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강연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오늘 주제가 조금 까다로워서 의미전달이 잘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말하자면 이성과 관계된 얘기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여러 가지 것을 생각한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간 한국은 세계가 주목할 만한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물질적 번영과 더불어 방출된 무한한 욕심과 지배의지 속에 날로 거칠어만 가는 우리의 삶의 결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거시적으로는 오늘의 세계상을 보면서 이성의 진전을 말한다는 건 굉장히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이성의 전개로서의 역사는 끝에 이르렀다는 느낌들이 표현되는 것을 듣습니다. 자본주의 승리론자나 또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얘기하는 사람이나 다 이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얘기하려는 것은 이성의 필요성이라는 것이 우리가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요청이기 때문에, 사람이 존재하는 한 이성은 생존원리로서는 아닐지라도 내면의 요청으로서 존재할 거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마음속에 별개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세계를 인식하려는 욕구는 어느 시기에나 존재하며, 이성에 대한 요청이라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면의 요청은 밖에 있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간다는 건 어떤 경우에는 신비주의적인 긴 내면의 여로이기도 하고, 세계인식의 학문적 성찰 조건으로서의 마음의 평정 상태이기도 합니다.

〈가운데에 있는 암자〉(Hermitage at the center)라는 시를 쓴 스티븐스는 어두운 시기에 사람의 행복이 마음 한가운데로 숨어들어 가서 은거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마음속에 들어가 있는 명상적 느낌은 프로이트식으로 해석하자면 형체 없는 괴물, 즉 뒤틀린 상태로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억압된 욕망들이 우리의 무의식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서 밖으로 표현된 욕망 형태보다 훨씬 더 뒤틀어진 이상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역시 스티븐스의 인용입니다만, '빛나는 것들에 대한 지식'이 '완성적 날개'를 타고 우리를 시간으로 이끌어 가게 됩니다. 즉 우리 마음속에 들어 있던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미래의 세계를 실현하는 데 하나의 역할을 한다는 뜻으로 생각이 됩니다.

완성된다는 것은 세계의 현실이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이성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데카르트의 얘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현대문명의 합리주의 또는 이성의 근본으로서 데카르트를 이야기합니다. 데카르트에서 제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데카르트 이성이라는 것도 단순한 합리성이었다기보다는 난관과 열정을 포함하는 바깥 세상과의 갈등에서 오는 체험에서의 새로운 발견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의 발견은 사회와의 융화관계 내부에서보다는 사회에 역행함으로써 이루어졌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데카르트와 스콜라 철학의 관계를 간단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데카르트의 철학이 스콜라 철학에 대한 비판과 부정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있습니다.《방법 서설》에서 그는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황당무계한 소리를 많이 하고 믿을 수 없는 얘기만 했다" 이렇게 말하면서 스콜라 철학을 허황되고 독단적인 것으로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시대와 지역과 관습에 따라서 사람들의 사고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경험했던 것입니다.《방법 서설》에서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자전적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행을 통해서 우리와 느낌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미개인이나 야만인이 아니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 못지않게 또는 우리보다 더 이성을 널리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똑같은 정신을 가진 똑같은 사람이라도 어릴 때부터 프랑스인이나 독일인 사이에서 성장한다면 중국인이나 식인종 사이에서 살아 온 사람과는 다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입는 옷의 경우만 해도 10년 전에 좋아 뵈던 것이 지금 우습게 뵈고 또 10년 후에 좋아할 것인데도 지금은 우습게 뵌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우리를 설득하는 건 확실한 지식보다는 세상 사람들의 관습과 다른 사람들의 관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진리는 여러 사람보다는 차라리 한 사람이 발견할 가능성이 많은 까닭에 여러 사람의 말은 진리를 발견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내 스스로가 내 길잡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인용한 말은 데카르트가 어떻게 새로운 이성의 길을 택했는가를 말한 것이지만, 그 유명한 철학적 방법은 이러한 삶의 경험을 그대로 일반화한 것입니다. 그 유명한 회의 방법, 즉 오관으로 알 수 없는 세계, 자신의 신체, 즉 오관으로 보는 세계, 신, 기억 또는 수학적 정리까지도 일단 의심의 대상으로 삼고 가장 확실한 것만을 찾는 그의 철학적 방법은 이런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해야 되겠지요. 이런 경험은 관찰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깊은 내적 체험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데카르트의 사유를 살펴본 것은 이성의 원리라는 것이 그 외적인 업적은 나중의 일이고 실제 출발에서는 이런 개인적인 체험과 또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와 연결된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 안으로 들어가서 진리를 인식하고 이를 통해 이성을 발견한 것은 서양 사상에서는 오래된 근원을 갖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플라톤 또는 스토아 철학자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이성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물의 질서, 이데아의 세계, 진선미의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은 그 진선미의 세계의 아름다움에 감동해서 선한 삶을 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성은 사람 내면의 속성이면서도 또 객관적이고 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캐나다의 찰스 테일러는 이런 플라톤의 내적인 원리로서의 이성이라는 것은 내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성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테일러가 그걸 내면적인 것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은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 같으면서 사실은 마음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사물의 바른 위치를 직관하게 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 마음속이 아니라 밖에 있는 사람의 삶을 바른 질서 속에 맞추어서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스토아 철학에서도 이성이 중요했습니다. 이것은 플라톤에 비해서 실천적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가를 스토아 철학자들은 얘기했습니다. 즉 우리의 삶에서 주인이 되는 부분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자기 영혼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영혼을 치유하고 거기에 따라서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테일러는 내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잘 산다는 것은 의학적인 측면으로 볼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이성적으로 살라는 것은 가령, 너무 일을 많이 하는 비즈니스맨에게 힘을 아껴서 너무 일만 하지 말아라 이렇게 얘기하는 똑같은 것으로서, 자기의 삶을 균형 있게 사는 원리로서의 이성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내면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17세기 데카르트 또는 로크에 의해서 이성은 정말 내면적인 것이 되었다고 테일러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데카르트가 얘기한 것은 마음에 비친 밖을 보라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 그것을 보라는 것이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이성의 원리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성의 원리로서 세계를 이해하라는 것은 나중의 이야기입니다.

데카르트는 주로 내 안에서 확인되는 이성을 얘기했고, 그 이성의 원리로서 내 생활을 절제 있게 하고 밖의 세상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원리로서 이해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얘기한 것은 우리가 내면으로 들어가서 플라톤이 얘기하는 형이상학적인 진리를 직관할 수도 있고 또 실천적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성의 원리를 확인할 수도 있고, 또 거기에 더해서 데카르트적인 이성, 세상을 법칙적으로 이해하고 구성하는 과학적인 이성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도 이러한 전통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근대화 이전 한국의 전통에서 핵심을 이루었던 것은 성리학인데, 성리학에서도 진리에 이르는 것은 우리의 내면을 통해서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다만, 동양에서 내면성이라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직관뿐만 아니라 도덕적 의미에서 실천적인 내용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 마음을 살펴보고 마음을 깨끗이 하면 도덕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성리학에서 마음은 종종 거울의 이미지로 얘기됩니다. 주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비어 있고 영험스럽고 어둡지 않은 상태인 마음에 세상 모든 것이 비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성리학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정신 기능을 하는 것이 마음이고, 이 내면적 공간의 특징은 투명성인데, 이 투명성은 유연한 개방성을 얘기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것은 데카르트적인 또는 칸트적인 인식의 원리로서의 이성과도 비슷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을 만들어 내고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라기보다는 관조적인 원리라는 점에서 플라톤적인, 형이상학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추가해서 불교에서의 안으로 들어가서 보는 원리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투명한 마음속으로 들어가면 사물이 존재하는 것 자체도 의심하게 되고 밑바닥에 있는 그야말로 비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고 생각한 것이 불교입니다. 이런 불교적인 내면성의 원리에 대해서 성리학자들은 상당히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 비어 있는 상태로 들어간다는 것은 도덕과 윤리를 무시하는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성리학자들은 이 불교적인 관조의 세계, 불교적인 내면의 세계를 상당히 두려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내면으로 들어가는 길들을 얘기했습니다. 형이상학적인 것, 실천적인 것, 또 데카르트적인 합리성과 우리 동양 전통에서 유교적인 것, 불교적인 것을 얘기했습니다. 이러한 것들 중 오늘날의 입장에서 본다면 역시 데카르트적인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데카르트적인 것은 다른 내면 체험에 비해서 반성적이기 때문입니다. 반성적이라는 것은 스스로의 행위를 스스로가 포착하려고 하는 것이죠. 하버마스의《인식과 관심》이라는 책에서 이 반성이라는 말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반성이라는 것은 이미 사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해체해서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어떠한 것으로 파악하는 행위인데,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은 끊임없는 반성을 통해서 이미 사실적으로 굳어 있는 세계를 해체하는 것으로, 이것이 인간이 자기 해방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으로 들어가서 어떤 진리를 본다고 할 때 그 확신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광신적이 되고 독단적이 될 수도 있는데, 데카르트가 얘기하는 반성(reflection)은 적어도 하버마스가 얘기하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끊임없이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다시 되돌아보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독단론을 피하는 데 중요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철학적으로 반성적 삶은 자기 삶을 살려는 개인들의 심리적 요청으로서도 정당화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 내면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사람이 주체적이고 자연적인 것으로서 자신을 확립하고자 하는 불가피한 욕구의 철학적 표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데카르트에서도 철학적 사유의 근본은 사유하는 주체의 자기 동일성에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는 자기 생활을 확립하려는 노력입니다. 그 밑바닥에는 개인적으로 정체성을 얻고자 하는, 내가 나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하고자 하는 개인적 고뇌가 들어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중요한 것이 정체성 구성 과정,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을 구성하는 과정 자체입니다. 앞에서 데카르트의 회의와 확신이 개인적 취향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이것은《방법 서설》에 있는 데카르트의 인용입니다. "나는 이와 같이 모든 것을 그릇되었다고 생각하려고 했는데 그때 이것을 생각하고 있는 내가 어떤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하는 존재론 진리는 간단하고 확실한 것으로서 회의주의자들도 거기에다 이론을 붙일 수 없는 것으로 나는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것은 철학적 명제로서 사유를 받아들이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선언하는 얘깁니다.

성리학은 가장 보수적이고 고루한 이념의 체계라고 비판되어 왔지만, 그것이 참으로 살아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근원적인 체험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자가 유교를 발견한 것은 도교와 불교를 순례한 다음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어떤 개종의 체험을 했습니다. 그는 자기 삶의 목표를 이 근원적인 자기 체험을 해석하고 그것에 따라서 사는 것에 모든 것을 바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자의 경우에도 그렇고, 성리학자의 경우에 이 내적 체험이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했던 걸로 보입니다. 퇴계는 14세에 이르러서 학문에 깊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20세 때 침식을 잊어 가며 독서와 사색에 잠겼고, 이로 인해서 몸이 야위는 일종의 소화불량증에 걸렸는데, 여기에는 깊은 내면적인 고뇌의 체험이 들어 있을 걸로 생각이 됩니다.

내면적 체험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덧붙여 얘기할 것은 양심의 문제입니다. 우리를 사회와 직접적으로 연결해 주는 것이 양심인데, 양심은 우리 내면에서 우리 뜻대로 하지 말고 보다 높은 원리에 따라서 행동하라는 명령입니다. 양심은 프로이트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자유와 자율성, 그리고 존재의 느낌, 나는 '나'라는 느낌을 제약하는 요소로서 작용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보다 더 이상적으로 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살게 하는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밖의 권위에 따라서 산다는 것은 나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꼭 좋은 거냐, 나쁜 거냐를 간단히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양심의 소리가 밖에서는 권위를 나타내면서 또 깊은 의미에서 나의 소리를 나타낸다는 얘기는 하이데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하니까 존재한다'에서 생각을 제일 중요시한 데 반해, 하이데거는 존재한다는 면을 훨씬 중요하게 여겨, 역점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이냐 할 때, 하이데거는 우리가 죽어 가는 존재라는 것이 내 존재를 가장 확실하게 확인해 주는 특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를 단절하는 역할을 하죠. 내가 죽는다는 것은 내가 죽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 도저히 연결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진짜 나가 되게 하는 요소가 죽음이면서 또 동시에 그것은 다른 사람과 나를 끊어 내는 역할을 하죠. 그러나 양심이라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을 연결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내 뜻대로 하면 안 되고 뭔가 다른 원리에 따라서 행동해야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과 내가 같이 공존한다는 공존적 존재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 양심입니다.

하이데거는 양심의 소리가 여러 사람들이 얘기하는 사회 목소리는 아니라고 얘기했습니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나의 본래적인 삶으로부터 벗어나라는 얘기이니까 사회의 소리로서의 양심을 하이데거는 부정하는 것입니다. 양심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오히려 하이데거는 다른 사람의 소리로부터 나를 분리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양심의 소리는 멀리서 들려 오는 소리이면서 다른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에로 불러가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양심의 소리를 듣고 깨닫게 되는 것은 나 자신이 본래적인 의미에서는 낯선 존재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양심이라는 것은 얼른 생각할 때 사회적인 소리를 내가 내면화한다는 면이 없지 않으나 그것은 모든 사람이 뭐라 해도 자기 뜻대로 하는 사람의 의식이 됩니다. 우리가 양심적인 인간이라고 할 때, 대개 민족과 사회를 위해서, 애국을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을 생각하지만 사실 양심의 소리라는 건, 하이데거나 루터의 경험 같은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그보다는 훨씬 더 깊은 차원에 있는 내적인 데서 나오는 소리라는 겁니다.

에릭슨이라는 정신분석학자가 쓴《젊은 루터》라는 책을 보면, 루터의 경우 양심은 하이데거 같은 사람과는 달리 상당히 세속적인 차원에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루터가 어떻게 해서 엄청난 종교 개혁이라는 것을 시작한 인물이 되었는가? 어떤 심리적인 체험, 어떤 이념적인 경로를 통해서 기존 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게 되었는가? 에릭슨은 당시 루터의 주장이 독단적인 고집으로서가 아니라 이성적인 차원으로부터 기인한 것이었다고 하고, 이 이성적인 차원이라는 것을 세속적인 차원에서 해석을 했습니다. 우리가 육신과 관련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충동과 욕망, 우리 가족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이러한 것에 대한 조정의 원리로서의 이성, 자기의 삶도 충분하게 영위하면서 주변의 여러 가지 것도 고려할 수 있는 능력, 그러한 이성적, 합리적인 능력이 루터에게 강하게 작용해서 시대의 인물을 탄생케 했다고 에릭슨은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이 양심의 체험이라는 것은 이성적인 것만으로는 얘기할 수 없는 내면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성에 의해서 매개됨으로써 더 심화될 수 있는 그런 내적 체험으로 이성의 일부를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현대화되는 세계에서 지배적인 것은 합리성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의 합리성이라는 것도 스스로의 불확실한 탄생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점에서 독단론의 체계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즉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데카르트에서나 다른 많은 사람들의 체험에서 이성이라는 것이 개인적 체험을 통해서 태어난다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은 독단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독단적 합리성의 세계는 그 압도적인 승리로 인해서 다른 대안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의 내면성의 소멸은 독단론의 결과이기도 하고 원인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빈틈없는 합리적 계산 속에서 처리되고 새로운 결정의 여유를 남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한쪽으로는 합리화된 세계, 능률성을 나타내지만 다른 쪽으로는 자본과 권력 또는 국내적, 국제적으로의 힘의 추구 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국제적으로 볼 때 선진국이 잘 살면 아프리카에서 못사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든지, 우리나라에서 회사의 조직이 강하면 강할수록 술을 먹는 사람이 많아진다든지, 잘 사는 사람이 많고 소비문화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거기에 치여서 희생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합리성에는 이런 모순된 면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과학기술이 해놓은 것 중의 하나가 공간의 축소입니다. 교통의 발달과 도시화로 인해서 모든 사람과 사람, 또 사람과 물건과의 거리를 아주 좁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은 한 덩어리가 되어 좋은 면도 있지만 또 따로 있는 면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세상은 전부 한 덩어리입니다. 가속화되는 소비 문화는 쓰레기가 되는 물건의 끊임없는 회전으로 인해서 우리 삶의 공간과 함께 우리 마음을 과포화 상태로 만들어 놨어요. 끊임없는 공간의 이동, 사물의 순환, 작업의 능률화를 위해서 우리 시간은 시간표가 되었습니다. 쉬는 시간이 없고 1분, 2분 다 시간표에 따라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간표는 공간과 함께 시간의 밀집 상태를 이루어 여러 사람에게 반성과 관조하는 시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빠른 속도로 공급되고 사라지는 정보는 우리에게 참다운 생각과 느낌을 가지게 하려는 것보다는 우리에게 빠른 반응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로 돌아가서 자신을 되돌아볼 여유를 허용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내면 공간을 파괴해 버리는 겁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우리 자신의 사고와 동기를 되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 전체에 대한 관조도, 양심의 투쟁을 위한 자신에 대한 반성도 자신의 육체적 자질과 능력에 대한 자기 포착도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옷을 사도 상표를 보고 사게 되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뭐냐에 대한 판단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상표로서 정해 준 것을 사게 마련입니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내면으로 돌아가는 길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극단적인 경우 이것은 동양의 전통에 따라서 은둔하는 얘기이기도 하고, 유럽의 지식인에게 잘 알려져 있는 내적 이민이라는 패배주의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어떠한 가치도 사회제도로 옮겨질 때까지는 현실적 의의를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에서 언급했던 스티븐스의 시가 말하고 있듯이, 마음의 암자 속으로 숨어들어 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가치와 현실 제도의 분리가 불가피한 경우가 있음도 인정해야 됩니다.

내면성의 과정이 사회 과정의 일부로서 중요하다는 것은 교육의 문제로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의 내면성의 교육 또는 더 좁혀서 이성적 체험의 교육이라는 건 필수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우리 대학은 주어진 사실 세계에의 적응, 진입, 이용 전략 등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서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능률적으로 일하느냐만이 중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큰 의미에서의 이성의 체험, 또는 내면의 과정에 대한 각성이 교육에서 어느 때보다 필요하고 이것을 방법화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힘, 총을 쏘라는데 총을 쏘지 않게 하는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사람이 물론 조직 안에서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불가피하다 할지라도 그와 동시에 명령체계 안에서 자기 결단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임금이 높아져 가고 호의호식한다고 잘 살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국제자본주의, 국가간의 분규, 빈곤, 환경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더욱더 큰 문제를 만들어 우리에게 돌아올 날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더 위축되어 가는 우리의 내면 공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데 개인적으로 또 교육적으로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