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진취적 창조성, 마음의 어디에서 오는가?

오늘 제가 말씀드릴 부분이 창조성과 정신건강에 관한 것입니다. 이 창조성과 정신건강은 사실 제 자신도 극히 일부만 해결된 숙제입니다. 아마 제가 죽을 때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 경우도 그렇지만 아마 모든 사람들이 어떤 창조적인 작업을 할 때는 대략 네 가지 정도의 단계를 겪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영감이 오기 전에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뱃속에서 자라는 그런 시기, 루미네이션(rumination)이라고 하지요. 그 다음에는 영감이 폭포수처럼 오는 시기, 그 다음에 그것을 객관화시켜서 좀더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시기, 그 다음에 일단 out put이 된 이후 또 그것 때문에 생기는 2차적인 우울의 시기,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 또 새로운 작업을 하게 되는 그런 단계를 반복한다는 거죠. 아마 레포트를 쓰는 학생이나 예술쪽에 계시는 분들은 이런 4단계를 이해하실 수 있겠지요. 혹시라도 내가 비정상이 아닐까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참고로 삼아 주세요. 사실 창조적인 일은 자유롭고 평안하고 갈등 없는 가운데서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영재교육 받는다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던 아이들보다는 오히려 좀 어려운 환경에서 잡초처럼 살면서 생활 속에서 무엇인가 깨달은 사람들한테서 궁극적으로는 창조적인 작업이 더 많이 나오지요. 그러니까 창조는 결국에는 어떤 갈등이나 불만에서 더 많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애인문제, 친구문제, 또 부모하고의 갈등 등, 자기가 갖고 있는 어떤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데서 오는 좌절감 같은 것들이 사실은 여러분들이 나중에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자원이 됩니다. 그러나 보통 갈등이 있으면 사람들은 쉽게 피하게 되지요. 예를 들어서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심하게 싸우면 대부분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거나 가출을 해서 갈등을 회피하게 되죠. 또 사회에서도 상사가 자기한테 좋지 않게 대한다던가 배우자가 자신에게 함부로 하면, 직접 부딪히며 얘기하기보다는 가능하면 상사들과 부딪히지 않거나 집에 늦게 들어가는 식으로 일단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사람이나 문제로부터 벗어나려고 해요. 그런 행동을 일종의 회피성 경향(avoidance tendency)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피하기만 하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자연히 자기방어적인 행동이 나오게 되지요. 열등감에 빠지거나 굉장히 예민해지고, 또 경쟁 자체에 대해서 불안해하다가 결국 타인을 깎아내리고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이것은 창조적인 길로 가는 방향이라 할 수 없습니다. 창조적인 길로 가는 방향은 일단 문제를 향해 용감하게 돌진하여 부딪힐 때 생기는 것 같아요. 아마 여러분한테는 조금 익숙하지 않은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롤러 메이라고 7, 80년대는 상당한 베스트셀러작가였는데 그 사람이 쓴「창조하기 위한 용기」라는 책을 보면 '창조적인 일에 가장 필요한 전제는 용기'라고 쓰여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아인슈타인은 영감 같은 것이 주로 언제 떠올랐냐 하면 면도를 하면서래요. 앉아서 책을 보거나 연구실에서 연구할 때보다 면도할 때 영감이 많이 떠올랐다는데 이게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느냐 하면, 일단 내적인 합리성이나 자기조절능력과 같은 부담에서 자유로울 때 긴장이 풀어지면서 자유로운 창조적 재능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인들을 보면 술들을 참 많이 마시죠? 술자리에서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영감이 떠오른다고들 하는데 그 이유를 과학적으로 풀어보자면 이렇습니다. 이성을 관장하는 부분을 전두엽, 감성을 관장하는 부분을 변연계라고 하는데 이 변연계가 활발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이성을 관장하는 전두엽 부분이 조금 억제가 되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이 전두엽 부분을 억제시켜주는 것중의 하나가 바로 술입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감성이 더욱 풍부해져서 뜻하지 않았던 영감이 떠오를 수 있는 거지요. 또 토랜스는 창조적인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했는데, 우선 어떤 대상에 대해서 사랑에 빠지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연애할 때 시가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그 때가 바로 전두엽 부분이 조금 가라앉으면서 변연계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죠. 사랑에 빠지면 감정이나 직관능력이 활발해집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일단 사랑하면, 맹렬하게 추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맹렬히 추적하는 것은 좋은데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추적하게 되면 곤란하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만 하면 제대로 된 사랑이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우선 자기의 장점을 알고 긍지를 갖고 훈련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천재들을 가만 보면 누가 뭐라고 하던 간에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같은 게 있어요. 즉, 자아존중감이 높습니다. 그래서 에디슨은 학교에서는 전혀 적응을 못했지만 나는 누가 뭐라 해도 훌륭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자기 일에만 집중했다는 거죠.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고 정말로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자기를 해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그냥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을 일종의 게임으로 생각하라는 거죠. 어떤 일을 하던지 게임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자유롭게 하는 게 좋다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좋은 스승을 찾으라는 겁니다. 자기가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스승이나 지도자가 없으면 개발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그 천재성을 알아주는 스승이나 지도자가 없으면 발휘되지 않는다는 거죠. 그 다음에는 팔방미인이 되기 위해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아라 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요즘 TV를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가수가 됐다가 탤런트가 됐다가 작곡가가 됐다가 토크쇼 사회자가 되기도 하는데, 요즘에는 멀티미디어시대라서 그런 것이 요구된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게 자기 재능을 이리저리 분산시키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팔방미인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한가지 일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또 보통 천재다, 창조적 인간이다 하면 조금 괴팍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가 없을 것 같은데 사실은 그런 사람의 천재성은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상호의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일종의 팀웍이죠. 과거에는 세상살이가 좀 간단했기 때문에 독단으로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상호의존기능을 배워야 창조적인 영재로 자랄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본격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창조적인 리더, 그야말로 어떤 그룹에서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그런 힘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단 그 사람들의 특징은 굉장히 빠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직관력과 판단력이 빨라서 그룹의 상황을 적절히 재편성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거죠. 그 다음에 이 사람들은 모험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뭔가를 할 때 머뭇거리지 않고 일단 하고 보자 하는 모험심이 있고,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며 시간 낭비를 하기보다는 빨리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취해서 그 그룹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게끔 움직이죠. 이런 사람들은 융통성도 뛰어납니다. 언뜻 보면 창조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융통성이 없고 굉장히 고집이 셀 것 같은데 실제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은 자기 권위가 미치는 영향 밖에서도 융통성 있게 사람들을 잘 보살핍니다. 또 스스로 일을 추진하는 가운데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이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합니다. 그러니까 항상 편안한 것만 찾는 것이 아니라 일단 위험을 적극적으로 떠맡고 그 다음 서로 돕는 상호지원의 양식을 발전시키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이 사람들의 심리적인 특징을 보면 통찰력이 뛰어나고 굉장히 집중력이 강하고, 어떤 일을 인식하는데 독립적인 주관을 가지며, 또 자기 나름대로 독특한 동기와 명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을 지닌 사람들은 대체로 성충동이 굉장히 강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성욕이 강한 사람이 일도 많이 한다고 그래요. 그런데 창조적인 작업에 있어서 이런 의문도 들죠. 창조적인 일을 하는데는 남성과 여성, 어떤 쪽이 더 창조적이냐? 실제 역사적으로 보면 창조적인 여성은 많지 않았죠. 우리나라에서도 역사상 창조적인 어떤 업적을 남긴 여성은 아마 열 손가락 안에 꼽힐 거예요. 여러분 머리에 금방 떠오르는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선덕여왕, 이렇게 세어봐도 채 열 손가락을 채우지 못하죠.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었는데 하루는 어떤 남학생이 저한테, "너 왜 그렇게 어려운 책만 보냐? 역사적으로 여자 철학자가 있는 줄 알아?" 그러면서 비웃더군요. 여러분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자 철학자를 얘기해 보세요.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르트르의 부인 보봐르,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사람도 유명한 사회학, 사회주의 철학자고, 그 다음에 한나 아렌트 같은 사람, 그런 사람들도 좀 독특하지요. 그런데 그렇게 해 봤자 정말 열 손가락 안에 다 들어가요. 그래서 그 남학생 얘기가, 여자들은 원래 머리가 나빠서 창조적인 일을 못하고 더더구나 철학은 할 수 없어, 소크라테스 악처 같은 노릇이나 하면 다인데 너는 왜 여자로 태어난 주제에 어려운 책을 보고 있느냐 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때 말없이 속으로 '두고 봐라, 누가 더 잘되나 보자.'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은 제 자신도 그 궁금증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왜 여자는 창조적인 역할을 못할까? 그런데 제가 살아보니까 여성이 창조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예를 들어서 남자들은 추석 같은 명절에는 쉬면서 명상도 할 수 있고, 자기가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당장 저 같은 경우만 해도 명절이 되면 상 들고 왔다 갔다 하기 바쁘거든요. 창조적인 작업은 일단 잉여생산물이 있어야 되고, 잉여시간이 있어야 되요. 즉, 먹고 살 수 있어야 하고, 먹고 산 다음에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건강도 뒷받침해줘야 되는데, 여자들 같은 경우는 그럴 수 없어요. 요즘에는 좀 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성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이 거의 없었고 시간도 없었고, 건강도 그렇게 따라주지 못했죠. 한 12명쯤 애 낳고 나면 창조적인 일은커녕 아무 생각이 없어지지요. 그런데 사실 또 조금 다르게 얘기하자면, 어쩌면 인류문명은 여자들을 통해서 발달한 게 아니냐, 그런 생각도 듭니다. 농업도 처음에는 여자들이 많이 했죠. 수렵은 남자들이 했지만 씨 뿌리고 가꾸는 일은 거의 여자들이 담당을 했다고 하더군요. 또 토기 이용 역시 여자들이 해왔지, 남자들이 앉아서 밥 짓고 빨래하지는 않았다는 얘기죠. 그런 농업이나 토기 사용, 또 의복을 짓는 일들이 일종의 문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성들은 이름을 남기지 않는 창조적인 작업을 많이 한 거죠.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도 보면, 이름 남기고 낙관 찍고 하는 일은 남자들이 많이 했지만 짚불로 만든 그릇이나 농기구, 또는 조그만 수공예품과 같이 이름 없는 창조적인 작업은 여자들이 많이 했거든요. 결국 여성과 남성의 영역이 역사적으로 구분지어졌기 때문에 여성은 창조성이 떨어진다는 오해가 생기지 않았나, 저는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런 영역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다음 진정으로 창조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일을 하려면 창조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창조적인 사회 분위기는 어느 정도의 갈등과 변화가 있어야 돼요. 가장 좋은 창조적인 토양은 여러 가지 문화가 만나는 곳이라고 그래요. 우리나라도 사실은 굉장히 여건이 좋은 편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동양문화와 서양문화가 같이 들끓고 있는 나라도 별로 많지 않아요. 요즈음 길거리에서 보면 염색하신 분들이 참 많은데, 그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거든요. 똑같은 까만 머리가 아니라 노랑머리도 할 수 있고, 초록머리도 할 수 있고, 귀걸이도 할 수 있고 어떤 분들은 한복도 입고 다니고, 어떤 분들은 찢어진 청바지를 입는가 하면 굉장히 세련된 슈트를 입고 다니시는 분도 있죠. 이렇게 사회가 어느 정도 갈등이 있고 복합문화일 경우에 더욱 창조적인 토양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경쟁적인 분위기가 있어야 됩니다. 사회가 안정되어서 먹고살기 편하면 별로 경쟁할 필요가 없지요. 예를 들어서 돈 많은 부르나이 같은 나라는 서로 경쟁같은 걸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창조적인 작업이 나오지 않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툭하면 목소리 높여서 데모하고, 싸움도 많이 하는 편이지요. 제정신들이 아니라고 안타까워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사실은 이런 분위기가 뭔가 새로운 게 만들어지는 토양이라는 거죠. 아주 용광로처럼 들끓는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창조적인 작업이 많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들이 한때 천재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냐 하고 일종의 각론 비슷하게 케이스연구들을 참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 19세기말에 롬부르스 같은 사람은, '천재는 간질병적인 발작이다' 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실제로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사람은 간질을 앓아서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돈이 필요해서 글을 썼다고 하지요. 또 유명한 철학자 중에 콩트나 루소, 쇼펜하우어도 정신병적인 발작이 있었다고 그래요. 보통 그런 기질적인 정신병이 극심하기 직전에 창조적인 재능이 조금 더 발휘될 수 있다는 얘기도 있어요. 그런데 이것은 사실 옛날 얘기고, 오히려 요즘 천재는 정신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고 하지요. 오늘날 천재들은 그런 정신병적인 상태들을 극복하는 초강력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똑같이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그런 환경을 딛고 일어서면서 자신의 창조성을 발휘한다는 겁니다. 유명한 고흐 같은 사람은 광기에서 천재적인 것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자기의 삶을 마무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사람에게 광기가 없었다면 진정 그 삶이 의미가 있었을까요? 이 사람은 자신의 귀를 자르는 자학적인 행동을 했는데 자학은 사실 파괴의 본능이었고, 파괴의 본능은 결국 창조성과 통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아까 말씀드린 에로스적 측면과 죽음을 생각하고 자기를 학대하는 타나토스적인 측면이 사실은 창조적인 욕구의 근간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제 이야기를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창조적인 과정은 우선 갑작스러운 직관이 섬광처럼 머리에 떠오르는데 그 직관은 과거에 있어 왔던 전통적인 관습하고는 명백히 대치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체험이었다 하더라도 통찰력이 없으면 자기 자신의 것으로 간직할 수 없고 또 만들어갈 수가 없지요. 그러니까 이 통찰력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단계를 거친 이후에는 이완하고 휴식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창조적인 과정이 계속될 수 있다는 거지요. 충전과 방전이 사이클처럼 돌아가야만 창조적인 작업이 능률적으로 유지된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지칠 때는 자기 연민, 비하 이런 것에 빠지게 되는데, 그건 굉장히 나쁜 습관중의 하나니까 빨리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쉴 때는 충분히 쉬어야 창조적인 영감이나 재능이 발효를 해서 떠오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특히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절대 잃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냉철한 비판 정신과 주체성이지요. 언론에서 나오는 얘기를 곧이곧대로 다 믿고 비디오에서 나오는 장면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할 경우에는 절대 창조적인 행동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문화권력, 정치권력, 언론권력으로부터 진정한 자유인이 될 때 창조적인 작업이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그리스신화에 프로메테우스라고 기억하세요? 신에게서 불을 훔친 벌로 사슬에 묶여서는 낮이면 독수리가 와서 간을 쪼아먹지요. 그런데 밤이 되면 다시 간이 생겨납니다. 그러면 다음날 독수리가 와서 또 쪼아먹지요. 저는 이 이야기가 신화적인 내용이지만 굉장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불을 훔쳤다는 의미는 창조적인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사실 창조라는 것은 신을 모방하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감히 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인간이 해보겠다고 하니까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진정한 창조성은 일종의 천형과 같은 것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젊은이들이 그러한 프로메테우스적인 노력과 용기를 가졌으면 합니다. 물론 그런 프로메테우스의 노력과 고통이 있다면 반면 디오니소스 같은 황홀한 쾌락도 같이 누려야 되지요. 내가 즐겁지 않으면 창조적인 재능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즐거움과 동시에 어떤 이성적인 질서와 조화를 찾는 아폴론적인 노력, 이 세 박자가 맞을 때 창조적인 작업이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1900년대는 섹스, 혹은 에로스가 화두였다면 21세기는 창조적인 작업이 화두가 될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고, 없던 것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 21세기는 억압을 푸는 시기가 아니라 억압이 없는 상태에서 얼마나 자기 자신과 잘 싸우느냐 하는 게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진짜 적은 자기 자신의 내부에 있거든요. 여러 가지 면에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이 어쩌면 젊은이들이 해결해야 할 21세기의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생각하며 여러분들의 창조성이 아름답게 발현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