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이 연기자, 속칭 탤런트, 영화배우라고 하는 이런 직업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도 궁금했고, 과연 그런 생각을 피상적인
느낌 으로 갖고 계신건지, 직접적으로 그런 직업은 우리하고는 관계없는
전혀 다른 길을 가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보고 계신 건지
궁금했습니다. 저 나름대로 연기자, 배우는 어떤 것이고, 어떤 사람이
해야 적합한 건지, 그 리고 그 역할이 과연 무엇인지 말씀드리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아 이야 기를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과
맞을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광대라고 하죠. 이조시대부터 광대라고 해서, 요즘은
세월이 좋아져서 예술가 소리를 듣습니다만, 이 사회의
최하층계급이었고, 거의 떠돌아다니면서 자기의 재주를 팔아서
영위했고, 당시 귀족이나 양반 에게 또는 서민에게 여흥을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조시대의 광대는 무 덤도 없었죠. 무덤을 쓰지
않았습니다. 광대는 무덤에 묻힐 수 없다고 해서 요. 그러던 것이
요즘에 와서는 대중문화의 총아가 되어서 나름대로 어찌 보면 굉장히
좋아진 듯도 합니다.
그런데 보면, 우리나라에서만 이게 영화배우, TV탤런트, 연극배우로 분
류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배우라 하고 연극도 배우라 하는데, TV는
탤런트 라 하거든요. TV배우 그러지는 않아요. 그건 뭔가 안 어울려요.
영화탤런 트, 그것도 이상하고. 그래서 그런 것에 대한 의미가 정리되는
것이 좋겠다 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탤런트라는 말 자체가 그대로 풀이하면 재능 뭐 그런
거지요. 그런데 요즘의 연극이나 영화를 보면 그 말이 맞지 않을 수밖에
없 어요. 왜냐하면 오랜 시간에 걸쳐 굉장히 연구 분석해서 무언가
완성도 있 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못해요. 우리의 경우는 오늘해서 내일 방송 나가는
식이니, 상당히 급하죠. 그래서 아마 빨리 만드는 그 기술 덕분에
탤런트라는 말이 붙지 않았나 합 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저하고 외국을 가서 여러분의 친구에게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탤런트라고 소개를 하면 못 알아들어요. 액터라고 해야
되 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대개 탤런트라는 생각을 갖지요. 그러니까
아직 개 념이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겁니다. 탤런트라는 것이 자기의
재주, 재능, 매력을 파는 것이라 생각을 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배우는 자기의 재주 가 아닌,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 배역 속의 제3의
인물을 만드는 겁니다. 조금 의미가 달라지죠.
요즘 우리 TV의 현실은 탤런트쪽이 훨씬 많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 기 매력을 바로 파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러분 얼마 전에 차인표
신드롬에 얽매이기도 했겠지만, 그 어떤 개인이 갖고 있는 매력이란
생명이 짧습니 다. 더군다나 시청자의 마음은 굉장히 변덕스러워서 자꾸
새로운 것을 찾 습니다. 우리가 한 번 새로운 것을 찾기 시작하면 자꾸
더 큰 자극을 찾고 싶어하거든요. 옛날에는 어느 집에 강도가 들면
굉장히 큰 뉴스가 됐는데, 요즘은 떼강도가 들어도 놀라지 않습니다.
그만큼 더 큰 자극이 필요한 겁 니다. 광고도 그렇고요. 어떤 점잖은
분은 TV에서 뉴스밖에는 안 보신다고 합니다. 그러다 가끔은 (제가 기분
좋으라고)〈전원일기〉는 봐요 하십니다. 참 고맙습니다 하고 말았는데,
저는 우리의 현실에서 뉴스를 제일 싫어합 니다.
이것도 사고의 차이에 의한 것이지만, 뉴스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까
? 그런데 우리의 언론의 현실이란 정보나 궁금한 것보다는 가능하면
얼마 만큼 자극을 해서 우리를 놀라게 하고 그러면서 시청률이나
구독률을 높이 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진실은 외면할 수 없지만,
지난번 일본에 지진 이 났을 때 비참한 장면은 여과시켜 내보내자라고
하는 그런 자세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TV는 불특정
다수에게 아주 건방지게 여러분 의 안방에 노크도 없이 다가와 앉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저도 여러분 의 안방에 언제든지 세탁기
사라고 나가지 않습니까?
일련의 우리 뉴스의 형태를 보면 너무 파헤치고 놀라게 해서 더 이상 놀
랄 게 없을 정도입니다. 죽은 사람의 시체, 비참한 것, 사실 이런
것들은 여과되어야 합니다. 어린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 볼 수
있어야 한 다는 것이지요. 진실은 그렇게 자극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전해질 수 있 거든요. 드라마나 기타 교양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서
인간의 휴머니즘 을 살려줄 수 있는 것을 커버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조차도 계속 시청자들 을 놀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광고를
직접적으로 하는 나라도 흔치 않고, 또 그렇게 잘 받아주는 사람도 흔치
않습니다. 외국 광고의 수준은 저를 모델로 쓴다면 저 뒤에 세탁기가
있을 뿐입니다. 이제는 이미지 광고 의 시대죠.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직접적이고 일차원적인 광고를 쓰고 있 습니다.
약 선전 한 번 보세요. 먹어라, 이거 먹지 않으면 안 낫는다, 이런 식인
데, 다 그런 게 1차원적으로 인간을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걸 아주 싫어합니다.〈추적60분〉, 얼마나 사람을 놀라게 합니까. 사실
그런 것이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겁니다. 우리들 인간성이 더
살아나는 게 아니라 자꾸 무디어지고 단순해지는 겁니다. 드라마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 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회 현실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에게 그 동
안 내려온 형태가 단순하고 수직적 구조로 내려왔기 때문에 그 사고에서
벗 어날 수 없는 겁니다.
조금만 나이를 먹으면 드라마에서 설자리가 없습니다. 요즘 정치도 세대
교체바람이 불긴 합니다만, 드라마를 보세요. 다 엑스 세대 젊은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나이먹은 사람이 할 게 없습니다. 그들이 하는
것은 다 감각 적이고, 그들이 하는 사랑은 푹 익은 사랑이 아닌
풋사랑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실수하고 잘못을 해도 예쁘게 봅니다.
왜냐하면 젊기 때문에, 싱싱 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싱싱한 것만 보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의 문화는 무엇입니까? 막걸리 문화거든요. 우리의 음식, 김
치, 된장, 고추장, 다 삭히는 문화입니다. 우리는 싱싱한 문화가
아닙니다. 우리의 판소리, 무용을 보세요. 서양의 문화는 합리적이고
직설적이지만, 우리는 한 번 안으로 머금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입이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는 이처럼 삭히
는 문화입니다. 일본은 자극적이고 단순한 동작을 끊임없이 계속
반복합니 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장단과 가락에는 어느
순간에도 애드 리브가 있어요. 그 경지는 누구나 흉내낼 수 없습니다.
정해진 장단과 가락 에서 벗어나서 어느 순간에서는 자유롭게
넘나들거든요. 그게 우리의 숨쉬 는 법이고 문화인데, 요즘에는 점차
없어지고 있어요. 지금 드라마를 빗대 어 얘기하겠습니다. 요즘
탤런트들의 수명이 짧아졌어요. 여자의 경우는 특히 더하죠. 그러나
배우는 나이를 먹어야 연기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확실히 이 점이 분류되어 있습니다. 더스틴 호프만, 메릴
스트립, 그들은 탤런트나 반짝거렸다 없어지는 스타가 아니지요. 그들은
액터, 즉 배우입니다. 제가 안타까운 것은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우리의 환경 때문에 짧은 시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하시는 일들이 그렇겠지만 어떤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갖 고 있는 매력을 앞장세우다 보면 그보다 더 좋은
싱싱한 매력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자기가 하는
쪽에 전문가가 되려면 실력 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
여성분들은 요즘 자기의 장점을 내 보이 는 시기지요? 옷 입어서
각선미가 좋다고 하면 사정없이 내놓고, 자신있는 어떤 부분도 과감히
드러내고 보여주려고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걸 믿 었다간 자기보다
더 잘 생긴 다리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거든요. 그리고 여 성은 특히
그래요. 남자의 경우는 느립니다. 남자의 경우 저도 서른다섯 살 까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대학생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제 상대 여자가 스물다섯 살밖에 될 수가 없습니다. 남자의
경우는 삼십대 중반이 되어야 남자냄새가 나지요.
요즘은 터프가이가 인기가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 젊은 친구들 눈
을 어떻게 뜨는지 보십시오. 그러나 이건 남자의 위상이 뭔가 잘못된
징조 예요. 용기있는 남자, 싸움 잘하는 남자가 진짜 남자는
아니겠지요. 뭔가 어렵고 힘들 때 그럴 때 나서 줄 수 있는 게 남자의
진짜 매력인데, 겉으로 드러나는 매력, 그래서 사람을 똑바로 보지 않는
남자가 유행인 것 같아요. 자세가 옆으로 삐딱하다든지, 아래서 위를
보고 뭔가 반항적이라든지, 요 즘 젊은 친구가 대체적으로 그런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사실은 여자 가 기대고 싶은 남자, 내가
힘이 들 때 안아줄 수 있는 남자, 그런 남자가 남자냄새가 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큰 소리로 얘기하지는 않지만 늘 바라만 보면 믿음직한
남자, 그런 남자를 드라마에서 만들어야 하는데, 요 새는 그런 남자가
드라마에서 없습니다. 요새는 남자도 아까 말한 것처럼 자극적인
모습으로 나오는데, 이는 이 시대와 다 맞물려 있는 겁니다. 가능 한 한
빨리 해결을 보고 출세하려 하니, 결국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의
깊이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는 늘 풋풋한 것만 보는 겁니다. 우리 TV의 현실을 보면, 들
어와서 할 만하면 새로운 싱싱함이 들어와서 몰아내고 자리잡고 그래요.
예전에는 연기자의 개념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었어요.
예컨 대, 말을 더듬는 역할이다 그러면, 그러기 위해서 굉장한 노력을
해요. 실 제 그런 사람과 인터뷰를 해 가면서. 그런데 요즘은 실제로
더듬는 사람을 씁니다. 더듬는 거 하나는 끝내줍니다. 그러나 이것은
배우의 개념이 아닙 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 배우하던 초창기에는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배우가 될
수 없었어요. 요즘은 억수로 많죠. 엄밀히 말해서 배우는 아닙니다.
사투 리 쓰는 사람이 필요하면, 정말로 사투리 쓰는 사람을 쓰는
겁니다. 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것만 쓰고 버리고 다른 새로운 것을
찾으면 되기 때문 이지요. 근본적으로 액터란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매력이 아닌, 자기 가 아닌 타인을 만드는 사람이 진정한 배우의 개념인
겁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배우를 하는 게 가장 적합한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 어렸을 때 배우 한 번 해보겠다고 안 그런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저는
어 떤 사람이 배우를 해야 한다고 얘기해야 한다면 일단은 여러분들
중에도 남 의 흉내를 잘 내고, 표현을 잘 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처럼
표현력이 좋은 분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 짐승,
누구를 보고 그걸 잘 표현해낼 줄 아는 사람이 자격이 있다는 거죠. 그
다음에 표현해내기 위해 서는 분석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속칭 얘기하는 끼라는 것 이 있는데, 끼가 무어냐? 저는 연극학을
전공해서, 끼라 그러면 뭔가 우스 워서 배역수행능력이라고 합니다.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 하는데, 그 1%가 이른바 끼가 되는 겁니다.
노력은 누구나 다해서 어느 선까지는 올라가나 그 선을 넘느냐의 차이는
끼가 결정하는 겁니다. 그러나 어떤 분 야이든 간에 노력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재능이 없더라도 끝가지 물고 늘 어져서 정상에 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배우의 요건 중에서 두번째인 분석력을 중시합니다. 왜? 흉내는 누
구나 낼 수 있는 겁니다. 제가 외국의 연극팀과 같이 작업을 한 적이
있었 는데, 그 때의 경험을 여러분께 말씀드리면 사고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성 수대교니, 삼풍이니 왜 무너지는지 아실 겁니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 다"는 연기를 하라는 겁니다. 너무 쉽죠?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제게 이런 걸 시키는 겁니다. 다음날 또 시키기에 뭔가 다른
것을 요구하는구나 싶으면 서도 그냥 그대로 했는데,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구요. 저는 너무 쉬워서 거 리낌없이 했는데, 같이 있던
외국친구는 이걸 못 하는 거예요. 연기를 20년 한 사람이 못 하는
겁니다. 그래서 뭔가 잘못 된 건 아닌가 했는데, 묘한 게 첫 날에도 한
것을 두 달 뒤에도 같은 걸 시키는 겁니다. 이 친구들은 첫 날에는
잘못하다가 날이 가는 사이에 점차 나아지는데 뭔가 달랐어요. 왜
그러느냐? 저는 너무나 쉬워서 분석을 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그게 아
니었어요. 이 때 저는 사고의 차이를 느꼈어요. 연기는 감이 아니라
아주 과학적인 겁니다. 그냥 대충 감정 갖고 그러는 게 아니라, 대사의
구조가 수학공식처럼 얽혀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왜 방에 들어가시는지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들어
가는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들어가느냐 너는?' 하고 그들이
저에 게 묻는 셈이지요. 그것이 1차 관문입니다. 다음 방에 문턱이
있는지 없는 지, 문이 얼마나 큰지, 높은 건지 낮은 건지, 방안에
창문은 있는지, 누가 안에 있는지, 여보가 있는지, 딸이 있는지,
빚쟁이가 있는지, 거기에 따라 서 상황이 변하는 겁니다. 절대 그렇게
잘 들어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 게 해서 두 달 뒤에 확실한 모습이
나오는데, 저는 처음부터 자신있게 들어 갔던 것이고, 그 다음에 대책이
없었던 겁니다. 저는 그 때 창조적 사고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경직된 사고를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우리는 전혀 관계없는 무생물체에서부터 하나의 생명을 만드는 겁니다.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이런 분석력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높은
분석 력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표현력이 좋아도 끼가 있어도
그 역할 은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배우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단 순히 오락적 차원의 즐거움을 주는 쪽에서만 찾아야 하나?
이조시대 광대 들의 "사설" 한 번 들어보세요. 당시의 최하층이었던
그들도 사회와 종교, 양반을 비판하고, 또 음담패설도 하는데, 그것은
사회의 풍자인 겁니다. 그것이 전부 단순한 오락적 내용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이조시대만 해도 그만큼 광대들이 사회에 살아 있었어요. 여건이
나아졌다는 요즘의 광대는 너무 오락적 개념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입니다. 저도 반성합니다. 물질적인 것을 얻기 위해서 약도 팔고
세탁기도 팔고 그것이 사회의 현상이지만, 배우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사회 속에 살 아 있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우리의 현재는 누구 나 알아요. 그러나 우리의 과거와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미래를 심어주고 과거의 아픈 기억이나
좋았던 기억을 살려주는 그런 역할 이 배우의 역할입니다.
제가 연극을 하면서 관객들을 만날 때가 가장 즐거운데, 요즘에는 극장
분위기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극장 분위기가 없었어요. 제가 2년
전 파리의 한 극장에서 공연한 적이 있었는데, 4백 년 된 극장으로서
불란 서의 유명한 장 루이 바로라는 배우와 부인인 마들린 르노에게
정부에서 준 겁니다. 극장명이 르노와 바로입니다. 파리시에서 모든
경비를 들여서 우 리를 초청했는데, 한 가지 요구하는 것은 토속적인
사물놀이 같은 건 하지 말고 자신들도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한국식으로 해보라는 것이었어요. 원래 불란서 사람들은 셰익스피어를
싫어하지만, 저희가 예술의 전당 개관 기념식 준비와 겹쳐 어쩔 수
없이〈햄릿〉을 했습니다.
저는 그 때 왜 파리사람들이 쓸데없이 돈을 쓰고 우리를 데려갈까 생각
했었어요. 물론 장사는 안 되죠. 동양인이 가서〈햄릿〉을 한다는데
얼마나 오겠습니까? 객석이 8백∼9백 석 정도인데 약 150∼200명 정도
왔고, 그 중에 한국사람은 거의 없더군요. 유학생이 굉장히 많을
텐데도요. 불행하 게도 우리의 다음 팀이 일본이었습니다. 우리 공연할
때 일본사람들이 줄 을 서 왜 그런가 했더니 자기네들 표를 미리 사는
거라는 겁니다. 굉장히 성질이 났었던 기억인데, 나는 이걸 왜 할까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갑자기 어느날 불란서인같이 되어 있더라
이겁니다. 여기 와서도 저는 그들은 문 화대국이고 문화시민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니는데, 저는 쇄뇌당한 겁니다. 그 사람들 당시 돈 몇 푼
쓴 것으로 그 이상의 효과를 얻는다 이겁니다. 우 리를 초대해서
공연하는 데 얼마나 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완전히 파 리의
홍보사절이 된 겁니다.
우리에게는 극장문화가 없습니다. 파리공연 때 보니까 개막 10분 전인데
사람이 없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 물었더니 극장 안의 레스토랑, 카페,
독 서실에 와 있는 겁니다. 낮부터 와서 점심 먹고 거기서 놀고 있는
겁니다. 5분 전 되니까 좌석이 꽉 차는 겁니다. 이게 극장문화인
겁니다. 그런데 우 리는 바빠서 그런지 그런 모습이 아니지요. 지방은
말할 것도 없고요. 최근 에는 문예회관이 각 도시에 생겨서 좀
나아졌는데, 그 안을 채울 게 없습니 다. 하드웨어는 되어 있는데
소프트웨어가 없어요. 여러분들 지금부터 예 술행정을 공부하셔도
됩니다. 이 극장에서 어떤 작품을 올려야 어떻게 영 향을 줄 수 있고,
또 어떤 예술가를 만들어내야 하고, 또 요즘 사람들의 감 각에 어떻게
맞추어야 하고 등, 이런 진단을 끊임없이 하는 예술행정가가 있어야
되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게 없습니다.
저는 옛날에는 체육관에서 공연을 했어요. 어떤 분들이 오시느냐? 체육
관에서는 기본이 소주 한 병하고 오징어 한 마리입니다. 거기서 연극이
됩 니까? 제가 나가서 한 30분 할 때는 조용하다가 10분만 안
나가면〈전원일 기〉둘째아들 나오라고 소리를 질러댑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제 가 내년 2월에 괴테의〈파우스트〉를
국립대극장에서 공연하려고 합니다. 읽어보신 분 손
들어보세요.〈햄릿〉읽어보신 분,〈인형의 집〉읽어보신 분은? 상당히
많은데, 제가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어 느 대학,
어느 그룹을 가든 간에 5명 안쪽입니다. 셰익스피어를 읽어본 사 람이
없어요. 우리에게 먹고사는 만큼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우
리의 인생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문화도 그렇고요. 이런
것 들이 우리에게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요.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의
가슴 에 담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TV는 메커니즘의 영향을 받아서 자기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모습이 만들
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극은 고급예술이라고 하는 반면 원시적이고
원초적입니다. 누구의 도움 없이 배우가 직접 해야 하니까요. 요즘은
나름 대로 많은 사람들이 배우예술을 공부하고 싶어합니다. 아마 점점
나아질 겁니다. 여러분께 부탁하고 싶은 것은 그냥 오락적으로 보시지만
말고 나 름대로 사회에서 꼭 필요한 거니까 잘 가꾸어서 키워주시기
바랍니다. 그 래야 좋은 작품도 나오고 시장도 커지는 겁니다. 지금은
시장이 너무 좁기 때문에 투자가 안 돼요. 자꾸만 왜소해지는데, 요즘
동숭동에서 하는 연극 은 연극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꿈,
환상을 대리로 경험케 하는 그 런 무대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지요.
이런 쪽으로 여러분들이 많이 밀어주 시면 연극이건 TV건 훨씬 좋아질
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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