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우선, 간혹 강단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나오더라도 얘기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이해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1세기 위원회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주라기 공원〉의 수입이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해서 얻은 수입과 같았다는 보고를 했었죠. 그때부터 대기업부터 문화체육부까지 갑자기 영화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요즘도 물론 신문이 영향력이 있지만 1970년대 신문의 영향력과는 다르지요. 1980년대부터는 사람들이 TV 9시 뉴스를 보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거든요. 얼마 전에 제 딸한테〈죄와 벌〉을 읽힐까 하고 옛날에 제가 읽던 책을 꺼내 봤더니 글자가 엄청나게 조그맣고 제가 봐도 읽히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걸 읽으라고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나중에 영화가 나오면 보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터넷과 같은 정보망도 결국 영상이고 하니 앞으로는 영상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문화도 얘기 될 수 없을 겁니다.

또 하나, 이를테면 마이클 잭슨이 앨범을 낸다고 할 경우 전세계적으로 동시에 발매를 해서 한꺼번에 히트를 치도록 합니다. 그러니까 전세계가 완전히 동일문화권으로 바뀌어가는 것이지요.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정체성을 지키고 살려면 우리 문화를 가꿔 나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중국 영화가 최근에 각광 받으면서 중국이란 나라에 대한 전세계의 인상이 달라진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프랑스를 문화적인 나라라고 느끼고 있잖아요. 미국이 아무리 많은 영화를 만들어도 문화적인 국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그것이 바로 프랑스 영화의 힘이거든요. 요새 대기업들이 기업이미지 광고를 하잖아요. '우린 나무를 많이 심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 회사의 이미지를 높여서 실제는 상품을 많이 팔겠다는 것인데, 영화가 그런 식의 국가이미지 홍보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이문열 선생님이 굉장히 뛰어난 글을 쓰시는데, 그 작품들을 번역해서 외국에서 출판을 하는 것보다〈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같이 영화로 만들어 보여주면 좀더 효과적일 수 있겠지요. 기업이미지 광고의 개념으로 본다면, 그러니까 한국이란 나라는 싸구려 물건을 만드는 나라라는 인상을 주고 있는데, 우리가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 보여줄 능력이 있으면, 우리를 보는 시각이 달라져 이미지가 높아지게 되고, 그러면 수출에도 도움을 주게 될 겁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방면에서 영화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죠.

많은 분들이 우리 영화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반면 동시에 비판을 하고 있는데 특히 스크린쿼터제와 대종상에 관한 논란이 많습니다.

먼저 스크린쿼터라는 것에 왜 그렇게 목매달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관객분들께서 "영화를 재미있게 못 만들면서 왜 한국영화를 보라고 주장을 하느냐"고 우리를 야단칩니다. 대략 365일 중에서 130일 내지 100일 정도는 의무적으로 한국영화를 상영하게 되어 있죠. 그런데 제 경험을 보면 제가 지금까지 13편의 영화를 했는데 서울에서 관객 15만 명을 넘긴 영화 6편 중에서 3편이 관객이 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영화 개봉 때문에 간판을 내렸어요. 영화 평균 흑자상영률이 평균 15% 정도인데 그 절반이 저와 같은 경우를 당하면 7.5%만 흑자가 난다는 뜻이고, 그러면 국내 영화산업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재미있고 힘이 있으면 버틸 것이 아니냐구요? 영어를 쓰는 수십억 인구를 상대로 영어로 영화를 만드는 것과 4천 5백만 시장에 우리말로 영화를 만드는 것과는 시장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경쟁을 하려야 할 재간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에 우리 한국 문화를 홍보하는 매체로서 우리 영화를 버티게 해줘야 된다는 면에서 스크린쿼터제가 있어야 된다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영화상과 관련되어 영화계에서는 늘 말썽이 납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이를테면 일년에 한국 영화가 평균 60편 정도가 만들어지는데, 대종상, 청룡상의 작품상 후보에 올릴 수 있는 수준의 작품이 대략 5편에서 10편 정도 나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9편 정도가 정지영 감독 이하 젊은 세대가 만들어 내지만 영화계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젊은 사람들의 숫자가 10%가 안됩니다. 그런데 감독, 배우, 제작자, 극장주, 배급업자의 이익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영화계에서 돈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뜻대로 영화계를 몰아갈 때 우리는 투표로 저항할 방법이 전혀 없어요. 그러니까 돈 앞에 명분은 말짱 헛것으로 영화계가 한심한 일들을 하더라도 우리로선 대책이 없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인데 우리로선 어쩔 수 없다는 점을 여러분들이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영화의 현실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왜 우리 영화가 이 수준이냐? 그것은 그 동안 우리 영화를 이렇게 만들어 온 역사를 살펴봐야 알 수 있겠죠? 제일 핵심적인 문제가 1961년도 5·16 이후에 영화법이 개악되어서 뭔가 해보기 힘들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만약에 노동자들이 운동장에서 불만을 얘기하고 그 다음 컷이 건물에서 두 사람이 운동장 쪽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 두 사람이 경찰과 사장이라면 검열에서 잘려 나가요. 이유는 정경유착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또 어떤 작가한테 들은 얘기인데, 전라남도 농촌에 사는 홀어머니가 월남전에서 죽은 외아들의 뼈를 받고 우는 내용인데 촬영장에 갔더니 경상도 말을 쓰더래요. 전라도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방송하면 민심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원작대로 전라도 말을 못쓰고 경상도 말을 썼던 게 우리 방송과 영화의 현실이었거든요. 6월 항쟁 후에 약간 완화가 되는 듯하다가 1992년 이후, 물론 국가보안법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옛날에 비해서 엄청나게 풀렸습니다. 결국 30년 동안 검열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영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니깐 창녀가 된 얘기나 아니면 '좋아졌네 꽃피는 팔도강산' 식의 이런 영화들밖에는 찍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의욕을 가지고 다시 시작해 보려고 뉴웨이브 움직임이 시작될 때 외국영화 직배를 허가했습니다. 그러니까 몇십억을 상대로 몇천억 원을 사용한 영화와 4,500만을 대상으로 십억 원으로 만든 영화를 1 대 1로 경쟁하라고 하니까 우리로서는 굉장히 난감해진 거지요. 어느 산업이나 처음 시작할 때는 정책적으로 보호해 주는 기간이라는 것이 있는데 영화는 그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문화사 쪽에서 해야 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만, 195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계가 문화계 안에서 같이 활동했답니다. 문단 분들, 그리고 미술, 음악, 영화 하는 사람들이 명동의 '은성'이라는 주점에 모여서 같이 늘 토론했다고 하는데, 영화계가 탄압 받기 시작하면서 슬며시 쓰레기문화로 빠졌구요. 그리고 최근까지도 문화계의 주도세력은 민족작가회의였는데, 사실 우리 역사가 해방 이래 정치적인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지식인들이 개인의 심리나 개인적 삶의 소중함이나 성격 갈등을 그리는 드라마 이런 쪽에 관심을 한가롭게 가질 수가 없었던 거지요. 1980년대 초반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부터 슬며시 문화적인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문화계는 6공 정권까지도 계속해서 민주화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거기서 오랫동안 대중의 문화소비 감각과 문화 종사자들의 그것 사이에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6공 정권까지만 하더라도 대중들이 보고 싶고, 읽고 싶은 것이 따로 있지만 문화 종사자들이 전선에 서서 싸우고 있는 일에 공감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그냥 억지로 참고 바라봐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그간 억압되었던 문화에 대한 소비욕구들이 폭발력을 가지고 분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영화 쪽으로 생각을 하자면 아마도〈결혼이야기〉가 최근의 대중 소비 감각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경우에 해당되겠지요.

그 다음 또 하나, 영화가 발전하는 데 우리 사회의 집단의식이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재미있는 얘기로 LA 쪽에서 한 연극과 교수가 유학생들, 1.5세, 2세들과 함께 이철수 사건을 가지고 연극을 해봤는데, 협동이 안 돼서 고민을 하다가 30명 전원한테 이름과 생년월일을 써내라고 해서 그 생년월일 순서별로 나이를 정리해 준 다음에 "동년배끼리는 말 놔! 하나 위는 형이라고 그래, 존댓말 해". 이렇게 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작업이 순조로웠답니다. 우리는 장유유서에서 편안해진다는 얘기죠. 게다가 우리의 사회는 500년 동안 충효를 바탕으로 한 유교 사회였는데, 효도의 의미가, 아버지와 내가 개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관계가 있고 거기에 부자 관계가 얽히는 것이 아니라 부자 관계만 남아 있는 거지요. 여러분들 중에 정말 아버지하고 허심탄회하게 토론을 해본 사람들이 얼마나 계세요? 그러니깐 우리가 충효나 장유유서를 강조하면서 집단으로 움직이는 스타일이 결국은 개성과 심리와 성격에 의해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다양하고 개별적인 드라마를 만들어 내지 못하게 하는 풍토를 형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난번에 제가 뉴욕 인권영화제 때문에 뉴욕에 가서 케이블 TV를 무심히 보다가 놀라운 점을 발견했는데 쇼가 됐든, 퀴즈 프로가 됐든, 뉴스가 됐든 그 진행자들의 옷이 대부분 정장인데 윗저고리 단추가 세 개짜리도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그런데 우리 방송 한 번 보세요. 이제는 단추가 세 개가 아니라 4개, 5개까지 달잖아요. 그러니깐 유행이 한 번 왔다 하면 완전히 휩쓸어 버려요. 튀지 않고 중간에 끼여 있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죠. 앞으로 튀면 감옥 가는 것이고, 뒤로 처지면 형제복지원에 가서 죽는 거잖아요. 이렇게 우리는 개성이 없는 문화가 되어 온 거죠. 앞으로 그야말로 생산적인, 건설적인 개인주의가 필요하다고 봐요.

제가 지금까지 몇 가지 말씀드린 걸 정리해서 우리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를 생각해 보면, 제일 중요하고 치명적인 것은 역시 스크린쿼터제입니다. 스크린쿼터제가 없어져서 아예 자국 영화가 없어진 나라들이 대단히 많아요.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아예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본의 논리에 극장이 예속되기 때문에 한국영화가 거의 소멸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이 돼요. 이를테면 태흥영화사가 크고 익영영화사가 크다고 하지만 각 영화사에서 1년에 세 편 이상은 못 만들거든요. 그런데 UIP는 미국영화사 5개가 뭉쳐서 만든 배급 회사로 1년에 공급할 수 있는 영화가 수백 편이 넘거든요. 그러니깐 우리 영화가 아무리 좋아도 1년에 두세 편 정도 상영하는 것으로 1년 동안 극장을 메울 수가 없으니까 UIP하고 극장주는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될 경우에 한국 극장들은 미국 영화의 임대업소가 되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 한국영화는 없어집니다. 복잡한 얘기지만 아무튼 스크린쿼터제를 철저히 지켜내는 것이 그래서 가장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교육입니다. 우리나라 국립대학에 연극영화과가 단 하나도 없어요. 우리 학계가 갖고 있는 광대 천시경향 때문에 학과를 만들지 않는다는 거죠. 장기적으로 10년만 내다보더라도 교육을 나라에서 해줘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이 자리에 온 것은 여러분들이 영화라는 것을 너무 멀리 생각하지 말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여러분들은 학생 때 스틸 사진기조차도 가질 수 없었던 저희 세대와는 영상을 대하는 개념이 전혀 다르잖아요. 영상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열려 있고, 결국 열려 있는 사람들 중에 영화작가든 배우든 시나리오 작가들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건데, 영화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아요. 작년인가〈총잡이〉라는 영화가 나왔어요. 그게 학교 갓 졸업한 사람 몇이 모여 앉아 자기네들끼리 대본을 하나 써서 영화사에 갖고 온 거예요. 그냥 한 번 보시라고. 그걸 김의석 감독이 우연히 지나다가 굴러다니는 걸 본 거지요. 여기 영화 동아리 있지요. 거기서 그냥 한국영화 거지같다고 씹고만 있지 말아요. 보고 씹으면 그걸로 끝이에요. 씹어서 그걸 다시 작품으로 만들어 보세요. 별거 아니에요, 영화라는 거. 타란티노가 비디오가게 점원이었잖아요.

저도 그래요. 지금 제가 영화계에서 하고 싶은 일들 중에 하나가, 대본은 좋은데 제작자들이 망설이는 것들 꼭 영화로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재능이 있는데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들이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여균동 감독하고〈세상 밖으로〉를 만들었고, 지금〈초록물고기〉를 이창동 감독하고 그렇게 만들고 있는 중이에요. 그러니까 지금은 대본이 좋으면 제작이 가능하다는 얘기죠.

여기 감독을 하고 싶은 분들이 계시잖아요. 지금 비디오로 찍으세요. 조명 비용이 없으면 야간 장면은 없애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생각은 있지만 여건이 안된다거나 돈이 없어 안된다는 건 순 거짓말이에요. 감독하고 싶은 사람, 대본 쓰고 싶은 사람, 배우하고 싶은 사람들 영화동아리 중심으로 모여 짧은 영화대본 써 가지고 비디오로 찍으세요. 그래서 삼성영상사업단에서 1년에 한 번씩 하는 단편영화제에 내세요. 거기 당선된 임순례 감독이 삼성에서 돈 받아서〈세친구〉라는 영화를 찍었어요. 대본에 대해서도 겁을 먹지 말고 써서 영화사에 우편으로 부치세요. 영화는 어려운 분야가 아닙니다. 여러분들 용기를 갖고 작업을 해서 현장에서 만납시다.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