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한국의 시민사회와 21세기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 동원되신 건 아니죠? 왜냐하면 이런 제목의 강의에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모였다는 것이 좀 신기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작년 9월부터 11월까지 석 달 동안 일본을 여행하면서 그 곳의 시민단체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시민운동 하는 간사들의 평균 나이가 50대가 넘더군요. 이유를 보니 젊은 사람들이 충원이 안 되니까 할 수 없이 60년대, 70년대의 전공투 세대, 즉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사회운동가로 남아 있던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분들은 사회 변화에 대해서 큰 절망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때 경제력이 막강했지만 정부의 재정 적자가 엄청난 규모로 많아지면서 사회 혁신의 분위기가 사라지게 되고 일본 사회가 전체적으로 절망에 빠져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많은 젊은 세대들이 시민사회 혹은 공공의 영역을 고민하는 자리에 참여해 주셨다는 것에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국민대학교 학생들의 수준이 그만큼 높고 우리 사회 또는 사회 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고등학교 때 영어 배우면서 'Be ambitious'란 문장을 모두 한 번 씩은 배웠을 것입니다. 보통 '야망을 가져라'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야망이라고 하면 보통 '정치적 야망'을 떠올리고 좋지 않은 의미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로 이 'ambitious'라고 하는 말은 정치적인 의미보다 '젊은 시절의 많은 꿈'이라는 뜻이 담겨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폴레옹 때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나폴레옹이 유폐되었다가 탈출해서 다시 유럽을 평정하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에 반대하는 다른 여러 나라들이 동맹을 이루어 워털루에서 큰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유럽 연합군을 이끌었던 사람은 웰링톤이었습니다. 그 장군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다음에 '오늘 이 전투의 승리는 이미 이튼스쿨의 교정에서 결판이 나 있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웰링톤은 이튼스쿨을 다니면서 꿈을 키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학창시절에 꿈꾸고, 절망하고, 분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김영삼 대통령은 중학교 다닐 때부터 책상에다 '나의 꿈은 대통령'이라고 써 붙이고 공부했다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됐지만 우리나라에 좋은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내 꿈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대통령이 되어서 무엇을 해야겠구나'라는 내용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대통령이 되어서도 제대로 된 전략이나 비전(vision), 또는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이나 지식을 갖추지 못했다면 사회나 개인에게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할 일이 많아서 모두 다 하려고 크게 외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많은 일 가운데 작은 일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국민대학교라는 좋은 캠퍼스에서 여러분들이 꿈꿔야 할 것은 자신의 꿈을 어떻게 이룰 것이며 왜 그러한 꿈을 가지게 되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만이 무너지는 게 아닙니다. 경부고속철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업에는 거의 7조 원이 투자되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서 공사를 계속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말이 많았습니다. 부실 때문에 그러하였습니다. 그리고 과연 국가적 공공사업만 그렇게 부실한 것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다세대 주택 같은 조그마한 집을 지을 때도 제대로 만든 집을 본 적이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비가 새고, 문이 잘 열리지 않아 싸우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런데 입주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입니다. 중간에 업주들이 도망쳐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 도대체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스스로 의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하루 한 번 이상은 꼭 뉴스를 보는데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됐는가' 되묻곤 합니다. 지금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의료재정이나 국민연금 등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연금 개혁을 주장하는 이유는 2030년에 국민연금재정으로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이 맞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의료재정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IMF 위기 이후에 우리는 금융기관의 부실에 153조, 또 얼마 전에 새로이 40조 원을 투입하였습니다. 거의 200조 원의 국민 세금을 투자했습니다. 동그라미가 몇 개인지 헤아리기도 힘든 액수입니다.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이 100조가 조금 넘는데 우리는 2년치 국가 예산을 금융기관이나 부실 기업에 쏟아 부은 것입니다. 금융기관의 문제가 왜 일어났습니까? 경제 위기 초반에 일어났던 한보사건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보철강이라는 기업에 제일은행이 1조 1000억 원이나 떼였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은 은행이라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떼이고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그렇게 되니 은행이 점점 부실해 지고 결국 우리의 세금인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은행을 정상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재벌이라는 대기업들이 떼먹은 돈을 국민의 혈세로 갚은 꼴이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아무도 이에 대해 분노하고 항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오히려 이러한 모순들이 계속 재발될 것이 뻔하다는 점이겠죠. IMF 경제 위기는 우리에게 있어서 지난 30년, 40년 동안의 개발 절대주의 때문에 희생됐던 인간성과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했던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교훈을 배우는데 우리가 굉장히 게을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잘못돼 있다고 생각했던 제도, 관행, 의식 등 바뀐 것이 있습니까? 정치제도가 바뀌었습니까? 정치인이 바뀌었습니까? 재벌 체제가 바뀌었습니까? 기업의 관행이 바뀌었습니까? 사회단체들이 밤낮으로 노력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과거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어제 별세했습니다. 뉴스를 통해 보셨겠지만 정주영 회장은 소 하나 팔아서 현대라는 거대한 기업을 세웠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것이 개발 시대를 상징하는 굉장한 기념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속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현대가 어떤 운명에 처해 있는지 아십니까? 물론 일부는 정상적으로 경영되고 있습니다만 주력기업인 현대전자나 현대건설은 은행에서 재정 지원을 끊어버리면 며칠 못 가서 무너지게 될 정도입니다. 그만큼 부실하다는 이야기죠. 주식회사란 제도를 여러분들도 모두 법인이라고 배웠을 겁니다. 저는 법인이라는 것이 인류가 발명한 위대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백 살을 넘기기가 어렵지만 법이 만든 인격인 법인은 영원히 남아서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유명한 회사 포드는 창립한 사람은 죽었지만 여전히 세계적인 일류 회사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나라 기업처럼 할아버지가 아버지한테 넘겨주고, 아버지가 또 자신의 아들한테 넘겨주는 족벌 체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창립자가 역경을 뚫고 기업을 일으킬 수 있는 재능이 있더라도 아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자본은 전 세계적으로 모으더라도 경영은 최적의 사람에게,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법적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변호사로서 시민운동을 하면서 우리의 법적 정의가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 자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큰 새는 거미줄을 그냥 뚫고 가버립니다. 그런데 작은 곤충들은 거미줄에 걸립니다. 저는 이 비유가 우리나라의 법적 상황을 제대로 분석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볼 때 클린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조사를 받기 위해 법정에 섰습니다.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물의를 엄청나게 일으키기 전에는 재벌 회장조차도 법정에 서는 경우가 드뭅니다. 법적 정의가 관철되지 않는 성역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돈이 있고 빽이 있고 힘이 있으면 로비를 통해 다 빠져나갈 수 있는, 원칙과 상식이 무너진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몇 가지 방안이 있을 것입니다. 우선 '견제와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삼권분립 같은 것입니다. 삼권분립은 쉽게 말해 행정, 입법, 사법부가 서로 견제하면서 힘을 나누어 가지는 것입니다. 저는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할 때 미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대통령 선거 기간에 이 사람은 굉장히 많은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시골 주지사이다 보니 '이것도 하겠다. 저것도 하겠다'면서 많은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그 중에서 의료보장 개혁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통령이 되어 보니 그런 것이 쉽지 않아 보이더군요. 그만큼 기득권의 저항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즉, 권력이 분산되어 있기 떄문에 의회의 반대가 심했던 것입니다. 미국은 보통 대통령이 민주당이면 의회는 공화당에서 장악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 숫자로만 밀어붙이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제가 미국의 국회의사당 맞은 편에 있는 작은 시민단체에서 인턴 생활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국회를 둘러싼 수 백 개의 시민단체들이 국회의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살피면서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문회라는 제도가 아주 극소수로 열리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차관부터 수 백 명의 사람들이 거의 매일 같이 청문회를 받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과연 어떤 이력의 소유자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언제 어떤 논문에서 이상한 주장을 하지는 않았는지 사소한 것까지 모두 따져봅니다. 적어도 공무를 맡을 사람이라면 도덕적이어야 하고 또 직무 능력도 탁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관직에 있는 사람이 쉽게 바뀔 이유가 없습니다.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았기 때문에 바뀔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장관들의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더 못하지 않습니까? 이래서는 안됩니다. 대통령을 국회의원들이 견제하고 국회의원들은 언론과 시민단체가 견제하는 분권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을 견제할 수 있는 단체가 한 군데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겠습니까? 제가 미국에서 생활할 때 느낀 것이지만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것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위대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에는 약 3,000개의 시민단체들이 모여서 매일 같이 자신들에게 속해 있는 국회의원들이 무엇을 하는지 듣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항의 전화하고 또 청문회에 가서 모아 놓은 자료들도 제공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단체들은 먹고 살만 해 보였습니다. 그곳은 우리와 다르게 일하는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많은 수의 국민들이 회원도 되고 회비도 내고 헌금도 내기 때문입니다. 대신 24시간 내내 국회의원들이나 심지어 백악관까지도 감시해서 정책적인 대안을 만들어내라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시민 운동하면 굶어죽기 안성맞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견제와 균형' 이라는 것이 반드시 삼권분립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견제 세력들이 존재한다면 그 사회가 더욱 잘 돌아갈 것입니다. 이런 견제 장치를 이른바 감시견 - 왓츠독(Watch dog)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파수꾼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공사(公事)의 부정, 관료(官僚)들의 부정을 제대로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우리 사회가 좀 더 투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는 독버섯도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책임감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조 원이나 되는 엄청난 국민들의 세금을 쏟아 붇고도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현재 저희들이 조사해 본 바로는 부실 경영 기업 대표들 중 감옥에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2000억 원이 넘는 돈을 빼돌려서 자신을 위해 썼던 사람을 저희들이 고발도 하고 항의도 해서 겨우 감옥에 보냈더니 얼마 전에 보석으로 나와서 지금도 매일 같이 외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말이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저는 이런 일들이 '견제와 균형' 이라고 하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나 공직 사회의 투명성, 정치인들의 책임성 같은 것들을 더욱 절실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에 희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일본에서 보았던 경험을 다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던 어떤 지역에서 주민들이 나서서 싸우다 나중에는 지역 의회의 의원들을 바꾸고 시장을 바꾸게 하고 결국은 운동했던 사람 중에서 시장을 내세우면서 '주민투표'라든지 '주민 소환제' 등을 발전시키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시장이나 지사, 국회의원들은 부정으로 기소가 되어 재판을 받아도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심지어 임기를 다 채우기도 합니다. 우리가 뽑은 공직자가 당초 약속한 것을 위반하거나 비리에 관여하였을 경우에는 소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러한 권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민들의 참여만이 이 세상을 바꿀 수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시민들의 참여라는 것이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양심적이고 불의에 분노하는 시민들이 많이 있지만 이들이 효과적으로 조직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들을 가진 분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저를 보고 정치할 것인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물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시던 사람 가운데 정치계로 나간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사회 정의 실천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려는 순수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시민단체들을 많이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일본은 '21세기는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의 시대'라고 이미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에는 정부나 시장을 뛰어 넘어 시민사회, 시민단체가 사회를 이끌어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변호사를 하면 그래도 웬만한 기업체 임원보다는 돈을 많이 벌겠지만 이곳에서 일함으로 저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큰 보람을 얻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월급을 아무리 많이 받는다고 한들 그것이 보람 없는 일이라면 힘있게 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도 이제 과거 관존민비적(官尊民卑的) 생각을 떨쳐버리고 우리 사회를 바꿔 나갈 수 있는 고귀하고 보람찬 일들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그러한 것들을 선택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나오는 사회일수록 더욱 희망이 있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시대나 자기 사회에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애국자일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의 폐단은 누가 고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 같은 분들이 이 강의실을 가득 채울 수 있는 현실 때문에 결코 이 사회가 절망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단체라는 곳은 솔직하게 고백컨데 저임, 채임, 채불 업소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쥐꼬리만한 월급마저도 제대로 못 주고, 보너스 약속한 것도 못 주고 그러다 또 퇴직금도 못 주는 곳입니다. 이러다 고발당하면 저는 노동법, 근로기준법 위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멀쩡하게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다녀와서 쓴 책의 내용 중에 미국의 시민단체들은 지역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것을 통해 사회를 바꾸기는 힘들 것이라고 토로한 부분이 있습니다. 또 우리 주변에서는 노력에 비해 변화가 없다고 절망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사회가 열심히 활동하는 가운데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낙선운동이나 주주총회 같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일본에서는 주주총회 운동이 이미 50년대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는 전혀 주목을 못 받았습니다. 그런 것에 비해 우리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소액 주주 운동은 세간에서 주목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올바르게 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런 운동이 주목받았겠지만 우리 사회는 그만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할 일이 많은 사회에 사는 여러분들은 행복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