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말과 진실

여러분, 혹시 어렸을 때 빅토르 위고의〈레 미제라블〉을 읽어본 적 있습니까? 그는 프랑스의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아주 훌륭한 낭만주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극작가로 아주 좋은 드라마 대본을 많이 썼습니다. 파리 시내의 거리 중에 빅토르 위고 거리가 있을 정도로 빅토르 위고는 지금까지도 프랑스에서 정신의 아버지로서 추앙을 받고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아주 멋진 말을 했어요.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시는 어머니 뱃속에서 10달 동안 있다가 나와서 처음으로 이 세상에 대고 우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응애응애응애, 여러분 그렇게 울고 나왔지요? 그런데 어떤 전기를 보면 '태어나서 그는 울지 않았다', 이렇게 나옵니다. 특별한 인간으로 규정하기 위해서지요. 아무리 그래도 물리적으로 울지 않을 수가 없어요. 울지 않으면 두 발목을 잡고 무작정 볼기를 때리는데 별 수 없이 으앙 하고 우는 거지요. 바로 그 첫 울음소리가 이 세계에 존재로 태어나서 최초로 세계에 메시지를 보내는 겁니다. 그런데 그 울음소리 응애응애응애 이거 야말로 가장 위대한 시다, 이렇게 말한 사람이 빅토르 위고입니다. 그 이전의 고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있었던 시학, 시에 대한 모든 학문들이 크게 허점을 찔린, 새로운 시에 대한 의미를 말해 준 거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여기 앉아 계신 신세대 젊은이들, 엄마한테 들어서 자기들이 울었다는 기억은 갖고 있지요? 위고의 시론을 적용한다면 여러분들은 위대한 시를 한 편 내지 여러 편을 쓴 시인이에요. 나는 지금 위대한 시인들과 함께 만나고 있고, 바로 이것을 행복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지금까지도 시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가? 그건 아마도 세상에 나와서 시원찮게 졸렬하게 우니까 삼신님이 너는 평생 시인 노릇이나 해라 하는 종신형을 선고해서 지금까지 시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위대한 시인들 앞에서 졸렬한 시인이 오늘 이 자리에서 시와 관련된 얘기를 하는 것도 내 종신형의 한 부분으로 이렇게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인생을 간단히 얘기해 볼까요? 인생을 딱 세 마디로 얘기합시다. 태어나서 무엇과 만나고 죽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만남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첫째, 실존적으로 누구와의 만남, 무엇과의 만남이 있습니다. 남녀관계뿐 아니라 그 사람을 우리가 알고자 할 때는 그의 친구를 보라는 격언처럼 누구하고 만나느냐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한자로 인(人)자가 버텨져 있는데, 이것은 혼자 고립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네 발로 다니다가 직립할 때 얼마나 황홀했을까요? 그런데 직립 인간이라고 해서 독립된 것이 아니라 무엇과 무엇에 의지해야 되는 거예요. 인간은 매우 근원적으로 상대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지요. 인간(人間)이란 사람으로도 모자라서 사람과 사람 사이로,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람의 관계로서의 인간인 겁니다. 인간이라는 의미 속에는 누구와의 만남이 있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시간과의 만남이 있지요. 지금 우리가 1997년에 살고 있는데, 만약 여러분이 1987년에 살고 있다면 여기에 전경이 있고 최루탄 쏘고 하겠지요. 10년 전만해도 시간과의 만남이 그렇게 차이가 납니다. 또 16세기에 여러분들이 태어났다고 한다면 여러분이 이렇게 공부할 수 있겠습니까? 일본놈이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쳐들어와서 예쁜 처녀를 겁탈하고 이렇게 씩씩한 청년은 포로로 잡아가거나 죽이거나 전부 그랬어요. 그리고 앞으로 몇 세기 후에 여러분이 태어난다고 한다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새로운 문명 앞에서 여러분은 도전 받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 어느 시대, 어느 시간과의 만남이 인간을 규정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의 만남이 있어요. 공간과의 만남입니다. 해공 신익희 선생이 옛날에 창립한 이 유서 있는 대학에 여러분들이 학생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이 북쪽 함흥이나 그런데 가서 공부하고 있다면 여러분 지금 라면이라도 먹고 공부하겠어요? 또 중부 아프리카에 지금 산다고 생각해 봐요. 피난 다니다가 총 맞아 죽고 하지요. 그렇게 장소에 따라 다릅니다. 1970년대 초에 펜클럽 국제대회를 우리나라에서 했는데 미국의 소설가 존 업다이크와 얘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 첫마디가 자기는 영어로 쓰는 소설가라 참 행복하다고 그래요. 세계 어디를 가든지 자기 작품이 통하니까요. 그것은 즉 그 작가가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영어로 쓰는 작가가 된 거지요. 이렇게 장소에 따라서 공간과의 만남에 따라서 운명이 달라져요. 민들레 날아갈 때 보면 거기엔 아무 의지가 없지요. 이런 우연처럼 운명도 우리가 알 수가 없는 어떤 것으로 이해됩니다. 만약에 시궁창에 홀씨가 떨어졌다면 더러운 냄새 맡으면서 민들레가 피고, 또 바위에 내려앉았다면 그 틈에서 뿌리를 내려 가지고 척박하게 민들레꽃이 필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사물과의 만남, 시간과의 만남, 공간과의 만남 이 세 가지 만남에 의한 종합적인 만남의 존재로서 여기에 있다고 얘기할 수가 있겠지요. 우리나라 지금 어떻습니까? 대단히 어려운 시대입니다. 또 휴전선 너머 북한에 우리 동족이 살고 있는데, 거기도 지금 대단히 어렵습니다. 나는 이 분단 체제를 40년 이상 살아오면서 이제는 어느 한쪽만이 잘되고 잘못되는 그런 시대가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커다란 규모의 민족적 대성찰이 우리 민족의 위기를 함께 극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에 카오스 이론을 적용해 봅시다. 카오스 이론이라는 것은 쉽게 얘기하면 모스크바나 체르노빌 이런 데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 그것이 몇천 킬로 떨어진 북동 아시아 한반도에 와서는 커다란 폭풍으로 변한다는 겁니다. 이런 카오스 이론을 우리 민족에게도 적용한다면 이제는 저쪽에서의 참변이 남의 일이 아닙니다. 흡수통일하면 우리는 못 견딥니다. 나는 1960년대 후반부터 통일을 노래하고 주장해서 그걸로 감옥도 간 사람인데 지금은 빨리 통일하자보다는 어떤 통일이 우리에게 창조적인가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함부로 통일하자고 할 용기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카오스를 앞두고 살고 있는 거예요. 진정한 나의 행복을 위해서는 내 옆에 불행이 있어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북쪽의 행복도 늘 생각하는 정치 과학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인간이 만드는 역사, 또 인간이 만드는 사회 이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만들어진 역사, 만들어진 사회를 살고 있는 데 대한 우리의 창조적인 저항이 필요하다는 경고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부모가 있고 여러분의 선생님이 있고 학교 건물이 있어서 여러분이 여기 존재합니다. 이것은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 끝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인류 조상은 수메르 저기 중앙아시아 쪽에서 동으로 동으로 해를 따라서 흘러왔습니다. 평상시 안정된 시기에는 그 집단의 연장자가 지휘력이 있고 오랜 체험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떠날 때는 역사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인을 파묻고 18세 청년이 앞장섭니다. 고구려의 후예, 신라의 화랑, 백제의 청소년 집단들이 이를 상징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면모는 근세도 마찬가지로, 3·1 운동 때 33인의 위인들이 기생집에 앉아서 독립선언서 낭독하고 파고다공원에 있던 청년들이 달려와서 "선생님들, 파고다공원으로 가서 만세 삼창하자"고 했을 때 가지 않고 잡아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어쨌거나 학생이 파고다공원에서 만세를 부르기 시작한 거예요. 학생은 한국 근현대사를 주체적으로 운영해온 운동의 실체이며, 역사의 실체입니다. 6·10 만세 사건, 광주학생운동, 4·19 혁명까지 심지어 1970년대, 80년대까지 학생들이 수많은 피를 흘리면서 한 겁니다. 이렇게 서 있는 나도 비겁하게 수십 명의 핏덩어리 시체들 추도시만 읽어 온 사람이에요. 그러나 여러분에게 오늘날 주체가 되기를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젠 여러분의 힘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우리 국민 전부가 총체성을 형성해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포스트 모던 시대가 무엇입니까? 그 동안의 역사를 해체하는 현상이 있는 것일 텐데, 이것은 역사를 전부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총체로서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있는 하나의 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 전부가 함께 책임을 지고 함께 껴안아서 이 민족적인 대난국을 헤쳐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드는 사회, 인간이 만드는 역사라고 하는 것은 기하학적인 구축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와 동시에 시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꼭 환기시켜 주고 싶습니다. 기하학적이라는 건 무엇입니까? 논리적이고, 이론적이고, 과학적인 것이에요. 그런데 이것 말고 시적인 것, 비논리적인 것, 전혀 난데없는 상상성 이런 것으로 우리의 사회, 역사가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시적인 인간들이 만드는 겁니다. 소설가나 시인들이 유토피아를 꿈꾼 것이 오늘날 과학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만들어진 컴퓨터니 하는 것들은 다 옛날에 꿈꾸던 거예요. 그때는 저 사람 헛소리하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아무런 설득력도 없었어요. 그러다가 그것이 씨가 되어 오늘날은 하나의 현실로서 우리의 문명을 압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인이라고 하는 것이, 시적인 것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여러분과 함께 얘기하는 게 오늘 내가 여기 온 목적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인도의 마하마라타, 희랍의 일리아드 오딧세이, 중국의 시경, 조사, 중동의 길가메히 모두 기가 막힌데, 이런 것들은 아주 낡은 것이지만 오늘날 읽어보면 새로운 의미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D. H. 로렌스라는 유명한 소설가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고대 춘추시대의 공자, 인도의 석가모니, 또 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또 예수 이런 사람들이 남겨 놓은 메시지가 오늘날도 막강한 유효성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이 사람들이 국민대학교를 나왔나 무슨 대학교를 나왔나? 아니거든요. 그들은 인류 이전의 지혜를 받아서 우리에게 계승시켜 주었다는 게 로렌스의 하나의 추정논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만남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시간, 공간과의 만남이 있는데, 시간 속에는 고대에 있었던 진리와의 만남도 들어 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겁니다. 인간에게 있어 말이란 주체를 대신하는 행위입니다. 초기 일제 점령하에서는 국권, 재산권, 여러가지 인격권 등 모든 주체를 상실한 상태였지만 주체를 대신하는 서술 주체인 우리의 언어가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어요. 그러니까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망해도 말이 있는 한은 우리 주체가 남아 있는 겁니다. 그 당시 초등학교에 국어로 일본어가 있고 조선어가 처음에는 있다가 나중에는 없어졌어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조선어 시간이 없어졌는데, 주체를 창조적으로 대행해 주고 역사적으로 대행해 주는 바로 이 서술 주체를 없앴던 겁니다. 즉 말은 역사 속에 있는 삶인 것인데 내가 쓰던 말이 없어지면 역사 속에서 나는 죽어 버린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또한 말은 존재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이데거라는 독일 실존철학자의 글을 보십시오. 우리의 말 한마디는 우리의 실존성, 우리가 존재하는 것 자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말 못하면 존재 자체가 증명이 안되는 겁니다. 그 다음, 언어는 우리 세상을 마무리하는 세계성입니다. 프랑스 이론의 문체론에 '글은 그 사람이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는 1980년대 서울대《대학신문》에 이 말을 인용해서 말이야말로 그 사회 전체가 만들어 낸다고 하는, 언어의 사회성에 의미를 둔 글을 썼었습니다. "글은 그 세상이다. 그 사회다. 다시 말하면 그 시대에 어떤 말이 있고 어떤 글이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그 시대 전체의 비밀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단테의 신곡은 단테 고향의 사투리로 썼습니다. 그때 라틴어를 쓰지 않으면 요새 말로 국가보안법을 어기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주 핍박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탓에 오늘날의 이탈리아 문학의 고전으로, 세계 문학의 근원으로서의 단테가 있는 겁니다. 중세의 루터는 종교 개혁하면서 과감히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합니다. 위대한 작업이지요. 그리고 괴테가 우아한 시를 써서 독일어를 발전시켜서 오늘의 자랑스러운 독일어로 만든 겁니다. 영어는 옛날에는 형편없는 민족들의 사투리였는데 초서(G. Chaucer)가 약간 발전시켰고, 셰익스피어가 비극 쓰고 희극 써서 발전시켜 오늘날의 영어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어도 푸슈킨과 같은 사람의 문학작업을 거쳐 오늘날의 러시아어가 된 겁니다. 우리도 세종의〈월인천강지곡〉이 있고 또 저 후대에 와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그는 비록 한글을 쓰지는 않았지마는, 이념을 고치고 해서 모든 걸 주체화시키고 민족화시켰습니다. 조선 500년의 인문, 사회, 자연 학문을 완성하고 죽기 얼마 전에 마지막 시 하나 쓴 것이 있는데, 그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아희조선인, 간작조선' 이라는 건데, 의역하면 '나는 조선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조선의 노래를, 시를 지을 뿐이다' 라는 것입니다. 중국의 이태백, 두보, 소동파, 백낙천 이런 것을 흉내내지 않겠다는 뜻이지요. 아무튼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아오면서 우리 자신을 만들어 오는 과정에서 말 한마디와 그 말에 얽힌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많은 단련과 고행을 통해서 오늘의 우리를 이루었나를 생각할 때, 말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동네에 한 할아버지가 살았는데 그 할아버지가 어느 날은 아파서 손주놈 보고 약을 사 오라고 시켰어요. 그런데 이놈이 급한 나머지 "할아버지 감기약 사가지고 갔습니다" 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 할아버지가 "이놈아 '갔습니다'가 아니라 '왔습니다'야" 이렇게 말 한마디하고 약도 못 먹고 죽었어요. 말 한마디를 고쳐 주고 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 할아버지는 거룩한 일을 하고 죽은 성인군자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말 한마디를 우리가 쓸 때 참으로 소중하게 쓰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