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생활속의 문화

반갑습니다. 지휘할 때는 항상 청중을 등뒤로 하기 때문에 떨린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여러분들을 마주보니까 좀 떨립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X세대, 컴퓨터 세대 등과 같이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는데, 문득 그러면 나는 어떤 세대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1960년도 제가 중학교 때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 연설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국가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우리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저는 그 말이 매우 인상적으로 남아서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면 그 말이 항상 떠오릅니다. 그래서 나는 케네디 취임 연설의 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 미국의 유명한 번스타인이라는 지휘자가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청소년을 위한 음악회〉를 했는데, 저는 AFKN에서 정기적으로 방송이 된 그 프로그램을 녹음해서 외울 정도로 들으면서 번스타인의 음악 해설을 음미했었습니다. 나도 지휘자가 되어야겠다는 꿈이 바로 그때 시작된 거죠. 어쨌든 제가 대학 다닐 때는 우리나라에 지휘과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노력을 하다가, 조금 늦긴 했지만 26살 때 정식으로 베를린예술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베를린에 갈 때는 여행을 하면서 틈틈이 학교를 알아보려던 것이었지만,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관광은 뒷전이고 제 관심은 전부 학교로 쏠렸습니다. 베를린예술대학에 갔더니 두 분 선생님을 추천해 주셨는데, 라벤스타인이라는 교수의 이름이 루빈스타인하고 비슷해서 그 분께 전화를 했습니다. 그 다음날 면담시간에 저는 내가 살아온 길, 곧 음악 방면으로 나는 무엇을 공부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한 후 그 분은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베를린에서 공부할 것을 권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의 새로운 인생은 시작된 셈입니다.

저는 26살 때까지는 열심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안 오다가 결정적 순간에 그 기회가 나에게 왔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학교를 시작한 지 4년 후에 행운인지 아니면 제 노력 때문인지 '카라얀'이라는 매우 유명한 콩쿠르에서 3위로 입상했습니다. 물론 처음 있는 일이어서 굉장히 기뻤고, 저에게는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 상을 받은 후 저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카라얀 총감독하고 면담을 하면서 약간은 우쭐해서 외국에서 활동을 하면서 내 커리어를 넓히고 싶다고 했더니, 그 분은 한국이 곧 큰 나라가 될 테니까 한국에 가서 일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우연히 국립교향악단에서 저를 초대하게 되었고, 그 분의 조언을 막 들은 직후였기 때문에 굉장히 기쁘게 수락했습니다.

1981년도에, 그러니까 국립교향악단은 제가 일한 지 1년 만에 좀더 세계적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목적 아래 KBS 교향악단으로 탄생됩니다. 저는 12년 동안 KBS 교향악단에서 일해 왔는데, 특히 매년 봄이나 가을을 택해서 지방 공연을 다녔던 것이 제게는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한 번은 광주나 대전지역 쪽으로, 또 어떤 때는 대구, 부산, 그 다음에는 강원도 지역 이런 식으로 12년을 매년 빠지지 않고 연주를 했는데, 지방은 여러 가지 여건이 너무 부족합니다. 예를 들면 8년 전에 제가 군산에 갔을 때 음악연주장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영화관에서 연주회를 했는데, 80명이 앉을 수 있는 무대가 안 돼서 60명 정도만 연주를 했었습니다. 요즈음 지방자치제가 되어서 지방이 발전된다고 하지만 정치적 부분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1992년 어느 날 수원오케스트라의 일을 맡은 단무장이 저를 찾아와서 "금 선생님! 지금 우리 수원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일 년 동안 공석입니다. 그리고 단원들간에 너무 내분이 많으니까 시에서 오케스트라를 없애려고 합니다. 금 선생님이 좀 도와줄 수 없겠습니까?" 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우리나라는 문화 정책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수원오케스트라가 그런 요청을 해왔을 때 케네디의 말처럼 불만만 가질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우리나라의 문화정책을 위해 무슨 일인가를 하고 싶어 수락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공직자들이 지방에 가서 근무하듯이 오케스트라 연주자들도 지역 문화의 고른 발전을 위하여 파견 근무를 기꺼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리고 KBS는 지휘자가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휘자가 있고, 또 내가 일년 내내 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3, 4개월간 수원에 가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KBS는 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KBS 이외의 다른 직업을 가지지 않았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KBS측을 설득시켰습니다. KBS 교향악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연주자들이 많이 모인 오케스트라였기 때문에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50% 이상의 단원들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난새만이 학교에 나가지를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선친이신 금수현 선생님은 시대적 상황 때문인지 작곡, 극장 운영, 음악잡지 발행, 또 교육계 활동 등 너무나 여러 가지 일들을 하셨어요. 저는 어릴 때 아버지가 참 재주가 많으시다는 생각은 했지만 너무 많은 일들을 하시는 것에 대해선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만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던 것이죠. 제 나름대로는 우리나라가 발전을 하려면 조금 아는 것 가지고 훈수 두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에서 한 부분의 전문가가 제 역할을 해내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지휘자로서 내 능력을 발휘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리고 외국에는 통상적으로 지휘자가 여러 오케스트라를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오케스트라는 한 지휘자만 가지고 할 수 없습니다. 한 교수가 모든 학문을 가르칠 수 없듯이 각 지휘자의 특징이 있는 만큼, 그러니까 지휘자도 다른 오케스트라를 자꾸 지휘하면서 폭이 넓어져야 되는 것이고, 오케스트라도 끊임없이 새로운 지휘자를 맞이함으로써 변화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원에서는 지휘자가 상임 지휘자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제가 3개월간 도와준다는 것은 수석 객원지휘자로서인데, 이 사람들은 그런 타이틀이 없기 때문에 '금난새, 상임 지휘자로 영입' 이렇게 신문에 내버렸어요. KBS는 당장 반대를 했고, 저는 나름대로 고민하다가 신문에 난 표현의 잘못 때문에 내 뜻이 달라질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KBS에 사표를 냈습니다. 사람들은 의아해 하면서 무슨 문제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고, 어떤 사람은 수원이 고향이냐고도 물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 대해 비판과 지적을 해왔지만, 이제부터는 제 자신의 능력으로 문제점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파산된 단체에 들어가서 다시 건강한 단체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죠.

그런데 하루는 수원시에 있는 과장이 걱정스러운 듯이 월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서 저는 월급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월급이야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월급 주는 시 직원의 간섭 때문에 많은 지식과 예술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상을 펼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분은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전혀 간섭을 안하는 거예요. 참 재미있는 일이죠? 만일 제가 월급을 KBS만큼은 줘야 된다고 했으면 그 사람이 어떤 능력을 발휘해서 돈을 마련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내가 월급 때문에 간 것이 아니라 수원오케스트라라고 하는 하나의 파산된 단체를 돕기 위해 왔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 분은 내게 돈으로 셀 수 없는 존경심을 준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우리 교향악단 실력을 보기 위해서 연주회를 구경갔는데, 500석의 작은 홀에 80명이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반에 피아노 협주곡이 있었는데, 그 독주자 때문에 손님이 왔었는지 그 연주가 끝나니까 한 40명이 없어지고 80명이 연주하는데 40명이 구경을 하고 있는 거예요. 바로 그게 수원의 현실이었어요. 그 다음날 단원들과 처음 만나자마자 저는 주식, 부동산은 잘 모르지만 오케스트라에 대해선 좀 알고 있으니까 내가 하는 일에 투자를 하면 절대로 손해보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제가 간 이후 첫 연주는 1,700석의 문화회관에서 했는데 다행히 그 1,700석이 꽉 찼습니다. 시장도 휴식 때 봉투만 주고 나가시는 게 아니고 다시 객석으로 가시더군요. 어쨌든 우리의 변화는 컸습니다.

하루는 안익태 선생님이 마요르카에서 살던 집의 관리비를《한국일보》에서 모금한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단원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안익태 선생님의 좋은 뜻을 받들기 위해 돈을 모으는데 우리는 음악가로서 할 일이 없을까?" 그 분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모금을 하면 어떻겠는가 하는 것이 저의 아이디어였고, 단원들은 제가 처음에 투자해 달라고 얘기했었기 때문인지 무료로 연주를 하겠다고 저를 따라 주었습니다. 저희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안익태 선생님의〈코리아환타지〉를 연주했는데, 그 뜻이 좋았는지 아니면《한국일보》에서 선전을 많이 했는지 4,000명이 앉아 있는 거예요. 그 전의 80명을 생각하면 3년 동안 만날 청중을 하루 만에 만난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청중이 80명이었을 때는 시장도 구경할 맛이 나겠어요? 그런데 서울의 그 큰 홀이 꽉 차 있고 또 신문에 났고, 선거 때여서 그런지 정치인들도 많이 왔습니다. 그래서 수원시에서는 오케스트라를 없애야겠다는 비밀문서를 없애고, 오케스트라를 어떻게 지원할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게 우리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마라톤 콘서트라는 것을 했습니다. 보통 음악가들은 2시간 넘으면 연주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저는 단원들에게 "우리는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 또 우리는 단합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남이 안하는 일을 해야 된다" 라고 이야기해서 7시간 연주를 했습니다. 언론은 처음 하는 일에 대해서 항상 관심이 많기 때문에 신문에 보도되었고, 엉뚱하게 기네스에서도 상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승리의 행진이라고 할까요? 시에서는 굉장히 기뻐했고 그 해에 월급이 30%가 올랐습니다. 이것은 단원들에게 굉장한 힘이 되었지요.

그리고 수원시의 축제 기간에 '오케스트라의 밤' 행사를 위해 오백만원의 할당을 받고 저는 단원들하고 의논을 했는데, 의외로 오페라 공연을 하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오페라를 공연하려면 2억 정도의 예산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래서 저는 의상과 무대장치를 다 갖추려면 진짜 2억이 필요하지만, 갈라형식으로 연주를 같이 하면서 하이라이트를 모아 해설을 하고 약간의 연기를 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 오백만원은 성악가 세 사람을 부르는 데 다 썼습니다.〈라트라비아타〉의 세 주인공이죠. 보통 오페라는 성악가들의 단체여서 오케스트라는 개런티를 받으면서 무대 밑에서 연주를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우리가 성악가에게 돈을 지불하고 보통 닷새 연습할 것을 열흘 동안 연습했습니다.〈라트라비아타〉는 3막으로 파티 장면, 정원 장면, 마지막은 죽는 장면이기 때문에 침대, 등의자가 필요했고, 그랜드피아노에 장미를 꽂아 놓고 나무와 가구를 놓아서 간이막을 만들었습니다. 수원에 음악을 좋아하는 가구점 주인이 있다고 해서 제가 찾아갔더니 기꺼이 가구와 벤자민 다섯 그루까지 빌려주었던 겁니다.

그날따라 시장이 오케스트라를 자랑하고 싶어서 지사, 부지사, 사단장, 시의회장, 문화계 인사 한 30명을 부부동반으로 초대했습니다.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보통 음악회장이 아니잖아요! 음악회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여러분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음악회가 끝났을 때는 많은 청중들이 기립 박수를 했습니다. 초대된 30명의 내외분이 예정에 없이 전부 레스토랑으로 가서 맥주를 마시게 됐는데 그 중에 부지사는 "나는 오늘 집에 가다가 음주운전에 걸려도 할 말이 있다. 나는 맥주에 취한 게 아니고 금난새에 취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더욱 멋진 일은 시장이 우리 오케스트라를 위해서 야외 음악당을 지어 줘야겠다고 그 다음날 결정을 한 것입니다. 다음 주에 그곳에서 우리가 첫 연주를 합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예술의 전당에서 청소년 음악회를 하는데 그것을 제가 맡아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번스타인이 하는 청소년 음악회가 제가 지휘자가 되는 계기가 됐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가 30년 동안 기다려 온 음악회라고 할까요?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들은 대통령 앞에서 연주를 한다, 아니면 미국 순회를 간다고 하면 연습하지 말라고 해도 밤새고 연습을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위해서 연주를 한다면 그냥 대강 하는 거예요. 저는 수원 단원들에게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그런 태도를 가졌을 때, 누가 알고 모르고 간에 얼마나 부끄럽냐?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는 게 중요하기도 하고 아이들의 꿈을 위해서, 아이들이 음악을 사랑할 수 있도록 더 연습해야 된다."

그리고 세 번째 음악회 때 제가 청소년들에게 "우리나라는 음악회가 끝나고 지휘자가 나가면 전부 박수가 그쳐요. 그러면 연주자들은 그냥 처량하게 나가는 겁니다. 모든 연주자가 나갈 때까지 박수를 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이야기했더니 아이들이 정말 단원들이 다 나갈 때까지 박수를 쳤어요. 그런데 즉흥적 제안이었기 때문에 단원들이 입구로 전부 몰려 우왕좌왕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 음악회부터 단원들은 걸어 나갈 때까지 신경을 썼습니다. 만약에 자기가 깊숙한 곳에 있으면 악보를 정리한다든지, 또는 옆의 사람보고 수고했다든지, 아름다운 표정으로 서로 악수를 나눈다든지 이렇게 여유 있고 자연스럽게 나갔을 때, 아이들의 느낌은 전혀 다를 겁니다. 어쨌든 저는 이렇게 작은 일까지 신경을 쓰면서 그 음악회를 가꿔 나갔습니다.

저의 이러한 행운들이, 어떻게 보면 누가 가져다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리 오케스트라의 활동이 우리나라 음악계 전체에 하나의 모범이 되고, 행운이 우리에게만 오고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에 파급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더 발전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우리 사회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케네디의 그 연설은 30년 전의 옛날 이야기라기보다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젊은이에게 또 사회인에게 항상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해서 여러분들에게 그러한 테마로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저의 자랑 섞인 이야기가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면 큰 기쁨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