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세계화 풍랑과 우리의 삶'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겠습니다. 먼저 저는 세계화가 지닌 철저한 배타성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 한 종교 사학자가 기독교가 왜 로마에서 그토록 가혹한 탄압을 받았는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기독교의 핍박이야 '쿼 바디스' 영화만 봐도 알지만, 그 이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로마의 지배층은 백성의 신앙이나 종교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팍스 로마나'로 표현되는 전쟁이나 정복 따위가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국력의 바탕은 경제력인데, 당시는 생산력의 획기적 발전을 가져올 만한 요인이 없었습니다. 농사에 의존한 사회의 경제력은 노예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즉 100명의 노예를 가진 귀족은 50명의 노예를 가진 사람보다 2배의 경제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문제가 있었습니다. 건강한 한 사람의 남자 노예와 건강한 한 사람의 여자 노예가 결혼을 하면 적어도 10년은 지나야 부려먹을 만한 나이의 노예 하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생산의 주요소인 노예 공급이 이렇게 느려서는 빠른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지배층은 전쟁을 생각했습니다. 비용이 많이 들지만 일단 승리하면 엄청나게 많은 노예를 끌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으로 얻는 노예의 재생산에 비해 전쟁을 통한 노예 획득이 훨씬 효과적이었다는 말씀입니다. 로마가 이웃 나라들과 열심히 전쟁을 한 것은 이렇게 노예의 증가가 국가의 경제력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판국에 백성들의 신앙 따위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가 시장 바닥에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이것이 신이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거기 절을 하고 돈을 던졌습니다. 나무때기를 걸어놓고 이것이 신이다라고 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지배층의 관심 밖에 있었습니다. 만약 기독교도 나와서 십자가를 걸어놓고, 다른 이들처럼 '이것이 하느님이다'라고 했다면 별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는 자기만이 진짜 하느님이고, 다른 것은 우상이고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대강 짐작하셨겠지만 돌무더기와 나무때기는 신앙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주인들이 밥을 버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런 판에 기독교가 자기의 신만이 구원을 갖다주고, 돌무더기와 나무때기는 가짜고 거짓말이라고 했을 때 그들이 느낀 위협이 어떠했겠습니까? 누가 내 밥을 빼앗으려고 할 때 그 싸움은 생사를 건 싸움이 됩니다. 2000년 전의 로마 사회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엄청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사회가 불안하면 지배층인들 편안할 리가 있겠습니까? 하층민의 종교에 무관심하던 로마의 지배층은 이 사회 불안이 체제 도전으로 비화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권력이 종교에 개입한 것이지요. 기독교도들에게 사자를 풀어놓을 만큼 참혹하게 핍박했지만 결국 기독교가 승리했습니다. 이 승리 이후 서구 2000년의 역사를 기독교가 지배했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이와 같은 기독교의 교리의 철저한 배타성인데, 그것이야말로 세계화 현상에 첫 번째 특징이 됩니다.

현재 지구에는 60억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지구가 생긴 뒤 지금까지 이 세상에 살다가 죽은 모든 사람을 합치면 600억이 될지 6000억이 될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당신은 어떠한 삶이 행복한 삶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요? 아주 다양하고 복잡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아마 몇 가지 단어로 뭉뚱그려질 것입니다. 풍요라든가, 자유라든가, 정의라든가, 평화라든가, 그런 것일 듯합니다. 히틀러나 스탈린도 평화를 얘기하고 정의를 내걸었습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유태인을 죽이고, 체제의 정의를 위해 반동 세력을 숙청했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행복을 약속했던 이념과 체제를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제3의 길, 이런 것들이 우선 떠오릅니다. 자본주의가 무엇입니까? 어려운 설명 대신 두 사람이 씨름하는 장면을 생각해보지요. 하나가 다른 하나를 쓰러뜨렸습니다. 이때 우리는 주변의 가족이나 친지에게 "잘 보라고. 이긴 사람이 어째서 이겼는지를. 그는 힘이 세거나, 꾀가 있거나,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기 때문이야. 너희도 이기려면 그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기 무슨 잘못이 없습니다. 자본주의란 이렇게 경쟁에서 이기는 힘, 즉 경쟁력을 특별히 중시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긴 사람뿐만 아니라 진 사람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구의 60억 인구 모두가 이길 수는 없고, 그중에는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가난과 압제와 차별은 이기지 못한 사람의 몫입니다. 어쨌든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런 식의 발전을 반대하는 집단이 있습니다. 그들은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사람 냄새를 맡으면서 살자고 말합니다. 사회주의자들은 돈 냄새 아닌 사람 냄새 말입니다. 갈래는 다르지만 환경론자들도 여기 가담합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문명이 정녕 이런 것인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고, 물도 마음놓고 마시지 못하며, 인류가 몇 만 년 동안 먹어온 쇠고기·돼지고기를 비롯해 밭에서 캐낸 푸성귀 하나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그들은 과연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낸 문명이냐면서 늦게 가더라도 사람답게 살자고 말합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모두 거부하고 제3의 길을 걷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유 경쟁을 통해 빠른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장점과, 개인의 경쟁력보다는 사회 전체의 효율을 앞세우는 사회주의의 목표를 이상적으로 조합하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에도 사회주의에도 실망한 제3세계에서 이런 구호와 깃발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제3의 길이든, 그것은 결국 우리의 삶을 자유롭고 정의롭고 평화롭고 풍요롭게 만들자는 구상입니다. 이상적으로 말하면 거기 선택의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자 나는 자본주의를 가지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 테니, 너는 사회주의를 가지고 만들어봐, 그래서 누가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었는지 비교해보자고. 이런 공정 경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세계화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자본주의로 세계를 통일하자는 것이고, 자본주의 밖의 다른 제도는 사탄이고 우상입니다. 세계화가 과연 저의 말대로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질서로 세계를 통일하려는 배타적인 논리인가라고 묻고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대답은 분명히 그렇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생각해보지요. 거기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현안은 쌀 시장 개방이었습니다. 글쎄 이런 비교가 정확할지 모르겠으나 세계 전체의 무역량을 축구공으로 친다면, 그중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탁구공 정도였습니다. 그 가운데 쌀이 차지하는 비율은 좁쌀 하나 크기나 될까요? 게다가 쌀은 자포니카와 인디카 품종으로 나뉘는데 서구인들이 먹는 인디카가 교역의 대종을 이루고, 자포니카는 일본과 한국 사람 정도가 먹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쌀 문제를 그리 심각한 현안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축구공을 놓고 싸우는데 그까짓 좁쌀 하나가 무슨 문제랴 하는 안이한 생각이었지요. 또 적당히 매달리거나 떼를 쓰면 어떻게 통할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계는 그 좁쌀 하나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 농민이 스위스 협상 현장 가서 할복을 하면서 쌀은 여타의 교역 품목과 다르다고 외쳤지만, 세계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계화가 지닌 철저한 배타성의 논리를 읽을 수 있습니다. 즉 생산은 생산비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결정되어야 하며, 그 외의 다른 사정 따위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한 가마에 15만원 하는 쌀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수입하면 5만원 정도가 됩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쌀 농사를 짓는 대신 미국 쌀을 수입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란 결론이 나옵니다. 세계화는 이런 논리로 세계의 생산 구조를 재편하려고 합니다.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쌀 수입으로 쓸모 없게 된 한국의 논을 축구 연습장이나 자동차 면허 시험장으로 바꿔버린 뒤에도 그들이 과연 5만원에 쌀을 수출할까요?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만약 한국에 논이 없고 쌀이 떨어진다면, 그들은 5만원이 아니라 15만원을 부르고 30만원을 부를 것입니다. 세계의 생산 원리는 비교 우위, 즉 생산비밖에 없다는 세계화 논리의 결말이 이러합니다.

배타성에 이어지는 세계화를 특징짓는 두 번째 요소는 신자유주의입니다. 신자유주의의 할아버지쯤에 자유주의가 있습니다. 100여 년 전에 횡행한 자유주의는 오늘의 신자유주의 횡포와 비슷했습니다. 지구에는 임자가 없다, 그러므로 먼저 차지하는 것이 임자라는 논리로 약소국을 마구 집어삼켜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그게 바로 제국주의이고, 그 모순이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폭발했습니다. 현재의 상황 역시 이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은 군대를 보내는 대신 상품과 자본으로 세계를 분점하고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시장은 미국이, 아프리카 시장은 유럽이, 아시아 시장은 일본이 차지한다는 식입니다. 자유주의와 제국주의의 모순으로 제1차 대전이 폭발했던 것처럼 신자유주의로 인한 세계 재앙이 초래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신자유주의를 현재의 철학적 풍조로 풀이하면 각종 '포스트' 신드롬이 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마르크시즘…포스트 유행이 한창입니다. 여기 부정적인 면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세 서구의 절대 가치는 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계몽주의 이후 신에 대한 절대적 복종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이 계셨던 자리를 이성이 대신 차지한 것이지요. 우리는 이성이란 것을 본 적도, 만진 적도 없지만 이성이란 말만으로 그 권위에 복종합니다. 이성과 합리성은 슬며시 사회 질서를 주도하는 기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를테면 그것은 이성의 명령이고, 합리적인 판단이야 하면 고개를 숙이게 마련입니다. 신의 권능을 이성과 합리성이 점령한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새로운 신, 즉 이성에 대한 철저한 야유입니다. 이성을 받든다면서 가스실에서 500만 명을 죽여? 합리성을 내걸면서 사람 머리 위에 원자탄을 터뜨려? 이 얼마나 시원한 야유이며 통쾌한 반문입니까?

얼마 전에 세미나 관계로 일본 히로시마에 다녀왔습니다. 그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원자탄의 효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살상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방사능 폭풍이 넓은 지역으로 퍼져서는 안 되는데, 이런 문제까지 고려하여 산으로 둘러싸인 시가 중심부에 폭탄을 떨어뜨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쟁 종결을 위해서 원자탄으로 겁을 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원자탄의 파괴력, 즉 인간에 대한 살상력을 실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서구 문명이 숭상해온 합리성인가? 계몽적 모더니즘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러한 고발은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측면이 있습니다.

성(性)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들은 날카로운 고발을 하고 있습니다. 서구 문명은 인간 중심의 헬레니즘과 신 중심의 헤브라이즘의 싸움의 산물입니다. 그리스나 로마 신화에서 보듯이 헬레니즘에는 일부일처의 개념이 없었습니다. 올림푸스의 신들이 바람을 피우지 않습니까? 그러나 신약 시대의 헤브라이즘이 득세해 헬레니즘 전통에 승리하면서, 성 윤리에 대해서도 크리스천 교리가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세 때는 강간보다 마스터베이션이 훨씬 큰 죄였는데, 그것은 마스터베이션이 생명을 버리는 행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독교 윤리가 자리잡으면서 성이란 무언가 좀 부끄럽고 감추어야 할 대상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성이 과연 부끄럽고 감출 대상인지 여부는 주간지 한 권만 읽으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부끄러운 척하고 감추는 척하면서 뒤로 '호박씨'를 까지 말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야유가 오히려 정직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폭로와 파괴 이후에 대안이 없다는 점입니다.

세계화의 세 번째 특징은 사회적 다위니즘(Social Darwinism)입니다. 다위니즘이란 자연계의 약육강식 원리입니다. 이를 인간 사회로 확대시킨 사람이 허버트 스펜서이고, 그의 주장을 흔히 사회적 다위니즘이라고 부릅니다. 현재의 세계화 조류에는 이 사회적 다위니즘의 요소가 다분합니다. 그 하나는 기술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측면입니다. 기술적 문제란 소위 80ː20 사회를 가리킵니다. 인류는 앞으로 선택된 20명과 선택되지 않은 80명 부류로 나뉘게 된다는 뜻입니다. 제레미 리프킨의 책이라고 기억되는데 거기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지구가 현재와 같은 생산력 발전 속도를 유지할 때 2015년쯤에는 고용의 2% 정도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껏 우리가 누려온 발전 혜택을 그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100명 중에 2명만 있으면 되고, 나머지 98명은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이윤 위주의 시장 경제가 그 정치적 측면입니다. 노동 시장의 유연성 강화라는 미명 아래 가해지는 고용, 임금, 근로 조건 등에서의 각종 공세가 여기 속합니다. 정리 해고가 무엇입니까? 이윤을 내기 위해 근로자한테 회사를 떠나라는 강요 아닙니까? 그것을 막아야 할 정치가 오히려 경쟁력 강화 명분으로 그것을 부추기고 있는 형편입니다.

시몬 포레스테라는 프랑스 여류 평론가의 {경제적 공포}라는 책이 있습니다. 문학 평론가가 쓴 경제 이야기인데 거기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대체 당신이 이 세상을 살 자격이 있는가?" 하느님이 생명을 주고 부모가 태어나게 했으면 그만이지, 아니 뭐 살 자격이 있느냐고?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그 질문의 의도를 곰곰이 씹어봤습니다. 하느님과 부모 다음에 당신의 살 자격을 결정하는 것은 이윤을 창출하는 일에 당신의 노동력이 유익하지 아닌지를 증명하는 것이란 말이었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곳이 바로 직장 아니겠습니까? 그 직장이 너무 쉽게 살 자격 여부를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저는 사회 안전망에 몹시 두려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씨름에서 이긴 2명이 자기의 몫을 나머지 98명에게 나누어줄까요? 그렇다면 코피 나게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아우슈비츠를 만들어 '인종 청소'를 하면 될까요? 우리는 그토록 잔인하지 못합니다. 누구도 지금 공룡의 멸종에 통곡하지 않습니다만, 그 98명의 낙오와 소멸에 대해서 공룡의 멸종처럼 무관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장치가 사회 안전망이 아닌가 합니다. 입니다. 우리에 가둔 동물처럼 목숨을 이어갈 최소한의 생활 자료만 주고, 우리 밖으로의 탈출을 막는 것이 사회 안전망의 종착점이 될지 모릅니다. 이 자리의 우리는 이긴 2명에 들었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사실은 이기지 못한 98명에 속할 수도 있습니다.

세계화의 가장 적나라한 한 단면이 투기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투기는 항상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생산에 기생할 때는 별 문제가 없지만, 생산 자체를 위협할 때는 문제가 커집니다. 악어새가 악어에 기생하는 것은 괜찮지만 악어를 죽이면 안 됩니다. 이런 걱정 중의 하나가 주식 투기입니다. 여러분이 증권시장에서 100만 원을 벌거나, 벽돌 공장에서 일하고 100만 원을 벌거나 그 결과는 꼭 같습니다. 어쩌면 주식 투기로 버는 쪽이 여러분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평가되어 더 많은 박수를 받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도 그럴까요? 내가 증권시장에서 100만 원을 벌면 누군가 반드시 100만 원을 잃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벽돌 공장에서 100만 원을 벌었을 때는 누군가 100만 원을 잃지 않아도 됩니다. 그만큼 부가가치가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투기이고 교환이며, 후자는 투자이고 생산입니다. 사회 전체가 생산을 중시하고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때의 투기는 별 문제가 없지만, 사회가 생산을 포기하고 투기에 매달릴 때는 생존 자체가 위협 당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리 아이아코카의 얘기는 들어둘 만합니다. 그는 경주용 자동차 무스탕을 만들어낸 신화적 인물로서 포드자동차의 최고 경영자(CEO)였습니다. 1980년대 미국 3대 자동차 회사의 하나인 크라이슬러가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습니다. 마침 사주와 갈등을 빚고 아이아코카는 포드사에서 쫓겨나는데, 위기에 처한 크라이슬러가 그를 불렀습니다. 거기 가서 회사를 다시 살린다면 세계적인 스타가 되겠지만, 행여 실패하면 이왕의 명성마저 잃기 때문에 그는 무척 망설이다가 초빙에 응합니다. 아이아코카 자신이 제시한 보수는 연봉 1달러였습니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어느 날 아침 직원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공장을 둘러보니 웬 젊은이 하나가 자동차 조립 라인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기술자라면 작업복을 입고 기름때 장갑을 꼈을 텐데, 그는 깨끗한 셔츠에 넥타이가 단정했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습니다. 그 젊은이는 최고 명문 대학의 경영학 석사(MBA) 출신으로, 쾌적한 사무실에서 키보드 몇 번 두드리는 것으로 엄청난 보수를 받는 사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소음과 먼지투성이의 조립 라인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얼굴을 붉히며 그가 고백하는 사연인즉 이 땀내 나는 과정을 몰라도 봉급 받고 출세할 수 있지만, 대체 자신의 봉급이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지를 알고 싶어서 직접 나와서 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특한 젊은이를 격려한 뒤 아이아코카는 이 사실을 칼럼으로 썼습니다. 미국은 왜 일본에게 지는가? 땅이 작은가? 자본이 부족한가? 머리가 나쁜가? 기술이 모자라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은데, 왜 미국이 만든 자동차는 팔리지 않아 창고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일본 수입차는 미국 전역을 누비며 다니는가?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 나는 그 대답의 하나를 찾았다. 가장 머리 좋은 젊은이들이 법대에 가서 변호사가 되고,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사(MBA) 취득만 노리기 때문이다. 그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은 오히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인데 말이다. 아이아코카는 미국이 뒤지는 이유를 최고 엘리트가 생산을 피하고 안락하게 돈을 벌려는 경향에서 찾았습니다. 쉽게 벌려고 뛰어드는 투기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법대와 경영대의 커트라인이 가장 높은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이상으로 저는 세계화 유행을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첫째는 철저한 배타성으로서 세계를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로 통일하려는 시도입니다. 둘째는 신자유주의가 자유 무역을 무기로 한 세기 전의 자유주의의 행로를 답습한다는 점입니다. 셋째는 사회적 다위니즘의 관점에서 세계화 현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세계화 시대의 우리 삶이란 강연 후반부로 들어가지요. 유엔의 통계는 하루 1달러, 즉 국내총생산(GDP) 370달러 이하의 소득 국가를 극빈국으로 분류합니다. 그 1달러로 먹고, 자고, 병 고치고, 교육받고,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60억 인구 중에 무려 12억이, 인류의 20%가 이러한 극빈자입니다. 세계화는 이런 격차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벌려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증권 투기로 부자 되는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일례로 '바이 코리아' 열풍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우리 증시가 한창 호황을 누릴 때 상장 총액 300조 원 가운데 외국인 보유분이 약 60조 원 정도였습니다. 그 60조 원으로 반년 동안 벌어들인 돈이 무려 30조 원입니다. 돈을 번 것이 아니라 갈퀴로 긁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30조 원 가운데 15조 원을 소위 '빅 파이브'에서 벌었습니다. 삼성전자, 포항제철, SK텔레콤, 한국전력, 한국통신 등 다섯 노란자위 회사에서 말입니다. 삼성전자나 포항제철의 외국인 지분이 절반이 넘어, 법적으로는 이들이 외국인 소유가 되었습니다. 세계화는 이런 폭거를 자행합니다.

저는 세계화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특별히 두 가지 현상을 주목합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해오던 직장이라는 개념이 크게 변했다는 점입니다. 우리에게 직장이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생 직장이었습니다. 그러나 IMF 개입과 더불어 이 평생 직장의 개념이 깨져버렸습니다. 회사가 어려우면 종업원은 항상 자를 수 있고, 반대로 종업원에게 직장은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참으로 큰일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1980년대 미국은 자국 기업이 일본 기업이 뒤지는 이유를 심각하게 반성하고 국가적 관심사로 조직적인 연구를 했습니다. 그중 레스터 써로우 교수의 보고서가 기억납니다. 그는 일본에서는 오른손으로 걷어서 오른손으로 주는데, 미국은 오른손으로 걷어서 왼손으로 주는 제도의 차이가 미국 기업과 일본 기업의 경쟁력 차이라고 했습니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생명을 잃거나 불구가 될 때 당면한 가장 큰 걱정이 가족의 장래일 것입니다. 일본의 종신 고용 관행으로는 회사가 그 책임을 집니다. 내게 어떤 불행이 닥치더라도 회사가 가족의 장래를 책임진다면, 그 회사에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사 하나라도 더 죄고, 기름칠 한번이라도 더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미국은 그런 혜택을 기업이 아닌 보험과 연금 형태로 국가가 베풉니다. 즉 오른손으로 세금을 거두어서 왼손으로 나눠주는 것입니다. 일본의 근로자는 기업에 백골난망의 은혜를 느끼는 데 반해, 미국 근로자는 국가에 대해 당연히 해줄 것을 해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이런 관념의 차이가 일본 차는 미국에서 쌩쌩 달리는 반면, 미국 차는 창고에서 먼지만 뒤집어쓰는 이유가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종신 고용이 문제가 아니라 직장에 대한 애정, 생산에 대한 애착이 중요합니다. 소니는 일본 국내 여러 지역에 공장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공장의 제품 불량률이 다른 공장의 몇 배나 되어 소니 본사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회사 내외의 전문가가 총출동해서 몇 달이나 매달렸지만 그 원인을 찾지 못하고, 불량률은 줄지 않았습니다. 그 공장으로서는 얼마나 초조하고 민망했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공장의 여성 근로자 하나가 조사팀 책임자에게 다가와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하다가 얼굴을 붉히고 돌아섰습니다. 이를 놓치지 않은 책임자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차분히 묻자, 그 여성 근로자는 야근을 할 때 기적 소리가 나면 작업대가 조금 흔들리는 느낌이 있는데…설마 이것 때문은 아니겠지요 하고 얼른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책임자는 급히 연구진을 불러서 여성 근로자가 전한 현상을 조사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공장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 철길이 있고, 기차가 지나갈 때 아주 미세한 진동이 조립 라인을 흔들고, 그것이 제품 불량의 원인임을 찾아냈습니다. 조사팀은 공장과 철길 사이에 도랑을 파서 물을 채움으로써 그 진동을 막았습니다. 전자 산업계에 신화로 전해지는 이야기랍니다. 저 높은 양반들이 저렇게 고생하는데, 내가 뭐라도 좀 도울 수 없을까 하는 종업원의 고심과 걱정이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뭐라도 좋으니 내가 좀 도울 길이 없을까 하는 마음이 우리 기업 종업원한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니 근로자의 태도와 대비되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제게 모피 코트가 하나 있는데, 유학 시절에 장만한 것입니다. 유학생이 무슨 돈으로 모피를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 사연이 기막힙니다. 한국의 모피 제품을 수입해서 현지에 파는 유럽인 친구 하나를 알고 있는데, 어느 날 그가 모피 코트를 사러 오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모피 코트야 농담일 테고 점심이나 얻어먹을 생각으로 그의 집으로 갔더니 정말 모피 창고로 데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시중에서 1000달러나 하는 모피 옷을 100달러만 내고 하나씩 고르라고 했습니다. 모피 욕심보다는 그 사연이 궁금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불량품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아니 가난한 유학생이라고 불량품을 팔아치워? 왈칵 기분이 상했지만 천천히 그의 설명을 듣고 나니 오히려 서글픈 생각이 앞을 가렸습니다.

모피는 동물의 가죽에 물감으로 염색을 하는데, 같은 동물이라도 기름기가 많은 것과 적은 것에 차이가 있답니다. 똑같은 물감 통에 담가도 가죽의 기름기가 적고 많음에 따라서 염색이 진하거나 옅게 달라진답니다. 그 염색 상태를 전문 용어로 쉐이드(shade)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옷을 만들 때 재봉사가 쉐이드가 같거나 비슷한 것으로 상하나 좌우를 맞추면 1000달러 상품이 되지만, 쉐이드 차이를 무시하고 멋대로 옷을 만들면 100달러짜리가 됩니다. 뒷날 대회사에서 수출 업무를 맡고 있는 친구에게 화를 내며 이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 왈 그게 어제오늘 일이냐면서, 쥐꼬리 보수에 납기일 맞추려다 보면 세이드는 고사하고 틀 질 하기 바쁘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이드를 맞추면 1000달러 받을 상품을 그 여유가 없어 100달러로 끝내는 것입니다. 직장에 대한 애정이 이런 차이를 불러오는데, 어떤 의미로는 세계화가 그것을 막고 있습니다.

자 그러니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묻고 싶을 것입니다. 저는 그 대답을 알지도 못하거니와, 또 그것은 제가 아니라 여러분이 찾아야 합니다. 전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세계화 시대의 총아인 토플과 인터넷과 영어 회화를 열심히 하십시오. 그러다가 가끔, 아주 가끔 국가가 뭐고 민족이 뭔지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세계화 시대에 국가와 민족이라니? 이거 뭐 잘못된 것 아냐 하고 생각하겠지만, 제가 여러분의 가슴에 꼭 한마디 남기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시대에 뒤떨어진 충고입니다.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읽어보셨습니까? 거기서 읽은 터키 얘기가 제 가슴을 후벼팠습니다. 한때 로마 제국을 정복할 만큼 막강했던 터키는 근세에 세계사의 주변부로 밀려났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권력을 잡은 청년 장교들은 터키의 근대화는 오직 서구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 국교를 폐하고, 전통적인 복장을 없애고, 고유의 문자조차 알파벳으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가능한 한 서구식으로 개혁에 개혁을 거듭했습니다. 터키가 서구와 나란히 서는 길은 유럽연합(EU) 가입에 있다고 보고 오래 전에 가입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헌팅턴은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면 제 손에 장을 지지라고 막말을 합니다. 유럽연합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배경을 공유한 국가들의 모임인데, 터키가 아무리 분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어도 이슬람의 피는 속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입니다. 터키보다 훨씬 뒤에 신청한 그리스나 오스트리아는 벌써 가입했습니다. 토플 점수가 아무리 높고, 영어 회화를 아무리 잘해도 우리는 여전히 한국 사람입니다. 결코 터키를 흉내내서는 안 됩니다.

제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할 때 무슨 일로 벨기에 외무부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옆방이 하도 시끄러워 칸막이 너머로 바라봤더니, 아주 요상스런 복장의 흑인 여성과 미국 영사관 직원과 벨기에 외무부 직원이 다투고 있었습니다. 사연인즉 이 여자가 브뤼셀 공항에 들어오는데 화장과 복장이 워낙 요상해서인지 공항 관리들이 다소 짓궂게 대한 모양입니다. 수 백 명이 바라보는 입국 카운터에서 짓궂어야 얼마나 짓궂었겠습니까? 아무튼 화가 난 이 아가씨가 미국 영사관으로 달려간 모양입니다. 이에 영사가 공항에 항의했지만 만족한 사과를 받지 못하자, 외무부로 달려온 것 같았습니다. 한참 시비 끝에 갑자기 영사가 "누가 시티즌 오브 더 아메리카(citizen of the America)를 모욕했느냐"고 일갈 호통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시티즌이란 말이 제 인생에서 그렇게 멋지게 들린 적이 없습니다. 만약 제가 어느 외국에서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 정부 관계자가 "누가 시티즌 오브 더 코리아를 이렇게 모욕했느냐"고 호통 치는 소리를 듣는다면, 정말이지 그렇게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나라란 그런 것입니다. 세계화는 거스르기 어려운 풍랑이고, 민족과 국가가 뒤를 받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거기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여러분과의 이 짧은 만남을 소중히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