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문화와 정치발전

문화라는 개념은 매우 광범위하므로, 이 자리에서는 정치발전과 관련시키기 위하여 범위를 좁혀서 정치문화에 국한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정치문화라는 말은 우리에게 생소한 용어로, 한 3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었습니다. 서구에서도 정치문화(Political culture)란 개념이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 50년대 말이기 때문에, 정치문화가 정치현상 분석에 하나의 분석적 개념으로 사용된 것은 불과 50년도 채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70년대부터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정치문화라는 말이 생소하거니와 심지어 그 말에 대해 정서적인 거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최문식 선생이 국회의장이 되신 다음에 조선일보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 페이지 분량의 인터뷰 기사였는데, 긴 내용 중에 한군데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요즘 한국의 정치문화에 어떤 문제점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치문화라는 말을 요즈음 젊은이들이 자주 사용하는데 정치문화라는 말이 도대체 뭐냐? 내가 연설할 일이 있어서 공보비서관에게 원고를 작성해 오라고 했더니, 거기에도 정치문화라는 용어가 있기에 내가 다 지워버렸다. 그런데 당신도 그걸 묻는구먼' 하고 의장님께서 대답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정치문화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나오신 그분이 학교를 다닐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용어며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신세대들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정치문화라는 말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치문화와 유사한 용어를 우리말에서 찾아보면 정치풍토라는 말이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정치풍토와 정치문화라는 말은 함의가 비슷하고,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풍토라는 말이 더 철학적이라고 생각됩니다. 풍토의 '토'는 땅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을 지칭합니다. 토에는 그곳에 사람이 산다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풍'자는 그 공간 위에 흐르고 있는 바람이니, 땅위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문화라는 말보다는 정치풍토라고 하는 말이 훨씬 더 철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정치풍토라는 말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영역인 정치와 문화를 더불어 논의할 수 있는 것은 정치현상을 빚어내는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가 정치문화다 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정치현상을 빚어내는 중요한 변수에 대해서 여러 차례 생각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한때는 헌법이나 법률을 중요한 변수로 생각하여 정치현상을 분석할 때 법률이나 제도를 가지고 분석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나면서 정치집단이 분출되어 나오자 사람들은 정치현상을 빚어내는 변수로 집단을 우선적으로 꼽았습니다. 소위 정치집단 접근법이 성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정치집단을 움직이는 정치리더가 보다 더 중요한 변수라고 생각하여, 그 다음부터는 리더십 어프로치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정치현상은 리더나 집단, 법률, 헌법, 제도 그 차원에서만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 정치가 확산되면서 대중이 정치의 주체로 위력을 발휘하며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국민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가치관을 갖느냐 하는 것이 정치현상을 이렇게도 만들고 저렇게도 만든다는 것입니다. 즉 국민들의 정치문화가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정치문화를 분석함으로써 정치현상을 이해하고 다가올 정치현상을 예측하려는 정치문화접근법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에 와서는 정치문화가 정치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 되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정치문화라는 개념이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조사한 결과에 따라 정치문화는 그 특징에 따라서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습니다. 정치발전과 관련된 문화유형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참여문화입니다. 참여문화는 국민 스스로가 통치의 객체가 아닌 정치의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책임 있는 태도이고 행동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참여문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정치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여문화의 창달을 위해서 대학이나 언론을 비롯한 온 사회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계학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 사회는 이러한 노력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국민이 잠자고 있으면 정치에 참여할 수도 없고, 정치도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의 시민단체의 활동은 아주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시민들이 환경문제나 정치문제 등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이런 활동들이 이 나라 민주주의의 안전장치가 되고, 정치발전 또한 더욱 촉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의 도리는 참여로써만 끝나는 것이 아니며, 참여 그 자체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번쯤 우리는 시민들의 참여 방식을 반성적 입장에서 돌아봐야 합니다. 참여문화가 바람직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올바른 참여문화의 전제는 그 주체들의 청렴성입니다. 이것은 제가 지금 반부패특별위원회 위원장이기 때문에 하는 얘기가 아닐 뿐더러, 이 자리에서 처음 하는 주장도 아닙니다. 2500년 전 고대 희랍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주변 도시국가들의 헌법과 제도를 수집하여 나름대로 독특한 분류이론을 세우고 정치체제를 분류했습니다. 2500년 전에 그가 분류한 내용을 앞에 놓고 20세기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이 어떤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는지, 그리고 과연 그보다 더 훌륭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권력의 소재 양식과 행사 방식에 따라서 정치체제를 분류했습니다. 정치권력이 한 사람 손에 들어가 있다면 군주정치로, 소수의 사람들에게 들어가 있다면 귀족정치로, 그리고 국민의 손에 정치권력이 쥐어져 있다면 민주주의로 말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분류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달아놓은 전제조건입니다. 이 분류는 정치 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깨끗하고 이성적일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군주가 군주정치를 유지하려면 그의 권력행사가 정당하고 공정하며 부패나 사리사욕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귀족정치나 민주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이 썩어 부패해버리면 그때는 더 이상 군주정치도 아니고 민주정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군주정치가 썩으면 폭군정치가 되고, 귀족정치가 부패해 버리면 과두정치로 변질됩니다. 부패나 타락이 똑같은 정치체제를 전혀 다른 체제로 변질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려고 하는 국민 다수에 의한 민주주의도 결국 국민이 타락하지 않고 부패하지 않은 한도 내에서의 민주주의일 뿐이지, 국민이 이성을 잃고 광기에 사로잡혀 폭력을 사용한다면 그때는 폭민정치가 될 겁니다. 또한 국민이 돈에 눈이 어두워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돈으로 팔아버리거나 권력자가 비례대표 의석을 돈으로 팔아버린다면 그때는 금권정치로 전락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이 땅에 민주정치가 확보되었다고 믿으면 안됩니다. 국민 스스로가 감시자의 눈으로 주변을 살펴서 행여 금권정치로 타락 변질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경계심이 있어야 합니다. 참여문화가 정치발전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그 참여문화의 주체들이 청렴을 유지하지 않으면 그 문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점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살펴보면 어디까지가 청렴이고 어디부터가 부패인지 그 경계선이 아주 무뎌져 일종의 부패불감증이 지배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지 않으려고 합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대신에, 오히려 배부른 돼지 쪽을 원하는 것이 오늘의 세태입니다.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선비주의 정신(퓨어리타니즘)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미국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나마 저토록 유지되는 것은 서부개척시대에 가졌던 미국의 퓨어리타니즘 때문입니다. 클린턴의 성추문을 포함한 미국의 갖가지 추태가 전세계에 알려지고 있지만 그래도 미국을 버티고 있는 것은 역시 부패를 용납하지 않는 투철한 청교도 정신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선비정신을 되찾는 것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과제입니다. 부패는 국내정치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거니와 세계 무역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무역 당사자끼리 서로 뇌물을 주고받으면 정상적인 유통의 흐름이 왜곡되어 타국의 국내 질서에도 교란이 오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가 1993년에 창설된 국제투명성조사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입니다. 이 기구에서는 매년 세계 여러 나라들을 대상으로 청렴도를 조사하는데 그들의 조사방법과 결과에는 신빙성이 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논란을 벌일 생각은 없습니다. 그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96년에는 27위, 97년에는 34위, 98년에는 43위였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부패가 얼마만큼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해가 갈수록 부패현상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가장 깨끗한 나라가 10점 만점인데 우리가 받은 점수는 4.2였습니다. 우리와 동점을 받은 나라가 아프리카의 짐바브웨입니다. 짐바브웨는 금년도까지 평균수명이 44살인데 내년에는 41살로 줄어들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평균수명 70세를 바라보는 우리가 짐바브웨와 동률에 서 있다는 것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금년도에도 조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99개국 중에서 50위로, 절대점수가 4.2에서 3.8로 떨어졌습니다. 이제는 뒤에서 세는 게 더 빠를 정도입니다. 반면 99개국 중에서 1등을 한 나라는 덴마크이고 2등과 3등은 핀란드와 스웨덴이었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심각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왜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는 부패도가 더욱 심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민주주의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금권정치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겁니다. 한보사태를 비롯해 IMF를 가져온 원흉은 정경유착입니다. 정치쪽의 부패가 경제를 부패시키고 경제 흐름을 왜곡시켜 부패가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국민들을 불감증의 상태로까지 몰아넣은 것입니다. 해마다 추락해 가는 청렴도에 대해서 우리는 정치권에서부터 문제를 다시 보고 거듭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렇듯 참여문화의 주체인 국민들이 단순하게 참여하는 행동 자체만을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한다면 참여문화를 통한 정치발전은 기약될 수 없습니다. 홍콩에도 국제조사기구가 있는데 바로 국가정치경제위험도조사기구(PERC:Political and Economic Risk Consultation)입니다. 이곳에서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우리나라는 12나라 중에서 8위를 차지했습니다. 반면에 이곳에서 세계 교역이 많은 나라 19개국을 택해서 가장 뇌물을 많이 주는 나라를 조사했습니다. 가장 뇌물을 많이 주는 나라는 다행스럽게도 중국이었고 우리나라가 두 번째로 뇌물을 많이 주는 나라로 나왔습니다. 우리의 부패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셈입니다. IBRD에서 부패조사를 하라고 보조비를 보내올 정도입니다. 또한 국내에서 내국인을 대상으로 갤럽이 부패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더니, 부패가 매우 심각하다고 대답한 사람이 95%입니다. 사람들은 부패가 심각하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지만 사실상 어디까지가 부패고 어디까지가 청렴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한 대로 불감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면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다음에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여전하다고 대답한 피조사자가 56.1%였고, 더하다고 답변한 사람도 16.3%나 되었습니다. 72.4%라고 하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우리나라의 부패를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의 뿌리를 관료사회와 정치권에서부터 잡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앙일보가 지난 10월에 보도한 것을 보면 지난 1년 동안 공무원들의 뇌물 주고받기가 전해보다 2.7배나 늘었다고 합니다. 또 대한민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지난 9월에 가장 부패한 업종을 조사했는데, 그 결과 정치권이 제일 부패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정치가 부패하지 않고 따라서 정경유착이 없었더라면 한보사태나 IMF는 오지 않았을 겁니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옷로비사건을 보더라도 이는 자명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부패를 고치지 않는다면 체제의 정통성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얼마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됐던 국제반부패회의(IACC)에서도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부패가 심화되면 정부의 정통성이 무너져, 그 나라는 머지않아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전세계의 반부패 전문가들이 결의한 이 같은 성명서가 아니더라도 이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정통성이 무너진다는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권력은 그것 자체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합니다. 정통성이라는 것은 마음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부패로 인해 정부가 타락하면 자연히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어 상호간의 심리적 유착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에 정통성이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정통성이 무너지면 그 다음에는 도미노현상처럼 많은 것들이 연이어 무너져 사회 혼란을 야기합니다. 예컨대 권력의 정통성이 무너지면 정치체제가 갖는 규제능력이 무너집니다. 그리하여 검찰권이 무너지고 사법권이 무너지고 공권력이 다 무너진다면 어떻게 체제가 유지되겠습니까? 정치체제가 경제체제나 문화체제, 예술체제 등과 구분되는 것은 강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인데, 그 규제능력을 잃는다면 사회는 혼란 속에 빠질 겁니다. 분배과정에서도 정의로운 분배보다는 보는 사람이 임자요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라는 사태가 생겨 소위 배분적 정의, 부의 공정분배 등 사회 정의를 보장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듯 정통성의 결여는 사회 체제를 무너뜨리고 혼돈을 야기합니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좋다고 하더라도 부패하고 타락한다면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습니다. 장개석이 망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1945년까지 세계를 주름잡던 거두들이 있다면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그리고 장개석입니다. 여기에 스탈린이 끼어 이들 4대 거두가 인류의 운명을 좌지우지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막강한 장개석이 넓은 중원대륙과 10억 중국 인구를 뒤에 남겨둔 채 조그만 대만으로 패주하기까지는 불과 4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학자들이 그 원인을 분석해본 결과 장개석의 이데올로기적인 취약성이나 장개석의 지휘능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 점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보다 더 심각했던 원인이 바로 국민당 정부의 부패였습니다. 심지어는 미국에서 군수물자를 공급해주면 그 다음날로 군수물자가 모택동 군대 손으로 들어가 총구가 이쪽을 겨냥한다는 것입니다. 밤사이에 다 팔아먹은 겁니다. 결국 정통성이 무너지니까 장개석의 군대는 완전히 물위에 뜬 기름처럼 되어버린 겁니다. 장개석 정부의 의지가 국민들에게 침투되지 못하고 중간에서 차단됩니다. 즉 침투의 위기에 걸리게 됩니다. 국가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국민의 자발적인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자발적인 에너지가 나오지 못하니까 나라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처럼 장개석 정권은 상층부의 부패로 인해 체제의 정통성이 무너지고 그것이 침투의 위기를 몰고 와 결국 국력의 가동력을 극도로 저하시킨 겁니다. 지금까지는 참여문화를 부패와 연결시켜 살펴보았는데, 이번에는 두 번째 조건으로 국민들이 이성적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국민들이 감성에 치우치거나 광기에 사로잡히거나 또는 지도자가 역사 앞에 오만하면 그 나라는 옳게 버티기가 어렵습니다. 인류 역사상 감성적이고 광기어린 오만한 지도자 하나를 지명하라 하면 저는 주저 않고 아돌프 히틀러를 꼽겠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에바 브라운을 끌어안고 지하벙커에서 죽었지만, 살아있는 동안 그는 광기와 오만으로 전 인류를 불안과 불행으로 몰아넣었을 뿐만 아니라 600만 유태인을 처참하게 죽였습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종교처럼 믿었던 것이 소위 팬게르마니즘입니다. 그는 구라파지역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반공산주의, 반자본주의, 반유태주의, 반평화주의의 네 가지 원칙을 내세웠습니다. 그는, 세계에는 많은 민족들이 있지만, 그들은 모두 똑같은 종류의 민족이 아니라 문화를 창조하는 탁월한 민족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인류의 찬란한 문화를 파괴하는 민족이 있으며, 무해무득하게 문화 운반을 맡는 민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히틀러는 독일민족을 문화 창조민족으로 믿은 대신에 유태민족을 인류문화 파괴민족으로 보아 반유태주의를 내걸었습니다. 인류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는 유태민족을 멸족시킬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600만 유태인을 학살한 겁니다. 그러한 사상과 논리의 바탕에 깔린 것은 오만과 광기, 그리고 비이성입니다. 그런데 히틀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독일 민족을 다시 나누어, 영특한 이성적인 존재, 불 속으로 뛰어들어 타죽는 불나방처럼 자기 생명도 유지할 수 없는 무지몽매한 감성적인 존재,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교량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 즉 세 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독일민족 대부분은 무엇이 자기네들한테 이익이 되는지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감성적 존재이므로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오직 하나뿐인 이성적인 존재를 따라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독일 국가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판단할 수 있고 독일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영특한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인데 그 사람이 바로 히틀러 자신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전부가 광기요, 오만입니다. 만약에 이런 식으로 정치문화가 변질해 간다고 하면 인류는 2차대전과 같은 큰 불행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향과 비교적 대조적인 문화권이 영국입니다. 영국은 지극히 겸허한 정치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전통과 관습을 존중하고 지키면서 나라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내각책임제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입니다. 영국의 내각책임제에서 헌법 제1조에 해당할 만한 대원칙이 있다면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아니한다'입니다. 1721년에 앤여왕이 죽었을 당시 후사가 없어 왕위계승법에 따라 후계자를 찾았습니다. 그랬더니 도버해협 건너 지금의 독일 땅 하노버왕가에 어떤 해당자가 하나 있어, 그를 모셔다가 영국의 왕위에 앉히니 그가 바로 조지 1세입니다. 그가 국왕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은 당연했습니다. 조지 1세는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관심도 의욕도 없어 국정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그런 경우 흔히 체제 전복을 능사로 삼는 다른 나라와 달리 현재의 여건 속에서 문제를 타결할 대안을 강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수상제도입니다. 대신들 중에서 누군가가 왕을 대신하여 회의를 주재하고 거기에서 결정된 내용을 문서로 작성하고 그로 하여금 국왕의 결재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사람이 그 당시의 재경원장관 역할을 한 로버트 월포울이라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식으로 각료회의가 조지 1세와 2세 각 20년씩 지속되는 사이에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아니한다는 불문율이 세워진 겁니다. 21세기가 눈앞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러한 원칙들이 지켜진다는 것은 영국의 정치문화가 역사 앞에 얼마나 겸허한지 보여줍니다. 겸허한 문화 속에서만 안정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겁니다.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언제나 11월 첫째 월요일, 다음 화요일에 있는데, 그것은 대통령을 뽑는 게 아니라 대통령을 뽑을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국사람들이 왜 직접 대통령을 뽑지 않고 선거인단을 뽑을까요? 오늘과 같이 통신과 교통과 매스컴이 발달한 시점에서 이러한 대통령 선거제도는 불합리하기 짝이 없습니다. 물론 200년 전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년 전의 제도를 미국 국민들이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니, 이는 도리어 우리보다도 더 보수적인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역사 앞에 매우 겸허한 문화라 하겠습니다. 반면에 어떤 국가들은 이틀이 멀다 하고 전 정권에서 이룬 일들을 뒤집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는 역사의 단절만이 존재하고 경험의 축적이 없습니다. 그건 오만입니다. 아무리 참여문화가 좋다고 해도 전통과 관습의 타파를 능사로 삼는다면 이는 그 정치문화가 오만한 방향으로 변질되어 가는 증거입니다. 그러한 문화에서는 안정 속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 정치발전과 관련지어 정치문화에 대하여 한 가지 더 얘기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말해온 참여문화는 국가적 차원의 참여문화입니다. 자기 고장, 자기 지역, 자기 파벌, 자기 종파에만 매달려서 참여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참여문화의 올바른 개념에 속하지 않습니다. 지역에만 몰두해 지역 이익을 국가 이익보다 앞세우고 자기 종파의 이익을 국민 전체 이익보다 앞세우면 그것은 편협문화입니다. 진정한 참여문화는 민족 전체의 화합, 국가 전체의 이익 추구를 최대 과제로 내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위정자들도 그런 방향으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인사 충원을 할 때도 지역적인 편협성을 없애도록 한다든지, 재정투자를 할 때나 사회간접자본을 투자할 때도 한 지역 또는 특정 계층에 치우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와 가치의 균등분배를 철저하게 지켜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국민적으로 사회정의가 구현되고, 배분적 정의가 실현된다면 국민 총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서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는 겁니다. 국민의 자발적 에너지가 국가 발전을 향해서 쏟아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