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한국인의 모습과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대해서는 많은 석학들이 훌륭한 논조로 설명하였습니다. 저는 남을 통해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는 생각으로 {먼 나라 이웃나라} 같은 만화들을 그렸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만화가의 눈으로 본 한국인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세계에는 많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중국과 일본은 지리적·문화적으로 한국과 가장 이웃한 나라입니다. 때문에 이들 세 나라는 많은 공통점을 갖지만, 조금씩 다른 차이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 나라는 모두 젓가락과 숟가락을 사용합니다. 그 중에서 중국이 가장 긴 젓가락을 사용하는 나라입니다. 중국음식은 주로 튀기거나 지져서 만들기 때문이죠. 젓가락 길이가 가장 짧은 나라는 일본인데, 쌀이 모자라서 주로 찰기 없는 잡곡밥을 젓가락으로 쓸어 먹다보니 그 길이가 짧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의 젓가락은 중국과 일본 젓가락의 중간 길이입니다. 그리고 이들 두 나라보다 숟가락을 많이 사용합니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수프를 먹을 때만 숟가락을 쓰는 반면, 한국은 식탁을 차릴 때 기본적으로 숟가락을 먼저 놓습니다. 고기가 부족해서 물에 삶아 여럿이 나누어 먹다보니 국물을 떠먹기 위해 숟가락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제부터 이러한 방식으로 이들 세 나라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은 전세계에서 가장 동쪽 끝에 떨어져 있는 섬나라입니다. 중국은 대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아시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고 자부하는 '중원땅'의 거대한 나라이죠. 한국은 그 중간에서 바다와 육지에 걸쳐있는 반도국가입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은 세 나라의 국민성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져도 사면이 막혀 있어서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외적의 침입이 아니라 그들끼리 싸우지 않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불리는 화(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일본 음식을 화식(和食)이라 하고 일본 옷을 화복(和服)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런 가치는 상대방을 미리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태도를 체질화시켰습니다. 재미있는 예로 일본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신문 읽을 때는 반드시 반으로 접어서 읽습니다. 지하철과 같은 공간에서 나에게 허용된 공간은 내 어깨 넓이이고 그 넓이를 넘어가면 남의 영역을 침범해서 피해를 끼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또한 싸움을 피하기 위해 작은 신체접촉까지도 꺼려합니다. 이렇게 접촉을 꺼리다보니 젊은이들이 즐기는 게임도 혼자 할 수 있는 게임이 크게 인기입니다. 끊임없이 접촉하고 어울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의 인기가 점점 솟구치는 것과는 정반대죠. 이런 일본과 비교되는 나라로는 지정학적 위치가 비슷한 영국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영국 사람들 역시 신체접촉을 아주 꺼립니다. 영국 사람들의 악수 방법은 손끝만 살짝 건드리면서 'how do you do?'라고 인사하는 것이 전부인데 악수하다가 손을 꽉 잡으면 어쩔 줄 몰라합니다. 그런데 불란서나 독일사람들은 악수할 때 상대방 눈을 들여다보며 한참 흔들어요. 확연하게 차이가 나죠.

또 다른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섬이 도망갈 곳이 없는 나라라고 해서 싸움이 없는 것은 아니겠죠? 그곳에도 반드시 힘센 자가 권력을 잡으려다 보면 전쟁이 일어나기 쉬운데 '이러면 안 된다'고 한마디 던져서 싸움을 막을 수 있는 신성한 존재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런 존재로 일본에는 천황이 있습니다. 앞서 일본과 영국을 비교했었는데 영국에도 국왕이 있습니다. 그렇죠? 이것이 바로 섬나라 사람들의 특징인데 섬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상징적인 지도자가 신적인 존재로 격상되는 거예요. 결국 국가를 상징하는 최고 통치자가 따로 있고, 실권을 잡는 실력자도 따로 있는 이중구조가 되는 겁니다. 일본은 700여 년 전 막부정치를 할 때부터 천황이 있고 그 밑에 실권자가 따로 있는 이중구조가 유지되었어요. 지금도 그렇죠? 영국 또한, 일본처럼 왕이 있고 의회가 막부의 성격을 띄고 나온 것입니다.

두 번째로 대륙국가인 중국을 봅시다. 대륙은 큰 나라이기 때문에 절대 권력자가 없는 한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춘추전국시대부터 중국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가치는 통일된 제국입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것은 힘으로 무장한 침략주의 노선이라기보다 모든 백성들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섬인 대만의 분리독립에 대해 원자폭탄을 써서라도 못하게 하겠다는 겁니다. 티벳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영토가 넓다보니 전체 민족을 제대로 지배하지 못하고 소수 민족에 대해서는 포용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대동주의가 중국의 기본 철학이 되는 겁니다. 중국의 여러 자치족들이 그런 예에 속합니다. 그러나 그 자치족들 중 분리 독립하겠다고 말하는 곳이 있으면 중앙 정부가 엄격하게 관리하게 됩니다.

이는 중국이 가장 중요한 가치관을 '하나(一)'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여기에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뜻도 있겠지만 으뜸이라는 뜻도 있어요. 즉, 중화민족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화를 지니고 있고, 세계에 으뜸가는 민족이라는 국가적 자존심을 보여주는 거죠. 또 하나의 뜻으로 '혼자'라는 뜻도 있어요. 임어당이 이야기했듯이 '나는 혼란 속에 태어났지만 안락하게 죽겠다'라는 '나 홀로 사상'의 기질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어요. 이런 대륙적인 특징은 불란서와 비교될 수 있습니다. 불란서는 유럽에서 최초로 절대왕권을 수립한 나라입니다. 이는 '강력한 왕권 없이는 평화도 없다'는 중국과 통하는 것이고 '우리 것이 세계 제일'이라는 으뜸 의식과 통해요. 불란서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지칭할 때 '프랑스'라 하지 않고 '위대한 조국 위대한 국가'라 부릅니다. 이처럼 대륙국가의 기질은 '으뜸 사상'에다 '나 홀로 사상'까지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특징말고도 반도와 섬나라에 없는 특징으로 '타협과 포용(똘레랑스)'이라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타민족의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받아 들여 자기 안에서 융화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로 반도국가인 한국을 봅시다. 혹자들은 이탈리아와 한국을 같은 반도 국가라고 해서 비교하는데 제가 볼 때는 잘못되었습니다. 이탈리아 반도는 로마제국이 전 세계를 하나의 로마제국 문명권으로 묶을 때 그 중심에 있었던 곳입니다. 반면 한반도는 중국을 중심으로 변방으로 나와 있는 지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는 육지와 바다를 잇는 다리(bridge) 역할을 합니다. 이런 지리적 조건 때문에 한반도는 당나라, 수나라, 몽고, 청나라, 금나라, 왜구 등 온갖 적으로부터 2천 년 동안 3천 번이 넘는 침략을 받아 왔어요. 전쟁의 참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살아남느냐' 하는 것이겠죠. 또 대개 우리나라 사람들을 융통성 없고 고집이 세다고 하는데 제가 볼 때 그것은 우리 민족이 살아남으려 하다가 형성된 성향이라고 생각됩니다. 수없이 많은 외침을 받으면서 누구든지 다 좋다고 했다면 지금의 한(韓)민족은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순수한 혈통을 지키기 위해 정통성에 집착하게 되는 거죠. 전 세계에서 족보를 중요시 여기는 나라가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이것은 일종의 생존개념입니다 유럽에서 귀족의 후예들도 족보 따질 것 같죠? 그러나 그쪽에는 없어요. 우리의 경우에는 개 한 마리를 놓고도 족보 따지잖아요. 없으면 똥개라 하고. 이것을 한자로 정의하면 가운데 중(中)자 밑에 마음 심(心)자를 쓴 충(忠)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 글자의 원래 뜻은 '변하지 않는다'인데 영어로 번역하면 충성(royalty)이 아니라 정통(orthodoxy)이라고 해야합니다. 한민족의 핏줄을 그대로 지키려는 노력인 거죠. 이러한 노력들이 한국인들의 국민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밑바탕이 되어 왔습니다.

그럼 한국과 가장 비교되는 곳은 어디겠습니까? 제가 볼 때는 발칸반도입니다. 발칸반도는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만나고 북방민족과 남방민족이 어우러져 있던 곳이죠. 그러면서 징기스칸부터 십자군, 게르만족까지 모든 민족들이 넘나들었던 곳이라서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민족 혈통이 복잡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가장 민족적인 색깔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죠. 알바니아는 철저하게 알바니아족, 불가리아도 불가리아족, 그리스도 그리스족 입니다. 유고 내전을 보면 왜 저러나 싶기도 하죠? 그들 나름대로 수 천 년간의 자기 민족의 혈통을 순수하게 지키기 위해 전쟁까지 서슴지 않은 겁니다. 외침을 가장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정통성에 생명을 걸고 폐쇄적인 민족주의로 나가는 거죠. 지금까지 지역적 특성에 대해서 비교해보았는데 한국인의 특성에 대해서 좀 자세히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한국인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예를 드는 것은 '정통성'입니다. 일본의 경우는 정통성에 대해 전혀 무관심합니다. 일본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가 대륙이나 반도에서 넘어왔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해요. 그래서 좋은 것은 언제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서 받아들인 것을 쓰기 쉽게 바꾸는 것도 그들의 특징이 될 수 있겠죠. 영국의 성공회도 같은 예가 될 수 있겠군요. 그럼 중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그들은 으뜸주의가 있기 때문에 이민족의 어떤 문화가 들어와도 상관없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중국 대륙을 지배했던 소수민족의 문화는 한(漢)문화를 흡수하지 못하고 반대로 한(漢)문화에 융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중국 사람들을 개방적이면서도 자부심을 강하게 해주는 요인이죠. 그러나 한국은 외침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정통성'에 집착하다 국수주의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음 특징으로는 '균점평등사상'을 듭니다. '균점평등사상'이라는 것은 '네가 가진 건 나도 가져야 하지만 내가 가진 건 네가 안 가져도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네가 가진 것은 내가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죠. 그 다음으로 '극단적 성격'을 생각해 볼 수 있고 마지막으로 '연고주의'를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이런 특징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외국에서 보기 힘든 것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눈의 띠는 것을 저는 '아파트'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물론 외국에도 아파트는 있죠. 그러나 휴전선부터 부산까지, 인천부터 강릉까지 전 국토에 촘촘하게 아파트가 세워진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아파트 문화라는 게 뭡니까? 큰 평수도 있고, 작은 평수도 있지만 한 건물 안에는 대개 같은 평수일 겁니다. 예를 들어 25평 아파트에 300∼400세대가 몰려있다고 칩시다. 그 안에 모두 남에게 지기 싫어하면서 '네가 가진 것은 나도 가져야 한다'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것은 대단한 문화를 형성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김치냉장고'입니다. 김치냉장고가 발명된 지 3년밖에 안됐어요. 그런데 현재는 그것이 보통냉장고의 시장 점유율를 눌렀습니다. 그 말은 지금 팔리고 있는 냉장고의 반 이상이 김치냉장고라는 겁니다. 이것은 사소한 예가 아닙니다. 한 사람이 김치냉장고를 사면 그 아파트 전체에 퍼진다는 이야깁니다. 그곳에서 다시 전국적으로 퍼지면 어떻게 됩니까?

이런 대표적인 현상의 다른 예가 바로 '과외'입니다. 비슷한 조건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옆집 철수네가 과외를 시키고 있으면 반드시 다른 집에서도 시킵니다. 안 시키면 괜히 손해본다는 기분이 드는 거죠. 그러니 피아노 과외, 미술 과외, 웅변 과외 등 대단한 과외 열풍이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바로 아파트 문화가 낳은 하나의 극단적인 면이라고 볼 수 있죠.

두 번째로는 교회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특정 종교에 대한 비방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여하튼 지금 대한민국에는 5만여 개의 교회가 있고 서울 시내에만 만여 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모든 교회가 똑같이 빨간 십자가 네온사인을 세워 놨습니다. 거의 예외 없이 개신교 교회들은 그렇게 해 놓았습니다. 밤에 남산에 올라가서 서울을 둘러보면 대단합니다. 일전에 외국에서 온 친구가 서울에 이렇게도 많은 공동묘지가 있냐고 물어봐서 설명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모릅니다. 심한 경우에는 삼 층 짜리 슬라브 상가 건물 옥상 위에 뾰족탑이 네 개나 서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도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평등사상'의 결과예요. '저기서 뾰족탑을 5미터 세우면 내가 5.1미터는 못 세워도 5미터는 세워야 한다'는 거죠.

그 다음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격을 극단적으로 알 수 있는 예가 노래방이나 PC방, 핸드폰 보급률을 들 수 있습니다. 가라오케가 1980년경에 일본에서 등장해서 '영상노래방'으로 퍼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 3년만에 전국에 노래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휴대폰 보급률은 더 대단합니다. 인구 4천3백만 명인 나라에서 2천8백만 명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률은 세계 1위입니다. 좋게 말해서 한국사람들이 화끈하다고 말하지만 따져보면 사실 '네가 가졌는데 내가 안 가질 수 없다'는 겁니다.

음식 문화는 어떻습니까? 전 세계에서 가장 맵고 뜨겁게 먹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입니다. 인도에도 카레가 들어간 음식이 많이 있어 맵기는 해도 종류별로 정도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시퍼런 고추를 가져다가 고추장에 찍어먹으면서 '한국인이 아니면 이 맛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매운 것은 맛이 아니라 감각입니다. 자극을 뜻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맵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먹은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것은 다시 독특한 맛이 별로 없다는 얘기도 되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은 음식을 지지거나 끓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운탕이 얼마나 맵습니까? 펄펄 끓는 물에다 시뻘건 고춧가루 확 풀어 먹으면서 '어∼ 시원하다!' 하는 게 바로 한국사람의 입맛입니다. 아주 매운 것뿐만 아니라 아주 뜨거운 음식을 즐기는 거죠.

음주문화도 극단적입니다. 세계적으로 러시아, 체코, 슬라브의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 걸로 유명하죠. 그런데 폭탄주 마시는 민족은 우리밖에 없어요. 제가 독일에 있을 때 어느 독일사람이 저에게 '너희들 작아서 우습게 봤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제가 왜 그런지 물어보니까 '독일사람들은 술 마시다가 테이블에 쓰러지면 그만두는데 너희들은 테이블 밑에 쓰러져서도 술 찾더라'라는 답을 하더군요. 그 정도로 한국 사람들은 오기로 술을 마십니다.

앞서서 과외 열풍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럼 우리의 교육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일본에도 과외가 없는 건 아니에요. 일본도 심한 경우엔 유치원 때부터 대학 입시 볼 때까지 모두 학원에 보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전 국민이 보편적으로 과외 열풍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극단적인 교육열이 세계 11위 경제국이 될 수 있는 인적자원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폐단으로 지적되는 것도 바로 과외문제입니다. 이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균점평등사상'에서 나온 것이에요. 자식 가르치는 게 나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온 국민이 배워서 훌륭해지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생산적인 교육이 되지 못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유럽의 중·고생들은 방학 때가 되면 전부 배낭 메고 여행을 다닙니다. 세계를 다니면서 체험도 쌓고 인생을 깨우치는 살아있는 교육을 받고 있는 거죠. 미국 같은 경우에도 중·고등학교 때 마음대로 놀라고 숙제를 주지 않습니다. 미식축구도 하고 사회봉사도 하라는 거죠. 그런데 지금 우리의 고2, 고3 학생들은 어떱니까? 학원 다니기 위해서 봉고차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학교 들어가기 전에 6년 동안 배우고 외워서 복습한 것은 사실 CD롬 한 장 분량도 안 됩니다. 그것들은 기초적인 지식은 되겠지만 창조적인 지식은 못됩니다. 단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지식밖에 되지 않는 거죠. 우리나라 부모들은 돈 벌어서 전부 미국 학교에 갖다 주고 있습니다. 조기유학 시킨다고 갖다주고, 대학교육 시켜놓으면 유학 가고 싶다고 해서 보내 주고, 직장 다니다 MBA간다고 하면 또 보내줘야 합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럼 왜 이렇게 한국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되었을까요? 첫 번째는 수도 없이 외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났을 때 지배계층들은 왕조를 살리기 위해 백성들을 버리고 먼저 도망갑니다. 물론 최후까지 항전한 경우도 있지만 힘에 부치면 남한산성이나 강화도로 도망가기 급했습니다. 지배 계층이 도망가기 급급하다 보니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는 '내 자식, 내 생명, 내 재산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 극단적인 '자기 먼저 챙기기'를 만들게 합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20세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일제 침략부터 시작합니다. 일제에게 35년 동안 철저하게 착취당하고 우리는 겨우 해방이 되었지만 다시 좌·우익으로 갈라져서 풍비박산납니다. 빨갱이라고 죽이고 반동이라고 죽이다가 6·25 전쟁이 났습니다. 3년 동안 한반도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없어졌어요. 그 다음에는 4·19혁명으로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혁명이 완성되기도 전에 다시 군사 쿠데타를 통한 독재를 30년 동안이나 겪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 세기를 극단적인 역사 속에서 보낸 것이죠.

우리의 20세기는 그만큼 불행한 시대였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독한 마음으로 경제건설에 나서야 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의 40∼50대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 정보화 사회까지 한 번에 겪은 세대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짚신 신었어요. 그 다음에는 검정 고무신 신었습니다. 군대 가서는 군화 신고 어느 정도 자리 잡고서는 국산구두 신고 형편 나아지면 외제구두까지 신어 봅니다. 이런 경험을 하는 세대가 세계 어느 나라에 있겠습니까? 농본주의 사회의식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컴퓨터와도 씨름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만큼 우리는 극단적인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시대가 어떻게 바뀌었고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한국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구조 자체가 수직적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사회구조에 장유유서가 남았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자식에게 기업 물려주는 예는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그러면 의식구조는 어떻습니까? 의식구조는 반대로 균점평등사상에 의한 수평구조 형태입니다. 결국 한국사회에서 파생되고 있는 가장 큰 갈등의 원인은 수직적인 사회체제와 수평적인 의식구조의 갈등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이제는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체계와 의식구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과외 같은 경우를 봅시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는 것이 과거에는 통했습니다. 국경도 있었고 노동자본이 자유롭게 교류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내에서만 잘하면 됐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점점 세계화가 되면서 물건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까지도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불란서에 취직을 하고 불란서 사람이 국민대로 와서 일하는 시대가 이제 곧 온다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길러야 할 것은 '국제경쟁력'입니다. 과외 받아서 국가경쟁력이 강해지겠습니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학벌이 통해서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좋은 대학에 자식을 입학시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학교가 세계적으로는 50위도 안됩니다. 그 결과는 뭡니까? 이런 식으로 교육이 계속되면 세계화가 되었을 때 우리의 일자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우리의 경쟁자는 눈 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본에 있는 사람, 불란서에 있는 사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시야를 넓게 만들고 세계를 대상으로 경쟁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우리의 성격이 극단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목적을 위해서 상식과 원칙을 무시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다시 강조하고 싶어요. 이제 점점 세계화된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세계에서 13번째로 높은 경제력을 갖춘 나라입니다. 아직까지 과거의 사고방식이 통해서는 안됩니다. 이제는 상식에 맞는 원칙을 세워서 그 시스템에 맞게 움직이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과연 우리가 배워야 할 나라가 어딘지 부연해서 말씀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모범 국가를 꼽으라면 저는 서슴지 않고 네덜란드를 들겠습니다. 또 네덜란드에서 배워야 할 것을 저는 '사고의 유연성'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들 사고의 유연성은 강대국 틈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기도 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생각이 열려 있는 것이죠. 그들은 사회의 모든 일들을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에서 동성 결혼, 낙태, 태아 감별, 마약, 매매춘 등은 아직도 영원히 깰 수 없는 윤리의식에 의해 거부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타부(taboo)라고 하는 거죠. 그런데 네덜란드에서는 이 모든 것이 조건적이지만 허용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곰곰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상상 할 수 없는 하나의 예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태어나는 아이들이 자동적으로 어머니 성을 따르는 것입니다. 일종의 모계 사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유는 가정이 파괴되어 이혼하게 되면 여성도 재혼을 할 수 있는데 아이를 기르는 사람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많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가 결혼할 때마다 성을 바꿔야 되잖아요.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 성을 주면 어머니가 열 번, 스무 번 새로 결혼해도 상관이 없게 되죠. 즉, 그 아이의 정체성(identity)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네덜란드의 아버지들이 자식에게 자신의 성을 주고 싶으면 6개월 이내에 아내의 동의를 받아 법원에 신고해야 된다고 합니다. 이런 예들이 바람직한가 바람직하지 않은가를 떠나 새로운 사고에 대한 고민을 던져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와 도덕적 풍토가 다르지만 똑같은 강대국에 둘러 쌓여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나름대로 선진국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네덜란드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여러분들이 잘 생각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