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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제목 |
세계가 보는 대한민국의 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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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
75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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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연사 |
전성철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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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일시 |
1998년 04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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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장소 |
본부관 학술회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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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22617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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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세계가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몇 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가진 생각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반대의견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럴 때는 주저없이 말씀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실상 작년(1997년) 11월에 IMF가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참 당혹 스러워 하면서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자신도 정말 우리의 살을 꼬집어 보아야 할 만큼 경제원조의 사실을 믿 기 어려웠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19세기, 20세기의 패러다임으로 봤을 때 IMF를 맞을 그런 운명이나 상황에 처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첫째로 거시경제지표가 아주 좋았지요. 성장도 6∼7% 하고 있었고 물가도 안정되어 있었고 고용은 거의 완전고용 수준이라서 외국에서 노동자를 엄청나게 수입을 해야 될 상황이었습니다. 국제수지가 나빴습니다만 그것도 작년에 재작년의 반 수준으로 급격하게 줄어든 것일 뿐 거시적인 경제지표가 나빴던 상황은 아니어서 특등생은 아니 더라도 우등생 정도의 상황에 있었습니다.
다음에 한국국민은 여러가지 면으로 잘 살 수 있는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세계에서 거의 제일 높은 국민저축률을 가지고 있었고 세계에서 제일 많이 일했고 세계에서 제일 높은 교육투자를 하고 있었죠. 거시지표는 이렇게 순항을 하고 있고 잘 살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던 이런 나라에 정말로 황당 무계하게 청천벽력 같이 IMF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잘 알고 있다시피 IMF는 외환이 부족해서 왔습니다.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으로부터 등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외국 사람들이 등을 돌릴 정도로 우리가 아주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다는 걸 우리가 몰랐던 것입니다. 당시 한국경제의 거시지표는 아주 좋았습니다. 성장률도 낮지 않았고, 대체로 물가도 안정이 되었으며 고용상황도 비교적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미시경제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 자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외국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시경제의 집합체가 거시경제지표로 나타나는데 미시경제가 나쁘면 필연적으로 거시경제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우리의 미시경제 상황이 나빴다는 것을 세 가지로 나 누어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외환문제입니다. 외환의 소스는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국제거래에서의 흑자이고 두번째가 증권시 장에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 세번째가 M & A나 직접투자를 하기 위한 자금, 네번째가 금융기관 간의 대출금입니다.
그런데 IMF의 위기가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상황이 이 모든 분야에서 누적이 되어 오고 있었습니다. 우선 재작년에 230억 달러의 적자를 봤고 작년에도 적어도 100억 달러의 적자를 볼 거 라는 예상이 있었고 두번째로 증권시장에서 작년 여름부터 외국투자가들이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여 러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단적인 예를 들자면 분식결산(?)을 통한 장부의 조작이라든지 계열사간 지불보증으로 인 한 손실 등이 있겠죠.
세번째가 외국인 투자인데 직접 회사를 세우는 방법이 있고 M & A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직접투자는 노동시장이 너무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투자가치가 떨어지는 반면에 M & A 시장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은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미도파 백화점에 대한 M & A가 시작될 때 전 세계의 투자가들이 주시를 했었 어요. 과연 한국에서 적대적인 M & A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여러분 아시다시피 전경련을 중심으로 무산시켜 버렸습니다. 오히려 그 일 직후에 M & A 규정을 엄청나게 강화를 해서 사실상 외국인의 M & A가 불 가능하도록 만들어버렸어요. 미도파 사건이 전 세계의 투자가들한테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싸늘한 메시지를 전달했 습니다.
네번째의 소스는 은행간의 대출인데 한보·기아 문제로 인해 거의 20조 가까운 부실 대출이 생겨서 대한민 국의 은행들이 심각한 수준으로 부실화되어 버렸습니다. 한국의 은행에 대출해줬던 외국은행들이 대출금을 회수해 가거 나 더이상 갱신해주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금융부문에서의 외환 소스도 막혀버렸던 것입니다. 사실상 이 네가지 외환의 소스가 막혀 외환위기가 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작년에 AP, UPI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통신이 10월말에 한국에 외환위기의 가능성이 있다고 했을 때 우리 나라 정부와 재경원에서 취한 반응이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경제가 선진화되어 있 는 나라에서는 만일 어느 통신에서 이 나라에 외환위기가 있다는 식으로 보도를 하면 그 담당장관은 대통령과의 약속이 돼 있다 하더라도 취소하고 당장 한국에 있는 외국인 특파원들을 전부 불러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설득하고 안심을 시켜야 되는데 그 당시 우리나라 재경원은 한국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명예훼손죄로 고발을 하고 소송을 하겠다고 그랬어 요. 우리가 우리의 경제상황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가르쳐주는 에피소드입니다.
미국을 포함해서 전 세계에 투자를 위해 돌고 있는 자금이 2조 달러입니다. 돈이 지금 전 세계로 움직이면서 어느 나라, 어느 기업이 투자대상으로 적합한지를 찾아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백 명의 전문가 집단이 모든 투자대상들을 꼼꼼히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몰랐던 거예요. 세계의 경제환경이 달라지고 있었는데 우리만 안일하게 대처한 결과입니다.
외국인들이 우리 한국의 상황을 평가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가 유연성이라는 것 이고 또 하나는 투명성입니다. 유연성은 크게 4가지 정도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그 다음은 경영시장의 유연성, 세번째가 기업시장의 유연성, 그리고 자본시장의 유연성입니다. 이 네 가지의 유연성을 우리가 확보 하지 않으면 앞날이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우선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기업이 100억 원 어치 물건을 팔다가 매출이 80억 원으로 줄면 경영상의 조치를 통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매출은 80%로 줄어도 인력도 줄이지 못하고 월급은 100%를 주게 되면 본래 경쟁력 없는 기업이 더 약해져 결국은 침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배가 빠지면 우선 화물을 들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은 그것이 여태까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가 경영시장의 유연성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경영시장의 유연성이 전혀 없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일을 잘 못하거나 과잉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듯이 경영을 잘 못하는 경영자를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기업총수는 기업이 완전히 망해서 법정관리로 가야만 겨우 바꿀 수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피해자는 60∼70%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기업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소액주주들입니다. 20∼30%의 주식을 가진 대주주가 경영자가 되어 다른 주주들의 희생을 담보 로 해서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경영의 현주소입니다.
그 다음은 기업시장의 유연성입니다. 기업의 신규진출과 정리가 지금보다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현재는 각종 규제가 많아서 기업을 만들 때도 정리할 때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넷째는 자본시장의 유연성입니다. 정말 필요하고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돈이 아주 기민하게 돌 수 있어야 합니 다. 우리의 현 체제는 관치금융·정경유착의 폐해로 인해 한보사태에서 보여지듯이 가장 생산성 없는 곳으로 돈이 들어가고 있고 일단 들어간 돈은 회수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이 극도로 경직되어 있다는 단적인 예입니다.
우리 경제에 대해서 외국인들이 투자 자체를 꺼리게 된 것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여러가지 면에서 극도의 경 직성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경제의 경직성, 특히 경영의 경직성은 미도파 매집사건에서 단적으로 드러났 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건을 외국인들은 경영시장의 경직성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경영인들 혹은 국민들까지도 기업이라는 것이 상당히 독재적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는 것 같 습니다. 군대조직 같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바로 기업의 본연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죠.
민주국가는 국민이 주인입니다. 국민이 있고 국회가 있고 행정부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호견제와 균형에 의해서 민주국가를 운영해 가야 되죠.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키고 중요사안을 심의하고 집행을 행정부가 하듯이 법인도 똑같 은 이치로 만들어집니다. 국민에 해당되는 것이 주주이고 국회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이사회이며, 행정부에 해당하는 것이 대표이사인 것입니다. 우리 법인의 법률을 보면 사장이라는 사람은 집행만 하고 중요사항은 국회에 해당되는 이사회의 허가 를 받아야 하고 주주에게는 이 이사회를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의 기업은 이런 원칙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제시되고 있는 사외이사제도는 대주주의 전횡을 막는다는 측면에 서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능력이 없는 경영인이 회사를 계속 경영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경영진의 교체나 적대적 M & A 등을 추진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 주주의 권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적대적 M & A는 미국 내에서도 그 효용성에 관해서 엄청난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넘게 국회에서 청문회를 하고 토론회가 열리고 해서 내린 결론이 적대적 M & A야말로 미국을 경쟁력 있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적대적 M & A가 활성화되면 방만하고 무책임한 기업경영은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이익이 떨어지면 당장 회사의 값어치가 떨어지고 바로 적대적 M & A가 들어오기 때문에 경영자들은 예전처럼 안이하고 방만한 경영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경영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대적 M & A를 허용하는 것과 함께 소액주주들의 활동도 활발해져야 됩 니다. 정당한 법적 절차를 통해 소액주주들이 유능한 경영자를 앉힐 수 있는 시스템이 되면 자동적으로 소유와 경영은 분리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지금까지 재벌문제를 처리하는 데 기업지배구조의 민주화, 경영시장의 유연성의 문제에는 신경을 안 쓰면서 업종 전문화 등의 주변적인 문제에만 집착해 온 측면이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는 업종을 아무리 전 문화해도 역시 재벌은 재벌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경제 전 분야의 유연성 제고와 함께 중요한 것은 경제의 투명성을 확 보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회계감사 제도나 회계사 제도에는 지금 심각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클라이언트와 회계사 간의 유 착관계 등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우리 기업의 장부는 대외적인 신뢰도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외적인 공신 력을 가질 수 있는 회계상의 원칙을 받아들이는 것과 함께 이런 유착관계를 근절해야 합니다.
회계의 투명성과 함께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의사결정의 투명성입니다. 기업의 주식 소유자는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경영진 일방으로 계열사에 지불보증을 서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은 회사의 의사결정 구조가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의 미합니다. 이런 문제점을 가지고서는 외국의 투자자금을 끌어들이는 것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 자체를 더욱 부 실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이 유연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외환 위기는 언제든지 다시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결국 IMF 사태는 세계가 우리 경제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를 모른 채 거시경제지표가 던지는 낙관적 메시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뿐 미시적 관점에서 경제를 살피고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 데 무지했던 것의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국민이 열등해서 유연성과 투명성의 면에서 뒤지는 게 아니라 우리 역사의 발전과정이 유연성과 투명성을 가지기에는 너무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현 시점에서 해야 하는 일은 우리나라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체계부터 시작해서 전체를 합리적인 시스템 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을 포함한 지금 20·30대 젊은이들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패러다임과 생각, 시 스템을 얼마나 효과적이고 합리적으로 구축할 것인가에 21세기 우리의 진로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 최고의 선진국이었던 필리핀이 30년 만에 아시아 지역에서 최고의 열등국가로 전락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그 시대에 닥친 도전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대가 과연 이 시대, 이 도전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시고 토론을 많이 해보시기 바랍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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