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21세기와 여성의 리더쉽

저는 한국여성정치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 연구소는 1990년 3월에 설립해서 5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연구소는 첫째, 여성과 정치참여 에 대한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연구를 담당합니다. 그리고 연구결과는 공개 세미나나 출판물을 통하여 일반대중들에게 널리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둘째 로, 연구소는 여성운동에도 깊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좋은 연구가 있으면 이 를 운동차원으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기때문입니다. 여성운동은 연구소 단 독으로 하는 경우도 많지만 좀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하여 다른 여성단체와 연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셋째로 연구소는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도 운영 하고 있습니다. 여성후보자를 발굴하여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 는 일이나 여성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은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 막으로 여성운동을 하다보니 사회문제 전반에 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시 민운동 등에도 깊이 관여하면서 우리 사회의 시민운동을 활성화시키는 작업 에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21세기와 여성의 리더십〉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21세기를 논하면서도 21세기는 굉장히 먼 미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21세기라는 게 불과 5∼6년 앞 으로 다가오는 아주 가까운 미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21세기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그리고 이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미래학자들의 예측이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 예측이라는 것은 점쟁이가 점을 보듯이 과연 서기 2000년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 것인가를 예언하는 것이 아닙니 다. 기존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점검하면서 과거의 변 화추세로 비추어 볼 때 적어도 앞으로의 사회는 이러한 방향으로 변화할 것 이라는 근거있는 예측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래의 학자들이 예측한 여 러 가지 논거 중에 여성운동을 하는 저의 입장으로 가장 관심을 끄는 분야 가 바로 21세기에는 여성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도 증진되고 확산될 것이 라는 예측입니다. 여러분도 들어보셨겠지만 존 네시비츠의 Megatrend 2000이라는 책에서 2000년에 예측할 수 있는 10대 대변화를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로 21세기에는 여성의 리더십이 지금보다 훨씬 더 신장될 것으로 보는 이유를 지금까지의 변화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농경사회를 거쳐서 산업사회로 발전해 왔고, 이 산업사회가 앞으로 정보화사회로 간다는 사실 은 우리들이 상식으로도 예측할 수 있는 얘기일 것입니다. 사실 산업사회만 해도 힘을 필요로 하지요. 산업화사회가 힘이 센 사람이 좀더 일의 성과를 올릴 수 있고 일을 좀더 잘할 수 있는 그런 사회라고 한다면, 정보화사회라 는 것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컴퓨터 키보드 하나만 누르면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사회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힘을 필요로 하는 사회에 서 머리를 필요로 하는 사회로 바뀐다고나 할까요. 이처럼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지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회로 바뀐다고 한다면 우선 생산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남성이나 여성이나 근본적인 차이가 없어지지 않을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섬세하다는 차원에서 볼 때 오 히려 여성의 인력이 더 각광을 받을 수 있다는 예측도 가능하다는 거죠. 우 리가 옛날 농경사회 때는 농사를 지어야 하고, 무거운 짐을 져야 하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와야 하는 등 힘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정보화사 회가 와서 모든 것이 컴퓨터로 처리가 되고 첨단과학기술에 의해서 사회가 운영된다면 여성들이 좀더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는 그런 계기가 올 것이라 는 예측입니다. 그 동안 우리 사회만 비추어봐도 여성들의 교육정도가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의무교육제도가 실시되어 국민학교는 남녀진 학률이 거의 같았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고등학교로 갈수록 점점 남자들의 진학률이 높다가 대학에 가면 굉장히 차이가 났었죠. 그러나 그 차이가 지금 은 급격히 줄어들어서 여성들의 대학진학률도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지난 40 년 동안 꾸준히 교육에 투자한 결과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급증했으며, 이러 한 추세가 앞으로 더 확산되리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21세기에는 여성의 리더십이 신장될 것이라는 예측의 근거로 리더십에 대한 새로운 개념정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로 리더십이라고 하면 사람을 통치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상당히 권위주의적 인 그런 리더십을 의미하는 거죠. 그래서 지도자가 되면 으레 아랫사람을 부 리고, 명령하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랫사람을 끌고가고, 그것이 리더 십의 본질처럼 잘못 알려져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고 교육받은 인력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리더십은 그런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이 아니라 좀더 민주적이고,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리더십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미국같은 경우 1990년까지 새로 창업되는 기업의 3분의 1이 여성이 경영주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기 2000년까지 창업되는 기업의 절반이 여성이 사장을 하는 새로운 기업들이 탄생할 걸로 보고 있어요. 미국정부는 정부 구매물자의 일정 분량을 여성기업인으로부터 조달한다는 정책이 반영 될 정도로 여성기업인들의 수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 여성기업인들이 성공하는 이유를 분석해 보면, 여성지도자들이 회사의 분위기를 훨씬 민주적으로 이끌어간다는 거예요. 모든 결정을 할 때 아랫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줄 뿐더러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뭔가를 함께 의논한 다는 것입니다. 권위주의적으로 명령하고 복종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직원들 을 잘 보살펴주고 배려하는 자상한 리더십, 아랫사람에게 물어보고 함께 고 민하고 함께 생각하는 그런 새로운 스타일의 리더십을 보이고 있고, 그런 리 더십이 오히려 아랫사람들에게 크게 어필한다는 것입니다. 여성들이 발휘하 고 있는 이런 리더십이 새로운 젊은 세대들에게도 더 어필할 것임을 예측하 고 있습니다. 여성경영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도 이러한 새로운 리더십 에 대한 욕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문민정부 출범 이래 우리 경제가 한때 불안정하면서 중소기업의 도산사례가 굉장히 많았던 것을 여러분들 아마 기억하실 것입니다. 한 달에 몇십개씩 몇백개씩 기업이 도산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경제인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만 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에 등록된 여성실업인들 중에 는 도산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도산한 그 많은 기 업 중에 여자가 경영을 맡은 경우에는 부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입니 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요. 여자의 경우에 가계부를 쓰듯이 꼼 꼼하게 경영을 하는데다가 또 무모하게 사세확장을 하지 않고 안정적인 투 자를 하는 그런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회사가 빨리 크고 확장하는 데는 한 계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탄탄하게, 소규모지만 건실하게 다져나가는 데 는 여성의 리더십이 상당히 적절한 게 아닌가 하는 그런 평가를 받을 만큼 여성기업인들이 잘하고 있어요. 이런 여러 가지 예측을 미루어 보면 경제분야에서 여성의 리더십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은 쉽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저의 관심 을 끄는 것은 21세기에는 여성의 정치적인 리더십도 상당히 성장할 것이라 는 예측입니다. 여성의 정치적인 리더십이 21세기에 두각을 나타내는가에 대한 설명을 우리나라의 경우를 예로 들어 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지방화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1991년에 처음으로 지방의회가 구성되어 지금 4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젊은 학생들은 기억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도 1952년부터 1961년까지 지방자치를 했었습니다. 516혁명이 나면서 바로 지방의회가 해산되었고, 그 이래로 1961년부터 1991년까지 31년 동안 우리는 지방자치 를 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지방자치 없는 민주주의를 해온 그런 경우입 니다. 1991년 지방자치가 다시 시작되면서 구의회라든지 시, 군의회 같은 이른바 기초의회에는 여성들이 진출하는 것이 상당히 바람직하다는 논의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들도 상당히 공감을 하 는 것으로 연구결과도 나왔을 뿐더러, 실제 분위기도 그랬습니다. 그 이유는 지방의회라는 것이 우리 지역에서 일어나는 조그마한 생활행정을 다루는 장 (場)이라는 것입니다. 군대를 월남에 파병한다든지, 북한하고 핵협상을 한다 든지 하는 그런 굉장히 규모가 크고 거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 리 동네에다 노인정을 하나 더 만들 것인지, 어느 마을에 어린이놀이터를 하 나 더 만들 것인지, 일주일에 쓰레기를 몇 번 치울 것인지 등을 논의하는 데 가 지방의회라는 거죠. 예를 들면, 어린이놀이터를 하나 더 만들어야 되는지 안 만들어야 되는지에 대한 필요성은 집에서 어린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훨 씬 더 잘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아버지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어야 돌아오기 때문에 동네에 놀이터가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모를 뿐더러, 아이 를 기르면서 아이가 나가자고 조를 때 데리고 나가본 적이 없는 사람보다는 아이가 나가 놀려고 해도 안전하게 놀 장소가 없는 걸 경험해 본 사람이 훨 씬 더 놀이터의 필요성을 느낀다는 거죠.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지방의회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때, 놀이터를 만들자는 안건이 나왔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남성의원들의 경우에는 "왜 중요한 게 많은데 지금 어린이놀이터 같은 것을 만들어요?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 습니다"라고 밀어놓을 것도, 여성의원들이라면 "우리 경험에 의하면 어린이 놀이터는 굉장히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이고, 우리 동네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장소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라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거죠.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조그만 일들이 지방의 회에서 논의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일상생활을 관리하는 여성들 즉 아이 를 길러본 엄마들이나 살림을 맡아본 가정주부들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공감대를 확산해 가는 그런 과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991년 지방선거 때 지방의회에 많은 여성들이 진출하도록 권유를 했습니다만, 여러분 아시다시피 그간의 우리나라의 정치풍토, 정치행태, 선거문화 이런 것들이 여성의 정치참여를 저해하는 요소들로 작용했습니다. 능력있는 여성들을 만나 "이번에 지방의회에 출마하면 어떻겠습니까"하면 그 답변은 아주 간단해요. "아니 내가 왜 그런걸 합니까? 그런 흙탕물에 내가 왜 뛰 어들어요. 내가 이 때까지 깨끗하게 잘 살았는데 만년에 무슨 망신을 당하려 고 정치를 하겠습니까?" 이게 대부분 공통된 대답들입니다. 문민정부 출범하고 사정(司正)한다고 공직자와 정치인들의 재산을 공개했을 때, 그 규모가 엄청나게 큰 것에 여러분들은 아마 놀라셨을 겁니다. 그리 고 지금 계속되는 세금횡령사건들을 보고 여러분들은 좌절하고 한심하게 생 각하실 겁니다. 우리 눈에 비친 정치라는 것이 항상 이렇게 더럽고 부패하고 썩은 모습이었습니다. 안 되는 걸 되게 만드는 힘을 정치라고 봅니다. 대개 그 힘이라는 게 합리적인 힘이 아니라 비합리적이고 무지막지한 그런 힘으 로 비치기도 합니다. 정치라는 것이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잘못 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 한국여성정치연구소에서 한국 여성 국회의원에 관한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여성의원이 있어봤자 그게 무슨 소용이냐. 여성의원은 국회의 꽃 이다" 그런 얘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과연 여성의원은 국회의 꽃인가, 여성 의원은 있으나마나 아무런 소용이 없는가 한 번 연구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11,12,13대 여성의원을 직접 인터뷰를 하면서, "여성으로서 의원직을 수행하 는 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한결같은 대답은 수적으로 너무 적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옷을 화 려하게 입으면 너무 화려하다고, 너무 수수하게 입으면 부엌대기 같다고 나 무란다는 거죠. 상임위원회를 하고 나면 저녁 먹은 뒤 2차를 간답니다. 방석 집같은 데 한 잔씩 하러 갈 때 따라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을 해야 되는 데, 너무 안 따라가면 소극적이라 흉잡히고, 너무 자주 따라가면 주책이라고 책잡힌답니다. 그리고 따라가도 적당할 때 일어서야지 만약 여흥이 끝날 때 까지 앉아 있으면 미련하다고 나무라고, 일어설 때도 분위기를 안 깨도록 눈 치껏 일어나야 한답니다. 술을 권해서 잘 마시면 술을 저렇게 마시니까 여자 가 정치나 한다고 흉보고, 안 먹으면 국회의원씩이나 되면서 맥주 한 잔도 못 먹느냐면서 나무란다는 겁니다.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가치관'에 자기를 맞추기가 너무 힘들다는 거예요. 매사에 '적당'해야 되는데, 그 적당이라는 잣대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어디다 맞추는 게 과연 적당하냐는 거죠. 그래서 각 상임위원회에 두사람만 배정이 되어도 자신있게 행동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성의원이 혼자서는 그 상황을 견디는 게 굉장히 어렵다는 고백들을 했습니다. 문민정부 출범하고 나서 여러분들 '안가'(安家)라는 말을 들어 보셨죠? 안 가라는 그런 단어를 쓰는 나라가 아마 우리나라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요. 국 회의사당이나 청와대, 그리고 국무회의를 다 두고, 안가에서 중요한 정책이 논의가 돼야 되겠습니까? 합법적이고 공개적이고 합리적인 정책결정과정을 통해서 채택되어야 할 정책을 파워를 가진 몇몇 소수의 핵심인사들끼리 앉 아서 안 되는 걸 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곧 안가에서 하는 일이 아니겠습니 까? 중요한 정책일수록 안가라든지, 골프장이나 사우나탕, 방석집에서 만들 어진다면 웬만큼 유능한 여성이라도 골프장으로 사우나탕으로 방석집으로 따라다니면서 그 정보원에 접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정치라는 것은 정보전쟁이기도 한데 여성들은 일단 정보에서 항상 뒤처지는 거죠. 여성들이 알았을 때는 이미 세상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정보가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정치행태가 이처럼 비공식적이고 비합리적이고 폐쇄적 이고 비공개적인 이상 "정치는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등식이 쉽게 성립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선거는 금권선거가 판을 쳤습니다. 돈봉투를 주고받는 것이 선거인양 돈으로 선거에 임했기 때문에 여성에게 불리했습니다. 여성은 아무래도 경제력도 뒤지는데다가 이권개입에도 약한 편입니다. 정치 인들이 자기 돈 가지고 정치하기보다는 기업하고 결탁해서 기업인들이 돈을 대고 당선이 되면 기업인들에게 어떤 특혜를 주는 거죠. 그런데 대부분의 경 우 기업인들이 여성후보자들한테는 투자를 안 하는 겁니다. 투자할 가치가 없다고 보는 거죠. 왜냐하면 반대급부에 대한 기대감이 약하다고나 할까요. 좋게 말하면 여성정치인은 상대적으로 정직하다고나 할까요. 저희들의 연구 결과에도 여성의원이 부정부패에 연루된 경우는 흔치 않았습니다. 저희 연구소에서 지방의회 남녀의원의 역할을 비교연구한 게 있습니다. 현재 광역의회와 기초의회를 합쳐서 총 47명의 여성 지방의회의원이 있어요. 이 47명하고 남성의원 47명을 비교해서 조사한 게 있는데, 여성의원의 경우 에 부정부패에 연루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방자치란 것이 여성에 게 적합한 그런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정치라는게 그렇게 잘못 비춰졌기 때 문에, 많은 능력있는 여성들이 지방의회의원으로 혹은 정치인으로 입후보하 는 것을 꺼리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이고,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풍토는 이 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여성의 정치적 리더십이 많이 증진될 것이라고 믿는 또 하나의 근거는 이른바 정치의 본질이 생활정치로 옮아가야 한다는 관점에서 나옵니다. 생활정치라는 것은 바로 국민들이 일상생활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 어주는 것입니다. 지하철을 안전하게 타고 다닐 수 있는가 없는가, 지하철을 10분 간격으로 탈 것인가 5분 간격으로 탈 것인가, 이런 것들도 결국은 행정 권이나 정치권에서 결정하는 것이지만 우리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죠. 고등학교 시험을 내신성적으로 갈 것인지 연합고사를 볼 것인지, 수능시험을 한 번 치르고 대학에 갈 것인지 두 번 치르고 갈 것인지를 모두 정치권이 결정을 합니다. 그것이 내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도 불 구하고 정치는 남자들이 해줄 테니 여성들은 앉아서 살림이나 하라는 식이 지요. 지금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게 대의제 민주주의입니다. 사천만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직접 토론을 해서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는 방 법은 없겠지요. 따라서 우리를 대변해줄 대표를 뽑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대 표를 뽑아서 국회로 보내면 그 사람들은 우리를 대변해줄 의무를 지고 있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나면 의무는 잊어버리고 그것을 권력으로 생각합니다. 이 권력을 남용하는 데서 잘못된 정치풍토가 나오는 것입니다. 국민을 위한 생활정치를 실현하려면 결국 그 사회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 이 얼마나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게 해주는가 하는 것이 정치권의 첫째 과제 가 되어야겠지요. 그렇다면 그 고민은 남자들끼리만 할 수 있는 고민이 아니 라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아서 길러본 엄마, 아이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까지 보내본 엄마가 교육에 대해서 아버지보다는 더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길러보고 교육시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체험을 통한 살아 있는 정책 을 만들 수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교육에 경험있고 관심있는 엄마는 다 배 제해 놓고 남자들끼리 앉아서 교육정책을 논의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교육 정책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거죠. 그리고 환경문제가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 계적인 관심분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생명을 낳아서 기르는 어머니들이 환경보호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훨씬 더 깊이있게 환경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거예요. 문민정부가 추진하는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통합선거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새로 제정된 선거법은 돈을 많이 쓸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요. 만약에 돈 을 덜 쓰는 깨끗한 선거가 이루어진다면, 여성의 정치적인 참여도 활발해지 리라는 전망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작년에 미국 국회선거에서도 미국 여성들이 10% 자력으로 당선되는 그런 결과를 가져왔고, 노르웨이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제국은 여성의원의 비율 이 40% 이상이나 됩니다. 남녀의 비율을 떠나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책을 그 사회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고 함께 의논해서 가장 좋은 정책을 함께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거죠. 가장 합리적인 경우는 그 사회 인구의 50%가 남성이고 50%가 여성이면, 50%의 남성대표와 50%의 여성대 표가 만들어지는 것이겠죠. 우리 사회의 노동자인구가 천만이라면 4분의 1 은 노동자계층에서 나오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대표성을 지니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숫자를 하나하나 세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적어도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 일정한 숫자의 대표가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노 동자를 대표할 수 있는, 농민을 대표할 수 있는, 청장년을 대표할 수 있는 각계각층의 대표들이 골고루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실질적인 참여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정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되리라고 봅니다. 여성의 리더십이 증진되고 각계각층에 활발히 진출하면 여성들은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하게 됩니다. 여성들은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병행하는 데서 오는 이중고를 짊어지게 됩니다. 1950년대 우리나라 여성지도자들은 이른바 슈퍼우먼이라고들 불렀습니다. 슈퍼우먼이라는 분들은 행복하게도 가정환경 이 좋아서 일찍이 높은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든지,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남성의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사회생활도 가정생활도 다 잘하는 모범적인 여성들로 비치고 있습니다. 과 연 이분들은 보통여성들보다 우월한 특수능력을 지녔을까요? 사실 따져보 면 이분들은 가사는 가정부에게 맡기고 밖의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 다. 당시는 인건비가 싸서 사회에 나가서 일하는 대신에 집에서 가사일을 대 신해줄 가정부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내 대신에 그 사람이 밥을 해주고, 아이를 길러줬으니까 내가 나와서 일할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이사람들은 가정과 직장이라는 두 영역을 잘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더 이상 그런 저렴한 인력은 구할 수 없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슈퍼우먼들만 일하는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 다. 보통여성으로 일도 하고 가정도 가질 수 있는 그런 방법이 필요한 것입 니다. 왜냐하면 여성인력의 10%만 경제인력이었을때는 10%만 하던 고민이 었지만, 지금 여성인력의 47%가 사회참여를 하고 있으면 절반 이상이 같은 고민을 하게 된 것입니다. 50%라면 벌써 보통사람들 아니겠어요? 대학교수 나 변호사만 사회생활도 하고 가정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든 자 신이 원하는 일을 평생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보통여성들이 절대다수를 차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도 가정을 지키고 일을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이제 역할분담을 논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여성들의 경우 미혼여성들 이 날로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혼을 안 하는 거예요. 결혼생활을 하면 서 직장생활을 하려니까 도저히 동료남성들과 경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직장생활을 충실히 하는 방법은 가정은 안 가짐으로써 아이를 기르고 밥을 준비해야 되는 짐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입니다. 일을 위해 결혼을 포기하고 혼자 사는 길을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영국에 몇 개월 가 있었습니다. 영국여자들이 요즘 어떻게 사는지 알아요? 성(性)이 이미 문란해진 건 이미 다 아시는 사실이죠. 성적으로 문 란하다는 건 결혼을 안 해도 자기의 성적인 욕구는 해결이 된다는 얘기죠. 결혼은 안 하면서 아이는 가지겠다고 합니다. 노후에 혼자 있는 것보다는 자 기 아이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거죠. 아이는 낳는데 그게 누구 아이인지는 밝히질 않는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안 알려주는 거예요. 여자가 여러 남자를 만나기 때문에 남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 아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는 거죠. 엄마는 누구 아이인지 알겠죠. 그런데 알리지 않는 거죠. 친권행사 한 답시고 일주일에 한 번은 내가 볼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따지면 골치 아프 다는 거예요. 그리고 아이를 양육할 능력은 자신들에게도 있다는 거예요. 그 래서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엄마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같이 사는 경우에도 보이프렌드라고 그러지 남편이 라고 얘기 안 한다는 거예요. 결혼은 안 했다는 거죠. 영국의 유명한 BBC 아나운서가 30년째 한 사람하고 같이 살면서 지금까지도 보이프렌드라고 부 른다는군요. 이런 식으로 가면 과연 우리가 바라는 그런 건전한 가정을 가진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일도 하면서 건강한 가정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바 로 역할분담을 하는 것입니다. 가사분담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들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요새 젊은 작가 중에 공지영인가 하는 사람이 쓴《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 제가 느낀 것은 왜 젊은 세대들이 이렇게 실패를 해야 되는가 하는 것이었어요. 결혼을한 세 젊은 여성들이 전부 파경에 이르는 거예요. 입원하고, 자살하고, 남편하고 완전히 별거하고 뭐 이런 갖가지 해프닝이 일어나는데, 왜 그렇게 되는가, 그게 정 말 바람직한가, 그렇게 되지 않는 방법은 우리한테 없는가 하는 자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머니들한테도 굉장히 중요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녀를 기를 때 우리 어머니들은 이중의 가치관을 가지고 기르고 있어요. 아들에게는 "넌 남자다. 아버지같이 커야 한다. 부엌엔 들어가는게 아니다" 그렇게 키우는 거예요. 그런데 딸한테는 뭐라 그러는고 하니, "너는 절대로 엄마같이 살지 마라. 넌 너의 전문직업을 가지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남편하 고 일 같이 해라" 이렇게 기르는 거죠. 똑같은 아들, 딸을 다른 가치관을 가 지고 길러 놓으니까, 이 아들, 딸들이 결혼을 하면 잘 살 수가 없는 거죠. 이 혼을 하는 겁니다. 아니 이혼을 하도록 키우고 있는 겁니다. 대학을 졸업한 여대생의 99%가 직업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가정과 직장을 양립하면서 직장에서도 성공하고 가정에서도 행복한 생활을 누리려면 결 국 남녀가 역할을 분담하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요? 어떤 형태로든 간에 남성이 가사일을 도와야 하는 건 불가피한 시대적인 요청이 되고 있다고 봅 니다. 우리가 고정관념을 깨는 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고정관념을 깨지 않는 한 우리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앞서서 변화를 이끌 어가지는 못할망정 엄연히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라도 길 러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걸 거역하면 결국은 그만큼 살기가 힘들어지고 사회발전이 그만큼 더딜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것을 무슨 여 성운동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사실 오늘 남자분들이 굉장히 많기를 바랐거든요. 이것은 여성운동이 아니구요, 여러분들이 같이 편안하게 미래사 회의 주역으로 건강한 가정을 가지면서 동시에 건강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면 서 이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제는 어떤 직종에 여성이 어울리는가, 남성이 어울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더 중요 합니다. 그 사람이 음식을 더 잘 할 수 있다면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없죠. 그 사람은 요리사로 취직하면 되는 것이고, 그 사람이 컴퓨터를 잘 하면, 여 자이든 남자이든 상관없이 컴퓨터회사에 취직을 하면 되는 겁니다. 그 사람 이 정치를 잘 한다면, 여자도 정치를 잘 할수 있는 거죠. 마거릿 대처다 뭐 다 유명한 여자를 들먹일 것까지 없습니다. 저는 슈퍼우먼에 관심없습니다. 보통여성들, 보통남성들이 다같이 자기가 원하는 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마 미래사회의 우리 소시민의 모습일 거예 요. 그 중의 한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시대에 맞게 자기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고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적어도 신세대들의 가치관은 이제 달라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치관의 변화에는 오랜 시일이 소요됩니다. 학교의 공교육이나 가정교육, 사회에서의 재교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하나씩 둘씩 바뀌어 갈 것으로 봅니다. 그 러나 이른바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라는 대학에 계시는 여러분들이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고 창조해 나가는데 앞장서신다면 그런 변화는 좀더 빨리 올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도 훨씬 앞당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21세기는 남녀를 불문하고 능력에 따라 일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일하면서도 건전하고 행복하고 따뜻한 가정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앞당기기 위하여 새로 운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는 일에도 남녀가 함께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말씀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