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16대 대선과 한국정치의 미래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오늘은 16대 대통령선거와 관련된 주요 쟁점을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유신이 무너지고 5공 독재가 끝난 후 네 번째 대통령을 맞이하는 선거를 치르게 되는 것인데, 이번 대선은 앞서 치른 세 번의 선거과정이 학습의 결과로 반영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선거의 결과가 다음 대선에 국민들에게 한 단계 달라진 선택을 하게 해줄 것입니다. 긴 과정의 한 단계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금년 대선의 경우에는 이전에 치른 세 번의 선거와 비교해 볼 때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는 선거라고 봅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기존의 제도를 내부에서 무너뜨릴 여러 가지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른바 '노풍'이 그것인데, 이 바람이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정치를 오랫동안 괴롭혀 왔던 지역주의 정치구도가 무너질 것인가 하는 문제도 전망해 보겠습니다. 이제 지방선거가 한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고,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12월 대통령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한 것도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선 이후에 우리 정치가 어떻게 변할지, 특히 대선 과정에서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남북 관계가 어떻게 달라질지에 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가 학교 강단이라 학술적인 이론을 하나 들고 왔습니다. 간단한 건데요. 제가 자료를 나눠드리지 못해서 칠판에 잠깐 그려보겠습니다. 이것을 보시면 왜 우리 정치가 많은 국민들의 지탄과 비난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15년 동안 근본적인 변화 없이 굴러왔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유권자들이 각각 어떤 후보를 어떤 순서로 좋아하는지 제가 표시해 보겠습니다.

1번 유권자는 A후보를 제일 좋아하고 그 다음으로 B후보를 좋아하고 C후보를 좋아하고 D후보를 좋아합니다. 유권자 2번도 마찬가지입니다. 유권자 3번도 마찬가지입니다. 4번 유권자는 조금 달라서 B후보를 제일 좋아합니다. C후보를 그 다음으로 좋아하고 D후보를 세 번째로 좋아하고 A후보를 가장 싫어합니다. 5번 유권자도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6번 유권자는 C후보를 제일 좋아하고 그 다음으로 B후보를 다음으로 좋아하고 D후보를 세 번째로 좋아하고 A후보를 마지막으로 좋아합니다. 7번 유권자는 D후보를 제일 좋아하고 B후보를 그 다음으로 좋아하고 C후보를 세 번째로 좋아하고 A후보를 네 번째로 좋아합니다.

가상적인 상황입니다만 우리의 선거제도는 이같은 상황에서 선거를 할 때 최다 득표를 받은 사람이 당선되는 단순다수결제도입니다. 문제는 이 제도가 지금까지 많은 문제를 초래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지금과 같은 선거제도로 투표를 하면 누가 당선됩니까? 득표율 3/7으로 A후보가 당선이 되지요? 그러나 A후보의 득표는 과반수가 안 됩니다. 여러분, 얼마 전에 프랑스 대선 보셨죠? 우리도 선거제도를 조금 바꾸어 모든 후보들에게 다 투표를 한 다음 다시 1, 2등을 놓고 결선 투표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1차 투표에서 두번째로 많은 득표를 한 것이 B후보이지요. 그래서 C후보 D후보가 없어지고 A, B 두 후보가 결선 투표를 한다면 어느 쪽이 이기겠습니까? B후보가 이기게 됩니다. 결선 투표가 있는 대통령 선거제도와 없는 선거제도는, 이렇게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결과가 도출됩니다. 왜냐면 6번, 7번 유권자들의 경우에,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가 탈락해버려 차선의 후보로 B를 택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우리 선거제도가 꼭 좋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시행하고 있는 거고, 각 정당들도 이 제도를 기본으로 전략 전술을 짜는 거지요. 이 제도의 문제점은 1차 투표에서 최다득표만 하면 되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당선되는 데 필요한 정도의 유권자들에게만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면, 이같은 제도에서는 그 사람이 유리해지는 겁니다. 오히려 지지자의 충성심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게 되니까 가장 쉬운 것이 무엇입니까? 지역주의입니다. 특정지역에 일정 유권자를 가진 후보가 무조건 대선에 유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선거에서 지역주의를 부추길 만한 당연한 이유를 이 제도가 마련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B후보 입장에서 볼 때는 어떻습니까? A후보와 결선투표를 한다면 B후보가 쓸 수 있는 전략은 한 가지밖에 없어요. A후보를 싫어하게 만드는 네거티브(negative)전략을 강력하게 펼치기만 하면 B후보 쪽으로 표가 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선거캠페인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저질 인신공격, 근거 없는 폭로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표의 집결도를 높일 수 있는 정치 지도자가, 확실한 카리스마를 가지게 되면 3김정치처럼 특정 지역에서 완벽한 카리스마를 행사하는 특수한 지도자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지역 보스가 등장하는 것이지요. 전국적으로 골고루 지지를 받는 지도자는 대통령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런 정당은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특정 지역 한 곳에서라도 집중적인 지지를 얻지 못한 정당은 원내에 국회의원을 진출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권자들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후보를 찍는 것이 아니고, 당선권에 가까이 가 있는 후보 중에서 상대적으로 누가 자기에게 좋으냐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것을 전략적 투표라고 하는데 민주노동당 같은 경우, 현재 지지도가 5% 내지 10%에 육박해 있더라도 그것으로는 당선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유권자 측면에서 보면 민노당을 지지하는데 찍어봤자 당선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겁니다. 그래서 A, B후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A는 그가 싫어하는 후보이니, 하는 수 없이 B를 찍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판적 지지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할 수가 없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3김정치가 시작된 1987년 이후, 지금까지 당의 이름은 많이 바뀌었지만 기본적으로 똑같은 정당들이 똑같은 정책노선을 가지고 똑같은 선거운동 방법으로 선거에 임하는 낡은 정치가 계속 되풀이되고 있잖아요? 근본적으로 이 제도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왔던 정치과정으로 볼 때, 이 제도가 연속되는 한 새로운 정치 세력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정치가 정체되어 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제도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번 대선을 앞두고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이 제도가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정치구조가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이, 이번 대선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도는 그대로 존재하지만 그 제도를 떠받쳐 왔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몇 가지 현상이 나타나는데 첫 번째는, 지역정치 보스들의 퇴장이 임박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어릴 때 일이라서 잘 모르시겠지만, ‘3김정치 청산’을 내걸고 5년, 10년 전에도 많은 정치인들이 도전을 했습니다. 다 실패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3김이 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김영삼 전 대통령이 퇴임한지 4년이 넘었지만 부산에 안 내려가시고 상도동에 머물면서 엉뚱한 이야기나 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정치적으로는 시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들 관리도 못하는 사람이 무슨 큰 소리냐’는 소리나 들으시고, 어떤 개혁도 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입니다. 김종필 씨는 골프도 치고 아직은 건강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분의 행적을 보면 늘 양김 중 어느 한 분에 기대어서 살아온 분입니다. 지금은 기댈 데가 없으니 자동적으로 퇴장할 겁니다.

두 번째는 이른바 제왕적 집권제도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우선 여야 모두 당정분리를 했습니다. 대통령이 국회의원 공천권한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요즘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어느 당에서 대통령 후보가 나왔다고 하면 그 사람이 총재로 임명됩니다. 그러면 다음 번에 그 사람한테 공천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의 심기를 읽으려고 노력하죠. 총재가 아침에 당사로 출근할 때 눈도장을 찍으려고 줄을 서서 눈 맞춥니다. 요즘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또 국민 경선제라는 것이 도입되어서 돈이나 조직 가지고는 예비 경선을 치르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과거처럼 돈으로 조직을 먹여 살리며 내부경선 때 표를 받는 방식도 어려워졌고, 2004년부터 국회의원 공천도 상향식으로 하도록 양당 모두 합의하였습니다. 이런저런 면으로 비추어 볼 때 정당 내부에 변화가 오면서 제왕적 정당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세 번째는 정치지도자의 세대교체입니다. 이회창씨가 60대, 노무현씨, 이인제씨, 정몽준씨, 박근혜씨 모두 50대이죠?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 이른바 ‘노풍’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없었다면 지금 대통령 선거는 굉장히 재미없게 치러지고 있을 것입니다. 민주당의 예비경선인 국민경선은 이인제씨가 일방적으로 리드하다가 끝났을 거고, 본선에서 이인제씨와 이회창씨가 붙어 힘 겨루기를 하다가 끝났을 겁니다. 그런데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등장해서 민주당 경선판을 흔들고 있지 않습니까? 대선 여론조사를 보면 엎치락 뒤치락 비슷하게 되었는데, 요즘은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선거판을 가변적으로 바꾸어 놨습니다. 저는 이 ‘노무현 바람’이 먼저 시대정신의 바람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매체 환경의 변화, 유권자의 토대 변화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국민들이 어떤 시점에서 어떤 지도자에게 확 쏠릴 때는 그 사람이 과거와는 다른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지도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당선에 유리하면 지역적인 분열을 얼마든지 조장했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을 가부장적으로 지배하지 않았습니까? 개혁이라는 것도 자기 권력에 금이 가지 않는 한에서만 개혁을 했지요? 여러분, 지금 김대중 대통령이 아들들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는데 이 모든 사태가 어떻게 생긴 일입니까? 이것은 약속위반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에 특검제를 공약했습니다. 권력형 비리가 있을 때 권력자와 관계 있다면 일반검사가 아닌 특별검사로 수사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지요? 그러고는 도입 안 했습니다. 왜 안 했습니까? 권력을 잡고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고, 힘들게 권력을 잡았는데 뭐라도 해먹지 못 하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안 한 거죠. 특검제 도입으로 권력을 견제하지 못하니 대통령 주변인물들이 분탕질을 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것이 약속위반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는 왜 특검제를 도입하지 않았냐 하면 대통령 자신이 과거 비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최규선씨 테이프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우 김우중을 도와줘라.’, ‘큰공을 세운 사람이다.’라는 말들이 다 무슨 얘기겠습니까? 재벌 총수가 정권교체에 큰 공을 세웠다면 돈을 줬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특검제를 만들어서 권력형 비리를 캐다 보면 그 뿌리가 전부 대통령에게 닿아 있을 텐데, 자기 손으로 자기 손발을 자를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안 하게 되는 거죠. 이런 정치 행태에 대한 반발 심리가 ‘노무현 바람’으로 불기 시작한 것입니다.

초기 여론조사를 보면 노무현씨 지지자 중 절반 이상이 과거에는 ‘지지후보 없음’, ‘지지정당 없음’으로 대답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노무현씨 쪽으로 모이면서 여론지지도가 올라갔고, 이른바 여론에서 ‘무당파층’이라고 하는 계층이 여기 붙은 거죠. 이분들이 왜 ‘지지정당? 지지후보 없음’으로 대답했겠습니까? 지금 존재하고 있는 정당이나 정치지도자들이 다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확 갈아엎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노무현 씨에게 몰린 거지요. 잘은 모르겠지만 노무현씨라면 그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에 정서적으로 쏠린 거지요. 그리고 국민경선이 진행되면서 이회창씨, 이인제씨를 지지하던 사람이 하나 둘 넘어오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이회창씨와의 지지도도 두 배로 벌어졌던 거죠. 그러다 지금은 다시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겠다는 일종의 조정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옷가게를 예로 설명한다면 A라는 가게와 B라는 가게가 각기 다른 브랜드의 옷을 팔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전부 A브랜드의 옷이 좋다고 해서 거기서 옷을 샀는데, 갑자기 B브랜드가 신장개업을 하면서 거기 옷이 괜찮다고 소문이 난 거예요. 그래서 막 몰려가 그 옷 좋네, 참신하네 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A매장에서 파는 옷보다 좋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거든요. 그래서 A매장, B매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어느 쪽이 더 좋은지를 탐색하는 단계로 돌아온 것입니다. 대선이 본격적으로 치러져서 후보들 간의 직접적인 TV토론이 이루어지면, 그때는 두 브랜드의 옷이 한 매장 안에 걸릴 것이고 두 브랜드를 비교해 가면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게 될 겁니다. 그 때 가봐야 누가 이길지 알 수 있는 국면입니다. 여하튼, 노무현씨의 등장은 기본적으로 정치에 대한 환멸, 혐오 이런 것들이 기반이 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음은 매체 환경의 변화입니다. 인터넷과 관련이 있습니다. 노무현씨의 지지 기반을 보면 2, 3, 40대의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이 세대는 상대적으로 학력이 높고 3, 40대의 경우에는 중산층이 많습니다. 공통적인 것은 이들이 인터넷을 활발히 사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보도를 통해서 보셨지만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신문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이 신문사들이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노무현씨를 집중적으로 공격했어요. 예전 같으면 이렇게 2, 3일 공격하면 그냥 죽습니다. 어떤 정치인이든 견딜 수 없어요. 그러나 끄떡없을 뿐만 아니라 지지도가 더 올라갔지요? 왜 이런 현상이 생겼냐면 다른 신문이 가만히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선, 중앙, 동아가 같은 날 사설을 실으면 한계레신문, 경향신문이 전혀 다른 목소리로 사설을 내거든요. 신문 시장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좋은 분열이지요.

두 번째는 방송이 신문으로부터 독립을 했어요.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97년 대선 때만 해도 ‘한국논단’이라는 정체불명의 잡지에서 ‘사상 검증 토론회’라는 주제를 가지고 후보들을 불러냈고, 방송 3사는 생중계를 했지요. 그런 코미디가 벌어졌던 것이 5년 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방송사들이 신문사들과 함께 하지 않지요. 공동주최도 안 합니다. 왜냐면 같이 해봤자 실속도 없고, 폼은 자기네들이 다 잡는다 이거죠. 방송이 종이매체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과정이 4, 5년간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에서 일방적으로 보도를 하더라도 방송 쪽에서 다른 보도를 하면 그 영향이 반감되는 거지요.

문제는 인터넷입니다. 인터넷의 특징은, 정치적인 면에서는 정치 정보의 생산과 유통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합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사용인구가 2천 2백 만이라고 하는데 7백 만 이상이 초고속 인터넷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통신접속료로 한 달에 2, 3만원 정도만 내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얼마든지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거죠. 정치 정보를 어디서나 획득할 수 있는 겁니다. 또 자기가 만든 정보나 획득한 정보를 유포시키는 데도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그냥 클릭만 한번 하면 되거든요. 정치 정보의 생산, 유통 비용이 거의 제로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자기와 같은 정치적 의사를 가진 사람을 찾아서 조직화하려면 무지하게 많은 비용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지요? ‘노사모’를 예로 들면, ‘번개’하자고 인터넷에 띄우면 5백명, 천명이 그냥 모입니다. 조직화하는데 드는 비용이 극소화 된 겁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기존 정당조직에 의존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신문과 언론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체가 굉장히 다양화되었고, 어떤 매체도 일방적으로 여론을 조작하거나 끌고 나가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종이신문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버틸 수 있는 구조가 된 겁니다. 이것이 ‘노무현 바람’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봅니다.

다음으로 유권자 토대의 변화입니다. 3, 40대는 대부분 유신 치하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들 유신 세대와 20대 신세대가 연합군을 만든 것이 바로 ‘노무현 바람’입니다. 노무현씨의 지지 기반을 보면 학력이 높을수록 지지도도 높습니다. 소득수준은 월수 이백 만원 내외에서 그렇고요. 연령적으로는 30대와 20대에서 가장 높습니다. 이회창씨 지지도는 거꾸로입니다. 연세 많으신 분들, 소득수준이 아주 높거나 아주 낮은 분들, 학력 수준이 일반적으로 고졸이하로 떨어지는 분들, 이런 분들이 이회창씨를 지지합니다. 과거에는 고학력 중산층의 인터넷 사용자가 3, 40대쪽으로는 비중이 많지가 않았습니다. 지난 5년 동안 비중이 늘어났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30대의 경우, 특히 40대도 마찬가지지만 유신체제와 광주항쟁, 또 5공정치를 겪으면서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굉장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회창씨와 노무현씨를 비교하면 탈권위적인 면에서 노무현씨가 돋보이기 때문에 이쪽으로 쏠리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정신, 매체 환경변화, 유권자 베이스의 변화 때문에 ‘노무현 바람’이 생긴 것입니다.

다음에는 이 바람이 과연 노무현씨 자신이 주장하듯, 지역구도 정치를 해체시킬 수 있을 까 하는 건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직은 단정짓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지역구도 정치가 해체 또는 붕괴될 조짐은 보이고 있습니다. 몇 가지 조짐이 나타나는데, 세 가지 정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정당의 지역적 지지 기반과 후보의 출신지가 불일치합니다. 민주당은 주로 호남 쪽에 지역적 지지기반을 두고 있는 정당인데 노무현씨는 영남 출신입니다. 반면 이회창 씨가 이끄는 한나라당은 영남에 중요한 지역적 기반을 두고 있는 정당인데 이 당의 후보는 비영남 출신입니다. 과거처럼 정당의 지역적 기반과 후보자의 출신지역이 일치하지 않는 지금 상황에서는 지역주의적인 투표 형태가 와해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두 번째는 정책적 차이가 점점 더 선명하게 부각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김대중 정권 아래서 4년 동안 진행되어온 일인데요. 우선 대북 정책에 대한 양당의 차이가 굉장히 크죠. 그 다음에 사회복지 정책에 대한 차이도 큽니다. 한나라당은 민정계가 주도하는 보수정당으로 가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지금 반쪽자리 정당입니다. 그 기반이 지역적으로 한쪽으로만 쏠려 있지요. 그래서 만약 노무현씨가 주장하는 신 민주연합이 성공한다면 민주당은 전국적인 기반을 갖은 리버럴한 자유주의 정당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여기에다가 민주노동당이 울산에서 송철호 변호사를 내세워 시장선거에서 선전하면서 지금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자민련을 지지하시는 분들은 서운하시겠지만, 자민련은 홀로 설 만한 무엇인가가 없는 것 같습니다. 큰 틀에서 볼 때 이런 식으로 보수정당, 자유주의정당, 진보정당으로 정책적 대립구도가 선명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역주의적 정치구도는 해체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최근 유권자의 후보지지 동향을 보면 비지역적 특성에 따른 정당지지도 분화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거를 보면 영남사람들은 한나라당을, 호남 사람들은 민주당을 지지했습니다. 서울에 사는 호남사람들은 민주당, 영남출신은 한나라당을 지지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여론조사를 해보면 지역에 따라 투표를 하겠다는 사람은 백명 중에 한명도 안됩니다. 유권자들의 출신 지역을 제외하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 연령, 학력, 소득입니다. 그런데 연령이 낮을수록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연령이 높을수록 한나라당을 지지합니다. 또한 학력이 높을수록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낮을수록 한나라당을 지지합니다. 중산층은 민주당, 소득의 하위층과 상위층은 한나라당으로 갈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유권자들의 객관적인 처지에 따라 서로 다른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이것 또한 지역구도를 약화시키는 영향으로 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흐름들이 실제 선거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선까지는 아직 8개월이 남았기 때문에 그 전에 치르게 될 지방선거와 8월에 치르는 열 군데 정도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일단 치러보면 어떤 흐름이 나타나리라고 봅니다. 지방선거는 전반적으로 한나라당이 우세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최대 관전 포인트는 서울, 경기 두 군데와 부산, 경남 두 군데가 될 것 같습니다. 서울,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제가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일전에 노무현씨가 김영삼씨를 만나서 김영삼씨에게 선물받은 시계를 보여주었지요? 이 사람이 추진하고 있는 부산, 경남 지역의 국지적 신민주주의 연합, 이것을 성사시킬 경우에는 부산시장, 경남 도지사 선거가 최소한 박빙의 승부로 가든가 어느 한 군데에서 민주당이 이길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만일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되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지역주의 구도가 무너질 거라고 봅니다.

잠깐 여담 삼아 말씀드리면, 저도 인터넷을 많이 하지만 20대들에게 이번 프랑스 대선을 주의깊게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거기서 국민전선의 르펜이 2등을 했지요. 르펜이라는 사람을 보통 극우파라고 얘기합니다. 대선 자체만 놓고 보면 본선에 가서도 득표율을 거의 못 높였죠. 모든 좌파 정당이 다 르펜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서 시라크에게 표를 몰아주었습니다. 그래서 8 : 2로 승부가 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르펜이 왜 그 정도의 지지도밖에 받지 못하면서 결선 투표에 진출했는가 하는 것인데, 그것은 무관심과 참여거부에 따른 결과입니다. 좌파가 극우파보다 훨씬 강함에도 불구하고 좌파 지지자들이 투표에 참여를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최악의 사태를 초래한 것이 이번 프랑스 대선입니다. 20대들의 투표율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청춘사업도 해야 하고, 취업준비도 해야 하는 등 고달픈 일이 많겠지만 투표하는 날 투표하러 안 간다면 여기 나와서 얘기하는 사람도 별 재미가 없겠지요? 20대의 투표율이 낮으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아세요? 대한민국의 정치는 세대 균형이 파괴되어 있습니다. 유권자 중 2, 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60%예요. 그런데 여러분 2, 30대 중에 장관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없죠? 국회의원 중에 2, 30대의 정서와 문화에 부합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열 손가락으로 꼽아도 남을 정도입니다. 청년 세대를 대변하는 정치가가 지나치게 적다는 것은 사회생물학적 균형이 파괴되었다는 이야기지요.

대한민국 정치는 기본적으로 노인정치입니다. 대통령이 80대니까 70대들이 전부 청춘이지요. 70대면 조용히 시골에 가서 인생을 정리하든가, 건강이 허용된다면 골프장이라도 가든가, 그것도 어려우면 어디 낚시터에 가서 소일이라도 해야 정상 아닙니까? 그런데 70이 넘도록 이권에 개입하면서 40대는 아예 애로 봅니다. 그 분들도 40대에는 대통령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1971년에 김영삼씨, 김대중씨, 다 그랬죠? 이분들이 지금 80이 되어서 대통령에 도전하는 40대 후배들을 애 취급합니다. 고리타분하지요? 보고 있으면 짜증나고 한숨 나고 그렇습니다. 이것이 다 젊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지금 국회의원선거도 보십시오. 선거구별로 인구편차가 4 : 1입니다. 시골에서는 한 명이 국회의원 한 명 뽑는데, 서울에서는 네 명이 합쳐야 한 명 뽑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거의 서울에 올라와 살지요? 시골에는 어떤 분들이 남아 있습니까? 나이 드신 어르신들 아닙니까? 어르신들 열 명이 국회의원 한 명 뽑는데, 도시에서는 사십 명이 한 명을 뽑는 거예요. 그러니까 국회에 가보면 냄새가 나지요? 투표하러 오라고 봉투 주고, 영감님들 온천 가실 때 콜라나 사이다 넣어 드리고, 그렇게 열심히 하면 국회의원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 정치 짜증난다고 인터넷에 욕 많이 하지요? 투표장에 가지 않는 20대들은 정치를 욕할 권리가 없어요. 왜냐하면 투표를 안 하는 행위가 이같이 최악의 결과를 낳는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이번 대통령 선거나 지방 선거에서는 기권하는 일이 없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는 누가 이길까요? 참 예측하기 힘든 일인데요. 누가 이길지를 점쳐볼 수 있는 몇 가지 변수가 있지요. 노무현씨가 영남에서 35%를 득표하면 누가 이길지 모릅니다. 약 30%선에서 득표를 하면 질 것이고 이회창씨가 이길 것입니다. 노무현씨가 영남에서 35%를 확실하게 넘기면 이회창씨가 이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관측입니다. 이런 식으로밖에 분석할 수 없는 일이 안타까운데, 여하튼 지금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노무현씨가 지금 추진하고있는 신민주연합은 YS와의 협력인데, 이것이 성사되면 노 후보는 아마 충분히 40%를 영남에서 득표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것이 첫 번째 문제입니다. 이 사람이 지금 추진하고 있는 대선 전략을 보면 아주 간단합니다. 지역적으로는 영호남 연합, 동서화합이라는 모태가 거기 실려 있습니다. 비영호남지역의 2, 3, 40대 개혁적 유권자에 의해 대선에서 이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한나라당은 이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두 가지 전략을 쓰고 있지요. 하나는 계속해서 신민주연합을 과거 회귀적이라고 공격하지요. 자기네들도 안상영씨, 서청원씨 보내서 YS한테 계속 절합니다. 그쪽으로 못 가게 하려고요. 가게 되면 굉장히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이회창씨가 요즘 장급 여관에서 자고 환경미화원들과 거리청소도 하고 운전기사들과 해장국도 먹고 하는데, 이것은 서민풍모를 흉내내는 겁니다. 개혁적 유권자들의 노무현에 대한 무조건 지지를 완화시켜보겠다는 전략이지요. 피차간에 수는 뻔한 것이고, 그 뻔한 수를 가지고 서로들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영남지역에서의 신민주연합의 성사여부가 대선의 승부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인 것은 분명합니다.

세 번째는 지금 한나라당이 민정계 구도를 완전히 개편하고 있는데 한나라당 안에 김영삼 씨가 가져다 바쳤던 이른바 민주계가 있지 않습니까. 이들과 개혁세력들이 계속 대선 때까지 한나라당 안에 머무를 것이냐 하는 문제.

네 번째는 김대중 대통령 아들 처리를 둘러싸고 민주당 내부가 균열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김홍일 의원의 의원직 사퇴 요청 때문에 조금 시끄러운데, 이것이 심화되면 경우에 따라서 민주당 내부가 쪼개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섯 번째는 박근혜씨, 정몽준씨. 혹은 이인제씨가 제 삼의 후보로 등장하는 것에 관한 것인데, 그것이 얼마나 파괴력이 있을지도 하나의 변수입니다.

마지막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연령별 투표율이 얼마나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2, 30대의 투표율이 낮으면 노무현씨가 이기기 어렵고, 2, 30대의 투표율이 높으면 이회창씨가 이기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이번 대선의 그림입니다. 그래서 누가 이길 것인가? 저는 모르겠습니다. 양쪽 모두가 지금 명확한 전략으로 선거전에 임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전략을 얼마나 무너뜨리느냐에 승패가 달려 있다고 봅니다.

또 하나, 이번 대선 끝나고 나서 정치가 좋아질 것이냐, 혹은 남북관계가 잘 풀릴 것이냐에 관련된 문제인데요. 지금 당정분리하고 상향식 공천제도하고 국민경선 도입하고 그 다음에 당내에 회계투명성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따라서 여야를 막론하고 남은 과제는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제도적으로 정당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당원들의 구성문제를 어떻게 개선하느냐는 문제입니다. 양당 모두 정당의 기반이 되는 당원을 지역적으로 넓히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청년, 여성, 화이트 칼라, 전문직, 대학생 등등의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활동하면서, 남들에게 당원임을 자랑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 하는 것이 한국정치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개혁과제로 남아 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남한도 북한도 50년 세월 동안 전체주의 국가였습니다. 최근 신문에서 박근혜씨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이 환대를 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문화적으로는 동일한 종에 속하는 사회를 이끌었던 장군의 아들, 딸이 만나서 화기애애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는 참 많은 감회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둘러싸고 일부 호사가들은 김정일이 한국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를 합니다. 북한의 존재는 이미 대한민국 정치의 내생 변수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과거에도 그랬습니다. KAL기를 정말 이북에서 폭파시켰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건이 선거에 이용된다면 어느 쪽이 유리할까요. 당연히 그 당시 민정당이겠죠? 그렇다면 북한은 KAL기를 폭파시킴으로써 노태우 씨를 당선시키기로 했다고 설명할 수 있겠죠? 과거 총선 때에 별 이유도 없이 비무장지대에 30명이 총 들고 들어와서 이쪽을 갑자기 공안정국을 만들면서 여당이 표를 가져갔잖아요?

북한은 오래 전부터 이미 대한민국의 정치적 내생변수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북한이 교착상태에 있던 남북 상태를 올 봄부터 왜 갑자기 풀었겠습니까?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될 줄 알고, ‘대통령 바뀌면 새로 거래하자. 김대중 대통령 요즘 말발도 안 서는데 협상해서 합의해 봤자 지켜지지도 않는다. 차라리 차기 대통령과 협상하자.’ 뭐 이렇게 생각하다가, 갑자기 ‘노풍’이 부니까, ‘아 저거 봐라. 저 사람이 대통령 될지도 모르겠네. 그럼 풀어 줘 볼까.’ 이렇게도 해석한다는 겁니다. 제가 그렇게 해석한다는 것이 아니라, 언론인들이 그렇게 해석합니다. 초반부터 북한은 남한의 내부 정세를 주도면밀하게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저 선거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이 우리의 전략에 유리한가를 판단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판단 때문에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욕할 이유는 없어요. 왜냐하면 김정일이 시킨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 변수를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가 예의 주시하고 있고, 어떻게든 북이라는 존재를 선거에 유리한 쪽으로 작용하게끔 하겠죠.

북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원래 북한의 정책이라는 것은 예측 불가능을 주무기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알 수가 없어요. 좀 더 두고보면 알 수 있을지 모르지요. 그러나, 세간에서는 이회창씨가 집권하면 대북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이 많아요. 김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대북 정책은 잘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우리 국민들이 많이 걱정을 하는데 저도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회창씨가 자기 말을 그대로 지키는 믿을 만한 정치가라면 대북 관계는 파탄이 날 것입니다. 왜냐면, 이회창 후보가 지금까지 했던 말을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대로 지킨다면 대북 관계에 평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표를 얻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다가, 대통령 되고 나서 정보를 면밀히 검토해 보니까 생각에 약간의 부족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고 얘기하면서 이북에게 잘 지내보자고 할 수도 있는 거지요. 그래서 이회창씨가 자기 말을 잘 지키는 사람 같으면 걱정을 하겠지만, 별로 그런 것 같지가 않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걱정을 안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노무현씨가 될 경우엔 어떻게 될까요? 남북교류는 지금처럼 그렇게 가고, 가속도가 조금 더 붙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되면 문제가 조금 심각해집니다. 우선 국내적으로 정부와 민간 통일운동 단체 사이의 대립과 긴장이 고조될 겁니다. 이럴 경우에 제가 걱정하는 것은, 이회창 총재께서는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제압하려고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사회는 다시 한번 공안정국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점이 다소 우려가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회창 후보는 자기 말에 대한 신의를 지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희망을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선거라는 것, 민주주의라는 것은 학습과정입니다. 러닝 바이 두잉 (learning by doing), 실천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그런 학습과정을 통해서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것인데, 우리는 불과 15년이라는 학습과정을 통해서 굉장히 빠르게 우리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이런 것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권위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헌법 읽어 보셨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렇게 돼 있지요?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것, 종국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유권자 개개인입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독립적인 개인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대한민국은 굉장히 오랫동안 권위주의에 시달렸죠? 북한 같은 경우는 장군님이 오셔서 통치한 나라거든요. 계몽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습니다. 남한 사회는 이승만이 다스리다가 쫓겨나고, 조금씩 민주화과정을 거쳐서 지금까지 온 나라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1960년 4?19혁명, 광주항쟁, 1987년 민주항쟁 이런 것들을 거치면서 서유럽사회의 시민운동을 비슷하게 경험해 온 사회입니다.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라는 것은 탈권위주의, 반권위주의, 그러니까 모든 부당한 권위에 대한 반발을 기본으로 하는 것입니다. 부당한 권위에 대해 승복하지 않는 것이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민주주의가 이렇게 발전하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가, 우리는 철저하게 반권위주의 혁명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대학생들이 과거 거시적인 차원에서 정부를 상대로 싸움을 해서 이겼습니다. 그렇지만 학생운동 내부는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학생회장님이 뜨시면 90도로 경례하는 풍토가 있었습니다. 학생들 간에는 또 어떻습니까? 겉보기에는 굉장히 자유분방할 것 같지만 선후배 관계를 보십시오. 선배가 부당한 요구를 할 때 과감하게 거부합니까? 잘 못하지요. 하지만 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정당화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강제에 대해서는 강하게 그것을 뿌리칠 줄 알아야 합니다. 거시적인 면에서 정치를 비판하고, 국가를 비판하고, 그 잣대를 마찬가지로 우리 일상에 적용하는 일이야말로 대한민국을 합리적인 사회,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으로 발전시키는 일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