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사이버 시대의 시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서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가난한 사랑 노래]

이 근처 절에 스님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1987년쯤에 그 친구와 자주 가는 술집이 있었어요. 그 집의 주인 딸이 더러 나와서 심부름을 했어요. 저는 그 딸이 공장에 다니다 해직됐다는 사실을 친구를 통해 알았습니다. 그 처녀가 그 때 굉장한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사귀는 남자가 있었는데 지명수배를 당해 늘 쫓겨다니는 판이었지요. 헤어져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을 하기에 제가 술 마신 김에 큰소리를 쳤죠. 두 사람이 결혼하면 내가 결혼 장소도 마련해 주고 주례도 서 주고 축시도 써주겠다고. 그래서 마침내 둘이 결혼했습니다. 이 근처 동네 지하실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제가 주례를 서면서 시 한 편을 써주었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서 한 편을 더 썼습니다. 먼저 쓴 시가 [너희 사랑]이고, 한편 더 쓴 시가 지금 교과서에 실려 있는 [가난한 사랑 노래]지요.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제가 이 강연의 제목을 '사이버 시대의 시'라고 거창하게 내걸었는데 사실 사이버 시대의 시가 어떠한 모습으로 있을까를 확실하게 설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요새 매스컴들에서 이런 말들을 합니다. '시는 이미 죽었다. 시를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이 사 오 년 전에 비해 삼분의 일 정도밖에 시를 읽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사이버 시대 탓인 것 같기도 한데 이 시대에 과연 시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 기자들이 제게 묻기도 해요. 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도 학생들이 불안감 때문에 같은 질문을 많이 해요. 이 시간에는 제가 어떤 전망을 밝힌다기보다 함께 생각하면서 사이버 시대에 시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 전에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보세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시의 시대는 있었던가. 아마 우리는 1970년대를 전무후무한 시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1930년대에 백석이 시집 {사슴}을 200부 찍었는데 약 이십 년 뒤에도 서점에서 그것을 살 수 있었어요. 대략 50부 정도 팔렸다는 얘기죠. 그 당시 가장 유명했던 정지용도 시집 재판 찍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초판으로 500부나 1000부를 찍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거죠. {청록집}도 당시에는 재판을 안 찍었답니다. 서정주의 시집도 그런 정도였어요. 좋은 시들이 잡지나 신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제법 읽히고 사랑받았던 건 틀림없지만 그 때 역시 시집이 많이 팔리지 않았어요. 그에 비해 70년대는 단연 시의 시대라 불릴 만하죠. 그 이전에 우리 현대시는 전통적인 계열의 시와 모더니즘 계열의 시로 나뉘어져 있어서 독자들에게 큰 환영을 받지 못했어요. 박정희 독재 체제가 강화되면서 시가 체제에 대한 싸움의 한 방편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지요. 그 대표적인 시가 김지하의 [오적]이겠지요. 그 때의 시는 민주화 운동과 궤를 같이하면서 한 시대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출판사에서 인세를 주고 출판하는 시집은 서정주, 유치환,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정도였을 것입니다. 제가 1973년 {농무}를 낼 때에는 어떤 출판사에서도 그 시집을 내주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제가 자비를 들여 500부를 찍었습니다. 지금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양이지요. 시의 시대는 민주화 운동의 열기 때문에 잠시 열렸던 것 같지만 사실 환상이에요. 시를 읽는 독자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출판사에서는 {농무}가 지금까지 한 30만 부 나갔다고 하지만 실제 {농무}를 읽은 독자는 5000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인사동을 지나가는데 어떤 40대 아주머니가 와서 인사를 해요. 누구냐고 물었더니 독자라고 해요. 70년대 대학 다닐 때 제 {농무}를 사서 읽은 일이 있다고 합니다.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꼼짝 못 하듯 시인은 독자에게 꼼짝 못 하죠. 반가워서 차라도 한 잔 하려고 다방에 들어갔죠. 앉아서 {농무} 얘기를 하는데 그 사람은 '농무(農舞)'가 아닌 '농무(濃霧)'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참 분위기 좋다고. 그래서 자세히 알아보니 기형도의 시 [안개]를 착각했던 거예요. 그것을 정확하게 모른다는 건 시를 제대로 안 읽었던 거죠. 사람들이 시집을 사더라도 시인이 유명하니까 사는 것이지 읽으려고 사는 것 같지 않아요. 저는 시의 독자가 많다는 데 대해서는 믿지를 않습니다.

또 하나 이런 일이 있었어요. 친구 하나가 저 북한강 쪽에서 까페를 개업했어요. 그 사람도 시를 쓰는 사람인데 제가 자기보다 유명하다고 생각했는지 개업하는 날 술은 얼마든지 줄 테니 아침부터 와서 손님 접대를 해 달라고 했어요. 저는 술을 준다면 아무 데라도 가는 사람이라 찾아갔지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을 마신 건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대개 주부들이 많았어요. 그 때 한 무리로 몰려온 주부들이 그 당시 유행하던 어떤 시집을 전부 가지고 있었어요. 그 시집이 그 자리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시집의 내용을 화제로 삼는 게 아니라 그 시인이 무슨 대학 출신이고, 운동권 출신인데 이혼했다는 것을 화제로 삼았어요. 시집을 읽어봤냐고 물으니 읽은 사람이 약 백 명 가운데 정확히 두 명 있었습니다. 그것도 다 읽은 게 아니라 일부만 읽은 것이었어요.

이런 판국이니 시의 독자 수를 시집 팔린 집계로 판단하는 건 잘못이죠. 상황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일본도 시집이 안 팔린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과 성향이 다르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금 허황되고 남 쫓아가기를 좋아해요. 어떤 책이 유행하면 그걸 읽지 않고도 사들이는데 일본 사람들은 안 읽을 건 안 삽니다. 겉으로 보기엔 일본보다 시 독자가 많아 보이지만 시를 진지하게 이해하고, 맛깔스럽게 읽는 독자는 더 많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시 말해 본질적으로 시를 읽는 독자는 아주 제한돼 있지요. 예컨대 여러분 가운데서도 시집을 사서 읽는 사람들은 20명 내지 30명에 지나지 않고, 잡지에 실리는 시를 읽는 사람도 아마 50명 선일 거예요. 거의 읽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겁니다. 이것이 현실이죠. 더욱이 사이버 시대라서 종이 책이 한물 간 시대가 온 것도 사실입니다. 컴퓨터로 얼마든지 더 빠르게 많이 볼 수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옛날에는 시가 굉장히 많이 읽혔는데 지금은 너무 안 읽힌다는 생각은 가질 필요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더라도 여러분들 가운데 시를 읽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행복을 느끼며 세상을 살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러니 시의 시대가 갔다고 너무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이제 사이버 시대에 과연 시는 죽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해보죠. 시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해 없어질 만한 것이라면 없어져도 합당한 거죠. 그러나 아직까지는 시가 이 세상에서 나름대로 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왜 시를 읽습니까? 시를 읽을 때 최소한의 어떤 즐거움이 있죠? 그것은 개그맨이 주는 즐거움과는 다른 것이죠. 어떤 자리에서 신동엽의 시를 이야기했더니 어떤 싱거운 친구가 저를 놀리려고 그랬는지 손을 들고 질문해요. 개그맨 신동엽이 시를 쓰기 시작했냐고. 여하간 시가 주는 즐거움은 소설이나 영화가 주는 즐거움과는 다른 것이 있어요. 가령 서정주의 [冬天]을 한번 읽어봅시다.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이 시에는 시를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우리말의 맛깔스러움이 있지요. 이런 즐거움을 주는 시라면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서정주 시인은 시를 재미나게 쓰는 분이죠. 저는 누구 생일이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쓴 시 중 재미나게 읽은 시가 한 편도 없습니다. 마땅한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서정주가 전두환의 환갑날 쓴 시는 참 재밌습니다. 전두환이 물가를 잡고 경제를 다졌다는 내용의 시인데 아마 물가라는 말을 시에 처음 동원한 시인이 서정주가 아니었나 합니다. 서정주였기에 그런 말을 넣어서 시를 재미나고 맛깔스럽게 만든 거죠. 여하간 서정주가 뛰어난 시인으로 대접받은 것은 그만큼 시를 읽는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시를 읽는 즐거움이 다른 즐거움 때문에 점점 줄어드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게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지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이버 시대에 시의 역할이 훨씬 작아졌다는 것을 인정해야겠지요. 그러나 시가 즐거움만 주는 것이겠습니까? 엘리어트가 말했듯이 사람은 시를 통해 생각도 하고 자기 계발도 하면서 삶의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죠. 아마 이런 생각이 20세기 이후 시의 기조가 되지 않았나 합니다. 말하자면 시는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우리 삶에 정신적인 각성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 역할도 끝났다고 한다면 더 이상 시가 존재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 역할이 아직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예전하고는 많이 달라졌죠.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고 또 자본주의의 이상이 우리가 살 만한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어요. 그러니 허무주의가 판치게 되고 돈 벌어서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것 아니냐고 여기게 되죠. 이러니 얼핏 보면 시가 할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정말 그렇겠습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나은 삶을 찾아가는 것이고 거기에 바로 시의 역할이 있습니다. 시인이란 꿈꾸는 사람이라고 하죠. 시인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뭔가 꿈꾸는 사람이에요. 또 남들이 다 그렇다고 여겨도 시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죠. 결국 시인이 쓴 시는 이 세상을 살아 나가는 데 어떠한 형식으로든 도움을 줍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옛날부터 좋아했는데 요즘 갑자기 더 좋아진 시가 하나 있어요. 이병철 시인이 쓴 시입니다. 제목은 [나막신]이에요.

'은하 푸른 물에 머리 좀 감아 빗고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 목숨 壽자 박힌 정한 그릇으로
버들잎 띄워 물 좀 먹고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삽살개 앞세우면 쓸쓸하다만
고운 밤에 딸그락 딸그락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이런 시입니다. 여러분은 나막신을 못 보셨지요? 저도 여러분보다 한 40년쯤 먼저 태어난 사람이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 나막신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나막신은 비오는 날 신는 신입니다. 그걸 신으면 굉장히 불편하죠. 그것을 신고 걸으면 어기적 어기적 걷게 돼요. 이 시는 1940년대에 쓰여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병철이라는 시인은 해방정국에 남로당에 참여하여 이 땅에 사회주의 정권을 세워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투쟁을 벌였던 사람이에요. 이 사람의 행적과는 판이하게 다른 시가 바로 지금 읊은 [나막신]이에요. 그 때 같이 바쁘고 어려운 시기에 불편한 나막신을 신고 천천히 가자는 게, 버들잎 띄워 놓고 물 마시자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 당시 비평가들 사이에서 이 시가 비판의 대상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를 읽으면 세상을 사는 지혜가 느껴져요. 요즘 같은 사이버 시대에는 모두가 초고속으로 달리지만 바쁠수록 천천히 가자는 시인의 말은 독자에게 이런 때일수록 천천히 가는 게 세상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니겠느냐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져요. 이병철이 정말 이런 시를 주기 위해 이 시를 쓴 것은 아니겠지만 시대가 지날수록 다양하고 깊이있게 읽혀지는 시는 즐거움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도 주니 쓰여진 지 한참 지난 이 시대에도 나름대로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지요. 세상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시가 제 역할을 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들은 제가 낙관주의자이고 시가 없어지면 먹고 살기 힘들어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사이버 시대의 문학은 하드가 바뀐 것일 뿐 소프트는 바뀌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하드는 하드고 소프트는 소프트죠. 어찌 보면 문학은 거센 시대의 흐름에 나름대로 잘 대처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닥칠지 모르지만 시가 없어지거나 아주 달라지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저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는데 한 학년이 약 40명이었고 국문과도 40명 정도였어요. 국문과와 영문과는 같이 공부하는 경우가 많아 늘 같이 어울렸는데 한 학년 80명 중에 시를 열심히 읽는 사람은 단 여덟 명뿐이었습니다. 나머지는 거의 시를 안 읽거나 시를 무시했어요. 우연히도 그 때 시를 열심히 읽던 여덟 명은 모두 시인이 됐어요. 우리 나라는 참 시인이 많은 나라죠. 남산에 올라가 돌을 던지면 시인 머리에 맞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버스 사고 나서 사람 다쳤다고 가 보면 항상 시인이 한 사람 끼어 있다는 것 아닙니까. 결국 시를 읽는 사람은 언젠가 다 시를 쓰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시인은 산소 결핍증을 제일 먼저 알아내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겠지요. [25시]를 쓴 게오르규 잘 아시죠? 그가 1975년도에 정부초청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저희들이 말하자면 반체제 운동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개했습니다. 당시 수 백 명이 감옥에 가 있었고 더군다나 김지하 시인이 사형언도를 받고 형무소에 갇혀 있었죠. 그런 상황에 정부 초청을 받고 와서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에서 강연을 한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맹렬히 비난했죠. 그 시기는 상상도 못할 만큼 어려웠던 시절입니다. 박정희 욕을 하다 잡혀가는 것은 보통이고 지금 여러분들이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정지용, 이용악, 백석 같은 시인의 시집을 가지고 있다가 걸리면 잡혀서 김방에 갔습니다. 저도 한 때 오장환이 번역한 예세닌 시집 복사한 것을 가지고 있다가 남산의 정보부에 잡혀가 불도 안 들어오는 지하실에서 여러날 조사받고 나온 일이 있을 정도였어요. 우리는 게오르규가 한국 정부를 칭찬하는 시시한 소리나 해대겠지 추측하고 강연에는 가지도 않았어요. 그 뒤에 게오르규가 강연한 내용이 신문에 나왔어요. 강연 제목이 '시인의 사명'이었어요. 내용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독일에서 잠수함을 처음 만들었을 때 잠수함에 토끼를 태웠답니다. 바다 깊이 들어가 산소가 부족할 때에는 제일 먼저 토끼에게 이상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러면 승무원들이 산소가 부족한지 알아채고 수면으로 떠오른 다는 거지요. 게오르규가 말하길 시인이 바로 잠수함의 토끼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신문을 읽고 나서야 강연에 가지 않고 게오르규 욕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사이버 시대에도 우리 시인들이 해야 할 역할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태까지 사이버 시대에 시가 해낼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을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시가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면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겠지요. 제 시를 포함한 1970년대, 1980년대의 민중시를 생각해 봅시다. 시 자체만으로 볼 때 그 때의 민중시 가운데 극많은 시가 실패한 시라고 봐요. 민주화 운동의 열풍 때문이었는지 저마다 이념과 주장으로 시인 행세를 했던 사람들은 많은데 그들은 시가 주는 즐거움에 대해서 간과했던 거죠. 아무리 내용이 훌륭하면 뭐합니까. 사회적인 의미를 빼면 통 재미가 없어서 읽을 수가 없는데. 1930년대 프로 시가 실패한 것과도 같은 이치지요. 그 시인들이 시를 읽는 즐거움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참여시가 우리 시사에서 더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을 것입니다. 어느 시인도 시를 읽는 즐거움을 외면해선 안 됩니다. 서정주나 유치환의 시를 읽으면 시를 읽는 즐거움을 느낍니다. 원래 문학이라는 것은 항상 옆길로 새는 맛이 있지요. 참여시는 가운데 길로만 가려고 했어요. 옆으로 새 보는 맛이 없었지요.

이 세상에서 제일 잘 사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법률이나 경제를 공부해서 매일 법률 문구나 숫자만 보고 살아가는 걸까요? 그러나 도저히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의 반을 차지하고 있어요. 그들은 뭔가 다른 것을 해야만 세상 살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죠. 문학이란 어쩌면 바로 그런 사람들의 것이죠. 세상이 경제 논리대로만 움직인다면 모두들 이른바 신지식인이 되어 유용한 물건을 만들고 그것을 팔아 부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돈만 버는 사람이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면 참기 어려운 사람이 많을 거예요. 그 사람들을 위해 문학이, 시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저와 같이 문학 공부를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공부를 잘해서 서울 법대를 갔어요. 학교를 졸업한 후 관계에 나가 출세를 했습니다. 제가 시를 써서 잡지에 발표하던 1956년 무렵이었지요. 그 때는 원고료도 제대로 못 받을 때였어요. 이 친구가 재미있는 친구인데, 제가 발표한 시를 가져오면 자기가 원고료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최근에 저를 가끔 찾아옵니다. 그 때 아무리 고생을 했어도 문학을 할 걸 괜히 나갔다고 후회를 합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다시 시를 쓰는데 부인이 돈도 안 되는 시를 쓴다고 투덜거린대요. 이 친구가 홧김에 가출하여 이틀씩이나 제가 있는 집에 있다가 돌아가기도 했지요. 이 세상 절반의 사람들에게는 다 그런 갈등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있는 한 결코 시가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시는 언어를 재료로 삼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간의 소통을 전제로 하지요. 그러니 시가 사회성을 갖는 게 당연한 겁니다. 순수시인의 내표적으로 들어지는 김종삼은 시가 사회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시가 그냥 재미있으면 좋지 않은가 하는 태도로 시를 쓴 시인이죠. 그러나 그의 시에서도 사회와의 관련성을 찾을 수 있어요. 다음 시는 김종삼의 [墨畵]인데 재미있으니까 한번 읽어볼게요.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이 시는 이중섭의 그림을 보고 쓴 시 같아요. 그러나 이중섭의 그림이 전해주지 못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는 구절에는 사람 사는 고단함과 아픔, 노동하는 사람의 쓸쓸함이 배어 있습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해주지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무리 사이버 시대라 하더라도 시가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고 우리가 보다 나은 삶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시는 계속 독자의 사랑을 받을 것이고 또 존속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