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23년간 MBC에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2001년 5월에 iMBC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제가 처음 ‘21C keyword’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초청 받았을 때 키워드를 ABC, 즉 액세스(Access), 브랜드(Brand), 커뮤니티(Community)로 정리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대선 정국을 접하면서 다른 주제로 강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의 본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이 쓰는 ‘말’에 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요즘 신문지면에는 정치인들에 관한 말이 많이 보도되고 있고, 그 말은 다시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는 불신이 뿌리 깊게 박혀 있습니다. 그 불신의 뿌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저는 우리가 쓰는 말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말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신뢰의 수단이어야 할 말이 오히려 불신을 조장하는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불신은 바로 우리가 쓰는 이 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말을 수단으로 삼는 여러 직업들이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대표적이죠. 최근에 저는 이런 농담을 들었습니다. 경기도 일원에 있는 농로에서 경운기와 국회의원이 탄 승용차가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국회의원이 탄 차가 급커브를 돌다가 벼랑 밑으로 굴렀습니다. 사고 신고를 받고 온 경찰관이 사고 현장에 와 보니, 농부가 벌써 국회의원을 땅에 파묻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경찰관이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저 국회의원이 죽은 걸 확인하고 묻은 겁니까?” 그러자 농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기 말로는 살았다고 하는데 국회의원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그래서 농부는 국회의원을 파묻어 버린 겁니다. 제가 이 얘기를 한 정치인에게 들려줬더니 재미있다고 웃기만 하더군요. 정치인 입장에서 웃고 말아야 할 얘기입니까? 오히려 제가 내심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 말을 수단으로 삼는 직업에는 성직자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 제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천국을 가면 첫날은 융숭하게 대접을 한답니다. 만찬을 베풀어 주는데 세상에서 그 사람이 살아온 대로 대접을 해 준다는군요. 만일 여러분 중에 선행을 많이 쌓으신 분이 있다면 풀 코스로 대접받겠죠. 아무튼 모 교회 장로님이 죽어서 천국을 갔답니다. 내심 이 장로님은 대단한 대접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기껏 자장면 한 그릇에 군만두 두 개가 나온 겁니다. 그래서 장로는 따졌답니다. 교회에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는지 역설했죠. 그랬더니 천사가 “당신은 이 정도 대접도 고마워해야 한다. 당신 교회 목사는 어떤지 알아? 자장면도 못먹고 배달 나갔다.”고 하더랍니다. 이 얘기 역시 우리 시대에 말을 수단으로 삼는 직업에 대한 냉소적인 농담이죠.

또 말을 수단으로 삼는 직업에는 교수가 있습니다. 어느 날 교수들이 경비가 부족해서 해외로는 못 가고 제주도에서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이틀간 세미나를 계속했는데 도무지 진전이 없었습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그 이유를 살폈습니다. 결국 조교들을 한 명도 데리고 오지 않은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조교 없이는 세미나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거죠.

말을 직업으로 삼는 분들의 권위가 사실 많이 떨어졌습니다. 다는 직업을 흉본 것 같아 죄송한데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사에 대한 불신도 이만저만이 아니죠. 기자들에게는 늘 ‘불가원 불가근’이란 말이 따라다닙니다. 너무 멀리 있어도, 너무 가까이 있어도 득 될게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저는 언론에 종사하면서 그동안 성공한 많은 사람들을 보아 왔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그들은 대부분 말을 잘 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명문대 출신들이 쓰는 단어 수는 1만 2천 개 정도 됩니다. 그러나 미국 최하층민 중에는 약 3백 단어로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 쓰는 단어 수나 어휘 구사력에 따라서 소득, 생활수준, 사회적 지위, 사고력과 인격 등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언어는 인간 존재의 구조물이라는 얘기죠. 또 언어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는 존재의 한계다.’ 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유하는 만큼 존재한다는 얘기죠. 그리고 철학의 시조인 데카르트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명제의 기본은 바로 말입니다. 말로 사유하는 겁니다. 서양 학문은 말의 학문입니다. 플라톤에서 칼 포퍼까지 이어지는 학문의 줄기에는 크게 두 가지 조류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깨달음과 진리를 강조하는 조류입니다. 또 하나는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아는 것을 강조하는 조류입니다. 이는 프로타고라스가 ‘우리의 지식(앎)이란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아는 것이다’라고 정의한 말과 통하죠. 서양 학문은 프로타고라스의 영향으로 이른바 3학 - 논리학, 수사학, 문법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서양에서는 이 3학과가 여전히 중요한 교양 강좌입니다. 이렇게 서양 학문이 말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시사합니다.

동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유?불?선 중 도가에서는 깨달음이나 지혜를 강조했습니다. 불가에서는 언어를 초월해야 한다는 선가의 도도한 흐름이 있긴 하지만 언어도단, 말이 끊어진 길에 이르기 위해 역시 말을 중시합니다. 유교에서는 도가, 불가와 다르게 프로타고라스적인 학문과 맥을 같이합니다. 유학자들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연구했습니다. 논어 마지막 장에는 ‘不知言不知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을 모르면 사람을 알 수 없다는 것이죠. 유가에서는 당대의 논객이 되어 입신양명하는 것을 최고로 삼아왔던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께서는 왜 공부를 합니까? 왜 대학에 들어오셨죠?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소명의식을 가지고 계십니까? 대학에 들어오신 이상 언어에 대해 철저하게 이해하고 습득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 인사들이 말을 좀 더 명확하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자 초년 시절 많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가령 제 질문에 대한 답변 시간을 10초라고 제한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말을 하더군요. 그 중에서도 교수님들이 가장 심하더군요. 10초라고 말씀드려도 30분 정도 강의를 늘어놓습니다. 그래서 너무 길다고 부탁하면 약 10분 정도로, 다시 부탁하면 약 5분 정도로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도 너무 길다고 한번 더 부탁드리면 난색을 보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인터뷰를 마치고 제가 알아서 10초 분량으로 편집하여 기사를 내보내죠. 그럼 곧장 그 분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내가 말하려던 건 그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 부분만 기사로 내보내느냐고 서운해 하거나 심하게 항의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죠. 그럼 중요한 부분만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또 인터뷰를 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을 마침표 하나 없이 이어나갑니다. ‘-고’, ‘-하며’ 등으로 말을 이어가서 어디서 끊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인터뷰를 해 보면 그 곳 사람들은 우리와 다릅니다. 학자이건 일반인이건 간에 오히려 제게 인터뷰를 어떤 내용에 쓸 것인가, 몇 초 동안 말하기를 원하느냐를 먼저 묻습니다. 그리고 제가 요구한 시간에 맞춰 대답을 합니다. 짧은 말로 자기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할 수 있는 것은 능력입니다. 저는 리더쉽이 말 한마디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폭 세계에서는 주먹이 센 자가 리더가 되겠지만,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통상 말 잘하는 사람이 조직의 리더가 됩니다.

미국 41대 대통령 조지 부시와 인터뷰 할 때입니다. 당시 부시는 민주당 후보인 마이클 듀카키스라는 사람과 선거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선거는 백중세를 이루다가 말 한마디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조지 부시의 선거 캠페인에서 세금을 더는 안 물리겠다는 여섯 단어로 분위기를 몰아간 겁니다. ‘Read my lips, No more taxes!' 이 여섯 단어가 승패를 갈랐습니다. 그러나 부시는 이 말로 꼬리를 잡혀 다음 선거에서 이라크 전을 위세당당히 치르고도 빌 클린턴에게 졌습니다. 실제 재임 중 이 약속을 안 지켰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지금 여야 모두 경선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의 메시지는 매우 불분명합니다. 한국 정치인의 능력은 누가 얼마나 말을 모호하게 하는 데 있는가 봅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리고 무슨 말인지를 몰라야 말의 수명이 길어요. 이렇게 말이 불분명한 이유는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평소 마음에 담겨있는 대로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사회가 좀 더 분명하게 말하고, 말을 책임 있게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말을 항상 검증해야 합니다. 더욱이 그것이 리더의 말이라면 좀 더 검증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말은 공동체의 뿌리이며, 공동체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의 모든 민족 중 가장 공동체 의식이 강한 민족이 유대 민족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의 언어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공용어로 쓰는데 지금도 아이들에게 모세 5경(Five Books of Moses)을 외우게 하다시피 합니다. 모세 5경은 구약성서의 맨 앞에 있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 5종의 책으로 거기에는 수만 단어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언어 실력은 탁월합니다. 유대 법률가들은 다른 법률가들보다 월등한 실력들 갖추고 있죠. 또한 ‘탈무드’라는 수 천 년 동안의 법적 분쟁의 기록을 전부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곧 민족적 자산이죠. 부모의 말을 가장 잘 듣는 아이들도 유대인입니다.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다가도 부모의 한 마디에 조용해집니다. 이건 세대 간에도 언어가 크게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저와 여러분 세대, 여러분과 그 밑의 세대들은 언어가 단절되어 있습니다. 언어가 전승되지 않으면 사상은 전승되지 않습니다. 사회의 문화, 관습 또한 모두 단절됩니다. 이른바 세대 간 단절은 언어의 단절입니다.

여러분은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고 앞으로 그 이상의 교육을 받으실 분들입니다. 그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언어를 통하여 더 성숙하고 성장하고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말은 자유의 또 다른 힘입니다. 헬렌 켈러를 가르친 건 앤 셜리번 선생님이었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이 아이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앤 셜리번은 헬렌 켈러를 우물가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계속 오른손에 차가운 물을 끼얹습니다. 영문을 몰라하는 아이의 왼손에 단어를 씁니다. ‘water’라고. 헬렌 켈러는 자서전에서 그 때를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나는 비로소 그때 무엇인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시원한 느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환희와 기쁨 가운데로 점점 더 빠져들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자유함에 이르렀다.’ 여러분이 쓰고 있는 단어가 없다면 개념은 갇히고 응축되어 육신 전체가 묶여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언어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성서의 요한복음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학적으로는 예수의 인성, 신성, 초월성을 나타내는 표현이지만, 이는 또한 그만큼 말이 강력한 것이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에게 허락한 일이 사물에 이름을 짓게 한 것입니다. 언어를 통해 사물은 존재하고, 형상을 갖게 됩니다.

저는 말이 형상보다 앞선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적인 언어로 인해 폭력적인 집단이 생기는 겁니다. 폭력적이라서 폭력적인 언어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폭력적인 언어를 쓰면 폭력적인 인간이 되는 겁니다. 영어 단어에 ‘퍼스널리티(Personality)’ 즉, 인격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그 어원은 라틴어로 ‘페르소나(personare)’입니다. ‘per’는 ‘～을 통하여’라는 뜻이고, ‘sonare’는 ‘말하다’라는 뜻입니다. 곧 소리를 통하여 말하면 인격이 된다는 것이죠. 인격은 여러분들의 말이 쌓아놓은 구조물이고 축적된 결과물입니다. 여러분은 말의 소산이고 말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말이 끊임없이 우리를 통과하면서 우리의 인격을 만드는 겁니다.

우리 뇌세포 수는 좌?우뇌에 약 500억 개씩 합쳐서 약 천억개입니다. 이 뇌세포는 스물 다섯 살을 기점으로 해서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하루에 2, 30만 개가 파괴됩니다. 그리고 뇌세포는 한번 파괴되면 재생되지 않습니다. 인체 내 많은 세포들은 세포대사 주기에 따라 끊임없이 재생되고 파괴되는데 뇌세포만은 한 번 파괴되면 재생되지 않죠. 그래서 뇌세포를 소중하게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뇌세포를 일생 동안 다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많이 쓰는 사람이 약 10%를 쓰죠. 결국 뇌세포가 하루에 2, 30만 개씩 죽어간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뇌세포에는 시냅스라는 것이 약 천개 이상씩 돋아납니다. 시냅스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뇌 용량이 커지고 머리도 좋아집니다. 바로 이 시냅스를 자라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언어 훈련입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많은 언어를 사용하고 어휘를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어의 특질을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죠. 언어는 입 밖으로 나왔다 해서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입을 떠난 말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영원히 존재합니다. 그 주파가 약해서 관측이 안 될지언정 이 말은 영원히 우주 끝까지 퍼져나갑니다. ‘남아일언중천금’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말은 천금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는 표현을 믿는다면 그 형상과 본질과 특질을 가장 닮은 것은 말입니다.

말을 물리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어떨까요? 오늘날 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물질의 기초는 파동과 입자입니다. 파동은 비존재이고 입자는 존재입니다. 물질은 존재일 수도 있고 비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그 존재이자 비존재인 속성을 가장 강하게 지니고 있는 것이 언어입니다. 언어는 파동이자 입자입니다. 바로 생명입니다. 우리의 말이 곧 우리의 생명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말을 우리가 쓰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가지고 천한 농담이나 하고 쓸데없는 말로 버려서야 되겠습니까? 앞으로 여러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영향을 세상에 끼칩니다. 일생동안 한 사람이 약 만 명 이상에게 영향을 준다고 하더군요. 여러분들 또한 그런 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언론이나 권력은 바로 이 말을 수단으로 유지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좋아하지 않는 전직 대통령 세 분을 모두 취재했었습니다. 그들 중 누가 말을 잘하는지 아십니까? 대통령쯤 되면 다들 말을 잘 합니다. 예전에 YS와 DJ가 대통령이 되기 전, 그들이 토론을 하면 토론장에선 DJ가 압도적으로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YS가 토론장을 나가면서 ‘씰데없는 소리’라고 한 마디 하면 토론장에서의 DJ 말은 아무 것도 아닌 게 됩니다. 그러니 결국 YS가 먼저 대통령을 했죠. 또 서울시장직을 놓고 박찬종씨와 조순씨가 경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박찬종씨는 굉장히 똑똑하고 머리가 좋은 분인데, 당시 서울시 시정자료에 대해 많은 자료를 암기 했죠. 조순씨는 서울대학교에 계시면서 경제학원론 책을 쓸 정도로 학계에서도 알아주는 분입니다. 토론장에서는 박찬종씨가 압승을 했습니다. 그런데 투표 결과는 조순씨의 승리였습니다. 그 때 저는 정치인들 간의 토론이 국민의 판단에는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투표 결과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아십니까? 조순씨의 이미지 때문이었습니다. 국민들은 달변인 박찬종씨보다는 산신령같이 생긴 조순씨에게 믿음이 갔던 겁니다. 결국 아무리 달변이라도 믿음이 가야 한다는 겁니다. 말은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이럴 경우 두 마디보다는 한 마디가 낫죠. 아니 차라리 침묵이 낫습니다. 여러분, 말은 인격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말은 힘을 갖지 못합니다.

전직 대통령들에 대해 좀 더 말해 볼까요. 전직 대통령들 중 말하기 전에 준비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전두환씨였습니다. 말을 하기 전에 상대방의 특징과 장단점 등을 많이 연구합니다. 그런데 YS나 DJ는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서 남의 얘기 듣는 것을 매우 힘들어합니다. 그래도 YS는 생각보다는 남의 얘기를 잘 듣는 편입니다. 다만 안 듣는 체 합니다. 상대와 얘기할 때 관심 없는 척 외면합니다. 야당 시절 탄압을 받을 때 자신과 대화를 나눈 사람들이 많은 고초를 겪게 됩니다. 그러니 일부러 상대를 무시하는 척 하면서 얘기를 듣는 습관이 생긴 것이죠. DJ는 현직 대통령이니까 언급을 피하고, 노태우 씨는 대사형입니다. 누군가 준비해 놓은 원고를 그대로 읽는 스타일입니다. 그것도 능력이죠. 하여튼 토씨까지 틀리지 않고 읽습니다. 그래서 순발력은 떨어지지만 사전 각본형 대화에는 매우 능숙하죠. 사실 우리 정치인들과 대화를 해 보면 좀 답답합니다. 소탈하게 대화를 못하죠. 다른 나라의 정치인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일생동안 끊임없이 사람들을 대해 오면서 체화된 지식을, 인격화된 지식을 그대로 말로써 표현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은 그런 부분이 약합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훈련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고, 남의 말에 잘 귀기울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지금부터 우리가 쓰는 말의 종류를 따져 보겠습니다. 중남미 국가에 재무장관을 지낸 분 중 페르난도 플로렌스라는 청렴결백하고 개혁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재임 3년 만에 쿠데타로 인해 감옥에 갔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울화통이 터지는 겁니다. 그러다가 그는 자기 분노의 뿌리를 찾아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분노의 뿌리가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타인의 말에 분노하고 있고 개념화된 단어에 분노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죠. 그래서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UCLA에 가서 유학을 하게 되고, 결국 UCLA에서 어학 교수가 됩니다.

이 분이 말을 다섯 개 범주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범주는 ‘부탁’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굉장히 많은 부탁을 하고 삽니다. 저는 기자로서 부탁을 받으면 굉장히 짜증을 냈습니다. 처음에 기자가 되면 누구나 칼날같이 비판하고 깨끗하게 살고자 합니다. 제가 처음에 기자로 가서 남대문 경찰서를 출입할 때 추석만 되면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기차 표 예매를 부탁하는 겁니다. 그 때만 해도 열혈청년이 되겠다는 각오로 제 돈으로 새벽 네 시에 줄을 서서 표를 사다가 줍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그렇게 해서 표를 가져가면 필요 없다고 합니다. 저에게만 부탁한 게 아니라 똑같은 부탁을 여러 곳에 해 놓았던 것이죠. 그 분들은 내가 전화 한 통화로 간단하게 표를 사는 줄 알고 한 부탁이겠지만, 이건 참 무례하고 어이없는 일이죠. 부탁은 잘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말이 부탁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부탁을 통해 사람들과 원만해질 수도 있지만 원수 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전에 어떤 경우에도 부탁을 하지 않고 살겠다고 결심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부탁을 안 하겠다는 것도 제 교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 살면서 부탁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또한 세상에는 부탁 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자신의 힘을 느끼고 즐기는 것이죠. 부탁을 통해 내 목표나 이익을 남기겠다는 생각은 온당치 않지만, 적절한 부탁을 주고받는 것은 미덕입니다. 정중하게 부탁할 줄 아는 것도 능력입니다. 그러니 부탁을 해야 하는 경우, 정정당당하게 부탁할 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두 번째 범주는 ‘약속’입니다. 약속은 사회의 기초입니다. 법도 약속입니다. 법을 지키지 않을 때 사회가 혼란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결국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에도 심각한 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중에도 누군가가 약속을 어겨 마음에 상처를 받으신 분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남에게 이런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도 그렇게 약속을 깨뜨립니다. 그래서 어릴 적 가정에서 약속을 지키는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정에서 약속 지키는 것을 훈련받지 못한 아이는 성장해서도 약속을 잘 지킬 수 없습니다. 약속은 어려서부터 훈련받아야 하는 언어생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응, 저녁쯤에 봐.’, ‘그래 다음에 한번 보지, 뭐.’ 이렇게 대충대충 약속을 합니다. 약속은 사회의 기초이고 인격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약속이라는 언어생활을 많이 가꾸고 다듬어 나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약속은 가능한 한 하지 말고 만일 약속했다면 지키도록 합시다. 저는 개인적으로 5년 전에 술을 끊었습니다. 한때 술에 일가견이 있었던 저였습니다. 하지만 집사람과 약속을 하고 술을 끊었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과도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콜린 파월은 아내와의 약속 때문에 조지 부시가 러닝 메이트로 추천한 것을 거부했습니다. 로버트 라이시는 가족과의 약속 때문에 노동부 장관을 지내던 중에 사퇴를 했습니다. 클린턴 정부 1기 때 국무장관을 지낸 워렌 크리스토퍼라는 사람은 클린턴이 재선되면서 다시 국무장관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아내와의 약속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우리나라에 과연 가족과의 약속 때문에 중요한 제의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여러분 세대에선 그런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소중한 가치를 알고, 덜 소중한 것들을 버릴 수 있는 것은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 비롯되는 인격과 성품입니다.

이 약속 때문에 손해도 많이 봅니다. 이익과 손해가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이익만 쫓는다면 성장은 할 수 있겠지만 성숙하지는 못합니다. 가정에서 자기에게 주어지는 이익은 없습니다. 자식을 기른다고 이익이 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행복이란 기쁨도 있겠지만 아내와 자식은 마치 내게 돈을 맡겨 둔 것처럼 끊임없이 돈을 달라고만 요구합니다. 월급의 전액을 줘도 항상 부족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회는 가정이 있어야만 유지됩니다. 손해를 감수하는 영역이 있기 때문에 이익을 추구하는 영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게 사회가 굴러가는 이치고 여러분의 인격이 서 있는 기초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훈련받아야 될 것이 바로 손해입니다. 결혼해 1년 안에 이혼하는 부부들이 절반쯤 됩니다. 그건 손해보는 훈련, 약속을 지키는 훈련이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범주는 ‘선언’입니다. 이것이 오늘 이 자리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범주입니다. 이 선언은 존재하지 않던 것을 존재하게 합니다. 미국은 어떻게 탄생했습니까? 독립선언으로 인해 미국이 탄생했습니다. 부부는 성혼선언으로 탄생합니다. 저는 언젠가 제 아내 앞에서 한번 이런 선언을 했습니다. 당신에게만은 절대 거짓말을 않겠다고. 그 이후 정말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부득이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만. 선언은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선언은 선언할 수 있는 선언권자가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삼성의 경영방침은 이건희 회장이 선언해야지 그 효력이 발생합니다. 이건희 회장이 준비경영을 하자는 선언에 따라 삼성 전체가 거기에 맞춰 움직이고, 한국 경제가 그 흐름에 따라 움직입니다. 여러분의 삶과 생각,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다면 선언적인 언어를 많이 구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혼도 부모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선언이 있어야만 가능한 겁니다. 그렇지 않고 결혼한다면 무기력한 남자가 되겠죠. 여자랑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깨끗하게 선언하십시오. 선언은 삶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키워드입니다.

네 번째 범주가 ‘주장’입니다. 우리는 많은 주장을 하고 삽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주장의 영역 중 하나인 은근한 자랑입니다. 자기 자랑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파헤쳐 보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니죠. 돈 자랑하는 사람하고 결혼해서 행복한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이 주장은 때가 되면 사실 여부가 판가름이 나는 언어영역입니다. 오늘 날씨가 영하라고 누군가 주장했다면 반드시 옳고 그름이 드러납니다.

다섯 번째 범주가 ‘판단’입니다. 이 판단은 우리 삶을 때론 병들게 하고, 아주 힘들게 하는 영역입니다. 우리는 이 판단의 언어 때문에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고 너무나 많은 오해를 받습니다.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를 잣대로 사람들은 판단을 내립니다. 그래서 내게 유리하면 좋은 것이고, 내게 불리하면 나쁜 것입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판단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좀먹는 병폐입니다. 더군다나 자기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고 말면 될 것을 다른 사람에게 옮깁니다. 상대에게서 들은 얘기를 옮길 때 상대의 생각이나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판단을 섞어서 옮깁니다. 말을 그대로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제 3자가 옮기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옮길 능력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남자 A에게 여자 B의 사랑을 C가 대신해서 전해준다고 합시다. C가 A에게 ‘그 여자가 널 사랑한대.’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에게 사랑의 의미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사람들은 그 살아온 궤적에 따라 사랑을 다르게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들도 마찬가지죠. 그러니 누가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대로 옮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을 옮길 때는 특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남이 옮기는 말을 들을 때 특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누구로부터 전해들은 말을 무조건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판단은 사실도 진실도 아닙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은 타인의 판단을 진리로 받아들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면 정말 많은 부작용을 낳지요.

제 아내 역시도 고부간의 갈등을 겪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아내에게 언제 가장 많이 상처를 받았냐고 물었습니다. 첫 아이를 낳을 때 아내는 제왕절개 수술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오셔서 그걸 보고 ‘우리 때는 자연분만 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너희는 애를 배 째고 참 쉽게 낳는구나.’ 라고 한 마디 던지셨답니다. 20년 가까이 그 말이 제 아내의 가슴에 남아서 고부간의 갈등을 빚는 출발점이 된 겁니다.

자, 여기서 잠시 살펴보죠. 제 어머님은 그저 자신의 경험을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자연분만의 고통은 알고 계시지만, 제왕절개를 할 때의 고통이나 두려움, 불안을 모르십니다.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고통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생각하신 것이죠. 그러나 이건 단지 주장일 뿐입니다. 제왕절개를 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자연분만보다 쉬울 것이라는 판단일 뿐입니다. 주장과 판단을 진실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말에 묶여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여러분 가슴속에 응어리진 원망과 분노와 질시의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주장과 판단의 영역에 속하는 말은 가능한 신중해야 하고, 특히 남이 쓰는 말에 대해 정확히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선언’의 영역에서 신앙이 발생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선언에서 비롯된 겁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선언함으로써 오늘날 인류의 4분의 1이 믿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부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선언하는 말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이토록 중요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언어를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물론 언어를 다르게 분류한 의견들도 많습니다. 존 써리라는 언어철학자는 말을 공약, 판단, 주장, 지시, 표명 등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오스틴 같은 철학자는 언표지시적 언어영역과 언표성취적 언어영역 두 가지로 분류하기도 하죠. 아무튼 언어가 어떻게 분류되건 간에, 이 언어를 통해 막강한 영향을 받을 수도 영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오늘 제가 말에 대해 말씀드린 이유는 말이 여러분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또한 말을 통해 사회를 좀 더 발전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고, 새로운 지도자가 되기 위해 여러분 자신을 계발, 점검시키라는 뜻이었습니다. 헬렌 켈러의 말에서처럼 여러분 모두가 언어를 통해서 ‘자유함’으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언어적 사유의 벽을 깨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어의 확장을 통해서 우리는 삶이 확장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고, 언어의 조탁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좀 더 정결해지고 명료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