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써 영화읽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영화를 읽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볼 수 있죠? 아무래도 제 전공이 임상 심리학이기 때문에 정신분석학적으로 영화를 읽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의 정신을 분석하면서 영화를 살펴 볼 수 있어요. 또 관객이론의 측면에서 관객들이 영화에 빠져드는 이유에 대해서 분석해 볼 수 있겠지요.

사회문화적 현상으로서의 영화란 무엇일까요? ‘친구’라는 영화가 2001년도에 대단히 흥행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흥행에 성공했을까요?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흥미나 관심을 유발시켰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무의식이나 개인적인 무의식과도 연관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한 영화에 대해 열광하거나 관심을 갖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즉 정신분석 이론을 영화에 접목 시키면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써 영화를 읽어 내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그렇다면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써 영화를 읽어 내기 앞서 먼저 문명 더 나아가 문화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정신분석학에서는 무엇이라고 설명하는지 알아 봅시다.

제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거든요. 어떻게 하면 어머니인 저의 억압을 뚫고 친구들과 많은 시간 동안을 놀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공부해라.’ 그러면, ‘싫어요. 전 놀거예요.’라는 식으로 받아들이죠. 그런데 그런 아이를 인간답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죠? 프로이드식으로 말씀드리면 ‘놀이의 에너지’를 ‘노동의 에너지’로 바꿔줘야 합니다. 즉 모든 인간이 놀고 싶다고 해서 전혀 노동을 안 하면, 정신분석학적으로 봤을 때 문명이란 생겨날 수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여러 가지 에너지의 전환이 필요한데 문제는 인간의 본성상 인간은 쾌락을 지향하는 존재이고, 내적 충동이 생기면, 즉각적인 만족을 얻으려고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문명을 형성하려면 자기만족을 지연시키거나 변형시켜야 합니다.

문명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떤 억압적인 상황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억압이 바로 놀이의 문화에서 노동의 문화로 바뀌어지는 과정이 되는 것이죠. 인간에게는 무의식이라는 것이 있죠? 이 무의식 충동이라는 것은 용수철처럼 누르면 누를수록 더 밖으로 튀려고 하거든요. 억압을 뚫고 나오려는 무의식적 충동은 억압이 심할수록 더 심해진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그러한 무의식적 충동을 분석하며 영화를 읽는다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겠죠.

그러면 영화가 어떤 면에서 현대의 무의식을 담고 있을까요? 현대 사회로 오면서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달라졌어요.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이 어디일까요? 제가 볼 때 하나는 스포츠 경기장이고 또 하나는 극장입니다. 그리스 시대로 치자면 극장이라는 곳은 공동제사를 지내는 장소가 되죠. 예전에는 종교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지금은 스포츠나 영화가 사람의 마음을 잡는 공동의 제사가 되고 있어요. 제의를 드릴 때에 필요한 게 뭐죠? 제물과 신이죠? 제물이 돈이라면 신은 누가 되죠? 신은 당연히 연예인 아니면 스포츠 선수가 되는 거죠. 신이 인간과 다른 게 뭐예요? 한 마디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는 것입니다. 신처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모습은 스타들에게도 있습니다. 비비안 리 같은 스타는 내가 보고 싶을 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비디오 테이프를 넣으면 언제 어디서나 우리들 앞에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예전의 그 모습으로 나타나죠. 그래서 항상 스타들의 모습을 가장 스타다웠을 때로 기억하게 됩니다. 비비안 리를 쪼그랑 할머니로 떠올리진 안잖아요? 스타들이 신처럼 등장하는 장소가 바로 극장입니다. 그런 극장에서 여러분은 어떤 상태에 있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왜 그렇겠어요? 그것은 스크린 속에 나오는 스타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유식한 말로 하자면, 영화는 집단적 무의식의 ‘투사’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투사’는 심리학적으로 보면 내 안에 있는 어떤 욕망, 욕구가 상대편에도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투사’의 간단한 예를 들어 볼까요. 백인 여자가 흑인 남자를 사랑해요. 그런데 1960년대 남부에서는 흑인 남자를 사랑하면 안 되는 금기가 있기 때문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 남자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가지고 있어요. 사회적으로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가 되다 보니 진실이 거꾸로 바뀌게 돼요. 마치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그가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죠. 이런 상황을 바로 ‘투사’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비슷한 과정이 영화를 볼 때 생성됩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스타를 보고 자신의 욕망을 대리 충족하고, 그 스타가 마치 자신의 욕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거죠. 영화 안에 있는 동일시의 과정입니다. 이런 동일시가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 안에 들어가 슬프고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 그 시대와 그 나라의 집단 무의식을 훨씬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사회와 문화를 연관시키는 노력은 계속 되어 왔습니다. 여러 사람이 있는데 그 중 라인홀트 니이버(Reinhold Niebuhr)의 이론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럴 맨 앤드 임모럴 소사이어티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의하면 한 마디로 인간은 굉장히 도덕적인데 사회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예요. 이 책은 특히 유태인 학살과 관련해서 연구한 책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인데 그 당시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는가 하는 거죠.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몇 백만 명을 죽인 광기의 시대가 있게 된 이유가 뭔지 드러나 있어요. 에리히 프롬도 이 부분을 연구했어요. ?인간의 파괴성에 대한 해부?라는 책에서 프롬은 인간에게 두 가지 욕구가 있는데 그것은 삶의 충동과 죽음의 충동이라고 했습니다. 삶의 충동은 성적인 것이고 죽음의 충동은 공격적인 것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삶의 충동에 의해 어떤 권위에 대해 반항하고 금기를 깨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에 죽음의 충동에 의해 복종하기도 하고 광기에 휩싸이기도 한다고 지적합니다. 유태인 학살의 본질은 독일 국민이 갖고 있던 경제 번영에 대한 갈망에 있었다고 봅니다. 즉 유태인들이 굉장히 부자였는데 독일 사람들은 유태인들 때문에 자신들이 번영할 수 없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거죠. 독일인의 마음에 있는 번영에 대한 갈망과 불안이 유태인에게 투사된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에 학살이라는 격렬한 반응을 이끌어내었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종전 후 북부유럽 사람들은 죄의식에 빠지게 됩니다. 어느 날 자신의 아버지가 수백만의 사람들을 죽인 사람이거나 방조하거나 도와준 사람이란 걸 알게 된 거죠. 그러면서 강하게 아버지 세대의 권위를 부정하는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양철북’이나 ‘킹덤’이라는 영화가 그렇습니다. ‘킹덤’이라는 영화 어땠어요? 그 영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병원에서 귀신이 나오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밑바닥을 자세히 보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즉 병원이라는 곳은 아주 권위적인 곳입니다. 현대의학이 펼쳐지는 상당히 합리적인 장소이고 근대적인 장소인데 귀신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인 상황이죠. 합리적인 공간에서 가장 비합리적인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박사는 너무나 간에 관심이 많아서 자기 간을 떼어내고 썩은 간을 이식하기도 합니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병원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아버지 세대의 죄와 권위에 대해서 비판해 들어가는 겁니다.

자, 그러면 영화를 보면서 말씀을 드려야 더 재미있을 것 같네요. 제가 말씀드린 사회문화적인 영화 읽기는 독일의 S. 크라카우어 (Siegfried Kracauer)라는 사람이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The Cabinet of Dr. Caligari)’이라는 영화를 읽어낸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정수라고 불리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주인공 프란시스가 칼리가리라는 연쇄살인범을 회상하며 얘기해 주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그에 따르면 칼리가리는 몽유병자 체사르에게 최면을 걸어 자신의 친구를 죽이고 여자친구를 유괴하죠. 그의 추적 끝에 칼리가리는 18세기에 있었던 대리살인을 재현하고자 하는 강박관념에 빠진 정신병원의 원장임이 밝혀집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이제까지 이 이야기를 해준 주인공은 사실 정신병원의 환자이며 칼리가리는 그를 담당한 의사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주인공은 소리치며 병실로 끌려가고 의사 칼리가리는 그제서야 그의 증상을 이해하게 됩니다.

당시 독일에 불었던 표현주의라는 사조는 인간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불안이나 강박관념이나 타인에 대한 지배 욕구들을 정교하게 드러냅니다. 이 영화는 이러한 것들을 잘 표현했기 때문에 표현주의 영화 중에서 가장 유명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보여드린 것은 2막에 해당하는 장면이었는데 따분한 무성영화로 보이시나요? 당시 이 영화는 크게 흥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독일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이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표현주의가 독일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독일 사람들은 그에 식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크라카우어라는 사람은 어떻게 이 영화를 보았을까요? 그는 이 칼리가리를 독일 사람들이 복종하고 싶어하는 권위적인 인물로 보고 체사르는 독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집단적 무의식을 대표하는 인물로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독일인들은 체사르라는 인물과 프란시스라는 인물로 분열된다고 보았습니다. 즉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프란시스의 밑면에는 살인을 저지르고 여성을 납치하며 마을을 불안으로 몰고 가는 체사르가 있다는 거죠. 그리고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권위자 칼리가리가 있다고 본 거죠. 크라카우어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시 독일 국민들은 현실과 부딪히기보다는 스릴러적이고 판타지적인 곳으로 도망치려 하였기 때문에 후대에 파시즘이 들어갈 틈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보여지는 뒷골목과 불안한 조형물들은 독일 국민들의 일그러진 마음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사회의 붕괴나 타락들을 대변하는 불안한 징조라 본 것입니다. 이런 크라카우어의 분석은 꽤 흥미를 끌기 시작합니다.

이런 교과서적인 이야기들을 넘어서 이제는 여러분들이 자주 보시는 일본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 한국의 영화를 가지고 사회문화적인 방법으로 영화를 읽어볼까 합니다.

먼저 일본 영화입니다. 여러분들은 대개 일본문화 하면 떠오르는 게 뭐죠? 사무라이요? 천황이요? 예, 다 좋아요. 그러면 자연물 중에서는 뭐가 있지요? 후지산이 있어요. 그럼 후지산 꼭대기에는 뭐가 있지요? 그것은 바로 눈이죠. 제가 볼 때 일본 영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두 가지 요소는 벚꽃하고 눈입니다. 그래서 일본문화라고 하면, 백목문화라고 합니다. 하얀 나무의 문화. 일본 사람들은 자연 그대로의 것, 날것들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군함이 처음에 일본으로 들어갔대요. 그 때 일본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한 것이 무엇이냐면, 미국 사람들이 칠한 페인트를 벗기는 일이었답니다. 즉, 날것 그대로가 아름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페인트를 벗겨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백목 문화는 그들 문화의 특징을 시각적인 문화라고 부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시각적인 문화를 여성들의 옷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여성들의 옷을 기모노라고 하죠? 우리나라의 몸빼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무시하고 편하게만 만든 옷인 반면에 기모노는 굉장히 불편하지만 시각적인 면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능적인 문화와 반대되는 시각적인 문화라 할 수 있죠. 또 여러분들도 사무라이 칼을 아시죠? 일본도는 무지하게 길면서도 한 면만 쓰죠. 무슨 이유로 한 면만 쓰는 걸까요? 원래 일본 사무라이는 한 주인만 섬기고 단 한 번의 자결로 자신의 결백을 밝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즉 일본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회의 비장미’라는 거죠. 일본 사람들의 칼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그것은 무서움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감정적인 절제가 터졌을 때 칼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무서움을 만들어 주는 거죠.

여러분들도 모두 ‘철도원’과 ‘러브레터’를 보셨죠? 이 두 영화를 비교해 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러브레터’ 포스터에 보면 까만 옷을 입은 여자가 하얀 눈밭에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죠? ‘철도원’은 어때요? ‘철도원’에서도 어떤 아저씨가 까만 옷을 입고 앉아서 하얀 눈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더 재미있는 것은 ‘러브레터’나 ‘철도원’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아가씨와 아저씨라는 차이가 있는 것을 빼놓고는 옷의 색깔이나 하늘을 바라보는 각도가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일본 사람들이 제일 애닯게 생각하는 사랑의 경지는 짝사랑이라고 합니다. 대상부재의 사랑이 그들에게는 최고의 경지의 사랑인 것이죠. 전통적인 일본의 미의식인 모노노와레도 그 비슷한 정조가 있어요. 모노노와레는 자연물에서 느끼는, 대상을 자연물을 통해 표현하고 느끼는 일본식 미학을 지칭하지요. 한 마디로 대상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자연물만 남는 거죠. ‘러브레터’는 그것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아가씨가 좋아하는 것이 뭔가요? 죽어 버린 남자에 대한 그리움은 그 남자를 만나지 않는 한 치유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대상으로 그 그리움을 치유하게 됩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바로 산이에요. 애인이 좋아했던 산. 그래서 애인 대신 산을 보고 마치 애인한테 이야기하듯이 ‘오겡키데스카’라고 소리를 치게 되는 것입니다.

‘철도원’이라는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철도원’에는 일본사람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장인정신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 장인정신은 아내가 죽어도 딸이 죽어도 기차는 제 시간에 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내가 죽었을 때나 딸이 죽었을 때, 계속 눈만 바라보게 됩니다. 즉 이때 눈은 돌아오지 않는 아내나 죽은 딸을 형상화하는 것입니다. 결국 대상은 사라지고 그 대상을 대신할 대상물이 시각화되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감정의 억압의 반대편에는 일회적인 비장미를 추구하는 잔인한 야쿠자문화가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담뽀뽀’라는 영화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담뽀뽀’는 ‘이따미 주조’라는 일본의 유명한 코믹영화의 감독이 만든 것인데 음식에 관련된 영화입니다. 한 중년의 부인과 아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그 부인이 라면 장사로 성공하기까지의 모험담을 그린 영화로, 초반 십분 동안은 라면 먹는 도에 대해서 이야기 해줍니다. 이것이 일본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의 경지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는 한 마디로 어떤 한 대상에 대해서 지극한 정성과 관심을 들여 아무리 사소한 것도 대가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을 의미하죠. 이런 류의 영화로 우리 영화 중에 ‘신장개업’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혹시 보셨나요? 이 영화는 자장면에 관한 영화인데, 먹는 방법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장면을 빨리 맛있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담뽀뽀’라는 영화는 똑같은 면과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이면서도 주인공 아줌마가 국물은 어떻게 끓이고, 면은 어떻게 끓이고, 양념은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주면서 라면의 마스터가 되어 가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일본식 마스터는 모든 경지를 하나하나 빈틈없이 밟아 나가는 그 과정의 세부까지도 아는 사람인 반면, 우리나라의 ‘신장개업’을 통해서 본 마스터는 가장 단 기간에 맛있는 중국 요리에 대해 터득하는 사람, 즉 가장 기능적으로 가장 빨리 어떤 경지를 획득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일본 사람들은 우리 영화를 어떻게 볼까요? 일본 비평가들이 우리나라 영화는 감정 분출이 대단하다고 평해요. ‘서편제’에서 소리를 잘 하게 만들려고 딸의 눈을 멀게 하는 아비에 대해서 우리는 이해를 잘 하지만 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죠. 한국 사람들은 억압된 감정, 한과 슬픔이 판소리로 분출되는 것을 역동적이라고 느끼죠. 일본 영화에는 그런 식의 표현방법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역동의 미학을 정적인 아름다움으로 바꾼 영화가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들도 이런 영화를 만드는구나 하고 일본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했던 그 영화는 바로 ‘8월의 크리스마스’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굉장히 일본적인 영화입니다. 여기에서 일본적이라는 건 그 카메라 연출의 담담함과 영화에서 보여주는 슬픔의 깊이, 삶 속에 들어있는 죽음 등인데 이것들이 일본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일본에서도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쉬리’ 같은 영화들이 흥행하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일본 영화가 한국에 개방되면 문화적 역조현상이 심각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지만 기우였죠. 그것은 각 나라 사람들이 바라보는 영화에 대한 욕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미국 영화는 어떨까요? 미국 영화의 가장 큰 포인트는 바로 ‘맨(man)’ 영화예요. 예를 들어 ‘슈퍼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레인맨’, ‘할로우맨’, ‘말보로맨’ 등 수없이 많은 ‘맨’들이 나오는 게 미국 영화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나 일본 아이들은 ‘독수리 5형제’나 ‘로봇 태권 V'같은 합체 로봇을 가지고 놉니다. 이는 합쳐야 잘 산다거나 혹은 자기를 억눌러야 잘 산다로 해석이 돼요. 그러나 미국에서는 다양하게 공존하고 있는 문화들을 누를 수 있는 어떤 강력한 힘이 있어야 해요. 하나의 영웅을 요구하게 되지요. 그러한 영웅문화가 바로 미국의 문화라고 할 수 있어요. 이는 다시 자기 충족적인 문화가 돼요.

미국 사람들을 지배하는 원형적인 무의식은 독립하지 못하면 자기가 도태되고 못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존해야 한다는 것에 굉장한 부끄러움을 느껴요. 그래서 의존에 대한 두려움이 표면화되어 나타나면, 반대로 강한 것에 대한 추구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강해야 되냐 하면 무한대로 강해야 해요. 심지어 슈퍼맨은 너무나 강해서 지구를 거꾸로 돌립니다. 시간마저도 거꾸로 돌릴 수 있을 만큼 강해야 하는 거죠. 이러한 ‘맨’문화는 미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러한 정조가 우리 문화에서는 잘 납득이 안될 수도 있죠. 우리 나라는 패자 부활전의 나라 아닙니까. 사실 우리나라에서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을 빼고는 나머지 영화들은 흥행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또 다른 미국의 독립 추구적인 성향을 엿 볼 수 있는 장르의 영화로 ‘서부극’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서부극’이라는 영화의 원형은 각반문화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각반문화는 남자들이 각반을 차고 신천지로 모험이나 개척을 하러 나가야 한다는 의미의 용어입니다. 예를 들면 ‘모히칸 족의 최후’, ‘가을의 전설’ 같은 영화들을 보세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어때요? 고독하고 외롭지만 한 여자에게 안주하지 못합니다. 황야를 떠돌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안주하는 것이 용납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현대로 와서는 서부극이 효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나온 영화로는 ‘도망자’ 시리즈가 있어요. 도망 다니면서 자기 누명을 벗는 거죠.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에서도 똑같은 도망자 영화가 있지만 그 주인공이 절대로 스스로 누명을 벗지 못한다는 거예요. 프랑스 영화에서는 유능한 경찰이 나와서 억울한 누명을 벗겨 줍니다. 반대로 미국의 영화에서는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불리한 상황에 있다고 할지라도 주인공이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미국의 핵심적인 문화로 ‘와스프(WASP : White Anglo-Saxson Protestant)문화’라는 것이 있습니다. ‘와스프 문화’라는 것은 말 그대로 백인 남자를 뜻하는 거예요. 즉 앵글로 색슨족의 사람들이죠. 이런 것은 한 번도 깨진 적이 없었는데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이 일어난 후부터는 바뀌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에일리언’이나 ‘툼 레이더’ 같은 여성전사가 등장하는 영화들이죠. 그리고 흑인이 단독으로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합니다. 물론 예전에도 흑인이 영웅이 되는 영화가 있었지만 그건 주류 영화가 아니라 ‘블랙 익스플로테이션 무비’라고 해서 흑인들의 호주머니를 노린 흑인 관객 대상의 영화였어요.

이런 흐름과 다르게 1980년대 보수적인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면서 새롭게 보수적인 영화가 등장합니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인디아나 존스’ 같은 어드벤처 무비들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인디아나 존스가 여러 가지 모험을 통해서 사람들을 구해내죠.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요? 한 마디로 제 3세계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의 종교는 야만적이고 원시적으로 표현되고 그 사람들을 멋진 백인 남자가 구해낸다는 구조로 영화를 만든 거예요.

이러한 80년대 어드벤처 영화가 보수적이고 퇴행적인 모습을 보여 준 영화라면 90년대에 들어서면 이러한 미국의 퇴행적인 모습은 다른 방식의 영화를 통해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화장실 영화라 불려지는 영화들인데요, 지저분한 유머감각이 그 특징입니다. ‘아메리칸 파이’나 ‘메리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 등이 그런 영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어요. 이런 영화들을 보면 오줌을 마신다거나 정액을 무스처럼 발라서 머리를 넘기는 등 상식을 깨는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영화들이 보여주는 것은 도덕적으로 실추된 것들에 대한 빈정댐, 유머로밖에는 볼 수가 없어요. 퇴행하는 영화를 만들어 그런 것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영화를 분석하는 것은 쉬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문화라는 것은 가까이 있으면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 맹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벤치와 외국 벤치를 비교해 보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외국 벤치는 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벤치도 각각 앉을 수 있도록 칸막이가 되어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벤치는 그렇지 않아요. 그렇죠? 이렇게 자국의 문화는 자국의 문화적 환경에 젖어 있을 때는 어떤 맹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참 힘이 듭니다. 몇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최근에 한국 영화에서 나타나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변화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의 문화는 일본문화에 비해 훨씬 더 기능적인 문화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에 대해 외국 사람들은 순발력이 대단하다고 평가합니다. 5년 안에 축구장 열 개를 짓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거죠. 이런 순발력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부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순발력있는 대한민국의 성장의 이면에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그늘이 있었지요. 그리고 영화는 이러한 시대 변화를 계속 담아 왔습니다.

이를 알아 보기 위해 우리 영화에 나타나는 이상적인 남성상과 여성상의 변모를 찾아볼까요? 60년대 가장 인기 있는 남성상은 누구였을 것 같아요? 우리 엄마들이 좋아했던 남성은 바로 신성일씨입니다. 70년대로 들어오면 지금은 중년의 아저씨로 변한 한진희씨나 노주현씨를 좋아했지요. 90년대에 들어서는 안성기?박중훈?최민수?한석규씨 등이 차례로 인기를 끌다 최근에는 차태현씨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런 남성상들의 변화는 우리 의식의 변모를 알 수 있게 합니다. 남성상이 점점 귀여운 모습으로 변해 온 것이죠. 그렇다면 여성상의 변화는 어떨까요?

60년대 멜로 영화의 핵심은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영화입니다. 한 여자가 유부남을 사랑해서 애를 뱄는데 애도 뺏기고 남편도 뺏기는 영화죠. 이 영화를 보면 1960년대 당시 우리 사회에는 일부이처제가 심리적으로 존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런 멜로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는 계급차가 갖는 슬픔이에요. 두 남녀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인은 바로 계급의 차이가 되는 거죠. 70년대 들어오면서 호스티스를 다룬 영화들이 히트를 치게 됩니다.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등이 이런 영화였어요. 이러한 영화들은 호스티스를 다룸으로써 도시의 가장 주변부적인 인물이 가지고 있는 비애와 슬픔을 멜로적인 요소로 삼습니다. 또 70년대는 우리나라가 산업화되면서 농촌 사회가 무너지자 도시의 인구를 농촌 사람들이 메우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이러한 산업화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였던 것이 바로 호스티스를 다룬 영화들이라는 거죠. 당시의 시대적 욕망을 잘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 영화는 제가 볼 때 김기덕의 ‘하녀’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하녀는 공장 직공이었어요. 공장 직공인 여자가 음악교사인 남자의 집에 들어가서 그 남자의 정부가 되고 남자의 애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남자의 부인도 애를 갖거든요. 그러면서 빚어지는 기이한 이야기가 바로 ‘하녀’라는 영화의 스토리입니다. 이 영화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집 구조는 이층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층은 본부인이 점하고 있는 장소이고, 윗층은 하녀가 점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 이층에서 많은 사람이 추락을 하거든요. 유산을 하기 위해서 하녀가 추락을 하고, 애가 떨어지고, 남자가 추락을 하죠. 추락이라는 것 자체는 정신적 타락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나서는 점점 윗층과 아래층의 권력이 뒤바뀌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의 하녀는 여공 출신이고 부인은 미싱일을 하는 여성인데 처음에 부인이 미싱일을 한 것은 돈을 위한 것이지만, 하녀가 남편에게 ‘네가 한 것을 다 이야기하겠다’며 끊임없이 위협하면서 그 미싱일은 하녀와 남편에게 돈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그 의미가 바뀌고 주인과 하녀의 관계가 점차 바뀌어요. 결국 권력 관계가 역전이 되는 거죠.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본질적인 불안이 장르를 달리해서 나타나지만, 그 밑바닥은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호스티스 물은 산업화에서 소외받은 여성들의 신산한 삶이 멜로라는 장르에 들어가면서, 그 여자가 얼마만큼 희생당했고, 얼마만큼 이용당했는지 드러나면서 눈물나는 스토리로 펼쳐집니다. 그런데 그 똑같은 것이 호러 영화 장르 안에 들어오면 한 집안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상황으로 형상화된다는 것이죠. 그렇게 70년대 급속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벌어진 계급적인 차이 속에서 중심에서 밀려난 주변 사람들과 그 중심을 뺏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영화 안에 공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화를 읽어 보면 자국의 문화, 그 문화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독특한 집단 무의식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영화를 통해 변화하는 사회상을 감지할 수도 있구요.

마지막으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러분 정도의 대학생들이라면 유명한 감독이나 배우만을 따라 서 영화를 볼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작가주의 영화도 훌륭한 영화 읽기가 될 것이고 감독의 의식을 따라가면서 봐도 훌륭한 영화 읽기가 됩니다. 그러나 영화라는 것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것이기 때문에 작품성이 낮다고 평 받거나 아무도 안보는 영화라 하더라도 사회문화적인 방법으로는 재미있게 영화 읽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각 나라의 영화를 보면 그 나라사람들의 집단적인 무의식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양 사람들의 눈으로는 일본이나 중국, 한국의 영화들이 그 영화가 그 영화처럼 보이겠지만 개별적으로 영화들을 살펴보면 아주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이상으로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