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모교의 총장께서 늘 강조하셨던 얘기가 대학을 졸업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제 가슴에 남아 있는데, 그 분은 "우리가 어느 한 곳에 편향된 생각을 가지고 편향된 지식을 섭취한다면 그 사람 역시 편향된 사람이 될 것이다" 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특히 여러분 같은 젊은이들은 어떤 생각과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느냐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그런 충고의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편식을 하면 건강에 좋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우리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모든 것에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가령 여러분에게는 서구 문화적 요소가 보다 선호되리라고 생각되는데, 서양과 함께 동양에 대해서도 알고자 하는 조화로운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또한 동적인 생활과 함께 정적인 생활을 조화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운동 하는 사람에게는 음악 감상이나 명상의 시간이 필요한 반면, 앉아서 일하는 사람은 운동이나 여행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조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시골에서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문화적인 혜택을 별로 받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웃을지 모르겠지만, 중앙 방송국이 하나 있을 때 라디오를 듣고 산다는 것은 문화 접촉의 기회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께서 직접 앰프를 사다가 스피커를 달아서 고전음악을 감상하게 해주셨어요. "선생님!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도 듣고 싶… " 하다가 한 대 얻어맞은 친구도 있었지요. 선생님은 음악을 알아야 된다고 하시면서 촌 무지렁이들한테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슈베르트, 모차르트 얘기를 음악시간마다 해주시는 거예요. 그런 기회들 때문에 방송활동을 하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조화로운 생활을 위해서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또 주어지지 않은 기회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상은 여러분에게 좀더 의미 있는 대학생활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이제 '말의 허와 실'에 대한 주제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발음이 좋다든지, 쉼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든지, 설득력이 있다든지, 표현이 좋다든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진실성이 느껴져서 신뢰할 수 있는 말이 잘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이 담기지 않은 말은 말의 장난이고 희롱입니다.

재미있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신부님께 이렇게 여쭤 보았습니다. "신부님! 기도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겠습니까?" "안 되지요. 기도중에 담배를 피우다니요." 한참 있다가 "그럼, 흡연중에 기도해도 되겠습니까?" "그건 좋지요." 기도중에 담배를 핀다는 건 무엄한 것이나 담배를 피우다가도 기도를 하는 자세는 좋다는 얘기인데, 결국 둘 다 똑같은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상대를 교묘하게 현혹시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말의 희롱입니다.

어제 퇴근길에 라디오를 들으니까 어떤 진행자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아무개가 정치 일선에서 은퇴한다고 했다가 번복하니까 다른 아무개가 말하기를 '은퇴 후의 번복은 대중가요 가수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정치인이 … .' 그랬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 사람이 은퇴를 발표했다가 다시 번복했다는데, 그렇다면 서태지도 은퇴했다 아직 번복하지 않았는데 그만도 못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논리가 참 재미있어요. 번복한 사람을 뭐라고 했던 사람도 번복을 했으니, 서태지가 다시 복귀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우리 시대를 이끌어가는 정치인들보다 더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함부로 하지 말고 신중하게 말하는 것이 잘 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약속을 수없이 하는 사람은 절대 그 약속을 다 지키지 못합니다. 제가 절대라고 말했지만 이 절대라는 말은 절대 틀리지 않습니다.

이번 총선 때 빌 공(空)자 공약(空約)이 많았다고 비난받지 않았습니까? 어느 언론 매체에서 과거에 그 사람이 했던 공약을 모두 기록해서 물어봤더니 본인도 기억을 못하더랍니다. 과거에 했던 그 수많은 약속은 결국 거짓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믿어 달라고 외칠 때 그 사람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서양에도 이런 우스개가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국회의원이 된다면 다리를 놓아 드리겠습니다." 주민들이 서로 눈이 동그래져서 "우리 마을에는 개울이 없는데요" 했더니 "그렇다면 개울을 먼저 파고서라도 반드시 다리를 놓아 드리겠습니다" 고 했답니다. 임기응변에는 강하지만 우리는 그 말을 잘 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아나운서들은 설득력 훈련을 위해서 궤변 훈련을 합니다. 궤변이란 과학적이거나 진실에 입각한 논거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진실성 여부에 관계없이 상대편을 설복시킬 수 있는 논법이 바로 궤변입니다. 이 훈련을 많이 하면 상대를 설득할 때 얘기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흥미를 갖는다면 궤변론에 대한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똑같은 구두를 놓고 발이 그 구두보다 큰 사람과, 딱 맞는 사람, 발이 더 작은 사람 이 세 손님에게 가죽구두를 파는 겁니다. 발이 큰 손님이 구두를 신으니까 뻑뻑하거든요. 그런데 "손님, 잘 고르셨습니다. 좋은 구두는 신축력이 있어서 신다 보면 늘어나기 때문에 지금은 발이 좀 불편할지 모르지만, 조금만 신다 보면 괜찮을 겁니다. 잘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구두를 사러 온 다른 사람은 신으니까 딱 맞아요. 그러니까 "좋은 가죽은 절대 늘거나 줄지 않기 때문에 지금 딱 맞으시면 계속 끝까지 신으실 수 있습니다. 잘 택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발이 구두보다 작은 사람에게는 "손님 잘 고르셨습니다. 좋은 가죽은 신축력이 있기 때문에 항상 부족한 듯한 발을 채워 줍니다." 세 손님은 믿고 다 사 갔지요. 그러나 파는 사람이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가죽의 성질을 자기 맘대로 얘기했지만 사는 사람은 자기만 설명을 듣고 다른 사람에게 한 얘기를 모르니까 모순이라는 것을 알 수 없죠. 그런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여러 가지 말들을 보면 부엌에 가면 며느리 얘기가 맞고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씀이 맞는다는 말이 있듯이 항상 설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 말이 그럴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행간의 이야기를 모르고 겉으로 드러난 언론 매체의 보도 내용만 보고 난리 법석을 떤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옳은 것까지 반대로 얘기해야 환영을 받는다는 것을 아는 언론 종사자들이 가끔 진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덮어두고 대중에 영합하는 기사를 내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참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뭐든지 수긍하면 시시한 것이고, 뭐든지 비판만 하면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 하나의 역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따라서 설혹 언론이 세상일을 조작하는 경우에도 독자 또는 시청자들은 참과 거짓을 준엄하게 식별해 낼 수 있어야 되는데, 바로 그 몫이 젊은 지성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론의 반복적인 보도에 의해서 자기도 모르게 최면이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AP, UPI, Reuter, CNN 등을 통한 뉴스의 내용이 전 세계에 그대로 파급됩니다. 그들은 자국의 이익을 전제로, 백인우월주의 시각으로, 시오니즘 시각으로 보도하면서 그들의 문화와 상품이 가장 좋은 것이고, 그들의 시각이 정의라는 것을 은근히 암시합니다. 미국의 영화도 마찬가지로 경주를 하다가 거의 걸레가 된 차가 굴러가는 장면 속에 미제는 이렇게 튼튼하다라는 암시가 있는데도, 여러분이 그 저의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모든 언론을 보는 시각을 한 번쯤 생각해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언어생활을 해야 하는가? 지성인다운 말투, 지성인이 쓰는 어휘, 지성인이 갖추어야 될 언어 예절도 물론 갖추어야 되지만, 그에 앞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믿음과 진실이라는 겁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가운데 남에게 믿음을 주면서 살아왔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젊은이들이 신용을 잃는다면 앞으로 살아 나가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믿고 따르게 할 수 있다면 가장 큰 자본을 가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큰 자산을 지니는 것은 시간을 지키는 데서부터, 또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는 데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시간을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또한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앞으로 더욱더 절실히 느끼게 될 겁니다.

한편 그 나라의 경제 상황과 국민들의 시간 생활 태도와는 분명히 연관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은 동양에서 시간을 기가 막히게 지키는 나라로 꼽히는데, 그만큼 일본은 잘 삽니다. 그러나 중국은 시간을 잘 못 지킵니다. 제가 1989년에 중국에 갔다가 연변에서 비행기를 탔는데, 40분이 지나도 안 갑니다. 여기에서 근무중인 공무원이 와야 간다는 겁니다. 몇 시까지 비행기가 떠나야 한다는 사회적인 약속, 책임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거죠.

제가 1987년에 일본에 동경가요제 사회를 보러 갔었는데, 시간을 어떻게 지키느냐 하면 그 큰 국제행사를 하면서 모든 시간 스케줄과 대본이 들어 있는 책 한 권만을 줍니다. "모여라!" "다 왔냐?" "점심 먹고 합시다!" 이런 소리가 필요 없어요. 시간 되니까 다들 서서히 모여서 각자의 위치에서 "스탠바이, 스타트!" 만 외치면 됩니다. 깔끔하고 멋지고 철저합니다.

그 행사 이후에 제 방송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 수첩을 펴 보면 정말 늦어서는 안 될 것들만 적어 놓는데도 일년에 한 800∼900여 건이 됩니다. 만약 오늘 제가 20분쯤 늦게 와서는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바쁘다 보니까 … " 이렇게 얘기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면 안되지요. 일 년에 간혹 한두 약속에 늦습니다. 그런데 실제 시간에 늦는 게 아니라 2시부터 시작이고 1시까지 오라고 하면, 저는 1시까지를 약속 시간으로 생각합니다. 또 저는 가능하면 여유를 두어서 1시 10분 전에 현장에 갑니다. 그렇게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또한 "교통이 어려울 때는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하십시오" 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그 말을 지키기 위해서 저는 전철을 타고 다닙니다.

방송생활을 통해 연예인들을 접해 보면 약속 시간에 맞추어 오질 않아 낭패인 경우가 많습니다. ABCD 순서대로 출연 가수를 짜 놨는데 도착하는 순서대로 진행을 하다 보니까 얘기가 엉망진창이 될 때가 있어서 MC로서 항상 불만을 가집니다. 오래 인기를 누리는 유명한 가수들은 시간을 잘 지킨다는 것을 제가 심리적 통계로 느껴요. 인기 좋을 때 자주 늦는 사람은 몇 개월, 몇 년 지나면 신용이 없다고 써 주질 않습니다.

여러분도 지금부터 시간을 잘 지켜보십시오.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비록 나 혼자 먼저 도착해 있을지라도, 좀 바보가 되더라도 누구는 늘 늦는다는 인상을 주는 것보다 항상 제 시간에 온다는 인상을 준다면 여러분은 동료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심어 줄 수 있고, 그 신용은 일생 따라다닐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내가 무슨 약속을 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약속을 많이 한 사람은 약속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약속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약속을 잘 지키는 방법이라는 금언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 입으로 나온 말은 내가 지킨다는 생각을 가지고 산다면 신용 있는 사람이 됩니다. 약속 잘 지키는 사람은 참 아름답죠! 이 핑계 저 핑계 대는 건 자신의 신용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대학 생활을 위해서 제가 드린 두 가지 참고가 될 만한 것은 하나는 조화로운 생활, 또 하나는 말은 믿음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