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21세기와 여성의 사회참여

제가 언론계, 국책연구기관, 그리고 또 장관으로 일을 하면서 일관되게 다루어 온 것이 여성과 관련되는 부 분이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적어도 21세기에는 남녀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공동으로 책임지는 사회가 되어 야 우리나라가 세계 중심국가가 될 수 있으며, 경제력에 걸맞은 탄탄한 문화를 기조로 하는 나라가 될 수 있 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간 제가 일해 온 경험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했던 1959년은 전쟁의 상처가 군데군데 남아 있던 시절로 우리는 대학을 졸업해도 갈 데 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저로서는 취직할 데가 마땅치 않았고, 여자인 탓에 더욱 힘든 상 황이었습니다. 옛날에 힘이 없는 사람은 죽을 때도 '빽' 하다가 죽는다고 할만큼 빽이 필요했던 그런 시대였고 제가 택할 수 있는 길은 공채로 나가서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길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저는 졸업할 즈음부터 는 신문광고를 들여다보는 것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신문에 직원모집 광고가 나는 일이 드물었지만 어느날 《동아일보》에서 기자를 공채한다는 광고가 나왔습니다. 정말 수험생이 구름떼같이 모였는데 그 중에 다행 히 제가 뽑혔습니다. 여성의 고등교육을 그저 결혼하기 위한 패스포트 정도로 생각했던 그때의 상황에서 사 회진출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저도 약간은 엉덩이에 뿔이 난 여자였지요. 그러나 저는 사회진출이 생존과도 같은 아주 절박한 문제였기 때문에 그 길을 택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것을 시작해서 농업 중심에서 공업국으로의 전환이 이루어 지고 있었습니다. 이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굉장히 급속하게 변하고 있는데,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것이 바로 우리 여성들입니다. 공업화 사회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의 여성을 울타리 밖으로 몸은 못 끌어내더라도 적어도 얼굴의 방향은 돌리도록 변화시켰습니다. 당시 저는 60년대 이후 우리나라 여성들이 겪는 큰 변화를 기자라는 입장에서 추적하고 분석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60년대에 우리나라 공업화 정책의 기본 틀이 저임금을 활용한 대량생산과 수출드라이브정책이었기 때문 에 낮은 임금을 줄 수 있는 계층으로서의 대상이 바로 연소한 근로자, 그 중에서도 여성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여성은 일꾼이 아니라 집에서 일을 배우다 시집가는 존재로서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대개 집에 서 노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버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생각으로 권했습니다. 즉 집안 일이나 하는 무임 노동자 인 여성을 사회로 끌어내서 봉급을 주는데 어떻게 남성과 동등한 봉급을 주느냐는 겁니다. 또 당시의 가정은 자녀수가 많고 재정이 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들만 교육을 시켰습니다. 딸들은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 문에 막상 노동시장에 나가려고 하면 여성은 저학력, 단순 기능이니 저임금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여성들은 60년대부터 저임금을 받아가면서 그나마 사회 참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공업화 사회로 전환되면서 여성들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출산의 선택 입니다. 그 이전까지 출산이라는 것은 숙명적으로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961 년부터 우리나라는 이른바 가족계획정책, 그러니까 산아제한정책을 국책으로 받아들입니다. 한 쪽에서 아무 리 벌어도 그것을 소비하는 입이 많은 상황에서는 남아날 게 없지요?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입을 줄이는 정책 을 도입한 것이고, 또 하나는 공업화 사회로 가면 갈수록 고급 인력이 필요한데, 무작정 낳아 놨다고 인력다 운 인력이 되지 않으니 인구 억제와 동시에 한 인간에게 보다 집중적으로 투자해서 그로 하여금 공업화 사회 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기르자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여성들의 생활을 엄청나게 변화시킨 요인이 되었 다는 것입니다.

결국 공업화 사회는 도시화를 가져왔고, 또 여성의 경제참여를 활성화했으며, 이와 더불어 가족계획은 여 성들을 자녀 양육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출산이 선택되지 않았던 시절에 우리 어머니들 은 결혼하면 그때부터 출산하기 시작해서 단산이 자연적으로 오는 40대 초반까지도 출산을 했습니다. 자녀 수가 많아서 5∼6명이 보통이었고, 저 같은 경우에는 형제가 10명이었습니다. 그 10명을 기른다는 것이 공부 시키고 옷 해 입히고 할 겨를도 없이 그냥 내버려두면 알아서 크겠지 하는 식이었지요. 양육자인 어머니 입장 에서 보면 인생, 삶의 질 이런 것들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야말로 자녀 양육하는 것에 자기 일생을 다 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족계획을 통해서 출산을 자기가 선택하고 조절하게 되면서 여성들은 전혀 다른 상황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40세가 넘어서 단산하던 우리 어머니 세대하고 30세에 단산하는 여러분 세대하 고는 자녀 양육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여성들이 30세 넘어 33세만 되어도 아이로부터 조금씩 떨어져서 자신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평생 자기 시간을 갖지 못하고 아이한테 휘말려서 계속 사는 여성하고 33세부터 아기를 약간씩 떼어놓으면서 자기를 성찰해 볼 수 있고, 자기 발전을 위해서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여성들하고는 삶이 전혀 달라지는 겁니다.

게다가, 가사노동이 얼마나 많이 기계화되었어요. 옛날에는 베를 짜서 옷을 해 입고 사흘도 안돼서 그걸 다 시 다 뜯어서 삶아 양잿물에 빨고 풀을 먹여서 다시 만들어 입었어요. 그 대식구의 옷을 다 빨아서 다시 한다 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만으로도 여성이 자기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어요.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좋아요. 남 자가 코드 꽂아도 기계는 돌아가고, 전기밥솥에 타이머까지 있어서 시간 되면 밥도 해주는 세상이 되었는데, 가사노동의 기계화 때문에 옛날 우리 여성들이 투여했던 가사노동 시간의 1/10만 갖고도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또 평균수명이 얼마나 길어졌습니까? 제가 지금 환갑노인인데 청년같이 보이지 않으세요? 여러분이 나보 고 할머니라고 하면 내가 펄쩍 뛸 일입니다. 마치 인생은 지금부터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일을 하고 있는 데, 65세, 70세까지도 가능하고 건강관리 잘하면 75세까지도 너끈히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막내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는 35세를 기준으로 해서 65세까지만 봐도 30년의 기간이고, 욕심을 내서 75세까지 본다면 40년의 기간인데 이 기간에 우리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해 가는 세상에 지금도 여자에게 '공부는 시켜 줄 테니 취직하지 말고 집에 들어앉아 있거라. 취직하려면 보조역이나 해라' 한다면 우리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가 되겠습니까? 옛날에는 일은 선택이고 결혼은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결혼도 일도 선택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자녀를 안 가져도 된다는 생각까지 할 만큼 우리의 가치관이 변하고 있습니다.

60년대 여성들이 세상에 나와 보니까 얼마나 벽이 높은지요, 아무리 일을 잘 해도 여성은 영원히 단순노동자이고 감독은 모두 남자였습니다. 여성들이 남녀차별의 벽을 절감하면서 70년대부터는 여성의 노동운동이 아주 활발해지고, 또 여성단체들도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여성 정책을 개발하라는 요구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시기에 세계도 같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1975년이 무슨 해인지 아십니까? UN이 정한 '세계 여성의 해'입니다. 1975년을 UN이 여성의 해로 정한 이유를 살펴볼까요? 인류 사회의 평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UN 창설의 목적인데, 남녀가 다 함께 발전하는 사회가 되지 않고는 인류 사회가 궁극적인 평화를 이룰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먼저 UN은 1947년 UN 내에 UN 여성지위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 위원회에서 여성들의 발전과 남녀평등을 위한 법률안 같은 것을 권고안으로 UN총회에 내놓으면 그것을 채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위 위원회가 2년마다 한 번씩 열려서 권고안을 내도 세계 각국 정부들의 움직임이 별로 없자 UN총회에 건의해서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정해 모두 모여 여성문제를 논하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1975년에 멕시코에 모여서 제1회 세계여성회의를 열었는데, 이념은 평등, 발전, 평화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이념입니다. 이 이념 아래 10개년 행동계획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1975년부터 1985년까지 각 나라마다 정부는 정부대로, 단체는 단체대로, 이 행동계획에 따라서 법을 바꾸고, 관행을 바꾸고, 문화를 개조하자고 했습니다. 국내적인 요구와 세계적인 요구가 맞아떨어지는 그러한 내용이었죠.

그러나 이러한 세계 여성의 해가 열리고 10년 행동 결의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그렇게 금방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5년이 되는 1980년에 코펜하겐에서 제2회 세계여성회의가 열렸습니다. 5년 동안을 점검해 보니까 별로 변한 게 없어서 남은 5년 동안에 정말 획기적으로 남녀평등 사회로 갈 수 있도록 인류 사회를 변화시키는 계획을 코펜하겐 대회에서 또 내걸게 되었던 겁니다. 한국 정부 대표는 그 중에서도 특별히 정부 차원의 기구를 만들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 약속된 결과에 따라서 1983년에 한국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문제를 연구하는 국책연구기관이 등장했는데 그게 한국여성개발원입니다. 국책연구기관이 생기고 같은 해에 처음으로 여성정책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정부 기구에 쓰는 여성정책심의위원회를 정부 내에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계속 유지시키면서 80년대 후반에는 법을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중요한 부분인 가족법을 개정하게 됩니다. 가족법은 1962년, 1977년, 1989년 세 번에 걸쳐 바꿨는데 가장 중요한 기본 틀을 이루고 있는 것은 가족법상의 남녀차별을 철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은 친족 범위를 정할 때 아버지 쪽하고 어머니 쪽하고 기준이 달랐어요. 즉 부계 중심의 가족에서 양계로 바꾼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가족이 남녀차별 가치관의 영향하에 있으면 우리가 그 속에서 사회화되기 때문에 사회가 아무리 법을 바꾸어도 평등하게 될 수가 없는 겁니다.

1989년에 가족법을 거의 남녀 평등하게 바꾸었지만, 아직 두 가지 불평등조항이 남아 있습니다. 호주제도와 동성동본 불혼제도인데, 이 동성동본 불혼제도가 대단히 심각한 부분이에요. 동성동본의 성이나 본은 아버지의 성과 본이에요. 어머니의 성과 본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동성동본 불혼제도는 아버지 쪽의 성과 본이 같으면 100촌이 돼도 결혼하면 안되고 엄마 쪽은 몇 촌이 되든지 결혼을 해도 상관없다는 거예요. 이것은 바로 엄마 피는 무시해도 좋은 피고 아버지 피만 피인 거예요. 근본적으로 남성 중심 사상에서 나온 겁니다. 우생학적으로 한 생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버지 50%, 엄마 50%임에도 불구하고 제도상으로 엄마 피는 없는 것과 같이 취급하는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다음으로 여성의 사회진출 역시 대단히 벽이 두텁습니다. 지금 어떻습니까? 여학생들 차별이 없습니까? 원서 다 받아 줍니까? 그런 사회는 아직 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든 법이 1987년에 만든 남녀고용평등법입니다. 이 남녀고용평등법은 기본 정신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모집, 채용, 임금, 승진, 퇴직 등 모든 부분에서 차별하면 안된다는 것과 또 하나는 육아휴직제를 도입해서 본인이 원하면 비록 무급이지만 1년 휴가를 줄 수 있도록 하는 등 모성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경쟁사회 속에서 모성이 그렇게 보호받아야 될 필요가 있느냐고 이야기를 하지만, 만일에 우리가 다 모성을 포기한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는가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자녀를 수유하는 동안은 여성이 전적으로 책임질 수밖에 없으니까 여러 가지 사회제도를 통해서 육아를 도와줘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아버지가 육아 휴직을 원하면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자에게만 육아 휴가를 주면 기업이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여자를 고용해 보니까 육아휴직도 주어야 되고, 출산휴가도 주어야 되고, 기업에 부담이 되니까 남자를 쓰자' 이렇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아무리 법이 기본적으로 남녀평등하고, 또 우리가 지향하는바 남녀가 평등한 사회로 만들어야 된다고 아무리 주장하더라도 시장경쟁 논리에서는 이것이 먹혀들지 않아서 여성은 계속 임시직이 되거나 아주 열악한 조건에서 고용이 되는 수밖에 없어서 그것이 결국은 차별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조사해 보면 직장 여성을 아내로 맞는 것이 좋다는 쪽의 여론들이 많은데 직장을 가지면 수입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직장을 갖는 데서 오는 굉장한 부담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그 어려운 시험을 뚫고 직장에 들어가기는 합니다만 결혼해서 한 번 주춤합니다. 또 그때는 시댁, 남편하고 호흡을 잘 맞춰서 그 위기를 넘긴다 해도 자녀 출산이 한 명 또는 두 명째 가면 대개는 손을 들어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근본적으로 아이를 낳는 것은 여자이지만 낳은 아이는 남녀가 같이 기른다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낳은 사람이 책임지라고 하면 여자는 자기 출근하기 전에 남편 출근시켜 놓고, 또 자기 준비해서 아기를 들쳐업고 옆에 있는 탁아소에 맡기고 출근해서 일을 하고, 상사 눈치보다 안 보는 사이에 아이가 괜찮은가 전화도 걸어 보고,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도 업고 뛰어가야 되고 그리고는 들어와서 다시 천연덕스럽게 일을 하고, 그 다음에 남편이 퇴근 후에 한 잔 하러 가서 즐기는 동안에 부인은 빨리 집에 돌아와서 탁아소에서 아이 데려다가 씻기고 준비하는 이러한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아무리 법에 남녀가 평등하고 또 능력이 같더라도 발휘는 같이 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사는 여성들을 사회는 어떻게 봅니까? "여자들이란 써 보니까 차이가 나더라" 하면서 이렇게 아주 편견이 심합니다.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여자 직원을 써 보니까 다섯 시만 되면 집에 갈 생각만 하면서 핸드백을 챙기고 전화를 걸고 하더라." 저는 절대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자들도 똑같습니다. 다섯 시만 되면 퇴근 후에 '어느 친구를 만나서 어디를 갈까?' 연구하면서 마음 들뜨기는 마찬가지죠. 그러면서도 여자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밥을 20분 만에 빨리 먹고 슈퍼마켓에 가서 시장 봐 오는 꼴은 못 봐요. 여자는 매일 집안 살림만 생각한다 이러는데, 남자들은 근무중에 사우나도 잘 가요. 구내마다 이발소가 있어서 거기 가서 약간씩 자고 오는 것은 아무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러한 구조적인 차별이 있는 한 우리가 여기서 똑같이 공부를 하고 똑같이 학점을 받았어도 별 수가 없어요. 이 구조를 바꿔 줘야 됩니다. 여성만이 목소리를 높여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남자들이 같은 아픔으로 생각하고 이 문제를 고쳐 줘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주장하고 있는 여성 정책의 중심 방향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아주 좋은 시대를 살게 됩니다. 21세기는 정보화 사회라고 하는데, 재택근무가 늘어난다고 합니다. 집에서 일을 할 수 있어서 지금 같이 9시가 되면 출근했다가 6시가 되면 퇴근하는 이런 직업구조가 아니고 근무형태가 상당히 유연성이 있어서, 한 자리에 모이지 않아도 일을 할 수 있는 형태가 되면 가정이나 사회나 다 남녀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사회를 주도하는 남성들이 남성만의 입장을 생각하고 남성의 편의를 기준으로 여러 가지 사회구조를 계획한다면, 우리 여성들은 계속 뒤처져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왜? 산업의 역군이라고 해서 남자는 새벽같이 출근해서, 아침에 또 영어 공부를 하지요. 직장생활을 하고, 또 저녁에 바로 퇴근하지 않고 한 잔 하면서 정보 교환하고, 이렇게 해서 사회에다 자기 전부를 바칩니다. 그런데 남자들에게는 아내라는 존재가 다 있어요. 옷도 챙겨 주고, 결혼식에 가서 부조도 내고 오는 보조 인력이 있는 거예요. 남자가 여자보다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 인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남자는 남편 노릇만 하면 되는데, 여자는 사회에 나가면 남자 노릇을 해야 되고, 다시 집안에 들어오면 아내 노릇을 해야 하는데 자기를 도와줄 아내는 없는 거예요. 우리는 그런 것들을 사회제도를 통해서, 지원체제를 통해서 보완해 줘야 합니다. 아까 제가 육아휴직제도를 말씀드렸습니다만, 이제 탁아소가 전국적으로 굉장히 늘어난다는 것, 그리고 방과 후 프로그램들이 개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학교급식 같은 것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들이 하는 일을 거들어 주기 위해서 지원체제를 만든다는 개념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안 돼요. 탁아소는 남자, 여자를 위해서,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여성이 아이를 배임하고, 수태하고, 그리고 출산해서 수유하는 기간까지는 전적인 책임을 질 수밖에 없지만 그 밖의 것은 공동 책임이다. 내 책임이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남자 분들이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동참해야 합니다.

사실은 제게 "성공한 비결이 뭐냐? 어떻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하면서 그렇게 격렬한 생활현장에서 지금까지 살아 남았느냐?" 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가 젊은 날《동아일보》기자를 할 당시에는 전화도 없었어요. 아이를 누구한테 맡기고 근무를 하다가 갑자기 '아이가 괜찮을까? 혹시 마루에서 구르지는 않았을까? 일하는 사람이 제대로 잘 돌봐 줄까?' 이런 생각을 하면 머리가 확 거꾸로 솟을 때가 있어요. 지금처럼 전화가 있으면 걸어 보기라도 하겠는데, 전화가 없으니 점심시간에 택시를 타고 가서 아이가 안전한 걸 보고 점심은 굶는 거죠. 그렇게 어려운 고비고비를 넘겨서 오늘에 이르렀지만 그것을 저는 권장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통 여자들이 아이 기르면서 직장생활을 해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야 됩니다.

저는 15년 동안 신문기자 생활을 하면서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의 가정의 변화, 여성들의 지위변화 등을 기사로서 계속 다룰 수 있었고, 또 여성개발원에서 정책적으로 접근할 수가 있었으며, 그 다음에 정무장관실과 국회에서 여성정책을 개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여러분들도 학교 생활에서나 사회생활에서나 가정생활에서나 남녀가 손을 맞잡고 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