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민망스럽네요, 저의 얘기를 남한테 한다는 게 부끄럽고. 사실은 오늘 오면서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해야 될지 막막했었어요. 왜냐하면 드라마작가 가 되고자 하시는 분들한테라면 제가 6개월 동안도 얘기를 할 수가 있는데, 오늘 오신 분들에게 어떤 걸 말씀드려야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어요. 어쨌 든 제목이 TV 글쓰기 쪽이었죠. 그래서 그쪽으로 생각을 하면서 왔습니다.

제가 어젯밤에 정리를 좀 했습니다. 어떤 얘기를 해야 되겠는 가.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는 방송작가에 대한 얘기밖에 없는데, 혹시 이 중에서 방송 작가가 되고자 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방송작가가 되고 싶 진 않지만 앞으로 감독이 된다거나 또는 연출을 한다거나 방송쪽 일을 하실 분들은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도 저도 아 닌 분들한테는 그냥 TV나 보는 것보다는 아, 어떤 생각을 갖고 일하는 사 람들이 만드는 거구나라는 걸 알면 재미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냥 제가 아는 한에서 말씀을 드릴게요.

이 방송작가에 대한 얘기 전에 드라마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드라 마야 뭐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거고 탤런트를 데리고 얘기를 꾸미는 거다, 이렇게만 아셔도 되는데, 미국의 어떤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대요. 텔레비 전이란 것은 올가미에 의존한다, 그리고 텔레비전의 유일한 목적은 시청자 를 사로잡아 채널을 돌리는 것을 막는 일이다라고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사실 드라마가 무엇이냐, 방송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굉장히 훌륭한 이론 들도 많고, 책들도 많이 나와 있지만, 그런데 저는 방금 말씀드린 게 적절 하다고 생각해요. 시청자를 사로잡는다는 것, 채널을 돌리는 것을 막는 것. 이런 식으로 얘기하니까 장사꾼같이 들리죠? 지금부터 거기에 대해 해명을 하죠.

방송이란 건 단지 시청률을 올리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요, 존재이유다 라고 얘기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전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점점 더 장사꾼같이 들립니까? 그러면 작가는 무엇이냐? 작가는 시청률을 올리는 사람이 작가다,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어요. 만약 작가가 말이죠, 이른바 방송일을 한다는 작가가 시청률을 생각지 않고 제멋에 겨워서 자위만 하고 자기실험삼아 글을 쓴다면, 그것은 시청자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 다. 작가가 시청률을 올려야 된다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고 의무사항이라 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또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시청 률을 올리는 대상인 시청자들이 바보가 아니라는 걸 전제로 해서 말씀드리 는 겁니다. 특히 요즘은 아카데미 수상작들이 척척 들어오는 시대고, 우리 는 굉장히 훌륭한 영화를 많이 보고, 그래서 시청자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 아져 있는데, 사실 방송국에서는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 이거든요. 그래서 시청자를 옛날에는 좀 우매한 백성으로 치부를 해 가지 고, 언제나 가르쳐야 되고 뭔가를 선별해서 보여줘야 되고, 그래서 훌륭한 프로그램이 나가서 인간승리처럼 "오늘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선진조국의 창조를 위해 애쓰고 있다"라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보여주고, 프로그램에서 도 심의과정을 두어 가지고, "이런 거 하면 악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이런 말을 하면 사회가 혼란해지지 않겠느냐?" "질서를 위해 이건 빼야 된 다" 이러면서 마치 국민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듯이 해온 게 사실이거든요.

저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전제하에 시청률을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건 의무죠. 그래서 사람들이 선택하게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작가가 해야 될 일이고, 그렇지 못했을 때에는 전파낭비이고 국 고의 손실이고 이 나라의 역적행위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시 작할까 해요.

왜 제가 이 얘기를 맨 처음에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했냐 하면, 우리가 가끔 잘못된 허구의 논리에 빠질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상업적이다'라 는 것은 나쁜 것, '예술적이다'라는 것은 좋은 것, 이런 식으로 하나의 말의 개념이 가지고 있는 허상에 빠질 경우가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는 이런 허상을 다 벗어버리고 허심탄회하게 냉정하게 얘기를 해봤으면 해서 이 얘기를 먼저 말씀드렸어요.

재작년인가요, 방송작가협회에서 세미나를 했어요. 그 때 하도 대선배들 이 저를 강압적으로 발제를 시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발제를 하게 되었는 데, 그 때 어떤 얘기를 죽 하다가 방송작가는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한다라 는 얘기를 제가 했어요. 방송작가는 예술가가 아니다, 서비스업이다, 제가 이렇게 얘길 했다가 선배들한테 굉장히 혼이 났습니다. 안 그래도 소설가, 시인은 예술가고, 방송작가는 딴따라다, 이렇게 다들 생각하는데, 그런 자 기비하를 스스로 할 수가 있느냐, 그래서 그 자리에서 상당히 혼이 났으며, 심지어 어떤 분은 당장 발제자가 그 자리에서 그 말에 대해서 취소를 하기 전에는 이 회의를 진행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이럴 정도로 혼이 났어요. 사회 보시는 분이 제가 너무 불쌍했던지 "이건 말실수였던 것 같다. 그렇죠 ?"하면서 저한테 묻더라고요. 그래서 "꼭 실수만은 아닌데요"하면서 뭐라 고 말씀드렸냐 하면, "저는 이 방송작가가 힘이 센 직업이라고 생각을 합니 다"라고 그랬죠. 대한민국에서 4천만을 대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 는 직업이 몇 개나 되겠어요? 김영삼 대통령도 연두 기자회견에서나 자기 얘기를 하는 정도지, 방송작가는 4천만을 대상으로 자기 얘기를 하는 직업 이에요. 굉장히 센 직업이거든요. 그만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직업인데, 이러한 자기에 대해서 전혀 겁먹지 않고, 나는 예술가니까 나를 터치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한다면 전 굉장히 위험할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큐멘터리를 할 때 선배들로부터 배운 것도 그것이었고, 또 저는 예술 가 운운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거든요. 예술이란 건 남들 이 스스로 "아! 저건 예술이야" 해야 예술가가 되는 것이지, "나는 예술을 하는 거야" 이래서 예술이 된다고는 생각하기 않거든요. 방송작가는 자기가 그렇게 대단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벌벌 떨면서 한 마디를 써도 이게 되는 건가 안 되는 건가 이러면서 써야 되는 거고, 정말 서비스한다는 기분 으로, 목욕탕에서 때를 민다는 기분으로 자기 일을 해야 되는 거라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얘기를 해서 또 혼났지만, 하여튼 저는 작가를 그렇 게 생각해요. 일반적인 생각은 아닐지 모르지만, 작가는 시청률을 올려야 되는 의무를 가진 사람이고, 시청자에 대해서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국민 에 대해서 투철한 서비스정신을 가져야 하는 사람이 방송작가다, 저는 그 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루한 얘기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아는 얘기가 이것밖에 없으 니까.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얘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대 학교 4학년 때부터 방송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게 81년도니까 한 15년 정 도를 방송일을 죽 했어요. 그리고 그 동안 한 달도 쉬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 꿈이 한 달만 저 우간다같은 데 가서 노는 게 꿈이에요. 어쨌든 방송일을 해오면서 선배님들한테 배우고, 또 후배들한테 느끼고, 친구들하고 이야기하고 이러면서 제 나름대로 정립한 몇 가지 생각이 있어 요. 이것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작가가 되려면 제일 먼저 뭐가 필요한 것 같으세요? 글재주, 아니면 방 송기술에 대한 이해, 뭐가 필요한 것 같습니까? 많은 분들이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고 전화를 해와요. 어떻게 시작을 하면 되겠느냐고. 책을 많이 읽 으면 되겠습니까, 습작을 많이 할까요, 아니면 방송국에 가서 청소라도 하 면서 구경을 할까요 등등. 그런데 제가 후배들한테 어떻게 얘기를 했느냐 하면 방송작가가 되려면 지리산같은 데 가서 한 1년만 수양을 하고 오는 게 제일 필요하다, 이런 얘기를 해요. 저도 안 그래봤지만, 무슨 얘긴가 하면, 전 방송작가한테 가장 필요한 것이 품성(品性)이라고 생각을 해요. 도덕적 인 품성, 건전한 사고 말입니다. 저는 그게 참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방송작가의 영향력이 너무 세기 때문에 그래요.

제가 천리안이나 하이텔에 가끔 들어가는데, 보면 드라마에 대해서 너무 무시무시한 비평들을 하는 것을 읽었거든요. 그 중에 보면 작가와 PD는 정 신병원에 들어가는 게 낫다,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것을 봤어요.

예를 들면, 드라마에서 부부싸움을 하는데 밥상을 뒤엎으면서 싸우는 게 자꾸 보여요. 그러면 은연중에 사람들도 부부싸움을 하려면 적어도 밥상 정도는 뒤엎어야 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을 하게 돼요. 여러분들, 드라 마에서 실연당한 사람은 꼭 술을 먹죠. 술을 먹고 밤거리를 비틀거리면서 걸어요. 알게 모르게 우리도 실연을 당하면 술을 먹어야 될 것 같은 생각을 한단 말이죠. 그리고 엑스세대에 대한 얘기를 보면, 시어머니나 남편이나 아니면 뭐 그 시댁 식구들한테 정말 당당하게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얘기나 행동을 해요. 그러면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가 하면, 저 정도는 되어야 엑 스세대인가 보다, 그리고 내가 저걸 이해 못하면 '구닥다리'가 되겠지 이렇 게 됩니다. 은연중에 이런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게 드라마라는 얘기죠.

좀 어렵게 얘기하자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게 드라마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작가가 제대로 된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않 으면, 그게 작품에 나타납니다. 자기는 허랑방탕하게 살아도 품위있게 글 을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단언을 할 수 있는 데, 절대로 품위없는 사람이 품위있는 글은 못 쓰거든요. 사고방식이 비뚤 어진 사람은 절대로 바른 글이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들은 작가라는 것이 속살을 내보이는 작업이다, 정말 빨가벗고 광화문 네거리에 서 있는 것 같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자기가 그대로 드러나는 게 작품이기 때문에 그래요. 하다못해 여러분 글씨를 봐도 그 사람 성격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이 쓴 작품은 오죽하겠어요. 저 맞는 얘기 하고 있죠?

그래서 작가 자신이, 예를 들어서 어떤 극한상황에 달했을 때, 작가가 신경질을 내는 성격이면 자기 주인공도 같은 상황에서 신경질을 내게 만들 어요. 그게 당연하니까. 자기는 그게 매력적으로 보이거든요. 이러기 때문 에 작가가 제대로 된 정신을 갖고 있지 않으면 작품에 그것이 드러나게 되 고, 그것이 4천만의 안방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다 정신병자로 만들 수도 있 다구요. 가끔 정신병자들이 쓰는 드라마 같은 것도 실제로 있어요. 적어도 저는 이건 나쁘고 이건 좋다라는 것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니까 그렇 게 봐주세요.

작가들을 보면 실생활과 글이 일치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만약에 방송 작가가 되고 싶거나, 아니면 연출가가 되고 싶거나, 혹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으신 분은 우선 생활을 정리하세요. 방탕한 생활을 정리하시고, 그 다음 에 부모님께 효도하세요. 농담같지만 저 진지하게 이런 이야기를 후배들한 테 해요. 부모에 대한 어떤 따뜻한 이해가 없는 사람은 그 작품에 절대로 따뜻한 부자관계, 모녀관계를 그리질 못해요. 그린다 해도 흉내에 지나지 않고, 흉내는 확실히 표가 나면서 감동을 주지 못하고 공감을 주지 못하거 든요. 자기가 느끼는 대로 작품은 나오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되려면 첫째, 생활을 정리하고 도덕군자(道德君子)가 되라고 말씀 드립니다. 뭐 수덕사에 들어가라는 얘기는 아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지킬 것은 지키라는 겁니다. 자기의 기준을 포기하지 않는 것 말이에요. 그것이 작가훈련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우리가 옳다고 생각 하는 게 있잖아요. 흔히 상식이라고 얘기하는 거, 그걸 지키는 생활이 참 중요해요. 그리고 자기가 기준을 잃지 않고 살 때는 자기 양심이 깨어 있다 는 얘기인데, 양심이 깨어 있을 때 자기가 어떤 잘못을 하면 정말 그것에 대해서 뼈저리게 아파할 수가 있어요. 그 아픔이 또한 우리의 교육이고 훈 련과정이라는 말이죠.

아까도 라디오에서 4백억인지 4천억인지를 들으면서 왔는데, 작가들에게 는 이런 게 있어요. 직업병 중의 하나가 노태우의 심정을 생각해보는 거예 요. 어떠한 생각에서 그런 돈을 모았을까, 그 때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이 런 생각을 해보게 돼요. 잘 안 되더라고요. 이해하기가 좀 어려웠어요. 그 러나 이것은 알겠어요. 그가 그런 짓을 하면서 그렇게 뼈저리게 양심에 가 책을 느끼거나,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을까, 내가 어쩌다가 이런 인간이 됐을까 이런 생각은 안 했을 거라는 것은 알겠어요. 그렇죠? 처음부터 태 어나면서부터 양심에 철갑을 두르고 태어나지는 않았을 거라구요. 광주사 태도 해보니까 괜찮더라, 차츰차츰 이러면서 그렇게 변화해 나갔겠죠.

여러분은 아직 20대잖아요. 그러니까 틈새를 주지 마세요. 살아가면서 많은 유혹들이 올 거예요. 그 때 하나를 허용하지 않겠다, 양심이 아프면 아픈 대로 그 아픔을 즐기면서 살겠다, 이것이 첫번째 작가수업이 아닌가 저는 후배들에게 그렇게 얘기합니다.

두번째는 사회적인 안목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물론 드라마 중에 는 멜로드라마도 있고, 안방과 건넌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있어요. 저 는 개인적으로 그런 모든 드라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저는 멜 로드라마라고 해서 정치적, 사회적 안목이 필요없다라는 말에는 반대해요. 멜로드라마가 왜 사회적인 안목이 필요가 없어요? 적어도 이 시대에 뭐가 필요한지는 알아야죠. 이건 제가 훌륭해서 하는 말이 아니고, 작가로서 행 복하기 위해서 하는 얘기예요. 이 시대에 뭐가 필요한지 자기가 알고, 그 필요에 뭔가를 내가 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면, 글쓰는 괴로움을 많이 줄 일 수가 있거든요. 그리고 그러한 작품이 아니면 아까 얘기한 것처럼 전파 낭비이고 국고손실이에요.

그 사회적 안목이 왜 필요하냐면, 예컨대 글에 청소부 아저씨가 등장한 다고 합시다. 그러면 1차원적으로는 청소부 아저씨가 가을 낙엽이 떨어지 는데 낙엽을 쓸고 있어요. 쓸고 지나가면 그 뒤에 낙엽이 또 떨어져요. '불 쌍한 아저씨, 고마우신 아저씨' 이것은 필요없어요.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 기 때문에. 적어도 그 청소부 아저씨를 볼 때, 이 일을 몇 년쯤 했을까, 월 급은 얼마나 받을 것인가, 더 나아가서 우리나라 미화정책이 어떤가, 이런 것 정도는 자기가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 호기심이 있어야 그 작품을 믿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그렇지 못하면 그 사람이 쓰는 작품은 국 민학교, 중학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지 않을까, 그러면 국민한테 별 도움 이 되지 못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 드라마 보면서 욕을 많이 하죠? 쓸데없이 저런 드라마를 이 황금시간대에 등등.

첫번째, 두번째 수업이 없으면 여러분이 작가가 되도 똑같은 걸 쓰시게 될 겁니다. 세번째, 이것도 중요한 것인데, 작가가 되실 분이나 방송국에 서 일하실 분이나 영화 연극을 하실 분이나 이 바닥에서는 가장 중요한 건 데, 대인관계가 좋아야 해요. 특히 방송같은 것은 종합예술이거든요. 작가 나 감독 혼자서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구요. 저는 후배들한테 제발 대본 에다 F.O., F.I. 이런 것들 좀 쓰지 말라고 해요. 그것은 연출의 능력이에 요. 그리고 미사여구 집어치워라 이런 말을 해요. 특히 국문과 졸업생들이 작가를 하게 되면 거의 대본이 아니라 소설인데 이것은 절대로 네 작품이 아니다라고 얘기해요.

방송대본이라는 것은 다른 스태프들에게, 연기자들에게 보여주는 설계도 거든요. 연기자가 좀더 연기를 잘 하게 하기 위해서, 감독이 좀더 좋은 연 출을 하게 하기 위해서, 카메라맨이 좀더 좋은 앵글을 잡기 위해서 쓰는 것 이 대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작품이 아니라구요. 파란 청사진에 설계도 를 그리는 것이죠. 설계도를 그려주면 스태프, 연기자들이 대본을 보고 각 각 자기의 파트를 최대한 살릴 수 있게 하는 게 작가의 역할이에요. 어떻게 보면 우리 팀이 만든 작품이 시청률을 많이 올렸어요. 그 이유가 저는 팀플 레이에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팀이 근 10년째 같이 일하는 팀인데, 이런 팀플레이가 방송일의 묘미예요. 그래서 대인관계를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봐요.

저는 방송국에서 일한다는 것을 어떻게 얘기하고 싶은가 하면, 아주 거 창하게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든지, 이 사회의 훌륭한 영향력을 끼치 기 위해서라고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단지, 본인이 행복하기 위해서 일 을 하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본인이 행복하게 일을 한 것은 남한테도 좋은 영향을 미치거든요. 물론 그러려면 양심이 깨어 있어야 돼요. 양심이 철갑 을 두르고도 행복한 것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깨어 있는 양심으로 주위 사람과 일하는 것을 행복해하면서 일을 하면 좋은 작품이 나와요.

그 다음에 여러분이 글재주라든지 그런 것은 스스로 연마하는 거예요. 어떻게 연마하는지 이제부터 말하겠습니다. 좋은 드라마란 무엇인지 얘기 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좋은 드라마란,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 좀 이론 적인 얘기가 될 것 같은데, 첫째는 주제가 있어야 돼요. 여러분들 가끔 애 인이랑 영화를 보러 가서, 볼 때는 아주 재미있게 보지만 돌아나오면서 스 토리가 생각나지 않는 영화가 있지요?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는 영화, 저 는 그런 영화는 재미없다고 봐요, 그렇죠? 재미있는 드라마는 주제가 있어 야 해요. 보고 난 다음에 뭔가 하나가 찡하고 남는 거요. 영화를 봤을 때 영화관을 나서면서, 혹은 TV를 봤을 때 TV를 보면서 어깨가 쫙 펴지고 마 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것 있죠. '저렇게 한 번 살아보고 싶어'라든지 이렇게 어떤 걸 느끼게 해주는 것은 주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그래서 저는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건 웃기는 드라마가 아니고 사람들에게 공감을 시키 는 드라마, 그런 것이 재미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쉽게 말해서, 엔딩 장면을 보고 쉽게 끌 수 없는 거 있죠.

보통 드라마 작법이라든지 이런 책들을 보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첫번째 수순으로 소재를 잡는다고 되어 있어요. 저는 일하는 스타일 이 조금 달라요. 저는 처음에 주제를 잡거든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가 먼저 정해져요. 그런 다음 그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소 재를 잡아요. 뭔가 내가 한다라는 생각을 하면 글 쓰는 고통이 조금 줄거든 요. 글쓰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워요, 써보시면 알겠지만.

〈모래시계〉를 쓰기 전에 뭔가를 하기는 해야 되는데 뭐를 해야 하나 생 각했어요.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했죠. 저도 6공 때까지는 적 과 아군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뭐가 옳고 뭐가 그르다, 누군 나쁘고 누군 좋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고 젊음을 바친다, 이런 게 좀 명쾌 했던 시대인데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든 게 흐리멍덩해졌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됐느냐 하면 냉소적이 됐어요. 정치에 관심이 없고 이기 적이 됐어요. 그럼 왜 이렇게 됐느냐 생각을 했죠. 그랬더니 이 시대의 가 장 문제점이 '상식이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상식이 너무나 병신취 급을 받는 시대가 됐어요. 그래서 설계도 하나 검사를 받으려면 설계도 사 이에다가 봉투를 끼워넣는 게 당연한 시대가 됐고, 아이 학교 한 번 찾아가 려 해도 돈봉투를 하나 준비하고 케이크를 사는 게 너무 당연하게 됐고, 그 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좋게 얘기해서 융통성이 없다, 나쁘게 얘기하면 한심하다 이런 식으로까지 되는 사회가 됐거든요.

저는 민주주의를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하나인데, 민주주의라는 것은 각자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일을 신나게 하면 굉장히 좋은 사회가 된 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렇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 상식이 왜 무너졌나? 역사적으로 고찰해보자면, 일제시대 너머까지 올라 가지만, 가깝게는 저는 군사문화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광주항쟁이었죠. 그건 상식에 어긋나잖아요. 세금 으로 낸 총으로 국민을 쏘는 건 상식적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데, 만약 그 런 일이 없는데 제가 그런 드라마를 썼다면 현실성이 없다고 욕먹었을 거예 요. 그런 식의 것들을 우리가 보면서, 점점 상식을 지키는 것이 알게 모르 게 바보스러운 것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정당하게 수순을 밟는 것이 정상이 아닌 사회가 된 거죠. 그리고 군사문화라는 것이 알게 모 르게 우리 가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어요. 회사도 그렇구요. '안 되면 되게 하라'든지 이런 것이 가정에까지 들어왔죠.

저는 정치드라마를 별로 써본 적이 없어요. 사람드라마만 썼거든요. 그 런데 사람이 365일 밥만 먹고 연애만 할 수 없잖아요. 멜로드라마를 쓰는데 사람얘기를 하다 보니 배경얘기를 안 쓸 수가 없었어요.〈모래시계〉같은 것도 80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이 미쳐졌는가 얘기를 하다가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5공 얘기가 가장 효과적이겠다 해서 5공이 무대가 됐어요. 5공시절이 제가 가장 잘 아는 시대이기도 했구요. 그렇게 해서 주제를 잡고 소재를 잡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글쓰기에 들어가기 위해 구상을 하죠. 소재 얘기를 좀더 해야겠네요. 글을 쓸 적에 제가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제발 책상 앞 에서 쓰지 말라는 거예요. 작가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 많은 경험들을 해야 된다고 하는데, 그런 시대는 이 미 지났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시대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 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소재를 찾는다라는 말보다 연구한다는 말을 좋 아해요. 어떤 얘기를 쓰고자 한다면, 책상 앞에 하얀 원고지, 텅빈 모니터 를 쳐다보면서 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고 그러지 마세요.

소재를 연구하는 것에는 첫째, 자료에 의한 연구가 있겠죠. 우리나라는 의외로 자료가 많아요. 자료를 찾아서 공부를 한 다음에 누구를 만나야겠 다 하면 가서 인터뷰를 하고, 그 다음에 그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찾아갑 니다. 저는 이게 소재를 연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 글이 나 와요.

광고회사 문간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 광고회사 직원을 대상으로 드라 마를 써요. 이것은 너무 금방 들켜요. 금방 눈치채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하 고 감동을 못 준다구요. 의사 드라마를 쓴다면 제일 먼저 의사를 감동시켜 야 되고, 검사 드라마를 쓴다면 검사를 감동시켜야 되는데, 허튼 수작을 하 고 있으면 감동이 안 되거든요. 여러분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앉은 자리에 서 머리만 굴리지 말고, 직접 현장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몸으로 부 딪쳐 뭔가 깨우치는 게 제대로 사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젊은 후배들은 대체적으로 머리는 있고 가슴이 없어요. 머리만 굴려서는 안 됩 니다.

그 다음에는 기법(技法)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돈을 10억, 20억 들여 가지고 훌륭한 사색이 담겨 있는 드라마를 만들었는 데, 사람들이 아무도 안 봐줘요. 그러면 그건 전파낭비고 국고손실이에요. 그걸 위해 기법을 공부해야 되는 거죠. 동작은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장면 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이러한 기법을 충실하게 공부하셔야 될 거예요. 요즘은 방송작가 연수원들도 굉장히 많은데, 어떤 식으로 가르치고 있는지 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독학으로라도 그런 기법을 익혀야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거죠.

세번째로 독창성(獨創性)이 있어야 됩니다. 좋은 드라마는 독창성이 있어 요. 영화에서 로맨틱 코미디 하나 성공했다고 해서 너도나도 한다든지, 이 드라마하고 저 드라마하고 제목이 헛갈리는 것도 독창성이 없기 때문이죠. 제 성공의 비결을 하나만 가르쳐 드리면, 남이 한 것은 하지 않았어요. 남 이 안 한 것만 했어요. 그러면 망하거나 흥하거나 둘 중 하나예요. 하여튼 독창성이 없는 것은 절대로 첫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아류밖에는 안 되죠. 여러분이 마흔 살이나 쉰 살이 되어서 워낙 힘에 부치면 아류를 하셔 도 상관없지만, 스무 살 때는 아류 같은 건 생각도 하지 마시고 남들이 안 한 것을 하세요.

네번째는 아까 한 말의 반복이 되겠는데, 대중 속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혼자만 마스터베이션하는 것은 절대로 방송에 안 나옵니다. 대중 을 위해서 서비스를 하는 것이 방송이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말 좋은 드라마라는 건, 볼 때 재미있어야 되고, 보고 나서 공 감을 느껴야 되는 것이죠. 그리고 돌아서서 느낌표 하나가 찍어져야 된다 고 생각해요. 저는 그게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을 합니다. 볼 때 재미없으면 좋은 드라마 아니에요. 그리고 공감을 못 가지면 좋은 드라마 아니에요. 그 리고 느낌표 하나를 줘야 좋은 드라마예요. 그렇게 생각을 하고 그런 드라 마를 쓰려고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