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학생들 뵈니까 너무 반갑습니다. 아까 제 소개에서도 언급됐지만
사실 저는 고대 사학과를 중퇴했습니다. 왜 중퇴를 했느냐 하면 제가
3학년 때 시집을 갔거든요. 그 당시만 해도 결혼 해 가지고 학교를
다니기가 굉장 히 어려웠어요. 저의 남편은 미안하니까 그랬겠지만,
학교를 졸업하라고 그랬어요. 아마 다니려면 다닐 순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 때 제 생각에 는 그까짓 졸업은 해서 뭐하나, 아니 좋은 남자
만나서 서로 사랑해서 살면 됐지, 그까짓 졸업은 해서 뭐하나
그랬거든요. 그래서 중퇴가 됐어요. 그 랬는데 이제 살면서 보니까
가끔씩 후회가 되기는 해요. 그러니까 여러분 들은 혹시 중간에 그런
일이 있더라도 꼭 졸업을 하세요. 나중에 살다보면 후회할 때가
있으니까 좋은 사람 있더라도 졸업하고 결혼하시라고 특히 여
학생들한테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저는 요즘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위기의 여자〉라는 연극인데, 8월 17
일날 시작을 해서 11월 25일날 끝납니다. 그러니까 석 달 넘게 공연을
하고 있는데, 그 한여름에도 손님이 굉장히 많이 왔어요. 그래서 이제
연장공연 까지 시작을 했는데, 어느 날부터 손님이 저녁공연에 뚝
떨어졌어요. 그게 이유가 뭐냐 하고 알아보니까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터지면서부터 손님이 뚝 떨어진 것이었어요. 아무튼
며칠간은 저녁공연에 객석의 한 반 정도만 손님이 앉아 있고, 그래서
연극하는 사람들도 그야말로 김이 새고 아주 속이 상하더라구요.
사회가 이렇게 복잡하고 시끄러우면 가장 안 되는 것이 책장사와 공연이
에요. 이런 것들이 제일 먼저 타격을 받거든요. 우리 이 사회가, 또
돌아가 는 나라꼴이, 드라마보다도 더 재밌는데, 돈 내고 극장에 오실
이유가 없을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제가 너무 속이 상해서 하루는 관객
앞에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겠다, 그
연희동에다가, 그렇 지 않으면 너무 분하고, 관객들도 안 오니까
약오르고, 그래서 손해배상 청 구소송을 하겠다, 그랬더니 어떤 분이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치시더라구요.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결국 못하고
말았습니다만 이렇게 사회가 어지럽다 보니까 공연장 그리고 문화쪽이
찬서리를 맞고 있어요.
제가 진행하고 있는〈여성시대〉라고 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는데,
여러 분들 들어보셨어요? 아마 아침이니까 들어보시기가 학생은 좀
어려우시리 라 생각을 하는데, 제가 그 프로를 한 오년째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 프 로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을 제가 잠깐만 말씀을
드리고, 문화 얘기를 해드 리고 싶어요. 저는 30년 동안 연극을
했습니다. 연극을 해서 그야말로 세계 의 좋은 작품, 명작들도 많이
접해보고, 그리고 간접적으로도 인생에 대한 체험을 참 다른 사람 못지
않게 했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랬는데 이〈여 성시대〉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제가 받고
있는 편지가 하루에 한 200통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이 청취층 의
수준을 보면, 이른바 중산층이라고 하는 수준에 놓고 볼 때, 중하 그러
니까 서민층의 사람들인데, 제 프로의 청취자의 한 70%를 그 분들이
차지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보통사람들이죠. 빽 없고, 돈도
많이 없 고, 정말 열심히 일해서 내 몸 움직이지 않으면 하루하루
벌어먹기도 힘든 분들, 자영업하는 분들, 공장에 계시는 분들, 또
주부들, 이런 분들이 많이 듣는데, 이 분들이 보내는 편지가 제가
무대에서 했던 어떤 작품들보다 진 솔하고 감동적이라는 것에 대해서
저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세상 살이의 얘기가 이렇게 다양하고
정말 드라마틱하구나 하는 것도 느꼈구요.
그런데 요 근래에 제가 어떤 편지들을 받았는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
희가 요즘 매달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설문조사를 하고 있어요. 10월의
설 문조사의 주제가 무엇이었는가 하면, 비상금에 대한 것이었어요.
그랬는데 아주 좋은 얘기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 중에 제가 하나를
소개를 해드리 면, 어떤 주부가 보낸 편지였어요. 이 주부의 친정이
백령도인데, 백령도 에서 친정어머님, 친정아버님이 아이들은 다
결혼시켜서 뭍으로 내보내 서 울이나 인천에 살고 있고, 두 분이
백령도에 살고 계시대요. 그래서 이 친 정어머니께서 1년에 몇 번쯤
자식들을 보기 위해서 배를 타고 나오시는데, 백령도에서 보통 배를
타자면 인천까지 오시는 데 한 열 시간 가까이 걸린 답니다. 그런데
쾌속선이라는 게 있대요. 그걸 타면 한 너덧 시간이면 오시 는데, 이
어머니가 돈이 아까우셔서 절대로 쾌속선을 안 타신다는 거예요. 딸네
집에 오실 때 되면 딸 주려고 농사지은 것을 다 넣어서 그야말로 올망
졸망한 보자기를 싸서 들고서는 밤중에 들어오시는데, 그냥 열 시간
뱃길 에 지치셔서 멀미에다가 완전히 반 초죽음이 되어서 들어오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따님의 소원이 뭐냐 하면 비상금을 모아 가지고 드리는 건데, 사
실 결혼해서 사는 주부들이 친정에다가 돈을 그렇게 듬뿍듬뿍 주게
되지를 않죠. 그리고 또 그렇게 형편들도 안 되고요. 또 드리려면 시댁
눈치 보이 고 남편 눈치 보이고, 그런데다가 이 주부 같은 분들은
남편이 갖다주는 월 급 몇 푼으로 정말 어렵게 생활하는 분이기 때문에
친정어머니가 오셨다고 차비를 성큼성큼 드릴 그런 형편이 안 되니까요.
이 주부의 소원이 뭐냐 하 면, 비상금을 십만 원 정도 될 때까지 모아서
어머니가 오셨을 때 쾌속선 표를 사서 드리고, 남는 돈은 어머니
손에다가 쥐어드리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한 달에 만 원도 모으고 이만 원도 모았는데, 사실 요즘에 십만
원이라는 게 어떻게 생각하면 참 별거 아닌 돈이지만, 그러나 없는
사람한 테는 그게 또 큰돈이거든요. 그래서 지금 한 사오만 원이
모아졌대요. 남편 몰래. 그래서 십만 원이 되면 쾌속선으로 어머니를
가시게끔 하겠다는 그 런 희망을 가지고 비상금을 모은다는 그런 편지를
보냈었어요. 그랬는데 그날 뉴스에 그 비자금 사건이 터졌어요. 오천
억, 삼천 억 하니까, 정말 솔직한 얘기로 가슴에서 불이 나더라구요.
이렇게들 사는 사람들이 있는 데, 몇천억 그러니까 제가 너무나 가슴
아프고 속상하더라구요. 몇천억이 보통사람의 돈 액수입니까?
또 한 가지 사연이 있어요. 장충동 어느 족발집에서 일하는 어떤 아주머
니가 편지를 보내셨어요. 서울에 올라오신 지가 한 십 년 가까이
되셨는데, 한 번도 외출을 해보지 않으셨대요. 그 식당에서 먹고 자고
월급을 모으시 는데, 한 달 용돈을 오만 원도 안 쓰는 그런
아주머니세요. 서울에 올라와 서 자기 돈으로 옷을 사 입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답니다. 그렇게 사신 이 아 주머니가 돈 삼십만 원을
우리〈여성시대〉에 보냈어요. 이 아주머니는 어 릴 때부터 고아로
자랐답니다. 부모 없는 아이들을 위해서 뭔가 하는 것이 이 아주머니의
소원인데, 자기 형편으로 뭔가를 할 수는 없고, 자기가 모은 정말
피같은 돈 삼십만 원을 보내니 꼭〈여성시대〉에서 알아서 고아들을
위해서 써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편지와 함께 돈 삼십만 원을 동봉해서
저희 한테 보냈어요.
제가 그 편지를 읽고,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서 그 아주머니한테 전화를
드렸어요. 이렇게까지 안 해도 우리가 도울 수가 있으니까 이 돈을 다시
보 내주겠다 그랬더니, 아니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하면 자기가
섭섭하니까 그 돈을 꼭 부모 없는 아이들을 위해서 써달라는 거였어요.
그랬는데 그날 뉴 스에 보니 그 분이 무슨 그늘진 곳에 돈을 엄청 조금
썼다는 그런 발표가 났더라구요. 그 때 세상 사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가 많이 왔어요. 그 런데 저는 그것을 어떻게 풀이했느냐 하면,
물론 여러분들도 다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또 해결책도 생각을
하시겠습니다만, 제가 그 이유와 원인을 따져볼 때, 이것은 결국 우리가
여태까지 문화 부재 속에서 살아왔던 게 아 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우리나라가 오천 년 역사 속에서 사실은 굉장한 문화민족이라고 얘기를
하고, 우리가 어디 가서도 문화민족, 또 오천 년 문화 등등 그런 얘기를
하 죠. 그리고 또 역사를 더듬어 보면, 우리에게 찬란한 문화가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 동안에 그 찬란하고
당당했고 자존심 강했던 문화는 어디로 가 버리고, 지금은 거의 문화
부재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원인을 따져보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 동안에 우리가
오랫동안 30여 년 간에 걸친 군사독 재 아래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21세기에 대비해서 우리가 문화를
창출하고 향유하고 축적하는데 우리의 힘을 모아 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여러 학생들과 이런 얘기를 나누 고 싶어요.
문화가 21세기에는 국력이 된다고 그러죠. 여러분 아시겠습니다마는 19
세기나 20세기는 이데올로기의 시대다, 또 군사독재의 시대다, 또
경제의 시대다, 그렇게 얘기를 했지만, 21세기가 되면, 이제는 문화와
정보의 시 대가 되고, 문화가 없는 나라, 그야말로 문화가 가난한
나라는 세계의 대열 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와 있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아실 거예요. 알면서도 우리가 아직까지는 그에 대한
대비를 전혀 못하고 있다 는 게 너무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에 문화부가 생긴 것이 6공 들어서였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
절에 문화부 하나 만들어야 된다는 문화예술인들의 의견이라든지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서 아는 분들의 의견이 참작이 되어 가지고 문화부라는 게
생 겼어요. 그런데 문화부의 예산은 보통 전체예산의 0.3%정도밖에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색이 문화부만 생겼지, 문화에
대한 지원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거의 제대로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저희들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었느냐 하면, 이제 하나 생겼으니까
그래도 이제 어느 정 도 세월이 가서 인식이 달라지면 예산도 늘어나고
뭔가 문화에 대한 지원도 많이 늘 것이라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굉장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었 는데, 정말 불행하게도 지금 이 문민정부
들어서면서 문화부가 다시 없어 졌어요. 문체부로 다시 합쳐졌습니다.
문화체육부가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그나마 있던 문화에 대한, 문화부에
대한 기대를 지금은 도저히 가질 수가 없게 됐어요.
저희가 사실 문민정부 들어서면서 굉장히 큰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왜
그것을 문체부로 통합했는지 저희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문화와 체육은
어떻게 보면 맥락이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별개예요.
오히려 교육부하고나 합쳐진다면 뭔가 또 이해가 되겠는데 말이죠. 저는
체육이 문화보다 못하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전혀
별개의 것이 니까 말씀을 드리는 건데, 문체부쪽에 한 번 가보면
그야말로 체육하시는 분들, 덩치 좋은 이런 분들만 문체부 앞에서
왔다갔다하니까는 저희는 주 눅이 들어서 그 앞에 감히 갈 수도 없는
그런 분위기가 돼버렸어요. 그리고 어디나 보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잖아요. 그리고 저희쪽에 종사하는 사 람들은 잘났든 못났든
자존심이 강하고, 다 저 잘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유, 더럽다,
관두자' 이렇게 하지, 거기에 가서 싸워서 뭐를 쟁취한다거 나 이런덴
굉장히 약한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아주 거의 뒷전에 밀려나
있는 이런 상황이 지금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현주소라는 걸 여러분 이
꼭 알아주셔야 될 것 같아요.
제가 아까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하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 사례를 제
가 몇 가지 들어 드릴게요. 여러분〈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 보셨죠.
그 영화가 벌어들인 돈이 3억 달러가 넘는다고 그래요. 거의 3억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들인 그런 영화, 또〈쥐라기 공원〉같은 영화는
우리나라가 2년 동안에 자동차를 수출해서 벌어들이는 액수보다 더 많이
벌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문화는 이제 완전히 경제가 된다고 저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문 화는 국가의 이미지이고, 이제는 문화를
앞세우고 어디든지 가야지, 문화 없이, 문화 앞세우지 않고 가서는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아마 여러분들 아 실 거예요.
그 예가 지난번에 미테랑 대통령이 TGV 때문에 우리나라에 오지 않았습
니까? 그 때 그것을 팔기 위해서 그분이 어떤 수행원들을 데리고
왔었는지 여러분 아시죠. 소피 마르소라든지 악테슈드라고 굉장히
유명한 출판사 사 장, 그 출판사에서 아마 우리나라의 작품들도 많이
번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문학계쪽에서 굉장히 좋은 인상을 주고
있는 그런 출판사 사장, 그 다음에 조각가 세자르, 그 사람 조각 보신
분들 계실 거예요, 올림픽공원에 가면 손가락 조각한 것 말이에요.
그렇게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진, 그런 예 술하는 사람들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왔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뭐 그 사람들이 예뻐서
데리고 온 거는 아니겠죠. 그건 순전히 장삿속이거든 요. 아무리
불란서의 교통장관이 와 가지고 우리나라 TGV가 이렇게 좋다 얘기해
봐도 일반국민들이 볼 때는 사실 잘 모르거든요. 그런데 소피 마르 소가
한 번 딱 나와서 이 TGV는 아주 편리하고 빠르다고 하면 우리 눈이나
귀에 그렇게 빨리 들어올 수가 없지 않습니까? 광고효과라는 게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런 것을 이용할 줄 아는 게 저는 불란서라고 생각이 들어
요.
몇 년 전에도 제가 지금 그 수상이름을 잊어버렸는데, 파비우스던가 그
수상이 오면서 어떤 여배우를 데리고 왔었느냐 하면, 이자벨 아자니라고
여러분 아시죠? 아마 그 여배우가 세자르상에서 여우주연상도 받고
그랬을 거예요. 그 여배우를 공식수행원으로 데리고 왔어요.
불란서문화원에서 저 희들을 초청해서 갔더니, 이 수상이 그 여배우하고
같이 서서 칵테일 파티 를 하면서 인사도 하고 그러더군요. 잠깐의
칵테일 파티가 끝나니까, 영화 를 하나 보여주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갑자기 웬 영화냐 그랬는데, 그 해에 세자르상에서 작품상을 탄〈주말을
시골에서〉던가 하는 그런 제목의 영화 였어요. 그 여배우가
주인공이죠. 한 시간 반의 영화를 저희는 그냥 할 수 없이 봤어요.
초대를 받았으니까. 보고 났더니 그 다음에 수상이 하는 말이 "나는
오늘 이 자리에 불란서 수상으로 온 것이 아니라, 이자벨 아자니의
수행원으로 왔다. 오늘의 주인공은 이 여배우다"하면서 그 여배우를
일으 켜 세웠는데, 전부 기립박수를 안 칠 수가 없었어요. 그날 저는
정말 그 여 배우가 부럽더라구요.
그래서 그날 저는 어떤 생각을 했었느냐 하면, 나는 왜 온돌방에 태어났
는가, 침대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런 대우는 받지 않았을 거 아닌가 하는
그 런 이상한 자격지심도 들고, 너무너무 속상하고, 참 부럽기도 하고
그렇더 라구요. 그런데 그 사람이 뭐 그 여배우를 유명하게 해주려고
왔다거나 또 인사시키려고 데려온 거는 아니죠. 무슨 경제협력을 하기
위해 오면서 이 렇듯 문화로 포장을 하고 온 거죠. 그랬기 때문에 훨씬
분위기가 부드러워 질 수 있는 건데, 어디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문화를
앞세우고 들어가면, 그 문화행사를 하게 되고, 그 다음에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다음에 뭔가 협 상을 하면 상품구매도 많이 하게 되고
그런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 나라 의 문화에 대해서 우리가 얘기도
하게 되죠. 그러니까 이제는 문화를 앞세 우지 않고는 무역도 참
힘들어지는 시대가 왔다는 그런 생각을 해요.
그런데 우리는 문화에 대한 인식이 너무 없어요. 이런 얘기를 하자면 한
도 끝도 없어요. 우리가 지금 민주사회, 민주시민을 만드는 얘기를
하는데, 이 문화가 어느 정도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어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 들의 덕성과 자질과 심성이 어느 정도 문화로 인해
만들어져야지 민주시민 이 되고, 그래서 민주사회가 되는 것이지, 그런
문화적 바탕도 없이 그냥 무조건 우리는 민주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게 아 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시학》에 보면, 비극의 정의를 카타르시스라고
정의해 놓았습니다. 말하자면, 문화는 사람들한테 위생학적인 그런
효과도 있다는 거죠.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문화가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 동안 우리는 너무
문화에 대해서 그 중요성도 몰랐었고, 지금에 와서 문화가 중요하다고
말은 많이 하지만, 그러나 실질 적인 훈련은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고, 특히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중요성 인식이나 문화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참 어렵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데, 여러분들도
지금부터라도 그런 중요성을 인식하시고, 그에 대한 대비 를 좀 하셔야
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도 이젠 극장이나 공연장 수가 굉장히 많아졌어요. 옛날에 비하
면요. 그런데도 보면, 수도 서울이라는 이 곳에 시립박물관이 없어요,
아 직도. 어쨌든 요즘에는 참 많이 좋아졌어요. 많이 좋아져서 웬만한
도시에 는 문예회관이라는 것이 많이 생겼습니다만, 아직도 마산 같은
도시에도 공연장이 없어요. 그래서 지난번에 제가〈신의 아그네스〉라는
작품을 가지 고 마산에 갔었는데, 공연장이 없어서 공연을 어디에서
했느냐 하면 어느 대학강당에서 공연을 했어요. 그런데 이 공연장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는 여러분들 아마 아실 거예요. 강당에서는 공연이
안 되죠. 그랬는데 입장 료를 얼마를 받느냐 하니까 평균 만오천 원,
이만 원을 받고 있더라구요. 우리나라 관객들은 참 착해요. 아무런
시설도 없이 만오천 원 받는다고 해 도 만오천 원 내고 와서 가만히
앉아 계세요. 그렇게 하면 안 되죠. 어떻게 만오천 원을 그 극장에서
받습니까? 대사가 제대로 나갑니까, 마루는 삐그 덕거리죠, 애들은
뛰어다니죠, 화장실은 더러워서 냄새 때문에 들어갈 수 가 없을
지경이구요. 아무 대비도 없이 돈만 그냥 펑펑 받는 거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마산이라면 그야말로 경상남도에서는 문화도시고, 대통
령이 나온 도시가 아닙니까? 그런데 제대로 된 공연장이 하나 없다는
것, 이것은 인식의 문제인 것 같아요.
저희가 70년대에 지방공연을 다녀보면, 체육관은 어디나 다 있어요. 그
것도 굉장히 자랑해요. 우리 도시의 체육관은 서울 무슨 체육관보다
큽니 다라는 식으로. 우리나라는 큰 것을 굉장히 좋아하더라구요. 세계
제일, 대한민국 제일, 이러다 보니까 큰 것, 큰 것만 짓기 시작하고, 그
당시에 대통령들이 전부 체육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체육관
지을 생각을 하지 공연장 지을 생각들을 안 해요. 그래서 지방에 가면
체육관에서 공연 을 하라는 거예요. 체육관에서 할 공연이 있고 안 할
공연이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한 인식이 전연 없어요. 그래서 참
속상했던 적이 많은데, 그래도 이제 한 십 년 지나고 나니까 요즘에는
참 많이 좋아졌어요. 좋은 극장들도 많이 생기구요.
그래도 아직은 극장만 지을 줄 알지 그것의 운영과 관리에는 소홀한, 말
하자면 하드웨어에는 관심이 있지만 소프트웨어쪽은 전연 관심이
없어요. 행정관리들이 극장관리를 하는데, 어떤 재미있는 일들이 있었냐
하면, 제 가 어느 지방에 갔더니 극장을 아주 잘 지어놨어요. 그런데
분장실이 없어 요. 배우가 분장실 없이 어떻게 준비를 합니까? 그래서
왜 분장실이 없습 니까 그랬더니 저 지하에 조그만 환기도 안 되는 방을
하나 주면서 거울도 없는 방에서 분장을 하라고 그래요. 그런데 후배가
와서 저기 극장 무대 옆 에 아주 좋은 방이 있는데 열쇠를 채워놓고
열어주지를 않는다는 거예요, 관리소장이. 그래서 제가 올라갔어요.
'VIP실' 이렇게 써놓았어요. 그래서 이거 왜 안 열어주느냐, 우리가
분장할 데가 없으니까 이것을 열어달라 그 랬더니 안 된대요. 그래서 왜
안 되느냐 그랬더니, 이 방은 시장님 오실 때 쓰는 것이기 때문에
열어줄 수가 없대요. 그래서 제가 막 화를 냈어요. 내 가 당장 당신의
시장한테 가겠다, 전화번호 대라, 이 극장을 왜 지었으며, 이 극장은
누구를 위한 극장이고, 이 방은 누구를 위한 방인지 내가 꼭 물 어봐야
되겠다, 당신네 시장이 여기에 행사하러 오는 건 한 달에 많아야 한 번
아니면 일 년에 몇 번인데, 그것을 위해서 이렇게 문 걸어 잠그고 여기
출연하는 배우들한테는 장소도 안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니까 내가
가만 안 있겠다고, 하도 막 무섭게 하니까, 그 때 할 수 없이 그 문을
열어주더 라구요. 열어주는데 들어가 보니까 아주 빨간 카펫으로 발이
안 밟힐 정도 로 깔아놓고 거기다가 응접세트를 요란하게 갖다놓았어요.
그리고는 그 문 을 그냥 그렇게 걸어 잠가 놓고 있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어떤 잘못을 하 고 있는가에 대해 말이 안 통할 정도로
공연장에 대한 인식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백건우 씨가 요즘에 일 년에 한 번씩 와서 지방에 다니면서
연주회를 해요. 백건우 씨의 생각은 뭐냐 하면 지방에 다녀보니까
지방민 들이 너무 문화에 굶주려 있다는 거죠. 그래서 자기가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지방에 다니면서 연주를 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대요.
지방민들을 위해 서 너무 좋은 생각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바쁜 사람이.
그리고 무슨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지방에 다니면서
연주를 하는데, 갈 때마다 속상한 것이 극장에 가면 그랜드피아노를
근사하게 갖다 놓았대요. 그런데 연습을 못하게 한다는 거예요.
만지지를 못하게. 지금 상황이 이런 상황이 에요.
국립극장이라고 지금 장충동에 아주 대단한 극장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
도 쓸모없는 극장이에요. 대극장은 너무 커서 공연이 안 돼요. 거기서
할 거라고는 교향악단이나 아니면 발레공연 외에는 할 수가 없는,
덩치만 큰 아주 쓸모없는 겁니다. 소극장은 또 너무 작아요. 너무
작아서 배우가 좀 많이 나오는 연극을 하기에는 너무 작게 그렇게
쓸모없이 만들어놓고도 이 운영을 주로 누가 하느냐 하면 문화부에서
파견나온 관리들이 하고 있어요. 이 관리들이 얼마나 머리가 굳어
있느냐 하면, 제가 그분들을 욕하려는 건 아닌데, 어떤 식으로 그
분들이 로테이션이 되고 있느냐 하면, 예를 들어서 옛날에 창경원에서
붕어 모이 주던 사람들이 한참 있다보면 극장에 와서 사 무국장도 하고
극장장도 하는 식이에요. 그러면 이 분들이 문화에 대해서 알 게 없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거기 배치한 인사에 문제가 있는 거예 요. 그
사람들이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요즘에는 그래도 좀
달라져서 관장은 미술하는 분들이 가 있는 경우도 봤긴 봤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들하고는 얘기가 되지를 않아요. 쇠귀에 경 읽기예요. 그래서
제 대로 공부하고 문화에 대한 안목과 상식이 있는 사람들을 그런
요소요소에 앉혀서 그런 하드웨어를 운영하게 만들어 주는 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는 생 각이 들어요.
장관 한 사람이 바뀌어서 될 일도 아니죠. 예를 들어서 이어령 장관이
문화부장관을 했다고 합시다. 이 분은 꿈이 많죠. 우리나라 문화를 좀
이렇 게 해보고 싶다 하지만, 혼자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관리들이
말을 듣지 를 않아요. 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 하면, 오래
관리를 했기 때문에 장관이 길어봐야 일 년, 뭐 빠르면 석 달, 어떨
때는 한 달 만에도 바뀐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때까지만 버티자는
거예요. 그냥 가능한 대 로 일 안 하고, 듣기 싫은 소리 안 하고,
이거는 이런이런 일이 있어서 잘 안 되겠는데요, 이래 가면서 세월만
보내다 보면 결국 한 1년 하고 가버리 면 그만인 거예요.
현재 이런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 속에 우리나라 문화가 지금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꼭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제 우리
관객들 부터 문화인식이 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관객들의
변천사에 대해 서 잠깐 말씀드리면 참 재미있어요. 저는 연극을 한 30여
년 했기 때문에 지방공연을 많이 다녔죠. 한 70년대 초, 이 때는
지방공연에 가보면, 극장 에 들어오시는 분들은 무조건 껌을 씹어요.
아무튼 개구리 울음소리보다 더 심해요. 그 껌문화는 정말 버려야 될
문화 같아요. 서양문화 지금 많이 들어왔지만, 서양사람들이 그렇게
소리내서 껌 씹는 거 못 봤는데 여러분 들 보셨어요? 어떻게 배웠는지
무조건 그분들은 극장에만 들어가면 껌을 씹어야 된다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희가 미리 나가서 껌을 좀 자제해달라 고 멘트를 해도 소용이
없죠. 그리고 막 한창 공연중에 뒤에서 이래요, 저 기 아무개 엄마
집에서 전화왔어요, 저기 아무개 아기 울어요, 이런 일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70년대 초까지도 있었어요.
저희가 한 번은 진주인가 어디 공연을 갔는데 마이크도 없죠, 무대는 크
죠, 아무리 대사를 해도 들리지가 않아요. 뒤에서는 안 들린다고 소리를
지 르죠. 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까 저희 선배되시는
백성희 선배 님께서 작은 소리로 이렇게 얘길 하시더라구요. '대강하자.
우리 대강하자. 이거 뭐 해봤자 되지도 않고 그러니 우리끼리 그냥
대강하자.' 그래서 1시 간40분 연극을 저희가 한 시간에 끝냈어요. 뭘
봤는지 그분들은 모를 거예 요. 막 건너뛰고 넘어가고 그랬으니까.
그랬는데도 화도 안 내요. 그냥 그 런가보다 하고 다 가셨죠.
이제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대전인가에 한 번 공연을 갔는데, 중
고등학교 아이들이 단체구경을 왔어요. 정말 문제 있어요. 자제가 안
돼요. 그 이유가 우유만 먹고 자라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더라구요.
젖소우유만 먹어 가지고 자제가 안 된다는 거죠. 국민학교 선생님 한
분이 그런 얘기를 해요. 요즘 아이들은 하나가 떠들기 시작하면 온
반아이들이 들고 일어나 서 떠들기 때문에 아무리 야단쳐도 자제가 안
된대요. 떠드는데 아무리 얘 기를 해도 듣지 않으니까 우리 박정자 씨가
너무 화가 나서 연극을 중간에 중단을 했어요. 사실 중단하면 안
되잖아요. 연극을 중단하고 한 십분을 막 야단을 쳤어요, 너희들이 이래
갖고 되겠냐고. 이거 정말 코미디예요. 아 주 비극적인 연극을 하다가
연극은 중단되고, 배우들은 계속 무대에 앉아 있고. 박정자 선생님이 좀
흥분파거든요, 또 목소리가 얼마나 큽니까. 막 야단쳤어요. 그랬더니 그
때는 조용해요. 이제 애들이 말 듣는가 보다 하고 다시 시작했죠.
그랬더니 한 십 분 있다가 다시 떠들기 시작하는데 방법이 없어요.
이게 왜 그러냐 하면 훈련이 안 되어 있어서 그래요. 자랄 때부터 극장
에 가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누가 가르쳐줘요? 엄마가 가르쳐줘요? 학교
선생님이 가르쳐줘요? 갈 기회나 있었어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어쩌다
가 한 번 가면 애들은 흥분밖에 할 줄을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는 어렸을 적부터 이 문화에 대한 소양을 키워주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씀 을 꼭 드리고 싶어요.
제가 영국에 갔을 때 런던에서 연극을 하기에 구경을 간 적이 있어요.
이제 모처럼 정말 별러서 갔었는데, 유치원 아이들이 단체로 와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속으로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고는, 아 이거
큰일났다, 오늘 연 극 잘못 왔나 보다 하고 생각했죠. 진짜 이건 거짓말
아니에요. 어쩌면 아 이들이 그렇게 조용하게 잘 보는지 모르겠어요.
말도 안 하고 열심히 보더 라구요. 그런데 한 아이가 궁금한 게
있었는지 옆아이한테 소곤소곤 하니 까 사이사이 선생님들이 한 분씩
앉아 있다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쉬- 하 는 모양을 취하니까 다시
조용히 앞만 보고 앉았는데, 정말 안아주고 싶더 라구요.
그래서 전 우리 아이들하고 한 번 비교를 해봤어요. 그러니까 너무 속상
하고 가슴이 막 뛰는 그런 경험을 했어요. 우리 아이들이 그 애들보다
못한 게 뭐 있겠습니까? 어떻게 키우느냐가 중요한 거죠. 어릴 때부터
극장에 가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관객 태도는 어떠해야 되는지, 이게
결국 다 민 주시민을 키우는 교육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여러분들도 함께 이런 공연에 동참하는 기회가 있다
면, 한 번 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왜 어릴 때 학예회라는 것이
있 지 않습니까? 저는 이 학예회라는 게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어렸을 때 했던 그 학예회 생각이 나요. 개미와 베짱이에
나갔는데, 그 날 화장하고 흥분했던 기억,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실수했던 기억, 박수받던 기억, 이런 기억들 때문에 자라면서도 무슨
시골에 공연이 들어오면 가고 싶었고, 그 다음에 자라서 결국엔 배우가
되었는데, 그 뿌리를 찾아보면, 그런 기억들이 다 저한테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고, 얘기를 들어보 면 지금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분들의 거의 대부분이 어린 시절에 그런 추 억들을 가지고 있어요.
꼭 문화예술가가 되라는 그런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어른이 되어 살면
서 그런 것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서도 그런 것에 한 번 꼭
참 여를 해보시라는 말씀과 함께 이 학예회라는 것을 부활시키는 작업이
필요 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학예회는 민주시민이 될 소질을
키우는 가 장 좋은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극을 한 편 하자면,
여러분 해보신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연극은 혼자 하는 예술이
아니잖아요. 혼자 하는 예술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모여야 되죠. 먼저
작품을 하나 결정해야 되겠 죠. 그 다음에 그 작품을 연출할 연출가가
있어야 되겠죠. 그 다음엔 배우 가 있어야 되죠. 장치할 사람이 있어야
되죠. 소품이 필요하죠. 조명이 필 요하죠. 의상이 필요하죠. 분장이
필요하죠. 또 효과가 필요하고요. 사람 들이 다 모여서 함께 의논해서
만들어내는 게 작품이 아니겠습니까?
〈춘향전〉을 한다 하면, 주인공만 필요한 게 아니잖아요. 사령도
있어야 되고, 변사또도 있어야 되고, 월매도 있어야 되고, 이러다 보면
이런 사람 들이 다 모여서 함께 작품을 분석하고, 함께 의논하고, 함께
토론하고, 함 께 얘기하고, 함께 기다리게 되는데,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서로 양보 하고,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단체행동이 안 되니까
양보심이 생기고, 인내 심이 생기고,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 이런 것들이 저는 우리 민주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들도 혹시 기 회가 된다면 직접 한 번 참여해
보는 것이 나중에 좋은 추억으로 남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
살아가시는 데, 또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굉장히 좋은
교육적 바탕이 될 거라고 저는 권해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이 학예회 부활을 저는 꼭 한 번 여러분들에게 얘기를 해보고 싶
어요. 이제는 구민회관 같은 것들이 많이 생겼거든요. 요즘 학교가
졸업식 도 한군데 모여서 못할 정도로 아이들이 많아져서 학예회를
하기가 어렵다 는 선생님들 말씀을 들었는데, 그런 장소들을 이용하면
되고, 또 찾아보면 얼마든지 장소는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예회를
부활시키는 것이 우 리 문화를 좀더 사랑하고, 문화에 대한 중요성을
넓히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되리라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요즘 메쎄나라는 얘기 여러분 들어보셨습니까? 메쎄나 사업이 이제 우리
나라에도 시작이 됐어요. 메쎄나협회라는 것도 생겼는데,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고, 앞으로 희망을 가져야 되겠습니다만, 이 메쎄나들이 문화를
돕 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한 두어 가지
사례를 들겠습니다.
불란서에 카르티에라고 여러분 들어보셨죠. 아주 좋은 보석이라든지 시
계라든지 핸드백이라든지 아주 고급의 것들을 만드는 그 카르티에의
알랭 레벨인가 하는 사장이 메쎄나사업을 굉장히 잘하고 있는 분인데,
파리 근 교에다 한 4만여 평의 땅을 내어 가지고 거기다가 어떤 걸
지었느냐 하면, 아틀리에도 짓고, 야외전시장도 짓고,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와 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런 터를 마련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분은 어떤 식으로 지원을 하느냐 하면, 1년에 한
스물다섯 명 정도 받은 다음 그 사람 들을 그 장소에서 작업을 하게
해서, 거기서 다 먹고 자면서 좋은 환경에서 작업을 하게 해서, 거기서
나오는 작품들을 소화시켜 주고 있다 그래요.
그리고 영국 같은 나라에는 어떤 후원회들이 있느냐 하면, 예를 들어 영
국의 국립극장 파트롱은 여왕이에요. 엘리자베스 여왕이 파트롱이 되어
있 어요. 로열발레는 또 누가 파트롱이냐 하면 마거릿 공주, 이런
식으로 귀족 들이 하나씩 다 파트를 맡아 있더라구요. 이 사람들이 일년
예산을 따기 위 해서 파티도 하고, 또 여러 가지 후원회도 모집을 하고,
예를 들어 여왕이 후원회를 모집하니까 여기 와서 파티를 하고 돈을
내달라 하면, 기라성 같 은 기업들이 와서 돈을 안 낼 수가 없는 거죠.
요즘 우리나라처럼 정경유착 의 대통령한테 가서 몰래 돈주는 거 그런
것 하고는 달리 얼마나 떳떳하고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그런 것들을
모아 가지고 지원을 하고 있더라구 요.
그런 게 있는가 하면 일본의 경우, 도쿄백화점을 경영하는 굉장히 큰 재
벌인데, 이 재벌이 시보야라는 일본의 아주 비싼 곳에 한 사천 평
정도의 땅을 내가지고 문화복합공간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거기다가
극장도 만들 고 영사실도 만드는 등 그런 지원을 아주 활발하게 하고
있어요. 기업이 이 렇게 문화에 투자를 해야만 문화도 제대로 발전이
된다고 저는 생각이 들어 요. 기업이 그런 인식이 없으면, 아무리
정부가 지원을 하고 우리 국민들이 문화에 대한 인식이 있더라도 아직은
어렵거든요. 우선은 일단 뭐든지 돈 이 있어야 되니까요.
그래서 이제 우리나라도 그런 메쎄나협회라는 게 생겼는데, 아직은 기업
들이 문화에 대한 인식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볼 때는.
메쎄나 에서 한 일도 있지요. 장한나한테 첼로도 사줬고, 또 장영주한테
바이올린 도 사주는 이런 일들을 조금씩 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생색나는 일들에 대 해서는 조금씩 하지만, 아직도 문화에 대해서
지원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 고 있는 기업들은 거의 없다고 봐요. 그래서
저희가 무슨 행사를 하려고 한 번씩 지원을 얻으러 가면, 완전히
거지같아요. 거지 동냥하듯이, 그저 몇 백만 원 주고 나면, 그렇게
생색을 내는데, 그 다음에 두 번은 찾아갈 일이 아니더라구요. 찾아가는
우리들도 속상하고 자존심 상하고, 주는 사람들은 꼭 거지들 왔으니까
할 수 없이 주고, 이렇게 해가지고는 진정한 문화지원 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기업이 문화에 투자함으로써 얻는 이익들을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은 문화예술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책임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업이란 이윤을 남기는 단체니까 당신들이 이런
지 원을 한다면 이만한 이윤이 남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자꾸
이야기해주면, 그 사람들도 그런 인식이 생길텐데, 무작정 도와다오,
이러면 사실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자꾸 도와주지 않게 되거든요.
그런데 일본 메쎄나협회 회 장이 쌔도 사장인데, 쌔도에는 일본에서도
최초로 기업문화부라는 걸 만들 었다 그래요. 그것을 만들어서 운영을
해본 결과, 어떤 좋은 일들이 생겼느 냐 하면, 그 문화부에 참가해서
함께 일했던 직원과 안 했던 직원과의 차이 가 제품의 질에서부터 아주
현격하게 난다는 거예요. 기업의 이미지 홍보 를 위해서도 저는 기업의
문화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정경유착은 손해를
입히지만, 문경유착은 절대로 손해가 없다는 것을 여러 분들이 꼭
인식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요즘에 그 분들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는 거 보면서 저 사람들이 그 10분의 1만 문화에 투자를 했었어도
얼 마나 존경받고 회사 이미지가 좋아졌을까 하는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요.
아까 관객의 변천사에 대해서 잠깐 얘기를 해드렸는데, 요즘에는 어떤
관객들이 많이 생겼느냐 하면, 삐삐 차고 들어오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제 가 어느날 공연을 하는데,〈셜리발렌타인〉이라는 모노드라마였어요.
그 모 노드라마를 소극장에서 공연을 했는데, 관객이 극장에 와서
관객과 배우가 같이 한 공간에서 호흡한다는 것이 연극의 좋은 점
아니겠어요? 그렇기 때 문에 연극이 주는 감동은 영화나 텔레비전하고
다른 게 아니겠습니까? 그 게 연극의 장점이자 연극이 배우예술이라는
것이기도 한데, 그럴려면 관객 도 집중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야지
공감을 얻는 건데, 그 날 한창 연극을 하는데 갑자기 전화가 따르릉
와요, 객석에서. 핸드폰을 아마 어떤 분이 갖 고 계셨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얼마나 무신경한 양반인가 하면 그걸 빨리 꺼야 되는데, 딱
들더니 '여보세요' 하더라구요, 객석 중간에 앉아 가지고. 글쎄 그런
분들도 있더라구요.
저희가 그 이후로는 꼭 공연 전에 나가서, '삐삐나 핸드폰을
꺼주십시오' 하고 말씀을 드리거든요. 그런데도 꺼놓지 않는 분들이
계셔서 한 번 공연 하는데 평균 한두 번쯤은 삑삑삑 하는 소리가
들려요. 그러면 배우는 집중 이 안 돼요. 배우가 집중이 안 돼서 연극을
대강 하면 관객은 괜히 비싼 돈 내고 와서 손해만 보는 거죠. 정말
그것은 신종 공해인 것 같아요. 이런 것 들도 문화에 대한 인식이
있다면 없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여러분들 혹시 공연장에 가시면 삐삐는
꼭 꺼주세요.
그리고 또 어떤 재미있는 일이 있었느냐 하면요.〈신의 아그네스〉공연
을 할 때, 제가 잘 아는 기업하시는 분인데, 처음 구경을 오시겠다
그래요, 아 그러면 감사하다고 오시라고 그랬더니, 이 분이 누구하고
약속을 했는 데 약속이 안 되어 가지고 혼자 오셨어요. 제가 후배한테
자리를 마련해 드 리라고 하고, 공연을 했거든요. 조그만 소극장에서
한창 공연을 하는데, 어디서 코고는 소리가 드르렁드르렁 나요. 정말
김새요, 이거는. 대극장은 크니까 자거나 말거나 안 보이는데,
소극장에서 배우가 공연을 하다가 한 사람 자고 있으면, 정말 속상해요.
딱 나가라고 그러고 싶어요. 그런데 그 럴 수는 없고, 속상해 죽겠어요.
그 때 박정자 씨가 원장수녀를 하고 제가 닥터 리빙스턴을 했는데, 저는
억지로 참고 있었는데 박정자 씨가 그냥 얼 굴이 붉으락푸르락 난리가
났어요. 객석에서도 킥킥 웃는 소리가 들리고 속상해 죽겠더라고요. 그
장면을 마치고 분장실로 들어가면서 박정자 씨가 막 화가 나니까 당장
그 사람을 내보내라고 그래요. 그 사람 안 내보내면 공연 안 한다고.
그래서 우리 객석담당 후배가 막 뛰어나갔는데, 제 느낌에 딱 그 분
같아요. 조금 있다가 그 후배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뭐라 그러더 냐
그랬더니 앞으로는 절대로 안 그러겠다고, 미안하다고 그러더래요. 그
래서 내보낼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까 그 손님 어디다
앉혀드렸 니 그랬더니 바로 그 분이더라구요. 그래서 아주 창피하기도
하고 민망하 기도 하고 그랬는데, 무대에 다시 나가서 연극을 하면서 그
자리를 봤더니, 이분이 너무 민망하니까 신문지로 얼굴을 이렇게 가리고
앉아 있어요, 볼 까봐. 저희들은 사실 무대에서 연극할 때 여러분들을
직접 안 봐요. 왜냐하 면 눈이 마주치면 객석에 앉아 계신 분들도
민망하고 우리도 또 잠깐 정신 이 헷갈리거든요. 그러니까 저희는 보통
시선처리를 어떻게 하느냐 하면, 사이사이로 해요. 이 점을 아마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나 봤지 그래요.
자기를 보면서 하더래요. 그렇지만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사이사이를
보거나 아니면 약간 위를 보는 시선처리를 많이 하는데, 이 분은 내가
꼭 보는 거 같으니까 신문지로 요렇게 하고 있었던 거예요.
어쨌든 연극이 끝나서 나갔더니 극장 뒤에 꼭 벌서는 학생처럼 가만히
서 있더라구요. 그래서 시치미 뚝 떼고 '재미있으셨어요?' '잘
보셨어요?' 그랬더니 갑자기 아이처럼 얼굴이 밝아지면서 참
재미있던대요 그래요. 그 런데 그〈신의 아그네스〉라는 연극이 처음
연극구경 오시는 분한테는 재미 있는 연극이 아니에요. 어렵죠. 어쨌든
재미있다고 하시기에 '그것 보세요. 오셔서 자꾸 보셔야지 연극에 대한
사랑도 생기고 그러는 거죠. 감사합니 다' 그랬더니, 당장 그 자리에서
'제가요. 표 한 백 장만 살게요'하시는 거 예요. 그래서 그 날 제가 표
백 장을 팔았어요.
여러분들도 자꾸 오셔야 돼요. 현장에 와 보셔야지 애정도 생기고, 우리
가 비평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기고 그러는 것이지 그냥 이론으로만 알아
가 지고는 될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시간이 없으시더라도
시간 을 어떻게든 내셔서 데이트할 때 꼭 오세요. 그런데 사실 제가
오시라는 소 리를 하기가 어려운 게 요즘 연극값이 비싸요. 극장은 아주
열악하기 이를 데 없이 만들어놓고 2만 원씩 받기에 제가 우리 대표한테
그랬어요. '참 염 치도 좋습니다'라구요. 그런데 연극환경이 그러니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 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많이 와 주셔야지 큰
극장을 만들어서 좀 저렴한 가격에 여러분들을 모실 수 있지 않겠어요?
그게 서로 상대적이라고 생각 해요. 문화정책들이 많이 입안이 되어서
그야말로 대중적으로 문화가 퍼져 나가야 되는데, 제가 자꾸 시립극단을
만들자는 이유도 그 점에 있어요. 저 는 시립극단 같은 것을 만들어서
구민회관 같은 그런 장소를 돌아가면서 공 연을 하고, 그래서 그야말로
문화에 굶주렸고 돈이 없어서 극장에 못 오시 는 분들을 위해서 정말
저렴한 가격으로 보여주고,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좀 많이
하자는 겁니다. 그게 곧 문화운동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1997년에 서울과 서울근교에서 큰 행사 두 가지가 열려요. '세계
연극대회'가 서울에서 열립니다. ITI라고 여러분들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어 요. 그게 International Theater Institute라고 그러는
것인데, 세계연극인대 회예요. 이번에 중앙대학교 교수이신 김정옥
교수가 그 ITI회의 세계회장 이 되셨어요. 투표에서 거의 압도적인
표수로 회장이 되셨는데, 1997년에 우리나라에서 ITI 세계총회를
합니다. 세계총회를 하면서 아울러 세계연극 대회도 서울에서 열기로
합의를 봤어요. 그래서 저의 꿈은 뭐냐 하면, 그 행사가 그야말로
문화운동의 기폭제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문화올림픽 을 한 번
만들어보자, 우리가 체육올림픽은 치렀으니까 우리가 그 행사를
기점으로 문화올림픽을 만들어서 세계에 우리 문화가 이렇게 대단하다는
것도 한 번 알리고, 그리고 세계의 유수한 좋은 공연단체들을 우리가
데리 고 와서 그것도 한 번 보여드리고,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해서
매년 그런 대회도 한 번 열어보자는 겁니다. 그리고 또
세계국제영화제도 열립니다. 97년도에 이런 것들이 아마 굉장히 좋은
계기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계에는 여러분들이 들어보셨을 만한 유명한 페스티벌들이 있습니다.
아비뇽 페스티벌이라든지, 또 영국의 에딘버러 페스티벌이라든지, 이런
페 스티벌이 열리는 읍내들을 보면 큰 도시가 아니에요. 인구가
심지어는 몇 천 명, 몇 만 명의 작은 도시에서 그런 페스티벌이
세계적으로 열리고 있거 든요. 아비뇽이나 에딘버러 페스티벌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페스티벌인 데, 그 페스티벌 때 가면 전마을이
극장화되고 관객화된다 그래요. 그래서 세계에서 온갖 공연들이 오는데,
off-off도 오고 전통연극도 오고, 마당에서 도 하고 뜰에서도 하고
성당에서도 하고 교회에서도 하고 공연장에서도 하 고, 이처럼 여러
가지로 온갖 문화를 다 접할 수 있는 그런 페스티벌이 해 마다 열린다는
거지요.
우리는 이번에 어디로 정했느냐 하면, 경기도 의왕시에서 97년도 세계연
극제를 열기로 했어요. 의왕시의 시장님이나 그 주변 분들이 굉장히
의욕 을 갖고 계시더라구요. 그래서 의왕하고 청평에서 하는데,
여러분들이 많 이 도와주셔야 돼요. 의왕시를 저희가 한 번 가봤는데,
호수도 있고, 지금 은 아무 특색없는 서울 근교의 도시에 불과하지만,
그분들과 의왕시의 시 민들 그리고 우리 서울 시민들이 관심과 애정을
갖고 그 도시를 하나의 예 술의 도시로 꾸민다면, 세계적으로 아주 이름
있고 유수하고 얼마든지 좋 은 예술의 도시가 될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분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서울에서는 ITI세계연극총회가 열리고,
그리고 의왕과 청평에서는 세계연극대회가 개 최되는데, 아마 좋은
공연들이 많이 올 겁니다. 좀 시일이 급박하기 때문에 정말 좋은
공연들을 유치하는 데 좀 힘은 들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시작을 하다
보면―물론 시행착오도 있겠지만―얼마든지 좋은 페스티벌을 하나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두서없는 얘기를 했는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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