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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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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특강공지

  강연제목 영화연출론
  35 회
  초청연사 배창호 (영화감독)
  강연일시 1996년 03월 21일
  강연장소 본부관 학술회의장
  조회수 23755 회
 

안녕하십니까? 방금 소개받은 영화감독 배창호입니다. 저는 좀 오붓한 자리에서 강의하는 줄 알았더니 이건 강의가 아니라 강연이네요! 장시간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약간 당황스럽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영상의 시대'라는 말을 많이 하고 '멀티미디어 산업의 꽃이 영상 산업이고 그 중의 핵이 영화다' 라고 하는데, 영화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애드가 모랭이라는 프랑스의 학자는 "20세기에 두 가지의 큰 발명이 있을 텐데, 하나는 비행기의 발명이고 하나는 영화의 발명이다. 이 두 가지 발명이 세계를 혁신으로 이끌 것이다" 라고 20세기 초두에 얘기를 했습니다. 그 말은 적중을 했고 우리는 그야말로 영상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주위를 한 번 보십시오! 1년에 300편 정도의 외국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고, 또 우리 영화가 60편 가량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디오방에 가면 각양각색의 영화들이 슈퍼마켓의 온갖 물건들처럼 진열되어 있습니다.

영화가 예술이냐 오락이냐 하는 것은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제 영화에 대해서는 "배창호 감독의 초기 영화는 오락성은 좋은데 예술성이 부족하다" 는 얘기를 들었고, 또〈황진이〉라는 영화를 찍고 난 후에는 "영화의 예술성은 보이는데, 오락성이 보이지 않는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예술성과 오락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만, 그전에 제가 어떻게 영화를 만들게 되었고 왜 예술성과 오락성이라는 의미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되었나를 잠깐 설명하겠습니다.

제가 영화를 하고 싶어했던 것은 국민학교 때부터였습니다. 물론 영화감독이 아닌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습니다. 뚜렷한 동기는 없었고 저희 어머님이 대단한 영화연극광이셔서 유아시절 때까지 어머니 손을 잡고 극장에 가던 기억이 납니다. 국민학교 때는 저 혼자 극장에 다니면서 막연히 영화를 동경하게 되었는데, 그 어둠 속의 극장 안에서 나의 조그만 존재를 잊고 보는 한줄기 빛에 투영된 영화의 세계는 꿈 그 자체였습니다. 그 꿈속에는 인디언이 있고, 기병대가 있고, 서부의 사나이가 있고, 정의의 기사가 있었는데, 내가 마치 그 주인공의 세계에 사는 듯한 기분에 젖어 들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살이 찌고 여드름이 피어나기 시작해서 내 모습으로는 한국에서 배우가 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그 당시 저희 같은 영화학도에게 많은 정보를 주었던 프랑스 문화원에서 배우의 힘이 아닌 감독의 힘에 의한 영화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 제가 봤던 많은 영화들은 대부분 스타 위주의 할리우드 영화였기 때문에 스타가 없는 영화는 영화가 아닌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프랑스의 영화들을 보면서 우리하고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특별한 액션도 없이 평범한 모습으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의 새로운 힘을 느꼈어요. 그래서 감독의 길로 들어설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는 연희극예술연구회와 연상극우회라는 연대 상대 연극부, 두 군데를 왔다갔다하면서 대학가에서는 제법 이름있는 아마추어 연극배우로 활동했습니다. 대학 내에 영화 동아리가 별로 없어서 영화에 대한 열정을 연극으로 대신 달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는 영화계에 뛰어들 결심을 하고 시나리오를 하나 써서 "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면 틀림없이 백만 명은 들 겁니다" 라고 떵떵거리면서 각 영화사를 돌아다녔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스물네 살 먹은 철부지 젊은이의 섣부른 열정이었지요. 주위에서는 저를 돈키호테다, 미친놈이다 그랬습니다. 제 자신도 물론 준비가 덜된 상태였지만 현실의 벽은 굉장히 두터웠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길에 대한 좌절을 느끼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78년도 제가 스물여섯 살 때 현대종합상사의 케냐 지사장으로 발령을 받아서 아프리카로 떠나게 되었는데, 그때가 제 인생의 중간지점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때의 갈등은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케냐에서 일을 잘하면 보다 더 좋은 조건의 근무지로 떠나게 되고 결혼도 해야 되고 진급도 할 텐데, 그러면 영화를 하겠다는 내 의지가 꺾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충동이 조금씩 생기는 그런 시기였지요. 그래서 이쯤에서 그만두고 내 길에 다시 도전을 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장호 감독님이 조감독으로 써 준다는 확약을 받고 회사에 사표를 내고 1978년 말에 귀국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영화계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 한국 영화계의 리얼리즘을 새롭게 열었다고 평가받은 이장호 감독의〈바람 불어 좋은 날〉,〈어둠의 자식들〉두 편의 영화에서 조감독 생활을 했는데, 그렇게 하고 싶었던 영화의 길에 들어섰지만 한 가지 회의가 일었어요. 영화에 내 청춘과 미래의 모든 것을 걸고 뛰어들었는데, 이를테면 그때 제가 받았던 보수가 지금 돈으로 한 7만원 정도로〈바람 불어 좋은 날〉의 유지인 씨가 받은 개런티의 삼백분의 일의 보수였습니다. 이 암울한 조감독 생활을 내가 왜 하는 것인가? 내가 정말 능력이 있는 건가? 그것이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빨리 데뷔를 해서 한 편 찍어 보고 주위에서 능력이 없다면 미련없이 그만둔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이런 창작의 일에 들어설 필요도 없고, 내 아까운 시간과 경제적인 것과 장래를 담보로 할 필요가 없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꼬방동네 사람들〉이라는 이동철 씨의 원작으로 영화를 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평론계의 평도 좋았고 관객들도 어느 정도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철인들〉,〈적도의 꽃〉,〈고래 사냥〉,〈그해 겨울은 따뜻했네〉,〈깊고 푸른 밤〉까지, 한국의 스티븐 스필버그라고 영국의《이코노미스트》기자가 붙여 준 것처럼 흥행적으로 또 작품 면으로 승승장구했습니다. 첫작품부터 한국의 영화상을 휩쓸었고, 관객동원도 계속 그 해 베스트 1, 베스트 2, 베스트 3까지 전부 휩쓸었어요. 그리고〈고래사냥〉 의 경우에는 1980년대 젊은이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고〈깊고 푸른 밤〉이라는 작품으로는 저희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의 작품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충무로 일각과 매스컴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감독이다", "마이더스의 손이다", "한국 영화계에 태풍을 일으킨 사나이다" 라고 찬사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고래사냥 2〉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굉장히 졸작 중의 졸작이었습니다.〈고래사냥 2〉를 만들었던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1편에 관객이 많이 들었으니까 2편을 하면 적어도 그 반수는 들고 보너스를 받아도 꽤 챙길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초반의 영화에 대한 정열과 순수함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퇴색되었고 금전에 대한 유혹이 앞섰던 거지요. 감독들은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극장 앞에서 관객들의 반응에 귀를 기울이는데, 어느 때는 화장실 안에서 몰래 듣기도 하고 또 쏟아져 나오는 관객들에 섞여서 듣기도 합니다. 저는 그 영화가 상영되고 있던 피카디리 극장 로비에서 굉장히 초조하게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중학교 2학년 정도 된 아주 해맑게 생긴 여학생 하나가 저에게 생긋생긋 웃으며 다가오더니 "감독님! 좀더 공부를 열심히 하셔야겠네요" 하고 핀잔도 아니고 굉장히 애정어린 시선으로 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속으로 뜨끔하면서 '내가 저 학생을 속이지 못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의 정체를 제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발 관객들이 속고 넘어가 줬으면 하는 조바심이 일고 있었는데, 이번만큼은 그 어린 여학생조차도 제 영화에 절대로 속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부끄러웠습니다.

그때 불현듯 또다시 앞날에 대한 불안이 왔어요. '내 실력이 고작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구나! 내가 그 동안 기초공사가 튼튼하지 못한 집을 지은 것은 아닌가? 기초공사를 적당히 하고 외장, 내장, 인테리어, 외관의 색깔만 번드르르한 집을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일었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무엇인가? 나는 왜 영화를 할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그 전까지 영화를 만들면서 그러한 성찰을 한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영화를 왜 하냐고 했을 때, '나는 영화를 하고 싶어서 한다' 는 단순한 대답뿐이었습니다. 왜 영화를 하느냐?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느냐? 돈을 벌기 위해서 하기에는 너무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름을 얻기 위해서 하느냐? 여러 가지 질문 속에서 저는 명쾌한 답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고래사냥 2편〉의 실패 이후에 제 스스로 처음으로 영화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들고 씨름을 하기 시작했고, 제 스스로 조그마한 결론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만든 영화가〈황진이〉라는 문제의 영화입니다. 1986년도에 찍은 영화였는데, 관객들은 굉장히 어리둥절해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관객 중의 한 명은 영사실로 뛰어올라가 영사기가 고장나서 영화가 이렇게 늦게 돌아가냐고 항의를 했습니다. 템포가 굉장히 느린 영화였어요. 돌아가신 평론가 정영일 선생님은 "한국 영화계의 쿠데타다. 이 쿠데타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황진이〉를 왜 그렇게 만들었느냐? 그전까지 만들었던〈고래 사냥〉,〈깊고 푸른 밤〉은 이를테면 양념을 잘한 솜씨 좋은 주방장의 요리였습니다. 관객들의 입맛을 제법 맞출 줄 아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기름도 어느 정도 넣고 설탕도 넣고, 많은 재료를 잘 섞어서 모양 좋게 내놓은 그런 음식이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모양을 꾸미지도 않고 설탕기도, 기름기도 빼버린 싱겁고 담백한 음식이 나왔을 때, 손님들이 당황하기 시작한 겁니다. 현실을 왜곡시키는 환상적인 것도 뺐고, 관객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자극적인 요소도 뺐고, 거짓을 부리는 드라마적인 장치도 뺐고, 왜곡된 인간형도 빼기 시작하니까 갑자기 영화가 싱거워져 버렸던 거지요. 그러나〈기쁜 우리 젊은 날〉이라는 영화를 바로 그 다음에 했는데, 영화의 수법은〈황진이〉의 그것 그대로인데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습니다.〈황진이〉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잘 살아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좀 딱딱한 이야기였고,〈기쁜 우리 젊은 날〉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지극히 사랑한 순애보가 깔려 있었어요. 똑같은 형식과 똑같은 솜씨임에도 관객들의 반응은 굉장히 달랐던 거지요.

그리고 나서 장애인의 얘기를 담은〈안녕하세요? 하나님〉, 그 이후에 약간의 공백기를 가지고 이광수 원작의〈꿈〉이라는 영화를 해서 또 실패를 했습니다. 그리고 1992년도에〈천국의 계단〉이라는 다소 고전적인 내용의 영화를 만들어서 젊은 세대의 관객들에게는 외면을 당했습니다. 또 잠시 공백 기간을 갖다가 작년에〈젊은 남자〉를 하고 지금은〈러브 스토리〉의 제작, 감독, 각본, 주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서 영화의 예술성이냐 오락성이냐 라는 이야기를 할 때, 오락이라는 말을 한 번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슬롯머신을 하는 곳을 오락실이라고 하는데, 영화가 그것과 같은 오락이냐? 문학이나 음악이나 미술을 접할 때 여러분들이 고스톱을 치고 슬롯머신을 한 것과 같은 오락적인 요소를 느낀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시대를 통해서 그러한 문학이나 미술이나 시나 음악이나 영화가 존재해야 했다는 것 자체가 바로 오락이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까 예술성, 오락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바로 오락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다가 피곤해지고 휴식을 원하고 마음의 정화, 평안과 기쁨,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의 존재 이유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이 오락성이라는 말을 쾌락이라는 말로 바꿔도 될 것 같습니다. 옛 로마시대의 어느 철학자는 "학식이 있는 자는 예술의 의미를 음미하고 무지한 자는 예술의 쾌락을 음미한다" 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의 영화들이 쾌락을 위한 영화들입니다.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우리를 자극시키고, 이 힘든 세상을 잊어버리도록 마비시키는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반면, 혼돈 속에서 졸고 있는 우리들에게 "졸면 안돼! 깨어 있어야 해!" 라는 조그마한 종소리를 들려주는 안내인의 역할이 예술로서의 영화가 가진 사명입니다. 물론 저는 여기서 흑백논리로써 이 영화가 좋은 것이고 저 영화는 좋지 않다라고 구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은 다양하니까 어떤 종류의 영화도 다 필요하지만, 여러분이 균형 있게 영화에 대한 의미를 알아 달라는 뜻에서 얘기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예술이라고 하느냐? 우리는 흔히 영화의 예술성이라고 하면 '난해한 영화, 관념적인 영화, 우리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의도가 있는 영화, 심오한 영화, 딱딱한 영화' 이런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그의 유명한 예술론을 저술했는데, 그 예술론에서 보통의 상식과 보통의 지식을 가진 우리가 이해하고 공감하는 예술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술이라는 말의 원형은 솜씨라는 말로 아루스인데, 그것은 솜씨 좋은 것을 말합니다. 축구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잘해도 예술 같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옷을 잘 만든다든지, 집을 잘 짓는다든지 그런 것 모두를 예술이라고 불렀어요. 그러다가 솜씨 좋은 중에서 인간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만 예술로 한정하기 시작했는데, 르네상스시대에 이르러서 메디치가가 부패했던 교황청의 교조주의적인 예술로부터 탈피하고자 옛날 헬라사상 중의 미(beauty)라는 개념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술이라는 것은 인간 정신을 솜씨 있게 만든 것인데, 여기에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된다는 정의를 붙인 것이 르네상스시대의 메디치가 사람들이 주창한 예술운동이었답니다.

그러면 여기서 '아름답다'라는 말을 한 번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예전에〈동의보감〉이라는 TV 드라마를 감명 깊게 본 적이 있습니다. 허준 선생이 자기 스승의 시신을 동굴 안에서 촛불을 놓고 해부하는 장면인데, 선생님이 "네가 내 시체를 해부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 의술에 발전이 있을 것이다" 하니까 허준이 눈물을 흘리면서 "선생님의 시신에 손을 댈 수는 없습니다" 고 얘기합니다. 마침내는 "내 유언이니까 해라", 그래서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어 컴컴한 동굴 안에 촛불 몇 개를 밝혀 놓고 시체를 해부합니다. 여러분! 그 내용을 모르는 사냥꾼이 우연히 그 광경을 봤다면 얼마나 잔인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 장면에서 감동을 느낍니다. 왜?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그 내재된 것에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감동이고 아름다움입니다. 세상에 위선이 있듯이 영화에도 위선적인 아름다움이 많이 있습니다.

'아름답다'라는 말의 뜻은 원래 라틴어의 '보누스,' 선하다는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선한 것의 외형적인 표현, 즉 선한 것이 바깥으로 드러난 모습이 바로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꾸 외형적으로만 치닫게 되고 있는 것이지요. '아름답다' 는 말은 사실은 그 안에 '선하다' 는 본질적인 개념이 있어야 되는 것인데, 아름다움에 내재되어 있는 내용은 쑥 빠져 버리고 바깥의 것을 중시해서, 미스코리아를 뽑을 때도 팔등신인지 마스크가 어떤지 이런 바깥 것만 보고 뽑습니다.

톨스토이는 그런 외형의 아름다움을 부정합니다. 그래서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느낀 감흥이나 경험이나 직관을 좋은 솜씨로 전달함으로써 다른 사람들하고 그 감정을 공유하는 것, 공감하는 것, 서로 향유하는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래 전에 들었던 구수한 할머니의 자장가와 옛날 어른들한테 들었던 아주 구슬픈 옛날 이야기는 바로 훌륭한 예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18세기, 19세기에 이르러 특히 서양에서 예술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되어 자꾸 혼돈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나만이 알고 있는 것, 자기만의 독특한 것, 자기만의 괴상한 경험, 자기만의 새로운 것을 추구하다 보니까 예술이 설명을 해야만 이해가 되는 어려운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화 평론가의 설명이 없이는 이해가 안 되는 영화가 예술로서 대접받게 되었습니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밥과 빵에는 좋은 영양소가 있고 좋은 맛이 있는데 자꾸 쾌락적인 음식을 요구하다 보면 뭐가 나옵니까? 결국엔 인육까지 나옵니다. 자꾸 새로운 것을 찾게 되니까요.

제가〈러브 스토리〉라는 영화를 요즘 만들었는데, 어느 평론가가 "왜 이렇게 진부한 내용을 자꾸 하십니까?" 하고 물어서 제가 그랬습니다. "그럼 당신은 결혼하는 것이 진부해서 결혼을 안하십니까?" 곁에 있는 것, 평범한 것, 소박한 것은 시시한 것으로 여기고 유별난 것, 새로운 것을 찾는데, 새로운 것은 기존에 있는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라는 뜻이지 창조라는 이름으로 파괴하라는 뜻은 아닌 겁니다.

아주 고명하신 우리나라의 석학 한 분이 영화는 "참말 같은 거짓말이다" 라고 얘기하셨는데, 저는 바꿔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영화는 "거짓말 같은 참말이다". 주인공이 위기에서 벗어날 때 왜 박수를 칩니까? 저 주인공이 살아야 된다는 스릴을 어떻게 느낍니까? 그것이 거짓말인데 어떻게 거기에 동화가 됩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 주인공의 입장에서 안타까워하고, 같이 위기감을 느끼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웃을 수가 있어요. 저건 거짓말이야 하고 보는 관객은 영화를 보러 올 필요가 없는 사람이지요. 영화를 보는 그 순간은 영화를 믿게 됩니다. 그것이 영화의 힘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사실은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기쁜 우리 젊은 날〉이라는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어요. 그렇게 짝사랑하던 여인하고 드디어 첫날밤을 지내는데, 황신혜 양은 파자마로 갈아입고 침대 위에서 살포시 기다리고 신랑 안성기 씨는 샤워를 마친 그 다음 장면입니다. 카메라가 밑에서부터 올라오면 양말도 신고 바지도 입었는데 와이셔츠, 넥타이까지 입고 나옵니다. 관객들이 막 웃어요. 극장을 나오는 고등학생들이 "첫날밤에 누가? 거짓말!" 그럽니다. 그런데 그 일화는 저와 가까운 사람의 실화를 제가 그대로 옮긴 겁니다. 물론 넥타이 맨 것에 약간의 과장이 있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그런데 그 고등학생의 첫날밤에 대한 상상은 멋있어야 되지요. 첫날밤 전문가와 같이 여자를 안고 키스를 하고. 그렇지만 여자 경험이 별로 없었던 총각이었다면 아마 수줍고 떨리고, 갑자기 옷을 벗기도 그렇고, 파자마를 입기도 그렇고,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바지 입고 양말 신고 그럴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영화는 많은 거짓말을 가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 실제와는 다른 일정한 고정관념을 갖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를 현실 그대로 찍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현실을 그대로 찍는다면 영화가 있어야 될 필요가 없고 보도 내용과 같은 것은 잡지를 읽는다든지, 신문을 읽으면 되지요. 영화는 감추어져 있는 꿈, 즉 우리는 너무 바빠서 어떠한 사물과 어떠한 인생의 모습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시간이 없어서 안내인이 필요할 때 그 안내인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영화입니다. 즉 여러분을 투명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영화입니다. 우리는 남의 침실도 보고, 청와대도 가고, 도둑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볼 수 있지요. 별별 곳을 다 볼 수 있어요. 하여튼 영화는 사람들에게 몽상과 환상을 심어 주는데, 그 몽상과 환상은 현실에 내재되어 있지만 우리들이 바빠서 미처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 평론가 앙드레 바쟁이라는 분은 "영화란, 밤하늘의 유성이 떨어진 어둠 속에서 그 어둠을 밝히는 한 여성 안내원의 작은 손전등의 불빛과 같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주 겸손하고 소박한 얘기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느끼게 해주는 것이지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보여주는 것은 수단이고 그 수단을 통해서 우리의 몸과 마음 속 전체로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길〉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백치 여인을 주인공 잠파노가 데려다 놓고 자기 조수도 시키고 밥도 시키다가 어느 날 성적으로도 뭘 느끼는 모양이에요. "너 몇 살이지?" 젤소미나가 바보처럼 대답을 해요. "열여섯이요." 잠파노가 가만히 있다가 "타". 자기가 늘 타고 다니는 짐차 뒤칸에 타고 침대 휘장이 탁 닫히고 끝입니다. 주인공 잠파노가 그 여자를 성적으로도 노렸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잘 전달됩니다.

그런데 안 그러는 영화는 어떻습니까? 거기서부터 시작입니다. 이제 손, 발, 목에서부터 시작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본능상 자극 받기가 당연해요. 자꾸 옆에서 간질이면 어떻게 됩니까? "형! 형! 간질이지 마" 하면서 웃음은 자꾸 나오는데, 다 간질이고 나면 형 한 대 때리죠. 왜 날 웃게 만들었느냐? 감정의 겁탈입니다. 옛날 우리 최루탄 영화를 보면 눈물이 나오는데, 극장을 나오면 뭔가 찜찜해요. 그것은 자극을 통해 울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민주적인 영화가 좋습니다. 느낄 수 있는 체계가 우리한테 다 열려 있어요. 예를 들어서, 고문하는 장면을 찍는다고 할 때 여러 가지로 찍을 수가 있습니다. 인두로 지지고, 주리를 틀고, 물고문하고, 고춧가루 붓고 이렇게 직접적으로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 고문을 더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고문하는 사람의 시선, 고문 받는 사람의 시선, 손가락 하나, 그림자, 소리 또 고문을 보고 있는 제3자의 표정 등 얼마든지 간접적으로 고문의 잔혹함을 더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영화를 음료수라고 쳤을 때, 여러 종류가 다 있어야 돼요. 위스키 한 잔 마시고 싶을 때는 위스키를 마시고, 콜라 마시고 싶을 때는 콜라를 마시는 게 다 필요해요. 그러나 너무 그런 것만 많다는 거지요. 결국 맥주 먹고 소주 먹고 위스키, 아이스크림, 콜라만 먹던 사람이 배탈 나면 생수 마시라고 하지요. 여러 영화들 속에 이런 생수 같은 영화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여러분! 음식을 사면 함유물이 있지요? 글루타민산 소다 몇 퍼센트, 소맥분 몇 퍼센트 등 함량표가 나옵니다. 영화도 이런 분량표를 좀 넣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비디오방에서 하나 골라 보십시오. 섹스 50%, 살인 30%, 방화 10%, 음모 5%, 그런데 끝에 정의는 항상 있어야 해요. 정의 1%. 수단이 목적으로 된 거지요. 사람들은 간장이 우리 몸에 해롭다고 또 옛날에 라면의 유지가 식용이냐 비식용이냐 때문에 떠들썩했는데, 이 정신적인 식품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해악한 것이 금방 보이지 않고 아주 나중에 나타나거든요.

마지막으로 "영화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거울이 꼭 필요합니다. 조물주의 뜻인지 몰라도 우리들은 우리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게 태어났거든요. 대신 다른 사람을 통해서 우리 모습을 상상하거나 아니면 거울이 있어야 돼요. 그런데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만지면서 "이건 내 모습이 아니야. 요것만 내 모습이고 요건 내 모습이 아니야" 라고 할 사람은 없지요. 거울 속에 있는 모습이 다 자기 모습입니다. 자기 존재가 투영된 거예요. 영화도 똑같은 겁니다. 투영물이 있고 빛에 의한 반사작용에 의해 스크린에 투영이 되는 겁니다. 우리 인류의 꿈은 자기 모습을 남겨 놓는 것인데, 영화는 이것을 가능케 합니다. 지금까지 영화에 대한 부족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강연일시 초청연사   강연제목
40 1996-5-9 금난새   생활속의 문화
39 1996-5-2 김원일   작가가 되는 길
38 1996-4-25 조영남   조광조의 후예가 현대를 살아가는 방법
37 1996-4-18 이계진   말의 허와 실
36 1996-4-4 윤기선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
35 1996-3-21 배창호   영화연출론
34 1996-3-14 최창조   한국의 풍수사상
33 1995-11-30 이어령   한국문화의 패러다임
32 1995-11-23 손석희   21세기를 앞둔 우리 TV매체의 현실과 미래
31 1995-11-16 손 숙   21세기와 문화
30 1995-11-9 유인촌   배우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