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독일통일의 시각에서 본 탈북귀순자 대책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의 망명사건에 이어 귀순자 홍진희 가족을 포함한 11명의 탈북 귀순자들이 홍콩에서 대기하며 서울행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급전되는 상황 속에서 젊은이들과 우리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게 되어서 뜻 깊게 생각합니다. 2년 전 독일에서 귀국하여 지내면서 저는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통일 문제 중에 잘못된 부분들이 상당히 많 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독일 통일은 흡수 통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독일이 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흡수라는 용어보다는 편입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며, 흡수라는 개념은 통일 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거론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동·서독 통일 기념식 전야제에서 잘 드러나 있습니다. 1990년 10월 3일 공식적 통일기념식을 하루 앞두고 열린 전야제에서 동독 국민들의 자유 총선에 의해서 선출된 드메지어 총리는 지난 40년간 유지되어 왔던 동독 과의 이별은 슬픔보다는 기쁨과 희망을 약속하고 있다는 마지막 연설을 했고, 그 축하연에서 동독의 세계적인 지휘자 쿠르 트 마주어(Kurt Masur)는 베토벤 9번 교향곡〈환희〉를 연주함으로써 서독과의 통일을 기쁨으로 맞이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서독이라는 큰 나라가 조그만 동독을 흡수해서 집어먹어 버린 것이 아니고 동독 국민의 절실한 욕망에 의해서 통일 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독일의 통일을 흡수통일로 단언하며 남북한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북한도 남한에게 완 전히 먹힐 것처럼 얘기하는 것을 듣고, 흡수통일이라는 개념을 바르게 정리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굳이 흡수통일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려 한다면 그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흡수통 일이라는 개념 속에는 물론 우리가 비용적 차원에서 북한을 수용하고 그 후유증을 부담해야 한다는 문제도 있지만 그것보다 는 통일 한국이 어떤 체제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속에서 흡수통일이라는 개념을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남한 의 자본주의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은 면도 있지만 그래도 이미 비효율적인 경제와 부패한 정치로 그 체제의 의미조차 상실 된 사회주의를 우리 통일 한국의 모델로 삼을 수는 없다는 의미 속에서 흡수통일을 이해해야 되며,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 은 통일 한국의 체제를 보다 더 발전된 모습으로 갖추는 데 힘을 합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자본주의 모델 가운데 독일의 자본주의 형태는 중요한 모범 중의 하나입니다. 동유럽이 전부 시장경 제 체제로 전환을 하고 소련 사회주의가 붕괴했을 때 동구권의 한 학자가 고백한 '사회' 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춰서 시장경 제 체제를 운영하는 서독 사회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사회를 그보다 먼저 건설했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회주의적' 하고 '사회적' 이라는 표현에 대해서예요. 가끔 서독의 사 민당을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당으로 오해하는데, '사회적'이라는 개념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사회적'이라는 단어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제거해 가기 위한 수단으로 '사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중요시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좋습니다. 독일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이 모든 면에서 서독보다 부족하고 모자란 점이 많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통 일을 이루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많이 하는데, 저는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는 독일보다 통일에 유리한 조건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바로 시간이고 또 한 가지는 독일 통일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선행 모델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콜 총리의 외교안보 보좌관을 했던 텔칙 교수가 작년 12월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독일의 통일 문제를 강연하는 중에 독일의 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통일 정책이나 통일 준비라는 단어를 쓸 수 없을 정도로 계속적 으로 터져 나오는 상황들에 대해서 대책을 세우고 결정을 내리기에 바빴다는 얘기를 하면서 통일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라는 게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강조하였습니다. 독일 통일후 7년이 지나고 있지만 여러 가지 부분에서 후유증이나 문제, 갈등들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통일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것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990년 7월 1일 동서독 화폐가 통합되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정치적인 요소가 강한 조치로 화폐를 1:1 로 교환토록 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있었다면 아마 서독이 그러한 실수를 범하지 않았을지 모릅니 다. 물론 콜 총리의 입장에서는 그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도 합니다. 독일의 통일을 쟁취한 동독 국민이 그에 대한 대 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며 서독으로서는 그에 대한 희생을 너그럽게 감당해야 되지 않느냐는 설명입니다. 이 문제를 두고 독일의 학계를 중심으로 크게 두 가지의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 하나는 순수 경제적인 측면으로서 당시 실질 교 환비율이 1:4에서 1:7까지가 합리적이었다는 주장으로, 화폐가 1:1로 교환되다 보니까 동독 상품의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 되어 기업이 한꺼번에 몰락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 반면, 동독 국민들의 소비성향은 지나치게 상승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동독의 모든 국민들을 서독의 사회보장제도에 그대로 편입시킨 것으로, 그로 인해 엄 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통일 이후에 서독 재정의 동독 이전 규모가 매년 천오백억 마르크에 이르게 된 것 입니다. 천오백억 마르크면 우리나라 돈으로 75조예요. 그 중에 사회보장기금으로 약 50조가 쓰였어요. 그 비용이 차라리 지금 당장 필요한 사회간접자본, 동독 지역의 시설 구축이라든지 그 외의 경제재건에 필요한 여러 가지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는 기금으로 사용되었으면 훨씬 좋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시행착오들이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동·서독 사회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대표적인 실수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러한 귀중한 시간을 우 리는 갖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연착륙이라든지 북한체제 붕괴 또는 체 제 유지론과 같은 얘기입니다. 사실 저는 기본적으로는 북한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께서 어떻 게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지금 세계사의 흐름이 1980년 후반기 이후부터 전 세계가 하나의 경제 시스템으로 통합되고 있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좋은 현상이기도 하지만, 한반도 내에 큰 위기상황을 촉발할 수 있는 현상임에도 틀림이 없습니다. 자본주의의 형태는 다르지만 어쨌든 전 세계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통합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북한식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이라는 나라가 홀로 설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현 김정일 체제가 북한 주민들로부터 정당성을 잃고 있기 때문에 미국 등에서 얘기하는 북한의 연착륙은 사실 가능치 않습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대북관에 대한 문제인데 저는 일단 북한의 주민들과 북한의 현 집권세력들을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 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북한의 지배세력에게는 철저한 힘의 우위 정책을 써야 되고 북한 주민들에게는 동포애를 발휘해 야지요. 그와 관련해서 우리나라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단계적 통일방안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내부적으로는 일단 북한에 어떤 사태가 발생하면 북한을 흡수통일한다는 방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다 만 이것이 국민들에게는 단계적 통일방안이라는 모습으로 홍보되고 있는데, 저는 여기에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 다. 국민들이 흡수통일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해야 되고, 왜 우리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지를 국민들이 이해하도록 최선 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은 통일 후 한꺼번에 분출되는 갈등과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면 국민이 주체가 되지 않는 정책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다는 것을 저는 너무나도 생생하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단계적 통일방안이라는 의미를 갖고도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많은데, 단계적 통일방안을 보면 화해 협력 단 계, 그 다음에 남북연합 단계, 그 다음이 통일국가 완성 단계인데, 화해 협력의 수단이 협상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남북이 현 김정일체제와 협상을 통해서 국가 대 국가의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협상을 할 수 있는 조건도 성립되어 있지 않은 대상과 협상을 통해서 화해 협력 단계를 거치고, 또 '1민족 2국가' 라는 남북의 연 합 단계를 거쳐서 통일국가로 간다는 것을 여러분들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통일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무조건 주장하는 차원을 넘어서 통일을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이해하며 이런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깨우쳐 가는 작업들이 굉장히 중요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국민들이 통일에는 많은 의무와 준비가 따른다는 생각 속에서 이해해야 되고,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지나치게 만연되어 있는 남한의 체제 도 좀더 건전하고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화시켜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간적 조건 이외에 또 한 가지 우리가 독일보다 유리한 조건은 역사적 선례, 즉 통일의 선례가 있다는 겁니다. 얼마전 통일원에서 13개 부처의 통일 대비 요원들을 위한 연수 강의 도중에 사민당의 에버트 재단 한국사무소장 레디히 씨는 "한국의 통일이 언제쯤 일어날 것으로 보이느냐?" 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한 것이 기억납니다. "1989년도에 통일을 가능케 했던 대규모 동독 탈출사건이 있었는데, 만약에 불과 1년 전인 88년도에 누 가 독일의 통일이 언제쯤 이루어지겠느냐고 질문했다면 나는 앞으로 반세기 내에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라 는 겁니다. 그 당시 동·서독 상황은 대립되어 있다기보다 평화로운 공존관계에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공존의 분위기가 완 전히 무르익어 더 이상 통일의 얘기조차 꺼낼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통일이 이 루어진 것입니다. 그러한 독일의 통일이 우리 앞에 표본으로 놓여 있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독일 통일의 사례를 연구하고 통합과정 속에서 어떠한 잘잘못이 있고 또 어떤 문제점들을 답습해서는 안되는가에 대한 연구 를, 늦었다고 생각하는 바로 지금부터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을 이루어 낸 콜 총리가 신랄한 비판을 받을 때마다 "만약에 두 체제통합의 선례가 있었다면 나는 지금과 같이 이러한 시행착오는 결코 되풀이하지 않았을 것이며, 문제점들을 보다 쉽게 해결해 냈을 것입니다"며 국민의 이해를 구하곤 하였습니다. 제가 각 해외 언론이 우리 통일문제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가를 조사해 봤습니다.《뉴욕 타임스》는 "북한은 연착륙을 시켜야 된다.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라고 했고,《월스트리트저널》지(誌)는 "고생하는 사람들에 게 고통을 연장시키는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북한의 약속은 신뢰할 수 없으며 붕괴하도록 내버려 두어 남한 지도하 에 통일을 해야 된다", 그리고 독일의 시사주간지《슈피겔》지(誌)는 "남한은 경제력도 변변치 않으면서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통일정책조차도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라고 보도했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독일 통일의 선례를 지나 치게 단순하게 취급하는 것은 지양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상으로 귀순자 문제 이전에 통일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안인 귀순자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선 독일에서는 귀순자를 어떻게 처리해 왔고, 그 문제를 어떻게 활용해 왔는가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귀순자 대책은 어떻게 수립되어야 하는지 생각하는 기회를 갖기로 합시다. 우리는 지금 탈북 귀순자가 공식적으로 650명 정도로 되 어 있는데, 사실 저는 귀순자 650명을 우리 사회에서 매끄럽게 소화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통일의식 이 아직까지도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독일의 경우를 보면, 1949년 분단 직후부터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까지 해마다 20만 명의, 그리고 베 를린 장벽이 세워진 이후에 10%로 감소되어 약 2만 명 정도의 엄청난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이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독 사회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건장한 청년들이 아니라 주로 60대 노약자들에게 서독 여행을 허가하여 서독에 정착하도록 유도하였으며, 서독에 살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여러 혜택을 받으며 서독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서 독 정부는 심지어 동독에서 정치범들을 사들여 이주시키기도 하였으며, 정치범 한 사람을 사들이는 데 9만 마르크(한화 약 4천 5백만원)라는 거금을 지불했습니다. 총 3만 2천명의 동독 정치범들이 이런 식으로 석방되어 서독으로 이주하였던 것입 니다. 이런 걸 보면서 똑같은 분단국이면서도 어떻게 두 민족의 통일에 대한 생각과 갈망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가! 우리 사회가 너무 여유없이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 분단국으로 있으면서 황장엽 비서가 넘어오는 상 황 속에서도 아직까지 통일의 문제를 구체적인 문제로 이해하지 않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 정부의 귀순자 문제에 대한 대책은 작년 12월에 국회에서 통과된〈탈출 북한시민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 률안〉을 근거로 점점 구체화되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중에는 99억의 예산을 들여 귀순자 수용시설을 국내에 설치키로 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저는 여러 차례 지면을 통하여 수용 시설을 러시아나 중국에도 두 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제가 구상하는 통일협상의 열쇠는 북한 주민이 쥐고 있습니다. 정당성을 상실한 현 김정일 정권은 조만간 권좌에서 물러나고 그 정권 후에 새로 태어난 정권과 통일협상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러시아나 중국 땅 에 우리가 귀순자 수용시설을 설치한다면 그 효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러시아나 중국 땅에 탈북자들을 위한 수용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가능한가? 1986년도에 소련에서 불 기 시작한 개혁, 개방의 물결을 타고 동구 사회가 술렁거렸고, 89년 당시에는 동독에서도 여행의 자유를 달라는 시위대가 차츰차츰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89년도 8월 19일에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범유럽평화축제가 개 최되어 동유럽, 서유럽의 젊은 평화주의자들이 모여서 이 행사를 하는 중에 헝가리 정부는 대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하 게 됩니다. 불과 서너 시간 동안이었지만 이때를 이용해 645명의 동독청년들이 오스트리아로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접한 서독의 겐셔 외무장관은 헝가리 정부에게 오스트리아 국경을 계속 개방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 며 통일을 향한 일대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이러한 서독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에 힘입어 그해 9월 11일 헝가리 정부는 대 오스트리아 국경을 향후 지속적으로 개방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고, 그 후 2달 만에 무려 2만 5천 명의 동독 사람들 이 오스트리아 땅으로 탈출함으로써 사태는 급진전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아직도 제대로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서독 정부가 어떻게 헝가리 정부를 설득해서 체코, 소련, 폴란드와 같은 동유럽 동맹국들의 반발을 물리치고 대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토록 할 수 있었느냐라는 의문입니다. 그 당시 헝가리의 호른 외무성 장관이 이 사건과 관련하여 고민한 내용이《슈피겔》지(誌)에 무려 7∼8페이지의 분량으로 게재된 것을 보며 그 당시 사건의 긴박함을 엿보게도 됩니다. 또한 왜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 한 한 정치인의 고뇌를 읽으면서 우리에게 일관된 의지가 있고 그 의지를 밑받침할 수 있는 세계사적 분위기들이 조성이 된다면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들이 가능해질 수도 있으리라는 역사적 교훈을 새삼 깨닫게 되며, 한반도 통일의 가능성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귀순자 수용시설을 국외에도 두자는 제안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러시아나 중국이 우리의 통일협상에 개입하는 것이 되며, 결국 정당성과 효율성이 결여된 봉건적 북한 정권보다는 우리 사회가 통일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수긍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이 과정에서 전 세계의 흐름을 바르게 파악하고 우리의 통일 정책이 그러한 세계사적 흐름을 제대로 타고 있는지의 문제에 우리의 외교력이 발휘되어야 합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사항은 통일과 관련된 비용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통일의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되는데,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막연한 태도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방법 중에 하나가 통일비용과 분단비용을 비교 검토해 보는 것입니다. 사실 분단 속에서 우리가 지불하고 있는 비용 도 그리 적은 규모가 아닐 뿐더러 분단비용은 우리가 분단상황을 극복하지 않는 한 계속 지불해야 하는 비용입니다. 우 선 통일원 예산이 360억 정도이며 국방비 예산이 약 14조원에 달합니다. 물론 이게 다 분단비용이라고 얘기할 수 없지 만 아무튼 상당 부분이 분단으로 인해 지불되는 비용일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도 그 어려운 형편에 무려 4조 원이나 되 는 국방비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 통일문제연구소와 통일 인력, 각 부서의 통일로 인해 지출되는 비용 및 각 종 통일관련 행사경비 등을 따져 보면 결국 분단비용도 엄청난 규모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분단상황 속에서 얼마나 많 은 것들을 희생시켜 왔습니까? 분단상황 속에서 우리는 자유도 양보해 왔고 우리의 사상적인 발전도 절름발이의 모습을 띨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정신적인 고통, 이산가족의 고통들도 분단비용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막연히 통일비용을 거론하며 통일준비를 지연시키는 학자나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깊은 우려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통일비용이라는 개념조차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정립이 안 되고 있습니다. 통일비용에 대한 구체 적인 개념과 기준 설정도 없이 어떤 연구소는 6천억 달러다, 어떤 연구소는 1천억 달러다, 어떤 연구소는 1조 달러라고 하는 식의 얘기만 나오고 있습니다. 독일통일조약을 완성시킨 당시의 내무부장관 쇼이블레는 동독을 통일하고 지불하는 비용은 다 투자의 개념이지 그것을 단순히 비용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외의 여러 가지 비용들이 사실은 앞으로의 이익과 함께 원금이 상환되는 투자의 개념으로 봐야 된다는 그러한 입장이 상당히 설득 력 있게 들리거든요. 우리가 통일의 시점을 우리 입장에서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면 굳이 통일에 대한 준비 문제를 그렇게 심 각하게 거론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통일의 시점을 우리는 조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언제 있을까말까 한, 아 니면 평생 있지 않을 수도 있는 전쟁 위협 때문에 1년에 14조 원이라는 막대한 국방비를 투여하고 있으면서 통일비용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본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동독 사람들이 통일을 거론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국민이다' 라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 를 주장했던 것이 공산당에 도전장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고, 이 구호는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구호로 변화되면서 통일의 열기가 무섭게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통일 모습도 물론 문화적 차이는 있겠지만 그같 은 변화 속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북한 사회에 가장 자신있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경제력이 아닙니다. 국민소득 1만 불을 달성한 사회에 걸맞은 정신적 바탕도 없이 과소비와 향락, 사치 행각에 바쁜 그러한 천민 자본주의 모습을 띠고 있는 이 사회가 경제력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북한을 능가하여 통일을 관리해 나갈 수 있습니까? 오히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 민주시민 의식과 같은 정신적 가치들이 북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 사람들에게 현 김정일 체제에 대 항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귀순자대책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에 앞서 북한의 붕괴문제를 두고 한 해외 북한전문가의 의견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북한의 붕괴에 대해 아마 북한의 황장엽과 같은 사람이 넘어온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북한은 붕괴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북한의 핵심 서열 21위라는 황 장엽 비서가 넘어온 것 아닙니까! 또 황장엽은 앞으로 자신보다 높은 서열의 핵심간부 5∼6명도 더 망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 사회에는 북한체제가 유지될 것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설사 우리의 통일이 10년 후에나 가능하다 할지라도 북한의 체제유지론은 경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와 같은 와중에서 통일 준비작업을 해야 하는 귀중한 시간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설사 10년, 20년 후에나 비로소 통일이 온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북한의 붕괴에 대비하고 이 문제를 사회여론화하여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는 합리적인 통일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민과 관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이른바 진보와 보수가 극단적인 대립을 보이는 통일정책으로는 통일 후 갈등과 부작용을 제대로 해결해 낼 수 없습니다. 구체적 대책의 일환으로 저는 귀순자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싶습니다. 귀순자는 우선 현 김정일 체 제의 불만세력이며, 행동하는 개혁세력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정말 생명을 걸고 그 체제에 도전하는 행동하는 개혁세 력들인데, 이들을 단순하게 사회의 구호대상 정도로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귀순자에 대한 물질적인 대책보다도 귀순자에 대한 올바른 생각과 태도를 갖고 대한다면 이들을 우리 한국 사회에 적응시키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동안 통일 후 교육 프로그램 등을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귀순자들이야말로 우리가 통일을 위해 서 준비하고 있던 그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을 실험할 수 있는 표본이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통일의 전략적 차원에서 이들을 취급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이건 제 개인적 인 제안입니다만, 우선 수용소 문제는 수용시설을 중국이나 러시아에 설치한다면 여러 가지 우리가 유리한 입장을 선점 할 수도 있다는 문제를 앞에서도 말씀드렸고, 두 번째는 귀순자에 대한 관리를 정부와 민간이 같이 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한 장소에 귀순자를 다 수용해서 관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저는 이 수용시설 을 전국으로 분산시키자는 겁니다. 독일의 경우, 동독의 고정간첩이 서독 사회에 통일 전에 2만 명이 상주하고 있었는데 일단 명령만 떨어지면 그들은 서독 곳곳에서 봉기할 준비까지 다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독일의 많은 전문가들 도 분단된 체제 속에서 상호 고정간첩을 상주시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안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입니다. 즉 탈북 귀순자들을 중앙에 집단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위장 귀순자 문제도 제기되는 가운 데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혼란기에는 고정간첩과 사회 불만세력이 결탁하여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 귀순자들을 선 동하여 사회혼란을 조장할 우려 또한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동독 비밀경찰의 대서독 교란 전략문서로부터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을 지방으로 분산 수용하여 국민들의 통일의식을 고취하고 귀순자 문제가 통일 전략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직접 피부로 느끼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정말 국민이 이해하지 않고 정부 와 국민이 하나가 되어 협력하지 않는다면 통일 한국은 다시 제3세계 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그런 엄청난 규모의 부 작용들이 생기는 것을 독일 통일과정을 통해 읽어야 합니다. 이제는 통일이라는 문제는 몇몇 정치집단이나 몇몇 사람들 에 의해서 조정되고 관리될 수 있는 성질의 차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통일을 이해하고 통일의 모습을 투명하게 조망할 수 있다면 통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해소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어떠한 상황 속 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보다 가까이에서 귀순자 문제를 접할 수 있도록 10여 군데 이상 분산해서 수용하고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향후대책을 협의해 간다면 앞으로의 통일대비 작 업에 굉장히 긍정적 효과를 거두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세 번째 대안은 현재 우리 귀순자 문제를 통일정책 단계에서 관리하지 말고, 통일추진 단계에서 관리하자는 겁니다. 통일추진 단계라고 해서 당장에 통일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귀순자들의 탈북문제를 서독과 같이 통일의 가능성 속에서 파악하여 좀 현실적이고 내실 있는 통일대비 작업을 하자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 사회의 통일에 대한 인식이 분단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수준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미흡한 만큼 사회의식 차원에서 통일준비도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귀순자들을 우리 통일교육 전문요원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얼마 전에 뉴욕에 서 개최된 민주평통자문회의 일정에 북한의 귀순자들이 참여하여 북한의 실정을 알리고 남한 사회의 적응문제들을 미국의 동포들에게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행사는 통일 후 남북간 사회적인 갈등을 해소하는 데 중요한 해 결책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북한 귀순자를 전문적인 통일요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통 일 후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선 통일 후 동독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은 심리적 불안감입니다. 오랫동안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되어 온 의식상태가 통일과 함께 와해되어 정신적으로 굉장히 공허한 상태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일통일 후에 가장 심각했던 문제점 중의 하나가 외국인 숙소의 방화, 테러 및 범죄 행위, 네오나치들의 세 확장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폭력적 행위를 통해서 정신적 공허감을 채우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생명을 걸고 탈출한 귀순자들이 통일 후 그들도 그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정신적 공허감에서 오는 북한 동포들의 좌절감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통일이라고 하는 커다란 파도가 서서히 밀어닥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파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세계사적 흐름과 동·서독 통일이 그에 대한 증거입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다가오는 파도에 슬기롭게 대처하여 그 희생을 최소화하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탈북 북한 동포들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모든 문제들도 그러한 맥락 속에서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