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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교육학과

민족애와 인간미를 겸비한 최고실력의 교육전문가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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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특강공지

  강연제목 21세기와 한국전통문화
  19 회
  초청연사 홍일식 (고려대학교 총장)
  강연일시 1995년 05월 11일
  강연장소 본부관 학술회의장
  조회수 23812 회
 

다가올 21세기 인류문명의 위상과 우리 전통문화의 실체가 조국의 역사전개에 어떻게 어울려질 수 있 는가에 대해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물질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21세기는 과거 소수 선진공업국가의 국민들만이 누리던 물질적 풍요가 보편화되어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 확대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지금 우리를 비롯한 신흥공업국들의 늘 어나는 GNP를 보더라도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은 확실합니다. 이미 제3세계라 일컫던 많은 신생독립국 가들과 중국, 인도 등이 절대빈곤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과거의 극소수 선진공업국가라 일컫던 국민 들만이 누리던 이런 물질적 풍요는, 정도의 차이, 수준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점점 보편화해 나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사회는 고도의 전문지식사회, 정보화사회가 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21세기는 물질적인 풍요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신문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점점 인간성이 각박해지고, 인간상실, 인간소외가 극대화되면서, 이기주의, 개인주의의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 분 명합니다.

지금까지의 20세기는 군사집권시대로부터 경제주권시대를 거쳐 기술주권시대로 발전해 왔는데, 이젠 정보통신관계의 분야가 인류문화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적 풍요에 따라 점점 더 황폐해 가는 인간의 정신문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애덤 스미스의《국부론》에서 부(富)를 축적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부일 뿐, 그것이 목적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2백 년 동안 발전하면서 이윤의 추구가 마치 목적 인 것처럼 변질되어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인류는 이처럼 엄청난 정신문화의 붕괴를 보면서도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 없게 된 실정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미래사회의 정신문화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서울의 남산의 모습을 보기 위해 남산에 올라가면 그곳에 나무 하나하나는 살펴볼 수 있지만 남산 전체의 모습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온전한 모습을 보기 위해 제3국에 나가서 바라봄으로써 더욱 우리의 실체를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도 중국의 문화를 통해 우리를 보아야만 우리 조상들의 대단함과 우리의 정신문화 의 실체를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작은 한반도에 고유한 주권을 가지고 고유한 영토를 지 키면서 고유한 혈통과 문화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작은 나라가 자신의 고유한 전통을 가지고 반 만 년 역사를 지켜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 원동력은 대체 무엇일까요?

중국은 다민족 사회주의 국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12억 대다수가 한(漢)족이고 나머지 6천만이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에 중국영토 밖에 독립주권을 가지고 있는 민 족은 북방으로 몽골족, 동쪽으로 우리나라뿐입니다. 지금 몽골에선 자신의 민족어인 몽고어를 겨우 제2 외국어로 배우고 있는 실정이고, 그나마 한족 선생이 가르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늘날의 몽고 인민공 화국은 솔직히 말해 13세기에서 발전을 정지한 중세 부족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중국 영토 밖에 독립주권국가로서 고유한 문화전통을 계속 계승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인데, 이처럼 우 리나라가 버텨올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경제력도 아니고 군사력도 아닌, 오직 문화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지킬 수 있었던 이유로, 사대주의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중국에서는 역성혁명(易 姓革命)이 일어나 나라가 바뀌어도 일관되게 지켜지는 규범은 공맹사상(孔孟思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공맹사상은 안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밖으로 주변의 소수민족을 다스리는 일관된 규범으로 큰 몫을 차 지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그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그 속에서, 말하자면 약자가 강자 속에서, 절묘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하였는데, 그것이 이소사대(以小事大)라는 것이었습 니다.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 큰 나라를 예(禮)로서 섬긴다는 이 념으로 자기 민족과 나라를 보전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 조상들이 보편주의를 수용하는 자세를 들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 이후에 유학(성리학) 이 들어와 보편화되면서 그 이전 시대의 보편주의였던 불교문화는 철저히 부정되었습니다. 또 개화기 이 후에 서양문화인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지난 5백 년 동안 건국이념과 통치철학으로 지켜왔던 유학은 다시 부정당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역사적 배경으로 보더라도 우리 스스로 보편주의에 적응해 나가는 힘은 가 히 천재적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이처럼 보편주의를 재빨리 수용하 여 거기에 안주하는 것은 그것이 생존의 논리요, 때로는 위기극복의 논리는 될지언정 지속적 발전의 논 리, 변명의 논리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도 서방세계의 보편적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를 받아들여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 루어 여기까지 왔지만, 이 또한 보편주의로서의 생존의 논리이고 현상위주의 논리일 뿐 지속적인 발전과 번영의 논리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그대로 안주한다면 그것은 또 다시 스스로 우리 민족사에 한계를 노정하는 것에 다름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놓고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정복했다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 지만 진실을 말하면, 신라가 통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국력으로만 본다면, 당시 고구려를 당할 나라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 당시 삼국에는 똑같이 불교문화가 보편적으로 성행하였습니다. 그 러나 신라는 그 보편적인 불교문화에 신라 고유의 특수성, 즉 토속적인 자기 문화를 접목시키는 데 성공 하였습니다. 여기서 특수성이란《삼국유사》에 나오는 '현묘지도'(玄妙之道)라는 것, 즉 우리의 샤머니즘 을 뜻합니다. 이것을 불교와 접목함으로써 화랑도정신과 호국불교로 발전할 수 있었고, 이로써 통일이라 는 역사적 대과업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도 서방세계의 보편주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원리를 우리의 특수성과 접목하는 데 성공한다면, 21세기의 새로운 인류문명을 바로 우리가 선도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우리의 고유한 정신문화 중에서도 효(孝) 사상이야말로 21세기를 향한 우리 문화뿐만 아니라 전체 인 류문화의 새 전기를 마련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한국의 신(神)은 살아 있는 사람과 똑 같아서 시기질투도 하고 심술도 부리지만 서양의 신은 인간을 초월한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신은 달래줘야 하고 섬겨줘야 합니다. 한국인의 효 사상은 바로 이 샤머니즘에서 나온 조상숭배 사상, 부모공경 사상입니다. 이것이 중세에 들어와 불교의 살을 더하고 유교의 옷이 입혀지면서 유교에서의 규 범이 덧붙여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관념론이었던 효 사상이 유교로 인해 세련된 규범으로 현실화 되었던 것입니다.

21세기의 정신문화에서는 이러한 효 사상과 서구적인 보편성으로서의 법이 접목되어야 합니다. 전통 적인 효 속에는 인본주의, 이타주의, 절충주의, 인내주의, 평화공존주의, 이 다섯 가지 현대인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또 이것을 물질적인 측면과 절충시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 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전통문화를 원자재로 해서 새로운 21세기의 민족문화를 건설해 가는 것은 오직 우리의 역량에 달려 있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마치 저 위대한 조각가 미켈란젤로 같 은 천재 예술가가 다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원자재로서 썩은 나무나 푸석돌을 가지고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문화가 앞으로 전체 인류문화를 주도할 새로운 문화창 조의 원자재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것을 제 눈으로 보았고 제 마음으로 확인했다는 것을 분명히 말 씀드립니다.

이제 가장 급선무는 지난날 부정적 시각으로만 보았던 우리의 문화를 긍정적 시각으로 바꾸는 일입니 다. 새로운 우리 민족문화 건설의 지평은 바로 여기서부터 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강연일시 초청연사   강연제목
24 1995-9-21 정대철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민주주의
23 1995-9-14 김수환   어떻게 살 것인가
22 1995-6-1 김홍신   갈등과 행복
21 1995-5-25 이연숙   내일을 준비하는 오늘
20 1995-5-18 윤석화   연극과 인생
19 1995-5-11 홍일식   21세기와 한국전통문화
18 1995-5-4 종 범   한국의 고유문화와 불교문화
17 1995-4-27 임백천   대중문화 -- MC / 리포터론
16 1995-4-6 이 철   내가 보는 세계화와 우리 정치
15 1995-3-30 이충웅   한국의 기연구
14 1995-3-23 황산성   우리 환경 이대로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