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우리 삶의 축척, 우리 음악

반갑습니다. 저처럼 작곡을 하거나 연주를 하는 사람들은 상상이 앞서기 때문에 학문적인 논리로 그 순서를 밟아 나가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럽습니다. 다만 저의 평소 생각을 메모한 내용을 중심으로 왜 우리가 요즘같이 급변하는 세대에 우리 것을 고집해야 되는가를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요즘 시대는 불확실성의 시대이고, 이 세계 자체가 엄청난 대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보다 정교하고 섬세해진 정보 매체를 통해 세계의 정보를 누구든지 빠르게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외국의 정보도 비단 과학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정보도 접할 수 있으며, 우리 것도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개방이 더욱 지속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우리 것이냐, 외국 것이냐 이런 구분이 완전히 해체되는 지구촌 환경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런 열린 세계 속에서 '우리의 주체는 과연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나는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대두되는데, 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뒤를 돌아다보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정체성의 확립 또는 자기 주체회복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상당히 무의미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삶의 축적 내용인 우리의 문화를 통해서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고대의 삶을 통해 원시예술을 추론해 봅시다. 원시예술은 농경, 수렵 생활과 연관된 여러 예술 형태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흔히《동의보의전》에 나온 얘기를 많이 인용하는데, 고구려의 '동맹'은 10월이 되면 추수가 끝나고 몇 날 며칠을 술과 가무를 즐기면서 지냈고, 또 예의 '무천,' 부여의 '영고' 같은 제천의식이 있었지요. 그런 의식이 원시시대의 생활 속에 나타나는 일종의 놀이 형태고 예술 형태라고 봤을 때, 이는 바로 그들의 삶의 내용 자체였던 것입니다. 시대를 거쳐오면서 우리는 각 시대마다 구별된 삶의 내용을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그 안에서 우리의 미(美)의식, 한국 예술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삶의 내용과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우리의 미(美)의식을 설명하기에는 난점이 많지만 우리 것이 왜 좋은지 알기 위해 이야기를 풀어 봅시다. 재미있는 것은, 서양음악은 작곡자의 역사인 반면 우리 전통 음악은 작곡자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작곡자가 없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음악이나 미술을 대하는 태도 및 자세가 서양하고는 달랐다고 우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이른바 동양 예술에서는 예술가 자신의 성품과 인품이 작품 속에 나타납니다. 저희 악단의 단원들을 오디션해 보면 앞에 칸막이를 쳐 놓고 같은 곡을 연주해도 저건 누구다, 저건 누구다 하고 그 보이지 않는 연주자를 알 수가 있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 그 사람의 성격대로 소리가 나오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급한 사람은 소리가 벌써 재게 날아갑니다. 그런데 성격이 무던한 사람은 깊이 있는 소리가 납니다. 우리 동양 예술에서는 성격과 인품이 합치된 예술이 아니면 훌륭한 예술, 생명력 있는 예술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인물이든 자연이든 대상에 대한 정신적인 요소를 포착할 능력이 있어야 뛰어난 예술을 창조할 능력이 있다는 거지요. 뛰어난 문화재들을 보십시오. 예술가의 혼이 서린 정말 불가사의한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전통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소리가 살아 있느냐, 죽어 있느냐 그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서양처럼 뚜렷한 기준이 있는 음악 평론적인 근거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과연 이 음악 소리가 나를 감동케 하느냐 안하느냐 그런 얘기지요. 그래서 이른바 고도의 수련을 통해서 나타난 음, 그것을 성음(成音)이라는 말로 많이 씁니다만, 소리를 과연 이루었느냐는 거지요. 즉 우리 동양 예술은 자기 작품을 만들어 내는 데 있어서 자기 혼이나 자기 생명을 불어넣지 않고는 남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동양에서는 예술이라고 얘기하기보다는 예도(藝道)라는 말로 표현을 하지요. 그러니까 예술을 보는 관점 자체가 우리 문화와 서양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차이를 인식할 때 우리 것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음악의 종류는 상당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요금 젊은이들에게는 한 가지만 집중적으로 쫓아가는 편집증이 만연해 있습니다. 사물놀이 같은 것은 리듬이 있고 신나니까 여러분 기분에 맞는 듯합니다. 저도 처음엔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못 앉아 있겠어요. 자기 혼을 넣어서 소리를 만들어 내는 모습, 서로 조화를 이루어 내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이래도 안 놀래? 이래도 안 놀래? 하며 듣는 사람들을 몰아가는 느낌이 들거든요. 마지막 빨리 할 때는 장구치는 게 안 보이고 고개 돌리는 것만 보인다구요. 따라서 우리 고유 음악을 들을 때와 같은 진한 감동이 없고 스트레스 잘 풀었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예술 창작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전부 민중계급이었고 천하게 여겨졌던 사람들입니다. 그 천하게 여겨졌던 사람들이 훌륭한 예술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주어진 삶과 자연에 순응하는 태도로 자기 혼과 생명을 다 불어넣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시대를 관통하며 감동을 주는 예술로서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지요. 즉 삶 자체를 소박하게 드러내며 환경에 순응하는 자세로 혼을 바쳐 몰입하는 모습과 그 결과물이 바로 우리의 전통적 미(美)의식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다음으로 우리의 음악이나 우리의 문화라는 것이 우리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흘렀는가 하는 것을 짚어보고, 우리가 그 동안 남모르게 서양음악에 너무 압도당했던 얘기를 좀 재미있게 풀어 갈까 합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우리 음악사에는 무지해도 서양의 음악사는 웬만큼 파악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자랑스런 음악사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국립국악원의 뿌리는 통일신라시대에 궁중 음악과 민속 음악을 전부 총괄하는 기관인 음성소입니다. 옛날 신라시대의 음성소의 수장은 요즘으로 치면 장관급입니다. 그만큼 정치하는 데, 또 국민을 다스리는 데 음악을 중요하게 여겼지요. 이 음성소에서는 당에서 전래된 음악과 관련된 문물을 정비하여 우리 실정에 맞게 개량하고 불교음악을 정리하고 제도화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범패 소리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정리된 거예요. 우리나라 악기 중에 대금이란 악기가 있지요. 그 대금이란 악기에는 전설이 있습니다. 신라 신문왕이 동해바다를 산책하는데 한 외딴 섬에 밤이 되면 두 개로 보이는 대나무가 하나 자라고 있기에 그것을 베어 오게 해서 악기를 만든 게 대금인데, 그 대금을 아픈 사람 앞에서 불면 병이 낫고, 전쟁 때 불면 전쟁에 이기고, 나라가 위급할 때 불면 나라가 부강해져 위기를 벗어나게 되는 등 그야말로 만병통치의 악기가 된 거지요. 이렇듯이《삼국사기》,《삼국유사》에 나오는 내용을 음미해 보면 우리 민족은 영적인 것에 비중을 두며 대자연과 일치감을 가지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아름다움의 비밀이라는 것도 자연과의 일체감, 영적 신비감을 지니는 모습에서 유추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신라시대를 지나서 고려시대에는 음악을 관장하는 기관이 대악사로 바뀝니다. 물론 고려시대에도 송나라 음악을 들여와 그것을 아악이라고 했고, 민중을 기반으로 해서는 고려가요가 성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음악이 본격적으로 정비되는 것은 세종대왕 때 이르러서입니다. 제가 언젠가《한국일보》에 칼럼을 쓸 때 세종대왕에 대해서 음악적으로 볼 때도 상당히 존경스러운 인물이라고 썼는데요, 세종대왕은 고려 때부터 송나라 음악을 궁중에서나 민간에서 그대로 답습하듯 연주하는 걸 보고 우리에 맞게 바꾸지 않으면 외국음악에 젖어 버릴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박연이라는 음악가와 유자광이라는 특출한 이론가를 내세워서 우리 식의 음악으로 다 바꿔 버립니다. 여러분들 편종이라는 악기, 16개 달린 종 많이 보셨지요? 또 기역자 모양의, 소리가 나는 돌 그런 것들이 이때 제작됩니다. 그리고〈용비어천가〉,〈여민락〉이라는 곡이 작곡됩니다. 그 이후로 우리 조선시대의 음악은 여러 가지 양식으로 발달되어 시조, 판소리 또는 굿, 춤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음악들이 양반계급과 상인계급 사이에서 다양하게 발달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것들이 왜 단절되었을까요? 그야말로 우리에겐 뼈아픈 역사, 즉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우리의 풍성한 문화예술을 잃게 되었습니다. 진짜 좋은 문화적 요소들을 일본 사람들이 정말 철저하게 없앴어요. 예를 들면 조선시대의 음성사인 장악원에 악사가 약 800명이 있었는데, 일제시대 중반에 그것을 이왕직 아악부라고 부르게 하고 단 50명만 두게 됩니다. 나중에 1951년도에 들어와 이승만 대통령이 그래도 우리 음악을 지키는 기관이 있어야 되겠다 해서 앞의 것을 이어받아 만든 것이 국립국악원이고 그 국립국악원에서 부설 학교로 만든 것이 지금 현재의 국립 국악 중·고등학교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국악이 살 수 있는 길이 트였고, 그것이 각 대학 국악과의 전공자로 남았고, 국립 국악관현악단이 생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표현했던 음악은 분명히 그 시대의 삶의 내용을 표현했으리라고 봤을 때, 과연 요즘 우리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요즈음 대중 음악을 들으면서 이게 우리의 삶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그보다 수준이 낫다고 생각하는〈열린음악회〉스타일이 정말 우리 삶의 내용을 표현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조수미, 정명훈, 장영주, 장한나 공연을 이십만 원씩 내면서 구경하는 것이 진솔한 우리의 삶의 모습일까요? 그것을 한 번 여러분들도 생각을 해봐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른바 일본식 신식 교육의 잔재가 남아 있는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교재를 통해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고, 계속 그 영향권 아래 있었기 때문에 우리 것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고, 우리 것을 듣는 데 힘들어 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또 학교에서 배우는 노래는 재미없어 해요. 이미 학교에서 배우는 동요 같은 것이 상당히 엄숙한 음악이 된 겁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대중가요를 더 즐겨 듣는 거예요. 또 입시교육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 정도 되면 음악교육은 없어집니다. 음악이나 미술이 우리 정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그것 자체가 우리 상상력을 얼마나 풍성하게 하는지에 대한 중요성을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감수성이 풍부한 어린 시기에 우리의 것을 접하게 하여 우리를 우리답게 감성적으로 계발시키는 프로그램을 우리는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클래식 공연장에 가서 클래식 음악 듣는 법을 배운 적이 있어요. 베토벤 교향곡 하는데 떠들 수가 없지요. 의자에 이렇게 앉아 가지고 연주하는 것을 봅니다. 짜자자잔! 처음엔 상당히 감동적이지요. 그런데 언제 끝나는지 모르니까 손뼉 칠 때를 모르는 거예요. 짜자자! 여기서 쳐야 되나, 짠! 여기서 쳐야 되나? 이러니 박수가 몇 번씩 나온 적이 드문 일이 아니지요. 말하자면 그 음악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박수를 어디서 쳐야 될지를 배우는 거예요. 이것은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 엄숙한 음악에 대해서는 끝까지 공부하듯이 접근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다면 노래방 가서는 어떻습니까? 노래방에 가서〈창밖의 여자〉불러야 잘 불렀다고 하지〈선구자〉부르는 것도 이상하지요. 여러분들, 지금은 젊은이들 노래를 부르지만 조금 나이가 들면 "뽕짝이 듣기가 좋아. 역시 뽕짝이 우리 감수성이야" 이런 얘기들을 자기도 모르게 하는 겁니다. 이미 어릴 적에 음악적 감수성에 있어서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뽕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 뽕짝이라는 게 뭡니까? 일본 노래예요. 여러분들 흔히 아시는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학교종이 땡땡땡' 이거 다 일본 노래입니다. 과거 우리 삶에 대해서, 현재 우리의 삶과 문화적 현상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해봐도 우리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둥 말 둥 합니다. 그런데 지금 나타나는 현상들을 보면 도무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서태지가 여러분들을 대변합니까? 요즘 가수들이 무엇을 얘기합니까? 여러분들에게 제일 급한 게 전부 사랑입니까? 이별입니까? 그게 여러분들 삶이에요? 삶의 내용이 정말 그래서인지 아니면 관심사가 편집적으로 흐르기 때문인지 어쨌든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보여지는 행태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 것의 내밀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흡수하여 그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되도록 해야 하며, 또 예술가는 그 축적된 삶의 내용에서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있는 상상력을 발원시키는 바람직한 순환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이에 대한 젊은이들의 역할이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