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학교에 들어와보니 벽에 붙인 게 많네요. 북한에는 벽에 종이 한 장 붙어 있지 않고, 김일성 초상화가 현관에 들어갔을 때부터 있습니다. 김일성 장군 석고상이라 그래 가지고 대형으로 만들어놓고, 뒤에다가 '대학생들은 대학 때 담배를 피울 필요가 없습니다. 대학생들은 대학 때 공부나 열심히 해야지, 연애는 필요없습니다'라고 써 있는데, 학생시절의 좌우 명으로 되는 이런 글자들을 명제판이라 그래요.
북한에서는 빨간 천에다 '우리 대학생들은 주체의 견실한 혁명가로써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사회 건설을 완성하고 최대의 정성을 다해서…' 등의 금박글자로 쓰인 명제판만 있을 뿐이고, 이렇게 하얀 천에 '등록금 인상 결사 반대!'부터 시작해서 '민자당 해체하라' 이런 것들은 찾아볼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게 좀 다른 면이구나 생각합니다. 제가 91년도에 왔을 때, 그 때 강경대 군 사건이 있었을 겁니다. 한국 하면 첫번째 표상으로 떠오르 는 게 데모였는데, 대학교 한 번 좀 가보자, 굉장하다던데, 그래서 연세대 를 한 번 가봤어요. '찢어죽여라'부터 시작해서 구호가 굉장해요.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문제는, 제가 북한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공직 생활을 거치면서, 외교관 생활을 거치면서 제가 느꼈던 바에 의거해서 앞으로 김정일 정권이, 김정일이란 사람이 칼을 쥔 저 배가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이냐에 중심을 둬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울에 와서 제가 대학특강은 오 늘까지 네번짼데, 서울대학교, 경상대학교, 용인대학교에 갔었고, 여기 국 민대학교가 네번째인데, 경상대학교에 갔을 때는 그곳 교수분들하고 학생들 이 북한에 대해서 흥미있는 사람들만 세미나 형식으로 하자고 그랬는데, 한 50명이 들어오더라고요. 저를 그 어떤 꼭두각시로 보는 거예요. 한총련조 국통일 친구들이 들어와 가지고, 나를 정부에서 말하라고 하는 대로 말하는 앵무새나 꼭두각시로 생각하는게 아닌가 하는 기분을 느꼈어요.
그래서 제가 상당히 화가 났었는데, 학생들이 심지어 이런 질문까지 해요. '거기서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는데 왜 여기 와서 썩고 부패한 이 서울 땅에 찾아와 가지고 위정자들 도와주는 발언을 하고 다니느냐?'부터 시작해서 '가족들 버리고 여기 왜 왔느냐?' 등 툭 털어놓고 얘기하면 좀 야비한 질 문들이었는데, 제가 흥분을 하지 않고 얘기하려고 하는데 학생들 억양이 상당히 높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나도 공부를 하는 사람이고 당신들도 항상 학문을 익히는 사람들인데, 나는 북한에서 고성으로 말하는, 선동적으로 말하는 소리를 하도 들어서, 그게 지겨워서 도망친 사람이기도 한데, 당신들 목소리 좀 낮춰주세요.' 제가 조금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이, 매스컴에 나와서 정부에서 얘기하라는 것만 얘기하느냐는 그런 식의 질문이 많더라구요. 여기 와서 이제까지 자존심대로, 내 주장대로 얘기했지 누가 써준 거 누가 시킨 거 말하고 돌아다닌 적은 이 내 양심을 걸고 한 번도 없다 이 말입니다. 이제까지 북한에 살면서 그런 식의 생활이 싫어서 도망왔는데, 모든 것 다 버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굉장히 섭섭합니다.이 강연 안기부에 서 적어준 거 아닙니다. 제가 집에서 워드프로세서로 제 나름대로 써온 것 입니다.
저는 여기 와서 북한연구소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 퇴근할 때까지 하는 일이 북한출판물들을 보는 것입니다.《로동신문》부터 시작해서《민주조선》,《북한방송》,《북한 천리화잡지》등. 그게 굉장히 싫어요. 여기에 북한《로동신문》보신 적 있으신지 모르겠는데 정말 볼 게 없 습니다. 10년 전 신문이나 지금 신문이나 당의 기본구호부터 시작해서 '우리 당의 혁명사상을 무장하자'부터 시작해서 거의 같은 맥락으로 흘러오고 있는 데, 사실 북한 관리자들이나 대학생들조차《로동신문》을 15초나 20초 이상 안봅니다. 똑같은 글자를 10년 이상 20년 이상 보아온 글씨니까. 그래서 북한신문을 대체로 읽고 치워버리는데, 이제 여기 와서는 그게 제 밥벌이가 되니까《로동신문》같은 거 한 45분, 1시간씩 봅니다. 그게 굉장히 스트레스 받아요. 이곳의 신문들은 크게 볼 시간이 없으니까 대여섯 개를 15분 동 안 다 봐야 되고, 본업이 북한신문,《로동신문》보는 거니까 그건 오전 2시 간 3시간씩 읽는데, 난 그거 싫어서 도망왔지만, 여기 와서도 그거 하고 있어요. 여담같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명함 번듯이 하나 찍어 가지고 그거 뭐냐 피자헛인지 핫피잔지 그런 체인점 하나 만들어 가지고 대표이사로 명함 딱 찍어 가지고 혼자 했으면 좋겠어요.
서론이 좀 길어졌네요. 본론에 들어가겠습니다. 북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이해하시려고 하면, 아마 대내정책, 대외정책, 그리고 대남정책을 조금 이해해야지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아서 제가 대내정책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북한을 이제까지 지배했던 김일성이가 죽었습니다. 김일성이 죽고 그 아들이 지금 대권을 이었는데 김정일로서는 지금 어느 정도 우울한 시대가 열린 겁니다. 아버지가 남긴 거라는게 국고고, 외화고 다 텅 비었죠, 아버지같이 카리스마도없죠, 사람들 사이에서 발휘된 지도력도 부족하죠, 경제가 말이 아니죠, 이런 상태에서 김정일이가 어떻게 살 길을 헤 쳐 나가겠는가 이걸 말씀드리겠는데, 김일성이라고 하는 존재 자체는 북한 주민들에게 어느 정도로 신적인 존재였는가 하면, 사람들이 흔히 생활이 어려울 때 불평을 합니다. '버스도 안 와? 이거 버스회사 사람들 어디 가서 다 죽은 거야? 시장은 어디 가서 뭐 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얘길 많이 하는데 그 꼭대기까지는 못 올라가요. 그러니까 북한이라고 하는 독특한 체제는 김일성이에 의해서 이제까지 유지되어 왔는데, 김일성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심했던지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나쁜 사람들이에요. 시장, 도지사, 장관, 부총리가 못된 놈들이에요. 돈 다 떼먹고, 전차에 타이어 하나 제대로 뽑아주지도 않고, 전부 김일성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하는 거예요.
북한은 김일성이를 정말 신처럼 생각하고 떠받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죽어서 큰 진흙에 빠진 셈이죠. 지금 김정일이 정권을 확고히 쥐고 있다고 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버지 그늘 밑에서 정치를 제대로 이어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북한의 논조 중에서 가장 기본을 이루는 것이 뭐냐 하면 김일성의 말을 자꾸 대입하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살아 생전에 했다는 말들이지요.
예를 들면, '김정일 조직비서를 잘 받들어 모시십시오', '김정일 조직비서 가 없으면 조국도 미래도 없습니다', '김정일 조직비서가 없으면 당신들도 없습니다', '이제까지 김정일 조직비서보다 더한 충심과 효자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말들이 노동신문에 매일매일 나옵니다. 좌우지간 살아 있을 때 그런 말 했는지 안 했는지 귀신도 모르죠. 아들하고 아버지하고 한 얘긴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그런 얘길 했다니까, 이 사람만큼 똑똑한 사람은 없다니까, 받들어 모셔야 된다는 후광정치라는 겁니다.
김정일이 이렇게 된 것은 카리스마가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정책이 나온다고 생각을 하는데, 김정일이라고 하는 사람 제가 전반적인 평가를 하기에는 곤란하겠지만, 김정일하고 한 서너 번 가까이할 기회를 가졌었습니다. 제가 외교부에서 김정일에게 정책보고서나 제위서를 작성할 때 여러 번 참가를 해봤는데, 전반적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아버지보다 훨씬 못합니다.
제가 어떤 실례를 들어서 말씀드리면 고르바초프가 러시아에서 85년도에 올라갔습니다. 고르바초프가 올라가서 새로운 신개념이라는 것을 내놓았습니다. 개혁 들어가기 전에. 그 때 우리가 외교부에서 그걸 받아서 연설문으로 보니까, 이게 새로운 태평양시대를 열고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서 새로운 관념, 새로운 사고 밑에서 다른 나라보다 아시아 태평양 연안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남조선하고도 관계를 개선하도록 모색하겠다는 소리와 다른 소리가 없었습니다. 그래 상당히 뿔이 났었어요. 이거 어디서 이따위 소리를 해 가지고 세상을 다 망쳐놓으려고 하는 거야 이렇게 생각을 했었지요. 그 상황에서 87년도에 제가 박성철 주석, 김영남 외교부장, 권희경 대정부 조사부장 등과 함께 위대한 사회주의 10월 혁명 70주년 기념 조선 민주인민공화국 당 및 국가 대표단 성원으로 모스크바에 갔습니다. 그 때 저희 당 및 국가 대표단 단장이 박성철이었는데, 가기 전에 김정일한테 가서 대표단 활동지침을 받아왔습니다.
그 때 뭐라고 김정일이 얘기했는가 하면, '고르바초프란 놈이 우리 혁명까지도 말아먹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초청해 올 필요가 없습니다. 초청해오지 말고, 고르바초프하고 만날 기회가 생기더라도 초청문제 를 꺼내지 말것'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김일성의 교시가 나 왔는데, '내가 고르바초프란 놈을―이건 김일성이 말 그대로입니다― 평양 에서 보기는 싫지만, 우리 혁명의 견지에서 봐서 고르바초프를 초청할 필요가 있다. 우리말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고, 미운 놈 데려다가 우리 영향을 주면 안 데려온 것보다 낫습니다'고 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두 가지 말을 놓고 보면, 누가 더 외교력 있고 판단력 있는지 아마 이해가 가 실 것입니다.
우리는 헛갈렸어요. 외교부를 실지로 외교부장이라고 목 쥐고 있는 사람은 김정일이고, 김일성이는 또 국정의 우상인데, 초청을 하면 김정일이한테 욕먹겠고, 초청을 안 하면 김일성이한테 욕먹겠고. 어쨌든 현지에 가서 부 딪쳐서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보자 그랬었는데, 고르바초프가 북한대표를 만나주지도 않았어요. 동독같은 다른 국가 수반들만 만나주고 우린 뺐어요. 차라리 우리는 잘됐다, 이거 둘 중 하나한테 미움 박이면 입어먹기가 곤란 한데 잘 됐다 그랬지요.
어쨌든 무슨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가 하면, 외교적 측면에서는 아버지보다 훨씬 뒤떨어집니다. 또 한 가지, 내부정치적인 측면인데, 북한 일반주민 들 사이에서 이해하는 것은 김정일이 문학, 아니 문학은 아닙니다, 문화, 예술, 영화 이런 것에는 확실히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겁니다. 바이올린 3번수가 연주를 하다가 반음 높은 소리를 내면 '아, 3번수가 반음 높은 것을 냈으니까 다시 하시오' 그러는데, 뭐 이런 거는 아주 정말 잘하는 것 같습니 다.
그리고 영화배우나 가수들한테 어느 정도 특급대우를 해주는가 하면요, 제가 다른 말 보태지 않고, 북한에 최삼숙이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아주 노래 잘 불러요. 그 다음에 김광숙이라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여기로 치자면 김건모쯤 되는 그런 굉장한 가수인데, 이 여자들이 차를 뭘 타고 다니느냐 하면요, 하얀 벤츠 3800cc짜리 타고 다녀요. 그리고 넘버를 어떤 넘버를 줬는가 하면요, 김정일이가 자기 측근들한테만 주는 넘버를 줬어요. 예를 들 면, 9999, 아니면 8888, 아니면 5555, 이런 번호판만 달면 횡단보도에서 사람 치고 달려도 그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거예요. 북한에는 통행증 제도가 있지만, 백두산 끝에서부터 대주에 있는 구월산까지 그냥 통과합니다. 그리고 차를 세우기만 했다 하면 경찰서장부터 그날로 목이 달아나는 거예요. 지금 김영남 외교부장이 당정책위원이면서 부총리이고, 최고인민회 대의원 이면서 외교부장이고, 최고인민회 외교정책부위원장이고, 굉장한 타이틀 열 몇 개되는 사람이어도 그런 번호판 못 달고 다닙니다. 외교부장 번호판 같은 것은 경찰이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여가수들은 김정일과 그의 매형, 그리고 누이동생, 그리고 같이 다니는 몇 사람한테만 주는 번호판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 북한에 새롭게 도입이 되었는가 하면요, 이전에는 딴따라라고 그랬어요. 정말 그런데 나가는 건 도시락 싸가지고 부모들이 말릴 정도로 딴따라라고 그랬는데, 김정일이 70년대 초부터 일을 하면서 딴따라 보다 최고급이 없는 거라 이겁니다. 김일성이와 같이 4, 50년을 이른바 혁명한 사람들도 달고 다니지 못하는 번호판을 달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니까 이게 굉장한 것으로 비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빼놓고는 김정일이 경제나 과학이나 외교나 이런 측면에서 하나도 나타나는게 없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으니까 나를 따르라 하는 후광정치를 해나가고 있는 겁니다.
제가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말씀을 드리면, 북한의 내부정책은 아버지 때 보다 좀더 경색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이제 몇 가지 실례를 들겠습니다. 북한 어느 지역을 가나, 어느 기관에 들어가나, 어느 대학에 들어가나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기본구호가 있습니다. 당의 기본 구호라고 하는데,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라', 이건 어디든 없는 데가 없습니다. 좀 충실한 사람들은 자기 가정에까지 그걸 만 들어놨어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자'라고.
이제 김일성이가 죽고 김정일이가 나오면서 거기다 하나 더 붙였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더욱 철저히 무장하자', '더욱'이 라는 부사가 하나 더 붙었습니다. 이건 아주 모가지를 비틀겠다는 겁니다. 북한주민들이 47년부터 사상교육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14후퇴 때 내려 오신 분들 많은 말씀을 하십니다. '야, 내가 북한에서 왜 도망쳤냐 하면 학습하기 싫어서 도망쳤다'라구요. 48년도, 49년도, 54년도, 56년도에 북한에서 학습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 라는 게 나왔어요. 여기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권위를 절대하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과 교시를 신조하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권위를 신격화하며' 등 네 가지가 있습니다. 이 네가지가 있고, 거기에 또 위대한 수령을 형상화한 무슨 초상화, 석고상, 미술작품들을 훼손 하는 행위와 비타협적으로 끝까지 마지막까지 투쟁한다 뭐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북한사회를 통제하고 있는 이념이라고 하는 어떤 룰이라는 것이 북한이 자랑하는 사회주의 형법이 절대로 아닙니다. 북한주민들은 형법이 있는 줄도 모릅니다. 북한사회를 67년부터 지배해온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입니다. 교과서 첫장은 대학교에 가도 마찬가지인데, 김일성의 초상화예요. 그 뒤에 김일성의 기본명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들여서 대학생들을 양성하는 목적은 우리 당과 혁명을 위한 민족 간부로서, 주체의 혁명가로서…' 등등 죽 이렇게 나갑니다. 그런데 동생이 나 조카가 볼펜같은 걸로 죽 그었어요, 초상화에다가. 이거 작살나는 겁니다. 여러분들 어느 할머니가 말이에요, 아무것도 몰라요, 그냥 내일모레 내일모레 하는 할머닌데, 창호지가 없어서 종이로 붙인 게 찢어져서 신문을 오려서 붙였어요. 바람 안들어와야지, 겨울에 춥잖아요. 그런데 신문에서 김일성이나 김정일이라는 글자가 가위에 긁혀 나갔으면 그 할머니는 작살나는 거예요. 그게 원칙이에요. 이 10대 원칙이라는게 사람을 죽이게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30년, 40년 동안 그 테두리 안에서 살면서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야, 우리 자식이나 우리 손주 때 되면 저렇게 숨 안 막히고 살 수 있겠나?'하는 겁니다.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겁니다.
예컨대, 신년사같은 것을 학습을 합니다. 밥 먹는 사이에 유치원 아이 한놈이 발발발 기어가서 거기다 그림을 그립니다. 그럼 모르고 그냥 나갑니다.《위대하신 김일성 동지 혁명사상 연구록》이란 책이 있거든요. 북한주민 들 그거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1월 1일 당에서 검열을 합니다. 신년사를 제대로 발췌해 왔는가 하고. 첫 장 펼치는데, 김일성의 초상화에 색연필로 그어놨어요, 얼굴에 수염도 그리고. 이런 비상사고가 없습니다. 당 중앙위 원회 조직지도부에 '직보'라고, '직행보호'라고 해서 '직보'라고 하는데, 이건 김정일이한테도 보고되는 사항이에요. 할아버지가 항일 빨치산이고 아버지가 낙동강 때 인민군 연대장이고 그래봐야 쓸데없어요. 좋은 뿌리 집안이면 ―평양시에 삼신탄광이 있습니다― 6개월 동안 탄광에 무보수노동 나가야 絳求? 가서 탄광노동자랑 똑같이 탄광 캐야 합니다. 6개월 동안 불평을 안 하고 그냥 일 잘하면, 그냥 제자리에 복귀되고, 만약 한 번 자빠지기라 도 해서 "개새끼들, 잘 해먹어라," 이런 소리 한 번이라도 하면, 그건 완전 히 가는 겁니다. 그 사람 혼자 피곤한 건 그 사람 혼자 피곤한 건데, 외교부 6국이면 6국이 한 보름 동안 '왜 이런 현상이 나왔느냐, 당신들은 혁명동지로서 여태까지 뭘 했느냐?' 그러면 자아비판을 해야 되는 거예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살아보지 않으신 분들은 모릅니다. 제가 요만큼도 보태는 게 없습니다.
제가 이제 경제적인 측면들을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북한이라고 하는 나라에서는 중국식의 개혁은 절대로 못합니다. 당의 기구나 당이념을 그대로 두고 경제만이라도 시장경제로 넘어가는 그런 부분적인 개혁도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왜 불가능한가 제가 말씀을 드리면요, 이제까지 북한주민들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어놨어요. 제가 1979년도에 스위스 제네바에 첫 임명을 받았어요. 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외교부를 들어왔다 처음으로 나갈 때, 전 북한이 정말 세상에서 제일 잘 사는 세상인 줄 알았어요. 그러 니까 자본주의에 대한 개념이 '빈익빈 부익부' 개념이어서, 잘 사는 놈들만 몇이 벤츠차 타고 다니지 자본주의 나라에서 대다수는 길바닥에 종이박스 깔고 앉아 있고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스위스에 가기 위해서 처음에 모스 크바에 갔다가 동부독일에 갔다가 프랑스에 갔다가 제네바에 들어갔는데, 갈 때마다 딴 세상이에요. 모스크바가 그 때 79년도였는데, 공산주의사회가 완전히 실현됐더라구요. 뭐 맥주, 사과, 치킨 팔죠. 맥주를 길바닥에서 막 팔아도 되나 의심스럽더라구요. 북한에선 티켓 가지고, 그 티켓은 예비표라 하는데, 그 예비표 가지고 줄서서 맥주 사먹고 그랬는데, 이건 티켓도 없이 막 파는 거예요, 대낮에. '이거 대낮에 술 먹고 다니면 혁명은 언제 하나'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모스크바에서.
모스크바에서 조금 있다가 동부독일에 갔는데, 동부독일은 완전히 공산주의 할아버지가 실현된 나라예요. 뭐 일반교통부터 시작해서 시내교통부터 시작해서, 뭐 아주 말할 수 없이 좋아요. 프랑스 들어갔다가 스위스 들어갔는데, 제가 스위스 들어가서 처음으로 기가 막히다고 생각한게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수도꼭지가 없어요. 소변을 봤는데 수도꼭지가 없어요. '야, 이거 이상하다.'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수돗물이 나와야 손을 씻죠. '아, 이거 외교관 학습때 배운 거니까 남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사람 하는 대로 하자.' 한 사람이 들어왔어요. 근데 손을 탁 갖다 대니까 물이 쫙 나오는 거라. '아이고, 이거 탁 대면 물이 나오는구나.' 그래서 손을 탁 대니까 물 이 나오는 거예요. '아, 이거 어디 눈이 달린 모양이구나.' 그게 지금도 생각하면 창피한 얘기지만 아주 웃기는 얘기지요.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가 있 는가 한 겁니다.
제가 대사나 선임 외교관들한테 물어봤죠. '여기 거지들 많고 매춘도 많고 그렇다는데, 자본주의 나라는 그렇다는데 거기 한 번 가보자' 그러니까, '그런게 없어' 그래요. '아니, 그러면 틀리잖아, 우리 배운거 하고' 그랬더니 '아, 그건 전반적으로 그렇다는 소리야'하고 그럽디다. 그게 지금도 생생 한데 북한주민들 대다수가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어요. 북한 텔레비전에서 미국 보여주면 뉴욕 전철밖에 안보여줘요. 뉴욕 전철 바닥에서 신문지 깔 고 자는 사람들 있죠, 그 다음에 깡패들하고 싸우는 거. 미국 CNN에서 부정적인 것만 보여주니까, 북한의 많은 사람들은 뉴욕은 지하철이 얼마나 큰지 미국사람들이 다 지하철에 들어가 산다 그래요. 제가 말한 건 일반론을 이야기한 겁니다.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많아요. 또 한 가지 저보고 여기 와서 '뭘 보고 싶으냐?' 그래서 '청계천에 한 번 가겠다' 그랬어 요. 청계천은 왜? 전 외교관이고, 한국에 관한 영상화면도 많이 보고, 나가 서 한 10년을 살아보곤 했지만 어쨌든 북한처럼 생각하는게 조금 있었거든 요. 어쨌든 후진 그런 구석이 있을 것 아니냐 했던 거예요. 내가 자꾸 청계천 가자고 그러니까 갔어요. 대한적십자 앞에서부터 죽 타고 지금 마장동 견인차 있는 데까지 지나오는데, 이거 뭐 10분도 안 됐는데 다 지나온 거라. '아, 청계천이면 물이 있어야 되는데 왜 없냐?' 했더니 물을 다 메워 채웠대요. '아, 그럼 여기 있던 판잣집은 다 어디 갔냐?' 그랬더니 이거 뭐 50 년대, 60년대 소리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북한사람들은
아직도 그렇게 믿으면서 살고 있어요.
제가 덜도 말고 더도 말고 한 가지만 실례를 더 들면요, 지금 여성분이 저기 앉아 계신거 같은데, 아니 이상한 소리는 아닙니다. 88년도 6월에 당 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대외선전담당 부부장이 와서 남조선에 대해서 강연을 했었어요. 무슨 얘기를 했느냐 하면, 남조선에 매춘부가 6백만 명이고 에이즈에 걸린 사람이 60만 명이라고 강연을 했어요. 강연이야 일주일에 한 번, 두 번씩 하는 거니까 상당한 경우에 많이 졸아요. 그런데 매춘 부 소리도 나오고 흥미있는 얘기니까 깨어나서 다 듣는 거라. 그래서 끝나고 나왔는데 한 친구가 그랬어요. '남조선 인구가 4천만이라는데, 남녀 비율 이 반반이라고 치면, 남자 2천만이니까 여자 2천만 남고, 할머니, 어린애들 은 그런 거 못할 테니까 그거 절반 빼면 천만인데, 그러면 생산성을 가진 여성들의 60%가 매춘부라는 얘긴데, 그래도 그건 너무한 거 아니야?' 그리 고 또 나이 다 될 때까지 그런 일을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은 젊은 여자들은 다 그거 하는 거라는 계산인데, 그러니까 이상하다 그랬어요. 그 런 곳에는 항상 통보원이 있습니다. 강연을 하면 당원들이나 일반 직원들의 반응이 어땠는가 하는 것을 당에다 통보하는 사람이 있어요. 담배 피우면서 누가 이런 소리를 했습니다, 하고 통보하는 건데, 이제 이 말도 통보직원한테 들어갔어요. 사실 통보직원도 생각해 보니 좀 이상한 거라. 그래서 그 말한 사람을 직접 혼내지 않고, 선전선동부 대외선전과에 일부러 올려버렸 어요. 그러니까 이놈들도 아차, 우리가 잘못했구나 한 거죠. 불리다 불리다 보니까 그게 너무 불려진 거라. 그래서 그게 60만 명으로 줄어버렸어요. 매 춘부 6백만 명이 60만 명으로.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주민들을 교육해 왔습 니다.
이제 개방을 해놓으면 4∼50년 동안 거짓말한 것이 다 나올 거 아닙니까? 자기가 백두산에서 2월 16일 출생을 했는데, 2월 16일이면 겨울아닙니까? 영하 30∼40도 되는데, 겨울에는 천둥 치고 번개 치고 하는게 없어요. 그 런데 김정일이 태어날 때는 그날만은 천둥이 치고 번개가 치면서 김정일이가 태어났다, 일제가 착취하고 그러는게 너무나 가슴아파서 불심이 불타서 영웅이 태어났다,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너무나 거짓말을 많이 한 겁니다. 그런데 개방이 돼서 한국에서 중국에서 미국에서 다 들어가면 모든 게 들통 나니까 곤란한 겁니다. 생각해 낼 수 있는 경제방법은 변칙적인 경제방법밖 에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84년도에 북한에서 처음으로 합영법이란 게 나왔어요. 외국기업과의 합영법이라는 게 나왔는데, 제가 지도를 잘 그릴 줄 모르는데, 이게 압록강이고 여기에 신의주가 있습니다. 신의주를 경공업도시로 개방할 것을 부총리급에 서 교수들 학자들하고 만들어냈는데, 그 때 어떤 식으로 하자고 했느냐 하 면, 이게 압록강이고 여기가 서해바다인데 여기다 운하를 판다는 거예요. 한 10m 깊이 3m짜리 운하를 파 가지고 압록강을 이리로 통과시킨다 이거예요. 그럼 신의주가 떨어져 나가는 거예요. 여기다 다리를 두 개를 건설해 서, 들어가는건 이 다리로만 들어가고 나가는 건 저 다리로만 나가게 해서 여기 보초를 세우는 거예요.
하여튼 여기서 경공업을 해서 신발, 피복 이런 것을 생산해서 외국에 팔아서 외화가 들어오면 그걸 가지고 근처의 주민들을 먹여 살린다 이거예요. 본토하고 격리시키는 방법을 했다가 김일성이한테 굉장히 혼났어요, 그거 말도 안되는 거라고. '에이, 서해바다는 안 되니까 동해바다 쪽으로 나가자' 고 해서, 김일성이가 죽은 다음에 여기 나진 선봉에 눈을 돌렸습니다. 얼마 정도 개방을 한다는 건데요. 여긴 러시아고요, 여긴 중국입니다. 이건 평상 시에 건너가라고 해도 못갑니다. 북한쪽으로 철조망이 쌍겹으로 쳐 있고 러시아쪽으로 철조망이 한겹으로 쳐 있습니다. 중국쪽 역시 마찬가지입니 다. 이쪽은 뭔지 아십니까? 백두 개마고원 시작하는 곳입니다. 여긴 2,000m 이상이라서 사냥꾼들도 잘못하면 굶어죽습니다. 이리떼나 승냥이떼 들한테 죽던가. 상당한 고산지대입니다. 길은 여기 철도가 하나 있어요. 그런데 여긴 바닷가입니다. 북한은 바닷가 해안선에 철조망을 쌍겹으로 쳐놓고 그 가운데다 나무로 철조망을 세워놨는데, 이게 거길 사람이 넘어가면 힘이 없어서 넘어지게 되어 있어요. 흔적을 남기게 되어 있는 거죠. 이 가운데로 15m 정도 모래밭을 해놨는데, 국경경비대원들이 매일 아침 씁니다. 발자국 있나 확인하는 거예요.
여하튼 이런 장소에 개방이라는 것을 하고 있어요. 이제까지 너무나 사람들한테 속인 게 많아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한국기업이든 미국기업이든 들어가 보면 허허벌판이에요. 아무것도 없어요. 토지개발공사라고 해서 땅덩어리 파놓은 정도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북한사람들은 땅만 조금 내놓으면 물밀듯이 외국에서 들어와서 건설해놓을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처음에. 그런데 자본가들이 그렇습니까? 돈 한 푼 가지고 얼마나 따지는 자본가 들입니까. 북한은 부분적이면서 변칙적인, 실현가능성이 없는 그런 개방으로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엔 제가 대외정책에 대해서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까지 대외정책을 어떻게 해왔느냐 하면 사회주의 나라들과 동맹하고 비동맹 나라들과 동맹하면서, 조국통일에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였습니다. 북한 외교부장 김영남의 방에 들어가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우리나라의 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두 가지 요건이 있습니다. 첫째로, 국제적 혁명역량과 관계를 강화해서 국제적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고, 또 하나 는 남조선 혁명역량을 강화시켜서 내부적인 역량을 축적하는 것입니다. 외교부의 임무는 당국제부, 당통일전선사업부와 삼위일체가 되어 우리나라의 통일에 유리한 국제적 정세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통일에 유리한 국제적 정세를 조성한다는 것은, 남조선에서 미제침략군을 내보내고 미군기지를 철수시킨 후 다시는 우리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당국제부, 당통일전선사업부가 하여야 하는 과업입니다. 북한이 이런 외교방침을 하다가 동구권이 무너졌어요. 가장 중요한 사회주의나라권이 없어졌어요. 또 비동맹이라는게 사실은 아주 허수아비예요. 남남협조라는 말을 북한에서 많이 썼는데, 김영삼 대통령 유럽갔다 탄자니아 대통령을 만났어요. 그 대통령이 굉장한 공산주의잔데 어떻게 김영 삼 대통령하고 만났어요. 아직 그 나라에 한국은 외교관도 몇 안 나가 있어 요. 북한은 아프리카에서 탄자니아를 거점국가로 분류해서 굉장히 많은 돈 을 투자했어요. 이제 그런 탄자니아까지 돌아섰습니다. 그러니까 남남협조라고 하는 것이, 예를들어 말 그대로 버스표나 있어야 어딜 갔다오기나 하지, 제대로 뭐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겁니다. 이게 남남협조라고 북한사람 들이 비하해서 말하는 거예요.
제3세계와 동구권이 무너지니까 자연적으로 자본주의로 돌아섰어요. 그러니까 89년부터 북한이 무슨 방법으로 나섰는가 하면, 주변 4강국 외교가 기본입니다. 그래서 89년부터 주변 4강국 외교에 집중을 하고 있는데, 주변 4강국 외교에 집중을 하는 것은, 제가 크게 몇 가지로 나눠보면, 첫째로, 북한이 이제까지 조선혁명의 유리한 정세를 조성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해왔는데 이게 잘 안되니까, 김일성이 말을 그대로 인용해보면, '우리 말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워싱턴에 들어가서 직접 미국놈들과 협상을 해서 조국통일문제를 풀어야 합니다'하는 식으로 나가는 겁니다. 이 4강국들 중에서 가장 힘을 붓는 곳이 미국입니다. 대미외교를 강화하는 목적은 그렇습니다. 지금 범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북한 제재 및 압력, 압박, 그런 모든 움직임의 배후가 미국이에요. 그러니까 미국 들어가서 미국만 제대로 손질해놓으면 나머지 문제는 스르르 풀린다는 거예요. 혁명문제를 비롯해서 경제문제, 안보문제 모든 것이 다 미국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고, 그래서 미국에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과의 외교는 경제문제입니다. 일본과는 다른 거 없습니다. 북한사람들 외교부에서 직접 얘기하는 바대로 엔이 필요한 거지 일본대사관이 필요한게 아닙니다. 일본으로부터 들어올 돈을 계산해서 일본과의 국교정상회 담을 갖는 것입니다. 북한이 의심하는 것은 미국, 일본, 한국이 3국이 주 축이 되고, 여기에 러시아와 중국까지 합세해 '반북한 목조르기 공동전선'이 형성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잘만 하면 미국에 들어가서 흔들어놓고 일본 들어가서 흔들어놓으면, 한미일 삼각 군사체제, 정치체제를 교란시 킬 수 있다, 이런 목적까지 추구를 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중국과의 외교인데, 제가 여러분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한가지 말씀을 드리겠는데, 김일성의 이른바 교시입니다. 김영남 외교부장에 게 1983년도에 한 교시인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김일성이가 한 말입니다. 중국사람들이 거르마니가 4개 있습니다. 거르마니라는 것은 러시아말로 주머니란 뜻입니다. 중국사람들이 친하다고 할 때는 첫번째 거르마니에 있는 속내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거르마니 내용이라는 게 그 사람 첫번째 속을 보여준다 이런 뜻입니다. 중국사람들이 껴안고 호호거리면서 당신밖에 없다 할 때는 두번째 거르마니 속내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중국사람들 세 번째 거르마니 속내용이 뭔지는 내가 중국과 60년 동안 혁명을 하면서 그 안을 들여다보았을 수도 있고 못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네번째 거르마니 내용은 모택동이나 등소평이 정도만이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에는 중국사람 들이 그렇게 교활하며 속이 깊으며 잘 속인다는 그런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김일성이 한 말입니다.
이게 결국 무슨 뜻인가 하면 중국사람들이 굉장히 못됐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북한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중국사람들이 북한하고는 '너밖에 없다', 또 한국사람 만나서는 '내가 경제협조를 하려면 당신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 이렇게 돌아가는 것처럼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못된 놈들이죠. 그렇지만 중국까지 벗어져 나가면 결국 비빌 언덕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중국과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네번째 러시아입니다. 러시아하고의 외교는 북한이 굉장히 고충을 겪었어요. 여기서 알고 계시던 것처럼 그렇게 아주 친밀한 친선, 우호, 동맹관계가 아니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김일성이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소련 놈들이 우리나라를 저희들 발뒤꿈치에 나는 사마귀만큼도 여기지 않습니다.' 사마귀 아시죠? 그것도 발뒤꿈치에 난 사마귀는 아주 귀찮은 존재라. 이게 50년대부터, 53년부터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소련이 한국과 수교하니까 속된 말로 삐졌죠. 굉장히 삐졌어요. 아주 나쁜 놈들이라고 욕을 많이 하는데, 그래도 러시아를 완전히 버리는 경우에는, 북한으로서는 동해안에 러시아 태평양 극동함대 사령부하고 남조선 반동의 동해안함대 사령부하고 북한을 원산폭격하는 합동공세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절대로 이거 놓치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래서 주변 4강국 외교가 첨예의 문제로 나섰습니다. 결국은 한마디로 이야기를 하면, 김일성이가 깔아놓은 철길로 그냥 가는 것이고, 거기서 탈선하거나 궤도변경은 없는 것인데, 그런데 기름도 떨어지고 석탄도 떨어지고 야단은 야단이다 이겁니다. 그럼 이 석탄은 누가 때주느냐? 일본 엔이 석탄을 때주는 겁니다. 김정일이 조종사고요. 남조선 사람들이 그 기차가 못 가게 검부락지도 놓고 철길에다가 어떤 땐 돌덩이도 던져놓고 그러는데, 이런 것들을 미국사람들이 좀 치워달라 이거예요. 그러면 우린 그냥 가겠다 이거예요. 이게 북한의 방향이라고 생각을하고.
제가 이제 대남정책에 대해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북한이 지금 가장 첨예의 문제로 삼는 것이 역시 자기체제의 안정입니다. 이게 잘 되면 장기화합니다. 김정일체제가 장기화됩니다. 대남관계는 최대한 냉각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이 현재까지 북한주민들을 어떤 사상적 이념으로 교육을 해왔느냐 하면, 우리가 지금 긴장되고 조금 춥고 조금 배고프고 하는 것이 세 마리 괴물 때문이라고 그랬어요. 첫번째가 미제국주의, 파카 쓰고 가슴에 털 달리고 껌 씹고 코카콜라 든 미제국주의. 두번째 괴물이 일본군국주의, 게다짝 신고 하오리 입고 아양떠는 일본. 세번째가 남조선 괴뢰군 인데, 한쪽엔 게다짝 신고, 한쪽엔 워커 신은 괴물. 이런 세 괴물 때문에 우리가 못살아왔다 그랬어요.
그런데 혁명사정이 많이 바뀌다 보니까 미제국주의라는 괴물하고 악수를 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일본군국주의한테 돈 좀 빌려달라고 하고 있고. 이제 나머지는 남조선 괴뢰군밖에 없는 거예요. 거기까지 다 관계를 좋게 맺으면 북한사람들 방향감각이 없어져요. 한 40년, 50년 동안 우리 못살게 굴던 놈들 다 어디 갔냐 이거예요. 그놈들 다 없어졌는데 왜 생활은 똑같냐 그러는 거지요. 이러면 정신적인 혼란을 가져올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남 조선에 대해 나쁘게 말한게 손가락 두 마디 정도였다면 이젠 주먹만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아, 미제국주의, 일본군국주의보다 더 나쁜게 그 놈들이었구나' 이런 식으로 알게끔 지금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대남 비방이라는 게 지금 어느 정도 수준이냐 하면요, 저는《로동신문》논평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 이거 김 대통령이 책상에다 놓고 보면 밥맛이 있을까' 하는 정도예요. 이제까지 가장 나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었어요. 그래서 칼부림밖에 할 줄 모르고 군사깡패라고 말했는데,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외교적 목표를 설정하면서 얼마나 김 대통령 욕을 하는지 박정희 대통령 욕하는 거에 비하면, 박정희 대통령은 양반이에요. 지금 굉장히 욕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을 통제하고 결속하기 위해서는 남조선 괴뢰사상이라는 어떤 추상적인 개념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미국하고 북미회담을 하면서도 한국과의 관계는 극도로 냉각시키는 그런 정책을 펴나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앞으로 남북관계를 어떻게 하겠는가 북한사람이 말한 것을 인용해보면, 김기남이라고 북한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담당 비서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김일성 100일 추모제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초보적인 인륜, 도덕마저 저버리고 동족의 불상사 ―김일성이가 죽은 것입니다―를 악용 하여 민족의 아픈 가슴에 칼질을 하며 배반의 길로 나가는 남조선 통치외교는 나라의 평화통일의 앞길에 엄중한 장애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이 자들의 반민족적, 반통일적 만보대죄는 결코 용서되지 않을 것이며 응당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 굉장히 한국에 대한 증오심을 주민들 속에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거 뭐 한국사람은 몇 사람만 빼고 다 죽일 놈들이라는 거지요. 몇 사람이라는 건, 북한사람들 표현방식대로 하면, 청계천에서 리어카 끄는 사람, 동두천에서 미군구두 닦는 불쌍한 우리 학생들, 어디에서 24시간씩
일하는 여성 근로자들인데, 그런 사람들 빼놓고 차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다 아오지탄광에 보낼 사람들이지 쓸 만한 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제가 외교혁명학교라는 특수한 학교를 다녔는데, 제가 3학년 때입니다. 저희 학교에 이석희라는 아주 예쁜 여자학생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1950 년 9월달에 평양으로 월북을 했어요. 후퇴하는 인민군 따라서 들어왔는데, 무슨 세브란스병원인지 어디서 피부과장하고 일본에 가서 유학하고, 굉장한 인텔리였어요. 공산주의 좋다고 따라 올라왔던 거지요. 거기는 한 학급이 12명이었습니다. 3학년 때 갑자기 교무처에서 들어와서 '이석희 학생 나오시오' 그래서 그 학생이 나갔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오지 않는 거예요. '어디 갔습니까?' 선생님이고 누구고 말해주는 사람 한 명도 없어요. 15일쯤 지났는데 우리 학교에 누가 있었느냐 하면 파키스탄 주재 대사 아들이 있었어요. 교무처에서 들어와 가지고 그 학생을 떠보는 겁니다. 그래서 뭔가 낌새를 챘습니다. '야, 창가에 가보자.' 밖에 까만 지프가 두 대가 와 있는 거 예요. 여학생이나 남학생이나 그 때 이후로 보지를 못했어요. 어쨌든 간에 북한이라는 체제는 자신들을 좋다고 하는 사람도 필요에 따라서 귀신도 모르게 없애 버립니다.
북한에서 볼 때, 지금은 여건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중국까지 떨어져 나가고. 그래서 북한은 지금 어떤 혁명역량의 축적기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러시아, 어느 날인가는 다시 공산주의세력이 정권을 잡을 수도 있다, 중국, 지금은 시장개혁으로 나가지만 어느 날인가는 황하를 가운데로 이남 이북으로 절반으로 나눠져 절반은 공산주의, 절반은 자본주의 될 수도 있다. 남조선 너네 수출 잘하고 돈 많이 번다고 그러는데, 봐라, 성수대교도 뚝뚝 무너지고, 뭐 일이 잘되기만 하겠냐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면서 지금 정말 눈물을 머금고 자제하고 있다고 봐야 되는 게 정설이지, 아예 저것들 힘도 없다는데, 총 쏠 힘도 없다는데, 금강산이나 올라가서 구경이나 해야지, 이런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아직까지는 모든 면에서 근본적인 대내정책이나 대외정책은 변함이 없다고 봐야 되는 것이 가장 정확한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북한이 어디로 갈 것 이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북한이 도달할 마지막 지점은 툭 까놓고 얘기하면 붕괴밖에 없습니다. 이건 저 혼자 생각이 아니고, 북한에서 한자리를 하는 사람들이 다 한마디씩 하는 것이, 적어도 중국처럼 개혁개방을 하지 않는 이상은 우린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모든 진행과정을 봐서 모든 순리과정을 봐서 도달할 곳은 붕괴밖에 없다, 알바니아 사태, 루마니아 사태, 동독 사태 같은 역사적 과정이 그렇게 말을 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그 기한이 어느 정도로 길고 짧은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슨 도사들이 와서 강연을 해야 되겠지요. 그 어떤 사회발전과정으로 봐서도 필연적으로 그 길로 가고 있다고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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