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육학과- - 특강 및 행사안내 > 목요특강 공지 : 사회구조와 개인윤리

이 시간은 교양 강연이라는 점에서 삶의 문제에 대해 여러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여러분과 저는 세대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렇지만 제가 대학 시절 고민하던 문제나 여러분이 고민하는 문제가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꼭 살아야만 하는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의식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있으니까요. 다만 우리 세대에는 '당장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어떻게 해야 헐벗고 굶주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 대다수의 문제였다면, 여러분 세대는 '우리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사는가?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사람들이 존재 이유를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고민할 것입니다. 사실 기계 문명의 발달로 생활이 편해졌지만 우리가 기계의 노예가 돼 가는 국면도 없지 않습니다. 특히 인터넷 시대에 와서 우리는 어떤 알지 못하는 힘에 지배를 받게 됐고, 앞으로의 세상을 예측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과학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먼저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20년, 30년 전 사회학 교과서에 늘 등장하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전기장치로 사람을 고문을 하는 실험인데 이 실험을 위해 도우미를 구했습니다. 칸막이를 쳐서 고문 받는 사람을 앉혀놓고 반대편에서 강도 조절 버튼을 누르는 일이었죠. 한 30여 명 학생들에게 시간당 약 1달러의 보수를 주고 이 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강도가 더 이상 높아지면 죽는다.'라고 얘기했는데도 더 이상 못 하겠다고 뛰쳐나간 학생이 단 2명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나머지 학생들은 신호에 따라 조금씩 강도가 높은 버튼을 누르다가 급기야는 사람이 죽는 강도의 버튼까지도 눌렀던 겁니다. 사실 이 실험은 사람의 의식이 과학이라는 명분에 의해 얼마만큼 마비되는가를 측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과학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의식이 마비되고 기계처럼 조작을 당해 사람이 죽는다는 데도 무심하다는 겁니다. 이러한 인간의 문제,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게 풀리지 않습니다. 이런 고민에 해답을 내놓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러한 답은 남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어떤 상황에 부딪혀 고민을 하는 가운데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얘기하려고 하는 러시아 지식인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오늘 강연의 제목인 '사회구조와 개인윤리'가 바로 그 사람들의 고민거리였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러시아는 미국과 함께 초강대국인 나라로 알려졌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빈국으로 전락해 미국에게는 물론 우리에게도 무시를 당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금 러시아의 모습이 지성의 위기, 의식의 마비가 만들어 낸 가장 큰 표본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문제의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데 잘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을 원대한 이상만 내걸고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니 파산으로 끝났고, 1991년부터 새로이 시장경제,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미리 경고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오늘 주제가 되는 논문집 {Vekhi(향방표지)}를 낸 사람들입니다.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름들이 별 의미가 없겠지만, 철학자 'Nikolai Berdyaev', 'Sergei Bulgakov', 법학자 'Bogdan Kistiakovski', 사회 사상가 'Mikhail Gershenzon',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Petr struve', 'Semen Frank', 'Aleksandr Izgoev' 일곱 사람들이 이 논문을 썼습니다. 이들은 러시아의 인텔리겐챠라는 집단의 지도자격인 인물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인텔리라고 하면 단순히 지식인을 뜻하지만 러시아에서 인텔리겐챠는 강한 사회의식을 가지고 사회주의를 구원하는 데 헌신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들은 직업적인 전문가는 아니지만 사회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지적 능력을 동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이런 인텔리겐챠라고 하는 집단이 러시아에 있었을까요? 간단히 얘기하면 경제·사회적으로 후진국이었던 러시아는 18세기초 표트르 대제가 나타나면서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위해 서양의 것을 빠른 속도로 배우기 시작합니다. 이에 나라를 유럽적인 질서로 개편하면서 본래는 동양적인 성격이 강했던 러시아의 상류층이 먼저 서구화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18세기말 전제체제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귀족 청년층이 형성되고 이 사람들이 소위 인텔리겐챠의 모태가 되는 것입니다. 근세에 접어들면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농노제를 폐지하고, 전제체제를 타파합니다. 또한 프랑스 혁명 후 중산층이 중심이 된 산업화 물결이 일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성립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19세기 초 대영제국과 함께 패권국이었던 러시아는 전제체제를 고수하면서 부국강병을 시도합니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 80%가 농노 또는 국가에 귀속된 노동자들로 구성되고, 상층부인 3%가 권력과 부를 누리는 비대해진 나라가 됩니다. 이때 최상류 귀족층들 내부에서 자기들만 특전을 누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개혁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1860년대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중·하급 출신들이 인텔리겐챠의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러시아는 1861년 농노해방을 이룩하지만 때늦은 개혁이었고, 그밖의 다른 개혁도 형식적인 개혁에 불과했습니다. 때문에 지주에게서 해방된 농민들이 오히려 의지할 때 없는 신세가 되어 도시로 흘러들면서 거대한 노동자 집단을 형성합니다. 국가 보호 속에 외자 유치를 골간으로 한 산업화 정책이 1890년대 큰 성과를 보지만 산업화가 급속히 진전될수록 사회적인 모순은 그만큼 더 격화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지식인들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 러시아에는 언어가 다른 약 150개의 민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슬라비아계와 동방 민족까지 포함한 150여 소수 민족을 이끌고 근대화로 추진하려다보니 많은 혼란이 있었던 겁니다. 이때 사회주의 이념이 굉장한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각광을 받게 된 것이 이른바 맑시즘이라고 하는, 칼 맑스와 엥겔스가 만든 사회주의 이론이었습니다. 맑스주의는 경제·사회가 발달하여 자본주의 단계에 들어서면 자본이 소수에게로 집중되어 많은 노동자들은 노동만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모순이 생긴다고 봅니다. 그래서 무산층이 된 절대 다수의 노동자들이 일어나 체제를 혁신해 평등하게 분배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사회주의의 이상으로 러시아인들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또한 노동자가 가치를 가장 많이 창출하는 만큼 정당한 몫을 받아야 한다는 노동가치설은 새로 생긴 모든 계층과 지식인 계층에까지 호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앞서 산업화가 진행된 영국, 벨기에, 독일 등에서는 초기 자본주의 체제의 단점을 체제 스스로가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우 초기 자본주의 체제가 제대로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혁명적 맑스주의가 노동자는 물론 많은 계층에게 큰 호응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1890년대 러시아에선 젊은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맑스주의자가 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또한 레닌을 중심으로 산업 현장에서 노동 해방 단체가 결성됩니다. 이때부터 전제체제 옹호자와 혁명 세력간 갈등이 심해지다가, 1905년에 혁명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후 러시아 사상 처음으로 군중세력에 밀린 전제체제가 '두마'라는 의회를 만들고 기본법을 제정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정당 정치가 시작됩니다. 아직은 국회가 주권체는 아니었지만 의견을 제시하고 도덕적 구속력을 가졌습니다. 그 때 나타난 현상이 무엇인가? 그 동안 규제에 억눌려 온 온갖 사회세력들이 풀려나면서 혼란한 상황이 벌어지고 어떤 것이 혁명세력인지 범죄세력인지 모르는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바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인텔리겐챠 몇 사람이 1909년에 {Vekhi}를 발표하면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킵니다. 당시 러시아 정치 세력들에는 극좌에서 극우까지 있었습니다. 극우 진영에서는 '전제 군주의 양보로 기본법을 허용하고 의회를 만들어 철없는 세력들에게 숨통을 터 줌으로써 무정부 상태가 온 것이다'라고 하는 반면 좌익에서는 '이것은 혁명의 전주곡에 불과하고 진짜 사회주의 혁명은 앞으로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본래 맑스주의 공식에 의하면 자본주의 발달을 통해 생산력이 충분하게 갖춰진 상태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야 하는데, 자본주의가 발달되기도 전에 변화와야 했기 때문에, 혁명 그 자체가 지상의 과제로 인식됩니다. 그 다음은 무엇이 될 것인가 생각지 않고 무슨 방법으로든 일단 전제주의를 타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농민과 노동자 세력을 합친 레닌 동맹이 결성되면서 우선 혁명하면 된다는 식으로 운동이 전개된 겁니다. 게다가 소수민족들도 이 기회에 독립을 하겠다고 나서고 사회에 불만을 품은 세력들도 연이어 들고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시점에서 위에서 말한 일곱 지식인들이 반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성장배경이 모두 다른데 Nikolai Berdyaev가 귀족 출신으로서 귀족문화의 혜택을 듬뿍 받으며 유럽에서 공부를 한 사람인가 하면, Sergei Bulgakov는 가난한 성직자 출신으로 신학교를 중퇴하고 대학에 들어가 맑스주의 경제학에 심취했던 경제학도로 맑스주의 이론의 허구성을 발견하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Petr struve는 하급 귀족출신이고, Mikhail Gershenzon는 유태인 출신의 편집자입니다. 각기 관심과 성장배경이 다른 이들이 똑같은 생각으로 논문집을 낸 것입니다. 그 내용은 '혁명을 하겠다는 의도는 안다. 그리고 전제체제는 타도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제체제가 타도된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가, 어떤 사회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라는 대안 없이 온갖 힘을 규합하다보니 혁명세력 가운데는 굉장히 잡다한 세력이 섞여 있다'는 비판을 골간으로 합니다. 이제부터 이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Sergei Bulgakov는 [인텔리겐챠와 영웅주의와 금욕주의]라는 제목의 논문을 썼습니다. 인텔리겐챠의 종교적 성격에 대한 고찰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논문의 요지는 대략 이렇습니다. "본래 러시아 인텔리겐챠는 굉장히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다. 민중의 고통을 그대로 볼 수 없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심을 버리고 혁명에 투신한다는 면에서 종교적인 금욕주의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현 체제 타도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누구든지 혁명세력에 받아들이게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이상적인 체제를 위해 동참하는 세력이 있는가 하면 감옥이나 오가는 사람이 모든 것을 체제의 탓으로 돌리면서 혁명세력에 가담을 하면 두 개의 완전히 이질적인 세력이 공존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했던 혁명논리가 파괴로 대체되면서 체제뿐만 아니라 인간을 증오하는 자가당착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 급진적 인텔리계층이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는 겁니다. Nikolai Berdyaev는 철학적인 면에서 비슷한 문제를 정의합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정의감에만 사로잡히다 보니 진리가 무엇인지 잊어버렸다. 올바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해도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그른 것인지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정의만을 주장하다보면 감정이 격해지고, 무엇이 과연 올바른 정의인가 판단하는 능력이 없어진다. 그리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여러 지적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기의 소신이 없어지게 된다."라고 지적합니다. Bogdan Kistiakovski는 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법의식이 없다. 악법하고 오래 싸우다 보니 법이 사회를 지탱하고 인간을 보호해준다는 의식이 사라진 것이다. 러시아 사람에게 법은 타도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결국 인간 사회의 기본 질서를 쌓는 기회가 없이 남을 비난하고 체제를 비방하다보니 법만 없어지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오로지 사회체제, 사회운동에만 전념하다보니 방치된 개인윤리 속에서 자식들이 각종 유혹에 빠져있다. 그런데도 아버지라는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혁명 구호만 부르짖고 다닌다." 라고 하면서 다시 이런 점을 지적합니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과정을 중요하게 다룰 줄 알아야만 한다. 개개인의 윤리, 즉 올바르게 사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회제도만 고치면 된다고 하는 구세주적인 영웅주의에 빠지다 보니 정말 인간으로서 느껴야 하는 감정이 마비된다." 실제 19세기 말 20세기 초 러시아에선 서정 시인은 반사회적인 인간으로 매도되었고, 모두가 혁명이라는 정치적 문제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Mikhail Gershenzon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지식인이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 마디이다. '사람이 되라!' 이것이다. 사람이 되고 나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무엇이 필요한가 깨닫게 된다. 자신의 인격 수양과 무관한 외부문제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으로 행하는 자신의 행동이 올바른 것인지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큰 변화가 왔을 때 대처할 능력이 없다. 파괴 후는 생각지 않고 파괴에만 목적을 두게 되면, 권력은 극단주의자들 손에 가게 마련이다." Sergius Bulgakov는 혁명이 일어나기 10여 년 전부터 여러 정파 가운데 극단주의를 걷는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을 것을 예견했고, 그렇게 되면 짜르 시대보다 더 혹독한 독재체제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는 이러한 목소리가 들릴 수 없는 풍토였습니다. 오히려 대부분 러시아 사람들은 경악을 했고, 이들 일곱 사람을 배신자로 낙인찍습니다. 더욱이 극우-극단적 민족주의, 몽매적 종교주의자들이 원군을 만났다고 이들 일곱 사람을 환영하면서 오히려 동지가 되어야 할 혁명 세력에게는 배척을 받게 됩니다. 때문에 극좌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이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습니다. 이후 {Vekhi}에 대한 논문집만 10권 이상이 나오면서 일·월간지에서 이 논문집을 언급하지 않은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기에 상황은 그대로 급진주의적인 인텔리겐챠가 조정하는 쪽으로 전개됩니다. 1914년 1차 대전 발발로 전쟁의 부담을 안고 있던 전제체제는 러시아식 달력으로 1917년에 2월과 10월에 두 차례 혁명을 겪은 후, 극단적인 혁명지상주의파인 레닌에 의해 붕괴됩니다. 그리고 {Vekhi}에 기고했던 일곱 사람들이 예견했던 대로 그 이전 짜르 시대보다 엄격한 독재체제가 시작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산업이 굉장히 낙후된 상황에서 경제력은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 15년 전으로 되돌아갑니다. 국가가 총력을 다해 5개년 계획을 짜고 집단기획경제체제 속에서 중공업, 이른바 소비와는 무관한 군수산업 분야를 발전시킵니다. 그리고 노동자에게 최저 생계를 보장하려는 노력을 해보지만 절대적 부가 부족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실망한 많은 사람들이 저항하다가 강제 노동소에 가게 되었고 1930년대 레닌과 스탈린의 동세대인으로서 혁명을 주장하던 사람들도 전부 숙청됩니다. 1921년 저격받았던 레닌이 1924년에 숨을 거두고 스탈린이 그 후계자가 되지만, 스탈린의 독재는 시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공포정치로 일관됩니다. 연해주에 모여 살다 1937년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도 상당수 이때 희생되는데 당시 이들은 정치적으로 전혀 힘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정치적 영향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 수 만 명이 불순분자로 낙인 찍혀 숙청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중공업, 군수산업이 성장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때의 소련의 힘이었습니다. 그 결과 소련은 2차 대전 승전국이 되어 동구라파 전체를 지배하였고, 핵무기, 미사일, 인공위성 개발 분야에서 한 때 미국과 대등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상당수 사람들은 소련에서 사회주의 이상이 실현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들의 실제 생활은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 중반 고르바초프가 '재건'이라는 구호를 들고 체제 개혁에 나섰습니다. 사회구조만 개혁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혁명 체제만 유지했지, {Vekhi}에서 대두된 문제를 방치하다보니 개인윤리는 그 밑바닥까지 썩어 있었던 겁니다. 1920년대까지 {Vekhi}는 러시아에선 금서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사회구조의 문제 못지 않게 개인윤리, 책임감, 지적인 욕망 등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작은 소리를 듣는 분별력을 갖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분별력을 갖춘 진정한 지식인은 대중주의 현혹에 빠지지 않으면서 답을 찾기 위해 외롭고 힘든 길을 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모든 문제의 해답을 찾습니다. 여러분 같은 젊은이든, 나이 많은 교수든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오만한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그 사람이 학문적으로 설익었다는 증거밖에 안 됩니다. 스스로 체험을 통해 무엇이 진실인가 하는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만 합니다. 앞에서 본 일곱 인텔리겐챠가 말했듯이 러시아 전제체제는 러시아 지식인을 정서적·지적으로 왜곡시킨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잘못된 책임만을 나무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외부의 압력에도 왜곡되지 않도록 분별하는 것은 자신의 몫입니다. 그 시대에 맞게 귀를 열고, 눈을 뜨고, 가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도덕적인 삶과 사회구조에 대한 자신만의 판단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윤리만을 지나치게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인간은 평등합니까?, 평등하다면 어떤 의미에서 평등하겠습니까? 원론적으로 인간은 평등해야 합니다. 모든 생물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면에서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타고난 조건은 각기 다릅니다. 타고난 신체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환경도 다릅니다. 가정 환경이 다르고 국가적인 환경도 다릅니다. 종족적인 조건도 다르고 선의 조건도 다릅니다. 이런 것이 고려되지 않은 맹목적인 평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키가 작은 사람과 키가 큰 사람에게 똑같은 높이의 책상을 주는 것이 평등한 대우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기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일을 자유롭게 할 때 존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똑같이 대통령의 임무를 수행하고, 청소부 노릇을 하는 것이 평등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접하는 평등에 관한 논의에는 허구적인 논의가 많습니다. 모든 생명체에게는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고, 구속받지 않으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것을 강압적으로 억제하려 들면 무리가 생깁니다. 그런 반면 모든 생명체가 자신의 본능대로만 움직여서도 안됩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만든 것이 법입니다. 설사 그 법이 미흡하더라도 일단 준수해야 하고, 일정 합의를 통해서 규칙을 수정하는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법, 사회질서, 사회구조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밑바닥에는 타인에 대한 존중, 나와 같은 생명체에 대한 존중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반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프랑스 인권선언의 1조항을 보면 '만민은 평등하다'는 말밑에 '공익에 저해되지 않는 한 동등하게 대우를 받아야 한다'라고 적혀있는 겁니다. 개인윤리와 사회구조가 균형을 이루지 못한 사회는 언젠가 러시아와 같은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극단적으로 러시아의 경우까지는 아니더라도 결국 다른 무엇인가로 그 대가를 대신해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관심과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를 했지만, 하나의 역사적인 예를 통해 여러분들은 스스로 주변에서 많은 예를 찾기를 바랍니다.