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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제목 |
명계남의 영화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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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
104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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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연사 |
명계남 (이스트필름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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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일시 |
1999년 09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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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장소 |
본부관 학술회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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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23843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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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잘 아시는 한국의 하나뿐인 명배우 명계남입니다. '명계남' 하면 최근에는 이런 말이 있죠. 한국 영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 '명계남'이 나오는 영화가 있고 나오지 않는 영화가 있다. 이 말은 사실 제가 의도적으로 퍼뜨린 것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연극을 시작한 이후에 연극만 하다가, 지금은 영화와 겸업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 직장생활을 한 적도 있지만, 그때도 언젠가는 다시 무대에 서야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았습니다. 제가 영화를 하게 된 동기는 친구 문성근씨 때문이에요.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다시 연극무대로 돌아왔을 때, 그 친구가 저한테 제의를 했습니다. 영화쪽에 말과 연기가 되는 중견배우들이 없다면서 같이 하자고 말입니다. 또 그 무렵에는 젊은 신인감독들이 대거 등장해서 기존의 이미지가 없는 새로운 배우를 찾기 원했어요. 시기가 적절하게 맞아서 저한테 많은 역들이 주어졌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5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저는 간혹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자' 이렇게 씁니다. 그리고 저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가슴속에서 일어나서 시키면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자고 말입니다. 어렸을 때 보면, TV에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면 춤도 따라 하고 노래도 따라 부르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그렇게 TV에서 노랫소리만 나오면 춤추고 즐겁게 놀던 아이가 나중에 진짜 가수가 되어 산다면 무척 행복할 겁니다. 또 담에 낙서하기를 좋아하던 친구가 화가나 디자이너가 되어 생활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직업으로 연결되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생활한다면 그게 최선의 행복입니다. 예전에 저희들이나 부모님 또래에서는 은행에 근무한다고 하면, 굉장히 출세한 집안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은행지점장이 되고 싶지는 않았을 거예요. 직업을 선택할 때는 가슴에서 진정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이건 제가 늘 하는 말인데, 여러분들도 그렇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살아온 삶을 합리화시켜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것이 아니라, 지금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서 생각해 보니까 그렇더라는 겁니다. 학교에 들어와서 열심히 생활하다보니 연극이라는 것을 통해서 사람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연극을 하면서 제 가슴속에서 일어나는 감동이 관객들에게도 하나씩 심어지는 것을 눈빛으로 마주치는 게 너무 신이 났어요.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원래는 신학을 하려고 신학과에 들어갔는데, 오히려 연극이 더 좋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연극을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름대로 제게 주어지는 일들을 해야 될 때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이스트필름이라는 영화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회사의 젊은 친구들이 아마 여러분 또래 정도일 것 같은데, 벌써 저를 구세대로 여기는 게 느껴집니다. 저도 윗세대들에게 기득권층이다, 보수세력이다 하며 항의하고 싸우고 있는데, 어느새 제게도 그런 퇴출의 위험이 찾아오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든지 물러날 각오를 하면서, 지금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요즘의 제 활동에 대해 말씀드리면, 이스트필름이라는 영화사를 운영하면서 「학교」란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청소년 친구들이 저를 많이 알아보고 좋아해요. 그 다음에 스크린쿼터 감시단이라는 게 있는데, 정지영 감독하고 공동단장역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영화인회의라는 영화인단체에서 사무총장을 맡고 있고, 문화개혁시민연대에서는 부집행위원장입니다. 그렇게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유명해져서 인터뷰를 많이 하다보니까,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매번 똑같은 얘기만 물어보더라구요. 정말 답답하고 화도 나서 인터뷰 전문잡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문잡지를 만들어서 발가벗을 수 있는 사람들만 인터뷰하고, 발가벗기는 인터뷰만 하고, 인터뷰하기 힘든 사람만 인터뷰하는 겁니다. 그렇게 사람끼리 만나는 잡지를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창간 준비까지 막대한 돈을 투자했어요. 저는 일을 하면 가슴에서 시키는 대로 막 저지르는 타입이거든요. 그런데 중간에 누가 제동을 걸었습니다. 잡지 같은 경우는 6개월 정도의 비축된 자금 내지는 광고·영업계획이 없으면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심각하게 고려한 끝에 거의 초판까지 만들어진 상태에서 일단 접었습니다. 돈이 좀 되면 다시 해야지 했는데, 다른 데서 인터뷰 전문잡지를 만들기 시작하더라구요. 제가 하도 떠들고 다녔더니 그런 잡지들이 나왔나 봐요. 비록 제가 하지는 않았지만 전문잡지들이 나와서 무척 좋습니다.
우리나라에 문화라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문화라는 것이 솔직히 말로서만 존재해 왔던 게 사실이에요. 더군다나 중앙집중적이어서 지방에 가면 전혀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화제도, 문화와 관련된 정책제도가 개선되어야 합니다. 얼마 있다가 박지원 문화부장관이 국가 예산의 1%를 문화 예산으로 쓴다고 발표를 한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예산이 쓰여져야 할 곳에 제대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사용돼야지, 전시적인 데에 쓰여지면 안되잖아요. 여러분 지방에 가보셨어요? 지방마다 문예회관이 다 있습니다. 또 동네마다 구민회관이 다 있어요. 그런데 거기서 무엇을 합니까? 아무것도 안해요. 시설 관리를 위한 공무원들은 많은데 거의 하는 일이 없습니다. 조명기나 음향시설 같은 것도 외국에서 수입해 놓고는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기야 세종문화회관이란 걸 만드는 나라니까요.
세종문화회관을 만들 때 어떠했는지 아십니까? 지금은 성함을 잊어버렸는데, 당시 독일문화원 원장님을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 행사장에서 만났습니다. 그때는 제가 연극을 하던 때였는데, 그분이 우리나라를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구요. 독일같이 전통예술이 많은 나라에도 이런 공연장은 없는데, 이곳에서 뭘하려는지 모르겠다면서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나라에서 10년 동안 근무를 했는데, 공연을 위한 소프트들이 별로 없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답을 얼마 후에 알았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주로 행사를 했어요. 정부 행사나 무슨 기념식 할 때 사용되었죠.
그런데 요즈음 많이 달라졌어요. 대중가수한테도 개방을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옛날의 관행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저도 여러번 공연기획을 해봤는데, 세종문화회관의 줄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10줄 단위로 구역이 나뉘어져 있는데, 그 코너마다 자리를 하나씩 비워야만 표를 팔 수 있어요. 제 기억으로는 정확하게 181석인가를 팔지 못하고 표를 떼어냅니다. 구역마다 양쪽 코너에 있는 자리는 경호원 자리라는 거예요. 그리고 언제 행사가 취소될지 모릅니다. 만약 정부에서 행사를 한다면 비워야 해요. 또 지방에 가 보면 지방자치제가 시행되어서 지방마다 문예회관이나 공연시설을 만들어 놓고는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놀립니다. 제가 지방대학에 가면, 지금은 유명해져서 조그만 지역은 군수님이나 시장님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한테 뭐라고 하시는 줄 아세요? 우리 고장에서도 영화제를 한번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동네마다 모두 영화제를 한대요. 그러면 예산을 함부로 쓰게 되고, 결국에는 아무 것도 안되는 거지요.
지금은 문화정책이나, 문화인프라 구축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영상매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전국에 수많은 영상인력들이 꿈을 키워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단순히 그 영상인력들의 취직자리를 위한 인프라가 있어야 된다는 게 아닙니다. 영화정책이 제대로 되어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고, 그것에 걸맞은 하드웨어들이 구축돼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상승효과가 일어나 강한 나라가 됩니다. 우리나라는 지도상에서 보면 아주 작은 나라지만 올림픽을 할 정도로 대단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조금 있으면 월드컵도 개최합니다. 자라나는 인력들을 제대로 수용하기 위해서 저희 영화인들을 비롯해서 문화계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 궁리하고 모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이 개혁을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고 유지하려고 할 때마다 개혁이나 명분을 서슴없이 후퇴시키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정치 현실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것들을 끊임없이 감시하는 일을 문화현장에 있는 저희들이 맡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또 한 가지 드리고 싶은 얘기는 스크린쿼터와 관련된 것입니다. 제가 회의 때도 자주 하는 말인데, 우리는 질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싸움의 수위나 폭을 조금씩 쌓아가야 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긴다는 전제에서 싸워야 됩니다. 물론 언제까지 스크린쿼터가 보장되지는 않겠죠. 저희가 생각을 해봐도 외교통상부나 재경부쪽에서 자유경제신봉주의자들이 현정부의 경제각료들인데, 그들의 논리에 문화쪽의 논리가 밀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냥 있을 수는 없는 거지요. 문화라는 것의 중요성과 관련해서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게 저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그래서 전술문제에 있어서도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어내는 방법이 어떤 것이냐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삭발을 결심할 때도 그것 때문에 밤새도록 고민했습니다. 우리 영화인들이 꼭 그런 방법을 택해야 되겠느냐는 말이죠. 관객들이 어떻게 보고 국민들이 어떻게 볼까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나설 수밖에 없을 만큼, 영화에 대한 스크린쿼터문제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렇게라도 지키고 나중에 국민들한테 양해를 구하자는 심정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스크린쿼터문제에 대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들의 호응을 얻기 위해 대중적으로 홍보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언제 어떻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해 봤어요. 작년 12월에 싸울 때에도 12월 안에 투자협정 된다는 것을 연기시켰고, 이번 경우도 연기시킨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옛날에 알타미라동굴에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은 그 일만 전문적으로 했어요. 이를테면 제가 듣기로는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시대에 자기 부족의 정서를 표현하는 일을 전담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제사를 지내는 주술사가 있고, 그림을 그리고 표현하는 사람 등 각 계층이 따로 있었단 말입니다. 또한 그 일이 자연스럽게 분화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현재는 모든 매체가 완전히 개방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컴퓨터나 PC통신, 인터넷을 통해 사이버세계가 열렸습니다. 예전에는 마을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마이크를 잡는 사람은 몇 명뿐이었습니다. 옛날 원시부족사회에서부터 이렇게 내려왔는데, 이제는 마이크가 모든 사람에게 다 가 있어요.
제가 PC통신에 대해서 지적을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제일 많이 이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걸 들여다보면 어떤 사람이든지 모두 마이크를 가지고 있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언어폭력뿐만 문제가 아니라, PC통신의 익명성을 이용해서 함부로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것은 굉장히 위험해요. 현상을 제대로 표현하고 설명하고 직시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참여하기를 꺼리게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참여하기를 꺼리게 된다는 건 논쟁이 붙었을 때 논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PC통신에 들어가 보면 마치 접촉사고가 났을 때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경우처럼 감정 때문에 논점이 흐려지는 논쟁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그들은 논쟁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토론이 이루어지질 못하니까요. 여러분들도 통신을 하실 때는 정확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통신은 엄청난 파급력을 갖고 있으니까요.
스크린쿼터 논쟁만 해도 그렇습니다. 스크린쿼터는 설명하기가 무척 복잡하지만, 제 나름대로 경제논리와 연관지어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스크린쿼터는 일종의 미국의 할리우드, 이를테면 문화패권주의로부터 시장을 지키려는 독과점방지제도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만약 삼성에서 만드는 TV가 제일 좋다면 모두들 삼성 TV만 사려고 할겁니다. 그렇게 되면 TV산업은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명계남이 만드는 계남전자라는 중소기업에서도 TV를 생산해야 독과점이 방지돼 TV산업이 발전을 하는 거잖아요. 독과점방지제도라는 게 그런 거 아닙니까? 한쪽에다 모두 몰아주지 않고 경쟁을 유발해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겁니다. 영화의 경우도 스크린쿼터라는 게 일종의 그런 거예요. 시장을 확보해 놓아야 다른 제반사항들도 모두 잘 되는 겁니다. 더군다나 영화라는 것은 문화적인 특수성으로 인해 상품으로서만이 아니라, 자국의 언어로 자국의 얼과 자국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 있어야 된다는 문화주권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반대론자들은 그런 면은 생각하지 않고 잘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합니다. 잘 만들어서 경쟁력을 키우면 상관없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경쟁력이 높은 「쉬리」같은 영화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하시는데, 현재 「쉬리」를 극장에서 70일 정도 상영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만약 스크린쿼터가 60일로 줄어든다고 가정했을 때, 61일째에도 「쉬리」를 상영할까요? 61일째는 「쉬리」를 상영하지 않습니다. 그 영화가 아무리 좋아도 말입니다. 이해가 안되겠지만, 유통이라는 배급구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통이 없으면 상품이 나갈 수가 없어요.
국산영화의 성수기는 1월, 6월 그리고 여름방학 때입니다. 어떻게 되는지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아마 PC통신에도 많이 나왔기 때문에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여고괴담」이 엄청난 히트를 했습니다. 하루에 3000명씩 손님이 든다는 건 대단한 거예요. 「여고괴담」이 3000명씩 들고 있는데도 강남에 어느 극장에서는 「여고괴담」을 평일로 돌리고, 주말에는 「고질라」라는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용가리」보다 더 엉망인 영화를 상영하면서, 하루에 3000명씩 드는 영화를 평일로 뺐어요. 평일은 손님이 없는 날인데, 왜 그랬을까요? 그건 「고질라」를 배급한 배급사한테 밀렸기 때문입니다. 이걸 틀면 다음에 올 블록버스터를 그 극장에 준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니까 다음에 올 블록버스터를 받기 위해서는 그 영화를 상영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런 예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 부분, 우리나라에서는 146일 정도는 일개 극장에서 자국영화를 틀 수 있게끔 만들어 놓은 게 스크린쿼터인 겁니다. 그것도 법적으로는 146일인데 실제적으로는 106일 정도밖에 안돼요. 왜냐면 설에 한국영화를 틀면 1.5배로 쳐주는 경감조치들이 있거든요. 그러니 결국 106일 정도밖에 안되는데, 미국에서는 그것마저 줄이자는 겁니다. 왜냐면 미국이 자국의 영화산업으로 외국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점점 줄어들고 있거든요. 유럽이나 그 밖의 지역에서 자국영화, 자국문화에 대한 반동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긴장해서 지금 전세계적으로 공격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우리는 IMF로 인해 미국의 투자가 절실하게 요청되니까, 스크린쿼터를 빼면 지원금을 준다느니, 5억불을 들여 전국에 200개의 스크린 멀티플렉스를 지어 주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 자본 5억불을 들여 전국에 200개의 멀티플렉스 스크린을 세운다고 해도 그건 미국업자들 겁니다. 미국의 소유인데, 그곳에서 국산 영화를 틀겠습니까? 아니에요. 차라리 정부에서 한국영화상영관 100개만 만든다면 더 열심히 만들 수 있습니다.
억지스러운 비유를 하나 할게요. 이건 제가 화가 날 때마다 하는 말인데, 영화관은 책방이랑 마찬가집니다. 이문열씨가 아무리 소설을 잘 써도 책방이 있어야만 팔 수 있어요. 책방에 진열이 되야 독자들이 구입할 겁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에서 팔리는 책을 10이라고 하면 통계적으로 그 중에서 7이 서울에서 팔립니다. 또 서울에서 팔리는 것 중에서 70%가 교보문고에서 팔려요. 그런데 교보문고에서 서가의 80%를 영어책이나 일본만화 등 외국어 서적으로 채우고, 우리나라 서적은 20%만 진열한다면 어떨까요? 이런 게 스크린쿼터랑 똑같은 겁니다. 만약에 그렇게 서가에 우리 서적이 20%만 들어간다면 거기에 들어갈 책은 뻔하잖아요. 그저 대중적인 기호에 맞는 책 아니면 학습에 관련된 참고서들뿐입니다. 전문적인 서적이나 다양한 책들은 들어갈 수 없어요. 아무리 출판업자들이 쌈짓돈을 모아서 책을 낸다고 해도 말이죠. 우리는 이러한 구조를 막으려는 겁니다. 미국의 문화패권주의에 대항하려는 거예요. 물론 언제까지나 스크린쿼터를 지킬 수는 없다는 걸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안정적으로 국내영화의 산업 기반이 이뤄질 때까지는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크린쿼터가 없어지면 '서편제'같은 영화는 만들 수가 없어요. 더 이상 볼 수 없는 겁니다. 스필버그가 서편제를 만들 수 있을까요? 또 조지 루카스가 '장군의 아들'이나 '접속'을 만들 수 있습니까? 그건 우리들의 이야깁니다. 물론 단순하게 재미있는 영화만 보고 살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런 나라들도 많고요. 자국영화를 한 편도 제작하거나 상영하지 않고 오직 외국에서 수입된 영화만 보는 나라가 대부분입니다. 만일 우리도 그렇게 되는 게 좋다면 스크린쿼터를 없애면 됩니다. 미국영화만 보고, 외국영화만 보고 즐기면 됩니다. 하지만 그런 영화는 우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일 뿐이에요. 그들이 '여고괴담'과 비슷하게 만든다고 해도 그건 미국 학생들의 얘기고 일본 학생들의 이야기이지, 우리 학생들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영화를 단순하게 상품으로만 봐서는 안됩니다. 영화는 그 나라의 말과 그 나라의 문화를 표현하고 지켜 가는 수단입니다. 문화적인 표현 양식의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가 일정 부분을 지켜가야 하는 거예요. 스크린쿼터문제는 단순히 영화인의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 문화 주권을 지키는 일입니다.
영화산업에 있어서 우리나라 같은 나라가 없습니다. '씨네21' 처럼 영화전문주간지를 만들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어요. 또 지난해에는 자국영화 시장점유율이 25%를 넘었습니다. 외국영화가 490여편 상영되었는데, 외국영화와 우리 영화의 편당 관객수를 생각해보면 우리 영화가 두배나 높습니다. 이게 바로 여러분들 같은 젊은 세대의 힘이에요. 그만큼 영화 인구가 늘어나고 있고, 관객의 수준도 향상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작 편수는 줄어들지만, 제작되는 영화의 질은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는 셈이죠.
이처럼 영화산업이 발전하고 영화 인구가 늘어나는 시점에서, 스크린쿼터가 폐지된다면 영화산업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제작 편수가 떨어지게 되어 출연자도 나서지 않아 민간에서는 영화를 제작할 수 없어요. 그러면 정부에서 영화를 제작하게 될 겁니다. 정부에서 영화를 제작하면 상업영화는 만들지 않을 거예요. 몇 편의 예술영화를 만드는 데 온 힘을 쏟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영화제에서 상을 타기는 쉬워질 겁니다. 하지만 그건 발전이 아닙니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2002년부터 시행하는 것을 두고 계속 정부와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산업구조나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 지금부터 영화인들과 정책당국자, 예산당국자들이 함께 의논해 나가야 합니다. 이야기가 좀 길어진 경향이 있지만, 스크린쿼터에 대한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시고, 곰곰이 따져 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스크린쿼터와 관련된 홈페이지가 있으니까, 여러분들도 한번 읽어보시고 의견을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요즘에는 또 일본영화의 개방에 대해서 질문을 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일본영화가 들어오면 우리 영화시장을 잡아먹는다고 걱정을 하는데, 아마 할리우드 영화시장을 잡아먹는 경우가 더 클 거예요. 그러므로 일본영화의 개방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영화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들어낸 말이니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는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고 반면에 진실을 왜곡시켜 환상이나 볼거리를 제공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서두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한국영화에는 명계남이 나오는 영화와 나오지 않는 영화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영화를 보면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어요. 상업영화, 예술영화로 얘기하는 것보다는 진실한 것을 표현하려는 영화와 진실을 왜곡시켜서 즐거움과 볼거리와 환상을 제공하려는 영화로 나누어 얘기하는 게 더 정확한 것 같아요. 저는 이런 두 가지 영화가 다 존재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두 가지 영화를 다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저는 진실한 것을 표현하려는 영화쪽에 서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저는 완벽하게 진실을 표현하고 싶어요. 물론 신처럼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노력하면 그 비슷하게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어쩌면 여러분이나 관객들에 대한 순진한 짝사랑일지도 모르지만, 언제까지나 사람들이 달콤한 과자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는 진지함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진실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영화들이 나와야 관객들의 취향도 다양해지는 겁니다. 고속버스터미널이나 공항에 있는 책들을 보면 온통 달콤한 과자뿐입니다. 시간 때우기에 알맞은 '개그펀치'라든지 '퍼즐'만 가득 있어요. 그런 책들만 보고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테스'도 보고 '좁은문'도 보고, '태백산맥'이나 '아리랑'도 읽어야 되는 겁니다. 이처럼 두 가지 종류의 영화가 함께 걸어가야 하는 겁니다. 서로를 보완하면서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독립영화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독립영화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지금 독립영화는 우리나라 영화가 세계로 진출하는데 교두보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많은 상을 타고 있는데, 그 상을 탄다는 게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독립영화의 시장 인구가 우리나라도 엄청나지만, 외국은 그 수가 우리보다 수백 배는 더 됩니다. 그런데 그들을 뛰어넘고 상을 탄다는 것은 정말 굉장한 거예요. 우리의 젊은 영화인력들이 세계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것이 영화산업과 연결되어, 충무로라고 표현되는 극영화시장으로 넘어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 젊은 힘들이 밑바탕이 된다면 우리의 영화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될 겁니다.
저희 영화인회의소에서는 독립영화를 중요한 파트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의장에 독립영화 파트의 독협회장이 들어가 있어요. 그동안 독립영화쪽에서는 저희에 대해서 배타적인 자세를 취했었는데, 이제는 서로 연계가 되어서 함께 의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실력 있는 좋은 감독들이 더 많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자료를 통해 아시겠지만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기회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꼭 한번 찾아가셔서 보세요.
제가 출연한 영화 중에도 단편영화나 독립영화들이 많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만드는 영화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서 비디오라도 영화를 만드시는데, 배우가 필요하시다면 저에게 연락을 주세요. 시간이 맞는 한 언제든지 참여할 용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말이 두서가 없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이시다보니 제 일방적인 의견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여러분들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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