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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찰스 험프리 영국대사입니다. 저는 여러분처럼 대학을 다녔고 학생시절을 마치자마자 외무성에 들어가 33년 간 외교관 생활을 했습니다. 그 중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18년 동안 동아시아와 관련된 일에 종사했고 특히 지난 2년간은 주한 영국대사로 봉직해 왔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만난 것은 한영관계를 한번 돌아보고 미래의 한영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예견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한영관계의 과거와 미래는 크게 다를 것입니다. 우선 한국과 영국이 처음으로 어떻게 만났는지를 더듬어 봐야겠지요? 1797년 말에 브로튼이라는 영국인 선장이 선박을 이끌고 부산에 도착했는데 그것이 두 나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이러한 만남 이후 영국 해군과 한국 당국에서는 각각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 보고서의 내용 중에서 한 두 줄을 여러분들께 알려드릴까 합니다.
한국 측의 보고서는 물론 왕에게 올린 장계였겠죠. 거기에 이렇게 써 있습니다. 그 외국인들은 가느다란 바지를 입고 있었고, 코가 크고 눈이 파랗고,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왜 왔는지 물어봐도 대답을 못했고 중국어로 해 봐도 모르고 일본어로 해 봐도 모르고 몽골어로 해 봐도 모르고 그래서 붓을 주고 너희 글자를 써 봐라 했더니 산 위에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그리더라고 했습니다.
영국 선장이 쓴 보고서를 한번 볼까요? 어느날 오후에 부산항의 영국 배로 오늘로 말하자면 항만청의 고위 관리들이 찾아 왔답니다. 이 사람들은 헐렁한 바지를 입고 아주 큰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모자의 폭이 한 3피트, 그러니까 90센티미터 정도 되는 것으로 보아 그것을 우산으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위관리들 뒤에서 시동이 옷자락을 계속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뭔가를 묻는 것 같길래 대답을 했는데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쓰여 있습니다. 두 문건을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어느 쪽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죠. 또 그러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 한영관계의 목표는 무엇이고 그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좋겠는가에 대해 몇 가지에 걸쳐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한국과 영국은 매우 발전된 자유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영국은 세계 제 4위, 한국은 제 12위의 경제 대국이고 계속해서 경제가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양국 모두 OECD 회원국에다 미국의 동맹국이고 여러 가지 국제기구의 가맹국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양 국민 모두 같은 것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높은 생활수준을 영위하는 것이 공동의 목표겠지만 좀더 이상적이고 폭넓은 공동의 이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사관이 어떤 부서로 짜여져 있는가를 보면 그 나라가 양국관계를 어떻게 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30년 전만 해도 영국 대사관에는 단지 몇 개의 부서밖에 없었습니다. 정치과, 상무과, 영사과, 홍보과, 문화과 정도뿐이었죠. 정치과가 하는 일은 주재국에서의 자국의 정치적 이해를 관할하고 외교?군사 관계를 유지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상무과에서는 주재국에 대한 본국의 수출을 촉진하고 무역장벽 같은 것을 제거하며 그 나라에 투자한 것을 보호하는 일을 했습니다. 영사과에서는 현재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자국민을 보호하고 홍보과와 문화과는 문화적인 이미지를 홍보하고 개선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과거에는 국제관계 속에서 주권을 강력하게 지켜야 했고 외국의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식의 생각이 주류를 이루어 왔었습니다. 그리고 수출은 좋은 것이고 수입은 나쁜 것이라는 식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투자를 하는 것은 좋지만 다른 나라 공장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었지요. 또한 양국 간의 관계가 정부나 대기업을 중심으로 돌아갔지 어떤 민간단체나 비정부 기구 혹은 개인 차원 쪽이 강조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보다 많은 부분에서 상황이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현대적인 관계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가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파트너쉽입니다. 이런 관계는 기업적인 협력, 학술적인 협력, 과학기술에서의 협력 등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세계적인 여러 이슈들에 대해 여러 나라가 관련을 맺고 협조 체제를 취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양 국민 간의 이해를 증진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 즉 인적 협력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파트너쉽이 중요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가령, 선진국이면서도 나라의 크기가 중간정도라면 그 나라 혼자 글로벌 플레이어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나라들끼리 상호보완적으로 손을 잡는다면 제 3국의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고 더 강력한 인적 혹은 재정적인 자원과 역량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한영 양국 사이에 이런 파트너쉽을 구성할 수 있는 몇 개의 분야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 분야입니다. 지난 10월에 한영 첨단기술 협의회가 열렸는데, 영국학자 50명, 한국학자 250명 정도가 참여했습니다. 여기서는 정보통신, 생물학, 나노기술, 환경?에너지 같은 분야들이 다뤄졌습니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양국 간의 국제협력이 가장 효과적일 때가 있습니다. 양국의 서로 강한 부분을 합쳐 더욱 강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과학기술의 강국입니다. 노벨상 수상자도 이제까지 70명을 배출했는데 금년도 노벨의학상 수상자 중 두명이 영국사람이었습니다. DNA를 발견하고 비아그라를 만든 것도 영국 사람입니다. 최초로 복제된 복제양 돌리도 영국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기업이나 대학들이 영국과의 과학기술 협력을 더욱 강화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영국에서 시행 중인 R&D 프로젝트가 150건이나 되는데 한국의 경우는 10건 정도밖에 안 됩니다.
파트너쉽을 구성해야 하는 두 번째 분야가 교육입니다. 저는 대학 간의 관계가 더욱 밀접하게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국민대학교도 영국의 세필드대학교, 리즈대학교와 결연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런던대학교가 고려대학교와 공동학위제도를 개발하기로 합의한 적이 있지요. 저는 이러한 결연이 많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여 교육이 이루어지고 학위가 주어지는 공동학위제도가 한국과 영국의 많은 대학에서 실시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현재 만 5천명 정도의 학생이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영국에서 공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영국 정부는 현재 매년 60명 내지 65명의 한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문화산업과 방위산업 분야가 협력을 통해 발전 가능한 분야입니다. 이런 식으로 양국 간의 강점을 추려서 서로 보완적인 산업을 키워 나간다면 더 넓은 세계로 진출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전망 밝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 전 세계적 이슈에 대한 협력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요? 통신기술이 발달하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지금 전 세계는 갈수록 상호의존적 관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세계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에이즈나 기후변화, 테러리즘 같은 문제들이지요. 한국과 영국도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공고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평화 유지에 공동으로 기여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은 동티모르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많이 아실지 모르지만 키프러스에 파견된 유엔 평화유지군 사령관이 한국인 장군입니다. 키프러스 평화 유지를 위해 가장 많은 군인을 파견한 나라는 영국이지만 한국장군이 지금 그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국 관계에서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서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상대 나라의 국내 문제 즉 그 나라의 사회가 어떠한가를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전 세계 나라들이 많은 의사소통을 나누면서 서로 비슷한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상대방으로부터 서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수년간 저희 대사관은 세 건 정도의 뜻깊은 공동 세미나를 한국 측과 함께 개최했습니다. 여성과 지방정부에 관한 것, 에이즈의 퇴치에 관한 것, 그리고 지체부자유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 세 가지였습니다.
그 다음은 인적 교류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민간단체나 비정부 기구간의 교류를 촉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영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국제 구호단체인 옥스팜이 한국에서 서울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최근 저는 이홍구 전국무총리님,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님과 함께 'English Speaking Union (ESU)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협회의 주요 목표는 영어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토론을 하는 기술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같은 사업이 세계 50개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과 중국은 물론 몽고에서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노력이 곧 결실을 맺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전개될 국제관계의 특징은 국제관계가 더 광범위해져서 과거에 다루지 않았던 문제들까지도 그 속으로 편입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해지는 것이 아까 말씀드린 대로 나라 간의 파트너쉽이나 비정부 기구의 활동, 인적 교류 등입니다.
자, 이제부터는 학생들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방식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어 볼까요? 자유롭게 질문해 보시죠.
학생 : 저는 국제 관계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우리 나라에서 영국의 뮤지컬이 굉장한 흥행을 거두었습니다. 한국문화 가운데 이런 것은 영국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되는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험프리 : 한국은 여러 가지 문화적인 특성을 가진 나라입니다. 그 가운데 한국의 예술적 특성으로 리듬감, 색채감을 들 수 있어요. 예를 들자면 ‘난타’가 영국에서 대성공을 거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디자인 분야에서도 뛰어납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영국에 좀 더 소개된다면 큰 호응을 얻을 수 있겠지요.
학생 : 영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에 대해 가지는 전반적인 인식이 궁금합니다. 처음에 영국하면 굉장히 가보고 싶은, 역사 깊고 좋은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직접 영국에 다녀 온 사람들의 얘기로는 황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영국에 유학 갔던 한국 학생이 피살된 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영국 경찰관들이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점을 볼 때 실망스러웠어요.
험프리 : 우선 영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시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가 없었습니다. 인도는 타지마할이 떠오르죠? 프랑스는 파리의 에펠탑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최근 월드컵이 영국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열광적으로 응원하던 붉은 악마들의 좋은 인상이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나 좋은 인식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2년간의 생활을 통해 제가 갖게 된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을 요약하자면 ‘활력’입니다. 한국은 매우 활력 있는 나라이고 저는 그것에 대해 매우 감탄하고 있습니다.
인종차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영국 인구 중 5% 이상이 최근에 영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입니다. 런던에만 해도 35개 민족이 만명 정도 살고 있습니다. 한국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영국이 3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변화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즉 영국은 여러 문화를 포용하는 사회로 이행해 가고 있고 또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현 정부도 이 점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금년에 외무성이 행한 인사만 보더라도, 고위직에 해당하는 사람의 15%가 영국인이 아닌 소수민족 출신입니다. 각료뿐만 아니라 스포츠 선수, 텔레비전 아나운서 등 많은 분야에 타민족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한국도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필리핀, 스리랑카 등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에서 일을 하며 살고 싶어 할 것입니다. 지금도 외국 노동자 수가 꽤 많지요. 한편, 여대생 피살 사건은 영국에서 매우 드문 사건입니다. 영국에는 한국 학생들이 약 4만명 가량 살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한 학생이 피살되었습니다. 영국 경찰이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지만 영국 경찰은 이제까지의 수사 관행을 따른 것뿐이고 또 어떤 특정한 인종이라 해서 사건을 소홀히 다룬 것은 아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학생 :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어서 푸드 스타일리스트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김치, 일본에서는 스시 같은 것들이 알려져 있는데 영국에서는 어떤 음식이 있는지 설명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험프리 : 영국의 대중적인 음식은 ‘피시 온 칩스(fish on chips)’라고 할 수 있지요. 설명하자면 생선 한 마리와 감자튀김입니다. 그밖에 신선한 재료로 만드는 ‘로스 비프(roast beef)’가 대중적이지요. 그리고 가공한 식품으로는 푸딩과 케잌이 있습니다. 또 영국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 재료는 카레입니다. 카레 파우더를 인도로 수출도 합니다. 영국은 입맛이 국제화된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 : 금년에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에 대해 세계 각국에서 동정과 애도의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대부분 피로 피를 씻는 전쟁에 대해서는 반대하거나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영국은 미국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여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영국만이 그리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가하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험프리 : 미국과 영국은 이러한 테러 문제에 관해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고 특히 토니 블레어 수상도 국제 테러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테러에 대해 괴로운 경험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IRA가 테러 행위로 지난 20년 동안 영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오사마 빈 라덴의 집단이 가하는 위협은 IRA가 가하는 것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큽니다. 이들은 단순히 군인을 죽이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이 반대하는 나라의 민간인들을 죽입니다. IRA 사건이 터질 때 다섯 명에서 열 명 정도의 민간인들이 죽은 반면 그들의 테러 사건에서는 오천명에서 만명 정도의 민간인 희생자가 났지요. 오늘날의 테러리스트들은 새로운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에 5만명, 10만명씩 죽일 수 있는 화학, 생물학, 원자력 무기 등을 가지고 있어요. 이러한 테러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세계의 많은 민간인들에게는 굉장히 큰 위협입니다. 이 상황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고, 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과 공조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만 다른 나라들 즉 호주, 터키, 프랑스 등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영국과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아프가니스탄 작전에 일정한 기여를 했습니다. 한국 공군의 수송기가 작전에 대비해 보급품을 실어 나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윤리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길 건너편에서 강도가 행인을 위협하면 그것을 보고 그냥 지나갈 것이냐 도와줄 것이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학생 : 영국은 네 개의 지방으로 크게 나뉘어져서 스코틀랜드 지방과 런던 지방은 문화적인 차이가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지역감정이라는 게 있는데 영국에도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 만약 존재한다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험프리 : 영국을 ‘유나이티드 킹덤’이라고 합니다. ‘유나이티드’라는 것은 합쳐졌다는 뜻 아닙니까? 잉글랜드,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즈가 합쳐진 것입니다. 저는 잉글랜드 사람이고 제 처는 웨일즈 사람입니다. 그런데 잉글랜드와 웨일즈 사이에 럭비시합이 벌어지면 저희 가족끼리 편을 갈라서 응원을 해요. 저와 제 아들 하나는 잉글랜드 편이고 딸과 나머지 아들 하나, 부인은 웨일즈 편입니다. 제 편이 소수지요. 영국에서는 이러한 네 개의 지역에 대해 많은 자치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와 웨일즈는 자체 의회를 가지고 있고 외무 이외에 지역 내의 여러 일에 대해서 상당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자치권 부여가 차이를 강조하고 반감을 조장할 우려도 있기 때문에 그 악영향을 없애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감정을 해소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양쪽 지역 혹은 전국에서 선의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반감을 버리고 선의의 경쟁을 벌이도록 해야 합니다.
학생 : 우리 문화재인 ‘직지심경’이 프랑스에 있습니다. 그것을 되찾는 데 많은 난관이 있습니다. 대영박물관에 가 보면 이집트나 터키의 건축물이 통째로 뜯겨 그대로 전시돼 있습니다. 그런 문화재들이 본토에 있지 못하고 다른 엉뚱한 곳에 전시돼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험프리 : 대영박물관과 영국 국립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은 세계 각국에서 가져 온 것들입니다. 이탈리아 회화도 있고 이집트의 기념비도 있고 한국 작품도 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그 곳을 방문하면 이 모든 것들을 자유로이 관람할 수가 있지요. 또한 미국에도 수많은 영국의 회화들과 고가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내 나라 문화재니까 돌려달라고 주장해서 작품들을 다 바꿔버린다면 전 세계는 더 빈곤해질 것입니다.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이 상실됩니다. 가령 대영박물관에 수천 만명이 방문하여 세계 각국에서 모인 유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 : 영국은 대중예술에 있어서도 뛰어납니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환타지 소설이나 ‘비틀즈’나 ‘데이빗 보위’ 같은 뮤지션들이 나올 정도로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풍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대중예술이 좀 더 심도 있게 한국에 소개되었으면 합니다. 이와는 별도로, 대사님께서 지금까지 33년 동안 한 직업에 종사하시면서 또 영국을 대표하는 대사로 일하시면서 어떤 인생의 원리를 채득하셨다면 인생의 선배로서 인생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따뜻한 충고 한 마디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험프리 : 지난 날을 회고하면 후회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교훈이라기보다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여행을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유명한 그림이나 건물을 보기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들과 긍정적인 교류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굉장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이 나라 젊은이들이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그게 결국 우호적인 대외 관계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 제 이야기를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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