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먼저 오늘 제에게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독일과 한국은 분단의 아픔을 겪은 나라입니다. 다만 독일은 10년 전에 분단을 극복한 반면 한국의 분단 상태는 아직 지속되고 있습니다. 양국의 운명을 보면 역사적·정신적·경제적·문화적으로 근본적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양국을 비교할 때는 신중해야 하며 한반도 통일을 위해 독일식 통일방안을 그대로 적용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한국과 독일은 차이점이 많지만 공통점도 많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우리 독일이 한국에게 한 수 가르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독일이 겪은 경험을 한국인들에게 알려줄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독일이 범한 오류를 한국이 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독일의 분단은 2차대전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아직 분단된 채 남아있습니다. 이 2차대전의 영향력이 유럽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오래 지속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역사적 힘이 더 강하게 작용하나 봅니다. 물론 유럽에서도 독일의 분단, 유럽 대륙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수 십 년 세월이 걸렸습니다. 한국과 독일은 모두 단일민족국가로서 한쪽은 공산주의 국가로, 한쪽은 민주주의 국가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은 아직까지 이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서독이나 한국은 미국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나라들입니다. 그리고 안보 측면에서도 상당한 미국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독일은 국가건설 이후에 신속하게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계는 이를 '기적'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기적'이 아니라 '부흥'입니다. 양국 국민들의 부단한 노력과 우호적인 주변 정세의 산물이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잠깐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해 말할까 합니다. 한국은 독일과 달리 오랫동안 군부가 지배했던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민권 운동이라는 좋은 전통이 자라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과거 한국이 군부의 지배를 받았지만 민권 운동의 전통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에선 이미 10년 전부터 완전한 민주주의가 성립되었다고 봅니다.

1989년 통일 이후 동독이 소련의 명령에 움직이는 조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통일 이후 동독 사람들에게 국가 정체성을 부여하려는 우리의 시도는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소위 공산 진영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동독은 사상누각처럼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동독 사람들은 '우리는 민중이다'라고 외치던 구호를,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 라고 바꿔 외치게 됩니다.

1985년 고르바초프가 소련 정부의 수반이 된 후 소련은 개방 정책을 도입합니다. 이미 그 시기에 동독의 운명은 얼마 남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동독 사람들은 그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동독 공산당의 핵심 인물은 크루트 하버였습니다. 한 서방기자가 이 사람에게 '소련의 개혁정책이 동독에 어떤 영향이 미칠까요?'라는 질문을 했는데 이 사람은 '옆집에서 집수리 한다고 우리까지 집수리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굉장히 어리석은 답변이었습니다. 이미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가 1989년 여름 즈음이었습니다. 그 당시 베를린 장벽과 철조망, 지뢰밭이 있었지만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죠. 결국 1989년 11월9일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습니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역사적 상황전개에 귀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독일이 통일을 했을 때 다른 주변국들 모두가 환영했던 것은 아닙니다. 통일된 독일은 인구 8천만 명으로 인구수로 보면 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일은 통일 이후에도 유럽의 통합과 확장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 라고 주변국들을 부단히 설득시켰습니다. 또한 주변 국가들에게 한 국가의 분단이라는 것이 굉장히 부자연스런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시켰습니다. 분단상황이 오히려 주변정세에 안정을 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분단은 항상 긴장을 수반한다는 걸 주지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베를린 장벽에서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한국의 판문점을 볼 때 아직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한반도의 통일이 독일에 비해 국제사회의 동의를 쉽게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독일과 달리 한국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아니고 전쟁으로 희생을 당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구 동독의 경우 그 배후에 정치적·군사적 블록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현재 북한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통일 여건은 훨씬 유리합니다. 이렇게 주변정세는 한국이 더욱 유리합니다. 하지만 남북한 관계는 동서독 관계보다 더욱 경직돼 있습니다. 한반도는 한국전쟁을 치룬 역사가 있지만 동서독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역사가 없습니다. 물론 동서독에도 서로의 광범위한 간섭 활동이 있었지만 살인 사건이나 테러 사건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적대감이 남북처럼 크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 십 년 분단된 상태에서도 동서독 사람들은 끊임없이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 친척을 방문하고 친가에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상호방문에 대한 규정은 무척 까다로웠지만 서로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검열을 받아야 했지만 전화나 편지도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양국민들 간에 서로의 상황을 왜곡없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한국과 독일의 정치적 상황의 차이를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모두 잘 알고 계시는 얘기였을 겁니다. 다음으로 몇 가지 수치자료를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1987년 독일 상황과 1995년부터 1998년 동안 한국의 상황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양국간의 방문객 수를 비교해보면 1995부터 1998년 동안 남북한 방문자 수가 536명에 그친 반면 1987년 동서독 방문자 수는 241만 명이었고, 남북한 우편·전화 교환은 1000여 건인 반면, 동서독의 경우는 153만 건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교역규모를 보았을 때 동서독 교역규모는 남북한에 비해 상당히 컸습니다. 당시 동독의 인구수는 서독의 1/4이었고 북한은 한국 인구수의 절반밖에는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통일비용에 관심이 많을 겁니다. 지난 10년 간 서독에서 동독으로 유입된 통일비용 총액이 2천 5백억 달러에 달합니다. 이런 독일의 통일비용을 한반도 통일에 적용시켜보면 통일 이후 5년 간 한국은 1천 4백억 달러의 통일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지금의 한국 경제 사정으로 볼 때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이 엄청난 부담을 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그래서 국제사회를 비롯한 미국, 일본,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 주변국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물론 유럽 연합과 독일은 한반도 통일에 적극 지원할 겁니다.

다음으로 독일과 한국의 경제관계에 대해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독일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교역 상대국입니다. 현재 한국과 독일의 교역 규모는 약 1백억 달러에 달합니다. 1997년과 1998년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독일은 한국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처럼 많은 경제 교역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IMF 당시 한국에 진출한 독일 기업 중에서 철수한 기업은 없었으며 독일의 연방은행이 성공적으로 한국을 지원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한국에 대한 직접투자도 증가해 그 액수가 총 16억 달러에 이릅니다. 이는 미국, 일본, 네덜란드에 이어 4위 수준입니다. 주로 독일이 투자하고 있는 부분은 금융, 화학, 보험, 자동차 분야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알리안츠 보험회사, BASF, 크라이슬러, 코메른츠 반크라는 은행 등이 한국에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들의 한국 업무를 지원하는 것이 우리 독일 대사관의 주요 업무 중 하나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양국 간에 우호적인 학술, 문화 교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특히 여러분이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 유학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독일에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 수가 6천 명 정도입니다. 독일 유학의 큰 장점은 수업료가 전혀 없고, 최고의 학문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유럽 심장부에 위치한 독일에서는 다양한 문화적 혜택도 누릴 수 있습니다. 독일 정부는 외국인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유학에 앞서 독일어 기본어학시험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 어학 과정을 밟고 독일에서 유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수업을 듣고 싶은 학생에 한에서는 영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장학금도 상당히 폭넓게 지원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유학생들 대부분이 문학이나 음악을 공부하는데 독일 대학은 경제, 자연과학, 수학, 물리학, 전자공학, 농경제 분야 등도 상당 수준에 올라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한국과 독일의 여러 가지 관계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말씀드렸습니다. 한국과 독일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독일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친근하게 생각합니다. 남북은 대화와 협력을 통해 언젠가 통일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