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꽃과 한국문화

사실 저는 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런 강의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분명히 저는 대학에서 식물학이나 원예학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꽃과 관련된 일이나 조경 사업을 한 일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꽃에 대해서는 사실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식물학이나 원예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면서 나름대로 식물의 생태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시골이었고 가난했기 때문에 장난감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아이들이 장난감에 흥미를 느끼는 것 이상으로 저는 산과 들을 다니면서 자연을 이용해 장난감을 만들고 또 접하면서 놀았습니다. 장난감은 바로 아름다운 자연이었던 것입니다. 자연 속에서 저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습니다. 짱구꽃을 아십니까? 푸른색 꽃입니다. 개미를 잡아서 꽃봉오리에 넣고 꽃봉오리를 닫으며 '신랑방에 불켜라, 신부방에 불켜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그 꽃 안에서 밝은 등이 켜집니다. 아주 아름다운 색깔입니다. 어릴 때에는 '신랑방에 불켜라, 신부방에 불켜라'는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꽃이 아름다운 등으로 변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또한 저는 산에서 도라지를 캐기 위해서는 북쪽으로 가야하고, 더덕을 뜯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하고, 산딸기를 따기 위해서는 낮은 곳으로 가야하고, 참나물을 뜯기 위해서는 맑은 물가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산에 가면 식용풀과 독풀을 거의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어릴 시절 자연의 생태학을 배웠던 것입니다. 대학 졸업 후 저는 공직에 종사했습니다. 처음 공직 생활을 시작한 곳은 1968년도 경남 진주시였습니다. 그곳에는 진주성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국가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곳으로 모두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진주성 성역화 사업을 시작하면서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가를 고민했는데 그것이 식물과 관련된 저의 공직 생활 최초의 문제였습니다. 물론 충절과 관련된 나무를 찾기 시작했고 그것을 심었습니다. 그 이후에 대구에서 시장을 역임했습니다. 지금은 다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구는 전국에서 여름이 제일 덥고 겨울이 제일 추운 곳, 그리고 봄·가을이 가장 짧은 곳으로 알려진 지방이었습니다. 저는 대구의 기온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고, 식물을 이용하면 적어도 기온을 2℃에서 3℃정도는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름과 겨울을 짧게 하고, 여름은 조금 덜 덥게, 겨울은 조금 따뜻하게, 그리고 봄·가을을 조금 더 길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구 시내 곳곳에 많은 나무를 심었습니다. 봄과 가을을 길게 하기 위해 꽃을 많이 심었습니다. 겨울을 짧게 하기 위해서 상록 활엽수를 많이 심었습니다. 꽃망울을 일찍 틔우는 꽃을 심으면 사람들이 심리적으로라도 봄을 느끼고 추위를 덜 느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경북지사를 역임했습니다. 고속도로 진입로를 넓히면서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신라 때의 나무를 심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목욕재계를 하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적어도 열 번쯤 읽으라고 당부했습니다. 천오백 년 전에 살았던 신라인 모습을 머릿속에 스케치해 보도록 권고했습니다. 그렇게 한 후 고속도로 진입로에 신라 때 있었을 법한 나무 56종 996그루를 심었습니다. 신라가 56대 왕 996년에 망했기 때문입니다. 토지공사 사장 시절에는 수도권 신도시 건설 사업을 맡아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일산 호수공원과 분당 공원을 세계적인 공원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불행히도 사업 추진 도중 공직에서 물러나는 바람에 일산 호수공원은 제가 생각했던 모습의 절반 정도밖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호수 밑에 용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는 나무와 꽃에 관심을 지니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우리의 꽃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조선 왕조의 문장화, 즉 왕실을 상징하는 꽃이 무엇인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덕수궁 석조전에 보면 꽃무늬가 있습니다. 이를 보고 어떤 분이 우리의 썩은 관리들이 덕수궁에 일본의 상징인 벚꽃 조각이 있는데 아직도 없애지 않았다는 질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그 분이 잘 모르고 한 말입니다. 덕수궁 석조전의 꽃무늬는 벚꽃이 아닙니다. 일본의 벚꽃 문장은 귀가 나와 있지만, 우리 조선 왕실의 문장화는 귀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조선왕실의 문장화는 바로 오얏꽃입니다. 오얏꽃은 이(李)씨를 상징합니다. 오얏꽃은 곧 자두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대단한 문장가, 지식인으로 알려지신 분이 자신의 책에 조선왕조의 문장화는 배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읽고 박사학위에 이것을 인용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꽃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꽃말사전은 천편일률적으로 서양꽃말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가령, 수선화는 '미소년'이라고 꽃말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꽃말로 된 꽃말사전은 없습니다. 해당화의 꽃말을 '잠자는 미녀'라고 쓰고 있습니다. 해당화는 여름철에 바닷가에서 정열적으로 붉게 피는 꽃입니다. 어떤 꽃말사전에서 해당화를 '잠자는 미녀'라고 하니까 이후의 꽃말사전은 모두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엉터리 중에 엉터리입니다. '잠자는 미녀'라는 꽃말을 가진 꽃은 4월말에서 5월초에 마치 가지에 종을 거꾸로 단 모습으로 매달린 꽃으로 순수한 우리 말로는 아그배꽃입니다. 중국 당나라의 헌종이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연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혼자 보기가 안타까워 사랑하는 양귀비를 빨리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전날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습니다. 황제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어 시녀가 그녀를 부축하여 왔습니다. 황제가 보니까 사랑하는 양귀비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을 감고 오는 모습이 꽃보다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헌종이 '해당수미족(海棠睡未足)' 즉 '해당이 아직까지 잠이 모자라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로 많은 중국 문인들이 문학 작품에서 이 글귀를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꽃은 조물주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꽃은 미(美)의 대명사입니다. 이것이 꽃이 지닌 첫째 상징성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꽃은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아름다운 옷을 우리는 화의(花衣)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얼굴을 화안(花顔)이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가마를 꽃가마, 아름다운 상여를 꽃상여라고 했습니다. 즉 아름다운 것에 꽃이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둘째로 꽃은 영예와 풍요를 상징합니다. '집안에 꽃이 피었네'라는 말은 집안에 좋은 일이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꽃이라는 것은 어떤 집단에서 가장 화려하고 찬란한 핵심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경찰에서는 총경이 경찰의 꽃이라고 말합니다. 꽃다운, 꽃 같은 시절이다라는 말은 젊은 시절을 의미합니다. 신라의 왕실이나 가야 고분에서 출토되는 금관의 장식물은 모두 식물과 관련된 것입니다. 모두 식물의 가지, 잎, 꽃, 열매입니다. 그것은 식물이 영광과 영예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용비어천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세, 꽃 좋고 여름 하나니' 여기에서 꽃은 조선 왕조의 무궁한 발전을 의미합니다. 조선 시대 과거에 합격하면 어사화(御賜花)를 하사했습니다. 어사화를 하사했던 이유는 꽃이 영광과 영예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어사화를 무턱대고 무궁화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사화는 무궁화가 아닙니다 무궁화가 우리나라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한말 이후의 식민지 시대부터입니다. 고려 시대 특히 조선 시대엔 무궁화는 각광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합격자에게 무궁화꽃을 주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무궁화꽃은 흰꽃과 분홍꽃 밖에 없습니다. 어사화는 흰색은 없고 붉은색과, 자색, 푸른색입니다. 무궁화에는 이런 색의 꽃이 없습니다. 무궁화와 닮은 꽃은 무명꽃, 즉 목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접씨꽃이 있습니다. 어사화의 꽃은 바로 접씨꽃입니다. 접씨꽃은 공직에서의 승급, 즉 급수가 올라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또한 꽃은 존경과 기원의 상징입니다. 부처님에게 가서 공양을 할 때 반드시 꽃을 바칩니다. 무당이 굿을 할 때, 반드시 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꽃에 신에 대한 기원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무속과 꽃은 관계가 깊습니다. 무속은 꽃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무속에서 꽃은 단순한 신에 대한 경배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꽃 자체가 신체(神體)로 인식됩니다. 굿을 끝내면 신체가 되었던 꽃을 불살라 하늘로 날려보냅니다. 이는 영혼을 멀리 좋은 곳으로 보낸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꽃은 사랑을 상징합니다. 이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습니다. 서양처럼 요란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꽃이 사랑을 상징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틀림이 없습니다. [구운몽]에 보면 성진이 육관대사의 심부름에서 돌아올 때, 외나무다리에서 팔선녀와 만납니다. 외나무다리에서 그들은 서로 길을 비켜줄 것을 요구합니다. 팔선녀가 길을 비켜주지 않자 성진이 '팔선녀께서 나에게 길 값을 달라고 하는 것 같은 데 길 값을 드리지요' 라고 말하며 여덟 개의 구슬을 던집니다. 구슬은 곧 복숭아꽃으로 변해 땅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떨어진 꽃을 팔선녀가 주워 간직합니다. 이는 앞으로 전개될 성진과 팔선녀의 뜨거운 사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규보의 시에 보면 여자가 남자에게 꽃을 선사하는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연꽃을 주었다는 고려 시대의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꽃으로 사랑의 표시를 할 때는 앵두꽃과 복숭아꽃을 사용했습니다. 처갓집에 세배를 갈 때는 앵두꽃을 꺾어갔습니다. 남자가 처녀를 사랑할 때 미투리에다가 앵두꽃 가지를 넣어서 처녀의 집에 던졌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이 됩니다. 복숭아꽃을 꺾어서 미투리에 담아 던지는 것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뜻보다는 나는 당신을 가지고 싶다는 즉 하룻밤의 사랑을 하고 싶다는 본능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한말 때 어떤 남자가 처녀에게 계속해서 미투리에 꽃을 담아 던지자 결국 여자의 집에서 지서에 신고를 해 남자가 지서에 끌려가 엄청나게 맞았다는 기사가 황성신문에 났습니다. 연꽃도 사랑의 상징으로 많이 이용되었습니다. 부부가 자는 방에 연꽃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은 연꽃이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모란도 많이 그려져 있는데 그것은 모란이 부귀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의 방에는 연꽃과 모란꽃이 그려진 그림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꽃은 미인을 상징합니다. '나비야 청산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이 시에서 꽃은 미녀를 상징합니다. '깊은 골에 백옥 같은 선비 간다. 그 선비는 청간일세 꽃을 보고 그냥 가네' 깊은 골짜기에 아주 잘생긴 선비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비는 꽃을 보고도 그냥 지나갑니다. 이 노래에서도 꽃은 미인을 상징합니다. '꽃 본 나비, 물 본 기러기, 매화도 한 철, 국화도 한 철'하는 노래도 이런 의미입니다. 여자의 아름다움도 예쁠 때 한 철이라는 뜻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제일 아름다운 미인은 누구이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황진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황진이는 절세의 미인입니다. 달 밝은 밤에 누각에 올라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노래를 부르니 벽계수가 말에서 떨어졌다는 일화가 전해져 올만큼 아주 아름다운 미인임에 틀림없습니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 때의 미인으로 수로 부인이 있습니다. '자주빛 바위 가에 잡은 손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향가 [헌화가]는 수로 부인을 위한 노래라고 합니다. 수로부인은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남편과 함께 강릉으로 길을 떠납니다. 마침 봄철이라 철쭉꽃이 언덕에 만발했습니다. 수로부인이 철쭉을 꺾어달라고 했지만 위험하다고 하여 아무도 그녀에게 꽃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헌화가]를 부르고 난 후 철쭉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칩니다. 도화녀라는 미인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수로 부인보다도 미인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라의 진지왕이 도화녀에게 반했습니다. 진지왕이 그녀를 유혹했지만 '나는 남편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진지왕이 다시 '그렇다면 남편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그 때는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진지왕이 죽고 도화녀의 남편도 죽었습니다. 진지왕의 혼이 도화녀에게 '이제 너는 남편이 없으니 나와 사랑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도화녀는 승낙하고 그와 관계를 했습니다. 그렇게 낳은 아들이 비현랑입니다. 비현랑은 비상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귀신과 통했던 것입니다. 조정에서 다리를 놓는 데 비현랑이 귀신을 불러 하룻밤만에 다리를 완성했습니다. 그 다리이름이 귀교(鬼橋)입니다. 또 신라의 미인으로 서동요의 주인공인 선화 공주가 있습니다. 고려의 미인은 류화(柳花)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여자를 말할 때에는 花자가 들어갔습니다. 춘향전에 변사또가 남원부사로 부임하여 기생 점고하는 광경을 보면 많은 기생들의 이름에 花자가 들어갑니다. 한말 때 서울에 기생 양성 학교가 있었습니다. 수 백 명이나 되는 기생의 이름에 삼분의 일 이상 花자가 들어갔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인의 모습을 묘사할 때 우리의 조상들은 인체의 각 부분을 꽃으로 비유했다는 점입니다. 미인의 얼굴은 복숭아꽃으로 비유했습니다. 복숭아꽃 같이 아름다운 여인. 이러한 비유는 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얇은사 하이얀 고깔은 고히 접어서 나빌래라 ……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조지훈의 「승무」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복사꽃으로 비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인의 눈썹을 말할 때는 예외 없이 버들잎이라고 했고, 입술은 앵두 같은 입술이라고 했습니다. 미인의 허리는 수양버들에 비유했고, 미인의 걸음걸이는 연보(蓮步), 즉 연꽃이라고 했습니다. 미인의 가슴은 함박꽃 또는 연꽃에 비유했습니다. '한산모시 적삼 밑에 연꽃 같은 저 젖 봐라 많이 보면 병이 난다'. 농촌지방의 민요입니다. 미인의 피부는 배꽃 혹은 박 속에 비유했습니다. '배꽃일세 배꽃일세. 처녀손목이 배꽃일세' 등에서 알 수 있습니다. [춘향전], [심청전], [사씨남정기] 등에서도 모두 여인을 꽃에 비유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이 미인을 덮어놓고 꽃에 비유하지는 않았습니다. 특정한 형의 꽃을 특정한 미인에 비유했습니다. 미인형은 크게 연수형과 옥비형이 있었습니다. 연수형은 허리가 가늘고 얼굴에 살이 적은 갸냘픈 미인을 말합니다. 이는 중국 한 무제의 비(妃) 조비연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녀는 너무 갸날퍼서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바람이 세게 불면 날려가기 때문에 반드시 시녀가 손을 잡고 가야 바람에 날리지 않았다고 하는 아주 가냘픈 여자였습니다. 비연食이라는 말은 지금으로 말하면 다이어트食을 말합니다. 옥비형은 양귀비처럼 살이 찐 통통한 형의 미인을 말합니다. 시대에 따라서 연수형을 좋아하던 시대도 있었고 옥비형을 좋아하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양귀비가 유명할 때는 연수형보다 옥비형이 각광받았습니다. 연수형의 대표적인 꽃은 매화꽃이 있고 옥비형의 대표적인 꽃은 모란꽃이 있습니다. 모란꽃 같이 생긴 여자는 훤하게 생긴 여자를 말합니다. 얼굴이 흰 여자, 소복이 어울릴 듯하고, 석양에 해가 넘어가는데 목화밭에서 목화를 따고 있는 모습이 어울리는 청순형의 여자는 배꽃이라고 했습니다. 복숭아꽃은 요염한 여자를, 기생은 살구꽃을, 해당화는 창녀를, 여자 무당은 접시꽃을, 박꽃은 시골의 순박한 여자를, 호박꽃은 못난 여자에 비유했습니다. 이처럼 미인을 꽃에 비유한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지만 특정한 형의 미인을 특정한 꽃에 비유한 민족은 우리 민족밖에 없습니다. 봄이 되면 산에 꽃을 구경하러 가는 화류놀이가 있었습니다. 꽃놀이를 가면서 오면서 주로 '아무개 아무개는 무슨 꽃이더라', '아무아무 수원댁은 어떤 꽃이더라'라는 가사를 지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부녀자와 그 꽃과 관계가 성격과 외모 등에서 매우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여성들은 꽃에 대한 관찰력이 대단했습니다. 또한 꽃은 재생과 영생을 상징합니다. 상여에 꽃을 장식하는 이유는 영생을 기원하기 때문이며, 고구려 고분 벽화에 연꽃이 많이 그려진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청이가 연꽃으로 환생한 이유도 연꽃이 재생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바리데기 설화에도 꽃이 등장합니다. 딸만 여섯을 둔 왕이 일곱 번 째 딸을 낳았습니다. 왕은 실망이 크고 어이가 없어서 일곱 번 째 딸인 바리공주를 산에 내버렸습니다. 그러나 산에 버려진 바리공주는 까막까치와 같은 온갖 동물의 도움으로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왕과 왕비가 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온갖 전국의 용한 의원이 동원되어 영약을 써 보았지만 왕과 왕비의 병에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바리공주는 약수 삼천리를 건어 서천꽃밭에 가서 약을 구해 옵니다. 그 약이 꽃이었습니다. 뼈사리꽃, 살사리꽃, 숨사리꽃 이 세 가지 꽃을 구해왔습니다. 꽃을 뼈에 대자 뼈가 살아나고, 살에 대자 살이 살아나고, 코에 대자 숨이 살아났습니다. 꽃이 지닌 재생력을 잘 보여주는 설화입니다. 이렇듯 여러 가지 상징을 지니고 있는 꽃을 인류는 오랫동안 사랑해왔습니다. 다음은 우리 조상은 어떤 꽃을 좋아했고, 어떤 이유로 그 꽃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조상은 첫째로 교훈적인 가치를 지닌, 즉 윤리적인 의미를 주는 꽃을 좋아했습니다. 향기가 좋고, 크고 예쁘다고만 해서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조상들이 좋아했던 도덕적 가치, 덕목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절개와 지조를 지닌 군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절개를 상징하는 꽃은 무엇이 있습니까? 다른 꽃은 필 생각도 않는데 매화는 눈보라를 무릅쓰고 피어나는 꽃입니다. 봄소식을 제일 처음 전하는 꽃, 추위 속에서 꽃을 피우는 꽃입니다. 그래서 매화는 절개를 상징합니다. 또 대나무가 있습니다. 다른 모든 잎은 지는데 대나무는 청청 푸른 그 잎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송죽매. 이를 세한삼우(歲寒三友) 즉 추위를 이겨 낼 수 있는 친구라하여 아주 좋아했습니다. 군자를 상징하는 꽃으로 난초가 있습니다. 아주 깊은 골짜기,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골짜기에 홀로 피어나서 그윽한 향기를 주변에 자아냅니다. 연꽃 역시 군자를 상징합니다. 그것은 연꽃이 진흙에서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진흙과 같은 더러운 꽃을 피워내지 않고 아름다운 잎과 꽃을 피워냅니다. 나쁜 환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나쁜 환경에 물들지 않고 훌륭한 도덕적 인격을 지닌 선비, 이를 군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 덕목은 충성입니다. 충성을 상징하는 꽃으로는 북향화가 있습니다. 북향화란 북쪽을 향하는 꽃이란 의미로 목련꽃을 말합니다. 이 꽃은 필 때 꽃이 전부 북쪽을 향합니다. 북쪽에는 바로 임금이 있습니다. 접시꽃도 충절을 상징합니다. 백이숙제 고사와 관련된 고사리도 충절을 상징합니다. 또 해바라기, 한자로는 규화(葵花)라고 부르는 꽃 역시 충절을 상징했습니다. 그 다음 덕목으로 효가 있습니다. 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식물로는 아버지를 상징하는 춘나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없고 중국에만 있는 꽃입니다. 삼천 년에 한번씩 꽃을 피우고, 오래 산다는 장수목입니다. 타인의 아버지를 존칭할 때 춘부장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춘목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머니를 상징하는 꽃으로 원추리꽃이 있습니다. 원추리꽃은 근심을 떨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꽃으로는 박태기꽃이 있습니다. 버선 모양으로 생긴 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우리 시가(時歌)를 읽다가 박태기 꽃이 나오면 이는 형제 사이의 우애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그 다음으로 부부애를 상징하는 꽃이 있습니다. 부부간의 사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로 자귀나무가 있습니다. 소교목인 자귀나무는 잎이 대생으로 양쪽으로 나있고 참빗살처럼 생긴 꽃이 유월에 핍니다. 자귀나무의 특징은 낮에는 잎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지만 해가 떨어지면 두 개의 잎이 한쪽으로 붙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밤새 붙어 있다가 아침에 해가 돋아나면 다시 떨어집니다. 그래서 합환수(合歡樹)라고도 부릅니다. 또 부부애를 상징하는 꽃으로 등나무가 있습니다. 부부간의 사이가 멀어지면 등나무꽃을 삶아서 그 물을 부부가 함께 마십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사랑이 식으면 부인이 등나무꽃을 따와서 남편의 베개에 넣었습니다. 그렇게하면 남편의 마음이 돌아온다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소박한 꽃을 좋아했습니다. 원색의 꽃보다는 흰색 꽃을 좋아했습니다. 홍매보다는 백매를 훨씬 좋아했습니다. 배꽃을 좋아했던 것도 그 흰색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봄에 제일 먼저 피는 꽃은 대부분 흰색이고, 가을에는 갈대꽃이 있습니다. 일본인은 싸리꽃을 좋아했지만, 우리 조상들은 싸리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소박한 꽃을 좋아했기 때문에 겹꽃보다는 홑꽃을 더욱 높게 평가했습니다. 동백꽃은 겹꽃과 홑꽃이 있지만 홑꽃 동백을 좋아했습니다. 또한 무더기로 많이 핀 꽃보다는 드문드문 핀 꽃을 좋아했습니다. 중국인이 그린 매화는 가지에 수천 수만 꽃송이가 무성하게 붙어 있지만, 우리 조상이 그린 매화는 전부 꽃송이가 드문드문 그려져 있습니다. 또 향기가 진한 꽃보다는 은은한 향을 지닌 꽃을 좋아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향기가 들린다는 의미에서 문향(聞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저 먼 곳에서 그저 아주 가냘픈 거문고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다가오는 향기, 그러한 향기를 지닌 매화와 난초를 좋아했습니다. 매화는 암향(暗香)이라 했고, 난초는 청향(淸香)이라고 했습니다. 빛이 붉다고 해서, 향기가 진하다고 해서, 크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장미, 물론 아름다운 꽃입니다. 우리의 고시조가 약 4000여 수가 전해져 오는 데 그 중 장미를 아름답다고 읊은 시는 한 수도 없습니다. 가사(歌辭)가 많이 전해져 오고 있지만 장미를 읊은 것은 단 한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장미가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옛날에는 장미가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장미는 신라 때부터 우리나라에 존재했습니다. 한시(漢詩)에는 장미를 소재로 한 시가 더러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의 사항을 기준으로 하여 우리 조상들은 1등급에서 9등급까지 꽃의 등급을 매겼습니다. 물론 1등급으로는 매화와 난초, 연꽃, 소나무가 있고 2등급은 모란과 작약이 들어갑니다. 이러한 기준은 앞서 말한 전부 꽃이 지닌 도덕적 가치와 운치 등을 고려한 것입니다. 장미는 9등급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운치가 있는 꽃과 정경을 좋아했습니다. 같은 꽃이라도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가를 중시했던 것입니다. 태양이 작열하는 가운데 화려하게 만발한 꽃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밤에 피는 꽃을 좋아했습니다. 화창한 날에 핀 꽃보다는, 바람을 맞는 꽃, 눈을 맞는 꽃, 비를 맞고 있는 꽃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달빛 아래의 매화꽃은 모두가 넋을 잃고 빠져드는 풍경이었습니다. 새벽 달빛을 받는 살구꽃과 배꽃을 좋아했습니다. 고려 시대 어느 시인은 비가 오면 비를 맞는 연꽃을 보기 위해 맨발로 연못가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연꽃 위로 비가 내리는 광경을 그는 아주 좋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동풍세우(東風細雨) 속에 흩날리는 복숭아꽃의 정경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동풍세우 속에 흩날리는 복숭아꽃의 정경 속에서 술잔을 기울여 본 사람이 아니면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봄에 비가 내리고 냇물이 불었을 때, 그 냇물에 떠오는 꽃잎을 좋아했습니다. 이처럼 꽃을 사랑한 민족은 지구상에 없습니다. 우리의 조상은 나무를 함부로 심지 않았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나무를 심을 때도 방위가 있었습니다. 미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모두 이유가 있었습니다. 홍동백서(紅東白西), 동쪽에는 붉은 꽃을 서쪽에는 흰꽃을 심었습니다. 석류꽃은 안방 주인이 안방문을 열면 보이는 곳에 심었고, 복숭아꽃은 집안에 심지 않았습니다. 또 복숭아꽃은 우물가에 심지 않았습니다. 우물가에 복숭아꽃을 심으면 기생집 옆에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복숭아꽃을 집안에 심지 않았던 것은 복숭아꽃이 너무 요염해서 집안의 처녀가 바람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복숭아꽃은 동쪽 담 밖에 심었습니다. 또 마당 한가운데와 대문 앞에는 나무를 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는 조경도 많이 하고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모두 서양 풍조에 젖어 있어 한탄스럽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좋아했던 꽃은 온데간데 없고 서양의 꽃만 좋아합니다. 돌아가신 이병철씨가 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세계의 이름난 좋은 나무와 아름다운 꽃을 많이 수집했습니다. 그분이 미국에서 수입한 꽃 가운데 '미스 김'이라는 라일락꽃이 있었습니다. 그 라일락에 대해 조사해 보았더니 우습게도 그것은 원래 우리나라 나무를 조금 개량한 것이었습니다. 1947년에 미국의 어느 식물학자가 북한산에서 씨를 12개 따서 그 중 절반 정도를 미국내에서 재배에 성공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백합은 잘 알지만 나리꽃은 잘 모릅니다. 사실 같은 꽃입니다. 세계에 백합이 약30여 종이 있는데 그 중 삼분의 일이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구라파에는 단 두 종이 있을 뿐입니다. 그 많은 나리꽃을 활용할 줄 모르고 많은 돈을 들여서 구라파의 백합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 구상나무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 나무를 크리스마스트리로 전세계에 팔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름답고 가치 있는 꽃이 많이 있습니다. 병충해에 강하고 추위와 더위에도 강한 우수한 꽃입니다. 일본이나 중국의 꽃보다 훨씬 우수합니다. 그 속에는 인류를 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계는 흑장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식물을 통해서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꽃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서양꽃을 수입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은 찬란한 꽃문화를 자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우리꽃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꽃문화에 자긍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강연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