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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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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특강공지

  강연제목 21세기를 앞둔 우리 TV매체의 현실과 미래
  32 회
  초청연사 손석희 (TV 방송인)
  강연일시 1995년 11월 23일
  강연장소 본부관 학술회의장
  조회수 23468 회
 

현대사회는 정보사회이고 정보사회의 지배자는 매체입니다. 신문도 그렇 지만 텔레비전은 정보전달이 즉발적인 것에 더해 일방적이라는 점에서 분 명 권위주의적 지배자입니다. 이 지배자의 존재가치는 역설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향력 안에 있느냐에 좌우됩니다.

'역설적'이란 표현을 쓴 것은 그 권위주의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피지배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 은 사람들을 영향권 안에 확보했느냐, 우리는 그것을 시청률이라 부릅니 다.

텔레비전은 시청자를 지배하고 역으로 시청률에 의해 지배를 받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시청률의 논리에 우선할 논리는 기본적으로 없다고 봐야 합니다. 제가 '결단코 없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 다. 예외가 없을 수 없으니까요. 방송의 건강성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 방송에 대해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방송노조도 포함하여)은 시청률전 쟁 자체뿐 아니라 때로 이 전쟁 일체를 잠재우고 끌어오는 권력 등의 외압 에 대해 비판하지만, 심지어는 그런 외압에 의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데에도 시청률의 논리가 유령처럼 따라붙는 것이 방송이 아닙니까?

도대체 시청률이란 무엇인가? 한편으로는 대중을 지배하면서도 동시에 대중추수적일 수밖에 없는 텔레비전의 좌표요 잣대입니다. 그리하여 시청 률은 텔레비전이란 지배자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도구(대중을 만족시켰다는) 가 되기도 하고 시청자라는 피지배자에게는 심판을 위한 무기가 되기도 하 는 것입니다. 문제는 시청률이란 함정에 양쪽 다 매몰되면 좋은 방송과 그 렇지 못한 방송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마는데 우리의 방송이 어떠한가는 독 자 여러분이 판단해주기 바랍니다.

혹 공정하지 못하다든지 또는 함량미달의 저질방송을 만들어도 시청률만 높으면 그것이 면죄부로 쓰이진 않는가? 불행하게도 대답은 '상당부분 그 렇다'입니다. 드물게 프로그램의 질과 시청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 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여기에 예를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시청률 전쟁이 프로그램의 질 저하에 방송사와 시청자가 공범 노릇을 하도록 고리 역할을 해온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그런 시청률조사가 '95년 봄부터 폐지되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시청률을 조사해주고 돈을 받는 회사와 방송 3사가 계약관계를 해지하고 그 조사결과를 받지 않기로 했다는 얘기입니다. 방송 3사의 사장들이 '95년 봄의 어느 날에 별다른 예고 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고, 봄 개편이 있던 4월 부터 우리는 시청률조사표를 받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는가? 과다한 시청률전쟁으로 인한 방송의 질 저하를 막고, 각 방송사의 인적, 물 적인 과다출혈을 막자는 것이 그 이유의 골자였습니다.

바로 직전까지 시청률의 전쟁터에서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아댔던 우리 들은 갑작스런 종전 소식에 당황했었습니다. 분명히 종전의 명분은 옳은 것이었고, 진작부터 그렇게 했어야 했으나, 사전에 평화협상도 없이 닥쳐 온 종전이었던지라 정치적 해석이 분분했습니다. 노조는 그것이 6월의 지 방선거를 앞두고 방송보도를 집권여당에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수순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뉴스보다는 사건, 사고 등 감각적 뉴스가 시청자들에게 더 다가서는 시대에 치열한 시청률전쟁을 방치했다가는 뉴스의 선정성만이 강화되고, 정부여당의 정치적 캠페인은 뒷전으로 밀릴 것이기 때문에 아예 시청률조사 자체를 원천봉쇄시켰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에 대한 보도가 정부 의 의도에 따라 축소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던 터여서 노조의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도 많았으나, 확증은 없었으므로 하나의 설로 그쳤을 뿐이었 습니다.

어찌 됐든 시청률조사는 폐지됐고, 마치 소용돌이치던 물이 갑자기 멈추 면 일순 물의 흐름이 뒤엉키듯 방송사 사람들은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했습 니다. 싸움에만 길들여졌던 우리들에게 평화는 어울리지 않았던 걸까요? 그보다는 뚜렷한 방송철학을 키워올 만한 역사를 갖지 못했던 우리의 현실 이 더욱 난감하게 느껴졌다는 게 이성적인 표현이겠습니다.

결국 시청률조사는 다시 시작됐습니다. 전처럼 공식적으로가 아니라 음 성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다를 뿐입니다. 시청률을 조사하는 회사는 방송사 에만 조사표를 보내지 않았을 뿐, 계약관계에 있는 광고회사들에는 매일 자료를 제공하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처음엔 은밀히 시청률자료를 입수 해 보다가 나중엔 아예 공개적으로 회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뉴스도 지방 선거 개표방송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기점으로 다시 치열한 경쟁에 들 어갔습니다. 드라마〈제4공화국〉과〈코리아게이트〉의 편성시간을 놓고 방송사들이 벌인 정보전은 유례없는 것으로 시청률전쟁의 종전은 이제 허 울만 남았을 뿐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머지 않은 장래에 시청률조사는 다시 공식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글의 앞부분에 장황하게 얘기한 것들 외 에도 현실적으로 우리의 방송은 자본주의체제하의 상업주의적 방송이기 때 문입니다. 만에 하나(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싶진 않지만) 권력이 방송의 시 청률전쟁을 막았다 하더라도 종국에는 자본이 그 전쟁을 부추길 것입니다. 그들은 그 프로그램을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이 보고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 고 스폰서가 되진 않습니다. 좀 전에 약간 얘길 비추기도 했지만, 광고회사 들이 매일 시청률조사표를 받아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게다가 탄생 이후 지금까지 존폐 여부가 논란이 되어 온 방송광고공사가 폐지될 경우 광고영업권은 각 방송사에 환원될 것이고, 이 때에 시청률은 광고료 책정 에 절대적 기준이 될 것이므로 공식적인 시청률조사의 부활은 더 말할 필요 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좀 속된 표현으로 각 방송이 발가벗고 시청률전쟁에 돌입했을 때, 그 때 우리의 방송은 어찌 되는 것일까요? 비관적으로만 보자면, 더 철저한 산업적 매체로 군림할 것입니다. 좀더 대중추수적이 되면서, 거대 한 자본의 논리로 시청자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상황 은 6공 당시 정부가 민영방송 설립을 추진할 때부터 예상되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반론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가 이른바 시대적 흐름이라 하여 추 진했던 방송의 공민영 합동체제는 이른바 분할통제(devide and rule)에는 유 리할지 모르나, 시청률전쟁에 의한 부작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 다.

그렇다면 낙관적인 부분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시청자들에게서입 니다. 책임의 전가가 아니라 책임의 발견입니다. 시청자들은 이제 방송에 대한 책임을 인정할 때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방송인 에르베 부르주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무리지을까 합니다.

"어떤 규정과 규칙도 슈퍼마켓을 문화관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프랑스의 공영TV인 A2의 회장인 그는 시청률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 는 상업방송의 한계를 그렇게 표현했는데, 이는 우리와 같은 방송현실 속 에서도 하나의 경고성 문구가 될 수 있습니다. 훌륭한 문화관은 못 되더라 도 최소한 상한 음식을 파는 슈퍼마켓은 되지 않으려면, 방송사에서 늘 깨 어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시청자들 가운데도 늘 깨어 있는 사람이 있 어야 합니다. 그것도 점점 더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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