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한 재미 한국인 역사학자가 본 한국 역사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해외에서 역사, 특히 한국사를 다루어 온 사람이 생각하는 역사관이라고 할까요. 쉽게 말해서 역사의 필요성, 특히 한국인으로서의 한국사의 필요성입니다. 저는 그러한 이야기를 제가 직접 미국에서 겪은 체험을 위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미국 켄터키주에 있는 Berea 대학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문리과 계통의 대학입니다만 아주 규모가 적고 특수한 학교입니다. 그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매주 10시간의 노동을 의무적으로 시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대신 대학 내의 어디서 일을 하느냐는 학생이 선택하지요. 제 경우에는 도서관 일을 지원해서 대학 부설로 있는 아동도서관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처음 가을학기부터 강의 시간표에 노동시간을 넣어서 하루 2시간 정도, 일주일에 10시간 일을 했지요. 감독관은 60대 노인이셨는데, 평생을 도서관 사서로 일하시고 동양에 대해서도 비교적 조예가 깊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분 밑에서 일을 하게 되었으니 서로 대화를 해야 하는데 막상 그분에게 'You', 즉 "당신"이라는 말이 안나오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말은 주어가 없어도 대화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영어에서는 주어가 없으면 보통 문장의 문법 성립이 안되잖아요. 그런데 그분하고 대화할 적에 입에서 'You'라는 말이 안나오는 거예요. 물론 한국에서 영문과를 다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할머니의 연령인 60대의 상관과 대화를 할 때 제2인칭 주어가 되는 "You"라는 말이 안나오는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말이라는 것은 음을 빌려서 우리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죠. 따라서 저는 영어라고 하는 언어의 그 음을 빌려서 의사전달을 해야 하는데 제 생각이 따라 주지 않았던 거예요. 그 당시의 제 생각은 한국식 가치관에 사로잡혀있었거든요. 무슨 이야기를 할 적에 나타나는 것은 당시 제가 지니고 있었던 인간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관념과 가치관이 전부 한국적인 것이었다는 겁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만 그러나 제가 그런 것을 실제 체험을 통해 자각하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었을 때는 못 느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경험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자기 나라를 떠났을 때야 비로소 자기 나라에 대한 여러 가지 느낌을 새삼스럽게 자각할 때가 있지요. 저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저는 왜 연상의 직속 상관과 대화를 하는데 'You'라는 말이 안나오느냐에 대하여 자문하고 그 문화적 뿌리 그리고 가치관의 근원을 따져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펼쳐놓고 보니 제 자신이 가진 가치관의 문화적 배경에 대해 제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더군요. 우리 세대의 경우 대부분 우리 것, 특히 우리 전통과 등지고 살고 있는 스승들이 많았습니다. 나라를 잃은 서러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구 문명을 빨리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만 생각하셨던 분들이었지요. 그분들은 우리의 과거와 전통을 부정만 하고 그 부정한 것이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였다는 사실 마저 일체 인정하지 않고, 그러한 가치관 자체를 대부분 멸시했습니다. 때문에 전통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 또한 거의 없었습니다. 그분들의 생각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역사란 결국 우리 과거의 모든 것을 결집한 그 무엇 아닙니까? 내 자신의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현재, 내가 속해있는 국가의 현재라고 하는 것은 결국 무에서 온 것이 아니라 과거의 무엇이 모여서 그 속에 집결된 문화와 가치관 가운데서 우리가 선택한 것의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소중히 여기고, 그 가운데서 꼭 지켜야 할 것은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해외에서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부분은 역사를 전공하든 안 하든 우리 것은 우리 스스로 지키고 계승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이고 당연한 생각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얼마 지나지 않아 소멸되고 말겠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지키지 않고 남이 대신하면 어떻게 될까요? 왜곡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고대사에는 자료가 없지 않습니까? 문자가 없었으니 당연히 우리말로 적은 기록도 없었고 따라서 가까운 중국의 사료를 뒤져서 겨우 간략한 기록 몇 가지를 근거로 추측할 수밖에 없지요. 따라서 거기에서 오는 문제가 많지 않겠어요? 당사자가 기록한 것이 아니고 제 3자가 기록한 것이니까 가치관의 차이가 현저하게 다르겠지요. 그 예의 하나로 단군에 관한 기록에 대하여 생각해봅시다. 삼국사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삼국유사에만 언급되어 있지요. 만약 그러한 기록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조상의 명칭이 한족이든 백의민족이든 배달민족이든 우리는 우리 근원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그리고 그에 대한 굳건한 믿음도 없었을 겁니다. 우리 근원을 따질 때 아무 것도 논의할 수 없다는 겁니다. 단군신화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문화인류학자의 도움을 받아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 해석을 시도할 수 있을뿐더러 우리 자신의 정체성도 지켜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옛날 고대 시대의 일본 사람들은 '곰'과 '고구려'를 똑같이 '코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 일본은 자기들의 고유 신화에 나오는 귀신을 '카미'라고 부르는데 그 어원을 따지면 일본열도의 원주민들인 아이누 족들의 말로 '카무이(Kamui)' 즉 곰이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카무이'하고 곰, '코마'는 모두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말하는 신-우리가 말하는 귀신하고 같은 말입니다만-이라는 것은 결국 곰을 토템으로 하는 종족들이 자기 신앙의 대상을 부른 말, 바로 '카미'라는 겁니다. 지금 현재의 일본 황실이 대륙에서 건너왔다는 사실을 일본 학자들도 차츰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곰을 토템으로 하는 종족이 만주, 한반도 북단에서 고구려라는 나라를 세웠고 그 문화와 전통이 일본에 흘러 들어가게 된 것이지요. 만약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의 뿌리를 모르고 그 근거를 내세울 수 없다면 틀림없이 일본은 우리 역사를 더욱 적극적인 방법으로 왜곡하고 부정했을 겁니다. 그 좋은 예가 "식민사관" 아닙니까? 우리 역사를 처음으로 서구의 방법과 이론을 적용해서 연구한 학자들이 일본학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해방이 되고도 우리는 오랫동안 학술적으로는 그들에 의해 이루어진 학문에 의지해야 했고 또 그들의 학문적 수준을 처음에는 우리가 미처 따라가지 못했지요. 그때 일본 역사학자들은 우리 역사에 관해 '식민사관'의 입장에서 여러 사실들을 왜곡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경우가 소위 '정체성이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어느 일정 시기에 정체되어서 그 이후 전혀 진전이 없었다는 거예요. '정체성이론'을 처음 학문적으로 주장한 도구다규이찌는 일본에 유물사관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입니다. 그는 일제 시대의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서 조선조를 '이씨 조선'으로 칭하면서, 이 '이씨 조선'의 경제 상황을 일본에서 봉건 토지소유제도가 형성되기 전의 경제 상황과 동일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만큼 우리나라가 지극히 뒤떨어진 국가 경제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참으로 그렇게 발전이 없었던 나라였나 하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사회와 비교해보면 실상 이 '정체성이론'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평안시대 이후 고대국가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하여 1185년에 군사정권이 수립됩니다. 그런데 사회 전반적인 발전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이미 통일신라 말인 10세기를 전후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합니다. 이러한 것을 잘 입증하는 예로 과거제도를 들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과거제도는 통일신라에서는 실시되지 못했습니다. 독서삼품과라는 유사한 제도를 시도해보았습니다만 완전한 성공은 못했지요. 그 이유는, 개인의 능력을 일정한 시험을 통해 관료로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과거 제도 아닙니까? 따라서 과거를 통해서 국가관료를 선발할 때에는 골품제와 같은 혈통이라든지 사회 신분이 그 선발의 제 일차적인 척도가 될 수 없지요. 그러니 신라의 골품체제하에서는 과거가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0세기에 들어와서 고려가 과거를 성공적으로 도입하여 그 후 계속 실시하여 관료 등용에 새로운 길이 열렸지요. 결과적으로 말해서 신라 골품체제하에서 성골, 진골이라는 신분만으로 권력을 독점하던 방식이 과거제도의 도입으로 실질적인 종말을 맞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과거 제도 도입은 그 역사적 의미가 참으로 큰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시간 관계상 모두 언급할 수는 없습니다만 우리나라에 현재 실시되고 있는 고등고시제도라든가, 여러분이 몸소 겪은 대학입학시험도 그 근원을 따지면 과거제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요. 여러분들은 다만 고려 광종의 과거제도 도입을 쌍기의 건의에 의해 실시한 것으로만 알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내용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놀라운 사실들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 한가지 예로 오늘의 고등고시를 우리말도 아닌 외국어로(아니지요, 라틴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하겠군요.) 그것도 최근에 쓴 책이 아니라 옛날의 고전을 내용으로 하는 시험을 보았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과거 시험이 얼마나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려운 시험을 위한 공부가 그 당시의 귀족층 자제들에게 실시된 교육이었습니다. 그러한 교육의 기초인 한문 공부를 얼마나 철저히 하고 또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아이러니컬(ironical)하게도 한자의 음과 뜻을 빌어서 우리말로 작성한 향가가 10세기 이후에는 우리 사회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또 역설적으로 우리 문학의 역사적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혹은 과거를 위한 교육을 통해 우리나라의 사상적 발전에 무엇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우리의 전통 지배 계급에 어떠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느냐 등등은 여러분들에게 오늘 제가 드리는 숙제로 남기고 싶으니 여러분이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서 다시 일본과의 비교로 돌아가서 말씀드리면 과거제도의 도입과 같은 문제, 즉 선진 문화인 당나라의 지식과 그 문물의 수입과 수용이라는 면에서 보면 10세기의 우리 조상들은 우등생 중의 우등생이고 이에 반해 일본은 결과적으로 완전히 실패한 낙제생이었지요. 10세기의 일본은 과거제도의 성공적이고 지속적인 도입은 말할 것도 없고 당대 중국 문물의 도입을 아주 포기하게 되었지요. 그 결과 일본 사회는 이때부터 오히려 후퇴하기 시작합니다. 세계사를 연구해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가 발전되어 가는 표시 중의 하나가 권력 기반의 사회적인 확장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될 수 있으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균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사회 발전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갈 때 변화하는 사회질서 체제는 확실히 비약적인 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고대부터 일본은 귀족들의 권력 독점 기반이 철저하게 혈연 중심입니다. 수적으로 한정된 가문의 혈연을 고착시켜서 아주 밀착시켜버리지요. 이와 같은 현상은 무신정권이 들어서고 난 후에도 여전히 지속됩니다. 일본의 무사들이 새로운 권력층으로 등장한 후 처음으로 군사정권인 막부를 설치한 미나모토씨와 같은 쟁쟁한 집안도 따지고 보면 다 일본 조정의 후손들입니다. 미나모토씨하고 대결했던 타히라씨도 그러했지요. 따지고 보면 중앙에서 지방으로 파견되어서 새로 지방에서 다시 나타나는 옛 중앙귀족의 후손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정권을 잡고 난 후 또 다시 혈연을 기준으로 신분을 규정하고 그 신분에 의해 정권에 참여하는 원칙을 지속했습니다. 그것이 명치유신 전까지 계속 유지되어 왔지요. 그에 비해 통일신라 이후의 우리나라는 혈연의 원칙에만 한정되었던 골품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사회체제가 전개되지요.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새로운 사상이 들어와서 보급되면 그 조류에 따라 혁신적인 개혁 운동이 일어나지요. 그로 인하여 국가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층 더 성숙된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불교가 들어온 우리 삼국시대의 사회에는 정신문화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고대국가의 기초가 튼튼하게 다져지게 됩니다. 이것은 신라에서 불교를 국가가 공인하고 난 뒤에 그 사회에서 고대 국가의 발전상이 역력히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모델은 중국이 제공하게 되었겠지요. 그 당시 우리 조상들이 가질 수 있는 모델 가운데 제일 선진적이고 제일 발달되고 또 부의 창출이라는 면에서도 가장 앞선 나라가 중국이었으니까요. 따라서 불교와 함께 들어오는 중국의 문물들은 우리의 생활을 아주 많이 바꿔 놓았습니다. 그런 반면, 일본은 어떠했습니까? 군사정권시대에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 불교 승려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습니다. 가마쿠라 막부를 만들 적에 일본 중앙에서는 학자 두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도 그리 큰 공헌을 못했어요. 결국 일본도 12세기 말엽 즈음부터는 일본의 봉건제도를 만들어 내지만 그 동안에 치른 희생을 생각해 보세요. 칼로써 모든 것을, 다시 말해서 힘으로써 모든 것을 해결했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유혈, 파괴 등 그 희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비해 우리는 통일신라의 학자들이 다수 중국에 가서 제대로 공부하고 돌아와서 후배들을 양성하고 지속적으로 중국의 선진 문물을 성공적으로 유입시켜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웁니다. 중국 사람들 스스로가 신라 사람들의 불교 경전에 관한 희박한 지식과 또 중국 문자를 사용한 한문학의 질은 정말 대단한 수준이라고 인정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지요? 우리가 지금 당면한 과제로 삼고 있는 서구 민주주의의 도입을 예로 들어봅시다. 만약 교과서에 쓰여있는 민주주의를 바로 카피(복사)해서 그대로 흉내낸 것으로써 현실정치의 제도화가 가능하다면 우리는 벌써 민주주의를 몇 번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은 교과서에서 배우는 민주주의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우리 국민 하나 하나가 일상 생활에서 갖는 민주주의적 체험을 각자의 것으로 소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름지기 인간사회에서는 완벽한 카피, 완전한 흉내는 있을 수 없습니다. 흉내낸 것이 제대로 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사회에서 우러나오는 필요성이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체험을 통해 그것이 먼저 그들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 조상들은 훌륭하게 해냈어요. 그런데 일본은 못했습니다. 물론 일본이 현대 서구 문명이 밀려 들어왔을 때 재빨리 그것을 받아 들여서 여건이 허락하는 한 자신들의 문화에 전면적으로 흡수하였기 때문에 현재 우리보다 앞서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일본이 그렇다고 과거의 일본도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일본이 과연 지금처럼 선진의 자리를 지켜나갈지 그것도 역시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요. 그런데 현재의 일본이 누리는 선진성 때문에 간혹 우리의 고유한 전통과 역사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보고, 또 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창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우리 동포 가운데 어떤 사람은 '애틀랜타'라는 미국의 저명한 잡지에 "우리 역사는 보잘 것 없으니까 자꾸 자랑할 것 없이 그저 숨겨 놓는 것이 좋다"는 글을 한 때 쓴 적이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럴 정도로 우리 세대는, 특히 내 나이의 세대는, 우리 역사를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결과적으로 우리 자신은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많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사회는 점차 국제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결국 세계가 동질화되어 갈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성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계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하려면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문화를 통로로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아직도 서구 사회에 대한 무분별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인생의 3분의 2를 서구-주로 미국입니다만-에서 보내면 매일 같이 부딪치고 보고 듣고 하기 때문에 서양의 나쁜 점, 고쳐야 할 점이 많이 보입니다. 그것 때문에 그 사회가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손실이 많은지 그리고 그 문제 때문에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 조금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아직도 인권문제, 특히 유색인종과 백인종간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거의 15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에 가졌던 편견이 변하지 않고, 혹은 부분적으로만 변한 상태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가져다 준 부작용은 현재까지도 미국 사회 전반에 걸쳐서 실제로 상당히 심각한 과제로 남아 있다고 말할 수 있지요. 이러한 인종차별과 인권이라는 면에서 보면 일본의 경우는 아직도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정체되어 있고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적 규모의 산업과 금융 같은 경제 분야에서는 변화의 속도가 굉장하지만 아직도 사회, 문화적인 부분에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사회나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노력의 방향이 자신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사회 전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야가야 한다는 데 있지요. 그러니 제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자신과 그 사회를 만드는 문화 요소, 즉 사회 윤리적으로 모든 것이 형성되는 과정으로서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또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역사를 더 잘 알고 명확히 밝힐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의 발전에 커다란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지구촌에서 우리가 살아나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기여해야 할 것이고, 또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세계 속에서 보다 나은 자신의 모습을 일구어 나가기 위하여 우리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또 지켜나가고자 하는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