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내가 보는 세계화와 우리 정치

1. 들어가며

저는 정치기피증 환자였습니다. 저는 정치란 평범한 시민은 할 것이 못 된다고 생각했었고, 실제로도 정치불신에 대한 얘기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 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즉 정치를 불신하는 시 대에 살고 있죠. 현재 동서양 모두 그러합니다. 그러나 정치인을 이 자리에 불러준 것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얘기를 들어보고 혹시 참고될 게 없는지 보려고 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침 뱉은 우물 다시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최근 정부여당이 하는 일 을 보면 그 속담이 생각납니다. 정부여당은 과거에 자신이 침 뱉은 정치행 태를 최근에는 앞장서서 하고 있습니다. 재벌의 정치참여 문제가 그러하죠. 여태껏 정부와 여당이 말했던 것과 전혀 반대된 행동을 한다는 것이 정치 권의 큰 문제입니다. 옳다, 그르다는 여러분이 판단할 일입니다. 도대체 정 치철학에 기반을 둔 일관성있는 논리가 없어요. 정부여당을 흠집 내려는 게 아니라 정부와 여당이 일관된 논리로 나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2. 정부가 말하는 세계화

1) 정부가 세계화를 제기한 배경

우루과이라운드 협정과 같은 세계의 흐름에 대한 정부의 가장 큰 대응은 세계화였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굳게 단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미래는 장 밋빛이니 세계로 눈을 돌리자고, 사실을 뒤로하면서 국민을 현혹시키는 수 사를 구사합니다.

93년 12월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김 대통령이 국회에서 방미보 고를 하는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 세계로 눈을 돌립시다"라고 하였고, 이 국제화를 94년 김 대통령이 시드니를 다녀온 다음 세계화 선언으로 바꾸었 습니다. 이 일련의 기간을 통해 수입개방이 미국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 라 국제적, 시대적 대세임을 선전하기 위하여 세계화 논리를 끌어들인 것 이 정부가 말하는 세계화의 직접적인 배경입니다.

95년 1월 6일 연두기자회견에서 "국제화는 국가 대 국가, 경제적 개념을 나타내는 좁은 의미이고, 세계화는 21세기 차세대를 말하는 넓은 의미"라 고 해석했으나, 두 개념 사이에 질적인 차이를 반영하는 징표를 보이지 않 고 있습니다. 단순한 용어대체 이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2) 정부의 세계화 철학과 그 문제점

정부의 철학은 세계화 시대에 무한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현란한 슬로건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사면초가에 몰린 긴박한 상황임을 강조하면 서 일견 세계화 안 하면 죽는다라는 위협으로 들리게 합니다. 합리적인 토 론을 거친 민주적 합의 속에 나온 세계화가 아니라 개발독재시대의 노력동 원체제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는 개혁의 후퇴와 더불어 우리로 하여 금 정부의 세계화 속셈에 강한 의문을 갖게 합니다.(우리가 60년대 이후〈잘 살아보세〉라는 노래를 집단최면증처럼 불러댔던 상황을 회상해 봅시다.)

3. 제가 보는 세계화

1) 개 념

세계화는 국경없는 하나의 지구촌을 만들자는 말입니다. 이에 비할 만한 것은 지역화입니다. 이는 지역내 국가들이 블록을 만들어 경제의 국경선을 없애고, 궁극적으로는 정치의 국경선도 없애는 것입니다. 세계화가 팽창과 방출의 원심력을 말하는 것이라면, 지역화는 수축과 응집의 구심력을 의미 합니다. 국제화는 이러한 세계화와 지역화를 하는 데 필요한 열린 자세를 말합니다.

정부의 세계화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무한경쟁 속에서의 생존전략이 라는 관점에서 정복하지 않으면 정복당한다는 저급한 관점입니다. 이는 필 연적으로 경제제일주의의 돈벌기 경쟁으로 비화되고 맙니다. 공익성과 인 간성보다는 경쟁성과 생산성만이 강조되는 경향은 우려할 만한 세계화의 왜곡입니다.

2) 정치문화의 왜곡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 약육강식의 세계화 철학은 정치영역에서 숨김 없이 나타납니다.

국회가 똑똑하고, 능력있고, 의식있고, 개혁적인 인물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치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어 정치가 엉망입니다.

수입개방에 대한 미국과의 이면협약을 하고도 끝까지 감추면서 WTO국 회비준 동의안을 회의장도 아닌 기자석에서 벼락같이 날치기 처리를 합니 다. 사실 여당의원도 하기 싫다, 위에서 그렇게 하라고 하니 한다, 좀 말려 주길 바란다는 그런 양심적인 여당의원도 있지만, 정당공천권을 가졌기 때 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은 세금으로 충당이 되지만, 옛날에는 공 천자금을 받지 않으면 운영이 안 되었습니다. 공천매매는 여당, 야당 다 있 지만 일반적인 것은 아닙니다. 여당은 총재나 지도부가 절대적인 영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소속 의원 및 공천을 받으려 하는 사람들은 꼼짝을 못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한 가지 결론이 만들어 지면 그 때 그 결론을 관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우 리 야당은 그런 점에서 여당보다 민주주의 원리에 훨씬 충실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입을 할 때도 여당은 눈치보고 만장일치 하지만, 야당은 찬성하는 의 원도 있고 반대하는 의원도 있습니다. 정치적 질서를 바로잡아 나가는 것 이 세계화의 기본적 바탕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질서가 엉망인데 국제무 대에서 어떻게 해 나가겠습니까?

김 대통령의 세계화는 '세상 밖으로'를 뜻한다는 촌평을 유행시키기도 했 습니다. 결국 반반론으로 패배하였지만, 기초자치단체 및 의회 선거 정당공 천 배제를 힘의 우위로 밀어붙이려던 시도가 있었습니다. 만장일치로 통과 된 통합선거법에 조인하던 94년 3월 15일, 자유당의 3?5부정선거를 떠올 리며 김 대통령이 감격스럽게 '오늘의 이 합의는 역사적인 일로 민주주의 의 승리'라고 하던 것이 1년도 안 되어 말을 뒤집는 셈이었습니다.

3) 경제의 왜곡

생산성 중심의 세계화는 농민, 노동자, 서민층의 희생을 담보로 한 재벌 위주의 세계화입니다. 서민층에서는 한층 살기 어려워졌다하여 정부의 세 계화를 '쎄게화'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농업을 민족전통과 생활문화와 관련 지어 생각하기는커녕 외국농업과의 경쟁력에서 뒤질 뿐이라는 인식은 농업 축소 및 포기정책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국가경쟁력을 사실상 재벌경쟁력으로 받아들여 재벌위상을 재고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으며, 계열사 정리, 업종 전문화, 소유주식 축소 등 애초의 개혁과제보다는 규제의 철폐 및 완화, 임금인상 규제를 위한 노럭宴?합 의 유도 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 금융자율화의 첫번째 과제는 중앙은 행의 중립성 보장인데, 한국은행의 독립을 후퇴시키는 한은법 개정안으로 진정한 개방화 조류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원자력 연구에 엄청난 양의 예산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체의 연구조차 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즉 연구하고 계 획하는 것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원자력 활용을 위한 연구에 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중국이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계층간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지만, 경제발전이 엄청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최첨단의 국 방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대만과의 합작기업만도 1,700여 개에 이르며, 대 만의 자본과 중국의 천연자원이 잘 합작되어 발전의 원동력으로 이용됩니 다. 그들은 이미 문화, 언어, 경제가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북한 에 접근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중국, 이미 엄청나게 발전한 일본, 이들에 대항하려면 남북한 긴장관계는 반드시 해결돼야 합니다. 북한과의 협력 없이 일본과 중국과의 협력은 의미가 없습니다. 남한 혼자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4)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

경쟁력을 높여 아무리 남을 앞질러 간다 해도 지속적인 생존은 그런 방 식으로 보장되지 않습니다. 무한경쟁이라고 하지만 자원 고갈과 생태계오 염 심화로 경쟁이 무한히 계속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승자와 패자가 뚜렷 이 갈리고 난 후 그들 사이의 빈부격차의 심화는 서로를 멸시하고 적대시 하는 공동체의 파괴로 문제가 됩니다. '합쳐진 것이 오래면 반드시 나눠지 고, 오래 나누어져 있으면 반드시 합쳐진다'는 나관중의 말로 세계화를 바 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쟁을 통한 독점적 지위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협 력과 중용을 통한 공생의 원리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즉, 약육강식의 국 제질서가 아니라 협력을 기본으로 경쟁이 조화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지 향하는 세계화가 진정한 세계화입니다.

4. 우리 정치가 세계화하려면

정치영역에서 세계화란, 원론적으로 말하면, 민주화와 지방화입니다. 한 국정치의 세계화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법 지키고 안 좋은 법 고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은 꼭 지키는 것이 진정한 세계화입니다.

1) 통치방식이 세계화되어야 한다

세계화 슬로건 자체가 정부의 일방적인 선포로 시작된 것이었듯이 김 대 통령의 개혁구상은 혼자만 추진하는 독점적 개혁이요, 협력자없는 배타적 개혁입니다. 오죽 했으면 집권 초기에는 여당, 야당 구도가 아니라 청와대 당, 국회당 구도로 정치가 이루어졌다는 비판이 나오겠습니까? 공무원은 복지부동인 채로 있고, 국민과 야당의 참여가 배제된 상황에서는 아래로부 터의 세계화는 무망합니다. 동학농민군을 폭도로 몰아 진압하고 추진한 위 로부터의 근대화가 제국주의의 각축장으로 전락한 교훈을 되새길 때, 분권 화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새삼 알게 됩니 다.

2) 정당과 정치인이 세계화되어야 한다

정당의 존재근거를 정치인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에 두 어야 합니다. 또한 지방에도 정당정치가 뿌리내려 정당의 국민화를 도모해 야 합니다. 당원의 당비가 정당 운영자금의 원천이 되게 하고, 필요한 정치 자금은 투명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풍토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우리 정치현 실에서 그 무슨 이상적인 말이냐라고 받아들인다면, 우리 정치의 세계화는 요원합니다. 한계가 많지만, 현실정치에서 이런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힘쓰 는 바람직한 사례가 점차 늘고 있습니다. 정당의 민주화도 중요합니다. 정 당의 권력구조가 특정인이나 특정세력에게 집중되어 있는 지금의 정치판도 는 오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민자당은 사실상 단체장 경선제도를 포기했지 만, 민주당은 자유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할 것입니다. 우리는 원내총무를 선거로 뽑았던 경험의 긍정성을 이번 6월 선거를 위한 준비에서도 더욱 훌 륭하게 정착시킬 것입니다.

정치의 세계화를 위해서 권위주의, 지역주의, 냉전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지 못한 구 정치인들의 퇴장을 이루고, 개혁성, 도덕성, 전문성을 가진 정치 인들을 키우고 길러내는 일도 중요합니다. 이 모든 것을 정당이나 정치인 들 스스로가 해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국민대중의 참여가 필수불가결합니 다. 무관심과 불신을 버리고, 적극적 참여를 통해서 정당을 민주적으로 개 조하고, 자신의 정치적 대리인을 세워내며, 이들을 항시 원조하고 감시하는 풍토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전근대적 요소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정치의 세계화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3) 지방화를 가속화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중앙집권적 통제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세계화의 통로를 연 다는 점에서 이번 지방자치제 선거가 가지는 의미는 세계화 측면에서도 아 주 큽니다. 세계화는 경쟁의 다원화와 함께 경쟁주체의 다원화도 요구합니 다. 중앙정부만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방단체도 협력과 경쟁의 주 체로 나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방화는 세계화의 전제조건입니다. 지방화 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참여입니다. 삼십사년 만에 실질적으로 실 시되는 지방자치는 지금의 상태로는 참다운 자치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습 니다. 서울시장이 출장을 가려면 중앙정부의 승낙을 받아야 할 정도로 법 제도는 자치를 보장하기는커녕 장애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를 개선시키 는 일을 누가 할 것인가? 단체장과 의회만의 몫인가? 지역주민의 참여를 통한 투쟁 없이는 어려운 일입니다.

5. 결 론

정부의 세계화는 왜곡되어 있습니다. 관점은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으로, 방향은 하향식으로, 실천은 반민족적이고 비민주적인 모습으로 점철되고 있습니다. 제가 보는 세계화는 성장을 목표로, 협력을 기본으로 경쟁이 조 화되는 세계화입니다.

우리에게 세계화를 이루는 가장 절실한 방법은 개혁을 통한 세계화입니 다. 정치적 영역에서의 개혁은 민주화와 지방화입니다. 정치적 영역에서 그 런 개혁 없이는 세계화도 없습니다. 그런데 세계화와 정치개혁을 이루는 주체는 집권당이나 정치인 등 특정 계층이 아니라 국민 모두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참여 없이는 이 모든 말이 사상누각입니다.

우리의 잠재력 확보를 통해 특화할 수 있는 특정한 산업을 발전시켜 나 간다면, 그리고 그러한 분야에서 남북한이 우선 경제협력이라도 이룰 수 있다면, 중국과 일본이라는 큰 세력 사이에 끼여 있는 한반도가 당당하게 맞서고 협력할 수 있는 통일조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세계화라지만 우리가 없는 세계화, 한국이 없는 국제화는 세계 속에 편 입, 또 다른 지배당함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개혁을 통해 이 사회를 살 만 한 사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협력하고 경쟁하는 우 리의 조국을 만들어갑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