학을 공부하신 이원복 교수님의《세계사 이야기》라는 책이 있는데 정말 재미있습니다. 디자인을 공부하신 분이 나중에 경영학을 접목시켜 색다른 차원의 책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앞에 언급한 일종의 교배입니다. 또 어느 영국인은 의대시절 그림을 너무 그리고 싶어 남의 그림을 계속 베 껴 그리다가 지금은 의학그림의 세계적인 권위자가 됐습니다. 결국 하나의 공부와 다른 공부가 합쳐져 새로운 과정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물론 매번 자신에게 주어 진 공부에 충실히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전공에 충실하면서 타전공의 학생들과 두터운 교분을 쌓아야 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분화된 사회 속에서 하나의 톤(tone)을 내려면 나 혼자 할 수는 없습니다. 네 트워킹만큼 중요한 게 없습니다. 타전공생과의 교류가 결국 여러분들의 재산이 되는 겁니다. 앞으로는 좋은 사람들 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인프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많은 것들을 소비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기가 소비자만 되어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어떤 면은 남을 소비시킬 수 있는 자기 전공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힘 이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남들이 자신에게 많은 신세를 지도록 만드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미안해 할 그 무언가를 만들라는 겁니다. 이런 것들을 잘 저축해 놓으면 언젠가는 자신이 도움을 받게 됩니다. 물론 요즘은 이런 것도 힘들지만 조그만 부분에서 손해본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줬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잖아요. 그냥 저축 했다고 여기면서 남들에게 이로운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끝으로 큰일은 깔보라는 말씀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큰일에 주눅이 들어서 부딪쳐 보지도 못하다 보니 사회발전이 늦게 되는 겁니다. 깔보라는 말은 그저 담담하게 대처하라는 겁니다. 큰일은 한번 해보자는 대담함을, 작은 일은 우습게 생각하지 말고 겸손하게 대할 때 힘은 더욱 발휘될 것입니다. 창의력은 지식에 엔진을 달아야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합니다. 물론 자칫 잘못하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한곳만 맴돌겠지만 그렇게 안하고 쭉쭉 속력을 내 면서 인생을 살기 위해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무엇을 소중히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