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통일의 길, 평화의 길

자, 오늘은 북한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여러분과 허심탄회하게 나눠볼까 합니다. 오늘 드리는 말씀은 학술적인 강연도 아니고 틀에 박힌 강의식 이야기도 아닙니다. 제가 평소에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여러 학생들에게 소박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1998년 5월 26일부터 6월 2일까지 평양을 거쳐서 원산 그리고 농촌지역인 평안남도 숙천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금강산도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명산이라고 하는 묘향산도 가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평양에서부터 원산까지는 고속도로로 약 2시간 남짓 달려야만 도착할 수 있는데 평양에서 원산까지 가는 그 고속도로는 너무 오랫동안 손질을 못했기 때문에 곳곳이 패여 자동차가 피해 갈 정도로 상당히 험악했습니다. 고속도로라고 하지만 자동차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거리에 있는 자동차들도 달리는 차보다는 서서 수리하는 차들이 더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차들은 아마 여러분들이 보지 못한 그런 차들인데 제 생각으로는 60년대 트럭 같은 차들이 많았고 심지어는 나무를 때서 가는 목탄차도 있었습니다. 시동을 걸기 위해서 자동차 앞 범퍼 밑구멍으로 철막대를 끼워 돌리는 장면도 볼 수 있었습니다. 산에는 거의 나무가 없었습니다. 땔감이 없어서 모든 사람들이 산에서 해 온 나무로 방을 데우고 음식도 해 먹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산은 거의 벗겨진 상태고 그 산의 상당한 부분을 계단식으로 개간해서 농작물을 심어 먹습니다. 제가 보기에 확실치는 않지만 평양에서부터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상당히 여러 곳에 산불이 나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는데, 그 산불은 제 짐작으로 화전을 일구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북한에서 눈에 띄었던 것들은 건물과 거리에 나붙어 있는 구호들입니다. 그 구호들 속에 이런 구호들이 제일 많이 보입니다. '최후승리', '천리마대고조', '혁명대고조', '강행군', '자력갱생', '당구호 관철의 해로', '강성대국',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 뭐 대체로 이런 구호들입니다. 이 구호들이 아마 여러분들에게 좀 생경하게 느껴질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을 통해 살펴보면, 모든 것을 중앙당이 결정하고 그 결정을 각 지역에서부터 모든 기관들이 성실하게 수행한다는 북한의 사회 구조가 엿보입니다. 또한 지금 북한사회는 굉장히 어렵구나, 하는 것을 눈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만일 여유가 있고 문제가 없다면 그런 구호를 붙일 필요도 없으리라고 봅니다. 결국 '중앙당이 결정을 하면 우리는 한다'는 말도 결국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중앙당 결정에 따르게 할까 하는 목적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이런 구호가 있었습니다. '생활도 학습도 생산도 항일유격대식으로.' 여러분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일제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난 것이 언제입니까? 50년 전입니다. 그럼 항일유격대운동을 하던 것은 언제입니까? 아마도 60년 전이나 70년 전이나 80년 전쯤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항일유격대식으로' 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을 보면 북한사회가 약 50년 전 그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다고 보는 게 제일 적절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제가 1962년부터 중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시골 사람들을 위해 교육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중학교를 못 간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가정형편 때문에 못 간 경우가 제일 많지만 학교가 없어서 못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우리 학생들이 어떻게 점심을 먹는가 살펴보려고 나갔습니다. 방에서 뭔가 먹고 있는 아이들 수는 불과 1/3 밖에 안되고 학생들의 2/3가 밖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너희들 점심 안먹냐?' 그랬더니 학생들이 주머니에서 바로 꺼내는 게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칡뿌리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골에서 칡뿌리를 점심으로 애용하던 것이 바로 30년 전의 일입니다. 그렇게 보면 북한사회가 오늘날 수재에 의해 먹을 것이 없어서 소나무 껍질을 먹거나 칡뿌리를 씹는다고 하는 이야기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북한 사회가 여전히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참 서글프게 만들었습니다. 1960년대 중반 김일성 주석(당시 수상)이 일제히 결핵을 퇴치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주석의 명령이라는 것은 곧 하나님의 명령과 같은 권위와 힘을 가집니다. 그 때문에 주석이 명령한 내용에 따라 사실은 결핵이 일제히 없어져야만 합니다. 만일, 없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소위 당성을 비판해야 될 일이지요. 발표를 통해 보면 얼마간의 기간 내에 결핵이 다 없어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결핵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북한에는 제 3요양소라는 이름 하에 전역에 약 60여 개의 결핵 요양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 제 3요양소라 하지 결핵요양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결핵이란 말 자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결핵요양소에 가더라도 X-레이를 찍을 수 있는 기계도 없으려니와 필름도 구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결핵균을 살펴보기 위한 현미경도 갖춰 있지 못합니다. 그러니 실제로 결핵환자들을 판명해 낼 때는 환자가 각혈을 해야 요양소로 보내집니다. 현재 요양소에 있는 사람들 수가 약 만 명 정도라고 이야기하는데 실제 숫자가 10만 명이 될 지 100만 명이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또 탈북자들에 의하면 북한 변방에 장질부사나 콜레라가 일단 돌게 되면 그 병을 치료할 수 없기 때문에 병에 걸린 사람들의 상당수, 대체로 한 6,70%가 죽는다는 겁니다. 그것이 북한의 현실입니다. 또한 북한은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달라 완전히 위에서 통제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어느 정도냐면 김일성 주석(이하 김일성)을, 오늘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하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엄밀한 의미의 종교적 국가입니다. 그래서 김일성은 성부인 하나님이고 김정일은 성자인 예수,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은 성령입니다. 그렇게 성부, 성자, 성령과 같은 지도 형태와 완전히 통합된 지도 이념, 지도력을 가지고 나라를 통치해 나가고 있는 것이 북한사회입니다. 북한을 우리 방식대로 본다는 것은 절대로 잘못된 일입니다. 가령 평양도 옛날의 평양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재개발, 재건축을 추진해서 거리 이름도 통일거리, 청춘거리처럼 바뀌어 있고 모든 거리의 건물들도 우리 생각과는 전혀 다릅니다. 평양을 보면서 대뜸 느낄 수 있는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하나는 모든 것이 획일적이라는 것과 두 번째는 사람들이 참 말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만나서 말을 시키더라도 동일한 내용으로 자기들의 입장을 뚜렷하게 설명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만나는 사람들마다 철저하게 민족통일에 대한 자기 의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논리로 우리를 설득하려고 합니다. 하루는 저희가 평양시내에 있는 김일성 생가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김일성의 생가는 그 곳에서 마치 성지처럼 생각하는 일종의 관광코스입니다. 외국사람들도 누구나 한번은 가게 되는 아주 교육적인 장소입니다. 저희가 갔을 때 마침 일단의 군인들이 그 생가에 견학을 왔었습니다. 거의 200여 명의 군인들이 정문 앞에 열을 맞춰 서 있는데 저는 그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제 키를 스스로 표준키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서 있는 군인들 전부가 저보다 키가 작은 것이었습니다. 20대의 청년들인데 저 사람들 키가 왜 저렇게 작을까 생각했는데 사실 그 키가 북한사람들의 평균적인 키였던 것입니다.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저렇게 모두 키가 작은 것은 어떤 의미에서 북한사회의 왜소한 이면을 엿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촌지역을 돌아보면 길거리에서 어린이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은 기쁜 마음으로 저희들에게 손도 흔들어주고 경례도 하고 웃으며 우리들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 학교에 붙여있던 구호들을 보면 우리가 이제까지 봤던 구호와는 좀 달랐습니다. 그 구호 가운데 하나가 '세상에 부러움 없어라'였습니다. 여기서는 사람들을 어려서부터 여타의 사회와 비교하더라도 부러울 것 없이 만족하도록 강요하여 자기체제에 비판적인 의식을 갖지 못하도록 통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양 시내에서나 혹은 방송을 통해 보고들을 수 있는 구호 가운데 저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면 바로 이런 구호였습니다. '우리 모두 총폭탄 되어 혁명의 수뇌부를 사수하자.' 그것이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구호의 핵심이었습니다. 그것을 들으면서 마음속에 섬뜩한 기분도 느꼈습니다만 그 보다 북한 사회의 기본적인 입장과 통치철학을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본 평양, 북한이 가장 자랑하는 수도 평양거리는 아주 어두웠습니다. 밤이 되어도 불이 들어온 곳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습니다. 최근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다시 한번 확인해 본 평양은 작년 5월보다 굉장히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평양 이외 다른 지역에 가면 우리는 지역적인 편차를 엄청나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대도시라고 하는 원산도 평양에 비하면 형편없는 도시였고 지방 농촌지역에 있는 집들을 보면 그 편차가 더욱 심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 북한을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요? 북한은 우리 민족사의, 우리 강토의 절반입니다. 우리 민족의 반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나간 50년 동안 38선이 놓여있던 것처럼 우리의 의식구조, 우리의 생활인식, 우리의 정치적 이념적 상황 속에서 언제나 북한을 대립적으로 바라본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와 북한은 늘 적대관계에 있어 왔습니다. 가령 국제 스포츠를 해도 우리는 다른 나라에게는 져도 북한에 대해서는 지면 안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심지어 여러분과 달리 제 어렸을 때는 늘 우리는 '북진통일' 또는 '멸공통일', '무찌르자 공산군 쳐부수자 공산당' 하고 구호를 부르짖었습니다. '평화통일' 같은 말은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 본 평양에는 그런 공격적인 구호보다 오히려 훨씬 방어적인 구호들로 차 있다는 것에 대해 저는 상당히 놀랐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을 지켜나가기 위해 그저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북한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또 하나는 모든 것을 김일성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김일성의 나이가 70세이니까 70곱하기 365해서 그 숫자대로 돌을 쌓아서 탑을 만든다든가 혹은 김일성이 방문했던 농장의 이름을 가령, 7월 6일 방문했으면 76농장, 이런 식으로 부른답니다. 혹은 김일성이 한번 방문하고 지도했기 때문에 김일성의 지도를 받은 농촌이라는 의미에서 훨씬 그 마을을 부각시킨다든지 심지어 인민 대학습당 같은 경우 대단한 규모의 도서관 겸 우리로 말해 사회교육센터 같은 기관도 김일성이 다녀간 방은 방마다 예외 없이 문 앞에 적어도 60센티미터에서 30센티미터 정도 크기의 빨간 판에 글씨로 '김일성 주석께서 몇 년, 몇 월, 몇 일, 이 방을 다녀가시고 우리에게 교시하셨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붙여 놓습니다. 모든 것을 주석과 함께 연결시켜 생각하고 그것을 기념하고 그 뜻을 받들어 나가는 것이 북한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또 다른 특징은 '속도'입니다. 그 쪽 사람들은 한 건물을 가리키며 이것 짓는데 7개월 보름 걸렸다고 자랑스러워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7개월이 걸렸든 1년 반이 걸렸든 무슨 상관입니까? 큰 의미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속도를 내서 해낸다는 것들이 그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여겨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사회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는 분단 50년을 넘기려 합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늘 북한과 적대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북한 얘기를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문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남북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지 않고는 정의도 자유도 안정도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21세기에 들어서서 세계 여러 나라와 함께 벌여야 될 경쟁에서도 훨씬 뒤지게 됩니다. 지금 북한과 먼 미래를 놓고 통일을 이룩해 가려 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현재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포용정책이 있습니다. 그것은 평화와 화해·협력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정책입니다. 국민의 정부는 지금 통일정책을 내세우기보다 대북 정책을 말합니다. 그건 어떻게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하나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에 냉전구조가 사라졌지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냉전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와 통일을 숱하게 이야기해 왔지만 실제로 거둬들인 것이 별로 없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겠습니다만 1991년도에 만들어졌던 '남북기본합의서'는 사실상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합의문서였다고 생각됩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그동안 남북간에 있었던 여러 차례의 물밑 접촉과 또는 비공식적인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 하나의 결실이었습니다. 남북관계가 전환되기 시작했던 것은 1970년대 말부터였지만 본격적으로 남북관계가 호전되기 시작했던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그런데 이 물밑 작업에 의한 남북간 교섭은 남북간의 전쟁을 막는 동시에 서로 이해하면서 어떻게 하면 화해·협력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겠는가 하는 데 있어 대단한 발전을 이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좋은 기회가 결국 답보상태에 빠지게 되었던 것은 김일성의 급작스런 죽음과 그에 대한 북한사회에 어느 정도 공백기, 그리고 우리의 북한에 대한 냉랭한 태도 유지에 그 탓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기본합의서가 합의된 이후에도 결국 그 합의서 정신보다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 채 오늘까지 지지부진한 상태로 남북관계가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러나 대북포용정책이 시작된 1998년 한 해에만 남한에서 북한을 방문했던 인사가 약 3천명이 넘어, 과거 10년 동안 교류했던 인원보다 훨씬 많은 수의 교류가 이루어진 것은 결국 남북 대치상태를 뛰어넘어 새로운 차원의 남북관계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가시적인 엄청난 성과입니다. 사실 제가 북한 사람들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 스위스의 글리본이란 곳에서 남한의 기독교 대표와 북한의 기독교 대표 그리고 세계의 여러 대표들이 함께 모인 소위 그레이온회의에서 만났고,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북한대표들과 회의를 가져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일련의 만남들을 통해 제가 지난 10년 동안의 과거를 돌아보면 남북관계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남북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통일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다만 남북 당사자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폭을 넓혀 남북과 주변 여러 나라들의 외교적 관계가 더 한층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러시아나 중국과 외교관계를 공고히 하고 북한이 미국, 일본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어 가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밖으로 외교관계를 다지기 위해서는 결국 안에서 튼튼한 안보태세를 구축해야 되는데 이것을 저는 두 가지의 관점에서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 확고한 안보태세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일관성 있는 대북 정책 추진에 의해서만 가능해진다는 점이고 두 번째로는 특별히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과 미국, 이 네 나라와 함께 공동체적 안보정책을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번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개방적이며 전향적인 정부의 노력이 앞으로 남북통일에 굉장한 전환점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일인 탈냉전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적 공존의 방향에서 남북 서로가 어떻게 협력하고 교류하느냐 하는 문제인데, 이것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군사적 대치보다 평화적 관계의 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우리들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 일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민간부문에서 더 한층 교류를 확대함으로써 남북간의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화해와 협력관계를 만들어 나가야합니다. 냉전구조는 사실상 이념적 구조가 아닙니다. 그것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20세기가 끌고 온 세계의 정치사적 문제입니다. 결국 우리가 북한과 함께 냉전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남북간 상호신뢰의 관점에서 상호 군사력을 축소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제 북한의 문제는 먼 다른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곧 우리의 문제로 이해되어야만 됩니다. 가령 북한의 핵문제, 미사일문제, 식량문제라든지 공업이라든가 군사적인 문제가 포괄적인 우리의 문제로 이해되지 않고서는 북한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자, 저는 결론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이런 것을 요구하고 싶습니다. 북한은 우리의 반쪽입니다. 북한과 통일을 이룩하지 못한 채 우리는 온전한 조국을 만들어 나갈 수 없고 한반도의 온전한 평화와 안정을 이루어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북한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북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징으로 열등감을 들 수 있습니다. 열등감을 가진 사람에게 더욱 열등감을 갖게 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정주영 회장은 북한에 들어갈 때 자기 직원들에게 충고한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 충고의 말 가운데 두 가지가 기억나는데 하나는 절대로 북한 사람들을 보고 웃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비웃는 것으로 보일 테니까요. 두 번째, 북한 사람들을 만날 때 반드시 양복의 앞단추를 채우고 만나라는 것입니다. 마치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이지요. 우리는 그런 세심한 주의를 하며 그들을 대해야 합니다. 또 한가지 특징으로 그들은 세계에 대한 이해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사례를 들어 말씀드리면 제가 묘향산을 갔다 왔는데 그 곳에 가면 김일성과 김정일이 전 세계 지도자들로부터 받은 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는 '국제친선전람관'(International Friendship Exhibition Hall)이 있습니다. 그 전시관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정말 놀랐습니다. 전 세계에서 들어온 수많은 선물들도 정말 대단했지만 안내원이 우리에게 설명해 주는 말이 우리를 더욱 놀라게 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소련의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준 선물도 있었는데 그 선물은 객차 한량입니다. 그 속에 회의실, 식당, 침실도 있는, 스탈린이 김일성 의 항일독립투쟁을 흠모하고 칭송한 나머지 스탈린이 기증한 선물이라는 설명서가 붙어 있습니다. 또 지미 카터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에게 준 선물도 있었는데 그것은 크리스털로 된 작고 예쁜 그릇이었습니다. 그런데 안내원이 설명하기를,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누구에게 선물을 하더라도 만수무강을 빈다는 식의 문구에 자기 친필 서명을 하여 선물을 주는 일이 없는데 특별히 우리 김일성을 흠모한 나머지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 로잘린 카터가 친필서명을 한 카드와 함께 선물을 했다고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는 참,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미국사람들은 누구에게 선물을 주든지 선물과 함께 꼭 카드를 주는 것이 관습인데 지미 카터가 김일성에게만 그렇게 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북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제한되어 있어서 우리와는 다릅니다. 만일 여러분들도 혹 북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 북한 사람들이 '우리 통일합시다, 민족 통일합시다, 우리 남북 그리고 해외동포가 함께 모여서 통일의 길로 갑시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도 그 이야기의 출발점 자체는 우리가 생각해 온 통일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사람들은 남이 어떤지, 미국이 어떤지, 왜 한반도에 38선이 그어졌는지, 왜 남북대치가 되어 왔는지, 그런 모든 문제에 대한 이해가 전무합니다. 다만 중앙당이 만들어 놓은 개념과 선동 속에서 통일의 길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제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북한의 문제를 해명해 볼 때가 왔다고 봅니다. 너무 순진하게 저쪽 일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학구적인 측면에서 좀 더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남북의 문제를 보면서 통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가령 남북학생 청년들이 어깨를 얼싸안고 통일의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통일이 오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변해야 할 것이 변해야 합니다. 남북간의 신뢰라는 것은 결국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북쪽 사람들로부터 진실을 들어야 하고 우리의 진실을 그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열린 사회가 아니면 안됩니다. 제가 떠나오기 전날, 제 안내원에게 이런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다음부터 손님이 오면 절대로 벤츠로 모시지 말게. 남쪽에서도 벤츠는 특별한 사람들만 타는 거야. 내가 뭐 특별하다고 평양에서 벤츠로 나를 모시는가. 당신들도 가난하고 어려운데 왜 벤츠를 사다가 모시는가. 그러지 말고 있는 대로 살아. 청년에게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한 것은 우리가 타고 다녔던 벤츠 차바퀴에 요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슨 특수한 바퀴구나 생각하고 일부러 가서 만져봤더니 바퀴의 요철이 다 닳아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북한의 현실입니다. 언제 펑크가 날지, 언제 어떤 사고가 날지 잘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북한 사회를 좀 더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북한 동포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밝혀줘야만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통일은 우리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통일 없이 우리 사회에 어떤 정의도 평화도 구현할 수 없기 때문에 통일의 과제를 위해 지금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가져야 될 책임과 사명이 큽니다. 그러나 그것은 막연하게 '통일합시다' 라는 구호로 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저 들뜬 마음으로 얼싸안고 가는 것도 아닙니다. 진실을 바라보는 보다 더 진지한 자세로 냉정하게 통일의 문제를 끌고 가야만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정부가 말하는 대북포용정책과 같이 우리의 마음도 녹이고 북한 사람들의 마음도 녹이고 그래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우리가 함께 나아갈 수 있을 때 결국 갈라진 땅이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 경청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