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바람의 딸이 만난 지구촌사람이야기

누구든지 한번쯤 여행을 떠나보고 싶죠. 여러분 그렇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아주 어렸을 때 저의 집안에는 세계지도가 많이 있었어요. 지금까지 붙어 있지요. 안방에도, 응접실에도, 또 제 방에도-이렇게 곳곳에 붙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건 우리 부모님의 남다른 배려이셨던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소위 유신정권 시절, 신문사의 정치부 기자셨어요. 그래서 여러 번 투옥 생활을 하셨지요.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시기였는데도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굉장히 많이 놀아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린아이들에게는 절대적인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질이 문제이니까요. 그런데 여러 놀이 중에서 제일 자주 했던 것이 바로 지도 놀이였어요. 지도를 갖고 '어디 찾아봐라' 이런 거 있잖아요. 세계지도를 펴놓고 '대륙을 이렇게 그려봐라' 이런 건 뭐 너무나 쉬워서 열살 때부터 대륙을 대충 그릴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지구가 그렇게 넓지 않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보세요. 지구는 딱 지도 한 장이잖아요. 그리고 땅은 육지로 가면 대부분 연결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어느 날 아버지한테 이랬어요. "아, 아버지. 땅은 붙어 있으니까 열심히 걸으면 한 바퀴 돌 수 있겠네." 그러니까 아버지가, "그럼. 네가 어른이 되면 분명히 돌 수 있지 너 한번 해볼래?" 하셨죠. 그래서 저는 자신 있게, "응, 나 해볼 꺼야." 하고는 마침내 93년 7월부터 98년 6월까지 정말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사실 더 많이 걸었어요, 여섯 바퀴 반 정도- 육로로 여행했어요.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아주 좋아하실 거예요. 마침내 당신 자식이 자신과 한 약속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이루고자 하는 꿈도 성취했으니까요. 그런데 여행을 다닌다고 하면, 어이구, 저 사람은 참 복도 많다 이렇게 생각하죠? 속으로 지금 그럴 거예요. 아니면 운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갔습니다. 선택을 한 거죠. 1993년 여행을 떠날 당시 저는 외국인 홍보회사의 차장이었어요. 좋은 직장이라고 할 수 있죠. 사람들이 그래요. 어떻게 그 좋은 직장을 포기할 수 있었느냐고 말이죠. 그런데 이게 사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가야지' 늘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시간을 일부러 낸 거죠, 회사를 그만두고. 여러분들 나중에 돈을 모으고 시간이 있고, 그렇게 나중에, 나중에 하다보면 힘이 떨어져서 못 가요. 그러니까 정말 긴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은 시간을 내야 해요. 망설이다 보면 어떤 것도 기회를 놓치게 되고 말지요. 그렇게 해서 저는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났습니다. 맨 처음 인도, 네팔을 6개월 동안 다니고 다음 두 번째는-여러분 머릿속에 한번 그려보세요- 두 번째는 알래스카로 올라가서 캐나다, 미국을 거쳐서 멕시코. 그리고 중미, 과테말라, 페루를 거쳐서 칠레 있죠, 그 안데스산맥의 중간대, 거기를 쭉 거쳐갔고 마젤란해협까지, 아메리카 대륙이죠, 중남미 아메리카 대륙을 일년동안 갔어요. 그러고 제가 편리하게 2차 여행을 간 거예요.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7박 8일 동안 타고 중국에 와서 배를 타고 한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행으로 다시 중국으로 가서 인도차이나 반도를 돌아서 방글라데시, 인도를 지나서 파키스탄에서 카라클롬 하이웨이를 지나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을 한 8개월 정도 여행하고 난 다음 티벳 고원을 거쳐서 한국에 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6년이 걸렸지요. 그리고 세계일주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국토종단을 했습니다. 해남 땅끝마을부터 시작해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49일 동안 한 발짝 한 발짝 걸어서 통일전망대 그 철조망이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근데 사실은 이게 아직은 미완의 세계일주입니다. 제가 북한을 못 갔잖아요. 그러니까 중국연변에 도문이라는 데가 있어요. 도문에서 바로 두만강이 보이거든요. 거기가 남양시인데 그 남양시에서부터 강원도까지는 못 가고 미완의 세계일주를 끝냈습니다. 이렇게 여행을 한다고 하면 보통 많은 사람들이 묻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 물음들을 중심으로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리지요. 이렇게 얘기들 하죠. 먹고 자고 입고 말은 어떻게 했느냐? 저는 오지를 다닐 때 세 가지 원칙이 있어요. 하나는 육로로만 다닌다. 그리고 한곳에서 적어도 일주일 이상 민박을, 한 나라에서는 적어도 한달 이상 있는다. 그리고 생활은 현지인들과 똑같이 한다는 거죠. 그러면 사람들과 금방 친구가 되요. 신기하게도 손님일까 생각하던 눈빛이 어느새 친근하게 바뀌면서 친구가 되지요. 그렇게 될 수 있는 첫 번째 지름길이 바로 음식을 나눠 먹는 거예요. 음식은 음식을 나눠먹는다는 그 이상의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마사이족 이야기예요, 케냐의 마사이족. 그분들은 텔레비전에서 보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에요. 텔레비전에서 보는 사람들은 그저 관광용이죠. 그래서 사진 찍으면 1달러씩 주어야 해요. 그런데 더 안으로 들어가면 정말 용맹스럽고 자존심 강한 마사이족들이 사는데 정말 이 사람들은 우유만 먹고 살아요. 아침에도 우유, 점심에도 우유, 저녁에도 우유. 그런데 저는 우유만 먹고는 못살잖아요. 그래서 이틀째 되는 날 밥 안먹느냐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아직 밥을 안먹었냐고 그래요. 그래서 나는 우유만 먹었다고 그랬더니 우유가 밥이라 답하더군요. 그러면서도 좀 불쌍했나봐요. 그래서 집이 동그랗게 있고 그 안에 소나 양들이 있는데 거기서 조그마한 송아지를 한 마리 끌고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송아지를 묶은 다음 화살촉을 갖고 오더니 정맥에 대고 쏘는 거예요. 그러더니 흘러나오는 피를 받아 우유에 섞어서 주는 거예요. 거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해서 영양을 보충하죠. 그걸 먹으면 친구, 아니면 끝까지 손님인 거죠. 한 순간 망설이다가 그냥 딱 눈감고 마셨어요. 마시니까 정말 그때부터 태도가 달라졌어요. 제가 있던 마사이족 가장은 외부인이 들어와서 자신들의 분위기를 흩트려 놓고 갈까봐 저를 참 싫어했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는 태도가 달라져요. 자기 부인하고 아이들과 같이 섞여 노는 것도 좋아하고 물 뜨러 가는 것도 좋아하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가는 날은 자기가 좀 창피하니깐 집안에 들어가서 막 울어요. 그리고 여자들은 정말 통곡을 하고 울어요. 아이들은 발 잡아당기고 또 옷을 감추는 바람에 나무꾼과 선녀도 되어 봤어요, 저. 그런 유대가 어디서 생기냐하면 바로 음식을 나눠 먹는데서 생기는 거예요. 입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좀 있다 사진으로 보겠지만 입는 것도 아주 우스꽝스럽지 않은 다음에는 그 나라 옷을 입는 게 여러모로 좋지요. 왜냐하면 그 나라 옷을 입는 게 가장 기후에도 알맞고 그 나라 문화에도 알맞고 사람들하고도 금방 친해질 수 있게 되니까요. 예를 들면 어느 나라에 가면 천을 뒤집어쓰고 다니죠? 근데 그게 회교도 국가에 가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될 뿐더러 사막 같은 곳에 가면 반드시 필요하기도 해요. 저는 그렇게 해서 굉장한 덕을 봤어요. 제가 네팔에 가서 한 일주일만 왔다갔다하면 네팔 사람들이 저한테 길 물어봐요. 그리고 몽골을 가서도 한 이 삼일쯤 되니까 물건 살 때 말이 안통해서 무슨 말하는 지 모르겠다 했더니, 몽골 사람이면서 말을 못한다고 정말 이상하게 보더라구요. 미얀마에 가서는 제가 얼마나 인기였는지 알아요? 아웅산 수지 여사 닮았다고 말이죠. 흰 블라우스하고 그 긴치마 있잖아요. 그걸 입고 다니니까 아웅산 수지 여사와 정말 비슷하다고 너무들 좋아해요. 그래서 민박도 숱하게 하고 공짜밥도 숱하게 얻어먹었어요. 또 중동 요르단에 가면 베드윈족이라고 있는데 거기 옷은 아주 두꺼워요. 염소털로 짜서 무척 더운 옷인데 정말 한증을 느껴요. 그래서 이런 옷을 어떻게 사람들이 입고 다니나 했는데 해가 지고 나니까 그 옷이 그 기후에 딱 맞아요. 그곳은 일단 해가 기울고 난 이후에는 기온이 급속하게 떨어지거든요. 그런 깊은 뜻이 있는 거예요. 주생활도 보면 가능한 현지인들과 같이 생활할 수 있으면 좋아요. 물론 어려운 점도 있지요. 아프리카 같은 데서는 동물들하고 같이 사는 데가 많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진드기가 붙어요. 그게 바로 동물 진드기래요. 처음에는 모르고 그냥 띄었는데 감염이 되어서 많이 곪았어요. 나중에는 알았는데 그걸 성냥개비로 뜨겁게 하나씩 지져야 되요. 그런데 등에 붙은 거는 보이지 않으니까 스스로 모르잖아요. 그 진드기가 등에 많이 붙으면 고열을 일으킨대요. 그래서 등에 붙은 진드기들은 피를 빨아먹다가 배가 차서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또 동남 아시아에 가잖아요. 그러면 여자들 머리에 이가 많잖아요. 제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동남 아시아에 있었던 팔 개월 동안 내내 이가 있었어요. 머리 빗으면 까만 거 뚝뚝 떨어지는 거 있잖아요. 그렇지만 이 옮았다고 죽지는 않잖아요. 그리고 네팔에서는 트레킹 할 때 21일 동안 목욕을 안했어요. 왜냐하면 너무 깨끗하면 그 사람들이 이질감을 느끼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큰일이 아니라면 가능한 현지인 들과 같이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은 여행 중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감수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아주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그 다음에 사람들이 많이 묻는 질문, 말이 어떻게 통했어요? 하는 거죠. 사실 오지에 가면 다 안통하죠. 그런데 사람은 눈치라는 게 있어요.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정말 머리가 좋아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생길 때 여러분들도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죠. 예를 들면 이란에 갔는데 이란말 하나도 모르죠? 그러면 저는 일단 그 도시에 있는 큰 대학 서점에 가서 영어로 된 그 나라 사전을 사요. 잘 할 필요 없이 그걸로 단어만 연결하면 얼마든지 의사 소통이 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혹시 영어 못해서 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만 나열해도 얼마든지 의사가 소통되니까요. 그러니까 걱정보다는 일단 먼저 해 볼 생각부터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제가 육 년간 다녀봐서 알아요. 제가 명색이 오지여행가인데 말이 통하는 데만 다녔겠어요? 세상에는 말이 안통하는 곳이 훨씬 많죠. 예를 들어 남미나 중남미가 다 스페인어를 쓰냐하면 그게 아니에요. 조금만 들어가면 그 나라 그 지방 토속어를 쓰기 때문에 스페인말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곳이 많아요. 그런데 그럴 때는 보통 처음부터 제스처를 하죠? 하지만 그건 상당히 위험하다는 사실을 다니면서 새삼 느꼈어요. 제스처는 결국 가장 간단한 의식주에 대해서 묻는 거죠. 먹고 입고 자고. 그런데 사실 어느 나라 어느 지방을 가던지 간에 제스처를 오해 없이 쓰려면 한 삼일 정도는 좀 눈여겨봐야 되요. 왜냐하면 우리나라와는 다른, 전혀 예상치 못하는 게 있어요. 예를 들면 케냐에서 에티오피아로 가는 길이었는데 케냐까지는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어를 많이 쓰는데 에티오피아로 딱 넘어가니까 그 사람들 말을 쓰더라구요. 정말 하나도 몰라서 눈치만 보고 있는데 첫날 지나자마자 다 같이 밥을 먹게 됐어요. 어른들하고 남자들 세 네 명하고 같이 밥을 먹는데 그 중 영어를 조금 하는 사람이 어디에서 왔느냐 묻더군요. 그래서 한국에서 왔다고 그랬더니 억 하고 깜짝 놀라는 거예요. 에티오피아가 북한의 맹방이었거든요. 그래서 놀래나 싶어 우리나라와도 국교가 있다고 안심을 시켰어요. 그리고는 또 제 이름이 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한비야라고 그랬더니 또 억 하고 놀래는 거 있죠? 그래 저는 또 내 이름에 무슨 뜻이 있나 그랬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에티오피아에서는 '억' 하고 놀라는 게 '알았다' 라는 뜻이었어요. 또 있어요. 제가 인도에서 광견병 걸린 개한테 물렸어요, 정말 운이 없었죠. 얼른 병원에 가서 약을 한 대 맞고 의사에게 괜찮겠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이 의사가 아차, 이래요. 저는 영문도 모르고 이거 어떻게 됐다는 건가 뭐가 잘못되었나 그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인도말로 아차 는 괜찮다는 뜻이었어요. 그리고 티벳의 시골에 들어가면은 할머니들이 이렇게 혓바닥을 내밀어요. 뭐 약올리는 게 아니라 반갑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의미는 좀 알아야겠지요. 그렇다고 너무 긴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거든요. 그림이 얼마나 잘 통하는지 아세요? 제가 러시아에 갔는데 러시아말은 단 한마디 에스파시바, 무슨 말했는지 모르죠? 고맙다는 뜻이에요. 겨우 그 한 마디 밖에 못했는데도 모스크바까지 가는 기차표를 아무 문제없이 살 수 있었어요. 일단 역에 가서-모스크바라는 말은 알죠-모스크바라고 써요. 그 다음에 시계를 하나 그리고 돈을 그려요. 그리고 창구에 넣으면 시계 밑에 시간을 써주고 돈 밑에는 금액을 써줘요. 그러면 달라는 만큼 돈을 내주면 모스크바 기차표가 딱 나와요. 그러니까 여행 중에 무슨 언어 소통을 못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에요. 결국 여행을 잘 못하는 이유는 눈높이로 사람들을 보지 않았다는 거기에 제일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여러분들이 많이 걱정하는 부분이 여행 중의 어려움이죠. 많은 분들이 여자 혼자 되게 어려웠겠다 생각하지요. 물론 그래요. 여행자들이면 누구든지 겪어야되는 그 강도, 저는 아프리카에 간 첫날 강도를 만났어요. 물을 사러 나갔는데 진짜 큰놈이 뒤에서 저를 확 잡았어요. 그리고 그 앞에 있는 놈은 보통 전대를 앞에 두르고 다니니까 열심히 앞을 뒤지죠. 그때가 대낮이었어요. 그래도 그런 놈들이 너무 많아서 아무도 안말려요. 그런데 저는 여행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전대 같은 것은 속옷 밑에다가 해놔서 아무도 몰라요. 그래 그 사람들이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가 없었지요. 정말 그 때는 간신히 도망쳤어요. 또 야생견한테 둘러싸이기도 하고, 원숭이한테도 물렸어요. 빙하에 빠질 뻔해서 고생한 적도 있었지요. 그리고 또 한번은 몽골에서는 말을 타고 가다가 몽골개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몽골개가 저한테서 외부인 냄새가 나는지 말을 공격해서 상당히 위급한 상황에 놓였었지요. 그래서 말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갈기가 뜯어져라 잡고 겨우 빠져 나왔어요. 그럴 때마다 청심환 먹고 마음을 가다듬지 않으면 한 2,3일 동안은 가위에 눌려요. 그런데 그런 일만 있느냐? 그렇진 않아요. 정말 그런 일은 이야기하다 보니까 말할 거리가 되는 거지 사실은 정말 따듯한 이야기도 많아요. 오지에서 만나는 따듯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주는 에너지 때문에 앞으로 앞으로 나가게 되는 거죠. 볼리비아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산이 워낙 높아서 내려가는 데만 한 5일 정도 트레킹 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가는 도중 계속 비가 왔어요. 삼 일째 되는 날도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도무지 텐트 칠만한 곳이 없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는데 멀리서 반짝반짝, 헨델과 그레텔에 나오는 초콜릿으로 만든 집에서나 나올 듯한 불빛이 보이더군요. 얼마나 기뻐요, 어디서 노숙을 해야 할 지경인데. 허둥지둥 불빛이 있는 방향으로 더듬어가니까 늙은 할머니 혼자서 고양이랑 같이 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이 찾아가니까 너무너무 반가워하시더군요. 손님이 왔다는 거죠. 마침 그때 네덜란드 여자아이랑 같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저희들을 보면서 신발을 벗으래요. 그런데 그 네덜란드 아이는 저 할머니가 신발이 탐나서 그렇다는 거예요. 배낭 여행 다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어디 가면 뭐 달라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할머니가 그 산골에서 정말 신발이 필요할까 생각하며 어쨌든 벗어서 드렸어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양말을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 또 벗어서 드렸어요. 그랬더니 나뭇가지를 갖고 오셔서 신발과 양말을 걸쳐 불 앞에다 놓고 말려주시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 날 저녁 산골이라 먹을게 없으니까 마라고, 고구마 같이 생긴 것을 삶아 드시면서 우리한테도 하나씩 주셨어요. 그런데 혼자 사는 할머니라 지저분하죠. 앞도 잘 안보이시는 할머니이신지라 좀 지저분하게 내놓으니까 그 네덜란드 아이들은 싫다고 딱 잘라 거절하더라구요. 할머니께서 좀 무안하실 거 아니에요. 그래서 저도 그때는 마라는 걸 먹어본 적은 없지만 할머니께 저는 그거 좋아하니까 다 달라고 해서 맛있게 먹었지요. 그렇게 거기서 한 잠 자고 그 다음날 일어나서 보니까 할머니가 너무너무 늙으셨어요. 너무 늙으셔서 눈도 잘 안떠지는 할머니 계시죠. 그런 할머니이세요. 그러다 보니까 옷이 다 뜯어졌어도 할머니는 잘 모르시는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께 옷 뜯어진 거 다 갖고 나오라고, 제가 다 꿰매 주겠다고 그랬더니 옷가지가 침대 밑에 한가득 쌓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다 꿰매 드렸어요. 입던 옷은 창피해서 안벗으신다 하셔서 입은 채로 꿰매드렸구요. 그 할머니에게는 아들이 있었대요. 오 년 전에 도시로 나갔는데 언제 올지 몰라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래요. 나중에 떠날 시간이 다 되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하루 자고 가니까 돈을 드려야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 산골에 할머니가 돈이 필요할까 싶어서 이틀이면 트레킹이 끝나니까 비누나 설탕같이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을 모두 드렸어요. 그리고 작별인사를 드리는데 할머니께서는 다른 애들한테는 그저 잘 가라고 하시더니 저를 보시고는 얼굴이 달라지시는 거예요. "또 올 수는 없겠지?" 하시더군요. 어떻게 또 가겠어요. 어쩔 줄 몰라서 저는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그랬더니 "젊은것들은 가기만 하면 안와" 이러시면서 남미식 인사 있죠? 양 뺨에 뺨을 맞추어주시더군요. 저는 그 날 그 할머니 눈물로 세수했어요. 그리고 그 할머니의 배웅을 받으면서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또 베트남의 어떤 아이였어요. 베트남 여관에서 만난 종업원인데 여관에서 하도 구박을 당해 다시 자기네 고향으로 가는 중이었지요. 제가 민박을 하고 싶다 그랬더니 그러면 자기네 집으로 오라고. 하잖아요. 꼭 가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자기 집에 오라고 초대를 해주더군요. 굉장히 좁은 집에 자그마치 아홉 명이 살아서 사람들이 바로 못 자고 이렇게 옆으로 자야 되요. 그리고 시장 좌판에서 달걀을 파는 집이라 돈도 정말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원래 돈이 없었느냐 하면 그게 아니라 그 아이 아버지가 예전에 월남군 할 때 영어 통역을 하셨던 분이래요. 그래서 아주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해서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어쨌든 그 종업원 아이가 너무 똑똑하고 영어도 잘해서 "어떻게 영어를 배우니?" 그랬더니 자기는 주로 '창 밖의 여자'였대요. "그게 무슨 말이야?" 했더니 학원비가 없으니까 매일 학원 창가에 가서 들었대요. 선생님이 가라고 하면 갔다가 또 와서 듣고 이렇게 한 며칠 하니까 선생님이 기특하게 생각하고는 안으로 들어와서 공부하라고 했대요. 그래서 제가 "영어를 잘하니까 달걀장수 말고 좀 더 좋은 일을 할 수는 없을까?" 그랬더니 자기는 얼굴도 못생겼으니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대요. "무슨 기술인데?" 물었더니 컴퓨터 기술이라고 하더군요. "그거 배우는데 얼마나 들어?" 했더니 막 계산하면서 "백 달러나 드는 거 있죠." 이러는 거예요. 거기서는 백 달러가 너무 너무 큰돈이에요. 사실 시장 좌판을 해서 1달러 버는데 그거 가지고 아홉 식구가 생활을 해야 되잖아요. 그러니 백 달러는 꿈도 못 꾸는 액수지요. 그런데 하여간 원래 베트남은 민박이 안돼요. 그래서 민박을 하면 감시당하는 사람들에게 걸려요. 그래서 저는 '롱'이라는 큰 모자를 쓰고 옷과 신발을 빌려서 다니고는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그만 실수를 했어요. 아이들 중에서 베트남 전통 머리가 있었어요. 앞에만 요만큼 남겨놓고 다 빡빡 미는 건데 어떤 아이가 그 머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옳다구나 하고 사진을 탁 찍었는데 해가 저물어 가던 중이라 플래시가 터져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그만 들키고 말았어요. 너무 미안하잖아요. 정말 너무 큰 실수를 했다고 사과했더니 괜찮다면서 다른 데로 옮겨주었어요. 그런데 괜찮긴 뭐가 괜찮았겠어요. 그 날 바로 경찰이 왔었데요. 거기는 아직도 이십호담당제 같은 걸 하거든요. 제가 만일 거기 있었으면 아주 큰일 날 뻔했었어요. 너무나 큰 신세를 지고 말았죠. 그래서 사실 저는 여행 다니면서 소문난 짠순이거든요. 제일 싸구려 숙소에서 묵으면서 맨날 추위에 떨고 식당 같은데 가면 제일 싼 거 먹고 이러는데, 제가 다시 사이공으로 돌아오는 날 그 종업원 하던 아이한테 백 달러를 주고 왔어요. "야, 너 컴퓨터 열심히 배워서 좋은데 취직해라" 이랬지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너무 놀래더니 이내 제 말을 알아듣고는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고 고마워했어요. 사실 그 백 달러는 저에게도 매우 큰돈이죠. 하지만 저에게 백 달러는 모을 수 있는 큰돈이지만 그 아이한테는 미래가 달린 돈이잖아요. 그래서 너무너무 기쁘게 그 돈을 주고 왔어요. 그런데 며칠 전에 그 친구한테 편지가 왔어요. 드디어 컴퓨터 프로그램을 마쳤다고. 6개월 프로그램을 제가 준 그 돈으로 마쳤다고. 그래서 여러 군데 취직을 알아보고 있다고요. 정말 저에게는 고맙고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거 같아요. 아까 그 할머니의 옷 꼬매주는 이런 일은 한국사람들이면 그때 누구든지 꼬매주고 싶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무슨 특별히 측은지심이 많다거나 봉사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저는 다소 이기적일 수도 있는 사람인데 그렇게 돈도 주고 옷도 꿰매주고 하는 걸 보면 한국사람들의 정은 정말 고품질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런 따듯하게 주고받은 정들이 에너지가 되어 계속해서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에 온 힘을 쏟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니까요. 여러분은 지금 정말 '목숨을 걸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없다면 지금부터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그게 바로 젊은이들이 해야할 일이니까요. 목숨 그거 굉장히 중요하죠.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그런데 그 목숨이 어느 때 가장 아름다운가 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제 자신이 젊은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아직도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힘이 있고 그리고 아주 통제할 수 없는 호기심이 있거든요. 그리고 나에 대한 자신감도 있구요. 이 자신감은 내가 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무슨 일을 한다면 그걸 끝까지 해보겠다 라는 자기 신뢰와 같은 거죠. 되든 안되든 끝까지 해보는 것, 그러다가 안되면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렇지만 결국은 되는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제가 58년 개띠예요. 그러니까 지금 반은 살았죠? 마흔살. 그런데 지금까지 보니까 세상에 지름길은 없어요. 한발 한발 자기가 가야 되요. 목표를 정해놓고 한발 한발 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꿈꾸던 그 일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대신 목표를 향해서 이렇게만 꾸준히 가고 있으면 나는 반드시 간다라는 자기 신뢰와 믿음을 잊지 말아야겠지요. 물론 세상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겠죠. 저도 모든 일을 다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자신이 택한 몇 가지 자기의 일, 그거에 목숨을 걸고 한다면 안되는 일 보다는 되는 일이 훨씬 많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아직도 나는 무슨 일을 해야지 세상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될까, 아니면은 내 능력의 최대치를 쓰고 갈까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정말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중이에요. 한번 곰곰이 생각해봐요. 자신은 무슨 일을 할 때 목숨을 걸 수 있을까. 무거운 이야기이지만 피할 수 없는 주제라고 생각하시고 깊이 있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자신은 갈고 닦기만 하면 보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이 돌덩인지 유리덩어린지 갈고 닦으면 보석이 되는지 그것만 깨달을 수 있다면 인생의 중요한 문제 하나를 푸는 셈입니다. 다행히 저는 여행을 통해서 제 자신이 보석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여러분 오늘 한번 생각해 보세요. 보석이 될 수 있는 소중한 자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자신은, 나는 어디를 향해서 한 발짝 한 발짝 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