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에게 자주 그 많은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오느냐고 묻곤 합니다. 또, 항간에 알려진 얘기로 ‘전유성은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랍니다. 사실 제가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몇 가지 공식이 있다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늘 하던 일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겁니다. 저는 30년째 드나들고 있는 MBC에서 요즘 ‘여성시대’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오늘이 14일째 출근입니다. 그런데 그 방송국에는 엘리베이터가 양쪽으로 두 대씩 있어요. 어제 제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보니 하나는 홀수 층만 운행하고 나머지는 짝수 층만 운행한다고 쓰여 있었어요. 요즘에는 ‘여성시대’를 진행하러 8층으로 올라가니까 당연히 짝수 층만 운행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야 하지요. 그런데 갑자기 ‘짝수 층만 운행하는 엘리베이터가 왜 1층에 서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듯이 평상시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중요한 공식입니다.

개그맨 가운데 제가 가장 선배이기 때문에 항상 후배들이 인사를 많이 합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앉아 있는데 후배가 지나가면서 “전 선배님 식사하셨어요?” 하고 물어요. 그런데 마침 제가 밥을 안 먹었어요. 그래서 안 먹었다고 대답을 하려는데 그 후배가 그냥 가는 거예요. 그래서 “야, 이 녀석아, 식사했냐고 물어봤으면 대답을 듣고 가야될 거 아냐!” 하고 혼낸 적이 있지요. 또 우리가 보통 억울한 얘기를 할 때 흔히 하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말야, 너도 한 번 생각해봐.”라고 하면서 마구 자기 얘기를 해대잖아요? 그러면 나도 이렇게 얘기하지요. “야, 너는 생각해 보라고 했으면 생각해 볼 시간을 주고 다음 얘기를 진행해야지. 시간도 안 주고 생각해 보라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느냐.”고. 저는 이런 일상적이고 사소한 경우부터 찾아들어 아이디어와 접목시키죠.

저희 전유성, 진미령 부부는 아시다시피 얼굴이 다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에요. 언젠가 제주도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데 스튜어디스들이 인사를 해요. 우리 부부를 보더니 “어머, 전유성 씨, 진미령 씨, 어디 가세요?” 그래요. 그 비행기 탄 사람들은 다 제주도 가는 거예요. 중간에 내리는 사람이 없지요. 그래서 저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자리 찾으러 갑니다.” 그런 적이 한번 있었어요. 병원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종합진단을 받으러 갔는데 간호사가 “어머, 전유성 씨, 안녕하세요.” 그래요. 그러면 저는 “아니, 저는 안녕한가 보러 왔는데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이런 예들처럼 우리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것들부터 따져가기 시작하면 새로운 것들을 많이 찾아보게 됩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어린 아이들을 만나면 먼저 질문하는 것들이 뭐죠? ‘몇 살이니?’, ‘몇 학년이니?’, ‘공부 잘하니?’ 하고 묻죠? 그런데 아이들에게 물어볼 게 그렇게 없습니까? ‘무슨 음식 좋아하니?’, ‘오늘 윗옷은 누가 입혀줬니?’, ‘운동화는 언제 빨아 신었니?’ 이런 것도 다 물어볼 수 있는데 보통 묻는 말이 정해져 있어요. 누가 인터뷰 할 때 뻔한 것들을 물어보면 저는 대답을 잘 안 합니다. 그런 인터뷰는 거의 심문이나 조서 작성 같아요. ‘몇 년도에 데뷔하셨어요?’, ‘개그맨이라는 말을 처음 만드셨다면서요? 왜 그러셨지요?’ 매일 물어보는 게 그런 겁니다. 저는 앞으로 뭐 할 건가를 많이 물어봐 달라고 합니다.

방송에서도 추석 때가 되면 아주 똑같은 말만 나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 말을 안 쓰는 MC들이 없어요. DJ도 마찬가지죠. 방송에 제일 쉽게 출연할 수 있는 게 리포터예요. 가수는 판을 내서 알려져야 방송에 출연하고 탤런트나 코미디언도 공채로 방송국에 입사해서 일을 하는데, 연줄만 있으면 들어가서 할 수 있는 게 리포터라는 직업이에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름이 기억나는 리포터는 아무도 없어요. 자기 친척 아닌 다음에야 기억나는 사람이 없어요. 리포터 하면 그냥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소리만 기억나요. 하는 얘기도 다 평범하고 똑같으니까 내용이 기억에 안 남아요. 우리가 교육을 어떻게 받아왔나요? ‘남들 가는 데로 가면 중간은 간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 이 말이 아직까지 쓰여지고 있어요. 남들 가는 대로 따라가면 이제는 자연히 도태됩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똑같은 질문만 하면 리포터들은 없어져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죠? 모가 좀 나서 정으로 두어 번 맞아 봐야 세상 보는 눈이 딱 달라집니다. 제가 빚 보증을 두어 번 서 주고 속으니까 세상 보는 눈이 정말 달라졌어요. 그래서 언젠가 방송국 후배가 결혼할 때 주례사로 딱 한 마디 했어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빚 보증은 절대로 서 주지 말라고.

이왕 주례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할까요? 언젠가 배삼룡씨가 한 주례사는 정말 너무 멋있었습니다. 조금산 이라는 후배의 결혼식이었는데, 배삼룡씨가 말했어요. “금산이, 내가 무슨 얘기하려는지 알지?” 조금산씨가 “네.”하고 대답하니까, “그럼 됐어.” 그게 끝이었습니다. 개그맨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주례사입니다. 다른 주례사와 차별화된 얼마나 짧고 훌륭한 주례사입니까?

그래서 무엇이든지 좀 달라야 합니다. 예전에는 통행금지가 있어서 자정이 넘으면 사람들이 밖으로 못 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통행금지가 없어졌어요. 그때는 제가 영화사에서 영화 기획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헬 나이트’라는 공포영화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이벤트를 벌여 흥행에 성공해 볼까 궁리를 했지요. 그래서 통행금지가 해제되었으니 밤 12시에 영화 시사회를 하자고 건의했습니다. 그 때 거의 미친 놈 취급을 받았어요. 그래도 밀어붙였습니다. 그것도 이왕이면 커플이 와서 보게 하자고 주장했어요. ‘쌍쌍 공포파티’라는 이름을 지어서 심야 상영을 해 보자고 한 거죠. 그때 제가 알고 있던 날씬한 여성들을 시켜서 학교 앞에서 초대권을 나눠주게 했지요. 초대권을 700쌍에게 나눠주고 거의 매일 시사회 날 꼭 오라고 전화를 걸었지요. 650쌍이 그 날 왔습니다. 좌석을 가득 채우고 영화사 관계자들까지 참여하여 성황리에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심야극장이란 말을 익숙하게 사용하는데 그 말을 볼 때마다 저는 기분이 좋습니다. 안 하던 것을 했다는 것 때문에, 무언가 차별화 시켰다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얼마 전 컴퓨터에 관한 책을 썼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제가 직접 썼을까 하고 의심을 합니다. 사실 그 내용을 보면 대신 써줄 만한 내용도 아닙니다. 어느 컴퓨터 책이든 600개에서 800개 정도의 정보를 가르쳐 주게 돼 있어요. 저는 49개를 가르쳐 주는 걸로 했습니다. 하루에 딱 일곱 개씩 7일 동안 배울 수 있게 했습니다. 많이 가르치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컴퓨터 책을 열면 대개 처음에 나오는 게 컴퓨터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저는 제 책에다 컴퓨터의 역사는 알 필요가 없다고 썼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라디오의 역사는 몰라도 라디오 방송에 30년 동안 출연했고 라디오 방송을 라디오로 다 들을 줄 압니다. 자동차의 역사를 알고서 자동차 타고 다니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컴퓨터 잘 하는 사람들은 컴퓨터 모르는 사람들의 심정은 하나도 모르고 가장 기본적인 것들은 그냥 설명 안 해줍니다. 컴퓨터 켜는 법, 끄는 법을 설명해주는 책이 있나요? 사실 모르는 사람은 가장 기본적인 것도 정말 모르거든요. 또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으로는 컴퓨터 책 광고를 신문이나 컴퓨터 관련 잡지에만 냈습니다. 그런데 정말 초보자라면 컴퓨터 잡지를 안 보겠죠? 너무 비싼 신문이나 잡지 광고는 피하고 라디오 광고를 냈는데 책이 너무 많이 팔렸습니다. 100만 부 넘어간 후엔 10% 인세를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컴퓨터 전문가도 아니고 너무 미안해서 안 받았습니다.

처음에 제가 코미디언 할 때 많은 선배들이 저에게 왜 안 웃느냐고, 표정이 왜 그렇게 없냐고 핀잔을 줬습니다. 그런데 저는 평소 잘 웃지도 못할뿐더러, 코미디언 하려면 전부 웃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 끝까지 무표정하게 나갔지요. 저는 그래서 지금까지 버틴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친구들’이란 프로그램 할 때도 남희석 씨가 저쪽에서 막 떠들어대도 맨 구석에 앉아 한 두 마디만 했습니다. 제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웃기는 거 본 적 없을 거예요. 안 웃기고 30년 버틴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결정적으로 제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계기는 이렇습니다. 일반인들이 나와서 관객들을 웃기는 코너가 있었는데 잘 웃기는 사람이 있으면 차라리 전유성을 웃겨보라고 해서 그때 제가 알려지게 됐습니다. 완전히 입장이 바뀐 거지요. 그러니 우리도 상황을 거꾸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야구를 볼 때 연고지 팀을 응원합니다.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4, 5회전쯤에 그냥 채널을 돌렸을 때 지고 있는 팀을 무조건 응원하는 거예요. 지고 있는 팀을 응원하다가 그 팀이 역전을 시키면 굉장히 신이 납니다. 권투를 볼 때도 그래요. 동료에게 물어봐서 질 것 같은 선수만 계속 응원을 합니다.

제가 교통 프로그램을 진행했었습니다. 교통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통신원들과 대화하다 들은 얘기입니다. 한강 둔치가 처음에는 무료 주차장이어서 차들이 굉장히 많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때 어떤 공무원이 지나가다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저 공간에 유료 주차장을 세우면 세금이 많이 모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택시 운전사들이 마음껏 쉴 수 있던 공간이 유료주차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배낭 여행을 다녀온 런던에서는 같은 해에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원래는 유료 주차장이었는데 시민들이 너무 많이 이용하니까 무료 주차장으로 바꾼것입니다. 정말 큰 차이지요?

또 제가 비행기를 타고 이태리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려고 후배에게 제일 싼 비행기표를 구해보라고 했더니 그럼 이틀 후 토요일에 타고 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토요일엔 사람이 많이 몰리는데 표가 쌀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 후배 말이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토요일, 일요일에 항공사의 이익금도 클 테니 표값이가 더 싸다는 거였습니다. 우리 나라와는 완전히 상반된 상황이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쓰신 신영복씨 아시죠? 그 분이 교도소에 있을 때 늙은 목수가 들어왔습니다. 어떤 집을 짓느냐고 물으니 전통 기와집을 짓는대요. 그래서 한번 그려보라고 했더니 그 목수는 제일 먼저 주춧돌을 그리고, 그 다음 기둥을 그리고, 그 다음 지붕을 그리더라는 거예요. 보통 우리는 어떻게 집을 그립니까? 지붕을 그리고 기둥을 그리고 주춧돌을 그립니다. 산을 그릴 때는 제일 높은 곳부터 그립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고정관념입니다. 여러분 꽃을 그릴 때 어떻게 그립니까? 화분부터 그렸지요? 마찬가지로 아무도 물고기를 정면에서 그리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성악하는 부부와 알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연주회 티켓을 보내줘서 갔는데 관객이 거의 없는 곳에서 두 부부가 쓸쓸하게 노래를 하고 있더군요. 이태리에까지 가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인데 관객은 한 30명 정도 앉혀 놓고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연주회가 끝나고 보니까 약 20명은 다 아는 사람들이라고 하더군요. 모두 초대권 받아서 온 사람들이죠. 착찹한 마음이 들어서 그 분께 관객석을 꽉 채워 놓고 공연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꽉 채우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어차피 공짜로 할 거 맹인들을 전부 불러 앉혀서 노래를 듣게 해 주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산 공연에서는 맹인들을 초대하여 공연을 했습니다. 공연에 초대된 맹인들이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악하는 그 두분은 명함에 점자까지 넣게 되었습니다. 팜플렛도 점자로 만들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색다르게 공연을 해보자고 했습니다. 혹시 ‘어린이가 떠들어도 화내지 않는 음악회’라고 들어봤어요? 여러분이 극장이나 공연장에 가면 좌석표를 받죠? 가끔 이런 문구를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촬영금지.’ ‘음식물을 반입하지 마세요.’ ‘꽃다발을 갖다주면 안됩니다.’ ‘7세 미만 어린이 입장 금지.’ 여러분도 태교에 클래식 음악이 좋다는 얘기 많이 들었죠? 그래서 임산부가 클래식 음악을 태아에게 열심히 들려줍니다. 그런데 막상 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라이브로 음악을 들을 기회가 원천봉쇄됩니다. 아이들이야 떠드는 게 특징이죠. 아이들이 점잖게 늙은이처럼 앉아 있으면 무척 징그럽지 않겠어요? 그래서 아이들 소리가 연주에 지장이 있다고 말하는 음악가들에게는 음악을 20년 이상 했는데 아이들 떠드는 소리 정도에 연주가 안 되면 프로가 아니라고 우겨서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제목도 ‘아이들이 떠들어도 화내지 않는 음악회’ 였습니다. 실제로 해 보니까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훨씬 더 많이 떠들더군요. 아이들은 열심히 듣고 박수 치는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클래식에 대해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사람들은 음악회에 가서 코 골고 자는 사람을 무식한 사람이라고 얘기하죠? 그렇다면 관객을 다 자게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음악 들으면서 다 같이 무식해 보자는 생각으로 4월 15일 국립극장에 음악회 대관 신청을 했습니다. 100여 명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다 자는 콘서트. 그래서 이름도 ‘잠자는 콘서트’라고 붙였습니다.

제가 처음 컴퓨터를 배울 때 “손가락 세 개만으로도 자판 잘 치네.” 하며 비아냥거리는 사람을 봤습니다.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사람은 얼마나 잘 치는지 조사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제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할 때 어떤 사람들은 그 나이에 그걸 왜 타냐 고 말렸습니다. 넘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걱정들을 많이 했어요. 그러나 타 본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항상 안 해 본 사람들이 말들이 많습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요. 또 시를 읽자고 권하면 요즘 시는 난해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난해(難解)’를 한자로 못 쓸 겁니다. 난해가 뭔지도 모르면서 난해하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아예 시를 읽어 보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몸으로 한번 해 볼 때 인식도 달라질 겁니다. 그렇게 고정관념도 깨집니다.

우리의 언어 생활에 있어서도 밤낮 똑같은 표현만 쓰지 말고 좀 다르게 써야합니다. 누가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하고 있네”란 말을 유행시키면 전부 그 표현만 따라 씁니다. “김밥이 안경 썼네.” “김밥이 시력이 나빠졌네.” “김밥이 관절염에 걸렸네.” “김밥이 당뇨병 걸렸네.” 등 여러 가지로 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줄곧 남의 표현만 따라 씁니다. 그런데 문제는 재미있는 표현도 처음에만 재미있지 자주 쓰면 식상해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남들 가는 대로만 가는 것은 자연스레 도태되는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시집을 많이 읽기를 바랍니다. 소설은 거듭 읽어 보면 재미가 반감됩니다. 그런데 시집은 아무 때 아무 데서나 읽어볼 수 있는 장점도 있고 무엇보다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일반 사람들과 굉장히 달라서 재미있습니다. 얼마 전에 지리산에 갔다가 부산에서 온 시인을 만났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산장에 머무르고 있는데 마침 산장 근처 쓰레기 푸대들이 다 헤쳐져 있었습니다. 먹을 게 없으니까 멧돼지들이 뒤져 놓은 거죠. 다른 사람들이나 저는 ‘몇 마리가 내려왔을까?’ ‘언제 내려왔지?’ ‘그거 잡을 수 없나?’ 이런 것들만 관심사였어요. 그런데 그 시인은 자기가 쓴 메모를 보여주는데 거기에 ‘어느 누가 산돼지 밥상에 하얀 밥상보를 덮었나.’ 하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시인은 우리와 사물을 보는 눈이 좀 달랐던 거죠.

얼마 전 타계하신 서정주 시인이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이 70세에 귀를 뚫으셨답니다. 저도 한 30년 전에 귀를 뚫었었는데 멋으로 한번 그래 본 거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뚫자마자 첫 마디가 이랬다고 합니다. “아, 내 귓구멍으로 하늘이 왔다 갔다 하는구나.” 정말 기발하죠? 그래서 저는 시인들을 통해 세상 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월드컵이 열려서 전 국민이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을 때 저는 축구야 이기면 좋고 지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태국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태국 어떤 강에서 뗏목을 타고 내려오다 보니 호주에서 온 사람들이 한국이 16강에 들었다고 얘기해서 사태를 깨달았지요. 한국에 돌아와 참 미안한 생각이 들어 공에 관한 시가 있나 찾아 봤습니다. 정현종 시인이 쓴 시 중에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이란 시가 있더군요. 공은 넘어지지 않고 다만 튀어 오를 뿐이라고. 어려운 말로 되어 있지도 않은데 저는 그렇게 쓰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시집을 많이 보라고 권합니다.

전에 개그맨 남희석씨가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들고 우리 집에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 청첩장은 미리 정해진 문구에 이름만 바꿔 넣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남희석씨를 야단쳤어요. “네가 지금 제일 잘 나가는 개그맨인데 청첩장을 왜 이렇게 재미없게 만들었냐? 재미있게 다시 만들어라.” 호통을 쳤지요. 제가 본 청첩장 중에 기억에 남는 청첩장이 있습니다. 삼단으로 접게 돼 있었는데, 거기에는 중매해 준 사람이 ‘나는 왜 이 신랑을 신부에게 중매했던가’, ‘신랑은 왜 이 신부를 택했나’에 대하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부천에서 3천 5백만 원짜리 전세로 시작을 한다고 써 놓았더군요.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청첩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희석씨에게도 색다르게 하라고 권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청첩장에 사선을 하나씩 긋자, 그리고 사선 아래에 번호를 적어 넣어서 행운권 추첨을 하자고 했습니다. 하객들을 위해 그 맛없는 갈비탕만 대접할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라도 작으나마 선물을 준다면 그 결혼식은 정말 축복 받고 오래 기억되는 행사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자, 이제는 하지 말아야 할 것 몇 가지만 말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술을 굉장히 잘 마십니다. 웬만큼 술을 잘 마신다는 사람들과 맞붙어서 이긴 기록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상태가 좋을 때에 그렇지요. 지금은 안 좋을 땐 두 잔 마시고 뻗을 때도 있습니다. 술이라는 건 잘 마시는 사람도 상태가 안 좋으면 소주 반 병만 마시고도 뻗을 수가 있고 상태가 좋으면 한 잔 마시던 사람이 세 잔 마실 수도 있고 폭탄주 두 잔까지 얹어서 마실 수도 있지요. 저는 지금까지 같이 술 마시러 가서 다들 똑같은 양 마시고 끝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각자 상태나 주량이 다 다르지요. 그런데도 강제로 술을 주려는 사람들은 문제입니다. 그리고 술 마시면서 남의 술잔 세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노래방에 가서 부른 노래에 점수 매긴다는 거, 우습지 않습니까? 점수가 많이 나왔다고 좋아하는 것은 정말 한심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도 점수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놀면서까지 점수에 연연하는 짓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남들 가는 대로 가지 말라는 얘기를 강조하고 싶어요. 백남준 작품 전시회에 갔더니 제가 지금까지 했던 얘기를 딱 한 마디로 함축해 놓은 글이 있었습니다. ‘모든 도박에서 100% 이기는 길이 있다. 그것은 룰을 자기가 만드는 것이다.’ 너무 굉장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우리 집에서 고스톱을 치면 제가 다 땁니다. 왜냐하면 우리 집 고스톱 룰은 제가 만들었으니까요. 세상살이에는 공식이 없습니다. 여기 오신 여러분이 200명이라면 200가지 다른 생각들이 있을 것이고 200가지 룰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