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세대차이가 일찍 난다고 합니다. 이른바 엑스세대와 할아버지세대와는 엄청난 의식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여러분과 저하고 만 해도 세대차이가 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단순한 소시민으로 살 았다기보다는 우리나라 역사에 깊이 관심을 갖고 참여를 하던 까닭에 우리 나라의 학생운동에 관심이 있는 여러분께 제가 얼마간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학생들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했습니다. 오늘날 문민정부에서 민주화가 되었다면, 그 민주화의 80∼90%는 학생들에 의해서 학생들의 노력과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우리나라 역사에서 학생들의 역할이 아주 컸기때문에 긍정적 측면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학생운동의 순수성이나 조직이 그 동안 긍정적 역할을 했다 고 하지만 또 잘못하면 부정적인 역할도 역사 속에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데 이 시대가 혼란된 가치와 급변하는 사회현상 속에서 학생들이 어떤 사고 를 하느냐가 중요한 시점입니다. 그래서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왜 학생들의 역할이 중요하게 평가되고 중요했냐 하면 적어도 일제치하학생들의 조직적 세력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때 가장 순수했던 것입니다. 기성인들은 이해관계에 얽혀 있어서 사물을 옳게 볼지는 몰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여러 문제에 묶여 있기 때문에 못하는 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아주 이상적이고 단순하고 열성적인 데에 그 에너지가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학생들이 일제하 독립운동에서 조직적 힘과 에너지를 가지고 몸바쳐 싸웠던 것입니다.
815광복 이후 여러 이론적 얘기가 있겠으나, 815 이후의 사회문제는 자주통일의 독립국가 건설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815이후 의 사회상황은 좌우익으로 나뉘어 가지고 피비린내 나는 좌우익학생운동 이 전개되었습니다. 그 이후 반공정부가 수립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분 단이 고착되면서, 815해방 이후 학생운동이 좌익에 의한 단독정부 반대 운동, 좌익적 시각의 사상적 투쟁, 그리고 우익의 투쟁이 각각 당과 학생에 연계되었고, 이 당시도 학생운동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 때부터 한반도에서의 우리 과제인 민중의 자주성 회복과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민주화투쟁의 과정이 오늘날까지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좌우익의 수단이 서로 달랐기에 헤게모니 싸움이 피비린내 나게 되 었던 것입니다. 이승만 정권 이후 한국전쟁으로 인해 형식적으로 좌익세력 이 없어지고, 학생운동의 과제는 활발히 진행된 것이 당시 없었습니다. 왜 냐하면 단독정부 수립 이후 좌익이 수그러지고 일단 우익의 주장이 이루어 진 것이니까 우익학생운동이 특별히 주장할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유당정권의 문제점은 친일잔재를 미청산했던 것, 정치적으로 무리한 정권을 위해 헌법도 고치고 부정선거도 하고 폭력적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하려 기도했던 것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미국의 소비재 농산물에 질식해 있었고, 여러 일제청산의 문제가 정치적 세력의 결탁으로 그대 로 남아 있었고, 경제원조에 기대면서 대량의 실업자문제가 사회경제적 문 제로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 419였습니다. 학생들이 역사 를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419의 의미는 부정선거를 막고 공명선거를 수립 했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적어도 이승만 정권 당시 이루어지지 않던 민주화의 과제가 다음인 장면 정부에서 표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그것은 통일문제였습니다. 단독정부에 의한 통일의 문제였죠. 그리고 미국에 상당히 종속적 관계를 갖게 되는 한미 행정협정이라든지 경제협 정 체결에 대한 반대투쟁을 학생들이 하였는데, 419 이후 다른 대변할 세 력이 없던 당시, 419의 주도세력으로서 그런 긍정적 역할을 했기에 학생 운동이 우리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입니다. 그 1년 뒤 박정희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는데, 대미종속적 관계의 청산, 민족통일 문제라든지 정치문화의 수립과제가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516쿠데타의 등장으로 그 시기를 놓친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민주에 대한 더 방해적인 세력으로 박정희 정권이 수립되었기에 학생들의 군사독재 반대투쟁은 더욱 가멸차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60년대 군사정권 반대투쟁이었습니다. 70년대에 들어오면서 경제개 발 위주에서 오는 대외의존적 고도성장에 있어서의 노동문제, 농업의 희생 문제가 사회구조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겁니다. 단순한 군사독재의 문제가 아닌, 한국경제의 본질적 자본축적의 과 정에서 사회적 모순, 자본주의 모순이 표출되기 시작하여 70년대 학생의 민 주화투쟁과 노동운동은 그 모순들에 대한 대표적인 운동이었습니다. 노동운 동의 경우 물론 노총이 있었으나, 노총은 민주노조라 볼 수 없었습니다. 그 리고 급격한 산업화정책에서의 농업희생정책은 농업의 피폐를 가져왔습니 다. 70년대의 사회운동의 주축은 학생들의 반독재투쟁과 노동자들의 노동운동, 농민의 농업운동이었습니다.
그 때의 사회운동은 유신체제 군사독재를 물리치면 민주화가 되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박정희만 없어지면 민주화가 될 줄 알았으나, 그가 죽고 나니 더 이상한 게 들어와서 엄청난 좌절과 실망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사회의 성격에 관한 회의를 하게 됩니다. 혹자는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서 북한하고 대치하려면, 남한에 강력한 통치권을 가진, 전쟁을 경험 한 한반도에서의 군사독재는 당연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또 어떤 이는 민주 화투쟁에 앞서 통일이 선결문제가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80년대에 들 어서면서 선통일 후민주화, 후통일 선민주화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한반도 분단문제가 있는 한은 독재가 있을 수 없다 하여 통일문제가 제기되고, 반 통일세력이 집권하는 한 통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하여 선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민주화 추진세력의 상식적 차원에서의 문제제기입니다. 학문분야에선 사회운동이 사회성격의 반영인데, 사회성격 문제, 한계자본주의 문제로, 이른바 사구체이론으로 학생들이 갈라지게 됩니다. 한부분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의 죽음과 희생으로도 문제가 풀리지 않자, 이런 인텔리 지식인의 운동으로 본질적 사회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는가하여 단지 졸업을 하고 직 장을 구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빨리 조국의 역사를 지켜야 한다하 여 위장취업, 노학연대로 이어져 80년대로 넘어오는데, 전반적으로 당시 흐 르던 것이 계급투쟁입니다. 그래서 80년대 중반 이후 계급투쟁이 전사회를 풍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억압적인 조건 속에서 이전에는 책으 로서 구하기 어려웠던 맑시즘이나 제3세계의 사고들이 책으로 읽혀져 전 반적으로 사회의 모든 사람이 맑시스트나 계급투쟁론자가 되었습니다. 그래 서 80년대에 학생운동이 계급투쟁을 주도하던 시대, 거의 맑스나 레닌이 되어 이른바 운동권이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6?9를 우리가 겪게 되죠. 6?9는 더 이상 군사독재가
지속할 수 없다는 70, 80년대, 더 나아가 60년대서부터 20∼30년 간 수많은 희생의 투쟁의 결과로 온 사회변화라 하겠습니다. 한 사회의 변화는 객관적 여건과 주체적 역량이 축적되었을 때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객관적 조건이 발전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역사적 노력에 있어 주체적 노력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6?9는 축적된 민주화 역량에 힘입어 지배계층 이 타협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기반을 잃을까봐 내놓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치적 군사독재는 민주화운동세력과 양분하는 단계로 들어서면서 타협적 으로 3당 합당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더이상 군사독재권력만으로 정권유지가 어려우니까 3당합당으로 집권을 유지하고, 선거에서 문민정부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민정부의 역사적 의미는 큽니다. 형식적으로 자유민주주의는 실현됐고, 이는 적어도 30여 년의 투쟁, 더 나아가 이승만독재까지 나가면 40여 년의 투쟁에 의해 쟁취한 것입니다.
저는 한 시대의 사회변화와 민주주의라는 것이 형식적 제도 개선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거기에는 역사적 축적이 필요했던것입니다. 이제는 적어도 민주주의가 후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많은 학생들의 희생의 축적 위에 이만큼 민주주의가 생겨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과 동시에 엄청나게 세계역사가 변했습니다. 이른바 옳건 그르건 인류의 이상은 전인류의 거의 반이 사회주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회주의가 전부 붕괴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자가 이상으로 했던 한국에서도 운동 권의 대부분이 이상시했던 사회주의가 안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약육강식의 부패한 논리이지만, 사회주의에 대항하면서 자기 교정을 통해 성장하면서 사회주의의 몰락을 몰고 왔습니다. 어떤 이는 맑스가 자본주의를 키우고 사회주의를 몰락시켰다는 재미있는, 그러면서도 의미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소련에 가보았는데, 러시아 1주일 왔다간 사람은 책을 한 권 쓰고, 6개월 있다 가는 사람은 한 페이지를 쓰고, 2년 있다 간 사람은 아무말도 못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알 필요가 없다고 유학생들은 그럽니다. 왜 학교가 제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지 깨닫는 데 1년이 걸리는데, 결국은 돈을 안 주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기숙사에 들어가려면 학생회장 사인을 받아 야 하는데, 그것도 돈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회주의국가의 도덕입니다.
저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하고 소비자 생산 경쟁하고 우주과학 개발 경쟁하고 하다가 망하는 줄 알았더니, 예컨대 10개를 생산하는 데 자재는 8개가 오고 나머지는 암시장에 팔아먹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누가 떼먹거나 해서 절대적으로 생산에 차질이 생깁니다. 이렇게 전체가 부패하여 계획경제가 안 됩니다.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흐루시초프가 하다가 브레즈네프에게 걸리고, 고르비가 쿠데타로 옐친에게 넘겨주고, 그렇게 되 는 것입니다. 사회주의가 너무 부패해서 안됩니다. 택시를 타더라도 강도가 칼을 들이댈까봐 문을 닫고, 모스크바의 문은 모두 2중 철제문이고, 잘 때는 열 수가 없게 하려고 열쇠를 꽂은 채 자라고 합니다. 공산당의 도덕은 공산당의 간부일수록 더 도둑인 것입니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부패해서 안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도덕적 부패의 이유는 견제와 비판세력이 아니라 절대권력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편적 민주주의, 만인이 지킬 수 있는 도덕을 주장해야지 특수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주장하면 견뎌내지 못합니다. 또 하나 놀란점은, 유물사관 에 의해서 신을 부정하는 국가가, 러시아종교는 원래 인정하고 있었긴 하나, 개방 이후 수많은 교회가 생겨나고 많은 사람이 와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주의는 도덕 때문에 안된다고 봅니다. 계획경제의 실패보 다는 지킬 수 없는 도덕의 강요에 의해 부패를 가져와서 민주주의같은 견제 세력이 없어서 안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전에 사회주의는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주의이론은 사상사가 아닙니다. 관념철학도 아닙니다. 실천을 전재로 해야 하며, 그것도 사람을 죽이는 혁명실천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실천적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회주의였기에 자본주의가 남았습니다. 미국이 세계자본주의 질서의 확립을 위해 자유무역주의, GATT, UR, WTO체제로의 전환을 기도하고, 그래서 세계자본주의, 시장통일, 서유럽중심의 자본주의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하여튼 UR는 서유럽과 미국 자본주의가 결합하여 세계자본주의 질서체제를 단독시장으로 통일하고 지배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래서 개방, 국제화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요소로 이 문민시대에 우리가 부딪친 것 입니다. 세계자본주의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죽기 않으면 살기라는 현실 적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 생산력의 발달에 의한 생산 관계의 중요한 양적 축적이 질적 변화를 흔들어놓고 있는 사회체제이고, 또 노동의 성격이 바뀌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이라는 게 블루칼라의 임금인상, 근로조건 개선투쟁이고, 게다가 덧붙여 정치투쟁까지 있는 건데, 지금 생산을 주도하는 것은 육체적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노동에 의한 제조업이 미치는 영향이 15%라면, 고도 과학기술의 생산이 미치는 영향이 생산의 85%로 볼 때, 이제는 전반적 생 산을 주도하는 것이 블루칼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종래의 계급투쟁에서의 노동운동의 성격이 질적, 양적으로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종 래 하던 식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정치투쟁까지 결부하는 그런 노동운동을 해서되겠는가? 계급문제는 있으나 그것을 계급투쟁에 의해 풀려 고해서는 지금은 안됩니다. 적어도 한국사회의 70∼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사회의 주된 문제는 노사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인류의 전반적 문제는 노사문제가 아닙니다. 절대적 빈곤의 문제는 물론 아니고요. 우리는 일본이나 미국보다도 거지가 없습니다. 이제는 노동의 문제가 중심이 아닙니다.
이제 모든 인류의 관심은 환경문제입니다. 산업사회, 자본주의 성장과정 에서 문제시되었던 노동문제도 환경문제와 결부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노사문제와 환경문제가 결합해야 됩니다. 현대정공 노동자들이 한 달에 100∼ 150만 원씩 타고 자가용 다 갖고 있는데, 월급 올려달라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임금인상 요구를 하지만, 실제는 주말에 어디를 놀 러갈까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예전의 노동운동은 설득력이 없다 는 말입니다. 이제는 사회의 중심문제가 다변화되어서, 환경, 소비생활, 건강문제, 교통, 평화문제 등 여러문제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맑시스트들은 변증법적 유물론에 역사를 짜맞추려 하는데, 그것은 말도 안 됩니다. 제가 소련에 가보았더니 그곳은 완전히 봉건사회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프롤레타 리아 독재의 형성이 될 리 만무하며, 시민의 입장에서는 왕정사회와 다름없던 것입니다. 사회의 모순은 중첩되는 것이지 맑스이론을 들었다고 그런 문
제가 무 잘리듯 한 시대에 완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은 책을 보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도 인생을 경험하니까 그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사회의 중심 모습은 늘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역사에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었던 민족, 민주문제, 경제적 민주화 문제 등을 계급적 갈등으로만 보고, 거기에 물들어서 아직도 이론적으로 그 인식의 탈을 못 벗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통일 안 된 나라가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통일이 우리 마음대로 됩니까? 당사자인 우리가 해야되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요즘 학생운동의 주과제가 노동운동을 하겠어요, 농민운동을 하겠어요? 통일운동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의의 통일의 도는 통일장애세력의 방법론 때문에 반통일운동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이처 럼 한 사회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변화된 상 황에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종래의 사회발전에 기여한 재야의 정치민주화투쟁의 명분이 군사독재투쟁이 사라지고 문민정부가 되었기 때문에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사회민주화 투쟁의 과제는 아직 남아 있어요. 이 민주화투쟁은 군사독재반대투쟁이었 고, 민주화 내지는 노동문제, 농민문제였는데, 이제는 UR의 급격한 움직임 으로 농업운동이 정치투쟁 위주의 전농이 아니라 영농후계자로 넘어가고 있고, 그리고 재야운동도 국민적 성격이나 역할보다 오히려 시민운동으로서 더 설득력을 갖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냐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문민정 부의 출범과 한국사회의 성격변화 때문에 이제는 중앙집권의 독재에 대한 민주화투쟁보다 다양한 계층 분화와 민주적 차별화, 이런 것에 의한 교통, 여성, 소비자보호운동, 복지운동, 심지어 에이즈운동 등이 부각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변화되고 있습니다.
시장의 개념도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이제는 네트워크 개념입니다. 경제 체제가 근본적으로 그런 세상입니다. 종래의 분석틀에 의한 접근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국가의 장래를 이끌어 갈 사람으로서 어떠한 생각을 가져야 하겠는가? 저희 세대는 컴맹의 세대입니다. 네트워 크로써 세계의 지구촌화가 되고 있는데, 아직도 컴맹같은 옛날 사고를 갖고 이럴 때가 아닙니다. 개인을 위해서나 역사발전을 위해서나, 정말 여러분은 현대 과학문명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고의 대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저를 아까 소개할 때 소비자협동조합 이사장이라고 했는데, 제일 하고 싶은 운동으로 그걸 하고 있습니다. 민중당 해체 이후 하나의 새로운 진보의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서 한 것인데, 환경, 지역, 공동체, 신토불이, 건강, 여 성, 지자제 조직운동, 이런 복합운동의 묘미를 소비자협동조합이 갖고 있다 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운동도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 다. 종래의 운동방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정말 아주 옛날사람이 되는 것입 니다. 이런 가치의 혼돈속에서, 사회 인류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은 인간 인 것입니다. 휴머니즘을 떠난 어떠한 과학문명이나 사상체계는 있을 수 없 습니다. 그러면 사회주의가 무너진 시점에서 자본주의를 도덕기준으로 해야 하는것이냐? 자본주의는 물질만능의 무한욕구충족으로 생태계를 파괴하여 심판의 세계로 몰아가는 것이니까, 저는 인류의 운명이 여기서 그쳤으면 좋 겠습니다. 생태계 파괴도 중단되어 공룡처럼 자멸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금세기 인류의 도덕기준은 검약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국제화시대 에 여러 가지 라운드가 생길 것이고 민족자본이란 개념도 애매한 이야기입 니다. 수많은 다국적기업이 민족자본입니까? 그러니까 전향적 사고를 가지 고 우리의 미래를 열도록 합시다. 결국은 악마와 천사가 세상에는 함께 사 는데, 소수의 천사에 의해 사회는 유지되고, 소시민으로 살건 말건, 사회와 민족을 걱정하는 그런 사람에 의해서 사회는 이끌어지게 마련입니다. 우리 가 정신차리고 옳게 방향을 설정하고 문제를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할 때 사 회와 인류가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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