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북한영화를 어떻게 볼것인가

여러분 반갑습니다. 지금부터 90분 정도 북한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말씀을 드릴 겁니다. 제가 한국에서 북한 영화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만, 본 영화 편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제 말이 꼭 맞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번 시간을 통해 북한 영화에 대한 막연한 생각과 편견들을 조금이나마 없애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편견을 없애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강연 중간에 북한 영화 세 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최근에 국내에서 상영된 {불가사리} 라는 영화를 여러분들은 아실 겁니다. 그 전에 TV에서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임꺽정} 등을 방영했었는데, 우리 6, 70년대 영화를 보듯 지루하셨을 겁니다. 아무튼 {불가사리}는 상당한 기대 속에서 홍보를 했지만 관람객 수가 만 명이 채 안되었습니다. 흥행실적으로는 참패를 한 것이죠. 일본에서는 그 영화를 본 사람이 5만 명 정도 되었는데, 이 역시도 괴물영화를 좋아하는 매니아들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영화는 여러분 모두 보셨을 겁니다. 그에 비해 이 영화는 대체로 호평을 얻었습니다. 물론 통일문제나 분단이라는 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을 지나치게 드라마화해서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면들이 있지만, 대체로 귀중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만일 북한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중에 {공동경비구역 JSA} 시나리오 작가 중 북한 출신 강성산 씨가 인터뷰한 내용을 보게 됐습니다. 강성산 씨는 평양영화대학을 다니다가 남한에 정착한지 오래 된 사람인데,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아마 '뭐 이런 시답잖은 영화를 만들었을까, 어떻게 통일문제를 이렇게 시답잖게 다루었을까' 하고 반응했을 거랍니다. 이 인터뷰 내용을 통해 남·북한 사람들의 영화를 보는 기준이 상당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오랫동안 다른 문화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좋다 나쁘다고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보다 먼저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볼 것은 왜 같은 영화를 놓고, 한쪽은 그 영화가 시답잖다고 여기는데, 다른 한쪽은 그 영화를 재미있다고 호평하는 것일까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이 시간에 주요 관심입니다. 먼저 북한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북한에서 영화를 하기 위해서는 '평양영화대학'에 들어가야 합니다. 강성산 씨 말에 의하면 대단히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이십 명 정도 들어가서 제대로 졸업하는 사람은 10%에 그친다고 합니다. 특히 북한에서는 연출전공자들에게 영화공부와 함께 다른 기초적인 부분들도 강조하기 때문에 공부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연기자들의 경우 영화과 안에 연기전공이 있고, 또 촬영소 안에도 단기교육코스가 있으며, 영화학교 말고도 지역별로 연기자를 양성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예술성과 당성이 갖춰진 자에 한에서 '조선영화인동맹'에 가입하게 됩니다. 이 단체는 우리의 '한국영화인협회'나 '한국영화인회의'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여기에서 자기 전공에 따라 배치됩니다. 이 '조선영화인동맹'은 북한 노동당 하부에 있는 '조선문화예술가총연맹'이라는 상위단체에 소속되어 있는데, 여기에 들어가야만 영화를 제작하는 회사로 편재가 됩니다. 드라마, 즉 예술영화 제작은 주로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와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등에서 맡아 합니다. 그 밖에도 '조선기록영화촬영소', '조선과학교육영화촬영소' 등에서 제작하기도 합니다. 각 촬영소들은 '백두산 창작단', '대흥단 창작단'과 같은 창작단을 두고 있는데 영화인들은 이곳으로 배치됩니다. 이와 같이 북한 영화인들은 고도로 짜여진 체계 속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영화를 만드는 조직은 남한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감독을 연출가라고 부르고, 조연출을 부연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부연출은 감독의 심부름꾼 정도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촬영장의 경우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촬영장 안에 조선거리, 일본거리, 지금의 남조선거리 등이 조성되어 있을 정도로 좋다고 합니다. 이러한 조직 속에서 활동을 하다가 좋은 평가를 받게되면 인민배우가 됩니다. 인민배우가 되면 북한에서 노동자들이 받는 월급에 열 배 정도를 받으며, 살림집으로 방 두 칸 딸린 아파트가 제공되고 사람들에게 선망 받는 대상이 되는 겁니다. 다음으로 북한 영화의 약사를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북한 영화가 최초로 만들어진 건 해방직후입니다. 6·25전쟁이 있기 전 남한에서 활동하던 많은 예술가들이 북한으로 갔는데, 납북된 자도 있었지만 스스로 월북한 예술가들도 많았습니다. 1948년 남한에 이승만 단독정부가 들어서는 와중에 좌파계열의 많은 예술가들과 남한에서 비참하게 생활을 꾸려가던 예술가들이 월북을 한 겁니다. 당시 남한에서의 예술가들 생활은 비참했습니다. 기록을 보면, 아주 유명한 배우들도 실제 생계는 그 부인들이 미군 부대에서 담배꽁초를 주워 파는 걸로 연명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북한에 가면 고정된 식량 배급을 받을 수 있었고, 좋지 않은 집이지만 방 한 칸 딸린 작업실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초창기에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때의 영화는 좋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당시 남한에서 최고의 스타였던 문예봉(文藝峰:1917-1999)이라는 배우가 출연한 영화가 북한 최초의 드라마인 {내 고향}인데, 화질 보존이나 연기, 카메라 움직임 등이 아주 좋습니다. 영화에서는 인물의 갈등과 정서를 전달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카메라 조작과 조명, 편집 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흐름으로 되느냐에 따라 영화의 성패가 좌우됩니다. 당시의 사정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내 고향}은 모든 면에서 대단히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이 영화는 1945년 이후 이태리 네오리얼리즘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수준입니다. 신상옥 감독의 말에 의하면 북한에서 순수하게 자신들의 기술로만 찍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은 남한에서 활동하던 영화인들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전쟁 이후 나온 영화들은 대부분 노력동원 영화이거나 미제국주의자들이나 남조선과의 전쟁무용을 그린 영화들입니다. 오늘 잠깐 보실 {신혼부부}라는 영화가 그런 영화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을 했는데 봉건적인 사고를 가진 남편은 아내가 밖에 나가서 일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래서 살림만 하던 아내는 어느 일요일 놀러 나갔다가 옛날 여자동료들이 여전히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나만 왜 조국 건설에서 떨어져 있느냐는 자각으로 일터로 나가려다 부부싸움을 하게 됩니다. 남편은 부인이 딴 남자를 만나기 위해 직장에 나가려 한다는 의심을 하게 되고 결국 아내는 작업소 기숙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자신의 실수로 관리하던 기관차가 고장 났다는 소식을 듣고 반성하던 차에 현장에서 일하는 아내를 만나 오해를 풀고 폐허가 된 조국을 재건하기 위해 함께 일하게 됩니다. 노력동원 영화 줄거리는 대체로 이렇습니다. 그 외에도 해방 이전의 혁명을 다룬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런 영화에서도 1967년 이전까지는 사망한 김일성 주석에 관한 얘기들이 노골적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이런 영화들에서는 주로 항일 빨치산 투쟁, 민중 투쟁, 개개인의 삶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단련되는가 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얘기를 정리해보면 하나는 항일 혁명과 빨치산 투쟁을 다룬 영화, 둘째 어떻게 미국과 싸웠는가 하는 전쟁영화 그리고 조국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하는 영화 이렇게 세 종류의 영화들로 나누어집니다. 이 밖에도 남한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하게 될 {성장의 길에서}인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4·19가 일어나기 직전 의대를 다니고 있던 주인공 영수는 학교 재단 이사진들 비리에 대해서 알게 되고 데모를 하다가 학교를 그만둡니다. 그후 영수는 일을 하다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병원장의 딸과 사랑에 빠집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지면서 여자도 점점 혁명적으로 각성하게 되어 공장에 들어가서 노동을 하고, 노동운동 조직을 만들어 결국은 4·19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물론 가끔씩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남한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도 있습니다. 이후 북한은 1967년이라는 중요한 시기를 맞습니다. 초기에는 북한 내부에도 여러 분파가 있었는데, 김일성 계열이 이 시기를 통해 다른 분파들을 완전히 몰아내게 됩니다. 김일성은 1967년에 '모든 종파투쟁은 반인민적이다'라는 명분으로 다른 분파들을 처단합니다. 그 와중에 남로당 계열도 숙청합니다. 박헌영 등이 이미 죽은 상황에서 남아있던 사람들을 또 한번 숙청하는데 당시 시인이자 문예이론가로 쟁쟁하게 이름을 날렸던 임화도 이 때 숙청합니다. 그리고 배우 문예봉은 이후 십 년이 지나서야 활동을 재개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반종파 투쟁기에 '예술의 표현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점에 대한 투쟁이 있었습니다. 이 투쟁은 한 문학 작품을 통해 불거지게 되었는데 그 작품 속에 어떤 인물이 처음에는 악질 반동이었다가, 나중에 그 부분을 극복하고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사람의 이중, 삼중적인 성격을 그렸다 해서 논쟁이 많았습니다. 결국 그런 성격묘사가 대중들에게 혼란을 준다고 결정합니다. 이후 사회주의 사실주의 문학 작품 속에서의 인물은 혁명가와 반동이 분명하게 나누어 그려집니다. 그렇다면 67년 이전 북한 영화에서 그린 인물들은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그 이후부터는 완전히 주체사상에 입각한 영화, 예컨대 널리 알려진 {피바다}, {꽃 파는 처녀} 등의 작품들이 만들어집니다. 이 중 북한에서 대표작이라 얘기하는 {꽃 파는 처녀}는 체코에서 열리는 까를로 비바리라는 역량 있는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꽃 파는 처녀}의 경우에도 김일성 주체사상이 처음부터 부각되지는 않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주의 학대로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는 병으로 쓰러지자 꽃분이가 지주집에 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어느 날 어린 동생이 지주집에 따라왔다가 주인마님의 약으로 쓸 대추를 먹게 되고, 화가 난 마님이 노발대발하다가 약탕기를 쏟습니다. 이 약이 동생의 눈에 들어가게 돼 결국 실명을 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꽃분이 오빠가 분노해서 지주집에 불을 지르고 잡혀갔다가 탈출해서 훌륭한 빨치산이 됩니다. 이 때 꽃분이는 오빠를 찾으러 갔다가 혁명적으로 각성하게 되고 꽃장사로 위장해 막스 레닌 책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위의 얘기를 통해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67년 이후와 그 이전의 영화들은 그 체제가 굳어지는 80년대까지는 미묘한 차이만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80년대 이후에야 김일성 일대기를 그린 {조선의 별(10부작)}과 같은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영화들이 나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전에 있던 주제들로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은 건 아닙니다. 조국 건설을 주제로 한 영화들도 계속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당성·노동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이지만 멜로드라마도 여전히 만들어집니다. 이후 80년대부터는 북한 영화에 굉장한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런 영화들만 보려고 하니까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홍길동}, {임꺽정} 등의 무협활극을 통해 볼 때 화면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기술적 측면에 힘쓰고 있고,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들로 바뀐 건 사실입니다. 또한 {기쁨과 슬픔을 넘어서}라는 멜로드라마에서 북한 영화 최초로 삼각관계를 설정하기도 했습니다. 신상옥 감독의 {소금}에서는 허벅지가 노출되어 북한에서 굉장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럼 잠시 신상옥 감독에 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신상옥 감독 자신이 쓴 일대기를 보면 납북 당했던 것으로 되어 있는데, 납북되고 2년 동안은 영화 촬영을 못했답니다. 그 후 김정일 위원장은 신상옥 감독에게 개인 촬영소를 만들어 줍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영화광이기는 하지만 북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엄청난 대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신상옥 감독을 납치했을까? 신상옥 감독은 10년 이상 남한에서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신 감독을 왜 김정일 위원장은 필요로 했을까요? 김정일 위원장은 다른 나라의 영화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북한 영화가 재미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자니 북한 내부의 힘만 가지고는 부족하고, 또 그 재미로 인한 사회적 충격을 김정일 위원장은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상옥 감독을 통해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씩 경직된 것을 풀고자 합니다. 물론 남한의 유명인사가 자진 월북했다는 사실에 대한 정치적 선전효과의 목적도 있었겠지만, 문화적 측면에서 본다면 좀 더 북한주민들에게 친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겁니다. 이런 이유로 신상옥 감독은 북한에서 15편 정도의 영화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 영화들은 6, 70년대 신 감독이 만들었던 영화보다 수준이 떨어지지만 이전의 북한 영화와 비교한다면 훨씬 속도감 있고 활력이 넘칩니다. 이렇게 신상옥 감독이 북한 영화에 주었던 자극들을 통해 조금씩 경직된 영화의 틀이 풀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신 감독이 돈을 가지고 탈북하는 바람에 그의 연출기법이라든가, 영화제작 방법은 신뢰를 잃게 됩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어떤 방법으로든 그 충격을 수습했을 테고 그 구체적인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그 뒤로는 신필름 촬영소에 배치됐던 신인감독들에 관한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북한의 영화론에 대해서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자단이 방북을 했을 때인데 마침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라는 러시아영화가 {모스크바에서는 울어봤자 소용없다}라는 구호투의 제목으로 개봉되었습니다. 이런 직설적인 면은 북한의 영화제작, 영화론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우리 남한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영화론 내용은 관객들이 볼 때는 중요치 않은 주제를 놓고 연구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가령 영화가 남성 중심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성 관객들조차도 영화를 볼 때 남성의 시각으로 본다는 내용이라고 합시다. 시한폭탄이 터지려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마루 틈새에 여자 주인공의 하이힐이 낀다든지 해서 남자 주인공이 구하려다 시간을 지체하게 되는 장면을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이렇듯 여자는 무조건 방해되는 인물이고 그걸 구하는 것은 항상 남자라는 점, 멜로드라마에서 주도권은 남자가 쥐고 있다는 점, 그리고 남자관객들은 여자배우들을 통해 관음증을 보인다는 점, 특히 여자관객들 역시도 여자배우들을 보면서 남자들과 똑같은 쾌락을 얻는다는 점 등을 지적하는 것은, 일반관객들에게는 전혀 알 필요 없는 연구일 뿐입니다. 이런 영화론이 북한에는 전혀 없습니다. 북한에는 일단 주체사상이 있고 주체적 문예이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일반 예술론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지었다는 영화론을 보면, 일단 창작자는 작품 핵심인 종자를 지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그러기 위한 방법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됩니다. 연출론, 연기론, 촬영론, 미술론 등이 다 들어 있지만 그 내용들은 대부분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를 {모스크바에서는 울어봤자 소용없다}라고 제목을 정하는 식과 같습니다. 예컨대 촬영하는 사람들은 그 대상을 면밀하게 관찰해야 하고 인민을 위해야 한다는 식의 말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자질론의 경우 버스기사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실제 버스기사 생활을 몇 달 해보고, 끊임없이 그 사람들의 생활을 익히고 나서 연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남한의 연기자들로서는 실제 실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화론이라기보다 오히려 영화 자세론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찍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도가 전수되고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제부터 준비해 온 영화를 보겠습니다. 첫 번째 볼 영화는 {먼 훗날의 내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인민 영웅인 과학자이고, 주인공인 아들은 택시기사라는 좋은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이 청년이 우연히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 여자가 공사장에 나가는 돌격대라는 것을 알고 가슴아파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통해 여자의 직업을 바꿔보려고 합니다. 이 때 여자는 자기 고향마을 일을 해결하려고 귀향을 하게 됩니다. 여자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아들은 휴가 기간동안 그 여자에게 찾아가 열심히 일하는 척 하다가 사랑을 고백하게 되고, 함께 평양으로 가자는 얘기를 했다가 면박을 당합니다. 이에 아들은 반성을 하고 그 마을에 남아 훌륭한 트랙터 운전수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 다음은 {명령027호}라는 영화입니다. 6·25중에 북한 특공대원들이 남한에 밀파돼 있던 여자공작원을 데리고 가면서 한 지역을 폭발하는 얘기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뽑은 이유는 이 영화가 액션영화라는 점 때문입니다. 액션영화에서 격투 장면을 찍으려면 정교하게 찍어서 편집을 잘 해야 하는데, 기술력이 부족하니까 태권도 유단자들을 등장시켜 실제로 때리고 차고 해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택한 것은 북한 주민들 역시도 부분적으로나마 액션 영화를 좋아하고 재미있어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마지막 영화는 유명한 {피바다}입니다. 워낙 긴 영화라 앞부분과 뒷부분만 조금 보겠습니다. {피바다}는 7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명령027호}와 {먼 훗날의 내 모습}은 80년대 중반 영화입니다. 한 십 년 정도의 차이가 나는 영화들인데 그 동안 장면들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도 다양한 영화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일단 보고 나서 마무리를 짓기로 하죠. (영화상영) 세 편 영화를 봤는데, 나름대로 다 재미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류의 영화들을 접하는 사람들과 우리들이 만나서 얘기를 하다보면 격차가 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처음에 보신 영화는 어떻게 한 인간이 개조되고 노역동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북한에서는 최근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잘못하다가 금세 반성하는 식으로 인간의 성격을 매우 단순하게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 영화는 앞에서도 말했듯 대단히 과격한 액션영화입니다. 세 번째 영화는 다른 두 편의 영화가 제작되기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이라서 뒤지는 면도 있지만 나름대로 개개인들의 개성이 살아있습니다. {피바다}가 워낙 긴 작품이라 전체 작품을 다 못 보셨지만, 대체로 영화의 흐름이 느린 편입니다. 이에 비해 {먼 훗날의 내 모습} 같은 경우는, 한 배우가 얘기를 하다가 끝나는 순간에 바로 편집해서 다른 얘기가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겁니다. 다음으로 {명령027호} 같은 경우에는 편집이나 기술 부족 때문에 격투 장면이 한 컷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첫 번째 영화의 경우 남한에서 수준이 떨어지는 영화와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한 영화에서 샤워하고 나오는 여자 배우가 화장을 하고 있듯이, 돌격대인 여자 주인공은 시골에 가서 일을 하고 있는데도 매우 화사한 옷을 입고 화장을 한 차림입니다. 이를 통해 여전히 세부적인 리얼리티에는 관심이 없고, 영화 자체의 주제나 흐름만 강조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한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제가 보여드린 영화 중 한 편만 보고도 여러분은 북한 영화가 많이 변화했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북한 사회와 마찬가지로 북한 영화도 변화가 없다고 봅니다. 여러 종류의 영화들 - 김일성 수령 형상화, 노력동원, 항일혁명투쟁, 전쟁영화 등은 계속해서 한 장르처럼 시기별로 사회의 쟁점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구호가 나오더군요. '나에게서 어떤 변화도 바라지 마라.' 물론 이 구호는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김정일 자신의 정체성이 조금씩 바뀌어감에도 불구하고 인민들의 변화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미연에 상쇄시키려는 구호로 보여집니다. 우리 눈에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모든 정책이나 영화 제작도 이런 식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북한 영화 흐름이 빨라진다거나, 액션 장면에 운동감을 더해 재미를 높인다거나, 간혹 삼각관계를 다룬 멜로드라마가 나온다는 것은 변화가 아닌 지금 북한 영화의 단순한 특징일 뿐입니다. 지금 본 영화들 중 한 편을 제대로 홍보하고 극장에서 상영한다면 여러분들 보시겠습니까? 모든 극장에서 그것만 상영한다면 모를까 구태여 시간을 내서 보실 분은 드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영화 수입업체들은 북한 영화를 굉장히 재밌다고 거짓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불가사리} 상영 때에는 어마어마한 괴수영화인 것처럼 홍보를 했다가 북한 영화에 대한 나쁜 인식만 남한 관객들에게 심어주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의 영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본다면 나쁜 감정이 생기고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 생각됩니다. 남한 영화 중에서 애마부인 류의 애로 영화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 북한에서 상영된다면 북한 주민들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또 {쉬리}같은 영화가 북한에 상영된다면 '너희들 지금 우리하고 싸우자는 거냐' 하는 반응일 겁니다. 남한 사회에 퍼져있는 반공사상을 북한 주민들이 이해 못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도 왜 그들이 {피바다}나 항일 혁명 투쟁영화만 보면서 살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짜임새 있는 행사 등을 통해 서로의 영화를 소개하고,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과정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의 역사나 북한의 체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북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편견을 지우기보다는 반감을 얻게 될 뿐입니다. 저는 성급하게 통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통일을 바라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그 중간 중간에 북한 사회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 대신 그들 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문화적인 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저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찾아야만 합니다. 더불어 이 시간을 통해 남한에서 우리가 보는 영화들은 정말 재미있는 것이고, 가치 있는 것인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90분 동안 대단히 수고 많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